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온 마스’의 특별한 해피엔딩, 시즌2도 가나요?

역시 엔딩도 <라이프 온 마스>다웠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이 함께 공존하는 마무리. 의식을 찾고 현실로 돌아왔던 한태주(정경호)는 내내 무의식 속 코마상태에서 만났던 1988년 동료들을 구해내지 못하고 왔다는 것을 후회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무의식을 향해 달려갔다. 그것은 건물 옥상에서 저편으로 뛰어버리는 것을 뜻하는 것이지만, 조폭들에 둘러싸여 맞아죽을 위기에 몰린 동료들을 구하러 가는 길이기도 했다. 

그렇게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는 결국 동료들을 구했고, 그들과 계속 그 곳에 남아있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여전히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이 있었고, ‘서울 전출명령’이 내려지면서 그것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에 한태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마치 자신이 만든 또 다른 분신처럼 등장한 의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리는 건가요?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한태주씨가 웃으면서 살아가는 곳이 바로 현실이에요.” 결국 그는 의식 저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들을 무시했고 강력3반 동료들과 계속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 곳이 자신이 행복을 느끼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두 개의 시간을 오가는 설정의 장르물들이 꽤 많이 등장했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타임리프 판타지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을 오가는 독특한 설정의 장르물이었다. 사고로 의식을 잃은 동안 무의식 속에서 1988년을 겪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그 무의식을 그저 빠져나와야 할 망상으로 치부한 게 아니라, 그 곳에 머물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1988년에서 만난 강동철(박성웅), 이용기(오대환), 조남식(노종현) 그리고 윤나영(고아성)이 한태주를 의식이 아닌 무의식 속으로 끌어들인 장본인들이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지만 그래도 그 누구보다 의리와 정이 넘치는 강동철은 마치 형처럼 한태주를 챙겼고, 늘 투덜대며 명령조차 무시하곤 했던 이용기는 한태주에게 술을 따라주며 풀어진 마음을 드러냈다. 경찰보다는 미스 윤이라 더 많이 불리며 커피 타는 일을 더 많이 했던 윤나영은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줬던 한태주가 마음을 조금 열자 반색하는 얼굴이었다. 

그들이 있어 이 드라마의 의식보다 더 끌리는 무의식의 이야기가 가능했다. 물론 <라이프 온 마스>는 수사 장르물로서의 결을 보여준 드라마지만, 또한 별 감흥이 없는 의식세계와 행복감을 주었던 무의식 세계 사이에서 한태주가 어떤 걸 선택할 것인가를 통해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드라마는 웃지 않고 무표정하게 살아가는 삶이 코마에 빠져 행복감을 느끼는 삶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니 말이다. 

워낙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들이 쏟아졌기 때문일까. <라이프 온 마스>는 시즌2에 대한 암시를 에필로그 속에 담아 두었다.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가 강력3반 동료들과 사건현장을 향해 떠나는 장면과 함께 에필로그는 죽은 줄만 알았던 김현석(곽정욱)의 전화를 받는 모습을 담았다. 시즌2를 기대하게 만드는 대목이었다. 

리메이크 작품이었지만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라이프 온 마스>는 우리 식의 해석들이 참신하게 채워졌던 드라마다. 리메이크라면 응당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보여준 대본과 연출의 완성도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정경호, 박성웅을 위시해 오대환, 고아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몰입감을 높였다. 이 제작진과 배우들이 모두 함께 시즌2로 돌아올 수 있기를.(사진:OCN)

‘시카고’, 시청률 아쉬웠어도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인 이유

tvN 금토드라마 <시카고 타자기>가 종영했다. 물론 시청률은 만족스러울만한 수치가 아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때 1%대 시청률까지 떨어지기도 했지만 평균적으로 2% 시청률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작품을 단순히 시청률만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작품의 완성도를 두고 볼 때 <시카고 타자기>는 최근 방영된 어떤 작품보다 높은 수준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사진출처:tvN)'

