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이 남긴 여운, 진정한 적폐청산이 가능하려면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이 종영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즌2를 요구하는 등, 이 작품이 엔딩까지 남긴 여운은 지금도 계속된다. 첫 회부터 이토록 숨 가쁘게 달려온 작품이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엔딩까지 보여줬고, 또한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에 남긴 울림도 결코 작지 않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비밀의 숲>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마지막 회에 이르러 이 모든 사건의 설계를 했던 장본인이 이창준(유재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비밀의 숲>이 하려는 이야기는 확실해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정관계와 검찰이 엮어진 오래된 유착과 그로 인해 결코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적폐청산의 문제였다. ‘밥 한 끼’로 시작하는 관계들이 얽혀 거대한 욕망으로 변질되며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되는 괴물들. 한두 명의 검사가 뜻을 갖는다고 해도 결국 그들만 배제되는 ‘비밀의 숲’. 그 비밀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비리의 숲’. 

이 문제를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해결해보기 위해 이수연 작가가 필요로 했던 건 이창준 같은 자기희생까지 해버리는 괴물과 심지어 뇌수술로 인해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이 제거되어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황시목 같은 검사였다. 특히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평하게 상황을 바라보는 황시목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은 적폐청산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 한계를 넘어설 정도의 냉철함을 가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준다. 

결국 이 모든 적폐들이 쌓이게 되는 그 시발점은 <비밀의 숲>이 말했던 것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하게 되는 ‘밥 한 끼’가 만들어내는 부적절한 관계다. 그 관계에서부터 청탁이 시작되고 그 청탁은 법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검사들의 본질을 흔들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린 본질은 가해자들의 죄를 덮어버리고 대신 무고한 희생자들을 남긴다. 

그래서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황시목 같은 다소 과장된 캐릭터가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폐쇄된 조직으로서 여전히 수장의 한 마디가 법이 되는 검찰과, 그 안에서 무수히 많은 밥 한 끼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검사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들. 그 뒤엉킨 욕망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일이 이만한 무감함이 아니면 해낼 수 없다는 걸 이수연 작가는 통감했으리라. 

검사가 등장하는 많은 드라마들이 있었지만 황시목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세워뒀다는 사실은 이수연 작가의 만만찮은 공력을 실감하게 해준다. 이 신인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작가는 캐릭터가 바로 주제의식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밀의 숲>에는 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허투루 처리된 캐릭터가 없었다. 

모두가 상황에 따라 ‘애매하게’ 움직이는 ‘인물들의 숲 속’에서 황시목처럼 흔들리지 않는 인물이 그 숲을 바꾸는 ‘첫 번째 나무’로서 나아갈 수 있었던 그 이유로 엄청난 두뇌나 힘이 아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의지’를 제시했다는 건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을 희구하는 요즘, <비밀의 숲>의 이런 문제제기는 한번쯤 모두가 생각해봐야할 일이 아닐까 싶다.

<1> 날게 한 박보검, <런닝맨> 주목시킨 차승원

 

요즘 KBS로서는 박보검을 업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12>19.9%(닐슨 코리아), 18.2%, 17%로 동시간대 주말 예능 시청률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바로 직전 <12>의 시청률이 14.7%까지 떨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이건 거의 박보검의 매직이라고 불러도 될 만하다. 게다가 박보검은 월화 사극 대전에서도 그가 출연한 <구르미 그린 달빛>16.4%로 경쟁작인 <달의 연인>7%를 두 배 이상 앞질렀다. 이 정도면 박보검은 KBS보검이라 불려도 될 정도다.

 

'1박2일(사진출처:KBS)'

한편 SBS <런닝맨>은 요즘 한참 차줌마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승원을 게스트로 세웠다. 시청률은 6.1%로 지난 회 5.5%보다 상승했다. 극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지금의 <런닝맨>을 생각해보면 차승원 게스트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날 있었던 <런닝맨>손 맛볼 지도라는 게임의 콘셉트는 그리 새로운 시도가 아니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차승원 주연의 <대동여지도>를 상당히 배려한 제목에, 그저 늘 하듯이 편을 나눠 장소를 바꿔가며 대결하는 게임 정도.

