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훈남정음’과 울림 있는 ‘이리와 안아줘’의 희비를 가른 건

SBS <훈남정음>과 MBC <이리와 안아줘>가 같은 날 종영했다. 두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훈남정음>은 훈남(남궁민)과 정음(황정음)이 결혼을 약속했고, 정음은 훈남의 도움을 받아 물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해갔다. <이리와 안아줘>는 지옥 같던 살인자 윤희재(허준호)가 납치한 한재이(진기주)를 채도진(장기용)이 구해내고, 자기 같은 괴물로 아들을 만들려는 윤희재의 도발 앞에서 윤나무는 스스로가 다르다는 걸 증명해냈다. 

두 드라마가 모두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종영을 맞는 두 드라마의 입장은 완전히 다를 법하다. 애초의 기대작이었던 <훈남정음>과 별 기대가 없었던 <이리와 안아줘>가 거둔 성과가 너무나 상반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시작 전 두 드라마의 액면만을 보면 당연히 <훈남정음>에 기대감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연기력으로 차곡차곡 팬덤을 만들어온 배우 남궁민에 그와 과거 <내 마음이 들리니>로 연기호흡을 맞췄었던 황정음이 아닌가. 반면 <이리와 안아줘>의 장기용과 진기주는 사실상 신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연기경력이 적었다. 

이런 캐스팅에 대한 상반된 기대감은 두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첫 회에 <훈남정음>이 5.3%(닐슨 코리아) 시청률로 시작했던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3.1%로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보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은 희비쌍곡선을 그었다. <훈남정음>은 2.1%까지 떨어지며 역대 SBS 미니시리즈 중 최저 시청률을 기록한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5.4% 시청률로 마무리했다. 

물론 2%나 5%나 지상파 수목드라마로서는 충격적으로 낮은 시청률이지만, 두 드라마의 체감이 달리 느껴지는 건 시청자들의 반응이다. <훈남정음>은 첫 회 방영된 이후부터 줄곧 너무 뻔하고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라는 점이 지적받았다. 한강다리에서 자살을 하는 장면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은 대목으로 논란까지 이어지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가진 가벼움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반면 <이리와 안아줘>는 희대의 살인마가 등장하는 스릴러 요소를 통해 가해자의 아들과 피해자의 딸이라는 새로운 멜로 구도로 멜로 그 이상의 울림 있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살인자의 아들은 결국 그 악을 계승받을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긴장감이 끝까지 이어졌다. 특히 엔딩에서 이제 모든 과거의 아픈 고리들을 끊어낸 채도진과 한재이가 12년 전 끔찍한 사건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그 시간에 머물러 있던 어린 자신들을 껴안아주는 장면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는 스릴러 요소를 더한 멜로 장르를 표방하면서도 휴머니즘이라는 더 큰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는 것.

작품의 희비를 가른 건 이런 가벼움과 진중함의 차이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저 가볍기 만한 뻔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더 이상 어렵다는 걸 <훈남정음>은 예시적으로 보여줬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재치 있고 코믹한 대사들은 있었지만 그 이상의 울림이 없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한계였다. 물론 남궁민의 연기는 역시 이번 작품에서도 돋보였지만, 황정음의 늘 봐왔던 그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게 다가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연기를 잘해도 새로움이 없다면 시청자들에게 호평받기 어렵다는 것.

한편 장기용과 진기주는 <이리와 안아줘>를 통해 아직 무르익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신인 배우로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보인다. 물론 이 작품은 허준호의 악마 같은 괴물 연기가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장기용의 몰입은 이 배우의 성장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밖에도 윤현무 역할을 연기한 김경남이나 역대급 눈물연기를 소화해낸 엄마 채옥희 역할의 서정연 같은 배우들이 돋보였다. 

