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유아인, 순수함과 안타까움 사이

 

선생님께서는 내가 제일 힘들었을 때, 내 자신이 죽고 싶다고 했을 때 피아노를 다시 치라고 권하셨고 내 마음이 흔들리는 걸 읽어주셨어요.” <밀회>의 이선재(유아인)가 오혜원(김희애)에게 키스를 하게 됐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장면에서는 청춘의 순수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그의 사랑은 단지 육체적인 이끌림도 아니고, 그저 남녀 간의 사랑 그 자체도 아니다. 거기에는 그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이 청춘의 아픔을 알아봐준 오혜원이란 존재에 대한 고마움이 들어 있다.

 

'밀회(사진출처:JTBC)'

얼마나 힘겨웠으면 그랬을까. 갖고 있는 재능을 그 누구도 알아봐주지 않는 세상에서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야 할 손이 퀵서비스 오토바이 핸들을 붙잡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그런 그를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의 무심함. 그리고 이 돈과 태생과 권력으로 구획되어 스펙 없는 이들은 절대로 들여보내주지 않는 그 현실의 벽 앞에서 느껴질 막막한 절망감.

 

<밀회>가 그리는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현재 우리 사회의 청춘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공고하게 굳어져버린 저들만의 세상에 툭 던져져 출구도 입구도 없는 그 세상의 언저리에서 근근히 삶을 버텨내는 청춘. 그래서일까. 이선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오혜원과 그의 남편 강준형(박혁권)은 그 청춘들을 현 기성세대들이 소비하는 두 가지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혜원에게 이선재는 자신의 지나가버린 청춘의 꿈을 되새겨주는 존재. 이것은 현재 중년들이 청춘들을 소비하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흔히 청춘의 풋풋함을 가진 아이돌들 앞에서 열광하는 중년들은 거기서 자신들의 삶을 청춘으로 되돌리고픈 욕망을 갖기 마련이다. 오혜원에게 피아노는 자신의 잃어버린 청춘의 꿈이다. 그러니 이선재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오혜원은 그 순간 청춘과 소통하는 아찔한 경험을 하는 셈이다. 최근 복고라는 이름으로 떠오르는 수많은 문화현상들의 중심에는 바로 이 청춘에 대한 회귀와 갈망이 들어있다.

 

한편 강준형은 청춘을 하나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현 기성세대들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이선재는 그의 신분상승을 공고하게 해줄 존재다. 그래서 그는 이선재를 자신의 집에 가둬두고 자신만을 위해 키워내려 한다. 학교 재단의 입시 비리를 숨기기 위해 이선재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려는 것처럼 강준형 같은 이들은 진심으로 이선재의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뿐이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청춘들의 삶이란 비참하게까지 느껴진다. 자신을 알아봐주는(사실은 이것 또한 착각일 가능성이 높지만) 오혜원에 대한 이선재의 집착은 그 소통의 출구가 막혀버린 청춘을 점점 강하게 그려낸다. 청춘들은 어떻게든 이 기성사회의 한 귀퉁이를 붙잡아 살아가려 안간힘을 쓴다. 이선재가 그렇고, 그의 여자친구인 박다미(경수진)가 그러하며 그의 절친인 손장호(최태원)가 그렇다.

 

박다미는 오혜원을 비롯한 상류층 자제들이 오는 샵에서 수모를 당하면서도 그들의 머리를 만져주는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간다. 그녀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이선재라는 남자친구 하나지만 그가 점점 오혜원의 집을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불안해진다. 자신의 세계에서 점점 그가 멀어지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혜원의 집에서 지내는 이선재에 대한 박다미의 과도한 반응 속에는 그녀의 전부가 사라져가는 듯한 극도의 불안감이 묻어난다.

 

손장호는 서한그룹 회장의 딸이자 서한예술재단 산하 아트센터 대표, 그리고 오혜원의 직장상사이자 친구인 서영우가 들락거리는 호스트바에서 일한다. 공허한 삶을 위로받고자 돈을 주고 청춘을 사는 서영우 같은 부류에게 돈을 받고 팔려지는 가진 건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청춘. 돈의 논리로 철저히 구축된 시스템 속에서 청춘의 몸은 가진 자의 쾌락과 위안을 위해 소비된다.