 

물론 <삼시세끼>의 차줌마로 주목받는 차승원인만큼 그의 요리 실력을 볼 수 있는 게임이 들어갔다.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요리 장면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런닝맨>의 차승원에게서는 <삼시세끼>의 차줌마 캐릭터가 더 강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런닝맨>은 아예 유해진 이야기를 꺼내 <삼시세끼>에서의 차승원 이미지를 프로그램에서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12>이 무려 3회에 걸쳐 박보검을 게스트로 활용한 건 분명 결과적으로 보면 괜찮은 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12>은 물론이고 <구르미 그린 달빛>까지 자연스러운 홍보효과를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 박보검의 출연 하나로 이만큼 극적인 시청률 상승효과를 가져왔다는 건 <12>이 여전히 힘이 있는 프로그램이면서도 무언가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일이다.

 

<12>은 그나마 멤버들의 케미가 살아나면서 비슷비슷한 소재의 여행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쇼의 재미가 살아있지만 <런닝맨>의 경우에는 너무 소소한 게임의 연속으로 인해 시청자들의 관심 자체가 멀어진 상태다. 차승원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래서 그 자체만으로도 <런닝맨>에 없던 관심을 만들어냈다.

 

잘 나가는 프로그램은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과거 <12><런닝맨>은 거기 출연하기 전에는 잘 몰랐던 게스트들을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다. 매력적인 게스트가 들어와 오히려 프로그램에 힘을 실어주는 상황이 된 것. 그것도 박보검과 차승원 모두 그 캐릭터를 주목시킨 건 KBSSBS가 아닌 tvN이다. <응답하라1988><꽃보다 청춘>을 통해 박보검의 바른 이미지가 주목되었고, <삼시세끼>를 통해 차승원의 매력적인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박보검 매직과 차승원 효과의 이면에는 그래서 지금 현재 지상파 주말예능이 처한 상황이 드러난다. 한 때는 전체 예능을 이끌어갈 만큼 뜨거웠던 이들 프로그램들이 어쩌다 지금은 관성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게스트의 힘이 발휘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목매는 모습은 지상파 주말예능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좋은 캐릭터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갔나.

눈 높아진 시청자들, 지상파 새로운 제작방식 고심해야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넘어섰다. 언젠가부터 지상파 주중드라마에서 그것도 현대극으로 30% 시청률은 도달할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어 왔다. 그래서 이제는 10%만 넘겨도 괜찮은 성적이라 여겨졌고 20%를 넘기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이 깨졌다. 지상파 주중드라마 현대극이라고 해도 잘 만들어낸다면 30% 시청률을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종영한 tvN <시그널>은 마지막회에 최고 시청률인 12.5%(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케이블에서 그것도 멜로 하나 없는 스릴러 장르물로 이런 시청률을 낸다는 것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렇게 잠시 눈을 떼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드라마로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그널>은 케이블 드라마나 장르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공이 말해주는 건 한 가지다. 세상에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란 없다는 것. 잘 만든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이 당연한 공식이 공식대로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만든 드라마보다 오히려 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익숙한 틀에 자극만 잔뜩 세운 막장드라마들이 30%대 시청률을 냈던 게 실제 현실이니 말이다.

 

지상파 시청률을 견인하는 고정 시청층은 그래서 마치 허수처럼 여겨졌다. 시청률이 완성도를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청층의 취향만을 반영하는 것처럼 지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보통의 시청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구매력을 가진 2039 세대의 시청률이고 화제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막장드라마에 호응하는 시청세대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 현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드러내준 것처럼 새롭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을 보여주는 시청층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버리며 놀라운 성과를 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제작방식이 기존의 드라마 제작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제작규모가 워낙 커서 영화제작사인 NEW가 합류했고 이를 통해 중국의 투자를 받아 사전 제작되었다. 물론 방영도 한국과 중국이 동시에 방영했다. 결과는 양국이 모두 큰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 시청률 30%를 넘긴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도 <별에서 온 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그널><미생>에서도 확실히 느껴진 것이지만 영화 제작인력의 투입이 드라마의 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CJ가 해왔던 무비드라마는 그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시그널>은 영화적 연출과 완성도 높은 대본이 아예 시청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을 통해 오히려 시청률까지 갖게 되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발견해냈고 그 성향이 새로움과 좀 더 높은 완성도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완성도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필요하다면 영화적인 제작방식을 통한 연출의 변화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고정관념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데서 굳어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제 향후의 드라마 판도를 가를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야심찼던 <그녀는 예뻤다>, 왜 아쉬움이 남을까

