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이 그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아픈 우화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영화 <프리즌>은 감옥이라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도 될 법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그리는 감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런 장르물에서 봐왔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사회와 격리시킨 공간으로서의 감옥은 범법자들이 들락날락할 수 없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프리즌>은 그렇지 않다. 어찌된 일인지 이 곳의 죄수들은 필요하면 감옥을 빠져나와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스스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그러니 법을 집행하는 형사들의 입장에서는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감옥은 범법자를 가두는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 일종의 알리바이를 선사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프리즌>

<프리즌>이 이처럼 감옥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된 건 그 안에 익호(한석규)라는 실질적인 감옥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존재가 서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별장처럼 감옥에서 지내며 밖에서 들어오는 청부살인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그가 청부살인하는 대상은 정치스캔들에 결정적 증거를 제공할 증인이거나, 기업에 심대한 타격을 줄 비밀을 캐온 기자 같은 이들이다. 익호의 뒤에는 거대한 자본이 서 있다. 그 자본의 결탁이 있어 감옥은 익호의 세상이 된다. 자본이 더 큰 자본을 모으기 위해 저지르는 사건들 속에서 익호 같은 괴물과 그가 장악하는 이상한 감옥이 탄생하는 것. 

물론 이런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현실적이라고 믿을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즌>의 이야기는 너무나 쉽게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그것은 물론 익호 역할을 하는 한석규라는 놀라운 배우의 연기 흡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그리 낯설게 만 다가오지 않는 우리네 현실 때문이기도 하다. <프리즌>의 이야기는 극화된 면이 있지만, 감옥에서도 개털이니 범털이니 불리며 가진 것에 의해 차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니 이 황당할 수도 있는 설정의 이야기를 마치 우화를 보듯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영화는 굳이 이렇게 자본에 의해 타락한 감옥을 소재로 삼은 걸까. 거기에는 감옥이라는 공간이 과연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단죄를 묻는 최종점이 실질적으로 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깔려 있다. 흔히 엄청난 죄를 지은 권력자의 말로로서 심지어 전직 대통령마저 감옥에 들어가는 광경을 보지만, 대중들에게는 그것이 못내 제대로 된 단죄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감옥에 앉아서도 실질적으로는 세상을 제 맘대로 움직이는 권력자에 대한 음모 섞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넌 이 세상이 저절로 굴러가는 것 같지? 세상 굴리는 XX들 따로 있어. 난 이 안에서 그 XX들 내 손 안에 굴릴 거다.” 익호가 그의 오른팔이 된 유건(김래원)에게 던지는 이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감옥이건 사회이건 상관없이 지배하고 있는 건 자본이다. 그 자본을 굴리는 이들이 세상을 굴리고 있다. 

하필이면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시점이어서일까. <프리즌>의 익호라는 인물을 보면서 관객들은 저마다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을 게다. 그들은 과연 감옥에 들어가서 보통의 수감자들이 지내듯 똑같이 지내며 죄를 뉘우치는 참회의 시간을 가질까. 감옥조차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라면 그 누가 감옥을 두려워할까. “나를 가둘 수 있는 감옥 따윈 없어!”라고 소리치는 익호에게서 어쩌면 우리는 꽤 많은 얼굴들을 떠올렸을 지도 모르겠다.

<낭만닥터>, 이것이 진정한 엔딩의 정석

 

본래 20부작이지만 충분히 연장도 고려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시청률이 30%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었고 실제로 지금 같은 흐름으로 몇 회만 더해져도 그 수치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연장방송은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답답한 고구마 현실에 한 사발 사이다 같은 드라마였으니.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하지만 <낭만닥터 김사부>는 연장방송을 선택하지 않았다. 제 아무리 안팎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해도 제대로 준비해놓은 밥상이 20부작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상을 하려면 20부작에 맞춰진 꽉 짜인 밥상의 요리들을 흩트리거나 빼서 다음 밥상에 올리는 식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연장방송된 드라마들이 그러한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는 연장이 아닌 번외편을 선택했다. 기존에 준비한 이야기들을 마무리 짓는 대신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에서의 커튼 콜을 선택한 것. <낭만닥터 김사부>의 메인 스토리인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결구도는 그래서 김사부(한석규)가 이끄는 돌담병원의 승리로 마무리 되었고, 번외편에서는 김사부의 옛사랑인 이영조(김혜수)와의 이야기가 짧은 단편처럼 방영되었다.

