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자재 방송분량, 지상파가 부러워하는 tvN 드라마

 

62분부터 88분까지. 마치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tvN <도깨비>의 자유로운 방송분량이다. <도깨비>는 첫 회에 무려 88분 동안 방영됐다. 아무래도 고려시대와 현재를 오가는 그 비장하기까지 한 운명의 서막을 담아내는데 있어서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고 보인다. 실제로 이 첫 회는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았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만큼 88분이라는 시간을 몰아친 것이 주효했다는 뜻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2회와 3회 역시 <도깨비>는 각각 77, 83분을 방영했다. 3회분 동안 <도깨비>는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단히 잡아끌었다. 첫 회에 6.3%(닐슨 코리아)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한 이후 2회에는 7.9%로 상승세를 이어가더니 3회에는 무려 12.4%로 폭등했다. 2회 마지막에 납치된 지은탁(김고은)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도깨비(공유)와 저승사자(이동욱)이 마치 런웨이를 걷듯 신비스럽게 나타나던 장면으로 끝을 맺은 것에 대한 궁금증이 컸을 게다. 3회 시작은 이 둘이 멋지게 괴한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보여줬다. 자동차를 반 토막내는 도깨비의 멋짐이 폭발했던 것.

 

3회까지 이렇게 쏟아 부은 <도깨비>4회에 이르러 62분으로 정상적인 방송분량을 내보냈고, 그 후 조금씩 방송분량이 늘어나 9회에는 79분까지 다시 늘어났다. 시청률은 안정적으로 12%대를 유지했고, 지은탁에게 점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저승사자의 정체가 써니(유인나)에게 드러난 11회에서는 14%로 반등했다. 11회 방송분량은 76분이었다.

 

사실 방송분량이 시청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만은 볼 수 없다. 즉 제아무리 방송분량을 늘린다고 해도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시간 투자만 많아지게 될 뿐이다. 하지만 <도깨비> 같은 작품은 다르다. 이미 완성도도 높고 시청자들의 관심도 갈수록 증폭되어간다. 그러니 방송분량을 조금씩 늘리는 건 드라마로서는 굉장한 이점들을 주기 마련이다.

 

이미 몰입이 생겨난 드라마에 늘어난 방송분량은 시청률의 반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분량이 늘어나면 광고가 게재될 수 있는 양도 늘어난다. 중간광고가 허용되는 케이블 채널의 경우, 방송분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수익성이 극대화된다는 뜻이다. 제작사나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만큼 좋은 일이 없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사실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동시간대에 경쟁을 하고 있는 지상파 드라마들은 방송시간에 그만큼 민감하다. 그래서 지상파 방송사 3사는 방송시간에 대한 일종의 합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방송시간을 늘리는 방송사가 있으면 변칙 방송이라며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tvN 같은 케이블 채널은 이런 제한이 전혀 있을 수 없다. 지상파3사 같은 경쟁체제라고 할 수 있는 구도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편성에 있어서도 tvN 같은 케이블은 훨씬 더 유연하다. 뉴스 같은 그 시간대에 반드시 나와야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락 채널이기 때문에 훨씬 더 자유롭게 편성을 할 수 있다. 때로는 특정 드라마 데이를 만들어서 하루 종일 그 드라마만을 방영하는 파격적인 편성을 하기도 한다. <도깨비> 같은 경우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재방송되고 있다. 이 재방송 광고까지를 수익으로 생각해보면 실로 드라마 한편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가져가게 되는 셈이다.

 

물론 방송분량에서 자유롭다는 뜻이 단지 시청률이나 수익에서의 우위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PD나 작가 같은 제작자들 입장에서 보면 방송분량에서의 자유는 마음껏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창작의 자유이기도 하다. 이러니 김은숙 작가 같은 유명 드라마 작가들이 지상파 3사가 아닌 tvN에서 드라마를 하려는 것이 이해가 된다. 또한 tvN에서 지상파보다 훨씬 높은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것도. 물론 이런 자유는 결국 tvN 드라마의 완성도도 더 높여줄 수밖에 없다.

나영석 PD의 초심이 느껴지는 <신서유기>

 

워밍업은 끝났다. 이미 작년에 인터넷을 통해 방영됐던 <신서유기>. 당시 이 프로그램은 꽤 큰 화제를 만들었다. 일단 나영석 PD가 만든다는 것이 그 첫 번째였고, 그와 함께 했던 <12> 초창기 멤버들인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이승기가 출연한다는 게 그 두 번째였으며, 이들이 국내가 아닌 중국에 간다는 것이 세 번째고, 그들이 거기서 <서유기>의 캐릭터로 버라이어티를 보여준다는 게 네 번째였으며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이 인터넷으로 방영된다는 게 다섯 번째였다.