 

<밀회>의 이선재라는 청춘은 그래서 아프고 안타깝다. 이 시대의 청춘들이 기성사회에 소비되는 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선재를 연기하는 유아인이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간 엇나간 청춘의 욕망을 주로 연기해오던 그가 <밀회>에서는 대책 없는 사랑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패션왕>에서 가진 자들과 전쟁하듯 살아가던 강영걸이라는 청춘을 연기한 유아인은, 이제 <밀회>의 이선재를 통해 청춘의 순수함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 순수함은 그 어떤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순수해서 더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피아노 건반 하나하나의 선율처럼.

<라스>, 라미란의 매력에 물든 까닭

 

몸매가 아주 자연스럽죠. 꾸며지지 않았어요. 얼굴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물론 아름다운 외모를 가꿔야 될 분들도 있지만 저는 제가 대한민국의 표준 정도라고 생각해요. 배도 좀 나오고..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 팔뚝도 좀 굵을 수 있는 거고.”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라미란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하 22도의 방산시장에서 공사(?) 안하고 베드신도했고, 데뷔작이었던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목욕탕 장면이 있는데 자신의 엉덩이에서 카메라가 빠져 나오면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자 몸매를 인정받은 게 아니냐는 김구라의 말에 자신의 외모를 자평한 것.

 

그녀는 자신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영화 <댄싱퀸>에서는 엄정화 친구로 나왔는데 보기에는 정화언니 이모뻘인 외모 때문에 자신이 언니 언니하는 것에 주변에서 많이 놀라더라는 것. 그녀는 자신의 외모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 화면으로 보면 10년 정도 늙어보이고 10킬로 정도 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듯 그 노안과 자연스러운 외모는 그녀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미 열 아홉 살 때 70대 노인 역할을 했던 그녀는 그 후로 몸종, 천민 역할 등을 했지만 요즘은 노처녀 역할로 격상됐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꾸로 젊은 역할을 하게 된 것. “환갑 때도 이 얼굴일 거예요라고 말하는 라미란은 자신의 외모가 가진 강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캐릭터 이름은 기억하는데 제 이름이나 얼굴은 잘 기억 못하세요.” 이 말은 배우로서는 라미란이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연기란 배우 자신보다 배역으로 남았을 때 빛나기 마련이 아닌가. 물론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은 배우 자신을 드러낸다기보다는 배역에 대한 완전한 몰입을 통해서다.

 

“<더 킹 투하츠><패션왕>을 같이 했는데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 줄 잘 모른다는 그녀의 너스레에는 많은 작품을 해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배우로서 중요한 장점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처음 본 느낌을 준다는 것. 이보다 배우에 적격인 인물이 있을까.

 

<괴물>에서 이른바 발동동 아줌마, <헬로우 고스트>에서는 노상방뇨를 하는 차태현에게 어딜 넘봐라는 애드리브로 변태 아줌마, <스파이>에서는 야쿠르트 요원으로, <차형사>에서는 홍석천의 즉석 애드리브로 기습키스까지 당한 그녀는 그래서 지난 청룡영화상에서 <소원>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그 연기를 인정받았다.

 

<라디오스타>에서 BMK물들어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연기를 하면서 보시는 분들에게 제 연기가 물들어서 다 스며들고 잘 침투했으면 좋겠어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녀의 이 자연스럽게 물드는연기 덕에 그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빛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미란은 그래서 모두가 주연이라고 말할 때 묵묵히 조연으로서 그 옆을 지켜주고 만들어주는 수많은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의 얼굴을 닮았다. 아마도 <라디오 스타>의 라미란을 보며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서 우리의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일 게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승승장구, 이유 있었네

 

‘사과가 썩은 것은 사과 잘못이 아니다.’ 대부업체의 깡패로 살아가던 한태상(송승헌)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혹시 이 문구 때문이었을까. 7년 전 서미도(신세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헌책방 서씨글방에 빚 독촉을 하러 간 한태상이 본 그 입구에 적혀져 있던 문구. 혹시 집나간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죽어버린 아버지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아 결국은 그 깡패들의 일을 하며 썩은 사과의 삶을 살게 된 그에게 그 문구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던 것은 아닐까.