 

그런데 그 커튼 콜이 본방만큼 짜임새가 있었다. 사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워낙 시국을 정조준한 김사부의 일갈에 시청자들이 목말라했기 때문에 본래 병원 이야기의 한 축으로 구성되어 있던 멜로 부분은 상당부분 그 분량이 적어졌다. 이야기는 그래서 김사부가 거대권력과 싸워나가는 쪽에 무게중심이 세워졌다. 강동주(유연석)는 그래도 이 싸움 속에서 도윤완(최진호)이 과거사를 끄집어내오는 과정을 통해 훨씬 더 많이 다뤄졌지만, 윤서정(서현진)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 건 이런 멜로 부분이 뒤로 갈수록 많이 다뤄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번외편은 이런 갈증을 제대로 채워주었다. 김사부와 이영조의 현재로 이어지는 옛사랑 이야기와 동시에 강동주와 윤서정의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병치되면서 묘한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과거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각자 의사의 길을 걸어가다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이 다시 돌담병원에서 재회하고 그 때를 회고하는 이야기는, 강동주와 윤서정 사이의 사랑과 평행이론을 이루는 것처럼 느껴졌으나 과거 그들과는 달리 이들은 현재의 사랑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어찌 보면 정의와 진실 같은 거대담론의 이야기들로 달려온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제 개개인들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번외편을 통해 들려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짧은 분량이고 말 그대로 본편이 아닌 번외의 이야기지만 본편의 스토리와 잘 연계되어 있었고, 또한 그 와중에도 에이즈 환자와 총상 환자 수술 장면 같은 <낭만닥터 김사부> 특유의 긴박감 넘치는 의학드라마의 색깔 역시 빼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짧게 등장했지만 본편부터 쭉 함께 해온 듯 자연스럽고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사한 김혜수의 출연은 번외편의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다. 그녀의 출연과 그녀가 오랜만에 다시 한석규와 호흡을 맞춘다는 소식 역시 시청자들의 기대를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보통 잘 되면 연장방송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잘 되던 작품을 망치는 길이기도 하다. 분량을 늘리면 드라마의 극적 흐름은 느슨해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작품의 긴장감도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낭만닥터 김사부>가 보여준 번외편은 드라마가 연장방송을 고민할 때 작품의 완성도도 지키고 시청자들의 요구도 충족시켜줄 수 있는 대안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보다 좋은 엔딩을 꿈꾼다면 <낭만닥터 김사부>처럼.

<낭만닥터> 고구마 시국 날려준 사이다 낭만 드라마

 

그냥 닥치고 조용히 내려와! 추하게 버티지 말고 내려와서 네가 싼 똥 네가 치워. 됐냐?” 어째서 이 평범해 보이는 대사는 이토록 다른 뉘앙스로 들리게 된 걸까. 이 대사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김사부(한석규)가 도윤완(최진호) 원장에게 던지는 일갈이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도원장은 과거 자신이 조작한 대리수술의 증거들을 김사부가 내놓자, 자신이 병원장직을 유지하게 되면 돌담병원을 외상전문센터로 해주겠다는 거래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하자 그럼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도 원장에게 김사부가 던지는 속 시원한 한 마디.

 

이 대사 한 마디에는 어째서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에 그토록 빠지고 열광했던가가 들어 있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지금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로 퍽퍽해진 고구마 시국에 잠깐이라도 속 시원함을 안겨준 사이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라마 안의 스토리에 맞게 돌아가는 대사이고 이야기이면서도 동시에 우리가 현 시국에 바라는 마음 그대로였다. 탄핵 국면과 특검 상황 속에서도 버티기에 돌입한 그들에게 던지는 일갈. 갈수록 추하게만 느껴지는 그 모습들로 더더욱 인상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들을 향한 김사부의 한 마디.

 

그러고 보면 <낭만닥터 김사부>는 의학드라마의 탈을 쓴(?) 현실 비판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 낭만을 소환해온 건 자본과 권력으로 움직이며 낭만이 사라져버린 세상에 그래도 끝까지 지켜야 가치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낭만 없는 세상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던진 김사부는 그 스스로 붙인 이름처럼 세상의 사부가 되었다.

