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윤시윤, 오버 연기 아닌가 싶더니 차츰 정이 간다

처음에는 너무 오버하는 연기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오버하는 모습이 차츰 마음을 잡아끌더니 이제는 정이 간다.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한강호와 한수호, 1인2역을 연기하는 윤시윤 이야기다. 그가 껄렁껄렁하고 불량기 있어 보이는 한강호의 모습을 조금은 오버하는 방식으로 보여준 건 그래서 윤시윤의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이 오히려 시청자들에게는 매력으로 보여지고 있고, 또한 한수호라는 얼굴은 같아도 성격은 상반된 캐릭터와의 차별점도 만들어주고 있어서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라는 드라마의 전제는 법이 서민들과는 너무나 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억울하게 당해도 법정 안에서 오히려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 가해자들을 보며 피해자들은 더 아픈 눈물을 흘려야만 한다. 판사 시보인 송소은(이유영)은 언니 송지연(곽선영)을 성폭행한 남자가 돈의 힘으로 법을 보호막 세워 법정에서 미소를 짓는 모습을 잊지 못한다. 결국 죽으려고까지 했던 피해자 송지연을 가까스로 살려낸 송소은은 그래서 돈도 없고 힘도 없어 법 앞에 무너지는 피해자들을 그대로 넘기질 못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이든 노동자를 때려 한 쪽 눈을 실명케 한 재벌3세는 막대한 돈으로 변호인단을 꾸리고 심지어 검사, 판사까지 뇌물로 움직이려 한다. 실명한 피해자는 그러나 법에 호소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오히려 실수한 것이라 치부하고, 그의 아들 역시 그것이 아버지의 실수라고 증언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도 자신의 직장도 모두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송소은은 그런 피해자를 그냥 보고 넘길 수가 없다. 

그래서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화려한 전과의 소유자 한강호가 한수호를 대신해 판사의 자리에 앉는 이야기를 판타지로 그려낸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 벌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마음만은 따뜻한 건달에게 판사복을 입혀 서민들의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 처음 한강호는 역시 제 버릇 못주듯 돈에만 관심을 갖는다. 판사에게 제안되는 무수한 청탁들과 뇌물들. 거기에 혹하게 되는 것. 

하지만 한강호는 차츰 서민들의 편에 서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그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아가 송소은이라는 시보에게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어나는 변화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와 권력 구도와는 무관한 엉뚱한 인물이 앉아 있기 때문에 판결도 엉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엉뚱한 판결은 지금껏 법이 서민들에게 해주지 못했던 상식적인 정의의 편이다. 

한강호가 판결을 내리는 사건의 주인공들은 첫 번째가 갑질 폭행한 재벌3세이고, 두 번째가 음주에 마약을 한 채 운전을 하다 임산부를 차에 치어 사망케 한 연예인이다. 이 사건들은 대중들이 이미 현실에서도 공분을 했던 그런 류의 사건들이다. 그런데 그 현실에서 그들은 거기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을까. 한강호의 법정이 더 기대되고 흥미진진해지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한강호의 그 껄렁껄렁한 모습과 한수호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연기해내는 윤시윤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전략적인 선택이겠지만 과장된 연기를 한강호를 통해 보여주고 착 가라앉아 있는 한수호를 연기해 두 인물이 실제로도 전혀 다른 인물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은 윤시윤의 배우로서의 성장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그 가벼워 보이는 한강호가 차츰 기분 좋은 정 많은 인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모습은 칭찬받을 만하다.(사진:SBS)

‘스케치’의 미래예측, 어째서 현실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할까

사실 현실성을 잣대로 대면 JTBC 금토드라마 <스케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 ‘미래를 그린다’는 그 설정 자체가 현실을 벗어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일단 드라마적 장치로 인정하고 봐야 <스케치>는 그 독특한 작가와 시청자 사이의 밀고 당기는 두뇌 게임에 빠져들 수 있다. 

굳이 ‘두뇌 게임’이라는 표현을 쓰게 되는 건, <스케치>의 그림으로 그려지는 미래라는 판타지 설정이 미래를 예측함으로써 사건의 단서를 미리 제공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시청자를 엉뚱한 방향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일종의 떡밥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약혼자의 죽음에 광분한 강동수 형사(정지훈)가 총을 겨누고 있고 바닥에 쓰러진 김도진(이동건)이 머리 뒤쪽으로 피를 흘리는 듯한 미래를 그린 그림은, 강동수가 김도진을 죽인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 머리 뒤쪽의 어두운 액체는 피가 아니라 물감이었다는 게 밝혀진다는 반전이 그렇다.

