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런거야>, 이렇게 갈등 없는 드라마도 가능하다?

 

세상에 이렇게 갈등이 없는 드라마도 있을까. 김수현 작가의 SBS 주말드라마 <그래 그런거야>는 소소한 수다와 말다툼은 있어도 가족을 파국으로까지 몰고 가는 갈등은 없다. 사돈지간이어서 사랑할 수 없는(사실 이게 왜 문제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영(남규리)과 세준(정해인)은 마치 야반도주라도 할 듯이 무작정 경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는 이 드라마가 가진 갈등과 해결양상을 잘 보여준다.

 

'그래 그런거야(사진출처:SBS)'

즉흥적으로 떠나긴 했지만 이래선 안 될 것 같다는 세준이 나영에게 먼저 서울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말다툼이 벌어진다. 그리고 진짜 두 사람은 헤어질 것처럼 싸우고 고개를 돌리지만 갑자기 나영이 다시 세준에게 다가와 붙잡자 그는 돌아서 나영을 껴안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이들이 언제 싸웠느냐고 보일 정도로 또 살가운 여행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즉 갈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갈등의 소지가 있어도 그것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고 그래서 어떤 파국을 향해 가는 게 아니라 금세 갈등 이전 상태로 돌아온다. 이것은 세준과 나영의 밀당 같은 소소한 에피소드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을 부부로 살아왔지만 알고 보니 남편의 숨겨진 아들이 있었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고 울고불고 하지만 이를 긍정해버리는 유세희(윤소이)의 이야기가 그렇고, 나이는 들어서 여전히 젊은 여자 밝힘증을 보이는 유종철(이순재)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김숙자(강부자)와 가족들 이야기도 그렇다.

 

또 외부에서 보면 오해하기 쉬운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둘이 함께 사는 유민호(노주현)와 이지선(서지혜)의 경우도 그렇다. 이런 외부 시선이 끼어들면 갈등은 커지고 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다. 이지선은 시아버지인 유민호가 다른 여자를 만나기를 기원하고 유민호는 죽은 아내와의 의리를 지키려고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허허웃는 게 유민호의 캐릭터다. 이러니 갈등은 쉽게 봉합된다.

 

집안 간의 격차 때문에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는 혼사장애의 이야기는 가족드라마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소재다. <그래 그런거야>에도 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유세현(조한선)과 결혼한 유리(왕지혜)를 여전히 탐탁찮게 여기는 그녀의 어머니가 등장하고, 또 물 한 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자라난 유리가 시집살이하는 이야기도 등장하지만 갈등은 별로 없다. 그것은 유리라는 캐릭터가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모든 걸 드러내고 할 얘기 못할 얘기 다 하지만 남편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귀여운 푼수 같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야>는 이처럼 기존의 갈등들을 끝까지 몰고 나가는 막장드라마들의 문법을 정반대로 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갈등이 생겨도 제목처럼 그래 그런거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일종의 긍정어법이 그 밑바탕에는 깔려 있다. 사실 막장드라마들이 해체시켜버리는 가족 이야기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이 드라마에는 야심차게 깔려 있다.

 

물론 그래서 이 드라마는 따뜻하다. 모든 걸 끌어 안아주는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이는 김숙자(강부자) 같은 인물이 가족의 중심을 딱 잡아주고, 평생 집안 살림 하느라 친구들과 여행 한 번 가지 못했지만 별 불만을 얘기하지 않다가 한 번 떠나게 된 경주 여행에서 소녀처럼 즐거워하는 한혜경(김해숙) 같은 며느리도 있다. 진짜 가족이 그러하듯이 갈등과 문제가 있어도 이들을 서로를 토닥이며 살아간다. 그것이 가족의 진짜 의미니까.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이상화되고 판타지화된 가족이지 지금의 현실은 아닐 것이다. 핵가족화되다 못해 1인 가구가 늘고 있는 현실에 <그래 그런거야>의 대가족은 이제는 낯설게 다가온다. 따뜻한 가족 이야기가 주는 향수는 있지만 내 얘기 같지 않고 남 얘기 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그래 그런거야>의 한계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김수현 작가는 그렇게라도 사라져가는 옛 가족의 한 자락을 붙잡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한도전> 토토가2, 무엇이 시청자들을 끌어들였나