 

그런 사부 밑에서 제대로 된 제자들이 생겨난다. 강동주(유연석)는 과거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으로 의사가 되고 그래서 성공해 권력을 잡으려 했지만 김사부를 만나 변화한다. 진정한 의사의 길을 깨닫게 된 것. 그저 금수저 경쟁자로만 생각했던 도인범(양세종)에게 함께 수술하자고 손을 내밀며 그 스스로 변화하자, 그 변화의 힘은 도인범 또한 변화시킨다.

 

아버지 도윤완의 권세 밑에서 자라온 도인범은 돌담병원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의 진면목을 찾았다고 아버지에게 털어놓는다. 거대병원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에게 그는 돌담병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하며 살아가겠다고 말한다. 아마도 이 부분은 <낭만닥터 김사부>가 전하는 잘못된 권력에 대한 가장 큰 복수일 게다.

 

아직 세상에는 의사 사장이 아니라 의사 선생이 되고 싶은 애들이 많다. 인범이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사부가 도윤완에게 던지는 이 한 마디는 실로 낭만적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건 의사의 본분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어느 샌가 생명을 담보로 돈 버는 일이 되어버린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의사라는 직업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게다. 검사도 판사도 심지어는 장관도 대통령도 곱씹어야할 이야기.

 

콘트롤 타워가 부재한 우리네 현실에 김사부는 하나의 해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흔히들 잘못된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곤 하지만, 진정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기 사는 사람들이 먼저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저마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노력하는 것.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 하는 것 같냐. 난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사람이 산다.” 드라마를 뚫고 나와 현 시국에 대한 일갈로 들리게 된 김사부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여전히 귓가에 쟁쟁하게 울린다

<낭만닥터 김사부>, 유연석과 강동주의 평행이론

 

잘 되는 드라마에는 좋은 캐릭터들이 많기 마련이고, 좋은 캐릭터들은 그걸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잠재력을 깨워준다.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동주라는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유연석이 그렇다. 드라마 속에서 강동주의 성장이 놀라운 것처럼, 그걸 연기해내는 유연석이란 연기자의 성장 또한 놀랍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아버지가 수술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신 것에 대해 울분을 터트리던 강동주라는 아이는 어느 새 훌쩍 자라 의사가 되었고, 힘이 있어야 진실도 밝힐 수 있다며 성공을 꿈꾸었다. 하지만 기회를 잡기 위해 무리하게 한 수술의 실패로 인해, 거대병원에서 돌담병원으로 좌천된 그는 김사부(한석규)를 만나게 되면서 의사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게 된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갖고 있는 강동주의 이야기는 고스란히 연기자 유연석이 걸어온 길과 맞닿는 면들이 있다. 유연석은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그다지 빛을 보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tvN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역할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꽃보다 청춘> 같은 예능에서는 확실한 존재감을 보였지만, <맨도롱또똣>에서는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다.

 

당시 유연석에게서 느껴지는 건 연기자로서의 욕심과 야심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그가 <낭만닥터 김사부>의 강동주 역할을 하게 되면서 조금 다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잘 보이지 않던 훨씬 복합적인 내면의 연기를 훨씬 자연스럽게 해나갔던 것.

 

그가 연기하는 강동주라는 인물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야심이 가득했던 자신이 돌담병원 같은 작은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지만, 김사부가 과거 자신이 의사의 길을 걷게 만들어준 계기를 주었던 부용주라는 걸 알고는 그의 밑에서 배우기로 결심한다. 물론 그 시작은 의술을 배우겠다는 욕망이 더 컸지만 차츰 강동주는 단지 의술이 아닌 진짜 의사의 길을 배워나간다.

 

그토록 인정욕구가 강하던 강동주가 신 회장(주현)의 수술을 앞두고 라이벌로 생각해 왔던 도인범(양세종)에게 함께 수술을 하자고 제안하는 대목은 이 인물의 성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거대병원과 싸워 이기기 위해 의사가 됐던 그가 온전히 환자의 생명을 우선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는 것.

