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가 어딘데??’, 황량한 사막? 가득 채워진 사색거리들

사막하면 떠오르는 건 아마도 ‘황량함’이 아닐까. 아무 것도 없고 버석버석한 모래만 밟히고 씹히는 그 곳을 횡단한다는 KBS 예능 <거기가 어딘데??>의 도전은 그래서 무모해 보인다. 제아무리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것이 예능의 새 트렌드라고 하지만 사막이라는 황량한 곳을, 그것도 폭염 속에서 걸어 나가는 과정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담는다는 게 무리하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유호진 PD가 굳이 사막을 선택한 건 그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또한 넉넉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나누는 대화라면 그다지 주목되지 않을 이야기도 사막에서 걸으며 나누니 남다른 의미가 더해진다. 물론 이 곳에서 나누는 농담은 툭하면 나오는 ‘죽음’이야기와 더해져 웃음 또한 커진다. 희비극은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서로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그 이면을 더 도드라지게 하는 법이다. 사막은 그 희비극이 교차하는 공간이 되어준다. 

비워진 만큼 채워지는 것 역시 넉넉하다는 걸 가장 잘 보여주는 건 이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사막이 배경이기 때문에 유독 잘 보이는 자막들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치 있는 유머도 깔려 있지만, 사막이라는 환경 속에서 누구나 사색적일 수 있는 의미 있는 글귀들이 만들어내는 울림도 들어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마치 사막이라는 빈 원고지에 하나하나 사색의 글을 적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스스로 번지점프 티켓을 샀어도 뛸 차례가 다가오는 건 달갑지 않다.’ 이런 공감 가는 문구로 시작한 3회 분은 ‘왜 굳이 황량한 땡볕을 걸으러 온 걸까’ 같은 질문을 더하고, ‘이제 도로를 벗어나 이름 없는 땅으로 들어갈 시간’을 적어 넣은 후, ‘이제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음’이란 글귀로 이들이 드디어 사막횡단의 시작점에 들어서 있다는 걸 알린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 그림자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시각. 여정의 시작에 월프레드 세시저가 쓴 아라비아 사막 횡단기 ‘절대를 찾아서’의 한 대목이 소개된다. ‘우리 주위로는 훤히 드러난 지구의 뼈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모래에 씻겨지고 있었다’ 사막이 어떤 곳인가를 잘 드러내는 그 글귀를 통해 ‘모든 안락함’이 40킬로 저편에 있는 여정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는 것.

하지만 이러한 사막횡단이 갖는 진중한 무게감은 살짝만 뒤틀어내면 웃음으로 바뀌기도 한다. 걷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자신의 지병을 토로하는 조세호의 모습이 그렇다. 그는 자신이 ‘평발’이라고 털어놓고 이어 ‘햇볕 알레르기’가 있다는 두 번째 지병을 고백(?)한다. 걸어가야 할 길이 한참 남은 이제 시작점이기 때문에 그런 갑작스런 지병 고백은 웃음을 준다. 말하는 걸 좋아하고 힘들 때도 긍정적인 걸 먼저 떠올린다고 말하는 조세호가 잠시 후 급격히 말이 줄어든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깨알 같은 웃음을 만든다. 짐짓 비장하게 “탐험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정해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름대로 목표를(말을 못 맺음)..”이라며 무언가 명언을 할 것처럼 하다 결론을 못 맺는 조세호의 모습은 사막이 주는 진지함과 그럼에도 보여지는 현실 사이의 괴리를 드러냄으로써 사색과 웃음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

사막 횡단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모두 그 혹독한 환경에 지쳐간다. 차태현은 일행을 살짝 벗어나 모래를 피해 걷기 시작하고 배정남은 동행하는 베두인에게 알아들을 수 있을지 모를 하소연을 하고 베두인은 노래를 부르며 그 지친 환경 속에서 버텨내려 한다. 그 때 붙은 ‘사막 횡단 1시간 저마다의 방식을 찾아간다’라는 자막은 그 풍경을 설명하는 것이면서 마치 우리가 사는 삶의 이야기를 은유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사는 모습도 저렇지 않을까.

베두인이 사막 한 가운데서 기도를 하는 장면에 더해지는 ‘베두인의 삶은 무척 고되다. 이방인은 물론 그 곳에서 자란 사람에게도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그것은 삶 속의 죽음과 같다.’ 같은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말이 들어간 자막 역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삶 속의 죽음’. 우리는 인정하지 않고 마치 없는 듯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가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그것이 죽음이 아니던가.