시청자들은 강동수가 살인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이 ‘스케치팀’이 이를 막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그 미래를 그리는 그림은 긴장감을 높이는 장치로 활용된다. 물론 그건 일종의 트릭이다. 드라마에 좀 더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이런 트릭은 성범죄자들에 의해 비극을 맞게 되는 김도진의 아내와 또 김도진에 의해 살해되는 강동수의 아내의 이야기 속에서도 활용된다. 스케치에 들어간 시간이 어느 날의 시간을 알려주는 것인지 오인하게 만들고 그래서 어떤 일이 먼저 벌어지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일이 벌어졌는지 인과관계의 순서가 바뀌면서 생겨나는 혼선들이 이 추격전을 더 쫄깃하게 만든다. 

즉 보통의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스릴러들이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긴장감을 높이는 반면, <스케치>는 미리 그림으로 예고된 살인을 본 후 그 사건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높인다. 그래서 스케치로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가진 유시현(이선빈)이 결국 자신이 죽는 장면을 그리는 방식의 설정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가 죽는다는 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현실성을 찾기가 어려운 판타지지만, 그래서 더더욱 중요해지는 건 이 판타지를 갖고 도대체 어떤 현실의 지점들을 이야기하려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벌어진 무수한 사건사고들이 우연적인 일이 아니라 이미 과거부터 누적되어온 어떤 엇나감이 축적되어 생겨난 결과였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데 만일 이처럼 예측 가능한 미래를 우리는 과연 바꿔낼 수 있을까. 

유시현과 스케치팀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미래에 벌어질 비극을 막으려 안간힘을 쓴다. 피해자가 당할 위험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하지만 장태준(정진영)과 김도진(이동건)은 가해자가 밝혀지고 붙잡힌다 해도 이미 벌어진 피해자들의 피해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미래에 사건을 저지를 가해자를 사전에 살해하려 한다. 강동수는 그 중간에 끼어 있다. 살해당한 약혼녀의 복수를 위해 김도진을 추적하지만 또한 무고한 피해자가 생겨나는 걸 막으려 노력한다. 그는 미래에 벌어질 살인자를 처단한다는 김도진의 선택에 어떤 결정을 할까. 

자신은 이미 약혼녀가 죽었을 때 죽었다고 말하는 강동수에게 상처란 이미 벌어지면 치유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렇다면 김도진의 선택을 이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건 또한 ‘벌어지지 않은 일에 대한 응징’으로서 그저 ‘살인’과 다르지 않다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즉 약혼녀가 죽은 것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가 앞으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예측 때문이었다. 그러니 강동수는 김도진 앞에 어떤 딜레마를 느낄 수밖에 없게 된다.

<스케치>는 미래를 그린다는 판타지를 통해 스릴러가 갖는 긴장감을 새로운 방식으로 높여놓았다. 거기에 사용된 적당한 트릭들은 그림의 진짜 의미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 또한 높여준다. 그리고 그 미래를 미리 안다는 사실 앞에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를 질문한다. 제약회사가 만들어낼 신약으로 무수한 어린이들이 사망할 것이라는 예고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건 마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은 굳이 스케치 같은 판타지가 아니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예고될 수 있었던 사건은 아니었을까. 그걸 어느 정도 알았다면 어째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던 걸까. 강동수든 김도진이든 유시현과 스케치팀이든 자기 방식으로 미래를 바꾸려 애쓰는 모습은 그래서 지금도 어딘가에서 원인으로 방치되어 후에 사건이나 사고로 이어질 일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처럼 보인다.(사진:JTBC)

‘이리와 안아줘’,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좋아해서 미안해.”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채도진(장기용)은 한재이(진기주)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진심. 어린 시절 나무와 낙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바라봤던 그들이지만, 채도진은 이미 그 때부터 그의 사랑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감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낙원을 밀어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그의 아버지 윤희재(허준호)에 의해 한재이의 부모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무는 낙원을 지켜내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에 넘겼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희재가 자신이 잡힌 건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 때문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윤희재가 체포된 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끝없이 따라붙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채도진에게 달라붙었고, 그건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윤희재는 감방에서 자서전을 내며 자신이 그런 괴물이 되게 된 것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탓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그래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살인자의 거짓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윤희재는 감방에 들어와 있지만 엇나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흉기를 휘두른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가 쓴 책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채도진은 스스로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그 책은 거짓이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낙원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나무처럼 버티며 아픈 이들을 지켜주려 한다. 

