<오마비> 신민아, 살찌우자 비로소 보이는 연기

 

최근 여성연기자들은 예쁨을 감추려 안간힘이다? KBS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살을 주체할 수 없는 뚱뚱이로 분장했다. 대학시절에는 남자들을 줄줄 달고 다니는 말 그대로 비너스였지만 역변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랑사또전>의 아랑이나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구미호 역할을 하며 미모를 뽐낼 때는 전혀 드러나지 않던 연기가 이 뚱뚱이 분장을 하자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최근 종영했던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은 물론 <킬미 힐미><비밀> 같은 작품에서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그저 연기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스러움이 비로소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 그녀 역시 <그녀는 예뻤다>에서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에 폭탄머리를 하고 나왔다. 그랬더니 오히려 그녀의 연기는 더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여성 연기자들에게 미모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무기이면서 동시에 거기에 속박될 수 있는 족쇄가 된다. 특히 출중한 외모를 가진 여성 연기자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주목받지만 대신 연기를 해도 그 연기가 미모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그 미모가 그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버려 새로운 연기를 할 때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젊은 나이에는 괜찮을 수 있지만 차츰 나이가 들어가면 미모의 여성 연기자들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신의 굳어진 이미지를 어떻게든 벗어나야 연기자로서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외모를 가려버리는 캐릭터들은 이들 여성 연기자들에게 매력적인 기회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한때 이런 장치로 가장 많이 쓰인 건 남장여자였다. <커피프린스1호점>의 윤은혜는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대중들의 새로운 주목을 받았고,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은 늘 따라붙던 국민여동생 이미지를 그 남장여자 캐릭터로 깨버릴 수 있었다. 또 이렇게 이미지를 깨는 데 유용한 역할이 바로 악역이다. 수애는 <야왕>의 주다해 같은 악역을 통해 자신의 고고한 이미지를 깨려 노력한 연기자다.

 

<오 마이 비너스>의 신민아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녀에게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캐릭터를 얻은 셈이다. 뚱뚱이 강주은이라는 캐릭터는 보기 불편할 정도로 뚱뚱한 몸과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갖고 있지만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인물이다. 일단 강주은이라는 뚱뚱이 캐릭터가 가진 씩씩하고 밝으며 자신감 넘치는 그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그녀가 어서 살을 빼고 제 모습의 비너스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이건 놀라운 변화다. 대체로 신민아가 연기를 한다고 하면 시청자들은 흔히 그 외모를 오히려 불편해한다. 왜냐하면 마치 그 외모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은 생각을 갖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마이 비너스>는 정반대다. 그 외모를 뚱뚱이 캐릭터로 가리고 연기를 먼저 보여주고 나니 오히려 본래 신민아가 갖고 있던 그 외모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되는 것.

 

여러모로 <오 마이 비너스>는 극중 캐릭터인 강주은이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신세 마일리지라는 표현처럼, 신민아에게 신세 마일리지를 갖게 하는 드라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뚱뚱한 얼굴에서도 동그랗게 뜬 눈으로 참 많은 걸 표현해내는 신민아를 보게 되다니. 연기자로서 < 오 마이 비너스>는 신민아에게 어떤 분수령이 될 만한 작품이다.



