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와 안아줘’가 담은 2차 피해 문제, 현실도 마찬가지

그들의 진짜 이름은 나무와 낙원이었다. 나무는 진짜 그 이름처럼 낙원을 위해 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윤희재(허준호)라는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때문에 늘 지옥에서 살아가던 나무에게 낙원은 역시 그 이름처럼 유일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꺾어지고 낙원이 지옥이 되는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윤희재는 낙원의 부모를 살해했고 낙원까지 죽이려 했지만 나무가 막아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윤희재는 체포되었지만 과연 그걸로 끝이었을까. 가해자가 잡혔지만 피해자들은 결코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무와 낙원은 그래서 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무는 채도진(장기용)으로 낙원은 한재이(진기주)로 살아가려 하지만 비정한 세상은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가 심상찮다.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눈물과 분노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장면들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살인자의 아들인 채도진과 그 살인자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가서도 참회록이랍시며 자서전을 써서 장사를 하며 버젓이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는 언론의 2차 피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들을 담았다. 

최근 미투 운동과 더불어 더 자주 등장한 것이지만 ‘2차 피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적지 않게 등장했던 일들이었다. <이리와 안아줘>가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그 2차 피해를 촉발하는 건 당장 이슈에만 눈이 먼 언론들이다. 윤희재의 자서전을 출간한 인물이 한 시사잡지 기자이고, 어떻게든 과거를 파내 이름까지 바꿔가며 살아가는 채도진과 한재이를 끝내 대중들 앞에 발가벗기고 다시 그 지우고 싶은 과거를 끄집어낸 이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 2차 피해는 윤희재가 살인마인 줄 모르고 결혼하며 살다 결국 사실을 알고는 딸과 도망친 채옥희(서정연)와 채소진(최리)에게도 벌어진다. 섬에 들어가 조용히 식당을 하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윤희재 자서전의 수입이 가족들에게 갈 것이라는 허위보도가 나오면서 이들은 다시 과거 윤희재의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해자는 웃으며 추억처럼 과거의 살인을 회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끝없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 이건 지금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이리와 안아줘>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다시 읽힌다. 그저 청춘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목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따뜻한 포옹을 해줄 수는 없냐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채도진과 한재이는 그 어린 시절 끔찍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안아준 적이 있다. 사건현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나무에게 낙원은 다가가 원망을 하기보다는 끌어안아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살아남으라”고 말해주었다. 

나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도망치는 채옥희와 채소진에게 “잘 가라”고 “멀리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다. 채옥희는 두려움 때문에 딸을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어린 아이가 지옥 속에 서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를 도망치게 했지만 정작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버텨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나무처럼.

어째서 한재이 같은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안아주지 못할까. 다만 그가 살해당한 유명배우의 딸이라는 사실을 유포해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는 그 안간힘을 밟아버릴까.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가 겪는 2차 피해의 굴레 속에서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는 살벌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이 그토록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런 비정한 현실을 그들의 사랑에서 더더욱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사진:MBC)

'라이브', 배종옥의 한숨에 깊이 공감하는 까닭

술만 마시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부인한다. 당장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폭력 때문에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집은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도망치고픈 지옥일 뿐이다. 이제 신입경찰 한정오(정유미)는 어떻게든 설득해 그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이라도 지켜주고 싶지만,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가 최근 보여주는 사건들은 사실 너무 끔찍해 계속 들여다보기가 힘들 정도다. 피해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은 피해사실을 숨긴다. 피해사실을 꺼내놓아도 당장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그 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이 아이들은 산에 갔다가 연쇄 강간범에게 강간까지 당한다. 언니는 돌에 맞아 쓰러지고 동생은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한 것.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도 피해사실을 부인한다. 집에서도 그러했듯이 피해사실을 말하고 신고해도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연거푸 경험하고는 이내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한정오는 그 강간사건이 남 일이 아니다. 자신도 과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들에게 성 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피해사실을 숨겼다. 그저 기억을 지워내려 몸을 씻고 또 씻었을 뿐이다. 강간사건을 겪은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동생의 몸을 씻어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피해사실이 사라지거나,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한참 세월이 지났어도 한정오는 여전히 그 날의 그 기억을 하나도 지워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실종된 줄 알았던 아이는 친구 집에 숨어 있었다. 알고 보니 양아버지가 아이의 몸을 만졌다는 것. 그게 싫었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이의 친구는 자기 집에 그를 숨겨주었다. 결국 양아버지는 붙잡혀 수사를 받게 됐지만 그는 과거에도 성추행 사건에 연루가 되었지만 폭행 흔적이 없다며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강남일(이시언)의 말대로 “만진 것 자체가 폭행”이지만 처벌은 받지 않게 되었던 것.