 


'신서유기2(사진출처:tvN)'

<신서유기>는 이처럼 흥미를 끄는 기획 포인트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즉 이 다섯 가지 포인트(물론 더 따지고 들어가면 할 이야기들은 더 많지만)의 어느 쪽을 주안점으로 들여다봐도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거의 저인망식(?) 예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 아이템이 인터넷에서만 방영되는 것이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 방송의 특성상 짧게 끊어지는 호흡은 그 나름의 재미를 만들었지만, 그것이 너무 소품처럼 이 아이템을 여겨지게 만든 건 아쉬운 대목이었다.

 

<신서유기>가 케이블 버전으로 시즌2를 찍는다고 했을 때 특히 기대감이 컸던 건 그래서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프로그램으로 묶여진 <신서유기> 시즌2는 확실히 이 아이템의 크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2회 분량에 걸쳐서 인터넷에서 방영됐던 <신서유기> 시즌1이 재편집되어 보여졌다. 인터넷과 케이블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지워졌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조차 하나의 웃음으로 바꾸는 나영석 PD의 능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시즌1에서 느껴지는 건 이들이 <12> 시절의 그들이 더 이상 아니라는 점이다. ‘옛날 거라고 놀림을 받으며 중국에 오면서도 입수준비를 하고 온 강호동은 어딘지 짠한 느낌을 주었고, 이수근은 여전히 깨알 같은 개그 욕심들을 드러내며 쉴 틈 없는 웃음을 만들었지만 어딘지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12>에서는 막내로서 강철 체력이었으나 이제는 숨을 헐떡이는 이승기나, 여전히 악동 같지만 이제는 강호동의 잔꾀에 당하기도 하는 지니어스 은지원도 마찬가지였다.

 

시즌1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간 <12> 이후 저마다 여러 일들을 겪어오며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그들의 모습들을 한편으론 짠하고 한편으론 웃기는 것으로 드러내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니 이건 어찌 보면 시즌2부터 본격화될 이야기의 전제 정도가 될 것이다. <서유기>란 결국 요괴들이 여정을 거쳐 인간이 되어가는 서사를 담고 있다. <신서유기>는 어쩌다 예전 같지 못하게 되어버린 출연자들이 그 본래의 색깔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어딘지 예전 <12>의 느낌이 나는 갖가지 미션들과 복불복이 이어지고 나영석 PD와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등장한다. 기상미션에 꼴찌를 해 1위안밖에 받지 못한 은지원 앞에서 굳이 맛난 음식들을 가져와 먹으며 그를 놀리는 표정을 짓는 나영석 PD의 모습은 <12> 시절 출연자들에게 탈락을 외치며 즐거워하던 그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출연자들도 그렇지만 최근 들어 나영석 PD 역시 <꽃보다 청춘> 시리즈로 곤욕을 치렀다. 논란도 논란이지만 그가 가장 뼈아픈 건 <꽃보다 청춘>의 재미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 <신서유기> 시즌2는 어찌 보면 나영석 PD 역시 그 본래의 색깔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나영석 PD의 초심이 느껴지는 <신서유기> 시즌2에 특히 관심이 가는 이유다

눈 높아진 시청자들, 지상파 새로운 제작방식 고심해야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넘어섰다. 언젠가부터 지상파 주중드라마에서 그것도 현대극으로 30% 시청률은 도달할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어 왔다. 그래서 이제는 10%만 넘겨도 괜찮은 성적이라 여겨졌고 20%를 넘기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이 깨졌다. 지상파 주중드라마 현대극이라고 해도 잘 만들어낸다면 30% 시청률을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종영한 tvN <시그널>은 마지막회에 최고 시청률인 12.5%(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케이블에서 그것도 멜로 하나 없는 스릴러 장르물로 이런 시청률을 낸다는 것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렇게 잠시 눈을 떼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드라마로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그널>은 케이블 드라마나 장르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공이 말해주는 건 한 가지다. 세상에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란 없다는 것. 잘 만든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이 당연한 공식이 공식대로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만든 드라마보다 오히려 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익숙한 틀에 자극만 잔뜩 세운 막장드라마들이 30%대 시청률을 냈던 게 실제 현실이니 말이다.

