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보다는 장르적인 재미 선택한 ‘뉴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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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하트’가 선택한 것은 의학드라마(이후 의드)의 새로운 실험이 아니라, 장르 그 자체였다. ‘뉴하트’가 기획된 것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와 ‘하얀거탑’이 의드의 중흥을 알리기 시작하던 그 때이다. 그만큼 늦춰진 제작은 ‘뉴하트’에게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안겨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장점이란 이미 실험을 해낸 두 의드에서 성공의 요소들을 추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고, 단점은 뒤늦게 제작됨으로 인해서 실험적인 시도는 퇴색되거나, 시도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의드라는 장르적 요소들의 봉합으로 얻은 시청률
‘뉴하트’가 두 의드(물론 여기에는 외국 의학드라마들의 영향도 빠질 수 없다)에서 뽑아낸 장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의학 장면들은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디테일을 살려야 한다는 것. 그 바탕 위에 그려지는 나긋나긋한 멜로는 비판이 아니라 때론 장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의사들의 애환과 더불어 인간으로서의 의사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병원 내에서의 권력다툼은 병원 차원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심장을 쿵쾅대게 만드는 소재라는 것.

따라서 ‘뉴하트’에는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 때론 실제 의사들을 통해 몇몇 디테일들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긴 했지만 대체로 병원 내의 디테일들은 잘 살아있다는 평가를 받았고, 늘 비판받았던 멜로는 오히려 더 배가되었다. 은성(지성)-혜석(김민정) 라인은 물론이고, 최강국(조재현)과 그의 아내(이응경), 배대로(박철민)-김미미(신다은)라인 그리고 우인태(강지후), 김태준(장현성)까지 다양한 멜로를 선보였다. 인간적인 의사의 모습은 최강국과 이은성을 통해 부각되었으며, 병원 내의 권력다툼은 최강국과 민영규(정호근)의 대립구도로 주로 보여졌다.

이를 통해 ‘뉴하트’가 얻은 것은 분명한 시청률이다. 과거 호평에도 불구하고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외과의사 봉달희’나 ‘하얀거탑’과는 달리 ‘뉴하트’는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것은 의드라는 장르가 이제는 안착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제는 새로운 작품이 아니라 하더라도, 의드의 성공요소들이나 장르적 재미만을 가지고도 어느 정도의 시청률 달성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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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재미 속에 묻혀진 아쉬운 점들
하지만 이런 일취월장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적으로 ‘뉴하트’가 의드의 진화 대열에 낄 수 있는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부정적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많은 아쉬운 점들이 장르적 재미에 묻혀 가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먼저 최강국이라는 의사에 모든 걸 의지하는 드라마 구조가 문제다. 물론 실제로 흉부외과 같은 곳에서는 의사 1인의 능력이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드라마다. 그것이 사실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드라마는 좀더 이상적인 구도를 만들어냈어야 하지 않을까. 최강국 1인에 집중되는 이상적인 의사상의 구현은 그것이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했다 하더라도 드라마적으로 봤을 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대목이다.

최강국 1인이 이상적으로 그려지자, 나머지 등장인물들의 구성은 선악구도식의 이분법적으로 나뉘게 되었다. 최강국 측에 있는 인물들은 선이고 그에게 반대로 서 있는 인물은 악으로 그려지게 된 것. 이것은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장르적 법칙과 TV드라마라는 좀더 대중적인 매체가 만나는 지점에서는 효과를 발휘한 것이 분명하나, 인물을 그려내는데 있어 지나치게 단선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만일 최강국 자신도 치명적인 인간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거나(마치 ‘하얀거탑’의 장준혁처럼), 상대측인 민영규 역시 인간적인 면모를 갖고 있다면 드라마가 그려내는 세계는 좀더 현실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두 번째 아쉬움은 이러한 장점들의 봉합이 지나치게 나열적으로 되었다는 점이다. 최강국은 드라마 속에서 권력다툼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주로 하는데 사실상 ‘뉴하트’는 그 힘으로 흘러간다. 이렇게 되자 나머지 인물들은 그 힘이 약화되었다. 이은성이나 남혜석 같은 인물들이 멜로에만 치중하고 의사로서의 어떤 성장을 좀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이다. 특히 ‘뉴하트’가 그리고 있는 남혜석이나 김미미 같은 여성 캐릭터들은 거의 대부분이 멜로에만 치중된 인상이 짙다. 이렇게 된 것은 권력다툼과 멜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이어가지 못하고 나열식으로 풀어내면서, 각각 캐릭터들의 역할이 고정된 탓이다. 여성 의사로서 좀더 자신만의 고민이나 능력 같은 것을 남혜석이 보여주지 못한 면은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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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뉴하트, 의드불패일까 의드필패일까
마지막회에 와서 ‘뉴하트’는 장르 드라마의 성격보다는 멜로 드라마로 회귀한 느낌을 준다. 남혜석과 그녀의 아빠인 병원장의 죽음, 아내 앞에 무릎꿇고 미안하다 말하는 최강국, 불륜관계였던 조민아 앞에서 차마 수술을 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파혼을 당하는 김태준처럼 병원 내에서 직업으로서 보여줬던 의사의 모습은 가족 또는 연인 앞에 서면서 인간으로 돌아간다. 그간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각각으로 흩어졌던 이야기들은 이러한 감성에 호소하는 결론으로 인해 상당부분 모아지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1년 후의 에피소드들, 이를테면 새로운 심장센터의 질환별 시스템으로의 전환이나, 새 인력 채용에서 있어서 거론되는 학벌문제 해소 등등 드라마가 애초에 제기했던 흉부외과의 문제까지 해소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급하게 봉합된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시즌2에 대한 요구는 바로 그런 급작스런 끝맺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뉴하트’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드라마임에 틀림없지만, 제목처럼 의드의 새 심장이 되지는 못했다. 의드에 자주 등장하던 흉부외과가 가진 심장이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새로운 차원이나 시점으로까지 제시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뉴하트’는 이른바 의드의 성공법칙 같은 것을 세움으로써 의드라는 장르 자체를 즐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만은 분명하다. 누구나 쉽게 의드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남는 것은 새롭게 등장할 의드에 대한 우려이다. ‘뉴하트’의 성공은 상당부분 ‘의드불패’라는 장르적 안도감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안도감에 기댄 방만한 기획과 제작은 ‘의드필패’의 신호탄이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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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에게 필요한 것, 출연료 아닌 좋은 작품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입장이어서 일까. 드라마의 성패에 따라 가장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건 작가나 연출자가 아니라 연기자다. 그러나 연기자가 아무리 훌륭한 연기력을 갖추고 있어도 작품이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연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연기력이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작품의 캐릭터가 워낙 좋으면 그 연기자는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2007년도 드라마들에서도 그런 단초들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자들을 살렸던 드라마, 또 연기자들을 울렸던 드라마는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