 

또한 그는 자신이 넘어야 할 마지막 산으로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 또한 의사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받아들이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이 VIP 환자에게 밀려 수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복수하려는 마음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 수술 결정이 김사부가 내렸던 것이고 그것은 또한 VIP 환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로서의 당연한 결정이라는 걸 의사가 된 그 역시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의사가 된 입장에서 김사부의 결정이 옳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버지의 죽음이 야기하는 억울한 감정과 증오 같은 걸 어쩔 수 없어 하는 강동주의 복합적인 심리는 유연석의 연기를 통해 제대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그 아픔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그의 성장이 느껴졌다. 그는 드디어 진정한 의사로서 서게 되었던 것이다.

 

강동주가 김사부를 만나 진정한 의사가 되어가는 드라마 속 이야기는, 마치 유연석이 한석규라는 대선배를 만나 진정한 연기자가 되어가는 그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연기에서 어떤 안정감이 느껴지는 건 이 성장 과정을 제대로 거쳐 온 연기자가 얻은 결실일 게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래서 연기자 강동주에게는 진짜 사부 같은 작품으로 남지 않을까

현 시국을 예감한 듯, <낭만닥터>가 정조준한 것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돌담병원의 여원장(김홍파)이 툭 던지는 이 말 한 마디는 의외로 현 시국과 중첩되면서 묘한 울림을 만들어낸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가끔 이런 대사를 누군가의 캐릭터를 통해 던질 때마다 문득 문득 놀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현 시국을 예감이라도 했던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고 다 좋은데, 그래도 최소한 양심이 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니?” 6중 추돌 사고 에피소드에서 사고를 내고도 부모가 권력자라고 그 치마폭에 숨는 2세에게 윤서정(서현진)이 던지는 이 일갈은 또 어떤가. 현 시국에서 누군가 SNS에 올렸다는 돈도 실력이야.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던 그 기가 막힌 문구가 떠오르지 않는가.

 

병사’. 군대에서 구타가 의심되는 환자의 사망진단서에 병사라 적어놓고 주치의인 강동주(유연석)에게 사인을 하라고 내미는 도윤완(최진호) 원장의 그 장면에서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최근 물대포에 맞아 안타깝게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기막힌 사망진단서가 떠오르지 않던가.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것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저들은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 여원장의 토로는 마치 우리가 현재 목도하고 있는 현실을 두고 하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어째서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들은 그저 드라마가 아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그대로 정조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걸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현실이 믿기 힘들 정도로 드라마 같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낭만닥터 김사부>가 애초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한 점들을 조목조목 담아내려 작정을 했었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시국은 사실상 우리 사회가 가진 부조리의 총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낭만닥터 김사부>가 정조준한 것들의 과녁이 되고 있다.

 

어떻게든 권력으로라도 몰아붙여 김사부(한석규)와 돌담병원을 무너뜨리려는 도윤완 원장의 기도는 신회장(주현)이 깨어남으로 해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상황을 뒤집기 위해 도윤완 원장은 이제 김사부와 강동주를 이간질하기 시작한다. 강동주 부친의 사망과 김사부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것.

 

이것 역시 탄핵의 사유가 명명백백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거짓 진술과 말 바꾸기로 시간 끌기를 기도하며 마지막까지 상황을 뒤집으려 하는 현 정권을 고스란히 닮았다. 극한으로 몰리자 병원폐쇄를 기도하는 도윤완 원장 같은 이들에게 애초부터 환자나 생명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다. 다만 권력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일 뿐. 도의나 명분이 없는 그들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물불 안 가리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지키는 것.

 

하지만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일까. 배를 띄우는 것도 가라앉히는 것도 결국은 물이다. 환자나 진정한 의사가 없는 병원이 있을 수 없고 국민 없는 권력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낭만닥터 김사부>라는 드라마를 통해 조금은 낭만적이지만 뒤틀어진 현실에 대해 거침없는 일침을 날리는 김사부에게 지지하는 마음을 갖는 건 그래서다. 한 환자의 부름에 의해 지어진 그의 이름처럼, 그는 우리 시대의 사부 역할을 하고 있다.