연기자에게 필요한 것, 출연료 아닌 좋은 작품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어서 일까. 드라마의 성패에 따라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건 작가나 연출자가 아니라 연기자다. 그러나 연기자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어도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연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연기력이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작품의 캐릭터가 워낙 좋으면 그 연기자는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2007년도 드라마들에서도 그런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자들을 살렸던 드라마, 또 연기자들을 울렸던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연기자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킨 드라마들
그간의 부진을 씻고 정상의 궤도로 연기자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커피프린스 1호점’. 이 작품에 출연한 윤은혜, 공유, 이선균, 채정안은 모두 과거의 아픈 기억 하나씩을 갖고 있는 연기자들이다.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서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지만 늘 따라다니는 건 연기력 논란이었다. 공유 역시 ‘어느 멋진 날’ 같은 작품에 등장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했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약한 배역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채정안은 ‘해신’ 등을 통해 연기를 선보였지만 오랜 공백 끝의 복귀였다. 그러니 이 작품 하나는 이 네 명의 연기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윤은혜에게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다면 이준기에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었다. ‘왕의 남자’로 일약 천만 관객의 배우가 된 그 지점에서 연기 첫걸음을 내딛던 이준기가 가진 부담감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작품은 이준기의 다양한 연기의 결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해가는 캐릭터의 성격을 이준기는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연기함으로서 스타에서 연기자로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공효진의 진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혁의 연기자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하얀거탑’의 김명민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연기자 본능을 과시했고, ‘외과의사 봉달희’가 발견한 이요원과 버럭범수 이범수 또한 2007년 드라마가 주목한 배우였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보여준 ‘마왕’의 주지훈, ‘인순이는 예쁘다’의 김현주 또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연기력과 상관없이 연기자를 울린 드라마들
반면 작품을 잘못 만나 연기자가 연기력을 보일 수 없었던 드라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비스트’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캐스팅만 보면 실로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연기자들이 포진된 작품이다. 먼저 주연을 맡은 송일국은 ‘주몽’으로 굳건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상대역의 장진영 역시 영화 ‘소름’으로 연기력의 가능성을 보이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3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인기여우상을 거머쥐면서 연기자로서 발돋움한 재원이다. 여기에 언제 등장해도 든든한 드라마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허준호와 백발의 카리스마 연기까지 변신한 김미숙까지 동원됐지만 결과는 어이없게도 참패였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에어시티’를 들 수 있겠다. ‘에어시티’는 이정재와 최지우 같은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의 대작 드라마였지만 역시 어이없는 참패를 맞았다. 공항이라는 관심을 끄는 소재는 전혀 작품의 스토리와 연관을 갖지 못하고 심지어는 공항 홍보 드라마냐는 비아냥까지 받았으며, 한류스타들에게마저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게 하는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편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하희라 같은 경우는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캐릭터가 살지 않아 주목을 못 받은 경우다. 반면 ‘아이 앰 샘’의 양동근은 좋은 연기에도 시청률 틈바구니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또한 작년 ‘마이걸’로 주목받았던 이다해는 ‘헬로 애기씨’라는 조금은 시대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작품을 만나 외면 받았다. 어떤 경우든 역시 아무리 발군의 연기자라 해도 결국엔 좋은 작품 속에서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7년 연기자들을 울리고 살린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작품 없이 연기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상 출연료가 아니라 좋은 작품인 셈이다. 내년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 더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드라마 속, 알파걸을 밀어주는 알파보이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최한결(공유)은 알파보이다. 재벌집 아들에, 다 허물어져 가는 왕자다방을 커피 프린스로 둔갑시킬 만큼 능력 있고, 잘 생긴데다가 다정다감하기까지 하다. 그런 알파보이가 소녀가장으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가난한 데다, 선머슴처럼 생긴 외모에 털털하기 그지없는 성격으로 남자로 오인 받는 고은찬(윤은혜)을 사랑한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알파보이가 고은찬이란 여자의 숨은 재능을 키워내 알파걸이 되게 적극 밀어준다는 점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인기요인 중 한몫을 차지한 것은 바로 이 일하는 여성들이 갖는 환타지이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외국유학의 시간동안 묵묵히 기다리며 그녀의 성공을 빌어주는 남자는 아직까지는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은찬은 물론이고 한유주(채정안)-최한성(이선균) 커플을 통해서도 보여진다. 이미 둘 다 알파걸, 알파보이인 이 둘은 일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드라마가 보여준 것은 그 둘 다를 가지는 워킹우먼들의 환타지이다.

이런 알파걸을 밀어주는 알파보이는 현대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극 속으로 들어온 알파보이 이산(이서진)은 장차 알파걸이 될 성송연(한지민)을 적극 밀어준다. 그는 성송연에게 “왜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살려 화원이 되려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조선시대라는 역사적 시점에 그것도 왕이라는 신분까지 감안한다면 이 제안은 실로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라 할만하다. 지금 시대에도 하기 어려운 것을 남녀차별이 일상화되었던 조선시대에 한 셈이니 말이다.

그것은 단지 사탕발림의 말만이 아니다. 이산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 일에 뛰어든다.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기회, 즉 다모가 화원이 되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단지 성송연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대 모든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밀어주기 위한 본보기로서 이 일을 벌인 이산은 어찌 보면 진정한 현대적 시각을 갖춘 남성이라 할만하다. 반면 대부분의 현대남성들이 그러하듯이 편견에 가득한 남정네들은 성송연과의 경합에서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저편에서 성송연의 사회진출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미소짓는 남자, 그녀의 알파보이 이산이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여성의 사회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드라마 속 남성들에게 쏟아지는 찬사는 당연하다. 그만큼 현실의 남성들이 가진 편견과 싸우면서 당당히 사회 속에 제 자리를 찾아가는 알파걸들이 점차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찌 보면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또 다른 양태로도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남성들이 제시하는 것이 물질적인 부나 지위가 아니라 그녀들이 진정으로 잘 하고, 또 하고싶어하는 일을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대는 남성이 일방적으로 여성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이야기가 여성들에게 더 이상 매력이 없어질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 현대여성들은 종속적인 신분상승이 아닌 자아성취를 지지해주는 남성과의 동등한 만남을 원한다. 그것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사극 속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현실여성들의 환타지가 스며든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는 또한 남성 캐릭터들의 변화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현대여성들은 자신을 알파걸로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알파보이를 원한다.

‘커프’는 동성애 드라마가 아니다

‘동성애’란 금기의 단어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타고 수면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일부에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마치 동성애 드라마나 되는 듯이 여기면서, 우리 사회가 터부시하던 ‘동성애’에 대해 이제 관대해졌다는 섣부른 관측을 하기도 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분명 장치로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체를 동성애 드라마라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다. 

헐리우드발 감동의 휴먼 드라마, ‘브로크백 마운틴’, 최근 게이 커플이 등장했던 ‘후회하지 않아’는 동성애 영화다. 이 영화들은 그 기본설정 자체가 동성의 커플의 애틋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다만 동성애를 다루는 시각은 조금씩 다르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동성애를 통해 인간애를 보여줬다면, ‘후회하지 않아’는 바로 그 동성애라는 자체에 집중하면서 존재와 계급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영화다.