그렇게 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나타나 때리면 맞고 질책하면 죄송하다 사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채도진은 진짜 나무 같은 인물이다. 모진 바람을 맞아도 묵묵히 서 있는 그에게 역시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엄마 채옥희(서정연)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눈물조차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채도진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이리와 안아줘>는 살인자의 아들 혹은 피해자의 딸이라는 굴레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모진 현실 앞에서 채도진 역시 어쩌면 저 살인자인 아빠가 변명하듯 악을 계승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도진은 악이 그렇게 길러지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변명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드라마는 앞부분에 윤희재가 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채도진의 “악은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채도진과 한재이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 표현도 제대로 못하며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나무처럼 버텨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선택을 한 채도진과, 그 나무의 아픔을 느끼며 다가가 안아주는 한재이의 마음. 그들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사진:MBC)

‘미스 함무라비’, 법정물에 담아낸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민낯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이 과연 등가의 저울에 올려질 수 있을까. JTBC 월화드라마 <미스 함무라비>는 사내 성희롱 사건의 판결이 벌어지는 법정을 통해 이런 질문을 던진다. 박차오름(고아라)은 가해자가 해고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한세상 부장판사(성동일)는 “한 가장의 밥줄을 끊는 일”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가장의 밥줄’이라는 말이 꽤 그럴 듯하게 들리는 대목이었지만, 사실 그 가장의 다른 이름은 상습적인 성희롱 가해자였다. 법정에 나와 자신의 성희롱 사실이 가족에게까지 다 드러나는 그 일이 자신에게는 큰 고통이라고 강변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차피 가해자가 스스로 저지른 일에 대해 책임지고 감수해야할 고통일 뿐이었다. 

희한한 건 법정에서 이상하게도 피해자가 더 피해를 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피해자의 변호사는 아예 변론을 하지 않고 있었고, 가해자 측의 변호사는 피해자를 과잉 반응을 보이는 이상한 직원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증인으로 나온 다른 직원들조차 가해자의 성희롱적인 발언을 그저 농담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피해자는 그들의 말에 더 심각한 2차 피해를 겪게 됐다. 그 누구도 자신의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고 사측의 사주를 받은 가해자의 입장만을 두둔하는 상황. 심지어 그와 가장 가까웠던 선배 사원조차 등을 돌리는 모습에 눈물만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미스 함무라비>의 이 법정 풍경은 하나의 판결 사례처럼 그려진 것이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면이 있다. 가해자는 억울하다 주장하고 오히려 피해자가 또 다른 피해를 입는 상황을 우리는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투 운동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성폭력 같은 사안에서 이런 문제가 도드라져 보이지만 사실 그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비뚤어진 권력 구조가 거기 자리하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이 법정에서 피해자가 일방적인 피해를 계속 당하게 된 건, 가해자가 가진 권력이 여전히 회사와 결탁되어 발휘되고 있어서다. 증인으로 나온 직원들은 거짓 증언을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정신병자로 몰아가야 자신들이 생존할 수 있을 거라는 사측의 반 협박을 받고 있었다.

결국 법정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판사들은 섣불리 판결을 내리지 않고 다시 기일을 잡아 사측의 술수를 파헤쳤다. 다시 법정에 나온 여직원의 마음이 흔들리고 결국 자신 또한 인턴 시절 가해자에게 당했던 성희롱의 증거를 문자메시지를 통해 보여준 것. 흥미로운 건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아내 역시 변호사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밝혔다는 점이다. 권력에 의한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그런 일들은 부메랑처럼 가해자에게도 똑같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준다. 