타자기에 깃든 유령 유진오(고경표), 그리고 그 유령이 작가 한세주(유아인)와 함께 써나가는 소설, ‘시카고 타자기’. 그리고 그들 사이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동지와 사랑으로서 운명처럼 들어와 있는 전설(임수정). 일제강점기라는 전생의 이야기가 2017년 현생의 이야기와 교차되며 어떻게 역사와 기억이 조응하는가를 ‘소설’이라는 틀로 보여준 진수완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 게다가 더할 나위 없는 연기로 이 상상의 작품에 생명력을 부여한 유아인, 임수정, 고경표라는 배우들의 아우라까지. <시카고 타자기>는 한 마디로 더할 나위 없는 수작이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 집필기로 시작하지만 그 이야기의 끝을 보면 놀랍게도 일제강점기에 조국 해방을 위해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청춘들에 보내는 헌사를 담고 있다. 그 소설이 사실은 전생에 독립투사들이었던 자신들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던 것. 당시 조국을 위해 싸우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했던 그들은 통일된 조국의 후생을 기약했고, 그렇게 환생한 이들이 잊혀져 가는 당시 청춘들을 기억해나간다는 설정은 지금 현재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시카고 타자기>는 그래서 일제강점기라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역사적 시각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들의 아프고 찬란했던 사랑 이야기까지 담았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판타지 설정의 이야기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재미적 요소만큼 의미 또한 남달랐던 작품도 드물 것이다. 

무엇보다 <시카고 타자기>의 완성도가 높다고 여겨진 건, 이 판타지가 그저 재미를 위한 인위적 설정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아가 문학적 상징으로까지 이해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이 작품은 그 안에 전생을 기억해나가고, 유령과 대화하고 교감하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소설’을 쓰는 작가의 상상력을 상징화하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었다. 즉 이 작품 전체가 한세주라는 작가가 일제강점기의 청춘들을 상상하며 받은 영감으로 쓴 소설이라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소설을 끝내고 그 소설 속에 유진오를 영원히 봉인시킨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소설가들이 자신의 작품 속 인물을 마치 실제 인물처럼 몰입하는 일은 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설가 같은 창작자들에게는 마치 신비 체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품은 전생과 현생을 넘나들었던 것처럼,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을 동시에 묶어냈다. 즉 전생의 삶들은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은 현생의 삶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인 해피엔딩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카고 타자기>의 종영은 그 느낌이 독특하다. 새드엔딩과 해피엔딩이 겹쳐져 어딘지 쓸쓸하면서도 위로를 받는 듯한 행복감 또한 그 안에 담겨진다.

되돌아보면 현생과 전생을 넘나드는 청춘 멜로에 소설과 현실을 뛰어넘고, 판타지와 실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내면서 하나의 굵직한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의 탄생은 실로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전생과 현생의 인물들을 넘나들며 사실상 1인2역을 해낸 연기자들의 공적 역시 박수 받을 만하다. 시청률은 아쉬웠지만 그것만으로 평가받는 건 더욱 아쉬운 작품이 바로 <시카고 타자기>였다.

<도깨비>, 해피엔딩과 새드엔딩을 동시에 껴안고 걸어가는

 

tvN 드라마 <도깨비>는 그 앞에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수식어를 달았을까.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점에 서서 다시 처음을 돌아보니 도깨비라는 캐릭터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쓸쓸하지만 또한 찬란하게 스러진다. 그의 가슴에 꽂힌 검이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살면서 가슴 한 켠에 꽂고 살아가는 쓸쓸함과 찬란함을 표징하는 것일 게다. 그래서 그 검이 뽑히는 날 누구나 쓸쓸하고 찬란하신 죽음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여타의 드라마였다면 죽음은 그 이야기의 끝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도깨비>는 죽음이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이미 그들은 여러 차례 죽었었다. 김신(공유)과 김선(유인나)은 이미 왕여(이동욱)의 지시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바 있고, 그들은 다시 태어나 새로운 관계로 얽혀진다. 전생의 삶은 그렇게 이생의 삶으로 인연을 이어간다. 이 이야기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하다. 김신의 죽음은 도깨비로의 부활로 이어지고 그 부활은 다시 도깨비신부를 만나 무()로 돌아가는 또 다른 죽음의 길을 걸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버린 도깨비는 그것으로 끝일까. 마치 마지막 회처럼 몰아친 한 회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을 예고한다. 도깨비가 캐나다의 한 레스토랑에서 봤던 지은탁(김고은)이 누군가를 부르는 그 장면은 그래서 그 시작을 알리는 복선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것이 다른 남자인 듯 질투를 보이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그려졌지만 어쩌면 그녀가 부르는 그 남자는 다시 시작된 삶을 살게 된 도깨비 자신이 아닐까.