모두 좋은 영화지만 이 두 영화는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주류영화 속에 들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애라는 금기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10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왕의 남자’를 두고 동성애라는 금기의 벽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왕의 남자’의 성공은 예술과 권력 사이에서의 멋진 줄타기를 보여줬기 때문이지, 공길과 장생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동성애 감정 때문이 아니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동성애를 가로막는 사회적 제약이 등장하지 않는다. 동성애 영화가 그렇게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적 금기와의 관계에서 기인하는 면이 있다. 따라서 그런 면이 부각되지 않는 ‘왕의 남자’를 동성애 영화라 부르는 것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는 컨텐츠들은 과거부터 늘 마이너 문화였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성공한 이유는 그것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찬(윤은혜)이 자신이 사실은 여자였다고 밝히는 순간, 드라마가 재미없어졌다 느껴지는 것은 동성애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재미의 핵심요소였던 동성애 코드가 빠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도 알고 극중 인물들도 아는 남장여자를, 자신만 남자라 생각하고 그러면서도 사랑할 수 있다(이 정도로 사랑한다!)는 한결(공유)이 사랑스러운 것이지, 한결이 모든 사회적 억압의 틀에도 불구하고 실제 남자를 사랑해서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소위 말해 ‘동성애 코드’를 멜로의 장치로서 활용하고 있을 뿐, 동성애 드라마는 아니다. 즉 동성애 소재 컨텐츠와 동성애 코드는 오인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는 지금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류 컨텐츠 속에 이미 훌륭한 장치로서 활용된 바 있다.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왕의 남자’가 될 것이다. ‘왕의 남자’가 왕과 장생, 공길 사이의 치정극이 되지 않고 예술가들의 고뇌와 권력의 문제를 다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동성이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또한 국민의 4분의 1이 ‘왕의 남자’ 속에 등장하는 동성애를 부담 없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남사당패의 역할놀이(남녀 구분이 없다)가 갖는 예술적인 승화가 작용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준익 감독의 ‘라디오 스타’가 애초에 남녀 관계 설정을 버리고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남남 관계로 재구성된 것은 똑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렇듯 동성애 코드는 종종 이제는 식상해져버린 남녀 관계의 멜로 틀을 벗어 던지기 위한 장치로서도 활용된다.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의리나 우정이 더 참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는 또한 작품의 조미료처럼 활용되기도 한다. ‘주몽’ 같은 남성적인 느낌의 드라마에서도 협보(임대호)와 사용(배수빈)의 동성애 코드가 쓰인 것은 그 설정이 갖는 코믹적 요소와 화제성을 십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발칙한 여자들’에서 상미(사강)의 남편 지환(장동직)이 동성애자라는 설정 역시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기 위한 방식으로 채택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멜로의 재미를 주기 위한 동성애 코드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남장여자란 캐릭터와 금녀의 공간으로서의 ‘커피 프린스 1호점’이다. 동성애 코드에는 종종 남장여자 같은 털털한 이미지의 여성이 등장하는 이유는 여성성으로 억압되던 과거의 캐릭터들에 대한 혐오가 그 출발점이 된다. 소위 말해 예쁜 척 하는(혹은 해야만 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해 현대여성들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즉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여성들의 사회적 발언권이 남성들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앞서나가는 현 세태의 공감 가는 캐릭터를 창출하는 차원에서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면이 있다.

또한 남장여자 같은 중성적 캐릭터의 매력과 더해져 효과를 보고 있는 장치는, 이 캐릭터가 ‘금녀의 공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즉 억압하는 존재로서 섞이기 어려웠던 남성들 사회에 들어가, 연애나 애정관계가 아닌 (남성과의) 동지관계나 의리를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짜릿한 모험이 아닐 수 없다. 동성애 코드와 항시 같이 미소년들이 등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선택하려는 남성으로서 미소년은 언제나 환타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남성 선택은 성적인 선택이 아니라, 팬시적이고 환타지적인 면이 더 강하다.

‘커피 프린스 1호점’를 비롯한 최근의 동성애 코드는 달라지고 있는 남성-여성의 관계까지를 함의하고 있다. 그것은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이고 해방적인 관계를 구성하기 위해 똑같은 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록 환타지지만, 그만큼 남녀 관계에서의 비뚤어진 수직구조들을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의 발현으로 읽혀진다. 이들 동성애 코드의 드라마들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사람과 사람 간의 사랑 같은 인간애의 성격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청춘의 순수함과 솔직함이 차별점

“오늘 완전히 드라마 찍었어요.”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이 최한결(공유)에게 웃으며 건네는 말이다. 그런데 상황을 보면 그게 웃을만한 일은 아니다. 둘이 사귄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온 할머니가 돈 때문이냐며 헤어질 것을 강요하는 장면을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

고은찬의 말처럼 이런 장면은 드라마에서 흔히 등장하는 장치다. 그런데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주인공들은 보통의 드라마가 하듯 반응하지 않는다. “촌스럽게 왜 그래?” 할머니의 반응에 한결이 이렇게 말하듯, 그런 반응은 적어도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는 ‘촌스러운’ 것이다.