 

지상파 시청률을 견인하는 고정 시청층은 그래서 마치 허수처럼 여겨졌다. 시청률이 완성도를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청층의 취향만을 반영하는 것처럼 지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보통의 시청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구매력을 가진 2039 세대의 시청률이고 화제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막장드라마에 호응하는 시청세대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 현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드러내준 것처럼 새롭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을 보여주는 시청층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버리며 놀라운 성과를 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제작방식이 기존의 드라마 제작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제작규모가 워낙 커서 영화제작사인 NEW가 합류했고 이를 통해 중국의 투자를 받아 사전 제작되었다. 물론 방영도 한국과 중국이 동시에 방영했다. 결과는 양국이 모두 큰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 시청률 30%를 넘긴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도 <별에서 온 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그널><미생>에서도 확실히 느껴진 것이지만 영화 제작인력의 투입이 드라마의 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CJ가 해왔던 무비드라마는 그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시그널>은 영화적 연출과 완성도 높은 대본이 아예 시청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을 통해 오히려 시청률까지 갖게 되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발견해냈고 그 성향이 새로움과 좀 더 높은 완성도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완성도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필요하다면 영화적인 제작방식을 통한 연출의 변화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고정관념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데서 굳어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제 향후의 드라마 판도를 가를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능부터 드라마까지, tvN에 대한 너무 높은 기대치들

 

tvN <치즈 인 더 트랩>이 드라마 후반부에 이르러 겪은 갖가지 논란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역시 최고의 시청률과 화제를 이끌었던 <응답하라 1988>이 엔딩에 이르러 누가 누구와 결혼하느냐를 두고 벌어진 뜨거운 논쟁들은? <꽃보다 할배>부터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까지 내놓기만 하면 최고시청률을 경신하던 나영석 PD표 예능에 대해 최근 들어 힘이 빠졌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치즈 인 더 트랩(사진출처:tvN)'

사실 tvN은 작년 한 해 동안만도 어마어마한 성장을 만들었다. 그 전면에 섰던 건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였다. 나영석 PD<꽃보다> 시리즈와 <삼시세끼>로 케이블로서는 그간 넘지 못할 벽이라 여겼던 두 자릿수 시청률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냈다면, 신원호 PD는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거푸 성공시키며 대표적인 tvN표 드라마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나영석 PD와 신원호 PD의 콜라보레이션은 지금 방영되고 있는 <꽃보다 청춘> 나미비아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확실한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두 명의 블록버스터급 프로그램들의 성공에 힘입어 <집밥 백선생>이나 <수요미식회> 같은 레귤러 프로그램들 역시 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형국이 만들어졌고, 이제는 두 사람이 아니라도 <미생>에 이어 <시그널>까지 대박을 낸 김원석 PD표 드라마가 또 한 축의 성공을 만들어내며 tvN의 브랜드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지상파 드라마에 식상해했던 시청자들은 이제 tvN의 영화 같은 장르드라마에 빠져들게 되었다.

 

하지만 연전연승과 승승장구에는 그만한 고민거리도 생기기 마련이다. <치즈 인 더 트랩><응답하라 1988>의 멜로를 두고 벌어진 설전이 말해주는 것처럼 tvN 드라마들은 비상한 대중들의 관심만큼 그것이 엉뚱하게도 논란으로 이어지거나 심지어 스포일러로 이어져 제작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이런 승승장구하는 대박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새로 들어가는 프로그램들은 높아진 기대치 때문에 부담감도 그만큼 늘어났다. <치즈 인 더 트랩>에 이어 그 바톤을 이어받은 <피리부는 사나이>가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2회만에 3.6%(닐슨 코리아)라는 꽤 괜찮은 시청률로 순항하고 있지만 이런 흐름은 또 이어질 후속작에 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CJ로 와서 지금껏 단 한 번도 실패작을 내지 않은 나영석 PD의 부담감은 그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여전히 뜨겁지만 <꽃보다 청춘> 시리즈가 과거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는 반응들 역시 적지 않게 등장하는 건 여러 차례 반복된 시리즈의 피로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다시 <삼시세끼>로 돌아가는 것도 그다지 좋은 선택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CP급이 된 나영석 PD는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후배 PD들을 지원해주고 밀어주는 역할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프로그램은 1년에 하나 정도 천천히 준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당연한 선택이고 또 바람직한 선택이다. 너무 많은 기대감으로 인해 나영석 PD가 큰 부담감을 갖는 건 방송사로서도 또 그의 프로그램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에게도 결코 좋지 않은 일이다.