 

'남자가 사랑할 때'(사진출처:MBC)

한태상은 바로 그 문구로 인해 자신이 이 썩은 사과의 길로 들어서게 됐던 때의 일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마음으로 한태상을 찾아온 서미도의 “그렇게 살면 좋아?”라는 질문에 마음이 흔들렸을 지도. 공부 잘 하는 학생에서 어느 날 가족들로 인해 길바닥으로 내던져진 한태상에게, 빚만큼 자신을 사라는 서미도의 당돌한 제안이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을 게다.

 

“가끔 인생은 이런 날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이제 끝장이다 싶을 때 작은 쥐구멍 하나가 나올 수도 있어. 아직 어려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은데 그러지 마라. 함부로 널 놓지 마.” 더 이상 동네의 구경거리가 되기 싫어 인생의 끝장을 선택한 서미도에게 던지는 한태상의 이 말은 그래서 과거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태상과 서미도의 사랑은 이렇듯 시작부터가 다르다. 거기에는 운명적인 만남 따위는 없다. 다만 치열한 현실이 있고, 그 현실에 대한 동병상련이 있을 뿐이다. 가난했던 그들은 바로 사랑의 지고지순함을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을 부정하지 않는다. 만일 한태상의 금전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서미도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장나지 않겠는가. 이 속물적인 사랑에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서미도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그 운명적인 연인 이재희(연우진)를 만나는 곳이 해외의 휴양지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완전히 다른 공간에서의 완전히 다른 나를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 한태상이 보내준 해외출장에서 서미도는 이재희를 만난다. 현실에서 한 뼘쯤 들어 올려진 공간에서야 비로소 현실을 벗어나 온전히 가슴 설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것. 서미도가 한태상과 이재희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어장관리가 아니라 이 두 개의 사랑이 그만큼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가 사랑할 때>가 보여주는 사랑은 겉으로 보면 너무나 전형적이다. 전형적인 삼각관계에서 갈등하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결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신세경이 연기하는 서미도라는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이 캐릭터는 <패션왕>에서 신세경이 연기했던 이가영을 닮았다. 끊임없이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고 지극히 속물적이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수도 없는 그런 캐릭터.

 

아마도 태생적으로 부자인 삶을 살게 된 인물들의 사랑이라면 이러한 사랑을 하면서도 돈과 현실에 솔직한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사랑할 때>에 등장하는 멜로의 장본인들은 태생적 부유함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설 수 있는 풍족한 삶의 맨 밑바탕은 한태상이 떠받들고 있고 그 위에 서미도와 이재희가 서 있다. 이 현실적인 부분은 서미도 같은 캐릭터가 스스로도 말하는 ‘속물’ 근성을 오히려 공감가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랑 사랑 하지만 길바닥에 내던져져 당장 살 수가 없는 마당에 무슨 놈의 사랑인가.

 

그래서 이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현실 속에서 서미도의 속물적 사랑은 거꾸로 그녀를 그렇게 만든 사회시스템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사과가 썩은 것이 어찌 사과 잘못이겠는가. 다만 그렇다고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약간은 빗나가고 약간은 속물적일 지라도 그렇게 솔직한 사랑의 모습은 그래서 <남자가 사랑할 때>의 멜로를 남다르게 보게 만든다. 때로는 현실을 벗어난 운명 운운하는 것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사랑이 더 마음에 닿을 때도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그럼에도 <패션왕>에 빠지는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션왕>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이 불안한 청춘들의 끝없는 방황이 못내 이해되기 때문이다. 이가영(신세경)을 사랑하면서도 끝내 그녀를 밀어내고 최안나(유리)의 접근을 허용하는 강영걸(유아인)을 이해할 수 없다가도, 그 성공에 대한 뜨거운 욕망과 사랑하면서도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는 강영걸의 트라우마는 이 모든 걸 이해하기 해준다.

 

 

'패션왕'(사진출처:SBS)

"무서웠어. 누가 날 사랑한다는 게 무서웠어. 너한테 상처주고 너한테 상처받을까봐." 뉴욕출장에서 만나 뜨거운 키스로 마음을 확인한 이가영이 왜 자신을 돌아오지 말라고 했냐고 묻자 강영걸은 그렇게 답한다. 어린 시절 바람난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고 여동생도 죽게 된 것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그는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못한다. 엄마처럼 자기를 버릴까봐, 여동생처럼 자기를 떠날까봐.