연기자의 연기력을 극대화시킨 드라마들
그간의 부진을 씻고 정상의 궤도로 연기자들을 올려놓은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커피프린스 1호점’. 이 작품에 출연한 윤은혜, 공유, 이선균, 채정안은 모두 과거의 아픈 기억 하나씩을 갖고 있는 연기자들이다. 윤은혜는 ‘궁’, ‘포도밭 그 사나이’를 통해서 연기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지만 늘 따라다니는 건 연기력 논란이었다. 공유 역시 ‘어느 멋진 날’ 같은 작품에 등장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끌지는 못했고, 이선균은 ‘하얀거탑’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약한 배역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채정안은 ‘해신’ 등을 통해 연기를 선보였지만 오랜 공백 끝의 복귀였다. 그러니 이 작품 하나는 이 네 명의 연기 인생을 바꿔놓은 셈이다.

윤은혜에게 ‘커피프린스 1호점’이 있었다면 이준기에게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있었다. ‘왕의 남자’로 일약 천만 관객의 배우가 된 그 지점에서 연기 첫걸음을 내딛던 이준기가 가진 부담감은 실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 하지만 이 작품은 이준기의 다양한 연기의 결을 보여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상황에 따라 수없이 변해가는 캐릭터의 성격을 이준기는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연기함으로서 스타에서 연기자로 무사히 안착할 수 있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고맙습니다’. 이 작품은 공효진의 진가를 보여줌과 동시에 장혁의 연기자 복귀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하얀거탑’의 김명민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연기자 본능을 과시했고, ‘외과의사 봉달희’가 발견한 이요원과 버럭범수 이범수 또한 2007년 드라마가 주목한 배우였다. 시청률은 낮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아우라를 보여준 ‘마왕’의 주지훈, ‘인순이는 예쁘다’의 김현주 또한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연기력과 상관없이 연기자를 울린 드라마들
반면 작품을 잘못 만나 연기자가 연기력을 보일 수 없었던 드라마들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로비스트’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는 캐스팅만 보면 실로 최고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연기자들이 포진된 작품이다. 먼저 주연을 맡은 송일국은 ‘주몽’으로 굳건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 상대역의 장진영 역시 영화 ‘소름’으로 연기력의 가능성을 보이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30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인기여우상을 거머쥐면서 연기자로서 발돋움한 재원이다. 여기에 언제 등장해도 든든한 드라마의 기둥 역할을 해주는 허준호와 백발의 카리스마 연기까지 변신한 김미숙까지 동원됐지만 결과는 어이없게도 참패였다.

이와 비슷한 경우로 ‘에어시티’를 들 수 있겠다. ‘에어시티’는 이정재와 최지우 같은 이른바 한류 스타들이 브라운관에 복귀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이슈가 될 정도의 대작 드라마였지만 역시 어이없는 참패를 맞았다. 공항이라는 관심을 끄는 소재는 전혀 작품의 스토리와 연관을 갖지 못하고 심지어는 공항 홍보 드라마냐는 비아냥까지 받았으며, 한류스타들에게마저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게 하는 굴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한편 ‘강남엄마 따라잡기’의 하희라 같은 경우는 작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으나 캐릭터가 살지 않아 주목을 못 받은 경우다. 반면 ‘아이 앰 샘’의 양동근은 좋은 연기에도 시청률 틈바구니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고 또한 작년 ‘마이걸’로 주목받았던 이다해는 ‘헬로 애기씨’라는 조금은 시대 트렌드에 뒤떨어지는 작품을 만나 외면 받았다. 어떤 경우든 역시 아무리 발군의 연기자라 해도 결국엔 좋은 작품 속에서만 빛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2007년 연기자들을 울리고 살린 드라마들이 말해주는 것은 작품 없이 연기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자들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실상 출연료가 아니라 좋은 작품인 셈이다. 내년에는 훌륭한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연기자들이 더 풍성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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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 이미 끝난 지 꽤 된 드라마인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드라마에 푹 빠졌던 추억이 떠오른다. 노래로 기억된 영상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손예진이 감우성과 함께 도넛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도 떠오르고, 이하나와 공형진, 이 엉뚱한 커플의 로맨스도 슬쩍슬쩍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OST
OST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게 해주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다. 인상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면 기억을 자극하는 영상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영상을 영원히 감금해놓고 언제든 우리네 감성 속에서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OST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다는 음반시장에 있어서는 훌륭한 기회로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가수들이 방송에서 노래할 공간이 좁아지는 상황에 매회 적어도 1,2회씩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매체(?)의 제공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OST는 드라마와 음악이 확실한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시너지는 다름 아닌 문화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감성에 목마른 현대인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곡을 들으면 주인공이 떠오른다
▶ ‘연애시대’와 스윗소로우가 만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국내 명풍드라마의 탄생을 알린 ‘연애시대’. 멜로를 다루었으되 질척거리지 않고, 코믹한 터치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되 가볍지 않은 ‘연애시대’는 그 분위기에 딱 맞게 스윗소로우라는 뽀송뽀송한 목소리의 소유자들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을 선보였다. 같은 소절이 계속 반복되는 이 곡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갈등하는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의 감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진호가 부른 ‘만약에 우리’ 역시 헤어진 후 더 절실해지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