 

지상파와 비교해 소소한 시청률을 기록했던 몇 년 전이라면 tvN의 이런 성과는 부담이라기보다는 축하할 일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상파와 본격적인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높아진 위상만큼 그걸 지켜내기 위한 고민도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흐름은 나쁘지 않았다. 그 흐름이 지속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만일 <태양의 후예>30% 시청률을 넘긴다면

 

KBS <태양의 후예>가 결국 일을 냈다. 이제 겨우 4회를 했을 뿐인데 시청률이 24.1%(닐슨 코리아). 이 기록은 KBS 주중드라마가 2012<각시탈>을 통해 22.9%의 최고 시청률을 낸 이래 처음이자 최고의 기록이다. 그간 SBSMBC에 비교해 늘 바닥을 쳤던 KBS 드라마는 실로 오랜만에 활짝 웃을 수 있게 됐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태양의 후예>의 대성공이 의미하는 바는 실로 크다. 시청률 20% 넘기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재(심지어 한때 시청률 보증수표였던 사극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드라마들은 점점 치고 올라오는 tvN 드라마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미생>8.2%, <오 나의 귀신님>7.3%, <두번째 스무살>7.2%, 그리고 <응답하라1988>이 무려 18.8%의 성적을 냈고 이 힘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시그널>10.4% 시청률로 이어지고 있다. 이 흐름대로라면 지상파와 케이블의 드라마 시청률에 점점 편차가 사라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태양의 후예>가 낸 24.1%의 시청률은 KBS는 물론이고 나아가 지상파 드라마들로서는 한 줄기 희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는 시청 연령대가 높기 때문에 완성도 높은 장르물은 오히려 너무 어렵게 느껴져 시청률은 낮았던 것이 지금까지의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고 있던 딜레마였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사전 제작되어 완성도도 높고, 멜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쟁드라마와 의학드라마의 장르물적 성격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시청률을 내고 있다는 건 지상파 드라마 역시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성적도 낼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지상파에서 시청률이 30%를 넘기는 사례는 KBS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 같은 고정 시청층이 있는 편성시간대를 제외하고 나면 막장드라마들뿐이었다. MBC가 일일드라마 시간대에 임성한 작가를 투입하고 주말드라마 시간대에 김순옥 작가를 투입해 시청률을 가져간 건 그래서다. 지금까지 지상파의 막장드라마 경향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성공은 이런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그동안 안보이던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본방하는 지상파 시청자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걸까. 어떤 면으로 보면 tvN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무비드라마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선전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전체적으로 높아졌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솔직히 <시그널> 같은 작품을 보고 나면 늘 틀에 박힌 이야기와 소재를 반복하는 지상파 드라마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심지어 막장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처럼 드라마라기보다는 영화적인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금의 지상파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전 제작된 드라마이면서, 블록버스터지만 단지 볼거리가 아니라(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다는 건 아니다) 극의 중심인 인물들의 감정 선을 놓치지 않고, 기존 장르적 틀에 묶이기보다는 멜로와 액션과 의학드라마 같은 다양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시도는 지금껏 tvN이 해왔던 것들이다. 그것을 지상파가 그것도 KBS라는 채널에서 보여줘도 충분히 시청자들이 찾아본다는 것을 <태양의 후예>는 말해주고 있다.

 

만일 <태양의 후예>30%의 시청률을 넘긴다면 그건 지상파 드라마에도 어떤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지상파에도 이런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소비하는 시청층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무 완성도가 높으면 그걸 소화해내지 못한다며 얼개를 오히려 허술하게 만들고 자극만을 높인 막장드라마들은 이 상황이 되면 설 자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 이것이 지상파의 타 방송국들조차 이 드라마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태양의 후예>의 어깨가 무겁다

<시그널>이 보내는 향후 드라마 판도의 시그널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이미 알려진 대로 지상파에서 먼저 편성이 거론됐던 작품이다. 드라마업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그널>의 김은희 작가와 여러 작품을 해왔던 SBS는 물론이고 지상파 3사가 모두 이 드라마의 편성을 고민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모두 이 드라마를 포기했고 tvN이 제작하게 됐다는 것이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이 그림은 어째 낯설지가 않다. 재작년에 tvN에서 방영됐던 <미생>과 완전히 판박이이기 때문이다. 당시 <미생>이 지상파에서 거부됐던 건 멜로의 부재 때문이었다. 지상파는 드라마의 성공을 위해 멜로를 추가하기를 요구했지만 원작자인 윤태호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tvN이 이를 받아들여 제작하게 됐고 결과는 의외로 대성공이었다.

