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 아이돌에서 연기돌, 연기돌에서 연기자로

이제 임시완에게 더 이상 아이돌이라는 지칭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2012년 <해를 품은 달>에 어린 허염 역할로 잠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국의 아이들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서 곱상한 외모가 연기보다 더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사진출처:영화<불한당>

하지만 2013년 <변호인>에서 국밥집 아들 진우 역할로 분해 갖은 고문을 당하는 청년을 연기하는 임시완에게서 아이돌의 이미지는 말끔히 지워져버렸다. 그 아픔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그는 진우의 그 처연하기까지 한 모습을 연기했다. 텅 비어버린 듯한 눈빛은 바로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연기자라는 호칭은 그러나 그렇게 호락호락하 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2014년은 그래서 임시완에게는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추락했다 상승하는 연기의 진폭을 보여준 해였다. MBC 드라마 <트라이앵글>에서 그의 연기는 그다지 주목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캐릭터는 과장되게 느껴졌고, 당연히 그 캐릭터는 시청자들을 몰입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해 말 <미생>이 다시금 그의 연기자로서의 진가를 끄집어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 때론 안으로 감정을 누르고 때론 밖으로 터트려내며 임시완은 장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가 되어갔다. 물론 그것은 너무 잘 맞는 옷이어서 그에게 넘어서야할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다. 지금도 장그래의 잔상이 그에게서 느껴질 정도로.

그런 점에서 최근 개봉한 영화 <불한당>의 현수라는 인물은 이 장그래라는 옷을 벗고 임시완이 또 다른 옷을 챙겨 입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는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캐릭터가 되었다. 작은 키에 어딘지 가녀리게까지 느껴지는 임시완의 이미지는 이 작품 속에서는 오히려 반전효과를 만들어냈다. 저렇게 예쁘장한 외모에서 어떻게 저런 폭발력이 나오는가가 놀라움을 줄 수 있을 만큼.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영화 도입 부분에 감옥에서 현수가 거구의 상대와 대결하는 장면을 보며 “어 저 놈 봐라”하며 짜릿한 쾌감과 끌림을 느끼는 재호(설경구)의 시선은 고스란히 관객들의 시선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감옥을 나와 패거리들과 싸울 때 시계를 감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리는 장면에서는 더 이상 연약한 이미지의 임시완은 사라져버렸다. 

<불한당>이 보여주는 재호와 현수의 피와 눈물이 범벅되는 브로맨스는 어떤 남녀 간의 멜로보다 더 진하게 그려진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액션과 그 속에서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내는 임시완의 연기는 굉장히 섬세하게 느껴졌다. 증오와 분노와 형제애 같은 정이 뒤범벅된 감정연기는 그래서 관객들을 그 인물 속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자기 모습에 가까운 캐릭터를 연기해내며 연기돌이라 불렸던 임시완은, 이제 사뭇 상반된 캐릭터 역시 연기해내면서 온전히 연기자라 불러도 될 만한 성장을 보여줬다. 이제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것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변호인>부터 단 4년 사이의 일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만큼의 성장이다.

실장님부터 초능력자까지, 남자주인공들의 진화사

 

미소년의 얼굴에 어린 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카리스마. 독특한 아우라를 갖고 있는 김수현에게 <드림하이>의 송삼동은 잘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군왕이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남파간첩(거의 아이돌에 가깝다)을 거쳐 <별에서 온 그대>의 초능력 외계인 캐릭터는 그의 아우라를 완성시켰다.

 

'별에서 온 그대(사진출처:SBS)'

지금 현재 김수현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성공을 보장받는 남자주인공의 끝판왕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상 지금껏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들이 여성들에게 주던 판타지를 거의 모두 가진 인물이며, 그 복합적이고 비현실적인 인물을 아무런 이물감 없이 그가 연기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외계에서 와 조선시대부터 4백년을 산 인물 도민준. 그는 일찍이 사둔 잠실벌과 압구정의 땅으로 어마어마한 재벌급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인물인데다, 4백년 동안 의사에서부터 변호사까지 안 해본 직업이 없는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집 한 켠에 마련된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서재는 그의 지적이고 감성적인 능력을 표상하고, 시간을 멈추고 사물을 움직이는 초능력은 실현 불가능한 일들까지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 핵심은 이런 재산, 능력, 지성, 감성 게다가 초능력까지 가진 인물이 오로지 천송이(전지현) 한 사람만을 마음에 두고 보호하려 한다는 것이다. 제 아무리 초능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해도 인류를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영웅을 여성들은 원하지 않는다. 지극히 사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판타지를 제공해줄 수 있는 인물. 게다가 4백년의 공력으로 이 모든 걸 갖추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늙지 않는 미소년 외모의 소유자. 그가 바로 도민준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정체다.

 

초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 캐릭터는 작년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수하(이종석)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 매력이 입증된 바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인 박수하는 그 놀라운 소통능력으로 억울한 이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은 장혜성(이보영)이라는 한 여성을 위한 일이다. 천송이와 도민준, 장혜성과 박수하라는 커플의 공통점은 남자주인공이 미소년에 초능력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육체와 함께 초능력에 가까운 능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주인공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에서부터 <시크릿 가든>의 현빈, <상속자들>의 이민호로 이어지는 김은숙표 멜로의 재벌이거나, 주상욱이나 이동욱 같은 성공적인 실장님 캐릭터, 혹은 전문분야에 능력을 갖췄으나 성격은 모난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이나 <외과의사 봉달희>의 이범수 같은 인물들이 얼굴을 달리 하며 반복해서 등장해왔다. 하지만 이종석과 김수현에 이르면 이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판타지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남자주인공이 이처럼 점점 초능력을 갖춘 인물로 등장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현실의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 점점 커져간다는 걸 말해준다. 슈퍼히어로들은 불가능한 것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상징들이 아닌가. 하지만 서구의 슈퍼히어로들이 전 지구적인 위기와 맞서 인류를 구원하는 메시아적인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 우리네 슈퍼히어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적인 삶에 오히려 집중한다는 것이 완전히 다른 특징이다. 이것은 무얼 말해주는 걸까.