 

아마도 <그녀는 예뻤다>는 올해 MBC가 남긴 최고의 드라마가 아닐까. 시청률면에서도 화제성면에서도 이 드라마는 놀라운 기록들을 남겼다. 첫 방 시청률 4.8%(닐슨 코리아)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매회 시청률을 경신하더니 13회에서는 자체 최고 시청률인 18%를 찍었다. 어디 그뿐인가. 콘텐츠 파워지수 3주 연속 1(CJ E&M/닐슨 코리아), 프로그램 몰입도 1(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녀는 예뻤다(사진출처:MBC)'

이런 시청률의 급상승이 가능했던 건 이 드라마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물이라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펙없는 청춘의 자화상을 담아내는 현실적 요소들이 들어 있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즉 처음 이 드라마를 제목만으로 접한 시청자들은 그것이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회가 거듭되면서 그 로맨틱 코미디에 부여된 사회적 현실에 공감대가 점점 커질 수 있었다.

 

이게 가능했던 건 주근깨투성이의 김혜진(황정음)이라는 이 양자를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캐릭터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즉 김혜진은 자라면서 주근깨가 생겨 외모가 역변한 인물인데다, 동시에 집의 몰락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스펙도 별로 좋지 않은 인물이다. 이 캐릭터는 따라서 로맨스로 풀면 첫사랑 앞에도 못나서는 안타까운 사랑의 주인공이 되지만, 이 드라마의 또 다른 배경인 진성매거진이라는 회사의 인턴이라는 입장으로 풀면 늘 구박받고 오해받는 전형적인 을의 주인공이 된다.

 

그러니 시청자들은 이 두 가지 관점에서 김혜진이라는 인물의 성장을 바라게 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으로서 지성준(박서준)이나 김신혁(최시원) 같은 멋진 남자들의 사랑을 받기를 바라고, 그러면서도 진성매거진이라는 일터에서 그녀가 진가를 보여지길 원하게 된다. 따라서 이 그녀의 진가라는 건 외모와 상관없는 품성, 스펙과 상관없는 실력을 말해준다. 이러니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처럼 괜찮은 캐릭터와 잘 짜여진 이야기로 완성도 높게 그려지던 이 드라마는 후반부에 이르러 어떤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김혜진이 화장으로 주근깨를 지우고 영 모스트스럽지 못한 스타일을 버린 채 잘 꾸미고 회사에 다시 나타나던 시점부터다. 그것은 마치 이 드라마가 지금껏 해왔던 사람의 진가에 대한 좋은 관점을 덮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시청자들은 주근깨라도 당당하고 스펙 없어도 일 잘하는 김혜진에게 매료됐던 것이기 때문이다.

 

급물살을 탄 멜로와 너무 빨리 밝혀져 버린 정체는 그래서 일찍 터트린 샴페인처럼 뒷맛을 밍밍하게 만들었다. 16부작이지만 일찌감치 11부에 해소되어버린 갈등요소는 나머지 5회를 그저 질질 끌려가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보통의 드라마였다면 그 5회 분량은 마지막회 한 회면 충분할 소재의 이야기들이었다. 결국 이야기의 부재는 드라마를 온전히 멜로에만 할애하게 했다. 초반의 현실을 환기시키는 청춘의 자화상으로서의 김혜진 캐릭터는 이 후반부에 과도하게 질질 끌려간 멜로에 의해 희석되어버렸다.