뱀이 새를 잡아먹는 기이한 장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장면을 덧붙이기 위해 유호진 PD가 요청해 즉석에서 보여주는 조세호의 과장된 연기는 사막 한 가운데서도 유쾌한 웃음을 만든다. 해가 살짝 저물어 온도가 38도로 떨어지자 “감기 들겠다”고 말하는 지진희의 한 마디가 만드는 웃음은 ‘삶 속의 죽음’이 있지만 ‘죽음 속에 삶’ 역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온도가 내려가면서 비로소 보이는 사막의 절경에 감탄하는 출연자들과 함께 ‘사막은 가혹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곳’이라 더해진 자막 역시 저 아이러니한 희비극의 공존을 잘 표현한다. 이런 곳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사색적’이 될 수밖에 없다. 문득 지진희가 “우리가 탐험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을 때 차태현과 조세호가 내놓은 이야기가 너무나 철학적으로 다가온 건 그래서다.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잖아. 항상 사람은 생각한대로 하고 싶잖아. 계획대로 되고 싶고. 근데 계획대로 된 건 진짜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렇게 했을 때(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좀 더 기분이 좋은?” 그러자 그 이야기에 조세호가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다. “태현이 형 얘기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신인 개그맨 때는 욕심이 많았는데 일이 없으니까 자꾸 포기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 욕심을 안내봤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기회들이 또 오더라고요. 희한하게.” 

사막은 ‘평범한 사람도 사색을 하게 하는 땅’이다. 또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온 대신 신비로운 오후가 자리를 채우는’ 곳이다. “당연히 모래밭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물이 있고 풀이 있고 나무도 있었다”며 놀랍다는 지진희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시청자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느끼는 대목 그대로다. 사막은 황량하고 텅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그 곳은 더 많은 사색거리와 이야기들을 채워주고 있으니.(사진:KBS)

변화 없는 주말예능, ‘두니아’가 가져온 신박한 낯설음

적어도 새로움 하나만으로 보면 MBC 새 주말예능 <두니아>의 실험은 독보적이다. 그건 그 시간대의 지상파 주말예능들과 비교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KBS <1박2일>, SBS <런닝맨>은 한 마디로 장수예능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한 시대를 지나왔고,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 MBC <복면가왕> 역시 이제는 오래된 트렌드인 육아예능과 음악예능이다. 새로 시작한 SBS <집사부일체>가 그나마 이 시대의 스승을 찾아가 이런 저런 체험과 이야기를 나누는 새 프로그램이지만, 그 형식이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두니아>는 다르다. ‘언리얼’을 주창한 것처럼, 이 예능 프로그램은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새롭다. 물론 그 낯설음은 “도대체 저게 뭐지?”하고 물을 정도로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난 세계’라는 부제는 이 프로그램이 스스로 그 낯설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건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실로 처음 만난 세계처럼 익숙하지 않다. 

그 이유는 단지 도시에서 지내던 이들이 문득 두니아라는 곳으로 워프하게 되고 그 곳에서 생존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유노윤호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정혜성은 광화문 광장에서, 우주소녀 루다는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권현빈은 PC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두니아라는 곳으로 소환된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설정일 수밖에 없다. 그들이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져서 겪는 일정 부분의 일들은 실제가 아닌 연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연기가 미묘하게 실제와 연관되어 있다. 두니아라는 공간에 떨어지게 되고 저 나름대로 거기서 살아나가야 하며 어느 공간으로 이동해 다른 이들과 합류해야 한다는 것이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인위적인 설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면 나머지 부분은 그들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바로 이 채워야 되는 경험적 부분들은 연기가 아닌 실제 리액션이 담겨지게 된다. 

프로그램이 미적 형식으로 차용하고 있는 게임의 틀은 바로 이런 가상과 현실이 더해진 두니아라는 공간이 바로 게임 속이라는 걸 드러내준다. 아마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대단히 낯설게 다가왔을 두니아라는 공간은, 게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그리 낯설지만은 않았을 게다. 결국 게임이라는 것이 가상공간을 스스로 인정함으로써 몰입이 가능한 것이고, 그 안에서 하는 자신의 행위는 일정한 목표는 정해져 있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리얼한 일들이 아닌가. 

<두니아>는 그 낯설음을 상쇄시키기 위해 첫 회부터 마치 게임을 연상시키는 자막과 편집을 연출의 틀로 제시했다. 마치 AI 모드가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출연자가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자막이 다소 ‘병맛 코드’의 유머 섞인 멘트들을 덧붙인다. 자신을 보호할 나무 하나를 구하는 것도 아이템을 얻는 게임 속 방식으로 편집되어 보여지고, 심지어 멘트 없이 탐험에만 열중하는 권현빈에게는 ‘방송분량’을 걱정하는 자막이 더해진다.