 

일단 국가나 인류 같은 거창한 꿈에 대한 허무주의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정치인들이나 국가 지도자들이 말해온 거대 담론들이 정작 서민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단 말인가. 그러니 퇴행적이라고 비판받을지언정 바로 직접적으로 나를 돕는 슈퍼히어로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장혜성 변호사를 돕는 박수하는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변호인>의 송우석 변호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변호인>이 서민들을 신뢰하게 한 점은 국가와 국민을 얘기해도 그것이 거대담론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친조카 같은 한 국밥집 아들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이라는 슈퍼히어로는 국가나 인류 같은 거대담론에 대한 극도의 허무주의를 보여준다. 그가 천송이라는 한 여성을 위해서만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다 사용하는 것은 오로지 거기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4백년을 살다보면 그도 그럴 것이다. 조선이 대한민국으로 바뀌고 일제와 남북분단을 경험한 인물이라면 세상의 변화에 초탈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인물 속에 담겨진 사적인 욕망과 사회적 현실에 대한 허무는 씁쓸함을 남긴다.

 

김수현이라는 배우는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욕망과 좌절을 모두 함께 캐릭터를 통해 껴안고 있는 셈이다.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미소년의 여전한 장난기와 때로는 어른스럽게 여성을 보호해주는 카리스마, 그리고 한 편에 느껴지는 어두운 허무의 그림자는 그래서 그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드러내는 이 시대의 징후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얼굴 속에는 그간 남자 주인공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던 수많은 캐릭터들의 면면들이 혼재되어 있다.


'해품달', 왜 뒷얘기가 무성할까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아쉬움 때문일까. 아니면 드라마 시청률이 40%를 넘겼다는 도취감 때문일까. 물론 드라마가 끝나면 거기 참여한 제작진이나 연기자들의 인터뷰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에서 유독 작가의 인터뷰가 눈에 거슬리는 건 왜일까. 또 40% 이상의 시청률을 낸 작품 치고 몇몇 주연들에게만 지나치게 쏠려 있는 스포트라이트도 이례적이다. 이 정도의 시청률이라면 거기 참여한 조연들에 대한 조명 역시 따라오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김수현과 한가인을 빼고 나머지 조연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이런 상황은 마치 의도된 것처럼 비춰진다. '해품달'의 마지막회에 남는 아쉬움은 결국 남녀 주인공인 훤(김수현)과 연우(한가인)의 해피엔딩을 위해 주변인물들이 줄초상을 당하거나 들러리로 선 인상이 짙다는 것 때문일 게다. 그러니 작품이 끝나고 두 주인공과 작가의 인터뷰만 유독 눈에 띄는 건 어딘지 씁쓸함을 남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극중 윤대형이란 인물을 연기해 작품에 확고한 극성을 만들어낸 김응수의 색다른(?) 인터뷰가 눈길을 끄는 것은.

김응수는 인터뷰를 통해 극중 딸 캐릭터인 윤보경(김민서)이 극 후반 연우가 등장하면서 이렇다 할 대응 한 번 하지 않고 스스로 무너져가는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설정 또한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작품이야 결국 작가가 쓰는 대로 굴러가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네 드라마처럼 흘러가면서 스토리가 써지는 대본은 주연이 아닌 연기자라면 때로는 '살생부'처럼 여겨지기 마련이다. 언제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작가에 의해) 죽음을 맞이할 지 모르는 운명이란 얘기다.

인터뷰 내용을 보면 김응수는 이 상황이 꽤 고질적이라는 걸 드러내고 있다. '해품달' 대본을 받고는 윤대형이란 인물이 끝까지 나오냐고 물었고, 나온다고 했지만 자신은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우리네 드라마 제작 현실이 거의 실시간으로 쓰여지고 상황에 따라 제멋대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응수는 '샐러리맨 초한지'에서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 '초한지'의 초나라에 해당되는 장초그룹 회장으로 출연한 김응수는 그러나 몇 회가 지나고 아무런 이유도 설명되지 않은 채, 드라마에서 사라져버렸다. 아무리 조연이 작가의 글줄 몇 개로 존재 자체가 날아가는 파리 목숨이 됐다고 해도 이건 너무 무례한 처사가 아닌가.

만일 어쩔 수 없이 드라마 방향이 이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작가는 후에라도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한 해명이나 적어도 미안함을 표하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진수완 작가가 한 일련의 인터뷰들은 어딘지 불편함이 느껴진다. 진수완 작가는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본래 하고자 했던 대본에 대한 아쉬움을 늘어놓았다. 20부작이 아니라 24부작이었다면 달랐을 결말의 디테일들에 대한 이야기나, 유난히 많았던 연기력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 또 작품의 메시지에 대한 부연 설명까지. 얼마나 아쉬웠으면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서라도 이런 얘기를 할까 싶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작품 내에서 결국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작가는 작품으로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인물들이 작품 내에서 저 스스로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소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럴 듯한 설득력이 없이 작가가 나서서 인물들을 인형처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게 하다가 결국에는 주인공들의 해피엔딩을 위해 줄초상을 내는 것처럼 느껴지는 '해품달'을 두고 작품 밖에서 애써 부연 설명하려는 모습은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일까. 김응수의 토로가 마치 작가에 의해 인형처럼 마구 휘둘리는, 그래서 대본을 살생부처럼 여기게 되는 조연들의 진중한 질책으로 여겨지는 것은.