 

꽤 좋은 성적과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는 작품이라서 더욱 그럴 것이다. 만일 초반의 흐름처럼 후반까지 쉬지 않고 흘러갈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야심찼던 시도들이 더 빛을 발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녀는 예뻤다>는 좋은 작품이었지만 그래서인지 그만큼의 큰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 되었다



<위플래쉬>, 열정이 사라진 시대에 예술이란

 

드럼이란 악기가 이토록 매력적이었나. 암전된 화면에 마구 두드려대는 드럼 소리가 고조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위플래쉬>라는 영화는 그 긴장감을 쉴 틈 없이 끝까지 밀어붙이는 영화다. 최고의 드럼 연주자가 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앤드류와, 천재의 열정이 사라진 시대에 천재를 끄집어내기 위해 혹독한 한계를 제자들에게 시험하는 플렛쳐 교수의 재즈 음악을 사이에 둔 치고 박는 한판 승부는 관객의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사진출처: 영화 <위플래쉬>

교육 윤리의 잣대로 바라보면 <위플래쉬>는 대단히 불편한 영화다. 플렛쳐 교수의 스파르타식 밀어붙이기는 자칫 그 선을 넘게 되었을 때 제자에 대한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앤드류는 플렛쳐 교수가 만들어내는 그 스트레스 속에서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온몸이 땀으로 샤워를 하는 것조차 스스로 감수해내려 한다. 실로 그 스트레스는 한계 속에서 인간의 천재성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힘으로 작용하지만 그렇게 만나게 된 천재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음악의 희열을 경험하게 한다.

 

하지만 그런 교육 윤리의 불편한 잣대를 벗어나 <위플래쉬>를 바라보면 이 단순하면서도 굵직한 영화의 미적 체험에 놀라게 된다. 영화는 드럼처럼 청각을 두드리다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더니, 온몸에 분노의 아드레날린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그것이 폭발되는 강렬한 느낌을 제공한다. 재즈는 이 영화의 중요한 반쪽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미화하거나 아름답게 꾸미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앤드류라는 또 하나의 드럼이 겪는 고통스런 예술의 과정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눈치 챘겠지만 <위플래쉬>에는 두 개의 드럼이 존재한다. 하나는 앤드류가 치는 드럼이고, 또 하나는 플렛쳐 교수가 두드리는 앤드류라는 드럼이다. 플렛쳐 교수는 앤드류를 두드려 놀라운 재즈 연주를 끄집어내려 한다. <위플래쉬>라는 영화의 제목은 더블 타임 스윙 주법으로 완성된 영화 속 재즈 곡의 제목이지만, ‘채찍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플렛쳐 교수는 전설적인 재즈 드러머 버디 리치의 탄생이 그의 열정을 끄집어낸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버디 리치를 끝까지 몰아붙이게 하고 거기서 그만의 음악적인 성취를 만든 것이 누군가의 채찍질덕분이라는 것. 그는 이렇게 벼랑 끝까지 자신을 밀어붙이는 채찍질이 사라지면서 진정한 재즈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한다.

 

<위플래쉬>는 열정이 사라진 시대에 다시금 예술을 얘기한다. 그것이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힘겨운 과정을 겪어 완성되는가를 보여준다. 실로 재즈 드럼 연주라는 조금은 대중들에게 낯설 수 있는 소재를 갖고 이토록 강렬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건넬 수 있다는 사실은 <위플래쉬>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을 가늠할 수 있는 이유다.

 

심지어 달관세대라는 기괴한 표현까지 나오는 이 시대에 열정이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무언가 거대한 벽으로서 존재하는 플렛쳐 교수는 결코 바람직한 인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 극한의 스트레스 속에서 그 상황을 오히려 역전시켜 분노와 광기를 예술로 뽑아내는 앤드류의 열정은 보는 이들의 피를 끓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제 앤드류가 스틱을 쥔다. 그리고 거꾸로 플렛쳐 교수를 향해 드럼 연주를 통한 채찍질을 날린다. 우리를 두드리고 몰아붙이는 것들이 우리를 한계로 몰아세울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들이 쥔 스틱을 내 손으로 쥐어야 하지 않겠는가. <위플래쉬>는 열정이 사라진 시대의 우리들을 재즈 드럼 연주라는 예술을 통해 채찍질의 고통을 뛰어넘는 희열을 맛보게 해주면서 그 안에 우리네 현실까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다. 이러니 입소문이 날밖에.