 

이것은 가난이 만들어낸 왜곡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의 경험은 사랑마저 늘 불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성공한 디자이너이고 심지어 가영의 마음을 확인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한다. 정재혁(이제훈)의 회사에서 이가영이 디자인 팀장이 되고 개인 사무실에 차까지 선물 받게 되자 강영걸은 그녀가 '저들의 세계'로 편입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가영 역시 강영걸을 사랑하지만 당장 눈앞의 작은 배려와 대접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는 부유함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 갑자기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모두 돌아가시자 모든 것을 가로챈 조사장(장미희) 밑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온 그녀는, 그 돈이 만들어내는 권력적인 상황에 진저리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욕망에 흔들린다. 그래서 그녀는 강영걸이 뭐든 해주고 싶다며 집과 차를 사주겠다고 하자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 같아요"하며 불안해한다. 하지만 정작 정재혁의 회사에서 디자인팀장으로 승진하고 개인 사무실과 자동차까지 선물 받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 정재혁은 겉으로는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황태자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물이다. 그가 이가영에게 빠져드는 것도 바로 자신과 똑같은 결핍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이 조사장 밑에서 굴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가영은, 모든 게 부모의 뜻에 의해 휘둘리며 살아가는 정재혁에게는 또 다른 자신인 셈이다.

 

이런 동병상련의 감정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병적이다. 정재혁은 그래서 때론 어린아이로 퇴행된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이런 동병상련의 병적인 감정을 보이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최안나(유리)다. 그녀가 강영걸을 찾는 이유는 그가 자신과 같은 성공에 대한 욕망과 좌절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최안나를 강영걸은 역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친구로 받아들이지만, 최안나는 이것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그녀의 성공에 대한 욕망은 성공 그 자체를 사랑과 동일시하게 만든다. 그녀의 애초 목표가 자신의 성공이 아니라 '정재혁과의 결혼'이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정재혁에게 한 번 버려지고 나서 다시 돌아온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버려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그녀의 성공에 대한 욕망은 사랑마저 왜곡되게 만들었다.

 

<패션왕>의 반복되어 엇갈리는 남녀를 멜로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면 그 복잡함에 진저리가 쳐지게 된다. 심지어 이 끝없이 변하는 관계의 변주곡은 세속적인 '어장관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복잡한 <패션왕>의 멜로의 늪에 빠져들면 좀체 헤어 나오기가 힘든 것은 말이다. 이것은 <패션왕>이 그리는 세계가 단순한 멜로가 아니라 그 멜로를 통해 그 바탕에 깔려있는 이 불안한 청춘들의 욕망과 트라우마이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편안하게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패션왕>은 관계 속에서 끝없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인물들의 감정을 통해 그 사랑을 방해하는 그 무엇을 거꾸로 드러내는 드라마다. 그것은 사회가 만들어낸 계급적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고, 기성사회가 청춘들에게 강요하는 압력 때문이기도 하며, 어쩌면 비뚤어진 기성세대의 욕망이 만들어낸 왜곡된 세상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프레임 안에 끝없이 얽혀있는 멜로만을 보여주는 듯한 <패션왕>은 어쩌면 거꾸로 프레임 바깥의 무수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드러내주는 드라마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네 명의 청춘 남녀들이 겪고 있는 이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이 그저 감정게임에 머물지 않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처럼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 비뚤어지고 엇나간 이들의 사랑이 이상하게도 이해되기 때문일 게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는 당연하게도 이들의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들을 우리가 공감한다는 얘기다. <패션왕>은 이처럼 멜로만을 가지고 멜로 바깥의 사회적 프레임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독특한 성취를 하고 있는 작품으로 생각된다.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은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도 연기 못하는 가수들은 이른바 연기력 논란을 겪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제 가수들이 주인공을 맡는다는 그 사실 하나로 비판을 받지는 않게 되었다. 그만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가수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고, 또 성공사례도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쇼'(사진출처:SBS)

이승기와 박유천은 드라마로 간 연기돌의 좋은 예다. '더킹 투하츠'에서 이승기는 깐족대면서도 때론 위엄을 보여주는 왕제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고, '옥탑방 왕세자'에서 박유천은 현대로 온 조선의 왕세자 역할을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다. '해를 품은 달'에서 주목받고 '적도의 남자'에서 매력이 확인된 임시완, '사랑비'와 '패션왕'에서 각각 활약하고 있는 소녀시대의 윤아와 유리 등등 지금 드라마의 중심에는 가수들이 있다.