심지어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웃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조연이 나오는 우리네 드라마판이 아닌가. 조연들은 주연을 위해 이리저리 굴리다 갑작스럽게 팽 당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판만이 아니라 우리네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것만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대본, 연기, 연출 뭐하나 만족되지 않는 '해품달'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의 뜬금없는 장면 하나.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장본인이 바로 자신의 처인 민화공주(남보라)임을 알고 허탈해 하는 허염(송재희)에게 갑자기 자객들이 나타난다. 이 자객들은 윤대형(김응수)측이 보낸 것이라는 암시만 있을 뿐 누가 보낸 것도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보낸 이유조차 애매하다. 애초부터 이렇게 자객을 보내 죽일 거였다면 굳이 그에게 민화공주가 자신의 동생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사실을 편지로 보낸 이유는 뭔가. 이 스토리는 어딘지 매끄럽지가 못하고 억지스러운 구석이 많다.

즉 허염이 모든 사실을 알고 민화공주를 질책하는 장면이 필요한데, 그 사실을 알리는 방법으로서 윤대형을 활용한 것이라고밖에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뜬금없는 장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허염을 해치려는 자객들 앞으로 갑자기 설(윤승아)이 등장해 그들을 가로막는다. 결국 자객들과 싸우다 칼에 맞고 쓰러지는데, 또 여기서 느닷없이 운(송재림)이 나타나 나머지 자객들을 모두 물리친다. 물론 운의 갑작스런 등장은 후에 훤(김수현)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밝혀지지만 이것 역시 훤이 왜 그런 지시를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그럴 듯한 이유는 별로 없다.

즉 이 장면은 허염 앞에서 설이 죽는 장면이 필요하고 또 그러면서도 허염은 죽일 수 없기 때문에 운을 등장시킨 것이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된다. 이런 식의 스토리 전개는 결말 부분 이 모든 드라마의 사건들이 해결되는 방식이다. 물론 훤이 양명군(정일우)을 통해 윤대형의 역모를 뒤집으려 계획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윤대형이 죽고, 그 순간에 중전(김민서)도 스스로 목을 매고, 양명군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식의 해결은 너무나 급작스럽고도 쉬운 선택이 아닐까. 결국 문제의 해결을 작가가 나서서 했다는 인상이 짙다. 이것은 저 그리스 비극에서 좋지 않은 극으로 지목되던 '데우스 엑스 마키나(갑작스럽게 신이 나타나 모든 걸 해결하는 방식)'를 떠올리게 한다. 캐릭터들이 스토리 속에서 저 스스로 살아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가 체스놀이를 하듯 이리 던지고 저리 움직여 스토리를 이어가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드라마의 취약점으로 지목되는 것은 연기력 부족이다. 설을 연기한 윤승아는 죽는 순간에서조차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설픈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연기도 연기지만, 이 순간에 지루하게 던져지는 긴 대사로 인해 더더욱 몰입이 어려워졌다. 죽기 전에 할 말을 다 하는 이런 대사처리는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대왕대비 윤씨(김영애)에서도, 또 양명군의 죽음에서도 비슷하게 등장했는데, 주로 과거 신파극에서나 많이 쓰던 방식이다. 가뜩이나 연기 몰입이 안 되는 상황에 대사까지 이러니 발연기라는 얘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이런 연기력에 대한 문제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중견연기자들을 빼고는 대부분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물론 아역 여진구와 김유정 그리고 김수현은 예외다.