 

MBC <무한도전>은 드디어 예능춘궁기를 넘게 된 것일까. 지난 42일 방영됐던 <웨딩싱어즈>는 생각만큼 반응이 뜨겁지 않았다. 그잖아도 뚝뚝 떨어지던 시청률이 10.8%까지 떨어졌다. 16%대까지 나오곤 했던 시청률이 계속 떨어져 10%대까지 떨어지는 상황. <무한도전>이 그토록 염려했던 예능 춘궁기가 결국은 도래한 것처럼 보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지난 주 퍼펙트센스특집으로 헬기 몰래카메라를 보여주면서 13.6%의 시청률로 반등한 <무한도전>은 이번 주에서는 퍼펙트센스의 마지막 남은 분량인 정준하가 실제 헬기를 타는 몰래카메라를 내보낸 데 이어, 이미 화제가 됐던 토토가2-젝스키스편을 방영하며 시청률 15%를 찍었다. ‘예능 춘궁기라는 말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도대체 토토가2’의 무엇이 이런 힘을 발휘했던 걸까.

 

역시 가장 큰 건 젝스키스라는 90년대 아이돌이 환기시키는 복고와 향수의 힘이다. 당대 HOT와 양대거목으로 라이벌이었던 젝스키스. <응답하라 1997>의 주요 소재가 되었던 그들이다. 하지만 젝스키스는 당시 3년여 만의 활동을 끝으로 갑작스레 해체를 선언했다. 팬들로서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무한도전>을 통해 다시 모여 완전체가 되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물론 당시 젝스키스멤버들 중에는 지금도 방송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는 은지원이나 장수원 같은 친숙한 인물들이 있다. 은지원은 <신서유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중이고, 장수원은 최근 <배우학교>를 통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 반가운 멤버들은 역시 그간 방송에서 자주 보지 못했던 강성훈, 김재덕, 이재진, 고지용 같은 이들이다. 그 중에서 김재덕은 가끔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특유의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지만 다른 인물들은 영 얼굴보기도 쉽지 않았던 터다.

 

유재석과 하하가 섭외를 위해 만난 첫 자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인물은 이재진이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독특한 질문과 대답을 구사하는(?) 그는 유재석과 하하를 당혹스럽게 만들면서 독특한 캐릭터로 부상했다. 예능이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쏟아내는 그는 유재석과 하하를 곤란하게 만들 정도로 참신하게 다가왔다.

 

토토가의 통과의례인 노래방 점수 내기 미션에서 젝스키스 멤버들은 너무 오래되어 안무를 잘 기억 못하고 노래도 틀리는 실수연발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인물은 리드 보컬인 강성훈이었다. 전성기 때의 노래 실력을 그대로 보여주며 거의 혼자 노래를 다 소화해내는 그의 모습은 토토가2’의 무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또한 지금은 사업가로 변신해 자신이 젝스키스였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던 고지용이 마지막으로 토토가2’에 합류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한 장면이 되었다. 이로써 젝스키스가 한 멤버도 빠짐없이 완전체가 되는 순간이 아닌가.

 

토토가2’가 시즌1과 달라진 점은 여기에 게릴라 콘서트라는 새로운 기획 포인트를 넣었다는 점이다. 물론 언론에 일찍 알려짐으로써 게릴라 콘서트하나마나 콘서트가 되었지만 잠깐 흘러나온 예고편을 통해 드러났듯이 젝스키스팬들을 위한 게릴라 콘서트역시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상상만 해도 감동적인 무대가 예고되어 있다.

 

<무한도전>예능춘궁기를 맞아 내놓은 토토가2’는 확실히 주효했다고 보인다. 음악이 있고 추억과 향수가 있으며 나아가 팬들과의 교감을 통한 감동이 있다. ‘게릴라 콘서트는 무산됐지만 이것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마나 콘서트라는 아이템이 하나 더 붙은 결과로 이어졌다. 이로써 하나마나 콘서트의 웃음으로 시작될 무대는 마지막 게릴라 콘서트의 감동으로 끝날 전망이다. ‘예능춘궁기로 주린 시청률에 대한 갈증은 토토가2’라는 단비를 만나 해갈되어가고 있다.