▶ ‘봄의 왈츠’와 러브홀릭이 만난 ‘One love’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마지막편인 ‘봄의 왈츠’는 마치 드라마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줄곧 선보여온 러브홀릭을 만나 ‘One love’란 감미로운 곡을 만들어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에서 마치 꽃이 확 피어나는 듯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는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윤석호 PD는 드라마에 한국적 풍경과 함께 음악을 적절히 잘 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 연출자이다. 윤석호 PD의 작품치고 드라마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에 걸맞게 OST는 명반으로 남았다.

▶‘하얀거탑’과 바비킴이 만난 ‘소나무’
국내 전문직 드라마의 새 장을 연 ‘하얀거탑’. 김명민이란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인 이 드라마에 삽입된 ‘소나무’는 바비킴의 읊조리는 듯한 음색이 차츰 절정을 향하며 호소력 짙게 감성을 흔드는 곡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란 가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욕망과 그 좌절을 그린 드라마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뽕짝처럼 우리네 정서를 깊은 뿌리서부터 느끼게 하는 바비킴의 창법은 세련되면서도 토착적인 음색을 ‘소나무’에 심어놓았다.

▶ ‘마왕’과 박학기가 만난 ‘빛의 향기’
‘향기로운 추억’으로 발라드라는 장르에 그만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박학기는 ‘마왕’이란 드라마를 만나면서 부활하는 듯 하다. ‘마왕’의 OST는 바비킴의 ‘뒷걸음’이나 JK김동욱과 드라마 주인공인 엄태웅이 직접 부르기도 한 ‘사랑하지 말아줘’, 그리고 박학기가 부르는 ‘빛의 향기’, ‘널 사랑하나봐’ 모두 드라마의 내용과 분위기에 잘 맞는 곡들이다. 특히 ‘빛의 향기’는 드라마 속 이승하(주지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고, ‘사랑하지 말아줘’는 강오수(엄태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히트’와 거미가 만난 ‘통증’
‘히트’의 장르가 수사물이란 점은 그 OST의 색깔 역시 스릴러와 액션에 가깝다는 걸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OST는 긴장감을 높여주는 효과적 배경음악으로 가득하다. 물론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테마곡들은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미가 부른 ‘통증’은 드라마 상의 차수경(고현정)이 가진 내적 상처를 잘 표현한 곡이다. 이밖에도 JM이 부른 ‘그 사람’은 극중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애절하게 느껴지는 곡이며, 메인테마곡인 슈퍼주니어의 ‘히트’도 경쾌하게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 ‘내 남자의 여자’의 상처를 담은 더 원의 ‘사랑아’
불륜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점점 여성심리극으로 가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남편과 친구를 동시에 잃고 그 상처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지수(배종옥)의 심경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더 원의 ‘사랑아’도 화제가 되고 있는 곡이다. 절규하는 듯, 울먹이는 듯한 더 원의 음색이 듣는 이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다.

▶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만든 김태훈의 ‘고맙습니다’
훈훈한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고맙습니다’는 김태훈이 부른 동명의 곡이 잔잔한 톤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 이 곡은 그러나 드라마와 만나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 ‘당신은 바보네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내용은 고스란히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영신(공효진)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드라마와 만나 명곡이 된 노래들은 부지기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메인 테마는 어김없이 명곡이 되기 일쑤다. 특히 극중 캐릭터가 메인 테마와 만났을 때, 그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곡을 들으며 단지 멜로디와 가사만을 듣는다는 것 그 이상이 되게 만드는 영상과의 만남, 이것이 OST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이것은 또한 뮤직비디오가 점점 길어지고 스토리를 담으며, 캐릭터를 창출하고, 심지어 뮤직드라마로 진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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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환경, 시청률 믿을만한가

‘주몽’,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같은 굵직한 드라마들이 일제히 종영한 상황에서 새로운 드라마들을 들고 나온 방송 3사의 시청률 경쟁이 과열양상을 띄고 있다. 특히 수목극 경쟁은 시청률 차이의 격차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누가 실질적인 1등이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상황. 편법적인 편성시간 배정이 시청률 순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렇게 방송사들이 시청률에 집착하는 이유는 당연하다. 그것은 광고수익이라는 실질적인 이득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한 편의 시청률 높은 드라마가 방송사의 기업 이미지까지 높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한 편의 드라마는 여타의 프로그램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쳐 ‘주몽’같은 경우 월화의 뉴스 및 개그 프로그램의 시청률에도 그 후광을 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이렇게 숫자로 대변되는 시청률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해 시청률 조작사건논란이 터졌을 때 불거져 나왔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아니다. 대신 이것은 최근 달라지고 있는 시청자들을 기존 시청률 집계가 얼마나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하얀거탑’과 같은 전문직 드라마가 나오기 전까지 이런 논의는 탁상공론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새로운 시청자의 존재를 담아낼 만한 이렇다할 새로운 드라마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하얀거탑’이라는 본격적인 전문직 드라마의 등장은 그 수면 밑에 있던 새로운 시청자들이란 존재를 예측하게 만들었다.

50% 이상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주몽’보다 더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하얀거탑’의 평균시청률은 고작 16%(TNS 집계). 마지막회에만 23.2%로 20%를 넘겼을 뿐, 나머지는 모두 1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두 가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그 많은 댓글과 반응을 보인 ‘하얀거탑’의 시청자들은 드라마폐인으로 대변되는 매니아집단이거나, 혹은 TV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이 본 사람들이라는 것.

