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변호사’, 사이다에 대한 갈증 알지만 어딘지 아쉬운 건

어쩌면 애초 기획부터 tvN 주말드라마 <무법변호사>는 고구마 현실 속에서의 사이다 드라마를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돈 있는 자가 이긴다’는 ‘법’에 대해 서민들의 감정을 이미 기획에서 끌고 온 것이고, 그래서 ‘무법(無法)’ 천지인 현실을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뒤집어보겠다는 것. <무법변호사>는 ‘무법(無法)’에 법으로 싸운다(武法)는 판타지를 동력으로 삼은 드라마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배경으로 삼은 기성은 우리네 고구마 현실을 환기시키는 여럿 장면들이 등장한다. ‘법꾸라지’가 떠오르기도 하고, ‘문고리 3인방’이 떠오르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깡패에서 시장이 된 안오주(최민수) 같은 인물이나, 겉보기엔 기성을 위해 헌신하는 판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패한 기성시의 정점에 서 있는 차문숙(이혜영) 같은 인물, 그리고 거기 붙어 문고리 역할을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 남순자(염혜란) 같은 인물이 그렇다. 

<무법변호사>는 그래서 이들 악역들을 전제로 세우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고구마 상황들을 통해 시청자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후, 이를 뒤집는 봉상필(이준기) 변호사의 사이다 반격이라는 마치 공식적인 전개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테면 봉상필의 눈앞에서 그를 키워준 최대웅(안내상) 같은 인물이 죽음을 맞게 되는 회차에서 시청률이 높게 나온 건 그 고구마 전개가 가진 힘이다. 

하지만 위기가 만들어내는 고구마와 그를 뒤집는 전형적인 복수극의 사이다를 반복하고 있는 <무법변호사>는 그래서 어딘지 뻔한 틀에 들어와 있는 느낌을 준다. 하재이(서예지)의 엄마인 노현주(백주희)가 차문숙(이혜영)의 안마사로 잠입하고 있다 붙잡혀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만한 긴박감이나 긴장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건 반복된 이야기 틀 때문에 그것 역시 봉상필의 반전으로 쉽게 해결될 것이라 예측되기 때문이다. 

노현주가 드럼통에 넣어져 강물에 던져질 위기에 처한 순간, 마침 봉상필의 이야기를 듣고 그 곳을 안오주(최민수)가 찾아오고, 그래서 잠시 태광수(김병희)가 자리를 비운 순간 봉상필과 손을 잡은 전갈(김용운)에 의해 노현주가 탈출하게 되는 시퀀스는 그래서 너무나 우연적이면서 또한 예측 가능한 전개가 된다. 또한 그렇게 두 번 노현주를 죽이라고 사주한 남순자(염혜란)가 그 사실 때문에 검거되는 과정도 너무 쉽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우연의 반복과 단순한 틀을 반복하는 데도 불구하고 드라마가 굴러가는 이유는 개연성이나 신선한 이야기 그 자체보다 단지 ‘고구마-사이다’라는 그 효과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딘지 어색해도 그간 꾹꾹 고구마로 눌러놓았던 전개 속에서 하나씩 풀어주는 사이다에 그럭저럭 갈증을 풀어낼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드라마가 고구마 혹은 사이다로 단순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희극이냐 비극이냐로 한 드라마를 재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중간 지점에 놓여진 다양한 드라마의 결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드라마들은 아예 고구마와 사이다를 기획 포인트로 삼기도 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단지 고구마-사이다가 주는 효과에만 기대게 된다면, 이야기는 퇴행될 수밖에 없다. 

<무법변호사>가 만들어내는 사이다에 대한 시청자들의 갈증은 당연히 이해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효과에만 기대 어딘지 이야기의 촘촘함이나 섬세함 혹은 신선함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면 사이다 전개를 보면서도 그만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를 맞을 수 있다. 이제 몇 회 남지 않은 <무법변호사>가 사이다지만 뻔한 결말이 아닌 시청자들을 놀랍게 만드는 반전을 제시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예쁜 누나’를 통해 작가들이 이제 귀 기울여야 하는 것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를 칭찬해주고 싶었던 건 흔한 멜로드라마를 통해서도 사회변화나 사회적 사안들을 예리하게 건드린 부분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선 문제적 인물은 바로 윤진아(손예진)다. 회식자리에서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버젓이 자행되던 회사를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던 인물. 일정 부분 ‘포기상태’로 살았던 그가 서준희(정해인)라는 인물의 사랑을 받고, 그래서 자신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으며 그것이 그를 각성시켜 회사 내의 성차별과 성폭력 사안에도 맞서나가는 모습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이 기존 멜로와는 다른 진일보한 시각을 담고 있다 여겨져서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을 향해 달려가면서 ‘클리셰’에 발목이 잡혔다. 일상의 문제들을 날카로우면서도 또 멜로가 가진 달달함과 풋풋함을 동시에 껴안는 그 어려운 시도를 성공적으로 그려왔던 초반의 이야기는, 김미연(길해연)이라는 흔해빠진 아침드라마형 결혼반대 엄마의 클리셰를 가져오면서 퇴행하기 시작했다. 시청자들의 불만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그리고 여기에 윤진아라는 캐릭터 역시 ‘변화한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생각 없는 모습’으로 퇴행하는 이야기가 담겨지면서 불만은 더욱 커졌다.