“우리 결혼할까? 물론 결혼 안 하고 그냥 살 수도 있지만 아이가 3일은 우리 집, 3일은 당신 집 이렇게 사는 건 이상하잖아.” 최한성(이선균)이 아기가 생긴 한유주(채정안)에게 하는 말이다. 결혼하지 않고 아기가 생긴 그들이지만 상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적어도 그들에게 결혼이란 껍데기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 보여주는 연애와 사랑의 방식은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 익히 보아왔던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미 고은찬이 남장여자로 등장하고 그녀가 “남자라고 해도 너를 사랑하겠다”고 최한결이 얘기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들의 사랑법에는 관계 자체를 구속하는 사회적이고 관습적인 어떠한 틀도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그 사랑법을 정의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가는 대로’.

이것은 이 드라마와 여타의 드라마를 구분 짓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청춘 멜로 드라마든 트렌디 드라마든 거기 등장하는 남녀들의 사랑과 연애에는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이 많다. 그것은 때론 나이가 되기도 하고, 때론 돈이 되기도 하며 좀 구질구질한 것이지만 심지어 출신성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현실이기 때문에 아무리 세련된 드라마라 해도 피해가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역시 캐릭터가 가진 설정만으로 보면 여타의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상투성을 거의 다 갖추고 있는 게 사실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의 로맨스, 아들이 가진 숨겨진 과거, 삼각 사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물구도 모두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도 왜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과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것은 이 트렌디한 설정을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대기업 사장 아들과 가난하지만 씩씩한 여성이란 설정이 틀에 박힌 신데렐라 이야기로 가지 않는 것은 이들의 사랑 속에 돈에 대한 냄새가 애초부터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최한결이 외제차를 끌고 다녀도 그건 그냥 그런 것일 뿐, 외제차가 가진 부를 상징하진 않는다. 그것은 최한결과 최한성의 집이나 그들이 누리는 생활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과시라는 측면이 없고 그냥 좋은 것이라는 솔직함만 존재한다.

최한결의 숨겨진 과거도 이 드라마에서는 특유의 상큼함으로 처리된다. 친아버지를 만났지만 그는 자신이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끝내 친아버지에게 밝히지 않는다. 굳이 그걸 밝히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좋은 감정으로 헤어지고 또 만남을 기약하면 그뿐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길러준 부모와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기존 드라마가 관행처럼 사용한 관계의 틀을 벗어남으로써 전혀 다른 쿨함을 확보한다.

네 캐릭터들이 엮어내는 사각관계 역시 멜로 드라마들이 상투적으로 써왔던 질투와 질시로 이어지는 대결구도를 벗어난다. 그들에게 사랑은 진실된 감정이고 그 감정의 흐름에 정직한 행동은 용서받지 못할 행동이 되지 않는다. 최한성의 순간적인 감정의 흔들림은 결과적으로 자신 속에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한유주에 대한 사랑을 극적으로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 모든 차별점을 만들어내는 중심에는 ‘마음이 말하는 것에 솔직한 젊은 감성’ 이 있다. 거기에는 트렌디 드라마가 갖는 돈도 지위도 직업도 쿨하게 넘어서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예쁜 그들의 사랑법이 환타지로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현실이 더 계산적이기 때문일까. 좋아하면 좋아한다 말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며, 기쁘면 기쁘다고 말하는 이들의 ‘마음가는 대로의 사랑법’은 그래서 문득 문득 잊었던 청춘의 순수한 사랑의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무엇도 감히 사랑과 연애를 구속하지 못했던 그 순수했던 때 말이다.

화젯거리 찾는 드라마들

네모난 세상/명랑TV 2007.08.03 13:14 Posted by 더키앙

드라마 속에 꼭 있는 화제의 장면들

종영한 ‘쩐의 전쟁’의 한 장면. 갑자기 사채업소인 동포사가 춤바람에 휘말린다. 금나라(박신양)와 서주희(박진희)가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춘다. 단지 발랄하고 경쾌한 분위기만 드라마 상의 감정라인과 조우할 뿐 스토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 몇 장면이 가진 효과는 커서, 다음날 인터넷에는 어김없이 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네티즌들 사이에 화젯거리가 된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한 장면. MT를 간 카페 직원들과 사장이 함께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이 장면은 그대로 UCC로 변모하면서 ‘완소한결’, ‘어라라은찬’ 같은 문구들이 달라붙는다. 극중에서 은새(한예인)가 이 UCC를 올려 카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처럼,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인터넷은 이 UCC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드라마와 인터넷은 언제부턴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그저 방영된 드라마에 대한 평가에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나온 이야기는 이제 인터넷으로 오면서 새롭게 재창조되기도 한다. 장면들이 재편집되거나 서로 다른 드라마들이 엮어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패러디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간략한 특징을 붙여 만드는 사자캐릭터 창조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이러한 인터넷의 화제성을 가장 잘 활용한 드라마가 ‘거침없이 하이킥’이다. 거의 모든 캐릭터에 사자캐릭터가 붙은 이 시트콤은 그 날 밤 어떤 장면을 연출했는가가 어김없이 다음날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순재가 야동을 보고 악플을 다는 장면이 네티즌들에게 큰 호응과 반응을 얻어낸 것은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 시트콤이 처음부터 인터넷의 화제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결과이다.