사실 장르물들이 드라마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하면서 법정물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하지만 <미스 함무라비>는 법정을 소재로 하고 판사가 주인공인 드라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법정물’이라는 장르적 재미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 공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재 미투 운동을 포함해 권력을 이용한 갑질 사례들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가해자와 피해자가 역전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그 권력의 언저리에서 살아가지만, 피해자들은 오히려 2차 피해를 입는 상황들. 여기서 전가의 보도처럼 나오는 것이 가해자들 역시 고통 받고 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어찌 가해자와 피해자의 고통을 같은 저울에 올릴 수 있을까.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은 같은 저울로 잴 수 없다”는 이 드라마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사진:JTBC)

‘이리와 안아줘’가 담은 2차 피해 문제, 현실도 마찬가지

그들의 진짜 이름은 나무와 낙원이었다. 나무는 진짜 그 이름처럼 낙원을 위해 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윤희재(허준호)라는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때문에 늘 지옥에서 살아가던 나무에게 낙원은 역시 그 이름처럼 유일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꺾어지고 낙원이 지옥이 되는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윤희재는 낙원의 부모를 살해했고 낙원까지 죽이려 했지만 나무가 막아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윤희재는 체포되었지만 과연 그걸로 끝이었을까. 가해자가 잡혔지만 피해자들은 결코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무와 낙원은 그래서 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무는 채도진(장기용)으로 낙원은 한재이(진기주)로 살아가려 하지만 비정한 세상은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가 심상찮다.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눈물과 분노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장면들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살인자의 아들인 채도진과 그 살인자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가서도 참회록이랍시며 자서전을 써서 장사를 하며 버젓이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는 언론의 2차 피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들을 담았다. 

최근 미투 운동과 더불어 더 자주 등장한 것이지만 ‘2차 피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적지 않게 등장했던 일들이었다. <이리와 안아줘>가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그 2차 피해를 촉발하는 건 당장 이슈에만 눈이 먼 언론들이다. 윤희재의 자서전을 출간한 인물이 한 시사잡지 기자이고, 어떻게든 과거를 파내 이름까지 바꿔가며 살아가는 채도진과 한재이를 끝내 대중들 앞에 발가벗기고 다시 그 지우고 싶은 과거를 끄집어낸 이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 2차 피해는 윤희재가 살인마인 줄 모르고 결혼하며 살다 결국 사실을 알고는 딸과 도망친 채옥희(서정연)와 채소진(최리)에게도 벌어진다. 섬에 들어가 조용히 식당을 하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윤희재 자서전의 수입이 가족들에게 갈 것이라는 허위보도가 나오면서 이들은 다시 과거 윤희재의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해자는 웃으며 추억처럼 과거의 살인을 회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끝없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 이건 지금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이리와 안아줘>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다시 읽힌다. 그저 청춘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목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따뜻한 포옹을 해줄 수는 없냐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채도진과 한재이는 그 어린 시절 끔찍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안아준 적이 있다. 사건현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나무에게 낙원은 다가가 원망을 하기보다는 끌어안아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살아남으라”고 말해주었다. 

나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도망치는 채옥희와 채소진에게 “잘 가라”고 “멀리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다. 채옥희는 두려움 때문에 딸을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어린 아이가 지옥 속에 서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를 도망치게 했지만 정작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버텨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나무처럼.

어째서 한재이 같은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안아주지 못할까. 다만 그가 살해당한 유명배우의 딸이라는 사실을 유포해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는 그 안간힘을 밟아버릴까.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가 겪는 2차 피해의 굴레 속에서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는 살벌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이 그토록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런 비정한 현실을 그들의 사랑에서 더더욱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사진:MBC)

'라이브', 배종옥의 한숨에 깊이 공감하는 까닭

술만 마시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 하지만 정작 그의 아내는 남편의 폭력을 부인한다. 당장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폭력 때문에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두려워한다. 그들에게 집은 위험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가 아니다. 도망치고픈 지옥일 뿐이다. 이제 신입경찰 한정오(정유미)는 어떻게든 설득해 그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이라도 지켜주고 싶지만,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tvN 토일드라마 <라이브>가 최근 보여주는 사건들은 사실 너무 끔찍해 계속 들여다보기가 힘들 정도다. 피해자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들은 피해사실을 숨긴다. 피해사실을 꺼내놓아도 당장 살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폭력이 난무하는 그 집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이 아이들은 산에 갔다가 연쇄 강간범에게 강간까지 당한다. 언니는 돌에 맞아 쓰러지고 동생은 묶인 채 성폭행을 당한 것. 하지만 이들은 여기서도 피해사실을 부인한다. 집에서도 그러했듯이 피해사실을 말하고 신고해도 해결되는 일은 없다는 걸 연거푸 경험하고는 이내 모든 걸 포기하는 것이다. 