 

물론 여전히 연기가 어색한 가수들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해 확실히 나아진 건 사실이다. 이것은 이제 가수들이 연기 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쉽게 보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돌들 같은 경우에는 자체적으로 연기를 배우는 것이 하나의 코스가 되어 있다. 가수들은 캐스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내야 그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소화를 못했을 때는 연기력 논란으로 자칫 가수 활동 자체에도 악영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들의 드라마행이 이제 보통의 일이 되어버린 반면, 작년부터 배우들의 예능러시가 주목된다. 엄태웅은 '1박2일'의 멤버가 되면서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올리지 못했던 주가를 올렸다. 그는 영화 '특수본'에 이어 '건축학개론'에도 출연했고, 최근에는 드라마 '적도의 남자'에서 맹활약 중이다. 송지효 역시 예능을 통해 주가를 올린 대표적인 사례다. '런닝맨'은 '쌍화점'에서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송지효 특유의 편안한 매력을 부각시켰다. 그녀는 심지어 드라마 '계백'을 촬영하면서도 '런닝맨'에 출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사극에 있어서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송지효가 '런닝맨'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 지를 알 수 있었던 대목이다.

 

한혜진은 '힐링캠프'가 발견한 예능의 보석이 되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도 자기가 할 이야기는 빼놓지 않고 콕콕 집어 말하는 직설어법은 '힐링캠프'에서 그녀만의 존재감을 세워주었다. 이러한 성공사례들 덕분일까. 배우들의 예능 러시는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현정이 자신의 이름을 딴 '고쇼'로 예능 신고식을 치렀고, 이동욱은 이승기가 떠난 '강심장'에 MC를 맡아 첫 회부터 공동MC인 신동엽보다 더 확실한 존재감을 만들어냈다. 물론 시트콤은 예능으로 분류돼도 드라마에 가깝지만 아직까지 이 분야에 발을 딛지 않았던 차인표(선녀가 필요해)나 류진(스탠바이)이 최근 여기에 합류했다는 것도 배우들의 예능 러시와 같은 궤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배우들 중 특히 여배우들의 예능 활약은 두드러진다. 사실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은 대부분 그들의 작품 홍보 시기와 맞물려 출연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여배우라는 존재 자체가 예능에서는 하나의 블루오션처럼 되어 있었던 것. 여배우라면 흔히 떠올리는 여신 같은 이미지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예능에서는 확실한 반전 효과를 줄 수 있다. 송지효나 고현정 같은 경우를 보면 그녀들이 본래 갖고 있던 이미지들을 예능을 통해 상당히 부드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배우가 예능을 하고 가수가 연기를 하는 것처럼 연예인들이 점점 멀티 플레이어화되는 이유는 뭘까. 이것은 점점 퓨전화되고 섞이는 콘텐츠들의 시대적인 요구에서 비롯된다. 예능이 다큐나 드라마적인 요소와 섞이고, 드라마가 예능과 접목되는 등의 콘텐츠 퓨전화 경향은 그 종사자들인 연예인들의 자기 정체성 또한 하나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또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지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려는 것도 연예인들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이유가 될 것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들이 섞일 때 그 연예인 당사자에게 그것이 시너지를 만들 가능성도 훨씬 높다. 과거에는 배우가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미지의 충돌이 생기기 때문. 하지만 요즘은 확실히 달라졌다. 예능 출연의 이미지와 영화나 드라마 출연의 이미지를 별개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기 때문이다. 엄태웅 같은 경우에 '적도의 남자'나 '건축학 개론'에서의 진지한 이미지와 예능에서의 편안한 이미지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상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스타들에게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이러한 사회의 변화는 물론 그만큼 치열해진 경쟁을 얘기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 특정 영역의 장벽이 허물어지고 뒤섞이는 문화적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콘텐츠의 퓨전화 경향처럼 이제 연예인들 역할도 퓨전화되고 있다.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웃기는 시대다.