화제를 일으키는 방법도 가지가지. 그 중 여성 캐릭터들의 주먹다짐 역시 화제를 끌어 모으는 한 장치가 되었다.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김희애)을 업어치는 은수(하유미)의 장면은 오래도록 네티즌들 수다의 소재가 되어주었다. 최근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서 강북엄마 현민주(하희라)와 강남엄마 윤수미(임성민)가 한바탕 붙는 장면에서 ‘내 남자의 여자’의 주먹다짐을 연상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과거라면 그저 심한 말다툼 정도로 처리되었을 이런 장면들은 이제 머리끄댕이 제대로 잡아 당겨주고 주먹과 발길질이 오가는 막싸움으로 변모했다. 그만큼 화제성이 충분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미 화제가 되었던 장면을 다시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다. 최근 종영한 ‘불량커플’의 준수(유건)가 한영(최정윤)에게 피아노를 치며 프로포즈하는 장면은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이 했던 장면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 창피해 자리를 뜨려하는 한영에게 “어이 거기, 핑크는 자리에 좀 앉지”라고 외치는 장면에 이은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 열창은 화제가 된 시퀀스 전체를 가져와도 여전히 화제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 경우이다.

드라마가 네티즌 혹은 시청자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드라마들의 홍보경쟁도 치열해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네티즌들의 입 소문은 이제 드라마를 소위 띄우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팬 서비스 같은 이런 장면들의 연출은 드라마의 흐름과 잘 맞물리는 한 그다지 나쁠 게 없다. 하지만 때론 화제가 공감으로 가지 않고 비호감으로 가는 경우도 생긴다. 과도한 장면들의 남발이 그것이다. 드라마 진행과 상관없는 과도한 노출이나,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도 않은 관계의 남녀가 갑자기 키스신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공감보다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가장 좋은 것은 드라마 자체가 갖는 이야기와 화제가 될만한 장면이 빈틈없이 딱 맞는 경우이다. 특별히 연출할 것도 없이 그런 장면들은 고스란히 화제가 되고 후에도 명장면으로 남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커피 프린스 1호점’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의 포옹신에 이은 키스신이나, ‘쩐의 전쟁’에서 금나라와 서주희가 보여준 오이키스신 같은 것들이다. 저 드라마에 흔하디 흔한 포옹과 키스 장면이 이다지도 가슴 떨리고 오랜 잔향을 남기는 것은 그 이면에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그 한 장면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화제를 만들어내는 장면의 연출보다는 장면의 극적 상황 자체가 화제가 될 때, 시청자들은 깊은 공감 속에 기꺼이 화제에 동참할 것이다.

윤은혜, 이준기, 수애, 그들의 변신에 박수를

연기자가 연기 변신을 하는 것은 자기 존재에 대한 증명인 셈. 하지만 이게 그리 쉽지 않은 것은 대중들이 바라는 이미지와 변신한 이미지의 간극이 클 경우이다. 너무나 강렬한 이미지로 고정되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걸 의미하지만, 동시에 연기자들에게 그것은 족쇄로도 작용한다.

한번 가수출신 연기자라는 연기논란에 휘말린 이미지를 가지면 하는 역마다 연기논란을 일으키고, 한번 미소년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기면 터프한 연기가 잘 먹히지 않으며, 청순 가련 이미지로 고정되면 명랑한 역을 맡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자신이 가졌던 이미지와 다른 변화된 캐릭터를 요구한다면 어쩔 것인가. 그저 자신의 이미지가 먹힐 시대가 또다시 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히 연기변신을 시도할 것인가. 이런 면에서 보면 지금 윤은혜, 이준기, 수애가 몸부림치는 연기변신은 이들만의 과제가 아니다. 지금 연기자들 앞에 펼쳐진 시험대. 그것은 변신이다.

여자는 울고 남자는 인상쓰던 시대는 지나갔다. 청순가련형 여성 이미지와 마초적이기만 한 카리스마의 남성 이미지는 이제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 시대다. 언제부턴가 TV 속의 여성들은 점점 강인한 인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질척할 정도로 드러내지 않게 됐다. 반면 남성들은 거꾸로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이미지가 더 많이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조영’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에서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IMF 이후 급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남성들과, 감성적인 사회가 요구한 여성인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사회진출이 활발해진 여성들로 전도된 남녀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무너진 욕망을 대체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들이 포진한 남성 타깃 드라마(사극이나 전문직 장르 드라마 같은)와, 종속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연애방식으로 상큼 발랄한 관계를 꿈꾸는 여성 타깃 드라마(청춘 멜로 드라마)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이 변화된 상황 속에서 고정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연기자들은 변신이 불가피해졌다. 윤은혜는 ‘궁’과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 명랑 소녀의 이미지를 굳혔지만 늘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가수 출신 연기자’의 연기논란이었다. 획기적인 변신이 아니면 넘기 어려운 이 꼬리표를 떼낸 것은 명랑 소녀에서 한발 더 나아간 남장여자라는 캐릭터이다. 여자를 포기하자 윤은혜는 새로운 이미지의 창출이 가능해진 것. 중요한 것은 그 남장여자라는 캐릭터가 지금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라는 점이다. 보이시한 여성이 인기가 있는 것은 수직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마치 남성과 남성 같은 우정의 관계로까지 수평적으로 발전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징후이다.