가해자는 버젓이 살아가고 피해자는 힘겨워하는 현실은 경찰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한 달여 남긴 이삼보(이얼)는 지역 유지의 아들이 촉법소년들을 사주해 벌인 폭력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그건 몸에 난 상처보다 경찰 말년에 갖게 된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결국 지구대가 전부 나서서 폭력을 저지른 촉법소년들과 유지의 아들까지 잡았지만, 그 아버지는 자신이 누군지 아냐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어린 아이들이니 선처해달라는 가해자 쪽의 변호사의 회유에 이삼보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끝까지 간다는 것. 그래서 가해자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지역 유지는 자신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맞섰다. 그런데 이삼보는 오히려 그 유지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경찰인 자신들도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그러니 세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아이가 분노했을 거라고.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아들의 그 손을 잡아주라는 것이었다.

이삼보는 그렇게 그 아이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그러면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사적인 감정 때문에, 복수심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진짜 따뜻한 이삼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될까. 가해자는 처벌을 받게 될까. 피해자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 수 있을까. 어찌 된 일인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버린 분통터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단지 이건 감정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도대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또 다시 생겨날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게 되자, 오히려 강간범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안장미(배종옥)의 한숨이 더 깊은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예쁜 누나’, 달달한 멜로 속에 담긴 날카로운 현실인식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놀랍다. 멜로드라마로서의 가슴 설렘은 심지어 ‘내가 연애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달달하지만, 그 배경으로 담겨진 현실인식에서는 심지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정서까지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저 편안하게 볼 때는 ‘무뎌진 연애 감각’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듯한 설렘을 주지만, 그러다 문득 이 드라마가 끄집어내는 현실의 단면들은 베일 듯한 날카로움으로 둔감해진 이성의 고삐를 잡아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어떻게 이런 달달함과 날카로움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병치해낼 수 있었을까.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꽁냥꽁냥하고 풋풋한 애정행각에 눈 멀고 귀 멀게 만드는 게 이 드라마가 주는 놀라운 매력이지만, 그 매력을 살짝 뒤로 밀어두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을 들여다보자. 윤진아가 처한 현실은 어찌 보면 우리네 30대 중반의 직장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다. 한 번쯤은 진상 남자친구로부터 호된 이별 후유증을 겪었을 수 있고, 직장 내에서 억울하게 책임을 떠안거나 때로는 회식자리에 불려나가 상사의 질척거림에 소름이 돋았을 수 있다. 