<두니아>의 세계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런 게임 속 세상을 경험하면서 느끼던 감정들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면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을 오고간다. 가상의 세계에 몰입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몰입하는 자신을 현실적으로 바라보며 다른 유저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노윤호가 보여주는 과한 몰입에 연기와 실제가 섞여있다는 걸 보여주는 자막이 그렇다. 리얼한 상황 속에서 언리얼한 개입이 들어갔을 때 웃음이 터지고, 또 언리얼한 상황이지만 과하게 리얼한 몰입을 하는 출연자에게서 웃음이 터지는 이유다.

물론 이 ‘처음 만난 세계’는 지상파 예능들의 현 주소라고 할 수 있는 주말예능 시간대에서 더더욱 이질적인 존재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런 점은 첫 방 시청률 3.5%라는 수치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새로운 세계가 변화 없는 주말예능에 ‘돌연변이’ 같은 신박한 자극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과연 시청자들은 이 실험에 손을 들어줄까. 처음엔 낯설어도 기꺼이 적응기를 가지며 즐거움을 찾아내줄까. 대부분의 게임 적응기가 초반엔 어색하지만 차츰 몰입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찾아주듯이.(사진:MBC)

'전참시' 방송 파문, 제작진 몰랐다는 게 면죄부 될 순 없다

과연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제작진은 사전에 몰랐던 것일까. 예능 프로그램에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 ‘조미료’처럼 편집되어 들어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보고 또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장면이 예능 프로그램이 만들어내려는 웃음의 재료로 쓰였다니. 어떤 변명을 해도 상식적으로 결코 납득될 수 없는 일이다.

이 비상식적인 장면은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영자가 어묵을 먹는 장면에 삽입되었다. 마치 속보라도 들어온 것처럼 뉴스 보도 장면에 ‘[속보] 이영자 어묵 먹다 말고 충격 고백’이라는 자막이 붙여 웃음을 주려 했던 것이었다. 보도 앵커 뒤편에 담겨진 세월호 침몰 장면은 블러 처리되어 있었지만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하필이면 어묵을 먹는 장면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대중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어묵은 일베 일부 회원이 세월호 희생자분들을 모욕하는데 활용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대중들은 MBC에 일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다. 

이미 해당 장면이 블러 처리되었다는 사실과 일베를 연상케 하는 어묵 장면에 삽입됐다는 점은 제작진이 사전에 알고 한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냐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제작진은 해당 장면을 ‘자료 영상을 담당하는 직원으로부터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했다. 즉 제작진은 그 장면이 세월호 참사 보도 장면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사과와 함께 ‘삭제조치’ 그리고 향후 이 문제를 MBC 내부에서 엄밀히 조사해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 아무리 모자이크 상태로 제공 받은 것이라고 해도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 역시 책임을 모면하기는 어려운 일이 된다. 편집과 자막은 결국 최종 제작진의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택에는 그 자료의 선별과정 또한 포함되는 일이다. 파문이 커지자 MBC 최승호 사장이 직접 SNS에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사과드린다”는 글을 게재했다. 또 “관련자의 책임을 묻고 유사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방지책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일베 논란을 일으킨 많은 사건들이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 바 있다. 그 때마다 방송사들은 내부적인 책임자 처벌과 향후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자체 검증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검증 시스템은 늘 구멍을 보여왔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렇게 된 건 방송, 특히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 ‘자료화면’을 통한 편집이 갈수록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특히 ‘관찰카메라’ 형식이 이제 대세로 자리 잡은 예능 프로그램은, 현장에서 찍어온 영상을 어떻게 편집하고 자막을 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질감의 웃음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보이게 됐다. 평범한 장면도 편집을 통한 일종의 ‘조미료 치기’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게 된 것.

문제는 이게 과도해질 때다. 적절한 조미료야 원 재료의 맛을 돋워줄 수 있지만, 아예 조미료만으로 맛을 낼 때는 과한 인위적인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런 조미료에 대한 강박은 이번 사건 같은 말 그대로의 ‘방송 참사’가 빚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는 건 이제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방송 프로그램의 성패를 결정짓는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편집과 자막이 사실상 그 프로그램의 생사를 가르는 일이 된 지금, 그 검증에도 그만한 인력과 노력이 투여되고 있는지 반드시 점검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과도한 편집과 자막에 대한 강박 역시 결국은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지적 참견 시점>처럼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그렇다.(사진:MBC)

'신년토론' 전원책 후폭풍 왜 생겨난 걸까

 