워낙 많은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들이 방영되었던 터라 이제 시청자들은 그 작품만의 독특한 새로움이 없다면 굳이 봐야할까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됐다. 하루에도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고, 심지어 외국 드라마들을 시청하는 일도 이제는 일상화단계로 접어드는 요즘이다. 뻔한 드라마보다는 실험작이 차라리 낫고 멜로 안에서도 진중한 메시지를 찾아내려는 시도가 효용성을 갖는 이유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허준호가 스스로 증명한 악역의 탄생

“악은 증명 당하는 것이 아니다. 악은 스스로 증명하는 것.”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에서 윤희재(허준호)는 그렇게 말했다. 연쇄살인범으로 감방에 들어가 사형수로 지내왔던 그는 결국 탈옥함으로써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허준호가 윤희재라는 희대의 악역을 통해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증명해낸 것이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이만큼 소름끼치는 긴장감이 가능했을까.

윤희재는 우리가 봐왔던 연쇄살인범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보통의 연쇄살인범이 가족 없이 홀로 지내며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반해, 윤희재는 가족이 있다. 두 명의 친 아들과 재가했던 아내 채옥희(서정연)와 그녀의 딸 채소진(최리)이 그들이다. 그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밝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조금 폭력적이긴 해도 그저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범죄들이 밝혀지고 그로 인해 집안은 풍비박산 났다. 

하지만 윤희재는 가족에 대한 미안한 감정 따위는 없다. 그는 세상을 싸워 이겨내야 하는 생존 정글로 생각한다. 그래서 장남인 윤현무(김경남)가 또래 불량한 아이들에게 두들겨 맞는 장면을 보고도 도와주거나 말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일어나 그들과 다시 싸우라고 말한다. 그게 윤희재의 ‘아들 자격’이 있는 일이라고. 

그래서 윤희재는 자신을 공격하고 경찰에 넘겨버린 둘째 채도진(장기용)에게 장남보다 더 큰 애착을 갖는다. 그가 자신을 닮았다 여기는 것. 그래서 그의 형인 윤현무에게 “너는 동생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연쇄살인범이지만 가족이 있다는 이 사실은, 윤희재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닌 세계관 자체가 다른 괴물로 만들어낸다. 그저 살인에 대한 욕망만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강함을 증명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그가 채도진이 어려서 좋아했던 한재이(진기주)의 부모를 죽이고, 또 그녀마저 죽이려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너를 약하게 하는 것들을 제거해주겠다”는 것.

<이리와 안아줘>는 사실상 이 윤희재라는 희대의 악역을 구심점으로 해서 흘러가는 드라마다. 그가 만들어내는 악이 그 주변 사람들을 침범해 들어오고, 채도진은 그것을 막아내려 온 몸을 던진다. 채도진이 주인공이지만, 그 반대급부로서 윤희재가 서 있기 때문에 주인공이 존재하고, 주인공의 연인인 한재이가 존재한다. 또 그 때문에 평생을 가슴 조이며 살아가는 채옥희(서정연)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 

드라마에는 악역이 있기 마련이지만, 윤희재를 연기하고 있는 허준호만큼 자기만의 아우라를 제대로 보여주는 악역도 없다. 지난해에 방영됐던 <군주>에서도 대목 역할로 강력한 극의 힘을 만들어냈던 그가 아닌가. 물론 악역에서만 그가 자기 존재감을 보여줬던 건 아니다. 과거 <주몽> 같은 작품에서는 주몽의 탄생을 이끌어주는 해모수 역할로 짧아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그였다. 

<이리와 안아줘>에서 윤희재는 심지어 감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있는 모습만으로도 드라마 전체에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악역이다. 어두운 감방에서 음영에 비춰진 주름살까지 무시무시한 느낌을 주고, 심지어 뒷모습만 봐도 섬뜩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마치 사회에 길들여지지 않는 한 마리의 짐승 같은 거친 느낌. 그러니 감방 안에만 있어도 소름끼치던 이 인물이 탈옥해 사회 속으로 들어왔다는 그 사실은 시청자들을 더더욱 긴장하게 만든다. 허준호가 스스로 증명해낸 악역의 탄생. 실로 클래스가 다른 느낌이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멜로만큼 궁금한 이 드라마의 인간관

과연 채도진(장기용)은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윤희재(허준호)를 이겨낼 수 있을까.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진기주)의 서로 나누는 눈빛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은 절절한 사랑을 담고 있지만, 그것만큼 궁금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보여줄 인간관이다. 인간은 악을 태생적으로 안고 태어난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벗어나 구원받을 수 있을까. 또 그런 구원은 어떻게 가능해질 수 있을까. 