 

허지웅의 <진짜사나이> 폐지 촉구가 공정하려면

 

허지웅이 JTBC <썰전>을 통해 군대 이미지 세탁을 하고 있는 <진짜 사나이>는 폐지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을 진짜 재밌게 봤다그래서 더 확고하게 생각한 게 <진짜사나이>는 폐지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썰전(사진출처:JTBC)'

그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한 프로그램의 폐지까지 거론한 것은 그만큼 우리네 군대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에둘러 드러내는 일이다. 그는 우리 군대가 정말 엉망진창이라며 그런 실체를 희석시키고 대한민국 군대를 예능화시킨 프로그램을 보면서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보는 게 못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이 가진 이미지 세탁의 방식에 문제제기를 했다. 군 장병들은 엄격한 피해자임에 분명한데, “이 사람들이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는 식으로 예능이 보여주는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기자로서 충분히 제기할만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일련의 군 사태는 우리 군대가 거의 막장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가져올만한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사나이> 여군특집이 굉장한 화제를 이끌면서 이런 사안들마저 삼켜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허지웅의 문제제기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제기가 다른 프로그램도 아닌 <썰전>을 통해서 나왔다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미지 세탁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떠올리게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썰전>이기 때문이다. 강용석 변호사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은 법적인 문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이미지 세탁의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사안이다.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강용석 변호사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건 분명한 사실이니 말이다.

 

물론 강용석 변호사는 거듭 사과의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에 대해서 대중들은 여전히 진정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에 대해 말을 할뿐, 자숙의 시간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강용석 변호사를 계속 출연시키고 있는 <썰전>이 보여주고 있는 건, 잘못된 일을 해도 방송이 재미를 통해 그 이미지를 덮어버리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자인하는 일이다. 현재 <진짜사나이>가 갖고 있는 이미지 세탁의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이다.

 

이미지 세탁은 허지웅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출연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그가 강용석 변호사와 함께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은 그의 의도가 전혀 아니라도 그 자체로 강용석 변호사의 잘못을 상쇄시키는 역할로 작용한다.

 

<썰전>의 한계는 바로 이런 점에서 비롯된다. 즉 무언가를 공정하고 엄정하게 비판하려고 해도 스스로의 정통성이 문제가 된다는 점이다. 허지웅은 바른 소리를 했지만 그런 소리를 하는 와중에도 <썰전>이 그 이야기마저 누군가의 이미지 세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가수>, 가능성 있지만 보완해야할 것들

 

MBC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정작 이 프로그램이 국내에서는 고개를 숙였지만 중국에서 그네들 버전으로 만들어져 계속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 같은 외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나는 가수다>를 떠올리면 여전히 생각나는 무대와 가수가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첫 무대에 올랐던 이소라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앉아 조용히 바람이 분다를 불렀을 때의 그 감동, 백지영의 마음을 건드리는 그 절절한 목소리, 김건모의 애절하면서도 엉뚱하고 그러면서도 파워풀 했던 무대. 돌아온 임재범이 마치 짐승처럼 불러댄 남진의 빈 잔은 물론이고 비주얼 가수로 자리매김한 김범수의 님과 함께’, <나는 가수다>의 요정으로 등극했던 박정현이 부른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등등. 우리는 여전히 한때 <나는 가수다>가 만들어냈던 그 무대들을 하나의 추억처럼 얘기한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에서 시청자들이 기대한 것도 바로 그런 무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감도 큰 법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별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무대도 그다지 큰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효린이 애절하게 불러낸 박선주의 귀로<나는 가수다> 무대에 최적화된 더 원이 부른 백지영의 잊지말아요가 약간의 감흥을 만들었을 뿐, 다른 무대들은 그다지 임팩트가 보이지 않았다.