 

<도깨비>가 흥미로운 건 쓸쓸하고 찬란하신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수식어를 달은 것처럼 희극과 비극이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시 살아나고 도깨비 신부를 만나는 그 과정은 삶의 행복이 묻어나는 희극이지만, 그 행복의 끝은 결국 도깨비의 가슴에 꽂힌 칼을 신부가 뽑아내는 비극이다. 여기에는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투영되어 있다. 삶이 찬란할 수 있는 건 어찌 보면 그 끝인 쓸쓸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몇 차례의 죽음이 드라마 속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드라마의 극성을 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도깨비>의 시청률이 15.5%(닐슨 코리아)까지 상승할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의 이런 독특한 이야기 구조 덕분이다. 시청자들은 그들의 밝고 경쾌한 이야기에 매료되면서도 거기에 서서히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에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도깨비의 죽음이라는 극적 상황을 보여주지만 또한 드라마의 이야기 구조상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여지를 남겨 놓는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드라마 시청자들은 그 끝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민감하다. 그래서 엔딩을 암시하는 무언가가 등장할 때마다 기대감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그런데 <도깨비>는 이 둘을 동시에 껴안고 끝을 향해 걸어간다. 도깨비의 죽음은 과연 새드엔딩일까. 그건 다시 벌어질 해피엔딩의 시작은 아닐까.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 하듯 걸어가는 <도깨비>에 시청자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시 살아 돌아오길 더더욱 간절히 기원하며. 이러니 다음을 기다리는 한 주가 900년 같다는 말이 나올 밖에.

양다리 사이에서 <질투>는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SBS 수목드라마 <질투의 화신>은 삼각관계의 관점이 독특한 드라마였다. 즉 보통의 삼각관계라고 하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주인공이고 제3의 인물이 그 사이를 방해하는 연적으로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이 드라마는 거꾸로 사랑하는 남녀를 옆에서 바라보며 아파하고 질투하는 제3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화신(조정석)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3년 간 자신을 따라 다닐 때만 해도 그다지 관심이 없던 이화신이 표나리(공효진)에게 관심을 갖게 된 건 친구인 고정원(고경표)가 그녀와 좋아하는 사이가 되면서다. 자꾸만 그들이 눈에 밟히고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두근대고 아파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이화신은 홀로 먼발치서 친구와 사랑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가슴앓이를 한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되자 시청자들의 마음이 이화신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가슴이 아파 아이처럼 투덜대고 지질하게 구는 그에게 연민과 동시에 귀여운 매력 같은 것들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하지만 이화신이 자신의 속내를 표나리와 고정원에게 들킨 후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친구와 주먹다짐까지 하다가 셋이 함께 사는 기묘한 동거까지 하게 되면서 표나리의 마음이 흔들린다. 무엇보다 고정원에게 다른 여자가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무감하던 그녀가 이화신이 혜원(서지혜)과 키스를 하고 가깝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는 질투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녀 역시 자신의 사랑이 이화신을 향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되자 상황은 뒤집어진다. 이제 이화신을 향해 표나리가 애정을 갈구하게 되고, 표나리는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그를 떠난다. 이화신과 표나리가 밀고 당기며 서로의 애정전선을 확인하고 있는 달달한 순간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서 시청자들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정원에게 다시 기울어진다. 친구에게도 연인에게도 혼자 버림받은 그가 못내 눈에 밟히는 것이다.

 

패자의 입장에서 어떤 연민의 대상이 되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었던 이화신이지만 이제 그 입장은 고정원이 갖게 됐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아쉬워지는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 삼각관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복잡하게 됐다. 물론 <질투의 화신>이라는 제목에 이미 적시되어 있듯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이화신일 수밖에 없지만, 그의 입장이 바뀌게 되면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독특한 사랑(질투하며 사랑하는)의 주인공은 고정원쪽으로 옮겨가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드라마의 전개가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충분히 예상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이제 고정원과 이화신 모두가 꽤 괜찮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일이 다른 한쪽을 배제하는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결코 쉽게 해피엔딩에 도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해피엔딩이면 다른 한쪽은 새드엔딩이 되니까.