하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이 두 예측은 같은 줄기에서 나온 다른 얘기로 볼 수 있다. ‘하얀거탑’과 같은 전문직 드라마의 탄생에는 저 물밑에서 감지됐던 미드, 일드 매니아들의 존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시청률 집계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물들로 TV보다는 인터넷이 더 가까운 시청자들이다.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서 드라마를 보는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다운로드받은 드라마를 보는 것을 선호한다.

그런데 과연 이들 매니아집단을 일부 소수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매니아라고 하면 마이너리티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과거 인터넷이란 매체의 등장과 관련이 있는데, 초창기 이 세계를 바꿀만한 충격적인 매체의 등장에 대해 상대적으로 적응속도가 늦었던 기성세대들이 달라진 젊은 세대들의 생활패턴을 부정적으로 해석한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누구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지금, 매니아의 의미를 소수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인터넷이란 매체의 속성상 그걸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매체 속에서 모두 매니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즉 달라진 환경 속에서 매니아적 성향은 특정 소수집단의 행동이 아니고 대부분의 성향이라는 것이다. 이제 매니아라는 말은 소수가 아닌 좀더 집중력 있고 충성도 높은 일반인으로 읽혀져야 한다.

그런 의미의 매니아가 드라마에 있어서 더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그 매체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TV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간적으로 보고 지나가지만(물론 VTR로 녹화해서 반복해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인터넷은 그 자체가 저장성을 갖는다. 다운로드받는 순간 몇 번씩 반복해서 볼 수 있고 정지시켜 특정 장면을 분석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너무 단순하고 너무 쉬운 구조의 드라마들에 식상해버린다. 마치 대학생에게 초등학생 덧셈 뺄셈 문제를 풀라고 하는 식이다(실제로 TV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정도의 지적 수준으로 드라마를 90% 이상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룬다).

이것은 이들이 미드와 일드에 열광하는 이유이자 우리에게 전문직 드라마의 출현을 요구하는 이유가 된다. 이들의 질문은 “왜 우리는 없는가? 왜 우리는 안 되는가?”에서부터 비롯된다. 기존 트렌디 드라마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이렇게 달라진 환경 속에서 우리네 식상한 드라마가 쉽게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경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하나의 대세이고 우리네 드라마가 가야할 방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제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우리 드라마의 시장은 국내가 아닌 세계로 넓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은 우물 속에서 성장하지 못해 결국은 죽게되는 상황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져야 하고 투자도 글로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달라져야할 것이 있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이 달라진 환경에 맞는 새로운 시청률 기준이다. 공중파와 시청률 집계 조사기관들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의 구태의연한 시청률 분석을 고수하고 있는 한, 드라마 발전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너무 시청률로만 보는 건 좋지 않지만, 기왕 시청률로 본다면 제대로나 해야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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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따뜻해졌다

네모난 세상/명랑TV 2007/03/15 12:06 Posted by 더키앙

장준혁과 봉달희가 원하는 사회

병원드라마를 가지고 이것이 진짜 병원의 실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병원의 실상을 보고 싶다면 ‘닥터스’나 병원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된다. 물론 병원드라마는 그 소재에 걸맞게 이야기도 병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으로 갖춰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현실적인 결론에만 집착한다면 드라마가 가진 극적 장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드라마는 때론 실상은 아니지만 실상이었으면 하는 환타지를 다루며, 그 환타지와 현실의 차이를 통해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최근 병원드라마들이 갖춘 요건들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이미 종영한 ‘하얀거탑’이나 앞으로 종영될 ‘외과의사 봉달희’는 드라마로 구성된 병원이야기일 뿐, 실제 병원의 이야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얀거탑’의 외과과장 장준혁(김명민)은 우리나라 외과의를 리얼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거탑의 꼭대기에 군림하며 외제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일식집을 들락거리는 외과의사는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마찬가지. 물론 병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환자들과 의사들의 생과 사를 두고 싸우는 모습은 리얼하지만 1년 차 레지던트가 교수들과 벌이는 연애는 실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맞다. 이건 드라마다. 현실이 아니다. 이들 병원드라마는 허구다. 장준혁과 봉달희(이요원)는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이 캐릭터들 속에는 외과의사 아니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욕망과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욕망과 욕구는 일반 시청자들이 투사해도 될 만큼 보편적인 것들이다. 상승욕구 혹은 성장욕구. 장준혁의 거탑을 향한 상승욕구는 일반 샐러리맨들의 욕구와 맞닿아 있으며, 봉달희의 연애를 포함한 성장욕구는 우리 일상인들의 보편적인 욕구이다. 두 병원드라마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의사의 이야기를 빌어서 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같은 병원 소재를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 두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같은 설정을 가진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의 역할 바꾸기’이다. 장준혁이 결국 담관암에 걸려 자신이 종횡무진 활약했던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의사 이야기에서 환자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의사→환자→인간’의 구도로 회귀하기 위함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일찌감치 이 역할 바꾸기에 몰두해왔다. 봉달희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이며, 이건욱(김민준)은 폐암수술을 받고, 조문경(오윤아)은 아들이 급성확장성심근증으로 수술을 받는다. 모두 역할 바꾸기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역할 바꾸기의 목적은 그것이 극적인 연출에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자칫 차갑기만 하게 느껴지는 기계적인 직업인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환원하기 위함이다. 의사가 환자가 되고, 의사가 의사를 수술하며(더욱이 평사시에는 경쟁자로 있던 의사가), 수술을 받아야할 병을 가진 의사가 기다리는 환자를 먼저 수술하는 이 장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죽어 가는 환자를 보면서 적어도 살아있는 자신에 ‘부끄러운 안도’를 갖는 봉달희는 그래서 의사이지만 한 인간이기도 하다.