그렇다면 연출력은 어떨까. 아역들이 연기하던 초반에는 판타지와 멜로가 뒤섞이는 괜찮은 장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뒤쪽으로 갈수록 어딘지 어설퍼지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파업의 여파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모가 벌어지는 장면에서 고작 수십 명의 병사가 등장하는 건 좀 너무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나마 연출은 볼만한 구석들도 많았지만, 끝없이 옥의 티가 발견되는 등(시청자들은 그래도 이것조차 귀엽게 받아들이는 아량을 베풀었지만) 허점이 많이 드러났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해를 품은 달'의 미스테리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생겨난다. 대본이 앙상하고, 연기가 받쳐주지 않는데다가, 연출도 실수투성이였는데 어떻게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던 것일까. '해를 품은 달'은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 '뿌리 깊은 나무'에 훨씬 미치지 못했고, 퓨전사극의 참신함에 있어서 '바람의 화원'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청춘 멜로사극의 풋풋함에 있어서도 '성균관스캔들'을 넘어서지 못했다. 주제의식이 불분명한 이야기는 너무나 느슨했고, 좀 더 풋풋했어야 할 멜로의 정조는 신파조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그 여타의 작품들이 도달하지 못한 40%라는 시청률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것은 거꾸로 40%라는 시청률에 우리가 경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40%의 시청률을 낸다고 해서 그만한 완성도의 작품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꽉 짜여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 '뿌리 깊은 나무'의 시청률이 20% 언저리에 머물렀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해를 품은 달'의 40%라는 수치가 만들어낸 열광에는 다분히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얘기다. 드라마 시청률이란 주지하다시피 중장년층의 시청률을 의미한 지 오래다. 따라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이라고 해서(그래서 시청률이 높다고 해서) 그 드라마의 질이 높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해를 품은 달'이 어떻게 중장년층의 입맛에 맞아떨어졌을까. 어쩌면 이 기묘한 사극의 성공은 바로 이 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사극이라는 친숙한 장르가 갖는 착시현상이 그 한 가지였을 것이고, 사실은 중장년층에 익숙한 신파적인 멜로면서도 그 주인공들의 연령대가 낮았기 때문에 어딘지 세련되어있다는 착각을 주면서 동시에 '청춘'에 대한 향수를 불러왔다는 것이 또 한 가지 요인일 것이다. 기실 중장년층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콘텐츠(신파, 느린 전개, 사극)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구닥다리처럼 보이지 않는 포장(청춘멜로, 아역, 젊은 연기자)이 아닌가. 중장년층은 이제 그들 세대가 나와 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전하는 그들이 젊었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에 매료되곤 한다. 이것은 최근 복고를 내세우는 대부분의 트렌드들(예를 들면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복고풍 영화들 같은)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바로 이 기획의 성공이지 그것을 작품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니 40%라는 시청률에 경도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양적인 것이 질적인 것을 담보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다고 '해를 품은 달'에 반짝이는 순간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지루한 전개와 몰입을 방해하는 연기와 실수 연발의 연출은, 그 순간들마저 상쇄시켜버린다. 어쩌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는 떨어지는 '해를 품은 달'의 미스테리는 점점 신뢰하기 어려워지는 시청률 추산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해품달', 절묘한 제목에 담긴 의미들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을까. 물론 음양을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해는 양, 즉 왕을 뜻하고 달은 음, 즉 여인을 뜻한다. 이 사극에서 해는 훤(김수현)이고 달은 월이라고도 불리는 연우(한가인)다. 이처럼 '해를 품은 달'은 그 제목만으로도 이 사극이 멜로를 지향하고 있다는 걸 극명하게 드러낸다. '해를 품은 달'이란 훤과 연우의 가까운 듯 먼 그 안타까운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는 사극이다.

달이란 본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콘텐츠들 속에서 달이 종종 그리움과 동의어로 사용되는 건 그 때문이다. 해가 뜨면 달은 사라진다. 즉 눈 앞의 현실은 그리움이나 추억 같은 과거의 기억을 마치 없는 것처럼 저편으로 밀어낸다. 그래서 하루의 현실이 지나가고 이제 오롯이 자신으로 돌아오는 밤이 되면 그 없었던 듯 떠오르는 것, 그것이 바로 달, 그리움이다.

그래서 '해를 품은 달'은 기억의 문제를 다루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기억을 잃고 월(月)이 된 연우는 자신을 비춰주었던 해(훤)의 곁에서 액받이 무녀로 살아가며 조금씩 기억을 찾아낸다. 이것은 마치 그믐이었던 달이 초승달과 반달을 거쳐 보름달로 바뀌는 그 과정을 그려낸다. 하지만 연우는 훤과의 관계를 통해 차츰 기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것이 자신의 기억이 아니라 남의 기억(신기로 들여다보는)이라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이 자신의 것으로 되돌아오는 시간은 바로 '일식'이다. 사실상 '해를 품은 달'이란 제목은 이 일식을 뜻하는 것이다. '해를 덮어버리는 달'은 잠시 현실을 지워버리고 과거의 기억만을 오롯이 띄우는 시간이다. 이 반전의 시간에 연우가 어린 시절 세자빈으로 있을 때 거처했던 은월각의 혼령받이로 들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절묘하다. 그것은 현재의 월이 과거의 연우를 만나는 장면이다. 그래서 월이 자신이 연우임을 알고 비로소 훤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것은 해와 달이 겹쳐지는 현상, 일식으로 상징화된다.