 

이건 <질투의 화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딜레마지만 동시에 그건 이 독특한 드라마의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관점을 담아낸 사랑이 아니라 여러 관점들이 동시에 투영된 사랑. 그래서 균형 잡기가 어렵지만 그것은 어쩌면 진짜 사랑의 면면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얽힌 관계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나. 우리가 봐왔던 무수한 해피엔딩 뒤에도 숨겨진 새드엔딩이 있었다는 걸 상기시켜주는 드라마라니

빈틈 많아도, 상상력을 끝까지, <W>의 가치

 

우리에게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종영한 MBC <W>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든 시도를 보여줬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엉켜버리는 어찌 보면 빈틈도 많고 복잡한 이야기는 어떻게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W(사진출처:MBC)'

<W>의 가장 가치는 결국 상상력이다. 만일 우리가 웹툰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을 것이다. 웹툰의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허구의 캐릭터가 각성하는 걸 자신을 삼켜버릴 괴물로 인식한 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맥락 없이 그를 죽이려 하고, 오로지 강철에게 강력한 동인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얼굴 없는 진범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각성하게 되면서 <W>라는 웹툰의 세계는 상상력이 폭주하는 세계가 되었다.

 

죽었던 인물을 꿈으로 설정해 되살리고, 진범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오히려 작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실제 인물 오연주(한효주)를 웹툰의 세계로 옮겨 다시 살려내는 등, <W>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상상력으로 뛰어넘겠다는 듯 반전스토리로 이어갔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건 웹툰의 세계라는 허구의 공간이 실재하고 그 안의 인물들도 저 마다의 법칙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 드라마의 가정 덕분이다.

 

결국 결론은 오성무라는 작가의 희생으로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런 끝은 사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또한 굉장히 복잡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들 하나하나를 그것이 왜 벌어졌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일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W>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가 하는 점일 게다.

 

웹툰의 인물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빠져드는 세태. <W>는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저 황당하게만 읽히는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세계가 더 이상 그저 가짜로만 치부되지 않고 마치 진짜처럼 여겨지고, 심지어 그 가상의 인물들과 사랑에 빠지는 <W>의 이야기는 그래서 콘텐츠의 시대가 보여줄 미래의 세계를 슬쩍 보여주는 면이 있다.

 

이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같은 기술들이 가상을 통해 현실을 바꿔가고 있는 것처럼 <W>의 세계는 그저 한 편의 드라마라고만 말할 수 없는 우리의 가상이 갖는 무게감을 잘 드러냈다고 보인다.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W>의 세계였다. 가상의 인물들은 창조되고 설정된 이후에는 그 고유의 힘에 의해 끝까지 움직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개입은 오히려 세계를 망치고 자신을 망치는 길이 되기도 한다. <W>의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결국 이 캐릭터들과 작가의 싸움에서 비롯됐던 일들이다. 허구라고 해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W>는 허구의 시대가 현실을 압도하고 바꿔나가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끝까지 엔딩을 이뤄냈고 물론 허점도 많은 이야기지만 시청자들의 욕망을 추동시킴으로써 그 빈틈을 채워 넣는 기발함과 능숙함도 보여줬다. 결국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제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의 자생력과 그걸 보는 독자와의 긴장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되었다. ‘잡아먹히느니 잡아 먹겠다는 경구는 지금의 작가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일 뿐, 이제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것이 될 수 없는 시대다.

 

그저 잠깐 상상으로만 했을 수 있는 세계. 하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것을 끝없이 발전시켜 상상력이 폭발하는 세계로 만들어냈다. <W>의 가치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늘 드라마라고 하면 머릿속에 공식처럼 떠오르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그걸 <W>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 보여줬다.

<W>의 엔딩, 그 어느 작품보다 궁금한 까닭

 

이건 마치 송재정 작가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작가는 애초에 <W>의 해피엔딩에 대한 강력한 갈망을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의 입을 빌려 얘기한 바 있다. 이건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그러니 <W>라는 드라마는 송재정 작가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난관들과 적들의 공세 속에서 주인공인 강철과 오연주(한효주) 그리고 그들을 돕는 웹툰 작가 오성무(김의성)와 그 조수인 박수봉(이시언)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그려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W(사진출처:MBC)'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액자적 구성이다. 송재정 작가가 쓴 드라마 <W>는 그 안에 오성무라는 웹툰 작가가 있고 그가 ‘W’라는 웹툰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송재정 작가와 오성무라는 웹툰 작가는 같은 작가로서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처음 오성무는 자신이 만든 웹툰의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인물들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각성하기 시작한 강철을 죽이려 했던 것.