‘9회말 2아웃’이 보여준 수애의 변신은 이제 더 이상 울지 않는 여성 캐릭터 시대에 가장 잘 우는 연기를 소화해내는 연기자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경우이다. ‘해신’에서부터 주목받은 수애의 연기는 이병헌과 호흡을 맞춘 ‘그 해 여름’을 통해 우는 연기자의 이미지로 굳어져갔다. 그런 수애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에, 술 먹고 주사를 부리는 모습의 홍난희 역할을 맡은 것은 연기자로서의 대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왕의 남자’를 통해 여성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 이준기의 경우는 거꾸로 남성적인 카리스마 변신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변신은 일단 성공적으로 보여진다. 살해된 부모의 복수극이라는 점도 연기자 이준기의 입장에서 보면 연기변신에 힘을 더해주는 요소이다. 새롭게 맞닥뜨린 원수 앞에서 분노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연기는 보는 이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 정도의 연기변신이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물론 고정적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들이 모두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연기자들에게 있어 고정적인 이미지는 양날의 칼과도 같다. 좋은 작품에서의 호연을 통해 얻어진 이미지는 고정화될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그 이미지를 팔려고 하는 기획사와 시장이 만나면 자칫 그 이미지에 눌러앉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연기자들이 연예인이 아닌 예술가로 느껴지는 순간은 그 속에서 늘 자신을 다잡고 새로운 연기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그들의 도전에 박수를.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이 욕망하는 캐릭터의 트렌드는 달라지기 마련. 최근 두 아이콘이 그 트렌드의 정수를 헤집는 중이다. 하나는 ‘궁’의 명랑소녀에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미소년으로 온 윤은혜, 그리고 또 하나는 ‘왕의 남자’의 미소년에서 ‘개와 늑대의 시간’의 남자로 온 이준기다. 이 두 아이콘의 변신은 이 시대 남녀 각각의 로망을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청춘 멜로의 진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남장여자. 겉모습은 남자이고 실제는 여자이니 남자와의 트렌디한 연애는 애초부터 글러먹었다. 그래서 이 남장여자는 한참을 우정과 의리로 우회해 사랑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그 사랑의 과정을 담은 청춘 멜로 드라마의 캐릭터가 가진 색다른 결은 굉장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기존 멜로 드라마들이 트렌디해지면서 주지 못했던 설렘 같은 것이다. 마치 잊고 있던 청춘의 한 때를 기억하며 가슴이 뛰는 느낌을 갖는 것. ‘커피 프린스 1호점’은 한 마디로 불감증에 걸린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런데 왜 하필 남장여자라는 캐릭터였을까. 바로 여기에 해답이 있다. 여성 캐릭터의 진화는 여성들의 사회진출과 함께 비례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왔다. 과거 최루성 멜로 드라마 속의 여성 캐릭터는 눈물 하나로 충분히 당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성 캐릭터들은 신파로 오인 받는 눈물을 거두고 가슴 설레는 신데렐라의 로망을 꿈꾸게 되었다. 신데렐라는 차츰 가녀린 모습에서 가난하지만 씩씩한 명랑소녀로 변신했고 이 부분이 윤은혜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소녀장사 이미지의 윤은혜는 ‘궁’의 채경을 만나서 명랑소녀 전성시대의 정점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또한 남성에 의해 거두어지거나 보호받는 캐릭터로 여전히 남성의 그늘이 남아 있었다. 완전히 남성의 테두리를 벗어나 오로지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오히려 남자를 선택할 수는 없는 걸까. 여성의 사회진출이 남녀관계의 진정한 동등함을 요구할 때 윤은혜는 명랑소녀에서 미소년으로 변신했다. 남장여자가 되자 먼저 종속적이던 여성의 모습은 사라졌다. 그들은 의리와 우정으로 만남을 시작하지 구질구질한 남녀관계로 서로를 작업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 고은찬이란 캐릭터는 그러면서도 두 남자를 한 손아귀에 쥐고 있는 캐릭터란 점이다. 여기가 여성들의 로망을 살짝 드러내는 부분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활, 미소년에서 남자로
반면 ‘개와 늑대의 시간’의 이수현(이준기)은 평범한 듯 보이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재한 캐릭터다. 눈앞에서 킬러에 의해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했으니 애초부터 평탄한 삶은 글러먹었다. 그래서 일상에 지쳐 나른한 남성들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해 칼과 총알이 날아다니는 모험의 세계로 인도할 이 오딧세우스는 태국이라는 이국적인 공간 속에 온 몸을 던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 평탄한 삶을 던져버리고 거친 복수의 길로 뛰어든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사회적으로 고개 숙인 남성들의 피를 끓게 하는 구석이 있다.

이준기는 왜 그의 명성을 만들어준 미소년이란 캐릭터를 그다지도 버리고 남자로 서고 싶었을까. 사회의 남녀 성차가 사라지는 것과 비례해서 드라마 속 남성캐릭터들은 마초적인 캐릭터에서 한없이 미소년으로 변모해왔다. 그것은 드라마의 주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그 여성 캐릭터의 변화에 발맞춰 변모된 결과. 남성 캐릭터들은 한없이 친절해졌고 심지어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극과 전문직 장르 드라마에서 남성시청자들의 존재가 증명된 뒤, 남성 캐릭터는 다시 카리스마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주몽’이나 ‘하얀거탑’은 끝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남성의 로망이 투영된 드라마다.