30대 중반의 직장여성이라면 누구나 겼었을 지도 모르는 그 일들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연한 범죄다. 바람을 피운 게 들통 나 이별하게 된 남자친구 이규민(오륭)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갈수록 집착이 더해져 스토킹을 하는 건 심각한 일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사귀던 시절 찍었던 내밀한 그들만의 사진들을 꽃바구니에 동봉한 편지 속에 담아 보내오는 인간이다. 그건 다른 시각으로 보면 최근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 사건들과 맥락이 그리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회사에서 회식 자리에 여직원들의 참석을 종용하고, 술 취해 상사들이 여직원들의 몸을 더듬고 노래방에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모습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건 ‘권력, 위계에 의한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아예 포기하고 회식 자리에 나갔던 윤진아는 그러나 서준희와 사랑을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사의 술자리 동석을 대놓고 거부한다. 그리고 그 거부한 것에 대해 질책하려 하자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달라”며 오히려 상사를 당황하게 만든다.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을 불러 고기를 구워주는 일을 시키는 것도 크게 보면 ‘권력, 위계’를 이용한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참석하기 싫은 회식에조차 사장님이 나오니 꼭 참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상사와 늘 그랬듯 윤진아를 불러 고기 굽는 일을 시키는 장면이 불편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서준희와 연애를 시작하며 달라진 윤진아는 그걸 거부하고 대신 나서려는 후배 여직원도 제지한다. 회사에서 자신을 은근히 챙겨주는 여상사인 정영인(서정연)은 그런 그에게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러고 보면 누구보다 깐깐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정영인의 모습은 그가 과거 직장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성 차별을 겪었는가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윤진아의 변화가 서준희와의 사랑을 통해 이뤄진다는 그 과정이 이 드라마가 달달한 멜로를 그려내면서도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엮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그 누구도 ‘예쁘다’고 해주지 않아 스스로 예쁘지 않은가 보다 하며 자신을 포기하고 살았던 윤진아는 서준희를 통해 드디어 자존감을 찾아낸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봐주는 눈길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그래서 지금껏 자기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던 일들이 심각한 범죄들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윤진아는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 피해자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서준희와의 멜로가 더더욱 달달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 바로 이런 윤진아라는 인물이 버텨내온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대와 연민이 밑그림으로 담겨져 있어서다. 서준희라는 인물과 그의 시선은 그래서 윤진아에 대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이런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제대로된 직시이기도 하다. 스토커 이규민과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윤승호(위하준)는 누나 윤진아에게 전화를 해 “정신 차리라고 잔소리 좀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준희가 그를 제지하며 한마디 쏘아붙인다. “정신 차릴 새끼는 따로 있는데 왜 엄한 사람한테 그래?”

미투 운동에서 우리가 흔하게 보는 장면이 가해자는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고 피해자는 고통을 감수하며 오히려 숨어 지내는 상황이다. 더 아픈 건 피해자에게 왜 그런 상황을 만들었냐고 오히려 질책을 하는 경우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놀라운 건 이런 심각한 상황들을 몇몇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누나에게 서준희라는 멋진 인물의 입을 빌어서 계속 “예쁘다”고 말해주는 그 달달한 멜로를 더더욱 지지하게 된다. 그건 개인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피해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당신은 그걸 감내해야 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사진:JTBC)

'키스', 캐릭터에 설득력 부여하는 감우성 진심 담긴 연기

과연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멜로 가능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초반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처럼 과감한 표현들과 설정들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처럼 보였다. 안순진(김선아)이 처한 힘겨운 상황들도 또 무표정의 삶을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상황도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벼움이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드라마 마지막에 살짝 들어가는 ‘에필로그’는 무언가 이 멜로드라마가 생각만큼 가벼운 건 아니라는 예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손무한의 시한부 삶이 등장하고, 안순진의 딸이 죽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부서졌던 그 일들이 소개되면서 드라마는 꽤 무거워졌다.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키스 먼저 할까요?>는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무한과 안순진의 멜로가 무거움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때론 웃음과 설렘까지 만들어내는 그 균형점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손무한이 과거 안순진이 그토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된 안순진이 그와 결혼까지 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부부가 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안순진은 먹던 걸 토해내듯 자신이 손무한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재산이 200억이고 혼인신고도 했으니 그 유산을 받아 그가 죽은 후 혼자 빈둥대며 사는 게 ‘복수’라고 말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손무한의 옆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손무한이 지금껏 안순진에게 해온 ‘아낌없이 주는 숙주의 삶’에서 느껴진 사랑의 감정을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주고 가려는 그의 마음에서 어떤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이야기 설정만을 두고 보면 굉장한 논쟁점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느 제과의 과자 때문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게 된 피해자와, 그 과자의 광고를 내놓고 사고가 난 후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가해자가, 그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접근했던 ‘실수’로 ‘계획에 없던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다. 거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정서의 장벽이 놓여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그러다 덜컥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해지는 건 가해자로서 손무한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어쩌다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손무한 역할을 연기하는 감우성은 놀라울 정도로 이런 논쟁을 무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가 아니면 이 논점 많은 멜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사진:SBS)

‘키스 먼저’가 만일 멜로 그 이상을 숨기고 있었다면

도대체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갖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일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이 안순진의 아픔을 끌어안고 결국 결혼까지 한 것이 그저 사랑 때문 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초반부터 에필로그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고, 이제 그 사건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다.