 

당시 이 <미생>의 성공은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미생>의 성공이 말해주는 의미들, 이를 테면 완성도 높은 작품에서 굳이 멜로를 끼워 넣지 않아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식의 자성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그널>의 사례는 이러한 자성도 지상파라는 플랫폼의 특성 때문에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왜 지상파는 <시그널>을 거부했을까. 그것은 이미 여러 보도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본격 장르물에 대한 부담때문이다. 적절한 장르와 지상파에 친숙한 코드들(이를테면 멜로나 가족 같은)이 버무려진 복합 장르물은 그나마 지상파가 추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괜찮은 장르물의 외형에 익숙한 드라마적 코드들을 넣음으로써 지상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과 장르물을 선호하는 시청층을 모두 끌어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시그널>은 김은희 작가의 작품들이 그러하듯이 본격 장르물에 해당한다. 거기에는 전형적인 멜로구도가 들어가 있지도 않고, 드라마의 전개도 본격 추리물과 스릴러처럼 촘촘하게 꾸며진데다 그 속도도 만만찮게 빠르다. 완성도 높은 장르물이지만 지상파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진입장벽이 꽤 높을 수밖에 없다. 잠깐 놓치면 이야기 전개가 이해되지 않는 드라마다. 그만큼 몰입도가 높지만 그건 또한 더 깊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시그널>tvN에서 방영되어 이처럼 성공하고 있는 걸 보는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이 대단히 아쉬워할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방영됐기 때문에 그만한 성과가 나오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즉 지상파를 보는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과 케이블을 보는 그것이 사뭇 다르다는 것. 보편적으로 틀어 놓는 지상파와는 달리 선택적 시청을 통해 지금의 위상이 만들어진 tvN은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몰입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시청 패턴의 차이는 <미생>에 이어 <시그널>처럼 멜로 없는 본격 장르물로도 tvN 드라마들이 성공적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tvN은 훨씬 더 영화처럼 드라마를 찍어낸다. <미생>도 그랬지만 <시그널> 역시 김원석 감독은 드라마라기보다는 거의 영화에 가까운 디테일과 연출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지상파 드라마의 경향과는 너무나 다른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단지 지상파에서 거부한 작품이 케이블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해서 그걸로 지상파가 배 아파할 것이라는 시각은 너무 이 문제를 단순화시킨다. 그보다는 더 근본적인 불안감이 지상파에 드리워져 있다. 그건 지상파 드라마의 제작패턴보다 점점 더 케이블 드라마의 제작패턴에 미래의 드라마가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관점으로 보면 현재의 콘텐츠 시대에 케이블 플랫폼이 지상파 플랫폼보다 훨씬 유리한 지점에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시그널>의 성공이 보내는 향후 드라마 판도의 시그널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플랫폼에 집착할 때 콘텐츠를 만든 저력

 

이제 감히 전성시대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방할 듯싶다. 실제로 여러 사실들이 그 전성시대라는 표현을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tvN은 케이블 채널로서는 넘사벽으로 느껴져 왔던 두 자릿수 시청률이 이제 그리 드문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슈퍼스타K>가 케이블 두 자릿 수 시청률의 포문을 열었지만 지금 그 일등공신은 바로 나영석 PD.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금요일 밤 tvN의 채널 장악력을 몇 주 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삼시세끼> 어촌편이 대박을 치더니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이 그 뒤를 이었고 이제 다시 <삼시세끼> 정선편으로 돌아와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사의 채널 장악력이란 그 연속성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나영석 PD는 금요일의 사나이로 자리 잡았다.

 

tvN을 이끄는 또 한 축은 신원호 PD.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가 연달아 성공한 이래 tvN은 다양한 로맨틱 코미디류의 드라마들을 선보였지만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말 <미생>이 그 체면을 차리게 해줬을 뿐이다. 그래서 올해 하반기 신원호 PD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응답하라 1988>은 현재 캐스팅을 어느 정도 완료한 상태로 대본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두 PDtvN에 있는 건 아니다. <코미디 빅리그>를 꾸준한 팬덤으로 만들어온 김석현 CP도 있고, 최근 주목받고 있는 <집밥 백선생>의 고민구 PD도 있다. 모두가 KBS 출신들이다. 이 전체를 이끌고 있는 이명한 tvN 본부장은 프로그램의 전체 균형을 조율한다. 최근 필자와 만난 이명한 본부장은 지금 현재 tvN이 어떤 안정기에 들어갔다는데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삼시세끼> 같은 전방위에서 끄는 프로그램들만큼 <집밥 백선생>이나 <문제적 남자> 같은 방송사의 허리를 채워주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기획해내고 있다. <집밥 백선생>은 그 성과물이다.