 

하지만 차츰 그 웹툰의 세계와 현실이 연결되고 웹툰 속 진범이 현실로 나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심지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그를 아바타처럼 만들어버리자 상황은 역전된다. 아마도 이처럼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마음대로 상황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캐릭터에 의해 노예처럼 질질 끌려가는 상황은, 실제 드라마를 쓰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벌어질만한 일이다.

 

일단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상황이 주어지면 그 캐릭터는 작가가 원치 않아도 어떤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게 된다. 캐릭터가 너무 작가의 의지에 의해 자의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작품은 망가지고 대중들은 공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작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캐릭터는 그 내적 동인에 의해 움직이고 심지어 작가가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작가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주인공이나 다른 인물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국면전환을 해내는 것이다. <W>의 경우 폭주하는 진범에 의해 심지어 오연주까지 죽음을 맞게 되자 강철과 오성무 그리고 박수봉이 서로 힘을 합쳐 다시 오연주를 살려내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황당할 수 있는 설정이 가능한 건 <W>의 이야기 세계가 이미 현실과 웹툰 세계가 이어져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 매개인 태블릿 PC를 통한 시간의 되돌림이나 인물의 부활이 가능한 세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W>의 마지막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작가의 의지는 물론 해피엔딩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떻게든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진범이 영원히 죽기를 바라며 또한 오성무와 박수봉이 그들 곁에 살아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작품의 내적 동인에 의해 만들어진 죽었다가도 다시 부활하는 캐릭터들의 문제는 엔딩 또한 편안하게 볼 수 없게 만든다. 강철과 오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진범 역시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이고 그 진범의 목적인 주인공들을 죽이고 자신이 그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드라마들이 엔딩에 도달해 그걸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떤 경우에는 새드엔딩이 당연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져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작품 내적인 개연성과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꿈꾼다. 과연 <W>는 어떤 방식으로 납득할만한 해피엔딩을 그려낼까. 송재정 작가의 머릿 속이 못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또 오해영>, 로맨틱 코미디의 또 다른 진화

 

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가 등장한다. 그 장애는 연적이 되기도 하고 부모가 되기도 하며 때로는 너무 다른 빈부 격차가 되기도 하고 아주 가끔씩은 사회적 편견이 되기도 한다. 달달하고 웃긴 코미디로 시작하지만 중반 이후로 흘러가면서 조금씩 무거워지고 심지어 비극을 향해 달려가기도 하는 흐름을 보인다.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에 대한 논의들이 오갈 때 드라마는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며 끝을 마무리한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그 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이 보여줬던 공식들이다. tvN <또 오해영> 역시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지만 그것은 인연이 아닌 악연으로 시작하고 그 악연이 다름 아닌 같은 이름때문에 빚어진 오해로부터 비롯된다는 건 그 많던 공식들과 비교해보면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꼬이며 만나게 된 남녀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며 벌이는 알콩 달콩한 시트콤적 상황들은 여지없이 로맨틱 코미디의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하지만 소리를 채취하고 만들어내기도 하는 음향 감독이라는 직업적 특성이 이 전형적 상황들을 변주시킴으로써 드라마를 새롭게 만든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살짝 보인 직업의 세계지만, <또 오해영>의 도경(에릭)이 들려준 창문을 열면 들려오는 햇볕의 소리같은 건 확실히 참신한 소재들이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이 드라마가 시도한 새로움은 도경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혹은 병)을 통한 것들이다. 다름 아닌 오해영(서현진)과 관련되어 미래를 보는 능력은 이 로맨틱 코미디의 갈등 양상을 독특하게 만들었다.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일들이 도경의 눈에 비춰지면서 드라마는 굉장한 긴장감을 만들었다. 즉 자꾸만 보이는 도경의 죽음을 암시하는 미래의 풍경들은 드라마 속에서 도경이 해영과 거리를 두려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사랑하자는 의지를 만들어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걸 보는 시청자들은 더 간절해진다. 혹여나 이 달달한 커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은 마지막회까지도 이어진다.