 

참 이상하죠? 우리 모두가 도윤완이 틀렸다는 걸 아는데, 지금 누가 잘못하고 있다는 걸 다 아는데, 왜 그는 지금도 저 자리에서 저렇게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걸까요?” 여원장의 질문 속에 답이 있다. 이미 우리는 그들이 틀렸다는 걸 알고 있고 또 잘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이들이 그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인해 배를 띄우던 물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또 현 시국이 어떤 결말을 낼 것인지는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겠는가.

<낭만닥터>, 갈수록 팽팽해지는 까닭

 

갈수록 더 팽팽해진다. 많은 드라마들이 초반에 팽팽한 긴박감을 유지하다가 중반을 넘기면서 흐지부지되고 결국 용두사미라는 얘기를 듣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갈수록 힘을 받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이걸 가장 잘 말해주는 건 시청률 곡선이다. 첫 회 9.5%(닐슨 코리아)에 시작했지만 8회 만에 20%를 넘겼고 잠시 숨고르기를 하더니 17회에서는 25.1%를 기록했다. 이제 남은 건 20회까지 3회 분. 어쩌면 미니시리즈에서는 기록하기 힘들다는 30% 시청률 돌파도 그리 불가능한 수치처럼 보이지 않는다.

 

<낭만닥터 김사부>의 이야기 구조는 매 회 하나의 에피소드로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전체 이야기가 점층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형태로 이뤄져 있다. 이런 점은 특별히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보지 않은 시청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그저 한 편의 이야기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완결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동시에 이를 계속 본방사수해온 시청자들 역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갈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구성을 갖고 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강동주(유연석). 아버지가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죽게 되자 세상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냈던 소년 강동주를 떠올려보라. 그는 어떻게든 성공해서 힘 있는 자가 되어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여기며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의 강동주는 그 때의 강동주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김사부(한석규)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환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고 그 생명에는 귀천이 없다는 생각에까지도 이르고 있다. 신 회장(주현) 수술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있었지만, 당장 수술이 위급한 환자를 외면하지 않고 김사부 모르게 수술을 시행한 그가 아닌가. 그에게 김사부가 잘 했다고 칭찬을 해주자 깜짝 놀라는 강동주는 스스로도 자신이 그렇게 변화했다는 걸 잘 모르는 눈치다.

 

강동주의 성장담과 함께 그가 첫 회부터 연정의 마음을 드러냈던 윤서정(서현진)과의 사랑이야기 역시 조금씩 무르익어갔다. 물론 드라마에서 이 멜로 부분은 다른 극적 상황들의 이야기에 비해 그리 강조된 건 아니었다. 그저 드라마를 보는 또 한 축의 재미로서 달달한 그들의 멜로가 조금씩 깊어가는 걸 보여줬을 뿐. 하지만 이 역시 드라마를 애청해온 시청자들이라면 계속 몰입해서 보게 되는 유인이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갈수록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는 역시 김사부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 과거 어떤 의료사고가 벌어졌고 거기서 억울한 누명을 쓴 채 변방으로 쫓겨나야 했던 김사부의 과거. 17회에 이르러 기자가 등장하고, 드디어 그 김사부의 과거 이야기가 본격화되며 그 진실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시청률이 폭발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지금 같은 시국에 특히 진실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당연한 일이다. 부용주라는 이름을 버리고 김사부로 살아가는 그 캐릭터는 애초부터 진실의 문제를 화두로 담고 있는 인물이었다. 진실이 무엇이냐고 추궁하는 기자에게 오히려 진실을 알면 세상에 전할 용기는 있냐?”고 되묻는 김사부의 일갈은 진실이 진실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걸 제대로 전하고 그 진실에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해준다.

 

매 회가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주고, 그 회의 연결이 인물들의 성장드라마와 멜로, 그리고 진실에 접근해가는 점층적 구조를 갖고 있다는 건 <낭만닥터 김사부>가 후반부로 갈수록 더 힘을 내는 이유다. 물론 30% 시청률이 결코 쉬운 수치는 아니지만 어쩌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함께해야 가능, <낭만닥터>가 전하는 메시지

 