윤희재는 이미 체포되어 사형수로 감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여전히 채도진과 한재이의 주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지우고 싶은 그 과거를 끊임없이 다시 끄집어내는 장본인이 바로 윤희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서전을 써서 베스트셀러를 만들고, 그것으로 본래 윤나무와 길낙원에서 채도진과 한재이로까지 이름을 바꿔 살아가는 이들 앞에 그 과거의 그림자를 다시금 드리운다. 

윤희재는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그런 연쇄살인을 벌인 것이 ‘계승된 악’ 때문이라는 변명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들인 채도진은 윤희재에게 반기를 든다. 한재이의 부모를 죽이고 한재이까지 죽이려 했던 윤희재를 막아선 건 채도진이었다. 그는 ‘악은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아버지가 희대의 살인마를 선택했던 반면 그는 경찰을 선택한다. 윤희재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나약하게 만드는 것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사람이 “강해지는 건 누군가를 지키려 할 때”라고 반박했던 바 있다. 그가 경찰이 된 이유다. 하지만 사형수 윤희재는 감방 안에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따르던 추종자를 자신과 똑같은 살인범으로 키워낸 것. 

과거는 다시 반복된다. 윤희재에 의해 조종 받는 살인범은 과거 윤희재가 했던 방식 그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리고 그 피 묻은 망치는 점점 채도진과 한재이에게도 다가오기 시작한다. 채도진은 악으로 얼룩진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찰을 선택했지만, 다가오는 윤희재의 그림자 앞에 자신도 모르게 광기를 드러낸다. 만일 그가 살인범을 잡는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윤희재와 똑같은 광기를 드러낸다면 그건 결국 그의 실패를 자인하는 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과연 이 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 

<이리와 안아줘>가 흥미로워지는 건 이렇게 태생적으로 악의 구렁텅이 속에 빠져 있는 인물들 주변에 그들을 그 바깥으로 이끌어주는 따뜻한 손길들이 있다는 점이다. 채도진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한재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와 사실상 남남이나 마찬가지지만 진짜 엄마보다 더 엄마처럼 자신을 걱정해주는 채옥희(서정연)나, 아빠처럼 그를 돌봐준 고이석(정인기)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는 채도진에게 다가와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결국 인간은 태생이 아무리 힘겹다고 해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살아갈 수 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는 것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인간관이다. 채도진도 그렇지만 그의 형인 윤현무(김경남)가 겉으로는 아버지의 인정을 받고 싶어 악한 척하면서도 자신을 아들로 받아들이고 안아줬던 채옥희를 걱정하는 모습은 이런 인간관을 잘 드러내준다. 지독한 불행 속에 놓여져 있어도 다가와 안아주는 그 따뜻함이 어쩌면 구원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윤희재의 팽팽한 대결구도 속에서 담아내고 있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 비극 앞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좋아해서 미안해.”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의 채도진(장기용)은 한재이(진기주)에게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한 진심. 어린 시절 나무와 낙원으로 서로를 부르며 바라봤던 그들이지만, 채도진은 이미 그 때부터 그의 사랑이 만들어낼 비극을 예감했던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연쇄살인범이라는 걸 감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낙원을 밀어내려고도 했지만 이미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결국 사건이 터졌다. 그의 아버지 윤희재(허준호)에 의해 한재이의 부모가 모두 살해당했고, 나무는 낙원을 지켜내기 위해 아버지를 경찰에 넘겼다. 도주하다 경찰에 붙잡힌 윤희재가 자신이 잡힌 건 경찰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들 때문이라고 밝힌 건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윤희재가 체포된 건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끝없이 따라붙는 살인자의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채도진에게 달라붙었고, 그건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도 마찬가지였다.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의 가슴 아픈 사랑을 담고 있지만, 거기에는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윤희재는 감방에서 자서전을 내며 자신이 그런 괴물이 되게 된 것이 그런 환경에서 자라난 탓이라고 변명한다. 그는 그래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피해자들에게는 비수가 된다. 살인자의 거짓 변명일 뿐이기 때문이다.