 

로맨틱 코미디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본능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이야기의 소재로 기능할 수 있었지만, 너무 많이 다뤄지면서 식상해지고 긴장감도 흐트러진 면이 있다. <또 오해영>이 흥미로운 건 이렇게 흐트러진 긴장감을 미래를 보는 능력이라는 정신 병리학적 상황을 투입함으로서 다시 팽팽하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오해라는 어찌 보면 사소할 수 있는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을 울고 웃게 만든다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부지불식간에 드러낸다. 사랑은 굉장한 운명적 사건처럼 여겨지지만, 사실은 사소한 실수와 오해가 만들어낸 신의 장난같은 것이다. 도경과 해영의 만남이 그렇고, 수경(예지원)과 진상(김지석)이 관계를 맺는 과정이 그렇다.

 

비극이 운명 앞에 그 가녀린 존재로서의 인간을 동정과 연민의 시선으로 보게 만들어내는 것처럼 <또 오해영>은 그 사소한 부딪침들에 대해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엮어내는 무거운 삶 앞에서 그들을 연민과 동정의 시각으로 보게 만든다. 아마도 도경이 가진 미래를 보는 일은 그래서 그것이 능력이라기보다는 극복해야할 질병처럼 느껴지는 것일 게다.

 

그렇게 모든 게 꼬일 대로 꼬인 사소한 오해를 통해 우리는 만나게 되지만 그 운명을 뛰어넘는 건 두 사람의 의지라는 점에서 사랑은 위대하다. <또 오해영>에서 도경이 보던 미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해영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른 미래를 선택하는 것으로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이야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정해진 운명과 그걸 뛰어넘는 의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래서 <또 오해영>이 로맨틱 코미디라는 가벼울 수 있는 장르를 가져와 얻어낸 적지 않은 성취다. 사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는 그 장르 자체가 식상해진 게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줬다. 그 틀이 마치 운명처럼 정해진 노선으로만 달렸던 것이 그 흔한 로맨틱 코미디들이 가진 한계였다면, 그 노선 바깥으로 슬쩍 방향을 돌려놓음으로써 그 밖에도 무한한 가능성의 로맨틱 코미디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건 <또 오해영>이라는 드라마의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다. 마치 도경이 정해진 미래를 벗어난 선택으로 미래를 바꾸었던 것처럼.

미래는 바뀔 수 있다...<또 오해영>의 사랑론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종영한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토록 많이 들었던 그 목소리가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도 들려온다. 물론 <시그널>이 과거를 고쳐 미래를 바꾸는 설정이 판타지를 통해서였다면, <또 오해영>은 도경(에릭)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기시감을 통해서다. 도경은 이미 본 미래와 다른 말과 행동을 선택함으로써 그 미래를 바꾸게 됐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기시감 속에서 도경은 오해영(서현진)에게 미안하다. 아는 척해서라고 속내를 숨긴 채 말하고 있었지만, 그는 실제로는 신발 바꿔 신어. 발소리 불편하게 들려라는 말로 슬쩍 자신의 걱정하는 속내를 드러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항상 속내를 감추며 살아왔던 도경이 변화를 선택했다는 걸 보여준다.

 

도경이 변화하자 그 다음의 일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시감 속에서 오해영이 한태진과 손잡고 가는 장면은 두 사람이 거리를 둔 채 걸어가는 장면으로 바뀌었다. 병원에서 오해영을 재회한 도경은 또 기시감과는 다른 말을 건넸다. 늘 해왔던 미안하다는 말 대신 그는 미안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반갑다. 나만 아프면 억울할 뻔 했는데 너도 아파서 반갑다. 시간을 다시 돌려도 난 네 결혼을 깰 거고 옆방에서 다시 만날 거다. 정말 미안한데 네 결혼 깬 것 하나도 안 미안하다. 미안한데 이게 진심이다. 너 안고 뒹굴고 싶은 것 참느라 병났다.” 이 말은 결국 오해영의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병원을 나선 도경의 뒤로 한 달음에 달려오는 그녀의 발이 보였다. 두 사람은 결국 키스하며 다시 사랑을 확인했다.