기획부터 시청자와? <무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

 

사실 MBC <무한도전> ‘특별기획전은 사실 제작진들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의 방송 아이템으로 만든 것이다. 즉 본래 기획 작업은 방송에는 나올 이유가 없다. 사전 기획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송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질 뿐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이것을 한 회의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여줬다. 아이템을 기획하는 과정조차 프로그램화한다는 것. 이건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해야 하는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멤버들이 그간 갖가지 도전들을 해왔기 때문에 방송을 스스로 기획하고 프레젠테이션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마구 던진 듯한 기획들이 의외로 신선하다. 하하와 광희가 낸 바보전쟁은 또 바보 아이템이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른바 바보 어벤저스를 꾸린다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다.

 

지난 식스맨의 바보 캐릭터 버전 혹은 못친소의 바보 버전처럼 여겨지는 면도 있지만 그래도 바보라는 소재가 마음을 잡아끈다. 그건 단지 웃기기 때문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속으론 울면서도 겉으론 웃고 있는 광대들의 초상이 겹쳐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큰 웃음 끝에 의외로 짠한 면까지를 발견해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가.

 

<전원일기>를 리메이크하자는 박명수와 정준하의 토요일 토요일은 드라마다<토토가>의 연장선 위에서 대박 아이템의 기미가 보인다. 물론 <무한도전> 멤버들만의 드라마 도전이라면 이미 예전에 한 적이 있고 그리 신선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전원일기>의 출연자였던 최불암이나 김혜자, 김수미 같은 배우들이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만드는 리메이크라면 말이 달라진다.

 

무려 22년간 방영되었던 <전원일기>. 세대를 걸쳐 있는 이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라면 그 도전자체가 하나의 향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도전이 그저 향수나 추억거리에만 머무는 건 아니다. 최근에는 사라지고 있는 농촌드라마에 대한 의미 있는 가치부여가 될 수도 있고, 그것은 나아가 도시에 비해 소외되어 있는 농촌에 대한 재조명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무한도전> 특유의 몸 개그가 섞인다면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는 아이템이 가능하지 않을까.

 

사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그 발상이 신선하다. 사실 몰래 카메라는 말 그대로 몰래찍는 것이다. 그러니 예고제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단어가 묘한 조합을 이루는 건 이렇게 예고함에도 불구하고 찍혀진 몰래 카메라에 의외의 진짜 모습들이 포착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게다가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사실상 지금 현재의 우리들이 매일 겪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과거에 몰래 카메라는 말 그대로 누가 찍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당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디서든 누군가 우리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다 알면서도 그걸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예고제 몰래 카메라는 몰래 카메라의 현재화되고 진화된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대체 이렇게 기획 단계부터 그것을 프로그램화하고 제작진이 기획하는 게 아니라 출연자들이 그걸 직접 기획하는 식으로 장기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내겠다는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물론 가장 큰 것은 오래도록 함께 해와 <무한도전>을 가장 잘 아는 멤버들이 사실상 제작진이나 다름없는 발상들을 가장 잘 낸다는 것이고, 또 이에 대한 판단도 오래도록 함께 해온 시청자들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일 게다.

 

하지만 무엇보다 더 중요한 건 성패에 대한 부담감 없이 툭툭 아이디어를 마구 던질 수 있는 그런 <무한도전>만의 공기가 아닐까. 성공과 실패에 대해 물은 필자의 질문에 김태호 PD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성공하면 그걸로 마무리된 것이고 실패하면 다시 한 번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죠.” 즉 모든 아이템들을 하나의 과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당장의 실패도 궁극의 성공을 향한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무한도전> ‘특별기획전의 아이템들 하나하나가 큰 부담감 없이 툭툭 나온 것치고는 모두 대박의 느낌이 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독특한 <무한도전>만의 과정 지향적 제작방식이 만들어낸 것일 게다. 결과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경직된 우리 사회를 떠올려본다면 이들이 하고 있는 이 유연한 작업의 방식들을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마리텔' 김영만, 조용히 고개 드는 백종원 대항마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확실히 미래의 콘텐츠 지형도를 상당부분 앞당겨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로 순위를 매기지만 그렇다고 그 순위가 프로그램을 수직적인 체계로 만드는 건 아니다. 여러 개의 분할 화면들이 각각의 출연자들을 출연시켜 저마다의 방송 재미를 동시간대에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콘텐츠들은 항상 수평적이다. 거기에는 쿡방도 있고 마술쇼도 있으며 노래방(?)도 있고 종이접기처럼 향수를 건드리는 취향저격의 방도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사진출처:MBC)'