시청률 11.8%. 이 수치만 봐도 신년을 맞아 JTBC가 마련한 신년특집 대토론 2017년 한국 어디로 가나는 분명 성공적인 기획이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 토론 자리에 이재명 성남시장과 유승민 개혁보수신당 의원을 앉힌 행보는 여러모로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의미 있는 포석이었다고 보인다. 떠오르는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그들의 JTBC 토론 프로그램 출연은 다른 대선 주자들의 출연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신년특집 대토론(사진출처:JTBC)'

하지만 시청률면에서도 또 향후 대선 정국을 앞두고 내놓은 좋은 포석의 기획면에서도 괜찮다 여겨졌던 이 특집 프로그램은 또한 방송 이후 꽤 큰 후폭풍을 낳았다. 그것은 전원책 변호사의 막무가내식 토론 태도에서 빚어진 일이었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답답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사이다 예능으로 급부상한 <썰전>의 주역인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가 토론에 함께 참여한다는 소식은 그것만으로도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지만 어째 방송에서 보여주는 전원책 변호사의 모습은 <썰전>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거침없는 언변이야 <썰전> 그대로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방의 말을 막거나 끊고 자기 할 말은 누가 뭐래도 끝까지 하는 모습은 모두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조차 전 변호사님!”을 여러 차례 외치다 듣지도 않는 모습에 실소를 터트렸고, 유시민 작가는 역시 여러 번 <썰전>을 통해 전 변호사의 그런 모습에 익숙하다는 듯 능숙하게 진짜 보수는 잘 안 듣는구나, 그런 오해를 유발하게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신년토론에서 전 변호사가 한 이야기들은 그 내용만으로는 문제될 것이 별로 없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날카롭게 이른바 대선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할 수 있는 질문들이 던져지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은 이런 내용들만을 보여주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말에 담겨진 매너와 태도다. 시청자들은 전원책 변호사의 일방통행식 토론 태도를 보고는 비난을 쏟아냈다. 심지어 <썰전>의 시청자게시판에는 하차 요구가 빗발쳤다.

 

이렇게 된 건 물론 전원책 변호사가 이번 신년토론에서 무언가 다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 아니다. 다만 신년토론<썰전>이 방송 형식 자체가 다른데다, 생방송과 편집의 차이가 극명하게 다른 느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썰전>은 시사를 다루지만 그렇다고 형식 자체가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다. 예능이라는 형식으로 시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다소 과한 표현들이나 유머들도 모두 수용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썰전>의 편집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이슈들이 쏟아져 나와 추가촬영이 계속 이어지자 전원책 변호사는 생방송을 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그 때 김구라는 일언지하에 그건 불가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어느 정도 편집이 되어야 방송이 그나마 어떤 균형점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김구라는 베테랑 방송인답게 알아차리고 있었을 것이다.

 

편집은 다소 부적절한 말들이나 너무 오래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모양새들을 잘라내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막과 CG까지 사용해서 거기 앉아 있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단두대같은 발언으로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서 시청자들을 속 시원하게 해주었지만 그런 발언이 아무런 편집과정 없이 그냥 내보내지면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썰전>은 이렇게 예능이라는 틀과 편집이라는 마법을 부릴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신년토론은 그런 장치를 걷어내 버림으로써 그 민낯을 보여준 셈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전원책 변호사는 예전 MBC <100분토론>에 나왔을 때도 여전히 일방통행식의 토론 태도를 보였었다는 시청자들의 새삼스런 반응들이 나왔다.

 

신년토론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썰전>의 실체를 제대로 보여준 면이 있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예능적인 편집이 얼마나 토론자들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드러내줬다는 것이다(이러한 이미지 세탁 논란은 예전 강용석 변호사가 나왔을 때도 그런 지적들이 있었다). 항간에서는 그래도 전원책 변호사와 합을 맞춰가는 유시민 작가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지더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신년토론의 후폭풍을 경험한 시청자들로서는 <썰전>이 다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방송도 교과서도 편집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까닭

 

인터넷으로 방영된 편집되기 전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보지 못한 터라 이은결이 했다는 그 국정교과서 풍자 마술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사에 나온 내용을 보면 이 마술이 직접적으로 국정교과서를 표적으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어도 꽤 의미심장했다는 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영국의 역사학자 케이스 젠킨스가 쓴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책을 들고 나와 방송작가에게 책의 페이지를 임의로 고르게 한 후 책을 덮는다. 그 때 옆에 있던 보조 마술사 두 명이 책을 펼쳤다 덮었다 하면서 그 와중에 작가가 고른 페이지를 찢으려 한다. 이은결은 이들을 제지하며 이런 거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단 말이야라고 말한다. 나중에 다시 책을 확인한 작가는 자신이 골랐던 페이지가 찢겨져 보조마술사들의 오리가 낳은 알 속에 구겨진 모습으로 들어있는 걸 알게 된다.