 

<또 오해영>이라는 멜로드라마가 시청자들을 오리무중에 빠뜨리며 헤어 나올 수 없게 한 장치는 도경이 갖고 있는 미래를 보는 능력이다. 사실 그건 능력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증상에 가깝다. 그가 정신과의사 박순택(최병모)을 찾아와 상담을 하는 건 그래서다. 교통사고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도경의 모습이 그 기시감을 통해 보여지면서 시청자들은 그가 죽어가고 있고 그 시점에서 오해영과의 사랑을 회고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기시감이 생겨난다고 추측하게 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새드엔딩에 대한 불안감이 생겨났던 것.

 

하지만 <또 오해영>은 이런 이미 결정된 운명에 수동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도경의 선택에 의해 미래를 바꾸게 된다는 것이 이 드라마가 제시하고 있는 해결방식이다. 결국 도경의 기시감이 말해주는 건 미래가 마음이 그리는 그림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는 선택 하나하나가 모여 미래를 구성한다는 것. 도경의 기시감이 주는 비극적인 상황들은 사실 그가 상처를 받을 지라도 속내를 드러내고 부딪치지 않고, 그저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스스로 예단한 미래 때문에 생겨난 일인 셈이다.

 

주치의인 박순택이 도경에게 인생은 마음에 대한 시나리오라고 말하듯 <또 오해영>은 우리의 마음과 그 마음이 선택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이런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건네는 로맨틱 코미디가 과연 있었던가. 사랑을 두고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만을 논하던 로맨틱 코미디가 차원을 훌쩍 뛰어넘어 마음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마음을 통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이건 마치 멜로판 <시그널>을 보는 듯하다

<또 오해영>, 벌써부터 엔딩 두고 분분한 까닭

 

tvN 월화드라마 <또 오해영>18부작이다. 본래 16부작이었지만 2회 연장되었다. 그리고 현재 9회까지 방영되었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돈 셈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엔딩을 두고 얘기가 분분하다. 이렇게 된 건 많은 이들이 해피엔딩을 꿈꾸지만, <또 오해영>에 얽혀있는 관계와 남자주인공 도경(에릭)의 미래를 보는 증상(?)이 새드엔딩을 자꾸만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또 오해영(사진출처:tvN)'

오해영(서현진)과 도경은 사실 악연과 인연이 얽혀있다. 도경은 자신을 떠난 오해영(전혜빈)과 이름을 혼돈해 해영의 남자친구인 태진(이재윤)을 파산하게 만들었다. 태진은 그 사실을 숨긴 채 해영에게 결혼식 취소 통보를 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악연이다. 하지만 그 악연으로 인해 두 사람은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 해영이 옆집으로 이사 오게 되면서 도경은 처음엔 죄책감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가 차츰 연민의 마음을 갖게 되고 그것이 점점 사랑으로 싹터 오른다.

 

처음 해영과 도경이 옆집에 살면서 가까워지고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해가는 그 과정은 달달했다. 하지만 곧 태진이 출소하게 되면서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과정이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지만, 결과만을 두고 보면 도경은 해영의 남자친구를 구치소에까지 가게 만들고 그녀를 빼앗은 것처럼 되어버렸다. 만일 이 사실을 해영이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 것인가. 과연 그간 쌓은 인연으로 과거의 악연을 지워낼 수 있을까. 새드 엔딩을 떠올리게 되는 첫 번째 이유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드엔딩을 시청자들이 예상하는 이유는 도경이 가진 미래를 보는 능력 혹은 증상 때문이다. 사실 현실적으로는 가능할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혹자는 지금까지의 이 모든 상황들이 사실 교통사고로 코마 상태에 있는 도경의 회고 속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럴 듯한 추론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실제로 이런 추론의 가능성이 그려지기도 했다. 교통사고가 벌어진 듯 도경이 차를 세우지만 사고 차량은 정작 보이지 않는 장면이나 지금까지 뭐가 보인 건지 알겠다는 의사가 예고편에서 넌 지금 교통사고를 당해 누워있고라고 말하는 대목이 그렇다. 아직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된 것이 아니라 확증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도경이 무언가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건 분명하다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벌써부터 새드엔딩을 얘기하기는 너무 성급하다. 이런 이야기가 후반부에 등장했다면 아마도 새드엔딩쪽에 더 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중반에 도경의 문제나 그와 해영의 얽힌 악연의 이야기들이 나온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남은 후반에 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것임을 암시한다.