물론 이건 우리가 알다시피 지금껏 수많은 드라마에서 써왔던 흔한 클리셰 공식들이다.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갈등이고, 따라서 멜로드라마는 사랑을 하는 남녀와 이를 반대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흔한 공식.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부터 우리네 <춘향전>이나 <시집가는 날> 같은 고전, 그리고 최근의 멜로드라마까지 이 공식은 바뀐 적이 없다. 다만 달라지는 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멜로드라마라도 사회적 의미를 띤 이른바 ‘사회적 멜로’라고까지 지칭하는 드라마들이 나왔던 건, 그 장애물이 이제는 양가 부모 같은 구시대적 클리셰에서 벗어나 사회적 갈등(신분이든 빈부든 취향이든)으로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특별하고 드라마틱한 사랑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랑을 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결혼 반대하는 부모의 이야기가 지금도 일상적일까 하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 드라마가 그런 클리셰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후반부의 동력이 그런 비판적 시각이라기보다는 그 ‘반대’가 갖는 갈등구조 자체를 활용하고 있다. 즉 클리셰를 통한 전형적인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건 작가가 기존의 드라마 공식을 벗어나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 면면들은 이 드라마가 ‘미투 운동’을 연상케 하는 회사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남성과 여성의 캐릭터 역할에서도 드러난다. 이 드라마가 그리는 윤진아를 포함한 몇몇 여성 캐릭터는 명민하지 못하고 그래서 이용당하기도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를 테면 강세영(정유진) 같은 인물이 남호균(박혁권)의 감언이설에 속아 윤진아를 밀어내려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그가 서준희를 좋아했었다는 설정도 어느 정도 작용하고 있다. 즉 흔한 한 남자를 두고 벌이는 질투라는 클리셰적 코드가 이 안에도 들어있다. 

윤진아가 각성된 인물로 그려지다 어느 순간 ‘민폐녀’가 되고만 건 결국 그 좋은 캐릭터의 설정이 ‘클리셰’를 깨는데 활용되기보다는 오히려 ‘클리셰’에 잡혀 먹히는 이야기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물론 이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윤진아의 각성이 다시 전면에 나올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사안에서도 또 개인적 사랑에서도 더 이상 ‘포기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한 편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담는 것이다. 마지막의 결론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과정과 선택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불편함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을 뒤집는 결과가 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 구조 자체가 흔한 ‘클리셰’의 공식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시청자들의 마음이 어째서 좋지 않은가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그건 작가가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끌고 가기 위한 옛날 방식을 의도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런 클리셰는 이 드라마가 소재로도 잡고 있는 ‘미투 운동’ 같은 성차별에 대한 반대에도 반하는 일이 된다. 과거의 공식을 반복하는 클리셰 속에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 구분이 뚜렷이 들어가고, 심지어 양가 부모의 역할도 어느 정도는 고정되어 있다. 그걸 마지막에 가서 깨기 위한 설정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본래 그것조차 이 클리셰는 공식 중 하나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드라마에서 우리는 꽤 자주 논란이 불거지는 걸 발견할 수 있다. 특정 직업 비하 논란, 성폭력 미화 논란, 성차별적 장면이 만들어내는 논란 등등. 그래서 논란이 나올 때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며 사과하지만, 그래도 또 논란은 터져 나온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건 이것이 각각의 사안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껏 통용되어 왔고 작가들이 배워왔던 ‘드라마 공식(그건 다른 말로 클리셰다)’ 속에 그 논란거리들이 이미 내재해 있어서다. 결국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지만 볼게 아니라 이 흔한 공식이라는 뿌리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이라면 이제 누구나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이 시대의 시청자들이 그 과정을 통해 보고 싶은 건 윤진아라는 과거 ‘클리셰적인’ 인물이 사랑을 통해 각성하고 그래서 회사에서도 또 집에서도 보다 당당한 ‘독립적인 인물’로 거듭나는 모습일 게다. 그 틀에 박힌 상황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아니라.(사진:JTBC)

‘예쁜 누나’, 길해연 같은 뻔한 나쁜 엄마 클리셰보다 중요한 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엄마 해도 너무 한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예쁜 누나 윤진아(손예진)의 엄마 김미연(길해연) 얘기다. 제 아무리 자기 성에 차지 않는다고 서준희(정해인)를 반대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집을 굳이 급습해 딸의 머리채라도 잡으려는 그 모습이 볼썽사납다. 