 

이 편집된 방송분량을 새정치민주연합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풍자로 해석했다. 따라서 이런 편집이 현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식 논평했고 국정교과서 풍자로 이은결의 마술이 편집된 것이라면 이제 정부는 시청자들이 보고 즐기는 예능 프로그램의 국정화에도 나서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MBC는 이런 주장이 근거 없는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MBC이은결 씨의 마술이 담긴 해당 영상은 책의 페이지를 알아맞히는 것으로, 보는 사람에 따라 자유롭게 해석하고 즐길 수 있는 장면이었고 따라서 유독 국정교과서 풍자로만 해석돼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영상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MBC의 공식입장에도 애매한 점이 있다. ‘역사책이 아닌 이라고 표현된 점은 아무래도 이 마술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풍자로 비춰지는 걸 저어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MBC도 이 마술이 국정교과서 풍자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걸 단호하게 부정하지는 않는 모양새다. 즉 공식입장의 내용은 국정교과서 풍자가 아니라는 얘기가 아니라 유독 국정교과서 풍자로만해석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데 유독 국정교과서 풍자로만몰아가는 것에 유감을 표한 것이다. MBC의 입장대로 그 마술을 굳이 국정교과서 풍자로만 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또 거꾸로의 논리도 타당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왜 그 마술을 국정교과서 풍자로 보면 안 되는가. 그렇게 보면 큰 일 날 일이라도 있는가.

 

MBC는 편집의 이유에 대해서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느냐 아니냐에 따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 편집문제를 제기한 시청자들은 거꾸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 편집된 부분이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장면을 통편집한 것이 의아해서 문제제기를 했을 수 있다.

 

 

결국 이것은 방송이 결국 누구의 것인가의 문제일 수 있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의 프로그램이니 그 편집권은 MBC의 고유권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그런 권한이 주어졌다고 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편집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사 그걸 원하는 시청자가 소수라 편집했고 그래서 그들의 문제제기가 나왔다고 해도 그것 또한 수용해야 하는 게 방송사가 해야할 일이 아니냐고.

 

그래서 사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이은결 방송 분량 편집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편집에 의해 나타나는 반응들과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대중들의 우려, 그리고 나아가 편집이라는 권력이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더 중요하다.

 

흥미로운 건 이 사안에서 우리는 세 가지 종류의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하게 된다. 그 첫 번째는 이은결의 마술 속에 등장하는 특정 페이지를 사라지게 하는편집이다. 두 번째는 이 교과서 국정화를 풍자했다고 얘기되는 장면의 통편집이다. 세 번째는 이 사안의 밑바탕을 제공하고 있는 국정교과서가 갖고 있는 편집의 이미지다.

 

안타깝게도 인터넷 방송에서는 분명히 나왔던 그 역사책을 갖고 하는 이은결의 마술 분량을 많은 이들은 보지 못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풍자를 어떤 방식으로 담은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자 오히려 이야기가 분분해진다. 왜 그걸 편집했냐는 말들이 나온다. 하나로 국정화하며 편집될 수 있는 어떤 것들은 결국 이번 <마리텔> 사안이 보여주는 것처럼 오히려 많은 말들과 대결들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이것은 방송 프로그램이든 교과서든 편집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더 폰>, SF 스릴러가 이렇게 토착적인 느낌을 주는 까닭

 

우리에게 SF 스릴러는 어딘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어울리는 어떤 것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그만큼 많이 시도되지도 않았고 시도됐다고 해도 할리우드를 따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더 폰>은 적어도 이런 전형적인 궤도에서는 벗어나 있다. 꽤 촘촘히 짜여진 구성으로 SF와 스릴러가 잘 엮어져 있는데다가 시간을 중첩시키는 편집도 괜찮다.

 


사진출처:영화<더 폰>

하지만 무엇보다 <더 폰>의 성취라고 한다면 SF 스릴러라는 낯선 장르가 꽤 토착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청계천과 종로 뒷골목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는 우리네 정서를 자극하는 범죄물의 코드들이 담겨져 있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끈끈함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이런 토착적인 느낌은 이 영화에 대한 몰입을 높여준다.