백종원은 물론 신드롬이다. 그러니 그를 다른 평민들과 비교대상에 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백종원의 분량을 다른 출연자들의 분량보다 월등하게 많이 채워 넣는 꼼수를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분량은 훨씬 줄어든 듯 하고, 대신 새롭게 등장한 인물들과 그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방송들에 더 무게중심이 이동한 느낌마저 준다.

 

이은결은 그 첫 출연에 놀라운 밀도의 마술쇼를 보여줬다. 마술쇼가 갖는 그 신기한 스펙터클을 기반으로 다양한 스토리텔링이 이어지고 그 위에 이은결 특유의 유머까지 곁들여지면서 단박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가 기다란 젓가락을 코에 집어넣는 마술을 가르쳐준다며 마술의 기술보다는 연기를 선보인 사실은 우습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술의 기본이 바로 그 연기에서 나온다는 걸 알려주는 정보이기도 했다.

 

기미작가와 대적할만한 이은결과 함께 하는 초딩작가의 등장은 이제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성공 공식 중 하나로 굳어지고 있는 중이다. 초딩작가는 머리만 뚝 떼낸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머리 돌리기 기술을 선보이면서 주목을 끌었다. 초딩작가에 이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제작진은 모르모트 PD. 예정화와 커플 스트레칭을 하며 주목됐던 이 PD는 솔지와의 노래방 레슨을 통해 확실한 캐릭터를 세웠다.

 

고음 불가인 모르모트 PD의 배를 솔지가 척척 만지고 또 그녀 또한 자기 배를 허용(?)하며 발성연습을 시키는 모습이나 고음을 지르기 위해 허리를 숙이는 자세가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르모트 PD의 존재감은 물론이고 솔지가 하는 개인방송의 가능성도 엿보게 만들었다. 그간 걸 그룹 아이돌들이 주로 춤을 선보이거나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는 정도였다면 솔지는 확실한 콘텐츠를 들고 온 것. 그녀가 모르모트 PD와 펌핑 대결하는 장면 역시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시청자들의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이 그 백종원 대항마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1988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에서 어린 아이들의 시선을 강탈했던 그 인물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추억과 향수어린 취향을 저격했다. “친구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 하나만으로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인물. 그는 종이접기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콘텐츠와 특유의 소통력에 추억까지 장착한 강력한 인물로 자리했다.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에 대한 주목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가진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지상파라는 틀이 바로 그 보편적이고 넓은 시청층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군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성격이 짙다. 도대체 아이들 프로그램을 빼놓고 어디서 종이접기 아저씨가 이토록 재미를 주는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리틀에 걸맞는 작은 취향들을 슬쩍 끄집어내 보편적 틀로 소구할 수 있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향후 우리네 예능계에 파급할 변화의 징후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백종원이라는 예능의 기대주를 끄집어낸 것처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그래서 더 많은 새로운 기대주들이 등장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를 마련해 놓고 있다. 세상은 넓고 숨은 고수들은 넘쳐난다. 다만 지상파가 그 거대한 틀에만 집착하면서 그 고수들을 잘 보여주지 못했을 뿐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은 그 틀을 작게(리틀)하는 대신 더 다양하게 꾸려 보여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들을 발굴하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은 확실히 갖춰진 셈이다



아이유로 선 공개된 서태지 소격동’, 그 반응은?

 

서태지의 소격동프로젝트가 아이유의 목소리로 선 공개됐다. 노래가 아니라 다른 것들로 계속 이슈가 됐던 서태지인지라, 음악에 대한 관심은 더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디 노래는 얼마나 괜찮은지 들어보자는 조금은 뒤틀린 심사에, 그래도 서태지니 기대된다는 기대감이 얹어져 반응도 양 갈래로 나뉜다.