스펙사회에서 생존하려는 청춘들의 몸부림

 

‘패션왕’의 강영걸(유아인)은 우리가 흔히 드라마에서 보던 그런 주인공과는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주인공이라고 하면 주로 선의 입장에 서 있게 마련이고, 겉으로는 까칠하게 굴어도 여성을 보호해주는 인물이며, 심지어 복수를 할 때조차 누군가의 뒤통수를 친다거나 하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주인공으로서의 정당성(적과는 다른)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패션왕'(사진출처:SBS)

하지만 강영걸은 자신에게 모든 걸 의탁하고 지지하는 가영(신세경)을 사장이라는 명분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때론 지나친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 재혁(이제훈)에게 복수하기 위해 겉으로는 협력하는 척 가영을 그의 회사에 파견근무 보내고 거기서 안나(유리) 대신 디자인을 하게 시키지만, 결국 가영이 한 디자인을 자신이 상표등록 하는 방식으로 재혁의 뒤통수를 친다. 그는 결코 우리가 흔히 봐왔던 드라마의 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래서 한때 강영걸은 민폐 캐릭터로 불리기까지 했다. 도대체 왜 강영걸은 이렇게 물불 안 가리는 캐릭터가 되었을까.

 

여기에 대한 해답은 강영걸과 정반대에 서있는 인물들에게서 찾아진다. 재혁의 아버지인 정만호(김일우)는 자식에게조차 실적이 우선인 인물이다. 그는 자식이 사업에 실패해도 ‘자기 돈’ 아까운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이 뭔지 알아? 능력도 없으면서 열심히 하는 인간들이야.” 이렇게 말하는 그는 노력이나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으로 판단하는 인물이다. 모든 것이 결과로 드러나는 이른바 ‘스펙사회’의 전형.

 

흥미로운 건 ‘스펙사회’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재혁은 그런 아버지 정만호를 거의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데, 또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가영의 디자인을 안나가 한 것처럼 돈으로 사려고 한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돈으로 가로채는 이런 방식은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환기시킨다. 과정이 없고 결과만을 보는 스펙사회가 만들어낸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정만호와는 달리 재혁이 그나마 괴로워하는 건과정을 만들어내고 있는 가영이란 청춘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그는 스펙사회의 공포에 질려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청춘의 순수함을 갖고 있다.

 

앞뒤가 꽉 막혀버린 이 ‘스펙사회’의 틀을 놓고 바라보면 강영걸의 과도해 보이는 행동들이 이해된다. 도대체 공정하고 정의로운 공자님 같은 방식으로 이 스펙사회와 대적할 수가 있을까. 그래서 강영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동원한다. 비열해져야 한다면 비열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이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고, 그래야 가영 같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주변 인물들도 챙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란 걸 그는 알고 있다.

 

재혁과 안나가 이 스펙사회의 기득권자로서 과정 없이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계를 드러낸다면, 거꾸로 영걸과 가영은 애초부터 출구가 막혀 결과를 내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낸다. 재혁과 안나는 과정을 찾아야 하고, 영걸과 가영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한계를 넘으려면 재혁과 안나는 과정 자체를 즐겨야 하는 반면, 영걸과 가영은 스펙사회에서 몸에 새겨져 버린 패배주의를 넘어서 자신들만의 자존감을 되찾아야 한다. 이미 능력이 입증되었지만 여전히 ‘짝퉁 인생’을 살아가는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강영걸이 그토록 비열하게까지 그려지고, 재혁과 안나의 무표정한 얼굴이 그토록 안쓰럽게 여겨지며, 가영의 언제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눈물이 가슴 한 구석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이 모든 풍경들이 우리네 스펙사회 청춘들의 자화상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본래 ‘장치나 프로그램을 만들 때 필요한 성능’ 따위를 지칭하던 ‘스펙’이란 말이 공공연히 인간에게 사용되고 있는 이 사회. ‘스펙사회’는 그래서 그 자체로 이 사회가 얼마나 인간을 사물화하고 대상화하고 있는가를 드러내준다. ‘패션왕’을 보다보면 이 끔찍한 스펙사회에서 질식당하고 있는 이 땅의 청춘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실감하게 된다.