자식 같이, 가족 같이 생각한다면서 서준희가 완강하게 윤진아와의 관계를 지켜나갈 것이라는 걸 드러내자, 이제 대놓고 속내를 드러낸다. 너는 한참 자기 기준에 모자란다고. 그러면서 누구는 그런 자신을 속물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단다. 더 좋은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길 원하는 건 모든 부모의 숨겨진 바람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엄마에게 그 가족들은 모두 실망감을 느낀다. 대놓고 남편을 무시하면서 서준희 같은 아이가 윤진아를 넘보는 것이 남편이 잘 못나가서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윤진아의 의향은 물어보지도 않고 선 자리를 마련해 무조건 나가보라고 등을 떠민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조차 “교양 없는 사람”이라며 화를 낸다. 

어찌 보면 김미연 같은 ‘결혼 반대하는 엄마’의 모습은 우리가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많이 봐온 캐릭터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전형적인 클리셰가 여전히 드라마에서 활용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남는다. 다른 작품이라면 모르겠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같은 대중적 관심을 갖게 만들고, 또 나아가 현 세대의 정서까지도 아우르는 작품이 그 갈등 코드로서 너무 쉬운 선택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 이 드라마만이 갖고 있는 ‘일상성’의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일과 사랑의 이야기가 특별한 감흥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최근 몇 회 동안의 이야기는 그래서 너무 틀에 박힌 갈등구조로 굴러가는 느낌이다. 물론 실제 현실 속에서는 김미연 같은 엄마들이 존재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드라마가 담는 그런 엄마들의 클리셰는 너무 흔하고 그 이야기도 뻔하기 때문이다. 

김미연이 서준희를 어르고 달래고 또 화를 내가며 구슬리는 장면이나, 서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을 만나 이건 안 된다고 정색하는 장면, 그리고 엄마에게 등 떠밀려 굳이 선 자리에 나왔다가 마침 그 자리에서 만난 서경선이 화를 내는 장면들은 그래서 새로움이 없다. 물론 이 작품은 그러한 클리셰가 얼마나 시대착오적인가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에 저런 엄마가 존재할까 싶은 그런 캐릭터는 조금 과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워낙 좋은 느낌을 갖게 만드는 드라마여서 김미연 같은 클리셰가 더더욱 아쉽게 다가오는 것일 게다. 너무 그 갈등을 쥐고 질질 끌기보다는 윤진아가 회사에서 처하게 되는 상황과 현실 속에서 ‘미운 엄마의 착각(제 자식만 귀한 줄 아는)’이 어서 깨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 와중에 그 윤진아를 계속해서 “예쁘다”고 말해주고 지켜주는 서준희의 존재가 얼마나 ‘훌륭한가’가 드러나기를.(사진:JTBC)

‘라이브’가 장르 속 캐릭터들의 클리셰를 깨려는 이유는

tvN 새 주말드라마 <라이브>의 첫 시퀀스는 눈 오는 날 시위현장으로 보이는 곳에서 길바닥에 앉아 끼니를 때우는 경찰들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배가 고픈 듯 허겁지겁 식판의 밥을 뜨는 염상수(이광수)는 거기 한 켠에서 역시 밥을 먹는 한정오(정유미)와 살짝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그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게 됐는가를 드라마는 보여준다. 

한정오는 자식의 전화를 받고도 그런 사람 모른다며 끊어버리는 비정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열심히 보험영업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함께 살아간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남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세상 앞에서 분노와 절망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토록 지워버리고 싶었던 아버지에게 찾아가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으로 돈을 요구하고, 그 돈으로 경찰시험을 준비해 경찰이 된다.

염상수 역시 비정규직 건물 청소원으로 일하는 엄마와 약국의 재고정리까지 도와주며 제약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호주로 도망치듯 나가버린 형과 함께 살아오며 어떻게든 취업을 하려 안간힘을 쓴다. 결국 자신이 정규직이 되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회사가 사실은 사기 기업이었다는 걸 확인하고 절망하던 차에 마침 벽보에 붙어 있던 경찰공무원 모집공고를 보게 된다. 고시원생활을 통해 겨우겨우 그는 경찰시험을 통과한다. 

흔히 드라마 속 청춘들의 모습은 ‘힘겨워도 나름 재밌게 살아가는’ 이른바 ‘청춘로맨스’의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짠내 나도 ‘청춘이기 때문에’ 밝고 나름 달달한 모습들이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지금의 청춘들의 모습일까. <라이브>가 비추는 청춘의 초상은 치열하기 이를 데 없다. 스펙을 보지 않겠다고 모집공고에 내걸었으면서 실제로는 스펙 타령만 하고 아예 남성 취업자들만 뽑겠다는 식으로 여성들을 제외시키는 채용관들 앞에서 한정오는 무력감을 느낀다. 