이렇게 보면 음양 사상과 무속적인 판타지가 뒤섞인 이 사극 콘텐츠에 왜 무녀라는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는가가 설명된다. 일식은 특히 사극에서 무녀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에피소드다. '선덕여왕'에서 일식이라는 현상은 미실이 민초들을 현혹시키는 방법으로 활용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무녀들은 이야기의 중심에 들어와 있었다. 이것은 과거 정통사극 시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때도 무녀들은 일식이라는 설정과 함께 왕의 실정을 드러내는 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해를 품은 달'이 가진 판타지적인 요소들은 이처럼 해와 달, 그리고 일식이라는 자연현상을 인물들로 상징화한 스토리와 엮어냄으로써 생겨난 것들이다. 멀리 떨어져 마주보고 있지만 결코 닿을 수 없는 그 아련함은 이 압도적인 자연현상에 그리움 같은 애절함을 부여한다. 이것은 '해를 품은 달'이 가진 기존 사극과는 상반되는 정조를 만들어낸다. 기존 사극들이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쏟아져 나와 숨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소설적인 흐름을 갖고 있었다면, 이 사극은 조금은 멈춰 서서 그 순간의 감정을 깊이 느껴보는 시적인 정조를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에서부터 우러나는 마치 한 편의 시 같은 느낌은 그래서 대중들이 이 사극에 빠져들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해품달' 성공이 중견작가들에게 시사하는 것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시청률 37%를 넘어섰다. 이런 기세면 40%도 손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사극이란 장르가 첫 회부터 20% 시청률로 시작해 통상 40%를 넘기는 것이 다반사였던 걸 떠올려보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드라마들의 시청률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해는 사극마저 20% 넘기기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항간에는 대신 예능이 드라마의 권좌를 빼앗았다는 얘기마저 돌았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이 첫 회에 18%의 시청률을 기록했을 때 심지어 제작진마저 깜짝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게다.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저 한 작품의 성공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즉 이 작품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함으로써 침체됐던 사극의 부활을 알리는 작품이다. 이 과정에는 '역사로부터의 탈피'라는 과감한 선택이 있었다. 역사 바깥으로 나와, 완전한 허구가 된 사극은 그 장르적 특성이 가진 장점만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역사적 배경만 떼어놓고 보면 전형적인 청춘 멜로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해를 품은 달'의 성공은 그간 침체기를 겪은 멜로 장르가 사극이라는 틀을 접목시켜 부활한 작품으로도 평가될 수 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작년 한 해 우리의 주목을 끈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그 핵심에 바로 이 '참신한 시도'가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공주의 남자'가 본래 역사를 재구성하여 팩션 사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의 한글 창제라는 소재 속에서도 전혀 다른 장르적 재미를 덧붙인 팩션 사극의 새로운 실험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작년 초 '현빈 앓이'를 만들었던 '시크릿 가든'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를 덧붙여 멜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독고진 현상'을 만든 '최고의 사랑' 역시 연예계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로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보기 드물게 법의학이라는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룬 '싸인', 의학드라마의 틀 안에서 심지어 컬트적인 시도를 보인 '브레인'도 그 참신한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들이었다.

반면 작년 두드러진 현상은 중견작가들의 저조한 성적이다. 김정수 작가가 쓴 '내일이 오면'은 10%대 초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고, 문영남 작가의 '폼나게 살거야'도 시청률 10%를 못 넘기고 있다. 그나마 임성한 작가가 '신기생뎐'으로 24%의 시청률을 올렸지만, 이 작품은 시청률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졸작이었다. 유령에 빙의되고 심지어 눈에서 레이저광선을 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을 막장 중의 막장으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알츠하이머라는 기억의 문제를 덧붙여 절절한 멜로를 만들어냈던 김수현 작가의 '천일의 약속'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냈지만 그 명성에 비해 저조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중견작가들이 써내는 거의 비슷비슷한 도돌이표의 작품들에 대중들이 시선을 거두기 시작했다는 것. 가족드라마가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것은 바로 이 점에 기인한다. 중견작가들이 주로 써온 가족드라마들은 인물 구성만 달리했지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굳어져 있는 게 사실이다. 또한 중견작가들의 작품들이 새로운 세계를 탐구하거나 연구해서 나온 작품이라기보다는 그저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한 마인드 게임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점도 대중들의 외면을 가져온 이유 중 하나다.

'해를 품은 달'의 진수완 작가, '공주의 남자'의 조정주 작가, '무사 백동수'의 권순규 작가, '싸인'의 김은희 작가, '브레인'의 윤경아 작가 등등, 사실상 신진작가들이 작년 대거 주목을 받은 반면, 중견작가들의 성적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제 제작진들의 시선도 바꾸고 있다. 그래서 벌써부터 드라마 업계에는 작가의 '세대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신진작가들에 비해 원고료는 터무니없이 비싸면서도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중견작가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는 것. 게다가 시청률이 나온다 해도 매번 비슷한 패턴에 머물러 있는 드라마에 대한 대중들의 평은 그다지 좋지 않다. 시청률이 좋아도 이런 작품에 광고가 잘 붙을 리도 없다.

물론 이렇게 중견작가들의 몸값이 성적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아진 데는 방송사의 책임이 있다.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 참신한 신진작가들의 실험보다는, 안정적인(?) 중견작가를 너나 할 것 없이 모시다 보니 이런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사실 극성이 높아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마련인 막장드라마의 양산은, 바로 이런 몸값에 걸 맞는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중견작가들의 안간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었다. 시청자들이 이런 작품을 외면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방송사 입장에서도 그런 작가를 기용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같은 패턴만 반복하는 것으로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만큼 작품은 쏟아져 나오고 드라마가 아니어도 점점 볼 건 많아지고 있다. 그러니 중견작가들은 이제 스스로도 연구하고 실험하는 작품을 고민해야 될 시기다. 중견작가로서 '뿌리 깊은 나무'를 쓴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그런 점에서 모든 중견작가들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제 아무리 자기 스타일이 있고 글 잘 쓰는 중견작가라고 해도 이제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해를 품은 달'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 속에는 그 참신함에 대한 갈증이 느껴진다.


'해품달', 기억과 착각의 변주곡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요즘 어떤 것에 매료되는 것을 흔히들 '앓이'로 표현한다. 특히 드라마가 성공하면 그 드라마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대한 '앓이'는 당연히 따라붙는 영광의 수식어가 됐다.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도 바로 그 '앓이'의 드라마다. 그토록 절절하게 연우(김유정)를 외치던 어린 훤(여진구)의 절규가 귀에 쟁쟁하고, 떠나면서도 훤의 강녕을 비는 연우의 오히려 담담한 서신은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성장한 훤(김수현)은 죽었다 생각하는 연우(한가인)를 앓고, 시청자들은 왕이 된 훤과 액받이 무녀가 된 월이 운명적으로 만나지만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안타까운 장면에 '해품달'을 앓는다.