10년 전 안순진은 무슨 일인지 아이를 잃었고, 그 잃은 아이 앞에서 순진의 어머니는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묘소에서 아이를 보내는 순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손무한이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마치 우연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연루된 일로 아이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생겨난다. 

그런데 손무한의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다. 그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게 했다기보다는 그가 쓴 카피가 그걸 방조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오인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안순진이 손무한을 찾아왔던 회상 장면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아폴론 제과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애가 잘못됐는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안순진의 아이는 제과에서 나온 제품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손무한은 그 제품 광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폴론 제과와 안순진은 법정싸움을 하며 사채 빚까지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8년 전의 손무한은 냉정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법원 오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게 내 탓이냐. 차 광고 하고 사고 나면 광고 탓이냐. 아파트 광고하고 붕괴되면 우리 탓이냐. 우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거다.”라며 안순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번뜩 떠오르는 사건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잘못된 제품이지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던 건 안전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상품성만을 강조했던 광고가 일조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이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가 작동하는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은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장면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 드라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의제 또한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게 되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과정들까지를 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이 스킨십 따위는 이들의 사랑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 인간애의 차원에서 보면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혹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사진:   SBS)

‘미스티’ 김남주에게 드리워진 두 얼굴의 의미

도대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고혜란(김남주)이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괴로워하면서도 고혜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나선 남편 강태욱(지진희)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혜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감방까지 갔다온 하명우(임태경)일까. 그도 아니라면 케빈 리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입었던 그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일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추측들은 드라마 제목처럼 ‘안개 속’이다. 여기서 특히 궁금해지는 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에게 하명우의 존재를 설명하며 고교시절 금은방 사장을 살해한 이가 바로 하명우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은 진실일까. 초반에 슬쩍 나왔던 당시 상황 속에서 하명우가 고혜란에게 “넌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했던 말은 마치 고혜란의 살인을 하명우가 뒤집어쓴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고혜란이 강태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까지 한 이유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고혜란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강태욱의 희생이 점점 고혜란의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못내 아프게 느껴지며 사랑을 느끼게 되자 고혜란은 강태욱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자신의 결혼 이유가 깨졌기 때문이다. 

고혜란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걸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만일 고혜란이 과거 살인을 직접 저질렀던 인물이라면, 그래서 자신의 성공가도를 막아서는 케빈 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희대의 악녀가 맞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사랑마저도 이용하는 인물이니.

하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고혜란을 공고한 남성권력의 피해자이고, 그들 권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보여준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편견과 유리천장을 깨야 했던 그는 이제 국장 자리를 놓고 장규석(이경영)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방송국 대표와 손을 잡게 된 건 자신에게 날아온 검찰의 기소 때문이었다. 케빈 리 살인죄로 기소된 그는 대표에게 강율 로펌이 자신의 사건을 맡아 무조건 이겨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표와 강율이 고혜란을 과연 도와줄 것인가는 미지수다. 고혜란에 의해 한방을 먹은 그들은 그 권력 네트워크를 이용해 고혜란을 궁지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다. 진실보도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행동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일라고 생각하는 고혜란은 그래서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이 고혜란이 어쩌면 희대의 악녀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남성 권력과 싸우는 피해자로서 그 심경을 공감하게 되는 건 이런 양면이 이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과연 고혜란은 살인까지 저지른 희대의 악녀일까. 아니면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일까. 그 안개처럼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커리어우먼들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되는 양면적인 심경이 아닐까. 물론 극화된 이야기지만 <미스티>는 사랑도 성공도 쉽지 않은 커리어우먼들의 현실을 에둘러 담아내고 있다.(사진:JTBC)

‘그사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자식을 먼저 보낸 사고 현장을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끔찍할까.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문수(원진아)의 엄마 윤옥(윤유선)은 멀찍이 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두 손이 떨렸다. 시간이 한참 흘렀지만 그에게 사고는 마치 어제 벌어진 일인 양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러니 그 떨리는 손에 애써 술병을 쥐고 의지했을 터다.