 

<더 폰>의 설정은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해외의 SF 스릴러물이나 국내의 웹툰 등에서 종종 봐왔던 시간의 중첩(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적인 장치다. 1년 전 살해당한 아내 연수(엄지원)에게 1년 후 전화가 오면서 그 남편 고동호(손현주)가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려고 뛰고 또 뛰는 것. 이렇게 한 줄로 설명하면 어딘가 뻔해 보이지만 실제 영화는 훨씬 더 긴박감이 넘친다. 게다가 이 첫 번째 SF 설정은 이야기가 진전되어가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변주하며 반전에 반전을 일으킨다.

 

과거의 결과가 바로 현재에 변화를 준다는 점에서 그 교차 편집은 이 영화가 가진 스릴러의 긴박감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즉 과거의 일들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현재 어떤 일들을 해야할 것인가 하는 점과, 과거의 일로 인해 현재 겪게될 것들을 어떻게 미연에 방지해낼 것인가 하는 점들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편집을 통해 효과적으로 중첩되어 있다는 점이다. 클라이맥스의 액션 역시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며 벌어진다는 점에서 그 효과도 두 배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요소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만드는 건 부부인 연수와 고동호가 전화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어떻게든 복원해내려고 하는 가족이라는 틀이다. 이들은 1년 이라는 시간으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도우며 자신을 대신 희생하려고까지 한다. 그러면서 차츰 깨닫는 건 평상 시 자신이 소홀해왔던 가족의 소중함이다.

 

<더 폰>이라는 한국형 SF 스릴러를 이처럼 토착적인 느낌으로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연기자는 단연 손현주다. 이미 드라마 <추적자>를 통해 가족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가장연기로 한국의 리암 니슨이라는 별칭을 얻은 그가 아닌가. 평범했던 가장이 점점 사건 속으로 깊숙이 뛰어들어 살인자와 대적해가는 과정은 손현주라는 배우에 의해 훨씬 더 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졌다.

 

사실 SF와 스릴러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거기에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저 무리한 장르의 퓨전만이 아니고 꽤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고 그것이 효과적인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역시 손현주라는 믿고 보는 배우가 있다



<프로듀사>가 멜로를 풀어가는 신선한 방식

 

편집은 포기다.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중 더 좋은 걸 선택해야 하니까. 둘 다 가질 순 없는 거다. 욕심 부리다가 둘 다 잃을 수 있다.” KBS <프로듀사>에서 준모(차태현)의 이 대사는 편집에 빗대어 예진(공효진)을 생각하는 그의 속내가 들어 있다. 술에 취해 얼떨결에 사랑고백을 해버린 예진에게 자신도 취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억의 자체편집이었던 것.

 

'프로듀사(사진출처:KBS)'

한편 예진 역시 준모가 그 날의 자신의 사랑고백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드러낸 속내에 준모가 거절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승찬(김수현)은 굳이 준모가 예진의 말을 기억하느냐 안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만일 그 말이 진심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고, 거짓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졌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승찬 역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그날 예진에게 준모가 집에 가자고 하자 술에 취해 예진 선배가 좋아한다잖아요. 그러니까 둘만 보내기 싫어.”라고 에둘러 예진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드러냈다. 결국 그 날의 술자리는 세 사람의 숨기고 있던 속마음이 모두 드러난 자리였다. 예진은 준모를 좋아하고 있었고, 준모는 우정 관계를 넘어서는 예진의 마음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승찬은 예진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구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프로듀사>가 편집과 기억의 문제를 가져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흥미롭다. 즉 방송 편집이 많은 촬영분들 속에서 어떤 건 살리고 어떤 죽이는 그 선별작업을 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기억의 편집을 통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날의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 기억을 끊는다. 속내는 그게 아니지만 그걸 기억해냈을 때 상대방과의 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편안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던가 아니면 불안해도 진실된 속내를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던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이 편집된 기억들은 그래서 앞으로 <프로듀사>가 나아갈 관계의 부딪침을 예고한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숨겨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건의 촉발지점이 생겨나면 그렇게 숨겨 놓았던 편집된 감정은 밖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의 관계에 덧붙여 신디(아이유)가 조금씩 승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프로듀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나온다. 즉 멜로구도가 팽팽해질수록 또 장면 장면이 <개콘>보다 빵빵 터질수록 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진 정석이라는 점에서 바뀔 수 없는 드라마 문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식적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지는 건 그 식상한 틀을 어떻게 신선하게 풀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예능 PD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프로듀사>가 사랑의 문제를 방송 편집을 소재로 풀어낸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그것은 이 PD라는 일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편집관을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게 해주고 그들의 관계를 또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사>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건 이처럼 예능 PD라는 직군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들 방식으로 전해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민감한 세금문제, 정서적 지지가 관건인 <삼시세끼>에는 큰 부담

 

장근석의 세금신고누락 관련 보도에 관해 소속사에 확인해 본 결과 고의성은 없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하여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라는 해명을 들었다. 하지만 제작진은 장근석이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시기상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해 장근석 측과 합의해 프로그램 하차를 결정했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삼시세끼> 하차를 결정한 tvN측의 이야기 속에는 제작진의 고충이 엿보인다. <삼시세끼> 어촌편은 이미 몇몇 티저 예고들을 통해 확인된 것처럼 이미 시작 전부터 대중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터져 나온 장근석의 세금 논란은 이 모든 열광의 불씨를 순식간에 꺼버릴 수 있는 문제로 다가왔다.