병원드라마는 의사들을 빌어 사람들의 환타지를 다루었다. 거기서 의사들은 의사이면서도 한 명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결국 죽음 앞에 경건해지는 인간(장준혁)이며, 자기도 아프고 두렵고 연애하고 싶은 한 인간(봉달희)이다. 그것이 진짜 의사의 이야기가 아닌 허구라고 해도 그 허구는 보편적인 진실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더 리얼하다. 웃음, 눈물, 증오, 사랑, 절망, 희망, 질투, 고뇌... 병원드라마를 통해 본 의사들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따뜻한 병원을 느낀다. 그것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병원의 모습이란 건 분명하다. 병원드라마에서 발견한 인간은 거꾸로 실제 병원에서 찾기 힘든 인간적인 의사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병원드라마를 너머 인간드라마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냄새나는 사회에 대한 희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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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이어 ‘마왕’ 주제가 부르는 바비 킴

고현정이 드라마로 복귀해 화제가 되었던 ‘여우야 뭐하니’에서 천정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나오는 노래, ‘고래의 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의 고뇌 어린 얼굴에 흐르던 노래, ‘소나무’. 모두 ‘힙합대부’에서 ‘소울의 제왕’으로 돌아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바비 킴(본명 김도균)의 곡이다.

드라마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는 이유는 바비 킴 특유의 음악적인 맛 때문이다. 그 맛은 마치 레스토랑에서 먹는 시큼털털한 김치 같다. 힙합이라는 서구적 음악형식에 있어 극도로 세련되어 있고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식으로 흔히 말하는 ‘뽕끼’가 가득한 음악을 내놓으니 말이다. 즉 매력적이고 세련된 멜로디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나는 음색과 개성이 드라마 같은 극적인 장르에 잘 녹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바비 킴으로서의 개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가 비로소 자신만의 개성을 발하며 주목을 받게된 2집 앨범 ‘Beats Within My Soul’에 오기까지 그는 무려 10여 년의 세월을 돌아왔다. 1994년 레게 힙합을 선보인 닥터레게 싱글의 성공으로 장밋빛 미래가 보였던 것도 잠시, 앨범 출시 2주만에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은 그는 줄곧 실패를 거듭해왔다. 그에게 힙합대부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윤미래, 리쌍, 다이내믹 듀오, 버블 시스터즈, 드렁큰 타이거 등의 가수들과 작업해온 결과. 정작 본인은 늦깎이 힙합 가수로서 ‘랩 할아버지’란 별명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98년 솔로로 낸 1집 앨범 ‘Holy Bumz Presents’에서 그 변화의 조짐을 보여준 바비 킴은 2집에 와서는 완전한 자기 스타일의 소울을 선보인다. 흑인음악을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닌 온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작업을 보여준 것. ‘고래의 꿈’으로 대표되는 그 곡들은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단순한 리듬에 바비 킴만이 소화할 수 있는 나른한 음색이 만나 절묘한 음악적 세계를 구축해놓는다. 1집에서처럼 그의 목소리는 굳이 격하지도 않고 메시지는 강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넋두리처럼 쏟아내는 그 가사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청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어깨의 힘을 빼자,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최근에 낸 3집 앨범, ‘Follow your soul’은 앨범명에서 드러나듯 좀더 소울이 깊어진 느낌이다. 2집의 실험적인 스타일에서 좀더 안착한 느낌이랄까. ‘파랑새’라는 곡은 여러모로 전작 ‘고래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고래의 꿈’이 바다를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냈다면, ‘파랑새’는 그 향수의 대상을 하늘에서 찾아낸다. ‘고래의 꿈’의 분위기를 그의 아버지인 김영근씨의 트럼펫이 만들었다면 이번 ‘파랑새’는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합세한다. 랩보다는 힙합 베이스에 멜로디 중심의 소울을 구사하는 바비 킴의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바비 킴은 오는 3월21일 새롭게 시작하는 엄태웅, 주지훈 주연의 KBS 드라마 ‘마왕’에서도 주제가를 부를 예정이다. ‘하얀거탑’의 ‘소나무’에 이어 이번엔 어떤 음악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자못 궁금하다. 드라마를 통해 새삼 바비 킴의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최근 OST 시장이 새로운 가요계의 탈출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된 가수가 아닌 진정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바비 킴의 드라마 나들이가 여타의 실력 있는 가수들의 전범이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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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을 위한 변명

‘하얀거탑’은 결국 환타지보다 현실을 선택했다. 장준혁(김명민)에 대해 쏟아지는 애정의 근원은 바로 그가 우리네 3,40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기 때문. 성공을 위해 밤낮 없이 달리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지는 장면들은 이제 낯선 장면이 아니다. “장준혁을 살려내라”는 거센 요구는 바로 그런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장준혁이 달려온 길은 이 시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어떻게 대변했을까.

장준혁도 이주완(이정길) 과장이 딴 맘을 먹기 전까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개원의도 아니고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모두가 기피하는 외과에서 10여 년을 숨죽여가며 주는 봉급 받아가며 살아온 샐러리맨. 실력은 최고지만 조직의 생리가 어디 실력만으로 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조직이 거탑의 모양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로 갈수록 숫자는 줄어드는 그 구조는 밑에서 올라가기는 힘들어도 위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막기는 쉽다. 그러니 아직 현역인 이주완 과장의 눈밖에 난 장준혁의 선택은 생존을 위해 당연한 것이다.

거탑의 구조가 갖는 생리는 오르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것. 가만히 있는다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인사철에 누락된 자신을 현상유지로 받아들이는 샐러리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향한 질주는 사실 생존을 위한 강한 몸부림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면으로 보면 장준혁은 그래도 운 좋은 인물이다. 적어도 그런 상황에 접했을 때, 현실에서라면 그저 고개 숙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에게는 뒤를 밀어주는 든든한 백(장인이나 아내 같은)이 존재했다.