 

결국 추론이 맞다고 해도 그것이 새드엔딩으로 끝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중반에 벌어지고 있는 이 충격적인 반전이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엔딩에 이토록 목매게 된 건 다름 아닌 도경과 해영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는 시청자들의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많은 악연과 사고들이 벌어졌지만 나 심심하다고 절박하게 외치는 해영의 목소리는 그녀가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기원하게 만든다. 많은 징후들이 일찍부터 불길한 이야기를 예고하지만 그럴수록 그것이 해결되고 그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다

<시그널>,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사이 시즌2 가능성

 

이토록 완벽한 엔딩이 있을까.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섣부른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시청자들의 바람을 저버리고 새드엔딩을 그리지도 않았다. 이재한(조진웅)은 죽지 않고 차수현(김혜수)에게 돌아왔지만 김범주(장현성)를 살해한 후 실종되었다. 이렇게 과거가 바뀌자 박해영(이제훈)과 차수현의 미래도 바뀌었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총에 맞아 사망한 박해영은 되살아났고, 형의 누명이 이재한에 의해 밝혀지면서 가족은 함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차수현과 함께 했던 미제사건 전담팀은 아예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전혀 다른 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재한의 생사가 궁금한 그였다. 그는 이재한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했고 그 길에서 차수현을 다시 만났다.

 

드라마는 쉽게 그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대신 이재한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요양병원을 찾아가는 박해영과 차수현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이 정도의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면 이재한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다. 하지만 그가 죽었을 가능성 또한 드라마는 버리지 않고 열어두었다.

 

왜 이처럼 쉽게 해피엔딩을 그리지도 또 그렇다고 새드엔딩을 보여주지도 않았을까. 아마도 해피엔딩을 마지막회에 갑자기 보여주는 건 <시그널>이라는 드라마가 지금껏 달려온 그 간절함의 기조를 상당부분 뒤집을 위험성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드라마의 메시지는 마지막회에 담겨진 포기하지 않으면 바꿀 수 있다는 그 엔딩에 있지 않은가. 섣부른 해피엔딩은 현실의 무수한 미제사건들에 대한 간절함까지 상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해결된 건 없지만 마치 드라마가 모든 걸 해결해준 것 같은.

 

그래서 끝까지 해피엔딩을 쉽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시그널>은 세 사람이 모두 살아있다는 희망의 뉘앙스를 남겼다. 그 희망은 또한 시청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즌2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마지막 장면에 이재한이 병원에서 창밖을 보다가 뒤돌아서는 모습과 그 옆에 놓여진 무전기는 지금 바로 시즌2로 이어져도 아무 손색이 없는 엔딩이었다. 그만큼 작가도 시즌2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는 느껴졌다.

 

시즌2에 대한 의지가 작품의 엔딩에 담겨 있다고 해도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늘 시즌2가 어려웠던 건 배우들이 모두 여기에 대한 동의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와 PD는 그 의지를 이미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고 볼 수 있다. 이제훈은 일찌감치 시즌2를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조진웅과 김혜수가 의지를 드러낸다면 시즌2는 기정사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지상파드라마가 시즌2를 요구받았어도 실현시키지 못했던 반면 tvN은 시즌제를 해왔던 점도 <시그널>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물론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막돼먹은 영애씨><응답하라> 시리즈 등은 시즌제를 통해 하나의 확고한 브랜드가 될 수 있지 않았던가. 이처럼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을 방송사가 외면할 까닭이 없다.

 

무엇보다 <시그널> 시즌2에 대한 요구는 이 드라마가 그토록 꿈꿔온 미제사건들의 해결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계속 이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간절함은 어찌 보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시간을 뛰어넘는 무전기 설정을 시청자들이 허용한 이유이기도 하고, 이대로 끝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포기하지 말고 이 드라마가 달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그널>의 시즌2를 열망하며 그로 인해 이 땅의 많은 미제사건들이 다시금 재조명되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그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만드는 간절함은 그러니 애초에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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