 

'소격동 프로젝트(사진출처:서태지 컴퍼니)'

그렇다면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은 어떨까. 먼저 늘 새로운 장르로 신선한 충격을 안겨줘 왔던 서태지라는 존재감만큼의 특별한 새로움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조용히 읊조리듯 부르는 발라드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팝에서는 이미 여러 가수들에 의해 시도됐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런 장르적인 것을 떠나서 음악 자체로만 들어보면 소격동이라는 노래가 담고 있는 독특한 정서 같은 것이 느껴진다. 거기에는 서태지가 예전에 불렀던 발라드들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향수와 추억이 만져진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묻혀진다기보다는 지금 현재의 트렌디하고 세련된 날카로움이 묻어난다.

 

무엇보다 아이유가 먼저 소격동프로젝트의 문을 연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7,80년대의 음악을 불러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로 아날로그 감성을 자기 식으로 잘 풀어내는 아이유가 아닌가. 아이유가 부르는 소격동은 그래서 마치 이미 예전에 서태지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부르는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진다.

 

아이유 특유의 따뜻한 목소리는 심지어 일렉트로닉이 가진 차가움마저 부드럽고 따스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 부조화는 그래서 소격동이라는 곡이 가진 이중적인 특징을 균형 있게 잡아준다. 그 이중적인 특징이란 가벼운 발라드 감성처럼 느껴지면서도 소격동이라는 공간이 주는 시대적 정조가 주는 무거운 비감이 뒤섞여 있는 데서 나온다.

 

벌써부터 인터넷에는 이 곡의 가사를 거꾸로 들어보면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즉 앞에서부터 들으면 마치 연인이 옛 추억을 되밟는 듯한 아련한 그리움이 느껴지지만, 뒤에서부터 가사를 되짚어보면 과거 소격동에서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시대적 정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음악적 감성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향수와 추억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에 되돌아보는 과거란 심지어 시대적 아픔마저도 하나의 그리움처럼 아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마치 영화 <써니>에서 시위대가 광장에서 전경들과 부딪치는 80년대의 최루탄 뽀얀 풍경 위에 조이(Joy)터치 바이 터치(Touch by Touch)’가 흐를 수 있는 것처럼.

 

소격동이라는 결과물을 두고 보면 그것이 과거 서태지가 해왔던 파격적인 혁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듣기 좋으면서도 정서를 건드리는 꽤 괜찮은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잘못된 홍보 마케팅으로 신곡에 대한 괜한 호들갑이 만들어낸 논란 같은 것이 없었다면, 노래의 발표만으로도 충분히 역시 서태지라는 소리를 들을 법한 곡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괜한 예능 단독 출연 사실로 만들어진 서태지에 대한 논란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게다가 아직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은 발표되지도 않았다. 과연 반전은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명량>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면이라는 말처럼, 서태지는 과연 시끄러운 논란마저 긍정적인 화제로 바꿔낼 수 있을까. 시선은 이제 서태지가 부르는 소격동에 집중되고 있다.

 

막장의 시대를 그린 '김탁구'와 '자이언트', 막장이 아닌 이유

눈물 젖은 빵을 먹지 않은 자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가난과 비뚤어진 욕망들이 꿈틀대던 막장의 시대는 오히려 극적인 상황을 요하는 드라마로서는 보물창고나 다름없다. 거기에는 빵 한 조각을 놓고 가족을 생각하는 눈물겨운 가족애가 있고, 살기 위해 길바닥에서 뭐든 해야 했던 그 처절함이 있다.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자본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지는 여전한 신분의 차이가 주는 강력한 계급의식이 있다. '자이언트'와 '제빵왕 김탁구'는 그 막장의 시대를 추억하는 드라마다.