그런 아내를 보는 남편 하동철(안내상)의 마음은 또 얼마나 참담할까. 무너진 건물 잔해더미에서 겨우 찾아낸 딸의 시신을 확인한 그는 못내 아내에게 그 마지막 모습을 보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 확인하고 딸을 떠나보냈지만 아내인 윤옥은 그게 끝내 후회로 남았다. 그 마지막 얼굴을 못보고 떠나보낸 것이.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후회한다고 했다. 그 마지막 모습을 본 것이. 

피해자의 가족은 그렇게 뭘 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회한 속에 살아간다. 어찌 보면 사고는 저 밖에서 났고 그래서 그들은 모두가 피해자지만 그 가족들마저 서로를 의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로를 보는 것이 그 아픈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힘겹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아픈 말들을 독하게 쏟아낸다. “참 속 편해 좋겠네. 어떻게...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그 누구도 멀쩡한 사람은 없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려 애쓰고 있을 뿐이다. 멀쩡하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오히려 그 아픈 상처들이 계속 끄집어내질 것으로 알고 있으니. “자네 눈에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게 멀쩡해 보여? 이 사람아 자식 잃고 멀쩡한 부모가 어딨나. 그런 일을 당하고 멀쩡한 사람이 어딨냐고?” 하동철의 이 아픈 호통은 그래서 단지 드라마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많던 사고 피해자들의 절규가 담겨져 있다. 시간이 흐르고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것도 멀쩡한 건 없다. 

그 사고 현장에서 동생을 보내고 자신만 혼자 살아남은 문수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또 죄책감과 미안한 감정을 버리지 못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술에 빠져사는 엄마와 집 나와 가게를 하며 지내는 아빠에게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가 툭 던진 그 사고가 있던 날에 대한 회한 섞인 한 마디가 못내 그 상처를 드러내게 만든다. “그 날도 그래. 그렇게 연수랑 같이 있으라고...”

동생과 꼭 같이 있으라고 했던 엄마의 그 말은 동생을 먼저 보낸 문수에게는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았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 말은 비수처럼 문수의 상처를 헤집는다. 그래서 끝내 꺼내지 말아야할 말이지만 속 깊숙이 담겨져 있던 말이 튀어나온다. “같이 있었음 나도 죽었어. 그게 더 나았겠어? 아님 연수 대신 내가 죽었으면 했어?...그 날 나랑 연수 거기로 보낸 건 엄마야. 그럼 엄마가 미안해야지? 왜 자꾸 내가 미안하게 하는데?” 그는 그 긴 시간을 미안한 감정 속에 살아오며 자신의 아픔은 저 밑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거였다.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그리는 ‘사랑’은 어쩌면 강두(이준호)와 문수와의 남녀 간의 사랑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게다. 그건 어쩌면 문수네 가족 이야기를 포함하는 것일 게다. 가족이라면 그냥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관계지만, 사고는 이 가족에게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사고 현장에서 먼저 보낸 가족의 일원이 남긴 상처가 피할 수 없는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상처.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꺼내놓는 이 남은 가족들의 상처는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에게는 계속되는 일일 것이다. 결코 우리도 잊어서는 안 되는.(사진:JTBC)

이준호·원진아가 해낸 ‘그사이’의 깊은 몰입감

제목은 <그냥 사랑하는 사이>지만 연기는 그냥 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여전히 남아있는 많은 사고 피해자 가족들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지워지지 않는 상처 앞에서는 섣부르게 웃는 것조차 감히 해서는 안 될 무례처럼 느껴진다. 그것에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면.