그렇게 해서 오른 거탑의 꼭대기에 서면 더 많은 잔인한 결정들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현실. 그의 위치는 윤리적 결정보다는 실리적 결정을 해야한다. 장준혁은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꼭지점에 존재하는 자는 앞만 보고 달려야지, 옆도 쳐다보고 또 뒤도 돌아보고 하면 조직 전체가 둔화된다. 문제는 어느 순간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본분을 잊는 순간에 발생한다. 여기에 물론 극화되어 과장된 캐릭터지만 늘 조직이라면 존재할만한 염동일(기태영) 같은 인물이 엮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미 벌어진 사건은 조직의 차원에서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것은 조직의 차원이 들어감으로써 인간적인 판단은 결여된다.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패한 장준혁이 가졌을 상실감의 깊은 근원 속에는, 단지 패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조직이란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윤리적인 선택마저 해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암은 그런 심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몸의 반응처럼 읽힌다. 성공의 뒤안길에 나타나는 죽음의 그림자. 그것은 저 ‘성공시대’라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그랬던 것처럼 욕망의 끝으로 나타나는 징후이다.

그러므로 장준혁의 죽음으로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의는 이긴다’같은 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왜 그가 죽어야 했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왜 그토록 성공에 목말라 했나 하는 질문으로, 또 어째서 그런 비윤리적인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는가 하는 좀더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것은 거탑의 구조 속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하는 사회, 그 거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별의 별 짓을 다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라곤 갑작스런 사망선고 같은 허망함뿐인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것이 할 짓 못할 짓 다 해가며 거침없이 거탑을 향해 질주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준혁에게 숙연해지는 이유다. 고인에게 명복을. 이 땅에 그처럼 살아가다 끝을 보아버린 모든 샐러리맨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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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준혁, 이 시대 샐러리맨의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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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12 09:04
  2. 대한민국에서 하얀거탑같은 드라마가 제작될 수 없는 이유

    Tracked from YOUNGHO PARK's BLOG  삭제

    1. mbc 드라마 하얀거탑이 막을 내렸다. 마지막 에피소드 20을 보고 정말 미칠듯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길이 없었다. 드라마에 너무 몰입해서 시청했던 한 시청자로서, 그리고 미드로 높아질대로 높아진 내 눈과 귀를 한국드라마가 150퍼센트 만족시켰다는 자체가 나에겐 엄청난 감동이었다.2. 사실 이전부터 그런 생각은 해왔는데, 우리나라 드라마가 맨날 출생의 비밀에 신데렐라 스토리, 재벌2세, 삼각관계만 나오는 건 '드라마 기획, 제작, 촬영 수..

    2007/03/13 04:02
  3. 2007년 최고의 드라마 하얀거탑 (한국판과 일본판 비교)

    Tracked from 살아가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삭제

    2007년 상반기 각종 매체에서 엄청나게 요란했던 드라마, (너무 사실적이라서) 의사들이 무서워서 못본다던 드라마, 드라마 안본 사람도 장준혁 이름 석자는 외우게 했던 드라마, 하얀 거탑 올해가 끝나가는 아직까지도 최고의 드라마라고 언급되는 걸 보면 대단하긴 대단했나보다. 나는 본방 때는 바빠서 못보고 끝난지 한참 후에 봤지만 올해가 지나기 전에 함께 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낀다. 제목을 거창하게 한국판 VS 일본판 비교라고 쓰긴 했지만 조목 조목 비..

    2007/12/31 11:08

전문직 드라마의 이유 있는 선전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려 조금은 풀어진 듯한 모습으로 건물로 들어서는 남자. 그를 전날 길거리에 우연히 만났던 말단 여직원(하지만 늘 굳건하고 씩씩한 우리의 여주인공!)이 막 회사로 들어서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말을 건다. 옆에서 수행하던 비서들이 제지하면서 여자는 그가 이 회사 총수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된다….

식상한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 한 때는 한류의 한 공식처럼 통용되던 이 구조는 작년 한 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냉대를 받았다. 이로서 제작자들은 알게 되었다. 적당한 삼각 사각구도의 멜로 라인과 몇몇 스타들을 캐스팅하면 무조건 된다는 안이한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 들어 새롭게 선보인 것이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같은 병원드라마가 그것이다.

트렌디는 가고 전문직이 뜬 이유
이제 통상적이고 구태의연한 구조의 드라마에 왠지 눈이 가지 않게 된 것은 달라진 매체 환경의 영향이 크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힘이다. 인터넷이란 매체는 무엇이든 그 속에 담겨질 때 매니아화되는 경향이 있다. 초창기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를 접해본 몇몇 매니아들이 그 저변을 꾸준히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자 그 영향은 네티즌들 전체로 파급되었다. 방송과 인터넷이 공존하는 시대에 이런 영향은 곧바로 드라마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꾸어버렸다. 몇몇 식상한 국내 드라마에 대한 비판과 외면은 거세졌고 그러자 방송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직 드라마(진정한 의미의)가 등장했고 그 첫 번째 타석에 선 것이 병원드라마이며, 이것은 이어서 형사드라마 같은 분야로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반응은 예상대로 뜨겁다. 미드와 일드를 보며 우리에게도 저런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우리나라’라는 딱지가 붙은 전문직 드라마에 어찌 애정이 없을 수 있을까. ‘하얀거탑’ 같은 경우 실제 시청률은 15∼20% 사이에 머물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한 파괴력은 50%를 넘기고 종영했던 ‘주몽’에 못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외적인 조건만큼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하얀거탑’, 전문직 드라마로 조직을 말하다
장준혁(김명민)이란 천재 외과의사의 성공을 향한 무한질주를 담은 ‘하얀거탑’. 병원드라마의 뚜껑을 열어보니 거기엔 정치가 있었다. 병원 내에서 외과과장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다툼이 그것이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 그 세계는 선도 악도 없는 곳. 바로 우리들이 사회에서 몸담고 매일 살아남기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조직’이라 불리는 곳이다. 병원이란 공간이 우리들이 경험하는 조직이란 공간으로 환치되자 거기 서 있는 장준혁은 모든 샐러리맨들의 욕망을 부여받은 캐릭터가 된다. 때론 비열하고 비정한 그의 무한질주는 그래서 용납된다. 스포츠카와 성공, 돈, 권력 같은 것을 추구하는 장준혁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조직에 몸담은 이들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이 드라마가 리얼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병원사회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얀거탑’에서 그려지는 병원 사회의 모습은 오히려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단 한 사람 꼭지점에 있는 외과과장이 전체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우리네 병원의 모습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리얼함이란 바로 조직의 리얼함을 말하는 것. 바로 이 부분이 전문직 드라마로서 ‘하얀거탑’을 성공작으로 만든 주요인이다.