막장의 시대를 추억한다고 해서 드라마가 막장인 것은 아니다. '제빵왕 김탁구'는 초반 '하녀' 컨셉트의 치정극처럼 시작했다. 거성가의 회장인 구일중(전광렬)이 보모이자 간호사인 김미순(전미선)과 하룻밤의 인연으로 김탁구(윤시윤)를 낳고, 반발하듯 구일중의 아내인 서인숙(전인화)이 비서실장인 한승재(정성모)와 불륜을 통해 낳은 아이, 마준(주원)을 구일중의 아이처럼 숨기며 키운다. 거기에 한승재가 마준을 거성가의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김탁구와 김미순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파에 치정극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런 막장의 늪으로 빠져들지 않는 것은 그 속도감 때문이다. 이런 신파적인 요소나 치정극적인 요소들을 이 드라마는 하나의 자극적인 요소로 끄집어냈다가 재빠르게 정리해버린다. 김탁구가 구일중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면 출생의 비밀 코드로 넘어갈 텐데, 이 드라마는 일찍부터 이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자 이야기는 김탁구와 마준을 전면에 세운 대결구도의 드라마로 흘러간다. 선악구도는 아니지만,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대결구도 속에서 행복을 묻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는 실로 건전하다. 막장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의 시대의 이야기를 가족사적인 틀에서 풀어냈다면, '자이언트'는 좀 더 시대적인 틀에서 이 시대를 다루고 있다. 7,80년대라면 으레 떠오르게 마련인 그 군사정권 시절의 무법천지는, 이 드라마를 시대의 모험극으로 만들어낸다. 뭐 하나 상식적이지 않은 막장의 시대 위에서 가족애와 인간애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 드라마는 묻는다. 성공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조필연(정보석)이 당대 군부시절의 사생아를 대변한다면, 맨 주먹으로 성공의 길을 열어내는 황태섭(이덕화)은 당대 사업가의 비뚤어진 초상을 대변한다.

그 시대 속에서 이강모(여진구)의 가족은 풍지박산이 난다. 가난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의 붕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고 형과 동생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 불행한 강모의 가족사는 이 막장의 시대가 만들어낸 아픔을 표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 이 뿔뿔이 흩어놓은 가족이 다시 시대의 아픔을 넘어서 가족으로 뭉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태는 시대극이고 그 속에 강력한 가족극이 숨겨져 있다. 재미있는 것은 '자이언트'는 시대극이면서도 지극히 사극이 갖는 극적 재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를 그저 국책성 드라마라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인물들이 처한 상황들을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대결구도의 양상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강모의 성장담에 집중하는 만큼, 그 적이라 할 수 있는 조필연의 성장담에도 집중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제빵왕 김탁구'나 '자이언트'가 모두 '눈물 젖은 빵'의 시대를 그려내는 것은 아마도 그 막장의 시대가 가진 극적인 요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수하게 되는 그 시대의 공기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대로 들어가면 상황은 막장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정의롭게 살아남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현재의 행복을 말해주는가 이 드라마들이 던지고 있는 메시지다. 막장의 시대를 다루는 '제빵왕 김탁구'와 '자이언트'가 막장의 늪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김구라의 시대 저물고, 최양락의 시대 오다

김구라로 대변되는 독설의 토크쇼가 점점 저물어가고 있다. 이 변화의 진원지는 토크쇼의 주 시청층으로 자리한 중년 시청층의 달라진 기호에서 비롯된다. 젊은 세대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예능 프로그램을 중년들이 애청하기 시작하면서, 토크쇼들은 그들의 존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세바퀴’가 만든 줌마테이너와 아저씨돌의 공간은 정확하게 그 중년들을 TV 앞에 끌어 모았고, 토크쇼들은 일제히 이미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생각되었던 옛 스타들을 게스트로 끌어들였다. 옛 스타들의 경륜이 묻어나는 진솔함은 굳이 독설 같은 직설어법을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게 만들었고, 귀환한 그들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복고가 되었다.

이제는 최양락으로 대변되는 향수의 토크쇼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최양락은 토크쇼의 게스트로 출연해 재조명되었고, 결국 ‘야심만만2’의 메인MC로 안착했다. 이렇게 과거로부터 돌아온 스타들은 그러나 최양락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놀러와’와 ‘상상플러스’같은 토크쇼에서는 이현우, 윤상, 김현철은 물론이고, 김원준, 임창정 같은 향수가 묻어나는 게스트들이 계속 출연한다. ‘부활’의 김태원은 그 진솔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와 독특한 어법으로 토크쇼에서도 부활했다. 최명길, 전인화, 박상원은 거의 한번도 출연하지 않았던 예능에 얼굴을 내밀었다. 물론 ‘미워도 다시 한번’이라는 드라마의 홍보 차 출연한 것이지만,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작금의 토크쇼가 그만큼 과거의 시간대에 유연해졌기 때문이다.