면접 뒤에 함께 모여 술자리도 갖는 같은 처지들이지만 거기서도 남성과 여성이 그 성차별적 면접 분위기를 놓고 싸운다. 그건 성차별 때문이기도 하지만 치열한 경쟁에 그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정오는 스펙이 아닌 실력만으로 뽑는 경찰 공무원을 지원한다. 하지만 합격했다고 그것으로 경쟁이 끝난 게 아니다. 중앙경찰학교 안에서도 경쟁에서 누락되어 탈락하는 이들이 나오는 것. 그래도 이 악물고 그 경쟁을 버텨내려 한다. 

역시 부도를 내고 도망친 회사에 정규직을 희망했던 염상수는 그 절망의 끝에서 경찰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한정오나 염상수나 한가롭게 연애 따위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당장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앞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만의 문제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최소한 짐은 되지 않으려는 발버둥. 그래서 이 청춘들의 자화상은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 속 인물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러한 클리셰 깨기는 청춘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애초 드라마 시작점에 보여줬던 경찰들의 면면이 진짜 이 드라마가 깨려는 클리셰다. 우리게 경찰이란 촛불시위를 하는 이들 앞에 방패를 들고 막아서던 이른바 ‘공권력’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심지어 철거현장에서 살기 위해 그 곳을 점거하고 있는 서민들을 무자비하게 해산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비정한 존재들로까지 이미지화되어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늘 뒷북을 치는 무능함의 상징처럼 그려온 게 각종 드라마나 영화 속 경찰들의 통상적인 이미지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까. ‘공권력’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면 그들은 마치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존재로까지 여겨지지만, 사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고, 어쩌면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그런 존재들일 것이다. 그들에게 불의한 명령을 내리는 이들이 잘못된 것이지, 그걸 감수해야 하는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을까. 오히려 살기 위해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그 무수한 딜레마 속에 서 있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진짜 경찰들의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제목은 ‘라이브’다. 우리가 어딘가에서 이미지로만 그려져 왔던 실제와는 다른 그런 모습과 현실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드라마의 다짐이 이 제목에 담겨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마지막 현장투입의 시험대에 들어가는 이들 청춘들에게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상관은 “아무 것도 하지마라”고 반복해서 외친다. 때리면 맞고 밀고 들어와도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에 손을 부르르 떤다. 우리가 생각했던 ‘공권력’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그들의 진짜 모습이다.(사진:tvN)

'왕사'도 빠져버린 퓨전사극의 늪

어린 시절 겪은 사건과 성장해서 다시 재회해 인연을 이어가는 남녀. 세자와 신하로 만났지만 서로 우정을 키워온 남남. 그리고 이 세 남녀가 미묘하게 얽히는 삼각관계. 세자이긴 하지만 원나라 왕비에게서 태어나 오랑캐의 피가 섞였다 왕으로부터 천대받는 세자. 대부호의 딸로 태어났지만 그 권세를 얻기 위해 정략적으로 다가오는 남자들에 둘러싸인 여인. 그로 인해 어머니마저 죽음을 맞는 비극을 겪은 여인. 두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왕은 사랑한다(사진출처:MBC)'

MBC 월화드라마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최근 퓨전사극의 공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포석을 깔아놓았다. 세자 왕원(임시완)과 고려 최고의 거부 은영백(이기영)의 외동딸 은산(임윤아)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절절한 사랑과 그 사랑을 가로막는 권력자들의 암투가 이어지고 이를 지키면서 한편으로는 그녀를 바라볼 왕린(홍종현)의 짝사랑이 또 한 축을 이룬다. 

퓨전사극하면 늘 등장하는 무협 액션과 삼각 멜로 그리고 적당한 정치적 상황과 복수극. <왕은 사랑한다>는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지만, 그래서인지 너무 뻔한 느낌이다. 상투적인 장면들도 넘쳐난다. 7년 만에 재회하게 된 왕원과 은산이 툭탁대다가 “나 너 알아”하고 과거 회상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나, 왕원을 오히려 압도하는 무술이나 격구 실력 같은 것으로 드러나는 은산의 캐릭터가 그렇다.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이승휴(엄효섭)를 찾았다가 술독을 깨버리고 그것 때문에 술을 구하기 위해 세 사람이 산꼭대기에 올라가 구름다리에서 벌이는 모험 역시 너무 뻔하다. 구하려다 서로 껴안게 되는 그런 장면은 너무 흔해져 버렸다. 

고려 충렬왕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퓨전사극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을 배경 정도로 그려진다고 해도 너무 역사적인 사건들이 별로 없다는 건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만든다. 물론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이 역사적 사건을 배제하고도 퓨전사극으로서 충분히 성공을 거두었지만, 거기에는 사극을 빌어 건드린 우리네 현재의 청춘들의 현실 같은 것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공감대가 있었다. <왕은 사랑한다>는 어떤 공감대를 그려낼까. 첫 회만으로는 아직 느끼기 어려운 대목이다. 