최근 들어 등장했던 ‘히트’나 ‘에어시티’같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남성 캐릭터들은 다시 미소년으로 갈아치웠다는데 있다. 멜로와 장르 드라마의 부조화에서 불거져 나온 문제의 근원은 남성 캐릭터가 너무 친절하다는 점이다. 이준기가 미소년의 대명사로 등장한 것은 한창 남성 캐릭터들이 예뻐지다 그 정점에 올랐던 2006년. ‘왕의 남자’의 공길(이준기)은 사실 그 예쁘게 우는 남성 캐릭터의 극점이었다. 그것은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성공과 동시에 커다란 족쇄를 의미했다. 그 이미지를 버리려 남자가 되려는 이준기라는 연기자의 축과, 남성의 로망을 다시 끄집어 내줄 새로운 카리스마가 필요해진 전문직 장르 드라마라는 축이 만난 것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다. 여기서 이준기가 연기하는 이수현이란 캐릭터는 과거의 그저 마초적이기만 한 카리스마가 아닌, 겉으로는 공길 같은 부드러움이 있지만 내적으로는 야수 같은 강렬함을 가진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연기자의 이미지 변신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 정도의 지점에 있다는 점이다. 윤은혜는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지만 캐릭터가 주는 소명대로 소년의 이미지를 부가시켰다. 이준기는 여전히 미소년의 풍모를 가졌지만 순간순간 숨겨진 야수성을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이 두 연기자가 자신의 이미지 변신과 연기자로서의 평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 들인 치열한 노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 한 발작이 아닌 반 발작이란 의미는 이들의 변신이 단지 오버에 의해 억지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방증한다.

멜로드라마의 쇠퇴 이후 그 대안처럼 등장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부침은 이제 이 두 장르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기로 넘어가는 듯 하다. 그것은 여성 시청자층으로 대변되던 과거에서 점차 남성 시청자층이 늘고 있는 현재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 핵심에는 여자의 로망과 남자의 로망이 있고 그걸 대변하듯 등장한 연기자들은 바로 윤은혜와 이준기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와 남녀관계는 진화 중

언제부턴가 여성 캐릭터가 ‘여성스럽다’는 표현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닌 것이 되었다. 차라리 ‘섹시하다’거나 ‘도발적이다’라는 도전적인 이미지는 나은 편. ‘여성스럽다’는 이미지는 이제 ‘예쁜 척 한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일까. 여성 캐릭터들은 ‘예쁘고 청순 가련한’ 모습을 버리고, 한껏 ‘씩씩한’ 이미지로 변신 중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윤은혜)은 이러한 트렌드의 정점에 있는 캐릭터. 남장여자라는 설정 속에 부정적인 의미로 보여지는 ‘여성스러움’은 철저히 가려진다. 그녀의 드러난 모습들은 술 취한 남자 하나 정도는 거뜬히 업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고, 불량배들 몇은 두드려 팰 수 있을 정도로 싸움을 잘 하며, 앉은자리에서 자장면 다섯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는 식욕을 가졌다는 것이다.

말투는 물론이고, 걸어다니는 모습이나 다리를 쫙 벌리고 앉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남자의 그것을 보여주는 은찬이란 캐릭터는 그러나 분명 여자다. 그러니 남자대 남자(?)로서 사장과 직원이 된 한결(공유)과 은찬에게서 사랑의 감정이 솟아날 즈음, 드라마는 재미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은 그들이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기에 남장여자에게 끌리는 남자로서의 한결이 우스우면서도 귀엽고, 그런 한결에게 끌리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남장여자 은찬의 사랑이 애틋해진다.

여기저기 드라마마다 넘쳐나는 도식적인 사랑이 식상하게 느껴질 때, 이들의 사랑은 우정이나 의리의 탈을 쓰고 나타나 그 사랑을 교란한다. 한결이 은찬을 끌고 가 “한번만 안아보자 미치겠다”고 말하며 안을 때나, 은찬이 한결에게 갑자기 기습키스를 하고 변명을 해댈 때, 그리고 의형제를 빙자하면서 서로 곁에 두려는 마음을 전할 때, 사랑은 전면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뒤로 숨는다. 그러니 이들의 관계는 만나면 서로 까칠하고 헤어져 혼자 있을 땐 애틋해진다.

이러한 씩씩한 여성 캐릭터와 남자가 엮어 가는 사랑의 방식은 처음부터 남녀의 관계로 시작되지 않는다. 종영한 ‘메리 대구 공방전’에서 가진 것 없어도 꿈 하나로 씩씩한 메리와 대구가 사랑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그들은 동료의식으로 가까워졌다. 입만 열면 ‘배신’이란 단어가 나오는 것은 같은 길을 어렵게 가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던 동료애 때문이다. 그것은 사랑보다는 우정이나 의리에 가까운 관계이다.

이러한 남녀간의 관계는 ‘9회말 2아웃’에 가서는 30년 지기란 설정으로 제시된다. 늘 서로를 까칠하게 대하는 난희(수애)와 형태(이정진)도 서로의 어려움을 봤을 때는 그 우정이 발동해서 마음이 가지만, 그것은 딱 거기까지만이다. 사랑은 아직 어딘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이들은 착각한다. 그 착각이 주는 재미는 이들의 우정을 빙자한 사랑 얘기에 힘을 실어준다.