 

혹자들은 이렇게 된 이유를 가수에서 찾는다. <나는 가수다>를 부활시키려면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이소라 같은 가수들을 섭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분명 이 프로그램의 당장의 가능성은 보여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임시처방이 될 것이다. <나는 가수다>가 특정 가수들의 전유물이 된다는 건 특정한 무대에 묶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좀 더 많은 가수들이 이 무대에 올라 자신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어긋나는 일이다.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가 예전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연출 구성이 너무 밋밋했던 탓이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갖는 가수들의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그들의 이야기 또한 그다지 없었기 때문에 무대 역시 그만한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저 무대에 올라가 노래하고 내려오는 것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여타의 추석특집 음악방송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된 것은 편성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보여주려는 무대는 너무 많았던 것에서 비롯된 일이다. 7명의 가수가 한 곡씩 부르는 시간도 빡빡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먼저 자신들의 곡을 부르고 그 순위에 따라 메인 무대의 순서를 정하는 것으로 경연방식을 구성했다. 이렇게 되자 두 곡씩 그 짧은 시간에 담아내느라 보다 압축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즉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앞부분은 마치 사족처럼 보였고 오히려 긴장감을 흩트리는 시간이 되었던 것.

 

또한 야외무대에서 펼쳐진 경연은 노래에 대한 집중력을 그만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이브 무대의 공연은 현장에서 봤을 때 훨씬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집에서 TV로 볼 때는 그 감흥이 그만큼 느껴지기가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리는 야외에서 리액션이 중요한 <나는 가수다>의 무대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오히려 실내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면 좀 더 음 하나하나의 묘미를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는 정규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회적인 이벤트다. 그러니 그저 추석에 하는 쇼의 하나거니 하면서 넘겨도 될 문제다. 하지만 아쉬움이 더 깊게 남게 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은 분명히 다시 정규화해도 될 만한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 MBC 추석특집 <나는 가수다>8.2%(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타 방송사 프로그램들을 압도하는 수치다. 그만큼 대중들에게는 그 기대감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다.

 

최근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는 다양성 영화로 100만 관객을 넘기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기적이 가능했던 건 거기 음악이 있었고 그 음악의 묘미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는 그렇게 음악이 빛나는 순간들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다변화할 수는 없는 일일까. 만일 그것이 가능하다면 이 프로그램은 정규화해도 충분히 <비긴 어게인>이 보여준 음악의 기적을 다시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빠>, 아이라 한계라던 우려 어떻게 씻었나

 

<아빠 어디가>는 처음 화제가 되던 그 시점부터 줄곧 제기된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예능과는 달리 할 수 있는 미션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사실이었다. 초반 <아빠 어디가>는 그 날 잠을 잘 집 선택과 저녁거리를 아이들이 구해오는 미션 그리고 저녁을 해먹고 잠을 자면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침을 해먹는 미션 등을 반복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이러한 패턴의 반복은 금세 식상해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제작진은 아이들의 속내를 알아보는 몰래 카메라 설정이나 한밤중에 폐가를 다녀오는 담력 테스트 등을 미션으로 넣기도 했다. 그 자체로는 훨씬 높은 수위의 재미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았다. 미션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몰래 카메라는 아이들의 사적인 내면을 끄집어내는데다 자칫 어른들의 몰취미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현재 뒤돌아보면 <아빠 어디가>의 성장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단조로움은 사라졌고 매 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첫 두발 자전거 타기 같은 소재나 어른들이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흥부놀부전 같은 소재는 <아빠 어디가>의 이런 성취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들을 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찾아낸 결과다. 즉 어른들에게 자전거 타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지만, 아이들의 첫 자전거 타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 스스로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그 모습은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는 그 아이들이 성장할 때 하나씩 보여주는 순간들을 소재화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낯선 농작물을 밤에 함께 찾아다니는 미션도 또 농촌 일손 돕기에 참여하는 미션도 마찬가지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른들이 농촌에 가서 하는 이런 방송들을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다가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어찌 보면 기존에 어른들이 했던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도, <아빠 어디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나 무인도 체험, 또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하는 흥부놀부전 같은 즉석 상황극은 이미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해진 아이템들이지만 그래도 <아빠 어디가>에서는 특별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하나 체험해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아빠들에게도 일종의 성장을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아빠들은 아마도 훌쩍 커버린 모습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도 한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는 점이다. 든든한 맏형 민국이와, 겁은 많아도 솔직하고 순수한 윤후, 나이에 비해 의젓한 성선비 준이와 장난꾸러기 상남자 준수 그리고 효심 가득한 홍일점 지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이 된 것. 바로 이 정서적인 유대감은 <아빠 어디가>가 취하는 소재가 제 아무리 소박해도 그 스토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밑바탕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지 않은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이 가진 잘못된 편견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하다는 시선만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아빠 어디가>가 프로그램의 성장을 통해 보여준 이 아이에 대한 다른 시선은 그래서 우리네 틀에 박힌 교육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준다. 어른들의 틀에 가두지 말고 틀 밖의 가능성을 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무도>에 대한 호불호, 점점 골이 깊어지는 이유