역사적 사건이 사라지고 남는 자리를 채우는 건 무협 액션과 멜로다. 물론 무협 액션과 멜로 역시 신선한 스토리와 엮어지면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첫 회는 적어도 그런 흥미로움이 있을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마치 중국 무협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질적인 느낌이 남았다. 토착적인 정서를 잘 부각시키지 못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허공에 붕 뜬 듯한 느낌이 드는 것. 

물론 원작이 있는 작품이지만 <왕은 사랑한다>의 삼각 멜로는 송지나 작가의 오래전 작품인 <모래시계>에서 봐왔던(어쩌면 이게 1990년대 드라마의 공식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관계를 변주하는 느낌이다. 보디가드가 호위무사 같은 친구로 바뀐 듯한 그런 구도. 송지나 작가 정도의 경륜이 있는 작가가 왜 이런 뻔한 평작을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물론 이건 <왕은 사랑한다>만의 문제가 아니라 최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 퓨전 사극들의 문제다. 아마도 중국을 겨냥한 듯한 작품들이 만든 이야기성에 지나치게 천착하다보니 나온 결과겠지만 깊이 있는 성찰이나 현재를 관통하는 메시지 같은 것들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SBS <엽기적인 그녀>가 그렇고, 잘 나가다 범작으로 끝을 맺은 MBC <군주>가 그렇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상상력을 한껏 펼치는 것에 무슨 잘못이 있으랴. 다만 그 상상력이라는 것이 너무 성공 공식들만 반복하는 건 굳이 역사 바깥으로 나온 그 이유마저 퇴색시킨다. 사극이 그저 남녀 사이에 벌어지는 멜로의 배경 정도로 다뤄지기 시작한다면 굳이 퓨전사극처럼 ‘사극’이라는 지칭 자체가 의미 없어질 것이다. 이러다 우리네 드라마의 독특한 색깔일 수 있는 사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흐릿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김우빈, 수지라 가능한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톱스타 남주인공,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가난한 여주인공, 남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부모와 얽혀 원수지간이 된 남녀, 일주일간의 계약연애 등등. KBS <함부로 애틋하게>에는 우리가 드라마에서 흔히 봐왔던 너무 익숙한 설정들과 클리셰들이 가득 하다. 익숙한 설정과 클리셰는 그만큼 극적 상황들을 손쉽게 만들어낸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 상투성 때문에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이러한 익숙한 극적 상황과 상투성은 향후 드라마가 어떻게 굴러갈 것인가를 쉽게 예측하게 만들기도 한다. 까칠한 톱스타인 신준영(김우빈)과 가난한 여주인공인 노을(수지)은 악연으로 얽혀있지만 함께 다큐 작업을 하면서 가까워질 테고, 그렇게 두 사람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두을 갈라놓는 상황들(이미 들어가 있는 시한부나 부모 간의 악연, 나아가 빈부 격차까지)로 인해 안타까워질 것이다. 만일 시한부 선고가 실제로 벌어진다면 드라마의 비극적 엔딩은 이미 결정 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보여주는 이런 익숙한 전개들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리 유리하게 작용하지 못한다.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이런 면들은 기대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게다가 드라마의 판타지를 통해 짧아도 어떤 위로와 위안을 그 때 그 때 받기를 원하는 시청자들에게 비극의 비장함은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하지만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제목이 담고 있듯이,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건 함부로라도 애틋함을 그려내는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시간을 되돌려 현재의 상황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오래도록 보여준다. 고교시절로 돌아가 노을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과거를 들춰보고, 20대 시절로 돌아가 신준영이 자신의 친부가 노을의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증거물을 빼앗으려다 노을이 사고를 당하는 끔찍한 순간을 돌아본다.

 

드라마가 애틋함을 만들어내는 건 그 사람의 아픈 삶을 하나하나 새삼 들춰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길거리에서 지나쳤다면 몰랐을 사연들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보게 되며 나아가 걱정하게 되는 것. 그것이 애틋함의 실체다. 요즘처럼 쿨한 세태에게 그래서 애틋함이란 감정은 다소 옛날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함부로 애틋하게>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지점은 그 애틋함을 절절한 휴머니티로 느끼는가 아니면 올드한 감성으로 느끼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건 이러한 옛 감성을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설득하는 일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과거로 회귀해 당대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금의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건 그 옛 감성이 주는 따뜻함같은 것들이 어떤 위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함부로 애틋하게>는 그러나 그 옛 감성이 따뜻함으로 다가오기보다는 익숙한 비극 속에서의 애절함이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트렌디한 부분은 김우빈과 수지다. 이야기는 옛 감성으로 가득 차 있고 설정도 익숙하지만, 그걸 연기해내는 인물들이 다름 아닌 김우빈과 수지라는 현 세대의 시선을 잡아끄는 인물이라는 것. 그래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까칠한 스타 역할이 조금은 새롭게 보이고, 얼굴에 잔뜩 낙서를 해놓고는 그걸 보고 웃다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이들의 트렌디함은 과연 <함부로 애틋하게>의 옛 감성을 살려낼 수 있을까. 지금의 시청자들은 과연 김우빈과 수지를 통해 함부로 애틋해지는 감정에 빠져들 수 있을까