불황기에 복고가 하나의 트렌드가 되는 것은 현재의 각박함을 잊고 잠시라도 그 옛 정서에 머물고픈 대중들의 욕구 때문이다. 한편 토크쇼는 현재 몇몇 새로운 형식(하지만 이 새로운 형식은 독설을 내세운 자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을 제외하고는 어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홍보성을 감추려는 노력은 여지없이 시청자들의 예리한 눈에 들춰지게 된 토크쇼들이 변화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이 향수와 복고이다.

돌아온 옛 스타들은 불황기 시청자들에게 단순히 과거의 향수만을 끄집어내는 것을 넘어서, 한 때 잊혀졌던 그들의 힘겨운 현실과 공감하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잘 나가던 최양락이 예능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순식간에 잊혀져버린 이야기와, 이승철의 탈퇴 이후 거의 폐인처럼 살아오다 기적적으로 부활한 김태원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그들의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들은 살아있는 복고에서 나아가 현실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토크쇼는 이들 옛 스타들의 귀환과 함께 리얼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나타났던 직설어법, 즉 독설의 트렌드를 걷어내고 있다. 옛 스타들이 거침없이 내뱉는 이야기는 마치 인생 경험을 무수히 한 어르신들의 욕이 주는 푸근함 같은 연륜이 녹아 들어있다. 타인의 사생활을 마구 끄집어내도 그것 역시 향수의 한 측면으로 읽혀진다. 작금의 토크쇼가 변화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사회적 상황과 맞물린 옛 스타들에 대한 요구가 그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제 독설은 가고 향수가 대세가 된 시대다.

이성을 비웃는 본능, ‘향수’

영화의 첫 장면. 감옥,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서 있는 그르누이(벤 위쇼)가 앞으로 나온다. 그러자 코 하나만 달랑 빛 속으로 튀어나온다. 어둠의 섬 위로 떠오른 그르누이의 코. 이 간단한 장면 하나는 그러나 영화 전체의 이야기를 모두 압축하는 힘을 갖고 있다. 거기에는 이 영화가 다루려 하는 후각과 시각, 어둠과 빛, 이성과 본능에 대한 상징이 숨겨져 있다.

어둠과 빛이 의미하는 것
그것은 영화가 앞으로 다룰 이야기가 바로 코, 후각에 대한 것이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먼저 봐야 할 것은 이 첫 장면에서 보이는 어둠과 빛의 대비다. 어둠 속에 없는 듯 서 있는 그르누이는 영화 전체에서 드러나듯 그림자 같은 존재. 늘 거기 있지만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어떤 존재다. 그것은 그가 세상의 모든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자신의 체취가 없다는 캐릭터의 설정으로 나타난다. 그는 늘 어둠 속에 숨어 빛의 세계 속에 놓여진 사람들에게 손길을 뻗는다.

처음 매혹적인 향기의 세계로 끌어들인 한 여인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도, 로라(레이첼 허드우드)의 집 미로 같은 정원에서도,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본다.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은 자신에게는 없는 체취를 가진 존재들. 그는 바로 그 체취를 자신도 가지려 한다. 영화는 바로 이 어둠과 빛의 상치를 통해 어둠의 세계를 빛으로 덮어 마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인간의 허위의식을 고발한다. 그것은 후각이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후각을 시각화한다는 도전
‘향수’라는 제목의 영화 속, 그르누이라는 괴물의 탄생이 악취가 진동하는 생선시장이라는 건 아이러니한 진실을 보여준다. 그것은 향수의 존재이유를 드러낸다. 즉 악취 나는 인간이란 진실을 덮어버리는 어떤 것이다. 그 속에서 그르누이가 처음 목도하는 현실은 후각으로 집약된다. 그 머리가 어질어질할 정도의 악취가 버려진 자신의 현실과 조우하면서 그는 시대의 잔인한 진실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살아내는 현실은 바로 그 악취 속이다. 그는 철저히 그림자로 어둠 속에서 악취에 쌓여 살아간다. 그러다 문득 알게된 매혹적인 향기를 그는 수집하려 한다. 그는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그 향기의 원천이 사람들이 생각하듯 꽃과 같은 낭만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향기를 모으기 위해서는 결국 그 향기를 갖고 있는 대상을 죽여야 가능한 것. 매혹적인 향기라는 빛의 이면에는 살인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그르누이는 바로 그것을 현시해보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후각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대단한 도전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후각의 시각화.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 영화는 먼저 강렬한 악취의 그림들을 연속적으로 내보내 먼저 시각을 후각화한다. 그리고 이것이 익숙해질 즈음, 향기가 가져오는 이미지를 환상으로 엮어낸다. 어느 순간, 우리들은 그르누이의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시는 장면 하나 만으로도 이미지와 뒤섞인 후각적인 자극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것. 왜 작가는 다른 감각도 아닌 후각을 소재로 선택했던 것일까.