 

한편 JTBC는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뉴스에 있어서 골고루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든 거의 유일한 종편 채널이다. 사실 JTBC가 종편이라 불리기를 꺼려하는 건 여타의 종편들 이를테면 TV조선이나 채널A 같은 방송사와 비슷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JTBC는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제작비의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드라마를 계속 제작해냈고, <밀회><빠담빠담>, <유나의 거리> 같은 질 높은 드라마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JTBC에서 예능은 방송국의 위상을 세워준 일등공신이다. <썰전>이나 <비정상회담>, <히든싱어>,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프로그램의 성공을 넘어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제는 JTBC에서 만드는 예능의 트렌드를 지상파들이 따라 하기 바쁜 형국이다. 그만큼 실험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저력을 과시한데는 역시 유능한 PD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유재석이 JTBC와 방송을 하기로 한 일은 그래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되었다. 콘텐츠가 있는 곳으로 결국 모두가 모이기 시작한 것.

 

JTBC는 또한 종합편성채널로서 반드시 가져가야할 뉴스 신뢰도에 있어서도 성과를 만들었다. 손석희 앵커를 투입해 매거진 형태의 뉴스를 시도한 건 타 방송사에서도 주목했던 대목이었다. 그 힘이 여지없이 발휘됐던 건 작년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팽목항에서 직접 뉴스를 브리핑하는 손석희 앵커의 모습을 통해서였다. 뉴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JTBC는 드라마, 예능과 함께 이제 진용이 갖춰진 상황이다.

 

tvNJTBC가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얘기는 거꾸로 지금까지 기득권을 갖고 있던 지상파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와 같다. 그 위기는 다름 아닌 아직까지도 플랫폼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모습에서 비롯된다. 결국은 콘텐츠이고 콘텐츠를 만드는 맨파워다. tvNJTBC 전성시대는 콘텐츠 시대로 들어오게 된 작금의 방송 환경 변화를 잘 말해주고 있다.

 

<미생>, 멜로, 지상파, 스타가 아니어도

 

요즘 지상파 드라마 관계자들을 만나면 한결 같이 나오는 얘기가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이미 밝혀진 것처럼 <미생>은 지상파에 모두 제안되었다가 결국 tvN에서 리메이크된 작품이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이때만 해도 과연 그게 드라마로도 성공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대성공을 거둔 <미생>을 놓친 것에 대해 지금은 후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생(사진출처:tvN)'

<미생>의 성과는 단지 한 드라마의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 제작자들이 해왔던 관습적인 접근을 대부분 깬 데서 나온 성과이기 때문이다. <미생>을 통해 배워야할 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멜로 없이도 된다는 것이다. 애초에 <미생>이 지상파에서 제작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멜로의 부재때문이었다. 지상파 관계자들은 모두 하나같이 멜로를 넣어달라고 주문했지만 멜로 없이 해달라는 윤태호 작가의 강력한 요구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 수락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tvN에서 방영된 <미생>에 만일 멜로가 들어갔으면 그 집중력이 상당부분 흩어졌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직장동료로서의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 그리고 장백기(강하늘)가 각각 서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각자가 가진 직장생활의 고충들과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삼각 멜로에 허우적대게 하지 않은 건 윤태호 작가의 말대로 작품의 성패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셈이다.

 

두 번째로 <미생>을 통해 배울 수 있었던 건 리메이크도 하기 나름이라는 점이다. 사실 <미생>은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부터 이미 1백만 부가 팔린 만화였다. 이것은 그만큼 인지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제작자들에게는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이라는 장애요소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리메이크했다가 실패한 <내일도 칸타빌레>를 보라. 그만큼 원작의 무게감은 리메이크에게는 짐이 되는 법이다.

 

하지만 <미생>은 원작과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고 평가받았다. 그것은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기보다는(물론 약간 다른 내용들이 있지만), 드라마적인 극적 구성을 강화했다고 보는 편이 낫다. 이 극적 구성 때문에 웹툰이 가진 마치 바둑을 두는 듯한 지적인 흐름은 감정선이 묻어나는 장면들로 보여질 수 있었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미생>은 실증해보인 것.

 

세 번째는 플랫폼이 아니라 콘텐츠라는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미생>이 만일 지상파에서 했다면 그만한 성과를 얻었을까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즉 지상파는 상대적으로 시청층의 연령대가 높고 드라마 소비에 있어서도 패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파가 <미생>에 멜로를 요구한 것은 기획적인 패착이 아니라 바로 이런 플랫폼적인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떤 드라마는 지상파보다는 아예 케이블 같은 비지상파가 훨씬 더 플랫폼으로서 우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플랫폼에 끼워 맞추는 콘텐츠가 자칫 바로 그 점 때문에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플랫폼보다 우선되는 것이 콘텐츠라는 점이다. 콘텐츠가 먼저 완성되고 거기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한 <미생>은 그래서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미생>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었던 것은 미 발굴된 얼굴들이 오히려 낫던이 드라마의 캐스팅이다. 김대명, 변요한, 박해준, 류태호, 김희원, 손종학, 정희태, 최귀화, 전석호, 오민석, 태인호, 황석정, 이승준... 우리는 <미생>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던 무수한 배우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지상파 드라마에서 봤던 얼굴들이 여기저기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그림이다.