그래서 건물 붕괴 사고 후 생존자들이 만나 사랑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드라마에 이준호와 원진아라는 아직은 확고한 연기로서 자신을 대중들 앞에 증명해냈다고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걱정이 앞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이준호는 지난 작품인 <김과장>에서 독특한 악역 서율 역할을 해내면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 바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이돌의 잔상이 남아있는 게 사실이고, 원진아는 아직 대중들이 잘 모르는 신인이다. 어찌 기대보다 우려가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2회까지 방영된 드라마 속에서 이런 우려는 오히려 기대감으로 바뀌고 있다. 청춘의 시기가 갖는 풋풋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그 상처를 안고 어려운 현실을 버텨내는 그런 모습들이 전혀 이물감 없이 인물 속에 녹아들어서다. 이제 거꾸로 이들이 아니었으면 강두(이준호)와 문수(원진아) 역할을 그 누가 이만큼 깊은 몰입감으로 이끌어냈었을까 의구심을 갖게 될 정도다. 

그것은 이 작품의 함영훈 CP가 매체를 통해 밝힌 바대로 이들이 갖고 있는 ‘진지함’에서 비롯된다고 보인다. 강두와 문수를 연기하는 이준호와 원진아는 실로 사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그 지워지지 않는 아픈 삶 속에 온전히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온 몸에 상처투성이로 살아가고, 상처가 나지 않으면 어딘가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마구 몸을 부리는 강두는 거칠어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여린 인물처럼 느껴진다. 세상에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는 듯한 어린 마음이 그에게서는 느껴진다.

반면 가녀리게 보이지만 오히려 엄마를 챙기고 아빠를 다독이며 생활력을 보이는 문수는 굉장히 강한 성격을 갖고 있다. 물론 엘리베이터 같은 밀폐된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트라우마를 보이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고 그 아픔과 마주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문수를 강두가 구해냈을 때, 문수는 자신보다는 오히려 도로에 쓰러진 그 배달원의 안위를 더 걱정한다. 

강두와 문수가 이렇게 다른 면을 갖고 있는 건 사고 당시의 기억과도 연결되어 있다. 당시 먼저 구출된 문수가 들것에 실려 나갈 때 강두는 그 매몰된 곳에 갇혀 외치고 있었다. 거기 사람이 있다고. 누군가 다치는 것을 먼저 걱정하는 문수와 달리, 강두는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는 자기만을 생각하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강두는 문수가 궁금하다. 힘겨움 속에서도 단단하게 살아가는 그 모습이. 그리고 문수는 감두가 신경 쓰인다. 계속 상처를 입으며 살아가는 그 모습이.

이렇게 인물들의 감정과 성격 깊숙이 우리가 빠져들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이들을 연기해낸 이준호와 원진아 덕분이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만들어낸 어떤 진정성이 어쩌면 어려울 수 있는 이 역할들을 소화해낼 수 있게 했다고 보인다. 이준호라는 이제는 연기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 배우가 다시 보이고, 원진아라는 보석 같은 신인 배우가 새삼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온다.(사진:JTBC)

'파수꾼'이 제시한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단순한 방법

사실 MBC 월화드라마 <파수꾼>이라는 드라마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비리로 얼룩진 법 집행에 의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은 피해자들이 법망 바깥에서 ‘파수꾼’ 역할을 하며 법이 집행하지 않는 정의를 대신 실현해가는 이야기는 실제 벌어지기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수꾼>의 이 판타지적 이야기는 현실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검찰과 경찰이라는 사법 정의가 아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그 지점을 제대로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수꾼(사진출처:MBC)'

<파수꾼>이 그 문제의 중심으로 내세우는 인물은 이제 검찰총장 후보로 낙점을 받아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윤승로(최무성)다.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건 다름 아닌 무수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밑거름 되었다. 모진 고문을 통해 간첩으로 몰아세운 장도한(김영광)의 아버지가 그렇고, 그를 위해 증인으로 나섰다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공경수(키)의 어머니가 그러하다. 윤시완(박솔로몬)에 의해 어린 딸이 살해당했지만 그의 아버지 윤승로의 권력 앞에 오히려 도망자 신세가 된 조수지(이시영)도 마찬가지다. 