본능에 무릎꿇는 이성
그것은 후각이 그만큼 우리 감각에서 억압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감각기관과 달리 좀더 직접적으로 뇌와 만난다. 우리는 어떤 냄새 하나에서 수만 가지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후각이 노리는 것은 뇌가 가진 이성이라는 능력이다. 이성은 과연 후각으로 촉발되는 본능적 기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이 영화는 결국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뒤집는다.

이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거라 믿었지만 전쟁과 참화가 끊이질 않는 20세기(당시 책이 출간되던)를 비웃기 위해 쥐스킨트는 그르누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즉 이성은 빛이고 또한 시각으로 구현되는 세계이며, 반면 본능은 그 빛에 의해 억압된 어둠이며 후각으로 구현되는 세계다. 여기서 그르누이와 대결점에 있는 로라의 아버지인 안토인 리치스(알란 릭맨)는 바로 그 빛과 이성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딸을 보호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추리하며 행동한다. 그러나 결과는 딸의 죽음. 딸이 죽어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안토인의 눈을 순간적으로 찌르는 것은 바로 그가 믿었던 빛이다.

그는 붙잡힌 그르누이에게 고문을 가하며 묻는다. “도대체 왜 그랬나?”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그르누이의 행동에 대해 어떤 답변을 듣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르누이의 답은 “그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토인이 원하던 이성적인 답변이 아니다. 그르누이라는 괴물에 대한 처결은 잔인한 고문 후 사형이라는 이성보다는 감정과 본능이 앞선 해결책이다. 그래서 마지막 군중들을 향기로 취하게 만들어 광기에 빠뜨리는 충격적인 장면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그것은 안토인이 자신의 딸을 살해한 자에게 “아들아 미안하다”고 하는 것처럼 이성의 굴복을 의미한다.

통쾌한 그르누이의 퍼포먼스
영화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루누이가 개처럼 사슬에 매인 채 끌려나가는 장면을 보면, 군중들의 “죽이라!”는 고함소리 속에서 한 수문장의 흥분된 얼굴이 잠깐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곧이어 군중들 앞에 세워진 그루누이에게 판결문이 읽혀진다. 그것은 형식을 갖춘 글귀이지만 그 내용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절대로 한번에 죽이는 일 없이...”라는 문구가 그걸 말해준다. 군중들과 판관들은 모두 흥분한 상태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 사형대 위에 올라선 그르누이를 중심으로 모든 군중들은 잔뜩 흥분해있다. 그 앞 뒤 장면에서 유일하게 이성적으로 서 있는 인물은 바로 그르누이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이성에 대한 통렬한 조소를 보낸다.

영화에서 통쾌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빛의 허울 속에 가려진 어둠의 실체를 보았다는 말이다. 이성이라는 허울뿐인 잣대를 내세워 정의를 운운하며 결국에는 비이성적인 살인과 전쟁으로 몰아넣는 세계의 비정함을 목격했다는 말이다. 동화적이면서도 세계를 꿰뚫어보는 놀라운 시선과, 기괴하면서도 거기서 보편성을 끌어내는 작품, ‘향수’. 쥐스킨트의 소설을 읽어본 독자라면 어떻게 그 후각의 세계를 영상화했을까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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