‘∼봉달희’, 전문직 드라마로 인간을 말하다

한 템포 늦게 시작한 ‘외과의사 봉달희’에 대한 초기 반응은 혹독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비판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가 ‘하얀거탑과는 달리’ 멜로가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비판은 ‘하얀거탑’의 영향으로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것이 과거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데서 발생했을 뿐 근거는 희박한 것이었다.

두 번째 비판은 아무래도 원작 없는 ‘토속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의심한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만큼 일드, 미드에 익숙한 매니아들은 우리가 그런 드라마를 순전 우리 원작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데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이 드라마는 우리 식의 멜로적 상황에, 의사라는 특정 직업이 갖는 고민, 여기에 보편적인 생명에 대한 질문들이 겹쳐지면서 어떤 면으로는 우리 식의 전문직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병원에서 통상적으로 보던 의사의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의사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자 환자의 생과 사를 다루는 인간이자 의사란 양면성이 부딪치면서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던져진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의사인가 인간인가’, ‘의사로서의 선택인가 인간으로서의 선택인가’, ‘생명에 우선순위가 있나’ 등등 그 질문은 사뭇 진지하다. 그러나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드라마의 분위기는 정감 가는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에피소드로 인해 경쾌해진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전문직 드라마가 결국엔 가야할 인간에 대한 이야기, 즉 본질에 접근하는 ‘본격 전문직 드라마’라 할만하다.

디테일을 통해 하는 현실이야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섬세해진 디테일이다. 이것은 과거 의사가운 입은 사람들의 멜로드라마였던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해서 말하는 그런 정도의 디테일이 아니다. 아예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전문용어들이 대사로 쏟아져 나오고 수술장면에 있어서는 실제 의사들이 참여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그 에피소드에 있어서 병원이나 의사 같은 특정 상황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디테일들이 풍부하다. 이것은 새로운 전문분야의 재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의사라는 성역의 이면을 훔쳐보는 것에 어찌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놀라운 디테일이 말하려는 것은 그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 결국 전문직 드라마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디테일을 파고들지만, 그것을 통해 결국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얀거탑’은 조직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의 로망을 다루고 있고, ‘외과의사 봉달희’는 인간으로서 선택 앞에 고민에 빠진 의사를 다룬다. 그러니 전문직 드라마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저네들의 세상’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디테일을 통해 보여주는 현실이야기. 이것이 전문직 드라마가 각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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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는 현실적이고 소수는 비현실적인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말은 최소한 ‘하얀거탑’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 같다. 최근 쏟아지는 의견을 보면 캐릭터에 대한 현실성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수를 차지하기 때문. 그 논란의 중심에 선 두 캐릭터가 있다. 이른바 내부고발자로 나선 최도영(이선균)과 염동일(기태영)이 그들. 선악의 차원을 넘어서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장준혁(김명민)을 필두로 한 여타의 캐릭터들에 비해, 이들의 선택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진정 비현실적인 캐릭터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들은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어찌 보면 더 현실을 제대로 말해주는 캐릭터라고 보여진다. 모두 권력과 돈을 향해 움직이는 조직 속에서 그렇지 않은 캐릭터의 존재는 당연한 것이다. 우리는 조직 속에서 어떤 선택의 순간들을 매번 경험하지만 조직 모두의 선택이 같을 수는 없다. 장준혁이 조직의 논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더 현실적인 것은 아니며, 또한 최도영과 염동일이 소수자들이 하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명인대 외과와 군대의 공통점
‘하얀거탑’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명인대 외과와 군대의 공통점. 첫째, 생과 사가 오가는 피 말리는 상황에 있다. 둘째, 상명하달.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셋째, 전쟁이 벌어지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이겨야 한다. 넷째, 조직의 꼭지점에 있는 몇몇을 위해 조직원들은 기꺼이 희생을 감수한다. 그것이 결국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다섯째, 부하직원의 희생(도덕적인 희생을 포함)에는 반드시 미래라는 보장이 따른다. 여섯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포기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소수자, 속되게 말해 ‘골통’들이 존재한다.

그 소수자들이 주장을 굽히지 않는 대가로 오는 것은 처절한 보복이다. 염동일이 그처럼 두려워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조직으로부터의 따돌림과 징계, 부적응자라는 낙인은 사회생활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되는 두려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양심선언’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양심을 저버림으로 해서 스스로 겪을 심적 고통이, 조직이 가할 고통보다 더 앞서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준혁이 최도영의 집에 숨어있는 염동일을 찾아와 하는 대화 속에서 엿볼 수 있다.

“무엇 때문에 그랬냐”는 장준혁의 질문에 염동일은 “힘들었어요! 마음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라고 말한다. 그러자 장준혁은 역시 조직의 두려움을 보여주어 염동일을 회유하려 한다. “마지막 기회야. 의사 그만 할래?”라고 되묻는 것이다. 장준혁은 돌아서 나오며 마지막까지 “염동일 가자!”는 명령 투의 말로 저 조직을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지금 제 모습에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라 말하는 염동일은 조직의 두려움을 넘어서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이다.