내가 6시간이 가능하겠다 싶었던 거는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하고 같이 수술 한다라는 그런 전제하에 나온 계산이예요.” 신 회장(주현)의 인공심장 교체 수술을 앞두고 도윤완(최진호) 병원장은 돌담병원 수술 팀 스텝을 전부 거대병원 스텝으로 교체하거나 수술을 생중계하는 라이브 서저리(Live Surgery)를 하라고 요구한다. 스텝 교체를 하지 않을 걸 뻔히 알고 있는 도윤완이 김사부(한석규)가 라이브 서저리를 하게 함으로써 수술에 압박을 가하려는 목적. 수술이 잘못되면 그 책임이 온통 김사부에게 몰릴 걸 걱정하는 스텝들에게 그러나 김사부는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면 결코 이 수술이 성공할 수 없다는 걸 강변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 있어서 이 신 회장의 수술이라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가장 극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김사부가 처한 최대의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가 되는 순간. 만일 이 수술이 실패하게 되면 김사부는 물론이고 그 스텝들까지 모두 바닥으로 추락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정반대로 라이브 서저리라는 생중계를 통해 이 어려운 수술이 성공하게 되면 김사부와 그 팀은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결과는 아마도 많은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그것과 일치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건 그런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강은경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결과는 사필귀정이고 권선징악일 것이지만 그런 결과가 어떻게 가능한가가 더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또한 명쾌하게 드러나는 반대자들의 잘못된 선택을 확인하는 것도.

 

신 회장의 수술을 앞두고 김사부와 도윤완의 서로 다른 상반된 입장을 보면 그 선택의 잘잘못이 확연히 드러난다. 김사부와 그 팀은 어떻게든 수술을 성공시켜 한 생명을 살리는 것에 목표를 세운다. 그래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수술 시간 단축을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강동주(유연석)는 항상 금수저 라이벌로 탐탁찮게 여겨온 도윤완의 아들 도인범(양세종)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한다. 함께 하면 시간을 더 단축시킬 수 있을 거라는 것. 오로지 생명을 살리겠다는 목표가 뚜렷해지자 현실적인 라이벌 관계는 강동주도 또 도인범도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도윤완은 신 회장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수술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 김사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자신은 온전히 거대병원의 입지를 굳히려는 것.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김사부 팀과, 혼자 살기 위해 수술 실패를 원하는 도윤완의 이 상반된 입장이 드러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 생명 앞에서 어떤 것이 올바른 선택인가를 보여주는 것.

 

이른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라고들 한다. 이제 누구를 신경 쓸 데가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살 길을 찾아야 하고,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는 시대라는 뜻이다. 물론 이것은 그만큼 어려운 현실을 드러내는 이야기지만 과연 이건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을까. 각자 살아남는 것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어떤 것.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김사부 팀의 수술과정을 통해 그 함께 함으로써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연말 시상식, 수상소감보다 뭉클했던 시국소감들

 

새해가 밝았다. 연말 시상식들도 모두 끝이 났다. 방송사들의 시상식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사의 한 해 성과들을 자축하고 그간 고생한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또 다음해를 기약하는 자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 시상식 분위기가 과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리워진 연말 시상식은 유독 시국소감들이 넘쳐났다.

 

'2016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무한도전>으로 <MBC 연예대상>을 수상한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통해 많은 걸 보고 배운다. 역사를 통해서, 나라가 힘들 때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소수의 몇몇 사람이 꽃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내년엔 대한민국이 꽃길로 바뀌어서 모든 국민들이 꽃길을 걷는 그런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소감은 최근 <무한도전>으로 했던 위대한 유산특집을 통해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봤던 것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지금 현재에 전하는 울림이 적지 않았다. 결국 역사란 과거가 아닌 현재를 반추하는 거울이 아니던가. 그의 개념 소감은 그래서 대상 수상만큼이나 많은 박수를 받았다.

 

<MBC 연기대상>에서 <W>로 황금연기상을 받은 김의성은 마지막 MBC 드라마가 1997년인데, 20년 만에 다시 출연하게 된 것도 영광인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집과 직장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올해 부당한 이유로 집을 떠나고 직장을 떠난 사람들이 많다. 내년에는 그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한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미 SNS를 통해 수차례 현 시국에 대한 날선 발언들을 해왔던 김의성이었다. 또한 드라마 <W>에서 웹툰 작가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주인공 못잖은 존재감을 드러냈던 그였다. 수상 소감에서도 자신보다는 현실에 상처 입은 대중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김의성을 올해 <MBC 연기대상>의 진짜 숨은 주역이라고까지 일컫게 된 건 연기와 개념 모두가 박수받을만 했기 때문이다.