 '패션왕', 가슴 먹먹한 청춘들의 자화상

'패션왕'은 우리네 출구 없는 청춘들의 자화상 같은 드라마다. 비는 마치 그들의 처지처럼 추적추적 내리고 가영(신세경)과 영걸(유아인)은 우산도 없이 길바닥에 내쳐진다. 얼굴에 훈장처럼 상처를 달고 그들은 지금 맨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중이다. 살아남기 위해.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버린 조마담(장미희)의 부띠끄에 의탁한 가영을 찾아온 영걸이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버스 안. 주머니에 있는 단돈 몇 천원.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그 막막함. 아마도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이들이 흘리는 그 눈물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패션왕'(사진출처:SBS)

'패션왕'의 가영과 영걸이 태생으로부터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 있는 인물이라고 해서 이 드라마를 단순히 계급적 차이에 의한 빈부의 대립이나, 그 빈부를 뛰어넘는 신데렐라 스토리로 오해할 필요는 없다. 전혀 다른 계급에 속해보이는 재혁(이제훈)과 안나(유리) 역시 출구가 보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니까. 겉보기엔 무엇 하나 부러울 것 없는 재혁이지만 그는 바로 그 태생의 덫에 걸려 있는 청춘이다. 그는 부모라는 이유로 재혁의 삶에까지 관여하는 정만호(김일우)와 윤향숙(이혜숙)의 그늘에서 숨 막혀 한다.

재혁은 엄마인 윤향숙을 CEO처럼 생각한다. "CEO 전에 네 엄마야."하고 말하는 윤향숙에게 재혁은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되묻는다. 그들은 편의에 의해 때론 부모 자식임을 내세우지만 재혁이 사업에 실패하자 가차 없이 뺨을 날리고는 "내 돈 함부로 굴리지 말라"는 엄포를 놓는 그런 CEO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인물들이다. 과장된 면이 있지만 돈과 물질 만능은 때론 자식마저 하나의 물건처럼 보게 만들기도 하나 보다. 그런 부모일수록 출신성분에 집착하는 법. 마치 물건 고르듯 출신성분을 따지는 그들에게 안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일찍이 부모가 이혼하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 안나는 어떻게든 노력해 그 기득권자들의 세계로 들어가려 하지만 그것은 출신성분이라는 꼬리표에 의해, 또 부족한 실력에 의해 좌절된다. 마치 내세울 거라곤 그것밖에 없다는 듯 끊임없이 마이클이라는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을 인정했다는 것을 자랑하는 영걸에게 안나는 "좋겠다. 마이클이 인정해줘서..."라고 자조 섞인 푸념을 내뱉는다.

'패션왕'이 태생적으로 갈라진 두 개의 삶, 즉 영걸과 가영의 가난한 청춘과 재혁과 안나의 부유한 환경의 대립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두 삶 모두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참을 보다 보면 재혁의 그 까칠함 이면에 놓여진 우수와 힘겨움이 보이고, 안나의 꼿꼿함 이면에 숨겨진 안간힘이 보인다. 이 네 명의 청춘은 지금 모두 현실에 질식 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은 뭘까. 그것은 기성세대로 대변되는 부조리들이다. 실력이 아닌 태생으로 결정되는 삶,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식의 물질 만능주의,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당연하다는 듯 밟고 서는 사회 시스템, 심지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 관계의 굴레 혹은 폭력... 이것이 진짜 '패션왕'이 대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태생과 빈부가 다른 네 명의 청춘들이 각자 위치는 달라도 마치 한 배를 탄 듯한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영걸이 은행에서 자금 대출을 하려 하자 대뜸 "담보 없어요?"하고 물으며 난색을 표하는 은행 직원. 그러자 영걸이 "중소기업 지원자금도 7천억이 풀렸다고 하는데 어디로 간 거예요?"하고 묻자 돌아오는 "고객님은 해당사항 없습니다" 라는 절망적인 답변. "그럼 저 같은 사람은 고리사채나 쓰라는 겁니까?"라고 외치는 영걸의 항변이 예사롭지가 않다. 또 정반대로 "엄마면 이래도 되는 거야?"하고 묻는 재혁의 목소리도 남달리 들린다. '패션왕'이 특별한 지점은 이 서로 다른 계급적 위치에 서 있는 청춘들이, 바로 그 청춘이라는 지점 하나로 기묘한 연대의식을 가질 때다. 재혁이 가영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이나, 영걸이 술 취한 안나의 신발을 벗겨주는 장면이, 가영과 영걸의 그 깊은 절망감을 보여주는 버스에서의 장면만큼 깊은 감흥을 주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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