양심선언을 한 소수자라는 문제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양심선언을 하는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2007년 1월 한국일보에서 발표한 공익제보자 20인의 전화 인터뷰 결과가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제보자 중 90%가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그중 60%는 심지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을 정도라 답했다. 그 이유는 제보를 통해 당한 집단 따돌림, 징계와 해고, 오명 씌우기, 공갈 협박 등, 조직의 가혹행위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양심선언을 한 이들에게 박수를 쳐주기보다는 오히려 비난을 가했다는 것.

최도영과 염동일이란 캐릭터에 대한 비현실 논란은 바로 이점에서 기화한 것이 아닐까. 문제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인 게 아니고, 그들이 ‘양심선언을 한 소수자’라서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골통’이라 부르는 그들 말이다. 이 점을 뒤집어서 보면 왜 그다지도 장준혁이란 캐릭터가 ‘대단히 현실적’이라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장준혁, 그는 바로 조직 속에서 양심보다는 현실을 선택하면서 더러워도 버텨야 하는 대다수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준혁이 잘못됐고 최도영과 염동일이 옳은 일을 한 것이라는 것에 이견을 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조직을 경험했고 그 쓴맛과 단맛을 알고 있다. 소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장준혁이 했던 것과 유사한 선택들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가끔씩 최도영과 염동일 같은 사람들이 조직에 나타난다. 그들은 위협적인 존재들이다. 모두 암묵적인 동의로 행해져왔던 다수의 비양심적 선택들에 대해서 그들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러니 다수의 시선이 고울 리가.

비현실적으로 보고 싶은 그들
최도영과 염동일이란 캐릭터에 쏟아지는 비현실 논란은 바로 이 다수가 내부고발자를 목격했을 때 벌어지는 양상과 유사하다. 우리가 그들 캐릭터를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속내에는 ‘비현실적으로 보고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이것은 어쩌면 시청자뿐만 아니라 드라마 제작자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른다. 좀더 리얼하게 현실적으로 공감할만한 캐릭터를 그려내기 위해서 장준혁을 전면에 배치하고 최도영의 비중을 낮춘 것은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의 이런 심리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닐까.

드라마는 때론 ‘현실’보다는 ‘현실이었으면 하는’ 것을 극화해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이 실제 현실이건 아니건, 장준혁은 바로 드라마 속에서 현실이었으면 하는 캐릭터였던 것이고, 최도영과 염동일은 그 반대였을 뿐이다. 현실이 아니었으면 하는 캐릭터라고 해서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하얀거탑’의 캐릭터 현실성 논란은 우리사회의 다수와 소수, 조직의 동조자와 내부고발자를 보는 시선에서 비롯한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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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이란 환타지를 위해 버려진 캐릭터들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 끝에 외과과장이 된 장준혁(김명민)의 무한질주를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느껴졌던 최도영(이선균). 그러나 최도영이란 캐릭터는 아직까지도 장준혁의 까칠한 눈빛 속에 가려져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소송을 포기하려는 고 권순일씨의 처를 막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갈 때만해도, 또 거기서 장준혁에게 “왜 내가 네 말을 따라야 하는데? 나도 내 소신대로 해.”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법정에 선 최도영의 모습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장준혁 vs 최도영이란 대결구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데 최도영이란 캐릭터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기대감 → 실망감’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 초기부터 내내 있어온 것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명민의 카리스마 연기가 더 돋보여서가 아니다. 한 회 분량에서 거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김명민과 잠깐 잠깐씩 등장하는 이선균을 같은 선상에 놓고 연기력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것은 캐릭터의 성격이라든지 그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연기자 같은 캐릭터 내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캐릭터의 비중을 설계할 때부터 의도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최도영은 장준혁의 카운터 파트로 설정되지 않았다. ‘장준혁 vs 최도영’이라는 대결구도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드라마가 캐릭터를 그려내는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모든 카메라의 시선은 장준혁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장준혁이 그냥 주인공이 아닌 ‘악역을 해야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캐릭터의 경우, 그 주인공이 왜 그렇게 되었나가 드라마 전편에 깔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악마적인 캐릭터 중간에 간간이 인간적인 고뇌 같은 모습을 끼워 넣어 자신이 이런 이전투구를 하는 것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대부분 범법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영화에서 캐릭터를 세우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니 이주완(이정길) 과장과의 초기 대결구도는 장준혁의 이런 캐릭터를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설정이다. 장준혁은 여러 번 “내가 왜 이렇게 외과과장이 되려고 하는 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드라마는 가끔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하면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 속시원한 이유를 말해주진 않는다. 막연히 배경도 돈도 없는 집에서 어렵게 자라 성공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인상만을 줄뿐이다. 그러나 3대째 의사집안인 이주완이 장준혁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설정이 엮이자 이 막연한 설정은 힘을 발휘한다. 시청자들은 기꺼이 장준혁의 성공을 위한 무한질주에 동참하게 된다.

최도영이란 캐릭터를 비호감으로 만드는 것들
그런데 반면 최도영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었을까. 장준혁이 수술대 앞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수술을 하고 있을 때, 최도영은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초반 드라마에서 최도영이 맡은 최대의 역할은 소아암 환자 ‘진주’를 돌보는 일이었다. ‘하얀거탑’에서 환자가 보이지 않은 것은 보다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던 최도영을 초반부에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진주에게만 집착하는 최도영이란 의사 캐릭터는 비현실적이고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런 캐릭터가 진지한 얼굴로 생명이니 뭐니 하는 ‘공자님 말씀’을 하는 모습은 장준혁의 카운터 파트로서 ‘선한 의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