 

<SBS연기대상>에서 5년 만에 대상을 수상한 한석규는 하얀 도화지, 검은 도화지의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득 직업란에 제 직업을 쓸 때가 있는데 연기자라고 쓰곤 한다. 그때마다 제 직업이 연기자구나 하고 생각한다. 신인 시절, 하얀 도화지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신의 색깔을 마음껏 펼치라는 의미에서다. 검은 도화지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낯선 표현이었지만 그것은 여러모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비참한 현실을 에둘로 꼬집는 이야기였다.

 

한 번 상상해보라. 밤하늘 같은 암흑이 없다면 별은 빛날 수 없을 것이다. 어둠과 빛은 한 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 제 연기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배우는 문화종사자로서 엉뚱하고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한 후, “이 다르다는 걸 불편함으로 받아들인다면 배려심으로 포용하고 어울릴 수 있겠지만, ‘위험하다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사회, 국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실로 낭만닥터 김사부 같은 시국 소감이었다. 그는 <낭만닥터 김사부>의 기획의도가 된 시인 고은의 글의 한 구절로 수상 소감을 마쳤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한편 <KBS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차인표는 유머 섞인 시국 소감을 내놔 화제가 되었다. “50년을 살며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을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월계수양복점 신사들>의 배삼도라는 유쾌한 인물이 바로 현실로 나온 듯한 느낌이라니.

 

연기는 현실과 무관할 수 없다. 연기자들 역시 그 현실을 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그 현실이 대중들에게 주는 애환들을 그들은 연기로서 풀어내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그 애환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연기자라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수상소감이 시국소감이 된 건 당연하다. 그들에게 박수를.

<낭만닥터>도 피해가지 않는 멜로의 족쇄

 

사랑해요.”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유연석)가 윤서정(서현진)에게 불쑥 그렇게 말하자 윤서정은 오글거림을 못 참겠다는 듯 그러지 마라하고 정색한다. 타인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 공과 사는 구분하자는 윤서정. 그래서 병원사람들이 눈치를 챈 것 같다며 두 사람은 짐짓 대판 싸우는 모습을 가짜로 연출하기도 한다.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물론 드라마 첫 회부터 강동주의 마음이 윤서정에게 있었다는 건 다소 급작스럽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이미 예고된 바 있다. 그러니 이런 달달한 상황이 언젠가 시작될 거라는 건 시청자들도 알고 있었을 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달해진 <낭만닥터 김사부>에 남는 아쉬움은 뭘까.

 

그건 아무래도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사회성 같은 것들이 이 달달한 멜로에 의해 희석되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제목이 지시하고 있듯이 김사부(한석규)라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의사의 다소 낭만적이지만 지금의 현실이 귀기울여야할 이야기들을 그 기획의 의도로 갖고 있다. 그간 김사부가 던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답답한 현실에 대한 속 시원한 일갈이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돌담병원이라는 현실의 축소판 같은 공간을 통해 기득권 세력들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고발하기도 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위기 상황을 통해 제대로 된 콘트롤 타워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최우선이 되어야 할 것은 사람의 생명이라는 걸 거듭 강조했다. 요즘 같은 답답한 시국에 이런 이야기들은 그 울림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낭만닥터 김사부>도 역시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피해갈 수 없는가 보다. 그것이 이야기상 개연성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청자들이 멜로보다는 좀 더 사회성 짙은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펼쳐나가기를 바라는 건 왜일까. 사적인 멜로가 주는 달달함이 지독한 현실을 접하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큰 감흥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강동주와 윤서정의 달달한 멜로 전개가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느슨해졌다. 긴박하게 굴러가던 돌담병원의 응급실은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물론 강동주와 도인범(양세종)이 수술 과정에서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었지만, 그 이야기보다 강동주와 윤서정의 멜로 상황과 그걸 눈치 채고는 눈을 찡긋 해주는 오명심(진경)이나 기묘한 눈빛을 던지는 장기태(임원희)의 다소 코믹스런 장면들이 더 많이 채워졌다.