<애인있어요>, 김현주의 13역이 만든 놀라운 결과

 

사실 연기라는 건 경험이 쌓여가며 깊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그 경험도 괜찮은 배역을 만나야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김현주라는 배우가 그렇다. 최근 그녀는 SBS <애인있어요>라는 드라마를 만나 연기의 꽃이 활짝 피고 있다.

 


'애인있어요(사진출처:SBS)'

13. <애인있어요>에서 김현주는 혼자서 세 가지 캐릭터를 소화해내고 있다. 도해강과 그녀의 동생인 독고용기는 쌍둥이라도 성격이 너무 다르다. 도해강이 차가운 커리어우먼이라면 독고용기는 무뚝뚝해보여도 속 깊고 정 많은 사람 냄새나는 캐릭터다. 김현주는 이 두 캐릭터를 동시에 모두 소화해내야 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도해강이 기억을 잃고 살아온 4년의 세월 동안 그녀는 과거의 도해강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삶을 살았다. 백석(이규한)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며 기억을 잃기 전에는 그토록 미워했던 전 남편 최진언(지진희)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그러니 김현주는 기억을 잃기 전의 도해강과 기억을 잃은 후의 도해강 그리고 그녀의 쌍둥이 동생인 독고용기의 세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도해강이 기억을 되찾긴 하지만 기억을 잃었던 4년 간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됐다는 점이다(물론 그것은 도해강이 기억상실인 척 했다는 사실이 후에 밝혀지지만). 과거의 기억을 지워버리고(잃어버리고) 다시금 관계를 맺었던 인물들은 이 되찾은 기억에 의해 다시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도해강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리자 4년 간 관계를 키워온 최진언과 백석은 갑자기 달라진 그녀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애인있어요>는 결국 기억의 문제를 다룬다. 좋은 기억들이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지만 안 좋은 기억들은 관계 자체를 파괴한다. 제 아무리 미워했던 관계라도 기억을 지워버리면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물론 그건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결국 우리네 삶과 관계를 지배하는 건 기억이라는 걸 <애인있어요>는 도해강이라는 인물의 변화하는 기억과 그로 인해 변주되는 관계에 의해 보여주고 있다.

 

기억 상실이라는 코드는 흔히 막장드라마에서 자주 활용되는 클리셰다. <애인있어요>의 외양이 막장드라마처럼 보이는 건 이 드라마가 기억 상실 코드를 가져와 상황을 급전시키는 그 스토리 진행방식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는 힘은 이 기억과 관계의 문제를 그저 점 하나 찍고 다른 인물이라고 말하듯 엉성한 방식으로 풀어내지 않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문제의식과 진지함이 깔려 있다.

 

이럴 경우 가장 중요해지는 건 연기자들의 연기 내공이다. 만일 김현주가 13역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 기억 상실로 인해 널뛰는 성격과 그로 인해 달라지는 관계를 연기력이 감당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애인있어요>는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벗어던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인있어요>는 그간 경험치를 조금씩 쌓아온 김현주의 만만찮은 연기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드라마가 막장으로 치부되지 않을 수 있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 물론 그와 호흡을 맞춘 지진희나 이규한의 연기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김현주의 지분이 그 누구보다 크다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콘-아름다운 구속’, 막장과 범죄물 클리셰 버무리기

 

이 코너를 만든 개그맨들은 천재가 아닐까. <개그콘서트> ‘아름다운 구속은 평범한 경찰서의 형사와 범인의 취조현장을 다루면서 막장드라마의 패턴화된 멜로공식을 절묘하게 이어 붙인다. 형사와 범인은 마치 연인관계처럼 설정되고, 그들의 취조는 사랑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서태훈 형사가 범인 김하늘(김대성)을 잊지 못하고 취조하고 싶어 하지만 이 취조는 안타깝게도(?) 늘 엇갈린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저 자수하러 왔습니다. 얼른 취조해주세요.” 저 스스로 취조 받으러 온 김하늘에게 서형사가 너 만나고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하고 외치는 장면이나, 김회경 형사가 김하늘에게 현장에서 나온 이 벽돌이 뭐냐고 묻자 마치 김하늘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안다는 듯이 중고 샀는데 사기 당했다고 말해주는 서형사의 진술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봐왔던 클리셰들이다.