 

이렇게 미 발굴된 얼굴들은 이미지 노출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품 캐릭터와의 싱크로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마치 웹툰에서 지금 막 걸어 나온 것 같다는 평가는 바로 이 미 발굴된 얼굴들의 미친 존재감 덕분이었다. 즉 지상파 드라마들도 새로운 얼굴의 발굴이 드라마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미생>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다.

 

<미생>의 성공은 드라마의 새로운 성공방정식을 만들었다. 기존의 틀을 고집하며 깨지 못했던 지상파들로서는 한번쯤 숙고해야할 부분이다. 멜로가 없어도 지상파가 아니라도 또 스타가 아니라고 해도 작품만 좋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미생>은 보여주었다.

 

<삼시세끼>부터 <미생>까지 금요일 장악한 케이블

 

이제 금요일 밤의 주도권은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넘어가고 있는 것일까. 물론 시청률 전체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은 여전히 SBS <정글의 법칙>이다. 시청률 13.5%. 하지만 예전만큼 화제성이 뜨거운 프로그램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이런 시청률이 나오는 건 이미 이 프로그램이 고정 시청자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중장년 시청층에게도 충성도가 높은 프로그램이다.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사진출처:MBC)'

MBC가 새롭게 편성한 <띠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시청률은 3%에 머물고 있다. 기획적인 포인트나 시도 자체는 괜찮게 보인다. 하지만 금요일 밤의 치열한 경쟁을 염두에 두고 보면 너무 임팩트가 약하다는 게 약점이다. 큰 기대감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프로그램이 되고 있다.

 

KBS <나는 남자다>는 유재석을 메인 MC로 두고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시청률이 4% 대다. 포커스를 남자들에 맞춰 놓는 차별화를 시도했지만 역시 스튜디오 토크쇼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들을 객석에 초대하는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효과는 별로 없었다. 무언가 형식 자체가 특화된 것이 아니라면 명 MC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이 금요일 밤에 살아나고 있는 지상파 예능은 SBS <웃찾사>. KBS <개그콘서트> 이외에 그다지 무대 개그 프로그램으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웃찾사>는 최근 지속적인 아이디어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현실 풍자 개그를 보여주는 ‘LTE뉴스나 혀 짧은 임금 캐릭터가 등장하는 뿌리 없는 나무같은 코너는 <개그콘서트>의 패턴화된 개그와는 색다른 묘미를 선사하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새로운 인물의 투입과 하차가 자유로운 형식의 이점 때문에 계속 신선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역시 예전만은 점점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홍철의 하차가 주는 빈 자리는 확연히 느껴진다. 무엇보다 이제 나홀로 족에 대한 콘텐츠들이 너무 많아진 것도 프로그램의 신선함이 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다.

 

반면 시청률면에서도 또 화제성 면에서도 압도적인 건 최근 tvN<미생>, <삼시세끼> 그리고 종영한 <슈퍼스타K6>의 라인업이다. 케이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생>6%, <삼시세끼>7% 그리고 <슈퍼스타K6>도 평균 4.6%의 괜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보다 더 고무적인 건 화제성이다. 다음날 토요일판 포털을 들여다보면 거의 이들 케이블 프로그램들의 기사들로 도배되다시피 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금요일 밤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존재감은 점점 시들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지상파 프로그램에 파괴력이 느껴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신선함이 없다는 점이다. <정글의 법칙>이나 <나 혼자 산다>처럼 처음에는 신선했던 프로그램도 반복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면서 그 신선함이 사라지고 있고, <나는 남자다><띠동갑내기 과외하기> 같은 새롭게 출시된 프로그램들은 굳이 봐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육아예능처럼 뭔가 잘 되면 우 몰려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양산하면서 결국에는 더 빠른 소비로 동반 추락을 겪는 것도 지상파 프로그램들의 한계로 지목된다. 완전히 새로운 시도 자체를 하기 보다는 스타 MC를 기용하거나 이미 성공했던 아이템을 가져와 변용하는 식으로 안전함을 선택하는 것도 지상파 프로그램이 식상해지는 이유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유기농 예능에 도전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나영석 PD<삼시세끼>, 드라마 내용상 불필요한 멜로 따위는 애초에 접어버림으로써 오히려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는 <미생>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제 지상파가 배워야할 때다. 이제 안전한 시도에서 가져갈 것은 없는 상황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하고 기존의 패턴을 유지한다면 이미 케이블로 넘어가고 있는 주도권을 되돌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스타 예능 MC, 이제 살 길은 비지상파다