검찰총장 후보자가 되기까지 그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만들어진 무수한 피해자들. 하지만 가해자는 바로 그런 비리를 통해 더 권력의 정점으로 오르고, 피해자들은 그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아이러니. 그래서 피해자들은 장도한을 중심으로 이 모든 걸 뒤집기 위해 스스로 파수꾼이 되기로 한다. 제대로 행사되지 않는 법 정의가 탄생시킨 것이 바로 윤승로라는 괴물이다. <파수꾼>은 윤승로라는 괴물을 통해 우리네 비극적 현실의 시작이 바로 법 정의가 권력으로 사유화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걸 말한다. 

하지만 제대로 서지 못하는 사법 정의가 만든 괴물은 윤승로 하나만이 아니다. 그로 인해 비틀어진 삶을 살아가게 된 인물들이 줄줄이 생겨난다. 그의 사주로 인해 수족이 되어 고문은 물론 살인까지 저지른 비리형사 남병재(정석용)가 그렇다. 그리고 어찌 보면 윤승로의 피해자인 장도한이나 그와 함께 하는 파수꾼들인 조수지, 공경수, 서보미(김슬기) 모두 또 다른 얼굴의 괴물들이다. 

장도한은 조수지를 움직이기 위해 그녀의 딸이 윤시완에 의해 살해되는 그 상황을 방조했다고 밝혔다. 물론 그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모든 죄를 자신이 짊어지기 위해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윤승로를 잡기 위해 그가 ‘내부고발자’가 되면서까지 해온 일들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또한 사법 정의가 실현하지 못하는 일을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해킹과 도촬을 해온 공경수와 서보미도 마찬가지다. 

결국 사법정의가 제대로 서지 못한 공간에 점점 많아지는 건 괴물들이다. 제대로 된 공적 사안으로 처리되지 않는 사법정의는 비리와 사적 복수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파수꾼>이 사법정의 문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은 바로 윤승로의 아들 윤시완이라는 괴물을 통해서다. 잘못을 저질러도 윤승로가 그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해 덮어주곤 했던 아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괴물이 되어버린 것. 결국 윤승로에게 법의 단죄를 받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바로 괴물인 아들을 발견하는 일이 아닐까. 

윤승로는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검찰은 잘못을 하지 않았으며, 그것은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검찰에 대한 신뢰가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이 말은 모순이다. 신뢰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비리들이 저질러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검찰이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오히려 잘못은 인정하는 일이라고 <파수꾼>은 말하고 있다. 그것이 더 많은 괴물을 탄생시키지 않는 길이고, 거기서부터 겨우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상한 파트너’, 공적인 일과 사적인 감정 사이

“너는 인질이야. 니가 있어야 범인이 나타났을 때 내가 잡을 수 있지.” SBS 수목드라마 <수상한 파트너>에서 노지욱(지창욱)은 은봉희(남지현)를 자신의 집으로 들이며 그렇게 말한다. 변호사일도 접고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려 마음먹었던 은봉희의 마음이 흔들린다. 노지욱은 어느 날 술에 취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툭 “너 내 사람 되라”고 했던 것이 진심이라고 말한다. 

'수상한 파트너(사진출처:SBS)'