 

그리고 본격적인 클리셰들의 패러디가 시작된다. 서태훈 형사가 취조해야 하는 류근지가 마치 멜로드라마를 보면 단골처럼 등장하는 재벌집 딸의 대사를 날리는 것. “서형사님 고작 이런 잡범 때문에 날 이렇게 무시하는 거에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러자 마침 등장한 서장인 송준근이 시어머니 같은 대사를 김하늘과 서형사에게 던진다. “뭐야. 또 너니? 서형사. 너 류근지 얘 잡으면 진급 탄탄대로야 알아 몰라?”

 

펑범한 여자와 사랑에 빠졌지만 재벌집 딸과 결혼시키려는 시어머니의 반대.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를 그대로 패러디로 가져온 아름다운 구속은 그 이야기가 경찰서의 그것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맥락을 담아낸다. 빈부 격차의 이야기는 멜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범죄자들에게도 이른바 범털과 개털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 “어디서 천한 잡범 주제에 감히 우리 서형사한테 취조를 받으려 들어? 넌 내가 안 된다고 했지?”

 

멜로드라마의 클리셰와 경찰서 취조현장의 클리셰가 패러디로 겹쳐지면서 기묘한 웃음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패러디의 웃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유사한 구조가 던져주는 풍자적인 웃음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구속이 그저 막장드라마를 패러디하는 대사의 재미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통렬한 비판의식의 속 시원함을 동시에 던져주는 이유다.

 

멜로드라마에서 그토록 많이 나오는 빈부 격차의 집안이야기는 아름다운 구속에서는 조직의 이야기로 바뀐다. “이게 어디서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너희 조직에선 그렇게 가르치니?” 송준근 서장이 그렇게 말하자, 김하늘은 저를 욕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저희 조직은 욕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대꾸한다. 그리고 막장드라마의 공식 중 하나인 얼굴에 물 뿌리는 장면이 나온다. 김하늘이 마치 멜로드라마에서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서장님하고 부르자 송준근이 누가 니 서장이야?” 하고 발끈 하는 것.

 

막장드라마에 역시 단골로 나오는 긴박한 음악이 흐르면서 뒷목 잡고 쓰러지는 서장이 물러난 후, 역시 식상할 정도로 많이 봐온 사랑을 포기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엔딩에 들어간다. 일부러 김하늘을 놓아준 김회경이 빨리 가서 잡아요라며 서형사에게 거수경례를 올리는 장면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구속이 취조현장을 통해 패러디하는 건 막장드라마와 늘상 비슷한 패턴만을 보여주는 멜로드라마의 클리셰들이지만, 거기에는 또한 법 정의에 있어서도 빈부격차로 나뉘는 사회 현실에 대한 풍자도 들어가 있다. 게다가 이 개그에는 남남커플의 게이코드 또한 들어있다. 최근의 패러디들 중에서 이토록 다양한 의미망을 가진 개그 코너가 있었을까 싶다. 이 코너를 볼 때마다 코너를 만든 이들이 천재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이종결합의 실험도 좋지만, 우리 정서는 어쩌나

 

KBS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그리고 이번에는 MBC <밤을 걷는 선비>. 흡혈귀, 즉 뱀파이어 소재의 드라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블러드>4%(닐슨 코리아) 정도에 시청률에 머물렀고,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지금 현재 2% 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시청률은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화제도 그리 크지 않다.

 


'밤을 걷는 선비(사진출처:MBC)'

만듦새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건 소재의 낯설음이다. 물론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대중들에게 낯선 건 아니다. 이미 미드를 통해서나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나 뱀파이어는 하나의 클리셰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많이 소재로 다뤄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네 콘텐츠에서다. 우리에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낯설다. 한때 뱀파이어 붐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흡혈형사 나도열> 같은 우리 식의 뱀파이어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참패했다.

 

OCN에서 방영한 <뱀파이어 검사>는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시청률도 최고 4%가 넘는 선전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케이블이 가진 특성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고, 또한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통해 들여다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도 높은 영상과 어우러져 거둔 성과였다.

 

문제는 지상파들이 뱀파이어 소재를 그 플랫폼에 걸맞게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에도 살짝 등장했지만 <밤을 걷는 선비> 역시 사극 속의 뱀파이어를 다룬다. 사실 사극이라는 단어와 뱀파이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흡혈귀라고 소개하면서 그걸 서양에서는 뱀파이어라고 부른다는 지칭까지 굳이 대사에 집어넣는다.