 

MBC <별바라기>에 출연중인 샤이니의 키는 우리 딱 한 번만 5% 넘어보자잉하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 현재 <별바라기>의 시청률은 3% . 헨리와 써니가 출연한 효과인지 지난 2%대에서 그나마 1% 올라온 성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3%대로 동시간대 꼴찌인데다 목표치가 5%라는 얘기는 안타까움마저 느껴진다. 강호동이라는 스타 MC의 이름이 무색하기 때문이다.

 

'별바라기(사진출처:MBC)'

KBS <우리동네 예체능>도 시청률 4%대에 전전하다 최근 5% 시청률에 도달했지만 강호동이라는 이름 석 자를 떠올려보면 초라하게만 여겨진다. 물론 시청률만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진짜 이제 강호동의 시청률 목표는 5%가 된 듯하다. 복귀 이후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호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강호동만이 아니다. 최근 스타 MC들은 모두 과거의 영광이 꺾인 지 오래다.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를 여전히 하고 있는 유재석은 예외다. 그 역시 주중 예능 프로그램에서 4%에서 6%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그의 인기나 존재감은 단지 프로그램 안에서만의 평가에 머물지 않는다. 철저한 자기관리의 표본으로서 유재석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하지만 한때 예능의 달인이었던 이경규도 최근 들어 별다른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신동엽이나 김구라 같은 토크의 달인들도 지상파 시청률 성적은 그다지 높지 못하다. 이것은 어쩌면 전체적인 지상파 예능의 몰락이기도 하고 또한 스타 MC 예능 트렌드의 추락이기도 하다. 이제는 일반인들이 참여하거나 반 일반인들(연예인 가족 같은)이 참여해야 그나마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가져간다.

 

지상파 예능이 이렇게 된 데는 기존 방식인 스타 MC 중심의 예능 트렌드를 좀체 벗어내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지상파 예능의 추락과 스타 MC들의 추락은 서로 공조하며 벌어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근 몇몇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정규화 했다 추락한 원인은 바로 이것이다. 이효리의 <매직아이>가 그렇고, 강호동의 <별바라기><우리동네 예체능>이 그렇다. 스타 MC를 세우면 달라진 트렌드 속에서도 옛 습관(스타를 중심으로 풀어가는)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 와중에 주목해야 할 인물은 신동엽과 김구라다. 여타의 스타 예능 MC들과 사뭇 다르게 이들은 일찌감치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종편이든 상관없이 종횡무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시도해왔다. 그러다 보니 지상파가 옛 트렌드에 묶여 있을 때 케이블과 종편이 시도한 참신한 형식들의 예능에 이들은 쉽게 적응했다. 지상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고 하더라도 케이블이나 종편에서는 자기 존재감을 확실히 세운 이들은 그래서 아무런 위기설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tvN<SNL 코리아>JTBC<마녀사냥>으로 신동엽은 19금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를 열었고, JTBC <썰전> 같은 프로그램으로 김구라는 시사와 비평이 접목된 새로운 예능 트렌드를 만들었다. 사실 어찌 보면 강호동의 존재감이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은 그를 받쳐줄만한 참신한 지상파 예능이 부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스타 MC가 출연한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보던 시대는 지났다. 참신한 콘텐츠가 우선이고 그 다음이 MC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강호동은 지상파에서 5% 시청률을 내려고 안간힘을 쓸 게 아니라, 비지상파로 가서 똑같은 5% 시청률을 노리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지상파 5%와 비지상파 5%의 어감은 이렇게 다르다. 게다가 비지상파들이 최근 들고 나온 일련의 참신한 예능 형식들은 오히려 지상파들이 배워야 할 덕목들이다. 강호동 역시 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강호동의 추락을 과거 잠정은퇴 선언을 했던 그 세금 문제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그가 얼마나 파괴력 있고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가이다. 결국 연예인의 이미지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강호동은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에 도달해 있다.

 

지상파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판에서 다시 입지를 마련할 것인가 아니면 지상파를 끝까지 고수할 것인가. 이 문제는 물론 스타 MC들과 공조해온 지상파 예능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상파는 언제까지 기득권을 주장하며 옛 트렌드에만 머물 것인가. 이제 시청률에서조차 지상파와 비지상파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다. 변화의 바람은 일찍부터 불고 있었다. 다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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