윤희재는 감방에 들어와 있지만 엇나간 언론을 통해 계속해서 흉기를 휘두른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그가 쓴 책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찢어지는 상처를 입는다. 그걸 너무나 잘 아는 채도진은 스스로 방송사를 찾아가 자신의 얼굴을 걸고 그 책은 거짓이라고 밝히는 인터뷰를 한다. 그는 어린 시절 낙원에게도 그랬지만 마치 나무처럼 버티며 아픈 이들을 지켜주려 한다. 

그렇게 늘 아픔을 속으로 삭이며 피해자 가족들이 나타나 때리면 맞고 질책하면 죄송하다 사죄하며 버티고 서 있는 채도진은 진짜 나무 같은 인물이다. 모진 바람을 맞아도 묵묵히 서 있는 그에게 역시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엄마 채옥희(서정연)는 “울고 싶을 땐 참지 말고 울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어도 눈물조차 피해자들에게는 상처가 될 것을 알기에 채도진은 애써 눈물을 참는다.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을 때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이리와 안아줘>는 살인자의 아들 혹은 피해자의 딸이라는 굴레를 갖게 된 두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를 보여준다. 그 모진 현실 앞에서 채도진 역시 어쩌면 저 살인자인 아빠가 변명하듯 악을 계승하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채도진은 악이 그렇게 길러지고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변명일 뿐이라는 것. 그래서 드라마는 앞부분에 윤희재가 한 “악은 계승되는 것”이라는 말을 부정하는 채도진의 “악은 그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말은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채도진과 한재이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 표현도 제대로 못하며 바라보는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또한 그런 사랑의 마음을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그나마 삶이 살만해진다는 걸 보여준다. 나무처럼 버텨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선택을 한 채도진과, 그 나무의 아픔을 느끼며 다가가 안아주는 한재이의 마음. 그들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사진:MBC)

‘이리와 안아줘’가 담은 2차 피해 문제, 현실도 마찬가지

그들의 진짜 이름은 나무와 낙원이었다. 나무는 진짜 그 이름처럼 낙원을 위해 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고, 윤희재(허준호)라는 희대의 살인마인 아버지 때문에 늘 지옥에서 살아가던 나무에게 낙원은 역시 그 이름처럼 유일한 낙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가 꺾어지고 낙원이 지옥이 되는 일은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 

윤희재는 낙원의 부모를 살해했고 낙원까지 죽이려 했지만 나무가 막아섬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윤희재는 체포되었지만 과연 그걸로 끝이었을까. 가해자가 잡혔지만 피해자들은 결코 그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었다. 나무와 낙원은 그래서 그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무는 채도진(장기용)으로 낙원은 한재이(진기주)로 살아가려 하지만 비정한 세상은 그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MBC 수목드라마 <이리와 안아줘>가 심상찮다. 제목만 보면 그저 그런 청춘 멜로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눈물과 분노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가슴 먹먹하면서도 동시에 지금의 우리네 현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 장면들이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이 드라마는 살인자의 아들인 채도진과 그 살인자에 의해 살해당한 피해자의 딸인 한재이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가해자가 감옥에 들어가서도 참회록이랍시며 자서전을 써서 장사를 하며 버젓이 살아가는 반면, 피해자는 언론의 2차 피해를 겪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문제들을 담았다. 

최근 미투 운동과 더불어 더 자주 등장한 것이지만 ‘2차 피해’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적지 않게 등장했던 일들이었다. <이리와 안아줘>가 지목하고 있는 것처럼 그 2차 피해를 촉발하는 건 당장 이슈에만 눈이 먼 언론들이다. 윤희재의 자서전을 출간한 인물이 한 시사잡지 기자이고, 어떻게든 과거를 파내 이름까지 바꿔가며 살아가는 채도진과 한재이를 끝내 대중들 앞에 발가벗기고 다시 그 지우고 싶은 과거를 끄집어낸 이들이 바로 기자들이다. 