 

이미 찍어놓은 분량에서 장근석만을 편집해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삼시세끼>는 무엇보다 인물들 간의 관계와 거기서 발생하는 정서적인 교감이 절대적인 프로그램이다.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프로그램 콘셉트가 아니기 때문에 이 방송 편집의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프로그램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들어낸 제작진들 입장에서는 작품을 스스로 망가뜨려야 하는 상황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영석 PD는 장근석의 하차를 결정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대중들에게는 민감하게 다가오는 세금문제가 정서적인 지지가 관건일 수밖에 없는 <삼시세끼>에는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거라는 걸 그 역시 똑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나영석 PD<삼시세끼>는 강원도편이 그랬던 것처럼 정서적 지지가 프로그램의 전제가 되고 그 위에 재미요소들을 얹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러니 이 기반이 되는 정서적 지지가 깨진다면 재미요소는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장근석의 세금누락관련 사안은 tvN측이 밝힌 것처럼 법적인 문제를 동반하는 사건은 아니다. ‘이미 과징금을 납부해 법적인 책임 없이 완료가 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들의 정서는 법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움직인다. 물론 장근석의 소속사인 트리제이컴퍼니측은 이 사안이 장근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회사의 회계상 오류로 발생한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도 납득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제작진은 이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시기상 적합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나영석 PD 특유의 보편타당한 시선이 느껴진다. 나영석 PD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있어서 대중들의 눈높이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연출자다. 그의 프로그램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힘도 여기서 나온다. 끊임없이 대중들의 생각과 공감하려는 노력.

 

그러니 장근석의 세금 논란을 대하는 대중적인 정서가 결코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나영석 PD가 첫 방송 하루를 앞두고 하차라는 결정을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재편집 때문에 한 주가 늦춰지게 되었고, 또 편집을 하게 되면 그만한 프로그램의 손실을 겪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나영석 PD는 대중들과의 지속적인 공감대를 지키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들 입장에서도 지지할만한 선택임은 분명하다.

 

<백년손님> 어쩌다 이미지 세탁 방송처럼 보이게 됐나

 

우려하던 상황이 결국 벌어졌다. <백년손님-자기야(이하 백년손님)>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로 논란을 겪은 함익병의 방송분량을 편집 없이 내보냈다. 이런 징조는 이미 이날 오전 지난 회 재방송분에서도 함익병 분량이 그대로 나가면서 어느 정도는 예측된 일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은 예고편에 함익병이 등장하지 않아 본방에서는 빠지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했던 게 사실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백년손님 자기야(사진출처:SBS)'

사실 제작진 입장에서는 방송 그 자체가 문제될 게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터다. 방송에서 생긴 불미스런 사건도 아니고 함익병 개인이 한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내놓은 말 몇 마디가 만들어낸 논란이니 말이다. 그러니 <백년손님>측은 인터뷰는 인터뷰이고 방송은 방송일 뿐이라는 입장을 가질 수도 있을 게다. 또한 발언이 비상식적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이야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개인적인 생각을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얘기하는 것은 자유지만, 매체와의 공공연한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그는 이미 방송인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인이라면 혼자 몸이 아니다. 자신의 발언은 방송에도 영향을 미치고 또한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미 들끓는 논란으로 인해 <백년손님>의 게시판은 이미 논쟁의 장이 되어 버렸다.

 

잘 먹고 살 수 있다면 독재도 나쁘지 않다는 식의 발언이나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은 권리의 4분의 3만 행사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파격을 넘어 파괴적이다. 왜 잘 나가던 함익병이 이런 발언을 매체를 통해 내놨는가에 대한 추측들도 쏟아져 나온다. 다분히 그의 파괴적인 발언들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래서일까. 항간에는 함익병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는 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만일 함익병이 방송으로 얻은 이미지를 통해 정치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의도치 않게 방송은 그에게 이용당한 꼴이 된다. 하지만 이것은 조금은 과장된 예측일 것이다. 정치에 뜻을 둔 사람이 대중들의 마음에 공분을 터트리는 발언을 굳이 해야 했을까. 그것도 국민사위라고 불릴 정도로 긍정적인 방송의 모습을 통해 그를 지지해왔던 여성들을 무참히 배반하는 이야기를?