'앓이'란 결국 기억의 장난이다. 어린 시절 훤이 연우를 만나지 않았던들, 그녀와 어떤 함께 한 기억을 갖지 않았던들, 그가 그토록 연우를 앓지는 않았을 터다. 훤은 어느새 장성한 왕이 되어있지만 과거 연우와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연우는 깊은 상처 때문에 바로 그 훤과의 기억만을 잃어버린다. 과거의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훤과 그 기억을 잃어버린 연우. 바로 이 균열의 지점에서 '앓이'가 만들어진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가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그럴 리 없다'며 부정하는 것은 그 '앓이'가 얼마나 깊었던가를 잘 말해준다. 훤은 자꾸만 월에게서 그녀가 연우라는 증거들을 찾아내고 놀라지만, 그것을 '미혹'으로 여긴다. "미혹됐다. 하지만 떨쳐버릴 수가 없구나."라는 훤의 대사는 그래서 보는 이를 더 아프게 한다. 한편 연우 역시 점점 돌아오는 과거의 기억들을 무녀인 자신에게 생긴 '신기'로 여긴다. 연우가 교태전 앞에서 과거 기억을 떠올리고는, 그것이 자신의 신기로 훤의 과거를 보게 된 것이라 생각하는 장면은 그래서 아프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 서 있지만 '앓고' 있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이 가깝지만 먼 거리감이 바로 '해품달'을 앓게 하는 가장 큰 힘이다. 흔히 '그리움'을 담는 콘텐츠들이 사랑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물리적인 먼 거리를 세워둔다면, '해품달'은 기억과 착각이라는 거리를 두는 셈이다. 사실 무녀라는 설정(그것도 주인공으로)은 사극에서 그다지 익숙한 것이 아니지만, 이런 신기로 착각하는 장치가 가진 힘을 생각해보면 실로 절묘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기억과 착각의 거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이뤄질 수 없는 것일수록 절절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훤과 연우의 '앓이'는 기억과 착각의 거리 속에서 점점 깊어지지만, 이 거리가 좁혀져 결국 서로를 알아본다 해도 채워지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왕과 무녀라는 신분의 거리가 그들 앞에 다시 놓이기 때문이다. 멜로라는 '앓이'의 장르가 기능하는 것은 남녀 사이에 놓여진 끝없는 장애와 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해품달'은 사극이라는 틀거리를 통해 이러한 남녀 사이의 거리두기를 끝없이 만들어내는 그 지점에서 '앓이'의 강도가 깊어지게 된다.

이렇게 그리움이라는 '앓이'의 실체를 놓고 보면 '해를 품은 달'이라는 상징적인 제목이 새삼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해와 달은 그만큼 먼 거리에 놓여져 있지만 달은 그 해의 볕을 받아 빛을 낸다. 그런 점에서 달과 해는 멀리 있어도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결국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가. 이것은 또한 우리가 고전을 통해 익숙한 달과 그리움의 이야기에 닿아있다. 멀리 있어도 달을 보며 자신의 님도 저 달을 보고 있으리라는 아련한 생각. 이것이 '해품달'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가슴 한 켠의 설렘과 절절함이 아닐는지.


왜 유독 연기력 논란은 여성에게 집중될까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이들의 연기력 논란은 이미 그들의 연기가 보여지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부탁해요 캡틴'의 구혜선은 '꽃보다 남자'의 금잔디 역할 이후 '변신 없는 연기' 때문에 이번 한다진 역할 역시 '제복 입은 금잔디'가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런 우려는 실제로도 드러났다. 구혜선은 여전히 금잔디의 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구혜선만의 문제가 아닌 다른 차원의 문제도 들어가 있다. 즉 대본이 엉망인데다, 캐릭터 역시 개연성이 없어 그 자체로도 몰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즉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은 연기자의 문제가 있지만, 캐릭터의 문제도 컸다는 얘기다. 어떤 면으로 보면 드라마의 총체적인 부실을 구혜선이라는 한 연기자의 연기력 논란으로 치부하는 듯한 가혹함마저 보인다.

'해를 품은 달'의 한가인에게 쏟아지는 연기력 논란은 이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상대 남자 역할로 나오는 김수현과의 너무 많은 나이 차이는 드라마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연기력 논란의 단초를 제공했다. 게다가 사극은 한가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기도 했다. 결국 너무 무리한 캐스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던 상황에서 한가인에게 예기치 못한 변수 하나가 더 생겨났다. 그것은 아역들의 놀라운 연기력이다. 여진구와 김유정은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의 열연으로 드라마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 바통을 이어받아야 하는 한가인에게는 그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가인의 연기력 논란은 그래서 구혜선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다. 연기 자체를 못한다기보다는 그 역할에 부여된 과도한 기대감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점이 그 논란의 특징이다.

'해를 품은 달'은 사실상 아역들의 호연에 의한 기대감 증폭이 모든 성인연기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여진구에 이어 훤의 역할을 이어받은 김수현은 그나마 제대로 그 매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양명군 역할의 정일우는 여전히 대사가 어눌하고, 운 역할의 송재림은 아예 표정이 없으며, 또 염 역할의 송재희 역시 아직까지 매력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한가인에게 쏟아진 연기력 논란은 어찌 보면 이 아역의 기대감에 미치지 못하는 성인 연기자들 전체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대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해를 품은 달'의 이러한 연기력 논란은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가는 성장통의 성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차츰 아역의 이미지가 지워지고 성인역들에게 시청자들이 몰입하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는 가라앉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캡틴 부탁해요'의 구혜선에게 쏟아지는 연기력 논란은 요령부득이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작품 자체의 캐릭터가 어설프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자칫 잘못하면 구혜선에서부터 시작해 심지어 지진희, 이천희까지 연기력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을 정도로 이해되지 않는 억지 설정의 캐릭터들이 너무나 많다.