한정오는 그 강간사건이 남 일이 아니다. 자신도 과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괴한들에게 성 폭행을 당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 역시 그 피해사실을 숨겼다. 그저 기억을 지워내려 몸을 씻고 또 씻었을 뿐이다. 강간사건을 겪은 자매들도 마찬가지였다. 언니는 동생의 몸을 씻어주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피해사실이 사라지거나,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었다. 한참 세월이 지났어도 한정오는 여전히 그 날의 그 기억을 하나도 지워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 실종된 줄 알았던 아이는 친구 집에 숨어 있었다. 알고 보니 양아버지가 아이의 몸을 만졌다는 것. 그게 싫었던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아이의 친구는 자기 집에 그를 숨겨주었다. 결국 양아버지는 붙잡혀 수사를 받게 됐지만 그는 과거에도 성추행 사건에 연루가 되었지만 폭행 흔적이 없다며 집행유예로 풀려났었다. 강남일(이시언)의 말대로 “만진 것 자체가 폭행”이지만 처벌은 받지 않게 되었던 것.

가해자는 버젓이 살아가고 피해자는 힘겨워하는 현실은 경찰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정년퇴직을 한 달여 남긴 이삼보(이얼)는 지역 유지의 아들이 촉법소년들을 사주해 벌인 폭력에 깊은 상처를 얻었다. 그건 몸에 난 상처보다 경찰 말년에 갖게 된 마음의 상처가 더 컸다. 결국 지구대가 전부 나서서 폭력을 저지른 촉법소년들과 유지의 아들까지 잡았지만, 그 아버지는 자신이 누군지 아냐며 오히려 으름장을 놓았다. 

어린 아이들이니 선처해달라는 가해자 쪽의 변호사의 회유에 이삼보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자신은 끝까지 간다는 것. 그래서 가해자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할 거라고 했다. 그러자 그 지역 유지는 자신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맞섰다. 그런데 이삼보는 오히려 그 유지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아이가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경찰인 자신들도 그 손을 잡아주지 못했다고 자책하면서, 그러니 세상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는 것에 아이가 분노했을 거라고. 적어도 아버지만큼은 아들의 그 손을 잡아주라는 것이었다.

이삼보는 그렇게 그 아이의 입장을 이해했지만, 그러면서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사적인 감정 때문에, 복수심으로 끝까지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 진짜 따뜻한 이삼보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의 끝은 어떻게 될까. 가해자는 처벌을 받게 될까. 피해자의 상처는 제대로 아물 수 있을까. 어찌 된 일인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버린 분통터지는 현실이다. 하지만 단지 이건 감정적인 문제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도대체 가해자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또 다시 생겨날 피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숨기게 되자, 오히려 강간범에 의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안장미(배종옥)의 한숨이 더 깊은 공감으로 다가오는 이유다.(사진:tvN)

‘예쁜 누나’, 달달한 멜로 속에 담긴 날카로운 현실인식

이 드라마 보면 볼수록 놀랍다. 멜로드라마로서의 가슴 설렘은 심지어 ‘내가 연애하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달달하지만, 그 배경으로 담겨진 현실인식에서는 심지어 최근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의 정서까지 느껴질 정도로 날카롭기 때문이다. 그저 편안하게 볼 때는 ‘무뎌진 연애 감각’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듯한 설렘을 주지만, 그러다 문득 이 드라마가 끄집어내는 현실의 단면들은 베일 듯한 날카로움으로 둔감해진 이성의 고삐를 잡아챈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어떻게 이런 달달함과 날카로움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병치해낼 수 있었을까.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꽁냥꽁냥하고 풋풋한 애정행각에 눈 멀고 귀 멀게 만드는 게 이 드라마가 주는 놀라운 매력이지만, 그 매력을 살짝 뒤로 밀어두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현실을 들여다보자. 윤진아가 처한 현실은 어찌 보면 우리네 30대 중반의 직장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상황들이다. 한 번쯤은 진상 남자친구로부터 호된 이별 후유증을 겪었을 수 있고, 직장 내에서 억울하게 책임을 떠안거나 때로는 회식자리에 불려나가 상사의 질척거림에 소름이 돋았을 수 있다. 