 

역시 <무한도전>은 대단했다. 사실 일반인에게 온전히 메가폰을 맡기고 한 회 분량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보통 자신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도를 부탁해’에서는 ‘거장 이예준’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부족한 기획과 진행경험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만들어냈고, 지난 ‘간다간다 뿅간다’ 특집에 잠깐 나와 화제가 됐던 김해소녀들과의 화학작용을 통해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즉 이예준 군이 만드는 예능 자체(논두렁에서 미꾸라지 잡기)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미숙하고 불완전한 프로그램 제작에(그것도 초등학생에게!) 베테랑 MC들과 제작진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 자체가 웃음의 포인트라는 점이다. 일이 생각만큼 풀리질 않아 고민하고 또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이예준 군이 오히려 큰 웃음을 줄 수 있었던 건 부족한 것조차 오히려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김태호 PD의 능력 덕분이다.

 

안양예고 친구들이 기획해 진행한 ‘무한MT’ 특집 역시 소재로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건 늘 <무한도전>에서 여행가면 했던 아이템의 반복이 아니던가. 하지만 안양예고 여고생들 특유의 디테일한 연출 과정을 김태호 PD는 귀엽고 풋풋한 느낌으로 잡아냈고, 베테랑 MC들은 이 아이템의 핵심이었던 김해소녀들과, 학생과 아저씨 콘셉트로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통해 시청자들의 자연스러운 감정 이입을 만들어냈다.

 

즉 “잠깐 쉬어갈께요!”하고 말하며 슬레이트를 쳐도 그 슬레이트를 친 이예준 군이나 안양예고 친구들을 찍는 카메라는 계속 돌고 있었다는 것. 특집 소제목은 ‘무도를 부탁해’지만 사실은 그간 <무한도전>에 대한 무한 사랑을 보여준 팬들(그러니 아이템들을 줄줄이 외우고 어설퍼도 이런 제작에 뛰어들 수 있었을 게다)에 대한 일종의 감사를 표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팬덤에 보답하는 자리.

 

그런데 이 팬덤이라는 것이 <무한도전>의 최대 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때로는 한계로서 지목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특정 팬덤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정반대로 팬덤 바깥에 있는 일반 시청자들이 의도치 않은 소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무도를 부탁해’ 특집에 쏟아진 호불호는 그 단적인 사례다.

 

<무한도전>이 그간 해왔던 아이템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팬들에게 이런 기획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시청자들에게는 “왜 저들이 저럴까”하는 의구심을 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팬들의 환호는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을 넘어서 일종의 반발심까지도 만들어낸다.

 

너무나 공고한 팬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애정어린 비판조차 허락지 않는 듯한(물론 이건 일부일 것이지만) 분위기 또한 <무한도전>을 폐쇄적인 일종의 성역으로 인식시킴으로서 부정적인 시선을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성역이란 것이 그 자체로 피아를 구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만들어지면 그 내용이 무엇이든 공격과 방어가 오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팬덤은 의도치 않게 프로그램의 발목을 잡는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팬덤을 소유한 <무한도전>은 그만큼 공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다. 이것은 프로그램의 성장기에는 엄청난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8년 넘게 지속된 프로그램에서 요구되는 것은 그 팬덤의 세계에 갇혀 <무한도전>의 역사를 반복적으로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8년을 위해 좀 더 과감하게 그 문을 개방하는 자세가 아닐까.

 

‘무도를 부탁해’ 특집은 그래서 <무한도전> 팬덤을 확인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만들어내는 베테랑들의 능력을 발견한 자리이면서, 동시에 새로움과 팬덤을 넘어서는 새로움에 대한 요구를 동시에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무한도전>에게 앞으로도 주욱 주말의 웃음을 부탁할 수 있기를.