 

이종결합의 실험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그저 이색적인 볼거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근거가 스토리나 주제의식 속에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즉 조선시대라는 배경 속에서 뱀파이어가 활동한다는 그 스펙터클적인 요소에 집착한다면 시청자들의 눈길 한 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인 정서적 공감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사극은 최근 들어 판타지까지 장르적 변용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사극들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사극은 상상력의 틈입이 이제 허용된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상상력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대장금>은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여성으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일과 성장스토리에 닿아 있어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밤을 걷는 선비>가 다루고 있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지금 현재의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첫 회를 통해 모든 걸 판단하긴 어렵지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복수극과 멜로의 틀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복수와 사랑은 왜 지금 뱀파이어라는 소재까지 사극에 들여서 대중들에게 보여져야 할 것인가. 왜 우리의 괴물들, 이를테면 구미호나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 아니고 뱀파이어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주지 못한다면 사극까지 들어온 뱀파이어 이야기는 단순한 이종결합의 스펙터클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류사회>, 그건 사랑일까 욕망일까

 

상류사회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선망이자 판타지다. 서민들이라면 도무지 가질 수 없는 화려하고 부유한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걸 드라마로 다루면 주로 신데렐라가 나오는 멜로가 나온다. 다른 하나는 계급적인 시각이다. 죽어라 열심히 살고 있는데 누구는 점점 더 잘 살고 누구는 점점 못 살게 되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걸 드라마로 다루면 사회극이 나온다. 그렇다면 아예 제목부터 <상류사회>인 이 드라마는 어떤 시각을 보여주고 있을까.

 

'상류사회(사진출처:SBS)'

<상류사회>는 이 두 가지 패턴화된 시각을 여지없이 깨버린다. 회장 아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서민 중의 서민으로 보이는 알바생 이지이(임지연)는 그를 쫓아다니는 재벌가 아들 유창수(박형식)에 대해 무조건적인 호감을 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자들은 다 그러냐며 밀어내고 대신 서민의 아들이라는 최준기(성준)에 대한 호감을 드러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온 재벌가 아들과 서민 캔디의 조합하고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한편 재벌가 딸인 장윤하(유이)는 신분을 속인 채 마트에서 알바를 한다. 절친인 이지이에게조차 신분을 속이고 살아가는 그녀는 창수가 지이에게 접근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긴다. 재벌가들의 그저 그런 여성편력이라 생각하는 것. 이지이를 진정한 친구로 여기는 그녀는 서민들의 소박한 삶에 오히려 로망을 느낀다. 정략결혼을 시키려는 엄마와 달리 그녀는 소박한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이것 역시 흔히 보던 재벌가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다.

 

그렇다면 상류사회에 대한 계급적 시각을 드러내는 것일까. 윤하네 집안만을 보면 그런 것처럼 보인다. 윤하가 그토록 서민적인 소박한 삶에 대한 로망을 느끼는 건 권위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한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다. 가족이라기보다는 사업체에 가까운 그 곳은 결혼조차 기업 간의 계약처럼 다뤄지는 곳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상류사회의 일원인 창수는 이런 시각과는 또 다르다. 창수는 물론 일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친구인 준기에게조차 분명한 상사와 부하의 위치를 드러내지만, 자주 두 사람은 친구관계의 끈끈함을 드러낸다. 창수가 자신과 같은 상류사회의 일원이 아니라 조금씩 지이 같은 서민여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흥미롭다. 물론 이 두 관계는 애매모호하다. 그것이 과연 진정한 우정인지, 그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의 감정인지 아직까지 모호한 것.

 

<상류사회>가 그리는 건 우리가 상류층에 대해 갖고 있는 밑그림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은 맞지만 청춘남녀의 사랑은 계층과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서로 다른 계층이 사랑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이러한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을 그저 이분법적으로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일어나는 스파크들과 감정들이 우리의 통상적인 편견과 선입견을 뛰어넘어 그려지는 건 <상류사회>가 가진 괜찮은 덕목이다.

 

최근 들어 가면코드가 하나의 트렌드처럼 등장하고 있다. 가면이 이렇게 트렌드가 된 건 일종의 편견을 없애주거나 편견을 벗어버리기 위함이다. 이 드라마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역시 그 가면을 벗기고 드러내는 상류사회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면이 있다.

 

편견의 가면을 벗으니 드라마는 상류사회를 소재로 다루었던 그 어떤 드라마들도 잘 보여주지 않던 새로운 관계들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윤하와 지이의 사랑 그 이상의 우정이 주는 감동 같은 것이다. 윤하의 실체를 모르는 지이는 자신이 마음에 두었던 준기가 윤하에게 관심을 보이자 선선히 친구에게 자신이 준기를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것. “유일한 친구면서 가족이야 넌.” 이 대사는 그래서 가족조차 기댈 곳이 되어주지 않는 윤하의 마음을 울린다.

 

사실 재벌가와의 사랑을 얘기하면서 쉽게 재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욕망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것이 실제일 것이다. <상류사회>가 어째 지금까지 봐왔던 재벌가 이야기들과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건 그 클리셰와 편견의 가면을 훌쩍 벗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민낯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감동이나 관계 같은 것. 그것이 <상류사회>가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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