30대 중반의 직장여성이라면 누구나 겼었을 지도 모르는 그 일들은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연한 범죄다. 바람을 피운 게 들통 나 이별하게 된 남자친구 이규민(오륭)이 계속해서 찾아오고, 갈수록 집착이 더해져 스토킹을 하는 건 심각한 일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사귀던 시절 찍었던 내밀한 그들만의 사진들을 꽃바구니에 동봉한 편지 속에 담아 보내오는 인간이다. 그건 다른 시각으로 보면 최근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리벤지 포르노’ 사건들과 맥락이 그리 다르다고 보기 어렵다. 

회사에서 회식 자리에 여직원들의 참석을 종용하고, 술 취해 상사들이 여직원들의 몸을 더듬고 노래방에서 부둥켜안고 춤을 추는 모습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그건 ‘권력, 위계에 의한 성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너무 많아서 아예 포기하고 회식 자리에 나갔던 윤진아는 그러나 서준희와 사랑을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그는 상사의 술자리 동석을 대놓고 거부한다. 그리고 그 거부한 것에 대해 질책하려 하자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말해 달라”며 오히려 상사를 당황하게 만든다.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을 불러 고기를 구워주는 일을 시키는 것도 크게 보면 ‘권력, 위계’를 이용한 폭력과 다를 바 없다. 참석하기 싫은 회식에조차 사장님이 나오니 꼭 참석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상사와 늘 그랬듯 윤진아를 불러 고기 굽는 일을 시키는 장면이 불편한 건 그래서다. 하지만 서준희와 연애를 시작하며 달라진 윤진아는 그걸 거부하고 대신 나서려는 후배 여직원도 제지한다. 회사에서 자신을 은근히 챙겨주는 여상사인 정영인(서정연)은 그런 그에게 “잘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그러고 보면 누구보다 깐깐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정영인의 모습은 그가 과거 직장생활에서 얼마나 많은 성 차별을 겪었는가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윤진아의 변화가 서준희와의 사랑을 통해 이뤄진다는 그 과정이 이 드라마가 달달한 멜로를 그려내면서도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엮어낼 수 있는 지점이다. 그 누구도 ‘예쁘다’고 해주지 않아 스스로 예쁘지 않은가 보다 하며 자신을 포기하고 살았던 윤진아는 서준희를 통해 드디어 자존감을 찾아낸다. 자신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봐주는 눈길이 있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 그래서 지금껏 자기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던 일들이 심각한 범죄들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윤진아는 피해자이면서도 스스로 피해자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이었다. 

서준희와의 멜로가 더더욱 달달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 바로 이런 윤진아라는 인물이 버텨내온 현실에 대한 깊은 공감대와 연민이 밑그림으로 담겨져 있어서다. 서준희라는 인물과 그의 시선은 그래서 윤진아에 대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이런 비뚤어진 현실에 대한 제대로된 직시이기도 하다. 스토커 이규민과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윤승호(위하준)는 누나 윤진아에게 전화를 해 “정신 차리라고 잔소리 좀 하겠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서준희가 그를 제지하며 한마디 쏘아붙인다. “정신 차릴 새끼는 따로 있는데 왜 엄한 사람한테 그래?”

미투 운동에서 우리가 흔하게 보는 장면이 가해자는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고 피해자는 고통을 감수하며 오히려 숨어 지내는 상황이다. 더 아픈 건 피해자에게 왜 그런 상황을 만들었냐고 오히려 질책을 하는 경우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놀라운 건 이런 심각한 상황들을 몇몇 대화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누나에게 서준희라는 멋진 인물의 입을 빌어서 계속 “예쁘다”고 말해주는 그 달달한 멜로를 더더욱 지지하게 된다. 그건 개인적인 사랑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피해자로 살아온 이들에게 당신은 그걸 감내해야 하는 피해자가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사진:JTBC)