연기력 논란은 사실상 캐릭터가 좋으면 덮어지기도 한다. 즉 연기자가 작품 선정만 잘 해도 그 논란을 빗겨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예슬이 '환상의 커플'에서 호평을 받은 건 연기력 때문이 아니라 좋은 캐릭터 덕분이었다. 물론 제아무리 좋은 캐릭터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으로 연기력 논란이 생기기도 한다. 이다해가 '에덴의 동쪽'이나 '추노'에서도 연기력 논란에 휘말린 건, 연기력 자체보다는 그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에서 비롯된 바도 크다. 즉 '연기력 논란'은 연기력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본의 문제, 캐릭터의 문제, 캐스팅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문제다.

이렇게 보면 구혜선에게 쏟아지는 연기력 논란과 한가인에게 쏟아지는 연기력 논란이 단지 연기자들의 연기력 부족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할 수 있다.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은 연기도 문제지만 대본의 문제가 더 심각하고, 한가인의 연기력 논란은 처음 해보는 사극 연기 탓에 감정이입이 더 깊이 되지 않고 있는 한가인의 연기도 문제지만 아역에서 성인역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모든 연기자들의 성장통이 더 주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즉 구혜선의 문제는 구혜선만의 문제가 아니고, 한가인의 문제 역시 한가인의 문제만이 아니란 얘기다.

그런데 왜 논란은 구혜선과 한가인으로 집중되는 것일까. 그것이 가장 약한 고리이기 때문에? 여성연기자가 그만큼 드라마에서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그것이 아니라면 혹 여성연기자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선, 즉 선망과 질투 때문에? 그것이 무엇이든 여성연기자들이 더더욱 연기력 논란에 휩쓸리기 쉬운 것만은 분명한 현실이다.


'뿌나'에서 '해품달'까지, 팩션 사극을 연 대표작가들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이 방영 시작 전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데는 정은궐 작가라는 원작자의 작품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성균관 스캔들'의 원작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을 쓴 작가다. '성균관 스캔들'은 사극의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적 배경을 과거로 돌린 채, 그 안에서 지극히 현대적인 청춘멜로를 담아냄으로써 사극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청춘멜로나 사극 이 두 장르는 모두 어떤 침체기에 접어 들어있었지만, 이 두 이질적인 두 장르가 합쳐지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났다. 청춘멜로가 갖는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비현실적 느낌은 사극을 만나 그 무게감을 확보하게 되었다. 사극 특유의 강한 극성은 멜로조차 그 결과로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 '성균관 스캔들'이 성균관이라는 금남의 지역에서 남장여자라는 아슬아슬한 청춘멜로를 실험했다면, '해를 품은 달'은 그 공간을 궁궐로 강화시키고, 세자와의 로맨스를 통해 삶과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극성 높은 청춘멜로를 그려냈다.

반응은 놀랍게도 단 6회 만에 마의 시청률이 되어버린 30%에 육박하는 결과를 내고 있다. 이것은 최근 사극의 시청률이 20%대 중반에 정체되어 있던 것을 염두에 둔다면 놀라운 결과다. 이제 겨우 도입부에 불과한 스토리에서 이 정도라면 '해를 품은 달'은 어쩌면 전성기 시절의 사극이 거둔 성과를 재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여진다. 이런 변화를 가져온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팩션 작가 정은궐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의 틀에 갇히기 보다는 그 역사적 틀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사극의 세계를 개척한 팩션 작가들의 그 과감한 파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성균관 스캔들'과 '해를 품은 달'의 원작자인 정은궐 작가와 함께 주목되는 팩션 작가는 이정명이다. 작년 말 화제를 불러일으킨 '뿌리 깊은 나무'의 원작자인 이정명 작가는 신윤복이 여자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그의 그림을 통해 스토리를 만들어내 화제가 되었던 '바람의 화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바람의 화원'은 겉으로 보기엔 여성으로 설정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예술가의 초상을 그려낸 듯한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들의 풍속화가 하나의 모티브가 되고 그 풍속화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로운 사극의 실험이었다.

이정명 작가는 이 두 작품을 통해 보여지듯이 역사적 인물을 소재로 끌어오지만 그것에 대한 파격적인 해석이 돋보이는 작가다. 그는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소재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궁궐 내에서의 연쇄살인사건을 다루었다. 사실 세종 시대는 태평성대였기 때문에 사극처럼 극적 대립이 필요한 장르에 쉽지 않은 소재다. 하지만 연쇄살인사건이라는 역사 바깥에서의 극적 상황을 집어넣자 이 작품은 전혀 다른 긴장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 원작을 드라마로 재해석한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이 원작을 보고 나서 비로소 세종 시대를 사극으로 다룰 수 있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파격적인 실험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이 있지만 확실히 사극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은 달라졌다. 정통사극의 시대는 왕의 시점으로 읽히는 역사를 강요받던 권위주의의 시대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역사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푸코가 미시사를 가져와 본래 역사가 가진 권위를 해체시켰던 것처럼, 역사란 사실 권력자의 기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다른 계층의 시각으로 보면 역사는 또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셈이다. 역사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사극의 새로운 스토리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좀 더 극대화되고 심지어 장르화된 것이 '바람의 화원', '성균관 스캔들', '뿌리 깊은 나무', 그리고 '해를 품은 달'로 이어지는 새로운 사극의 계보다. 그 중심에 이정명, 정은궐 같은 팩션 작가가 있었다는 얘기다.