이런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와 이로 인한 남녀관계의 변화는 현 사회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다. 그만큼 여성들은 드라마 속 남녀 관계에 있어서(그것이 연애문제든 사회 속에서의 성별문제든) 남자라는 성에 귀속되지 않고 동등한 위치에 서 있는 모습을 보길 원한다. 이것은 과거 남성 중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여성 중심적인 멜로드라마로 진화한 결과다. 그 속에는 질척하지 않고 상큼 발랄한 순정만화 톤의 사랑을 꿈꾸는 여성들의 로망이 들어있다.

이들 드라마는 과거의 멜로드라마들처럼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지 않는다.  대신 “어이 친구! 우리 연애나 해볼까.”하고 묻는다. 그 엉뚱함에 쿡쿡 웃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 이것이 달라진 이들 드라마들의 연애방식이 주는 매력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이란 커피의 중독성

커피. 카푸치노 에스프레소 정도는 되는 은은한 계피향이 섞인 커피, 아침이면 괜스레 한 잔 손에 들고 그 향을 음미하고 싶은. 와인. 깊은 맛의 보르도 클라렛이나 까다롭지만 우아한 부르고뉴 피노누아 정도 되는 와인, 시원스런 셔츠가 잘 어울리는 멋진 남자가 뒷짐에 숨겨 가져온.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바로 그런 커피와 와인 같은 공간을 그려낸 드라마다. 그것은 모든 청춘들이, 아니 청춘을 꿈꾸는 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다.

그 곳은 일터이면서 일터가 아닌 놀이공간이고, 호통을 치지만 연인 같은 사장이 있는 곳이며, 아옹다옹하면서도 오랜 지기 같은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그들은 일을 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을 한다. 스트레스는 일에서 온다기보다는 연인 같고 친구 같은 관계들의 비틀어짐에서 온다. 카페는 파리를 날려도 그들은 멋진 폼으로 농구를 하고 시원스런 분수대로 뛰어든다. 일? 놀다보면 다 된다. 그러니 걱정말고 마음껏 꿈을 꾸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현실? 그런 건 머리 싸매고 쥐고 있기보다는 “몰라 몰라 어떻게 되겠지”하며 넘겨 버리라 한다. 왜? 청춘이 있으니까.

게다가 주인공 고은찬(윤은혜)은 남장여자다.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이 중성적 느낌의 주인공은 섹시함의 화신처럼 고혹적인 한유주(채정안)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섹시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그 남자 같은 털털한 모습 속에 가녀린 여성의 눈물을 숨기며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들었던 저 ‘베르사이유의 장미’의 오스칼을 연상케 한다. 거기에는 묘한 신비주의가 섞인다. 윤은혜의 연기 논란을 잠재울만한 이 캐릭터는 지금 막 저 순정만화에서 빠져나온 듯 생생하다.

고은찬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두 남자 또한 갖고 싶은 꿈을(욕망이 아니라 꿈이다) 꾸게 하는 캐릭터다. 최한결(공유)은 어딘지 까칠하게 대하지만 순수한 느낌으로, 최한성(이선균)은 때론 날카로우면서 때론 편안한 어딘지 사는 맛을 알 것 같은 분위기로, 고은찬에 몰입된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최한결은 소년으로 최한성은 소녀로, 고은찬을 대한다는 설정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중성적인 매력이 주는 재미를 잘 알고 있는가를 말해준다. 중성을 꿈꾸는 것은 우정 같은 안전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때론 그 선을 넘나들며 사랑을 하고픈 ‘질척거림 제로’의 로맨스를 꿈꾸기 때문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그래서 현실에선 좀체 불가능한 꿈 같은 공간을 그려낸다. 그 곳에는 트렌디 드라마에서 늘 다루는 빈부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환타지는 보이지 않는다. 최한결은 말 그대로 왕자(프린스)지만 그렇다고 드라마는 그 왕자에 대한 신분상승의 욕망을 그려내진 않는다. 환타지가 끈적끈적한 욕망을 추구하는 대신, ‘커피 프린스 1호점’은 누구나 선망하고픈 꿈을 꾸게 만든다. 청춘들은 그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이 아닌 편안한 흐뭇함을 느끼게 된다. 본래 이름이 ‘왕자다방’이었고 그 주인이 홍사장(김창완)이란 점은 이 드라마가 꾸는 꿈이 젊은 세대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적어도 김창완이라면 30,40대의 중년이라도 기꺼이 젊은 시절의 꿈을 떠올리게 해줄 테니까.

이 모든 것들이 청춘을 꿈꾸게 하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은 커피 같은 드라마다. 그 커피는 젊은 나날의 다방커피일 수도 있고, 뉴요커처럼 아침 출근 시간에 한 잔씩 사들고 들어가는 카푸치노일 수도 있다. 칼로리는 있지만 에너지를 위해 마시는 것도 아니고, 물론 맛에 취해 찾는 이들이 많지만 주로 어떤 정서나 분위기가 더 앞서는 이 기호식품을 앞에 두고 누구나 한번씩은 설렘을 가졌을 것이다. ‘커피 프린스 1호점’은 그 젊음이란 불가항력 속에서 때론 달콤하고 때론 씁쓸했던 커피 같은 청춘을 생각하며 미소짓게 만드는 드라마다. 그것이 마실수록 빠져드는 ‘커피 프린스 1호점’이란 커피의 중독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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