'키스', 캐릭터에 설득력 부여하는 감우성 진심 담긴 연기

과연 감우성이 아니었다면 이 멜로 가능했을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는 초반 ‘어른 멜로’라는 수식어처럼 과감한 표현들과 설정들을 코믹한 터치로 그려낸 작품처럼 보였다. 안순진(김선아)이 처한 힘겨운 상황들도 또 무표정의 삶을 살아가는 손무한(감우성)의 상황도 그래서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가벼움이 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드라마 마지막에 살짝 들어가는 ‘에필로그’는 무언가 이 멜로드라마가 생각만큼 가벼운 건 아니라는 예감을 준 게 사실이다. 그리고 결국 손무한의 시한부 삶이 등장하고, 안순진의 딸이 죽게 된 상황과 그로 인해 그의 인생이 부서졌던 그 일들이 소개되면서 드라마는 꽤 무거워졌다. 그저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었다는 걸 <키스 먼저 할까요?>는 드러내고 있는 것.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무한과 안순진의 멜로가 무거움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때론 웃음과 설렘까지 만들어내는 그 균형점을 준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손무한이 과거 안순진이 그토록 도움을 요청했지만 매몰차게 거절했던 광고 카피라이터였다는 걸 알게 된 안순진이 그와 결혼까지 하고 한 침대에서 같이 자는 부부가 됐다는 사실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안순진은 먹던 걸 토해내듯 자신이 손무한과 함께 한 시간들을 토해내고 싶어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미 그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 못한다. 

겉으로는 재산이 200억이고 혼인신고도 했으니 그 유산을 받아 그가 죽은 후 혼자 빈둥대며 사는 게 ‘복수’라고 말하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손무한의 옆에 남아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어찌 보면 손무한이 지금껏 안순진에게 해온 ‘아낌없이 주는 숙주의 삶’에서 느껴진 사랑의 감정을 그 역시 느꼈기 때문일 게다.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러면서도 모든 걸 주고 가려는 그의 마음에서 어떤 진심을 느끼기 때문이다. 

사실 <키스 먼저 할까요?>는 그 이야기 설정만을 두고 보면 굉장한 논쟁점을 갖고 있는 드라마다. 즉 이 드라마는 어느 제과의 과자 때문에 딸을 먼저 저세상에 보내게 된 피해자와, 그 과자의 광고를 내놓고 사고가 난 후에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가해자가, 그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접근했던 ‘실수’로 ‘계획에 없던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다. 거기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결코 이어질 수 없는 정서의 장벽이 놓여 있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도저히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해자가 어떻게 해야 피해자에게 최소한의 사과와 용서를 빌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드라마에, 그러다 덜컥 사랑을 하게 되는 멜로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주는 2차 가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해지는 건 가해자로서 손무한이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 죄책감과 부채감 그리고 어쩌다 피어난 사랑의 감정을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손무한 역할을 연기하는 감우성은 놀라울 정도로 이런 논쟁을 무화시키는 ‘설득력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진심이 가득 담긴 연기가 아니면 이 논점 많은 멜로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사진:SBS)

‘키스 먼저’가 만일 멜로 그 이상을 숨기고 있었다면

도대체 손무한(감우성)이 안순진(김선아)에게 갖는 죄책감은 무엇 때문일까.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손무한이 안순진의 아픔을 끌어안고 결국 결혼까지 한 것이 그저 사랑 때문 만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것은 드라마 초반부터 에필로그를 통해 이 두 사람이 과거에 어떤 사건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었고, 이제 그 사건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어서다.

10년 전 안순진은 무슨 일인지 아이를 잃었고, 그 잃은 아이 앞에서 순진의 어머니는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죄인 같은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리고 묘소에서 아이를 보내는 순진의 모습을 바라보는 손무한이 있었다.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건 마치 우연적인 일처럼 보였지만 어찌 보면 자신과 연루된 일로 아이가 죽게 됐다는 죄책감 때문일 수도 있다는 심증이 생겨난다. 

그런데 손무한의 직업은 광고 카피라이터다. 그가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죽게 했다기보다는 그가 쓴 카피가 그걸 방조하거나 혹은 누군가를 오인시켜 결과적으로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 8년 전 안순진이 손무한을 찾아왔던 회상 장면은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해준다.

“아폴론 제과에서 적반하장으로 나온다고 한다. 애가 잘못됐는데.”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안순진의 아이는 제과에서 나온 제품 때문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손무한은 그 제품 광고를 했을 가능성이 높고. 그래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아폴론 제과와 안순진은 법정싸움을 하며 사채 빚까지 쓰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8년 전의 손무한은 냉정한 광고 카피라이터였다. “내가 법원 오갈 시간이 어디 있냐. 그게 내 탓이냐. 차 광고 하고 사고 나면 광고 탓이냐. 아파트 광고하고 붕괴되면 우리 탓이냐. 우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거다.”라며 안순진의 요청을 거절했다. 