사극의 이러한(역사를 벗어나 장르화 되는) 변화는 향후 이 장르가 한류 드라마의 대표 콘텐츠가 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사실 사극이 굉장히 글로벌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은 '대장금'을 통해 확인되었다. '대장금'은 일본, 동남아를 넘어서 중동, 유럽까지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으니까. 그만큼 사극은 우리의 모습을 가장 특징적으로 잡아낼 수 있는 장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극이 역사에 집착하게 되면 민족주의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 최근 사극의 변화는 이런 틀을 과감히 벗어던진다는 점에서 훨씬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사극은 이제 더 이상 역사교과서가 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콘텐츠로 즐기는 대상이 된 것. 이정명, 정은궐 같은 사극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한 팩션 작가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해품달', 아역만으로 25%, 성인역은?

'해를 품은 달'(사진출처:MBC)

세자빈으로 간택 받았으나 저주를 받아 원인 모를 병에 걸려버린 연우(김유정)는 결국 궁 밖으로 쫓겨나고, 그걸 바라보는 세자 이훤(여진구)은 오열한다. 간택되기 위한 수많은 궁궐 내의 암투와 그로 인해 사가로 내쫓겨지는 설정은 사극의 오래된 소재다. 하지만 이 닳고 닳은 소재가 이토록 절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것이 어른이 아닌 아이이기 때문일 게다. 겉모습은 세자와 세자빈이지만, 그 껍질을 벗겨내면 결국 아이들일뿐인 그 어린 상처를 바라보게 만드는 절절함.

그런데 이 아역들이 보통내기들이 아니다. 연우를 연기하는 김유정의 눈빛은 어린 나이에도 연정에 설레는 여인의 태가 제법 느껴진다. 안정감 있는 목소리에서는 그 단정한 기품마저 전해지고, 그런 아이가 세자 이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볼 때는 때론 소녀 같다가도 때론 성숙한 여인 같은 인상마저 남긴다. 이훤을 연기하는 여진구는 어떤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 속에는 기품이 느껴지고, 때로는 결단력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연우 앞에 서서 그녀를 바라보는 그 눈빛에는 진정 깊은 사랑이 드러난다. 둘이 만나는 장면에 미소 짓게 되고 둘이 헤어지는 장면에 똑같이 마음이 아픈 건 전적으로 이 아이들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연기의 소유자들 덕분이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김유정과 여진구의 놀라운 연기는 '해를 품은 달'이 그 첫 번째가 아니다. 이미 김유정은 '동이'에서 아역을 맡아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아픔을 절절하게 표현해낸 괴물(?) 아역이다. 또 '구미호, 여우누이뎐'에서는 구미호의 딸로 등장해 소름끼치는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여진구는 '자이언트'의 어린 강모 역할을 맡아 부모 없이 길바닥에서 생존해가는 연기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긴 아역이다. 연기경력도 화려해서 '연개소문', '일지매', '태양을 삼켜라', '명가', '무사 백동수' 등 수많은 작품의 아역을 거쳤다. 무엇보다 아이 같지 않은 김유정의 눈물연기와 여진구의 강인한 인상은 이 두 연기자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해를 품은 달'이 이제 겨우 5회를 끝내고 시청률 25%에 육박하게 된 가장 큰 일등공신들은 다름 아닌 이 아역들의 힘이다. 아이가 가진 특유의 순수함과 그 아이 같지 않은 연기력으로 깊어지는 사랑 연기는 이 청춘 멜로 사극 특유의 색채를 구축해 놓았다. 기존 사극들이 가진 무거운 어른들의 세계와는 차별되는, 아이들 특유의 환상적이고 맑으면서도 두려운 어둠에 대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세계. 이것이 초반 몇 회만에 시청자를 품은 이 사극의 비결이다.

아역들이 이런 발군의 연기로 초반 분위기를 장악해버리자 그 바통을 이어받을 성인역할의 연기자들에게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연우의 역할을 해야 할 한가인과 이훤의 역할을 연기할 김수현은 어쨌든 이 아역들과의 비교를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특히 한가인은 물론 절대 동안의 얼굴을 가졌지만, 그 연기를 통해 나이를 뛰어넘는 캐스팅이 적절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었다. 여러모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아역이라면 그저 성인역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기 위한 짧은 방편으로 치부되었다면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아역은 드라마의 초반 힘을 확실히 세워주고 이끄는 존재들이 되었다. 그렇게 된 것은 아역의 연기력이 점점 성인역을 압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상을 일상으로 살아온 아이들의 카메라에 대한 친숙함과 일찍부터 트레이닝된 연기, 게다가 아이 특유의 몰입이 맞물리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여진구와 김유정은 바로 그 일상의 영상세대가 낳은 첫 번째 수혜자들인 셈이다.

이게 진정 아이의 연기란 말인가. 이들의 연기를 보면서 그들이 아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린 어른들은 그래서 당혹감을 넘어서 감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과연 '해를 품은 달'은 이 아역들이 보여준 감동을 성인역으로 고스란히 연결해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초반 이미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둬낸 이 사극이 가진 가장 큰 수확이자 고민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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