<무도>와 <런닝맨>, 게임 예능의 딜레마와 해법

 

<무한도전> 뱀파이어헌터 특집은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남겼다. 새벽에 모여 뱀파이어를 잡는 미션이 부여되지만, 이미 그들 중 뱀파이어가 된 정형돈과 그에게 물려 역시 뱀파이어가 된 유재석이 있어 팽팽한 심리전이 만들어졌다. 뱀파이어인 정형돈과 유재석이 탄 차에 길이 올라타면서 그 심리전은 더 흥미진진해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존에 갖고 있던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 때문에 상황이 작위적으로 흘러가는 단점도 드러났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어쨌든 캐릭터 쇼이기 때문에 그런 단점조차 쇼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에는 <무한도전>이 게임 쇼를 할 때 나타나는 일종의 딜레마가 숨어 있다. 게임이라는 것은 그 방식이 익숙해지면 지루하거나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늘 낯선 형식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낯설다는 것 역시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초반부를 몰입해서 들여다봐야 후반부에서 더 강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초반부의 낯설음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결국 캐릭터다. 게임의 미션은 달라져도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는 익숙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이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미션을 이해해나가게 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도 필요하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무한도전>을 계속 보면서 그 캐릭터들을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저 어느 날 무심코 돌려 <무한도전>을 보게 된 시청자라면 이 초반부의 낯설음이 어떤 장벽처럼 여겨질 수 있다.

 

이것은 <런닝맨>도 마찬가지다. <런닝맨> 환생 특집은 그런 면에서 이번 <무한도전> 뱀파이어헌터 특집과 유사한 면을 보인다. <런닝맨> 환생 특집은 초반부에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80년 전의 시청에서 벌어지는 미션은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션이 일단락되고 80년 후의 다른 모습으로 환생한 런닝맨들의 이야기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누가 누구로 환생했는가를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과거의 인연이 현재의 환생과 미션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실로 기발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 흥미롭고도 놀라운 미션을 보여주는 <런닝맨>에서도 <무한도전>과 똑같은 딜레마가 생긴다. 즉 초반부의 설정이 다소 낯설고 따라서 지루하게까지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미션의 경우 80년 전의 상황 자체가 이 이야기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도입부가 너무 길게 느껴지는 단점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 예능이 TV라는 조금만 느슨해져도 순식간에 채널이 돌아가 버리는 매체와 부딪쳐 생겨나는 간극이다.

 

<무한도전>은 물론 늘 게임쇼를 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런닝맨>보다는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런닝맨>은 다르다. 아예 게임 버라이어티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매번 새롭고 낯선 게임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익숙해진 게임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껏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초능력자 미션이나 추리형식을 넣은 셜록 홈즈 미션 같은 독특한 서사의 게임은 <런닝맨>의 팬들을 열광시킨다. 하지만 새롭게 유입된 시청자들에게는 그 형식이 낯설다 못해 어렵게 여겨질 수 있는 단점도 있다.

 

최근 <런닝맨>은 한동안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단순한 게임 미션을 반복해왔다. 배경을 달리하지만 그저 일대일 혹은 팀 대결을 통해 승자를 가르는 단순한 게임들이었다. 그간 그토록 많이 나왔던 스파이 미션이나 배신 이야기는 한 동안 잘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는 위에서 언급한 게임 예능이 가진 딜레마에 대한 제작진의 고민이 깔려 있다. 마치 영화 같은 <런닝맨> 특유의 게임 미션이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고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시청층을 배려하려는 제작진의 고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런닝맨> 환생 특집은 최근 한 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새로운 게임 형식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1938년의 시청과 2013년의 시청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서사는 거기에 환생이라는 장치를 넣어(이름표만으로 이 장치가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훨씬 풍부한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예능이 아니라 마치 영화 같은 <런닝맨>의 진면목이 이번 특집으로 다시 드러난 셈이다.

 

물론 이런 시도는 시청률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청률을 고민하는 방송사의 중역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엄청난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과 <런닝맨>의 시청률이 15%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언젠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나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이 답보상태의 시청률에 만족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말은 그저 반복적인 미션에 자극을 붙여 시청률을 높이기보다는 그래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소홀하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런 다짐은 두 예능 프로에 대해 대중들이 보내는 절대적인 지지의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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