 

제 아무리 방송의 책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백년손님>이 함익병의 방송분량을 편집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백년손님>을 일종의 이미지 세탁방송으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편집 없이 방영된 <백년손님>에서 함익병은 장모와 함께 댄스타임을 갖기도 했고 고장 난 옷장을 손보기도 했다. 이 장면만 본 사람이라면 그가 어떻게 여성의 권리 운운하는 발언을 했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함익병 논란을 정면 돌파 하려는 <백년손님>의 용감함은 자칫 프로그램 전체를 이미지 세탁 방송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이미 다른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방송이 내보내는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굳이 방송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발언을 통해 확인된 이미지가 이처럼 다른 인물을 고집하는 것은 방송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이것은 프로그램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함익병 논란은 그 사안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리얼리티 프로그램 트렌드에서 계속 생겨날 수 있는 일의 전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제 아무리 일반인이라고 해도 방송에 노출되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순간부터 방송인이라는 책임이 지워질 수밖에 없다. 고정적인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그의 일상에서의 행동이나 말 한 마디가 그대로 해당 방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박' 대체 인력으로 충분? 시청자가 바보인가

 

KBS는 정녕 방송이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노조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도, 여전히 "아무 문제없다"는 식의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제작인력이 빠져나갔다고 해도 대체 인력이 충분하다는 얘기이고, 이 말은 지금 현재 파업을 하는 PD들은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킬 수도 있다는 얘기다.

 

 

'1박2일'(사진출처:KBS)

여기에는 KBS가 인력을 보는 시선이 담겨져 있다. 방송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고, 따라서 PD가 몇 명 빠진다고 해도 시스템이 공고한 한에는 프로그램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생각. 하지만 과연 그럴까. '1박2일'은 아마도 이 KBS의 잘못된 인력 운용의 대표적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1박2일'을 초기 만들었던 이명한 PD가 CJ로 간 후(그가 간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KBS의 처우와 관련이 있다), 프로그램이 잘 될 수 있었던 것은 애초부터 실질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영석 PD와 이우정 작가가 '1박2일'에서 빠져나가고, 또 은지원과 이승기가 멤버에서 빠진 상황에서도 KBS측은 '1박2일'이 건재할 거라는 낙관론을 고수했다.

 

최재형 PD 체제로 꾸려진 '1박2일'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지만 실상 예전과 비교해보면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다. 백아도에 갑작스런 기상악화로 고립되게 되자 해경경비함에 구조요청을 한 것은 큰 구설수를 만들었다. 그래도 새로운 '1박2일'이 여전히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거기 새로운 멤버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차태현은 그 중심에 있었고, 김승우도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1박2일'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나영석 PD 체제에서 최재형 PD 체제로 넘어오면서 느껴지던 아쉬움은, 최PD마저 파업으로 빠져나간 상태에서 일부 편집 인력에게 맡겨지면서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냈다. 전남 강진에서의 추격전(?)은 '추노'를 패러디한 것처럼 편집되었지만, 오히려 '런닝맨'을 따라한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심리전이라고 포장되었지만 지루하게 보여지는 자동차 추격전의 영상은 차 안에 거의 머물러 있어서 답답하게만 느껴졌고, '1박2일'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여행지를 간과하는 우를 범했다.

 

이 전남 강진 편이 본래 2회 분량에서 3회 분량으로 편집될 거라는 KBS측의 발표는 왜 이 첫 회의 추격전이 이토록 지루하게 보여졌던가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었다. 즉 분량 늘리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란 얘기다. 전남 강진 편을 본 시청자들이 "이럴 바엔 차라리 스페셜 방송을 해라"라고 얘기하는 반면, 어떻게든 건재함을 보이려 그저 방송 분량을 뽑아내는 식의 대처방식은 '1박2일'이라는 브랜드에는 치명적인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대충 만들어도 '1박2일'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볼 것인가. 제작진들이 그토록 많은 카메라로 엄청난 양의 영상을 찍는 것은 양을 확보하기 위함이 아니고, 선별을 통한 질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질을 위한 양을 양으로만 활용하면서, 여전히 좋은 시청률 운운하며 전혀 차질은 없다고 말하는 태도는 어찌 보면 시청자를 너무 가볍게 보는 처사라고 생각된다. 작금의 '1박2일'이 보여주는 인력 운용의 문제는 그래서 KBS의 파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식의 인력 운용은 결국 KBS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방송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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