 

이렇게 되면서 바로 드러나는 건 김사부의 분량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김사부는 신회장(주현)이 폐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고는 심장수술을 접으려고 하고 그러다 결국 신회장 스스로가 수술 강행을 결정함으로써 상황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갔다. 강동주와 윤서정 멜로의 급 전개는 김사부를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게 했다.

 

물론 이건 잠시 쉬어가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몰아치며 긴박감 넘치는 사건들을 통해 통쾌한 김사부의 일침을 봐왔던 시청자들로서는 너무 느슨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멜로는 당연히 존재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이 드라마가 지향하려는 방향성을 매회 잊지 않고 밀고 나가는 힘이 중요하다. 드라마가 갖고 있는 주제의식과 조금은 쉬어가는 달달한 멜로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낭만닥터>, 위기가 보여주는 그 사람의 진가

 

메르스. 우리에게는 공포의 한 자락으로 남아있는 단어다. 바깥출입 자체를 꺼리게 만들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피하게 만들었던 중동 호흡기 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이라 불리는 감염증. 하지만 질환 그 자체보다 더 공포스러웠던 건 이런 위급상황에 드러난 콘트롤 타워의 부재가 아니었던가.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왜 하필 메르스 사태를 다시 드라마 속으로 끌어들인 걸까.

 

'낭만닥터 김사부(사진출처:SBS)'

응급실에 갑자기 몰려든 환자들과 그들이 보이는 비슷한 증상들. 메르스 증상이 의심된다는 판단을 한 강동주(유연석)는 응급실을 폐쇄 격리조치하고 자신은 남아 간호사들과 환자들을 돌본다. 격리된 환자와 가족들 중에는 그 곳을 벗어나려 난동을 피우는 이들도 있지만 강동주는 이를 통제한다. 물론 힘겨운 상황이지만 적어도 이 응급실에서 강동주라는 콘트롤 타워는 제 할 일을 다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도 감염 증상을 보이며 쓰러지지만.

 

김사부(한석규)가 질병관리본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그 곳은 이 돌담병원의 위급한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한가한 대처를 보인다. “중앙 콘트롤 타워가 왜 이리 말을 못 알아 처먹어!” 김사부의 이 일갈은 아마도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갖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 그대로였을 게다. 아니 그건 메르스 사태만이 아니다. 지금 현재 전국적인 양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AI사태에 대한 늑장대응으로 2천만 마리에 육박하는 살처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도 마찬가지 아닌가.

 

위기는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내준다고 했던가. 메르스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응급실에 격리되면서 이 돌담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응급실 안에서 메르스 의심 환자들을 돌보다 쓰러지는 강동주 같은 의사가 있는 반면, 마치 도망치듯 시간 됐으니 퇴근하겠다며 의사도 사람이라고 변명하는 송현철(장혁진) 같은 의사 같지 않은 의사도 있다.

 

결국 격리된 응급실에서 쓰러져 버린 강동주를 보고는 그 곳으로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말하는 김사부에게 응급의학이 전문인 윤서정(서현진)은 자신이 적임자임을 밝힌다. 자신이 들어가겠다는 것. 신회장(주현)의 중요한 수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그것보다 더 위중한 상황이 저 응급실 안에 벌어지고 있다는 걸 외면하지 않는다. “환자는 먼저 온 순서가 아니라 위급한 순서부터 보는 것이라는 김사부의 말처럼 의사라면 응당 해야할 선택.

 

하지만 위급한 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려는 이들도 있다. 일부러 강동주가 응급실에서 쓰러졌다는 사실을 알리고는 신회장 수술의 퍼스트를 챙기려는 도인범(양세종)이 그렇다. 그는 강동주에게 마음이 있는 윤서정이 응급실로 들어갈 것을 알고는 그리 말하고 결국 모든 인수인계를 한 윤서정이 응급실로 가자 득의만만한 얼굴로 신회장의 병실에 들어선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이 자그마한 돌담병원을 무대로 다시금 메르스 사태를 재연하며 보여주려 한 것은 바로 이 위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들을 하고 또 그것들이 그 위기를 어떻게 만들며, 결국 그 위기를 진정시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어쩌면 그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다 스러져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을 지도 모른다. 있으나 마나한, 김사부 말대로 말을 못 알아 처먹는(어쩌면 아예 듣지 않는)” 중앙 콘트롤 타워와는 다른 선택을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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