이 정도의 이야기에서 번뜩 떠오르는 사건은 국내에서 벌어졌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잘못된 제품이지만 그 피해가 일파만파 커졌던 건 안전성을 먼저 고려하지 않고 상품성만을 강조했던 광고가 일조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직접 이 살균제를 넣은 가습기가 작동하는 광고의 한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광고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은 안심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장면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겨지지만.

<키스 먼저 할까요?>는 본격 어른 멜로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년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혹시 이 드라마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같은 사안을 떠올리게 하는 사회적 의제 또한 숨겨놓고 있는 건 아닐까. 

만일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멜로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이 인간에게 갖게 되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위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 과정들까지를 담는 이야기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키스 먼저 할까요?>라는 제목이 스킨십 따위는 이들의 사랑에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드러내듯, 인간애의 차원에서 보면 남녀의 사랑이나 결혼 그 이상의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혹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마도.(사진:   SBS)

‘미스티’ 김남주에게 드리워진 두 얼굴의 의미

도대체 케빈 리(고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정말 고혜란(김남주)이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괴로워하면서도 고혜란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끝까지 지키겠다고 나선 남편 강태욱(지진희)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혜란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감방까지 갔다온 하명우(임태경)일까. 그도 아니라면 케빈 리의 외도에 가장 큰 상처를 입었던 그의 아내 서은주(전혜진)일까. 

JTBC 금토드라마 <미스티>에서 살인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추측들은 드라마 제목처럼 ‘안개 속’이다. 여기서 특히 궁금해지는 건 고혜란이라는 인물이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남편에게 하명우의 존재를 설명하며 고교시절 금은방 사장을 살해한 이가 바로 하명우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이 고백은 진실일까. 초반에 슬쩍 나왔던 당시 상황 속에서 하명우가 고혜란에게 “넌 앞만 보고 달려가라”고 했던 말은 마치 고혜란의 살인을 하명우가 뒤집어쓴 듯한 뉘앙스가 느껴진다. 

그러고 보면 고혜란이 강태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결혼까지 한 이유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고혜란은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남자들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가 강태욱과 결혼한 건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강태욱의 희생이 점점 고혜란의 눈에 들어오고, 그것이 못내 아프게 느껴지며 사랑을 느끼게 되자 고혜란은 강태욱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자신의 결혼 이유가 깨졌기 때문이다. 

고혜란의 이런 모습은 자신의 욕망과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걸 이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만일 고혜란이 과거 살인을 직접 저질렀던 인물이라면, 그래서 자신의 성공가도를 막아서는 케빈 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그는 희대의 악녀가 맞을 것이다. 목적을 위해 사랑마저도 이용하는 인물이니.

하지만 드라마는 동시에 고혜란을 공고한 남성권력의 피해자이고, 그들 권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로 보여준다. 앵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수한 편견과 유리천장을 깨야 했던 그는 이제 국장 자리를 놓고 장규석(이경영)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이 국장 자리를 제안하는 방송국 대표와 손을 잡게 된 건 자신에게 날아온 검찰의 기소 때문이었다. 케빈 리 살인죄로 기소된 그는 대표에게 강율 로펌이 자신의 사건을 맡아 무조건 이겨달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대표와 강율이 고혜란을 과연 도와줄 것인가는 미지수다. 고혜란에 의해 한방을 먹은 그들은 그 권력 네트워크를 이용해 고혜란을 궁지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다. 진실보도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행동을 옮기는 것이 자신의 일라고 생각하는 고혜란은 그래서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과 대결구도를 갖게 된다. 시청자들이 고혜란이 어쩌면 희대의 악녀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남성 권력과 싸우는 피해자로서 그 심경을 공감하게 되는 건 이런 양면이 이 캐릭터에 투영되어 있어서다.

과연 고혜란은 살인까지 저지른 희대의 악녀일까. 아니면 공고한 남성 권력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피해자일까. 그 안개처럼 애매한 경계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고혜란이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커리어우먼들이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게 되는 양면적인 심경이 아닐까. 물론 극화된 이야기지만 <미스티>는 사랑도 성공도 쉽지 않은 커리어우먼들의 현실을 에둘러 담아내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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