누가 봐도 이들은 밀당을 하고 있다. 여기서 ‘인질’이라는 표현은 마치 그들의 동거가 범인을 잡기 위한 공적인 일처럼 만들지만 그건 누가 봐도 동거하자는 말이다. 또 “내 사람 되라”는 말 역시 노지욱이 새로운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고 합류해서 일하자는 말이지만, 그 안에는 은봉희에게 ‘내 사람’이 되라는 사적이고 멜로적인 감정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은봉희는 ‘인질’이라는 말에 설렌다. 왜 이렇게 잘 해주냐고 묻자 “인류애”라고 했던 노지욱을 떠올리며 “인류애에서 인질로 발전했다”며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좋아한다. 이것은 <수상한 파트너>가 그리고 있는 멜로의 실체다. 거기에는 사적인 차원의 멜로와 공적인 차원의 일(변호, 진범 찾아 누명 벗기)이 겹쳐져 있다. 멜로적 상황이 나올 때마다 인물들은 그것이 그저 공적인 일일 뿐이라고 애써 부인한다. 하지만 그 공적인 일 안에서는 인물들의 사적인 감정들이 피어오른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적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 드라마가 또 한 축으로 다루고 있는 사회적 편견의 문제나 진실과 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공적 사안과 사적 감정들은 뒤엉킨다. 은봉희를 아들의 살인범으로 생각했지만 풀려나게 됐다는 사실에 분노한 지검장 장무영(김홍파)은 그 사적인 감정 때문에 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끝까지 부인하는 은봉희에게 그는 그렇다면 진범을 잡아오라고 말한다. 그는 누구든 분노를 터트릴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유명 셰프의 살해 용의자로 붙잡힌 택배 기사가 은봉희를 변호사로 지목하고, 그녀가 그의 억울한 사연을 들었을 때 그녀 역시 공적인 선을 넘어 사적인 감정으로 그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한다. 그 택배 기사의 상황이 자신이 과거 살인자로 몰려 있을 때의 처지와 너무나 똑같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때 노지욱이 자신의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었듯이 그녀는 그에게 동아줄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 그녀에게 노지욱은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라고 말한다. 장무영도 또 은봉희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 사적인 감정들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드라마의 실체는 분명 로맨틱 코미디다. 그래서 노지욱과 은봉희는 사건을 맡아 변호를 하면서도 멜로적 상황들을 놓치지 않는다. 택배기사의 변호를 하면서도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내리는 소나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사건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얼굴이 아니라 사랑에 이제 막 빠지려는 연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멜로적 상황을 일로서 슬쩍 감추는 그 방식은 오히려 이 멜로의 감정들은 더 강화시키는 힘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드라마가 진짜 살인범을 잡아 누명에서 벗어나는 목표를 갖고 있고, 또한 억울한 위치에 서 있는 이들의 변호를 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건 이러한 멜로적 상황들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공적인 입장과 사적인 감정들이 겹쳐져 일과 사랑을 명쾌하게 가르지 못하고 혼재시키는 상황들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완벽하지 못하고 어딘지 부족하지만 그것이 인간적이라고 느껴지는 그런 부분들이 생기는 것. 

그래서 <수상한 파트너>에는 그 흔한 갑을관계조차 혹은 절친들이었지만 그 안에서 벌어진 불륜으로 인해 뿔뿔이 흩어지게 된 친구들 관계에서조차 가해자와 피해자로 선악이 구분되게 그려지지 않는다. 노지욱의 모친인 홍복자(남기애)가 운영하는 피자집에 은봉희의 모친인 박영순(윤복인)이 아르바이트로 들어오자 홍복자는 이른바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상황 속에서도 박영순은 결코 만만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갑과 을의 상황은 마치 친한 친구들이 툭탁대는 모습처럼 유쾌하게 그려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오며 절친으로 지냈지만 노지욱의 여자친구와 불륜을 저질러 이제는 멀어져버린 지은혁(최태준)을 대하는 노지욱의 감정은 미움과 분노와 더불어 우정이 겹쳐져 있다. 그래서 노지욱은 지은혁을 결코 앞으로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지만 그들을 내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의 “형제”나 다름없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부족하지만 그래도 관계를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인간적이다. 

<수상한 파트너>는 온전히 로맨틱 코미디로 봐도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다. 또 진범을 찾아내고 그래서 누명을 벗는 법정드라마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이 엮어져 만들어내는 공적인 일들과 사적인 감정들의 혼재와 그 안에서 슬쩍 슬쩍 보이는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는 건 어쩌면 이 드라마만이 가진 특별한 재미가 아닐까. 그 부족하고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는 모습들이 그토록 예뻐 보일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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