그 2차 피해는 윤희재가 살인마인 줄 모르고 결혼하며 살다 결국 사실을 알고는 딸과 도망친 채옥희(서정연)와 채소진(최리)에게도 벌어진다. 섬에 들어가 조용히 식당을 하며 살아가던 그들에게 윤희재 자서전의 수입이 가족들에게 갈 것이라는 허위보도가 나오면서 이들은 다시 과거 윤희재의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가해자는 웃으며 추억처럼 과거의 살인을 회고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끝없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 이건 지금 현재도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아닌가.

<이리와 안아줘>라는 이 드라마의 제목은 그래서 다시 읽힌다. 그저 청춘 남녀의 사랑을 뜻하는 것인 줄 알았던 제목이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와 따뜻한 포옹을 해줄 수는 없냐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채도진과 한재이는 그 어린 시절 끔찍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안아준 적이 있다. 사건현장에서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던 나무에게 낙원은 다가가 원망을 하기보다는 끌어안아주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라며 “살아남으라”고 말해주었다. 

나무는 그 어린 나이에도 도망치는 채옥희와 채소진에게 “잘 가라”고 “멀리 도망치라”고 말해주었다. 채옥희는 두려움 때문에 딸을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지만 그 어린 아이가 지옥 속에 서 있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모두를 도망치게 했지만 정작 아이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버텨내는 일에 익숙해져 버린 나무처럼.

어째서 한재이 같은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안아주지 못할까. 다만 그가 살해당한 유명배우의 딸이라는 사실을 유포해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아가려는 그 안간힘을 밟아버릴까. <이리와 안아줘>는 채도진과 한재이가 겪는 2차 피해의 굴레 속에서 그 누구도 안아주지 않는 살벌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두 사람이 서로를 안아주는 장면이 그토록 절절하고 아프게 다가오는 건 이런 비정한 현실을 그들의 사랑에서 더더욱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사진:MBC)

작품에 불을 붙이는 밑그림 전문 허준호의 존재감

이 정도면 허준호는 작품의 ‘밑그림 전문’이라고 불러도 될 듯싶다. 허준호는 드라마든 영화든 주인공 역할로 등장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악역이나 중요한 조연이 그가 연기해온 전문분야다. 하지만 그의 악역과 조연 역할은 그저 보조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작품의 전체적인 정서나 분위기 혹은 팽팽한 긴장감 같은 것이 그의 연기로부터 부여된다는 점에서 그는 작품의 밑그림을 그려내는 숨은 주인공이 아닐까. 

'군주(사진출처:MBC)'

MBC 수목드라마 <군주>에서의 허준호가 그렇다. 사실 이 사극에서 편수회라는 조직이 갖는 존재감은 전체 이야기의 모티브라는 점에서 가장 중요하다. 왕의 뒤편에 서서 사실상 비선실세 역할을 하는 편수회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파탄 나는 국가와 핍박받는 백성들이라는 이야기의 동기가 없다면, 이에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성장시켜 진정한 왕으로 돌아오는 세자 이선(유승호)의 모험담이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편수회의 수장으로서 대목을 연기하는 허준호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편수회라는 조직의 비정함을 거의 혼자서 만들어내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왕(김명수) 앞에서 예의를 갖추는 듯싶지만 실상은 왕을 허수아비처럼 여기는 인물. 그래서 결국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게 된 왕을 잔인하게 죽여 버리는 인물이 바로 대목이다. 

하지만 <군주>에서 대목이 더 살벌한 존재로 여겨지는 건 그가 돈과 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꿰뚫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가짜 세자를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려던 걸 군권을 쥐고 있는 대비가 막고 수렴첨정을 하자 대목은 돈줄을 죄어 군권마저 흔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편수회가 이끄는 양수청은 그래서 백성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줬다가 일시에 회수함으로서 나라의 돈 가뭄을 만들어 버리려 한다. 결국 돈이 없으면 군사들도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간파한 것. 

<군주>의 이야기는 한편의 게임처럼 구성되어 있다. 왕세자로 있던 이선은 부모를 모두 잃고 또 충신이었던 한규호(전노민)마저 자신의 잘못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만든다. 결국 죽을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지만 세자의 신분은 이제 저잣거리의 장사꾼 막내가 되어버린다. 그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 자신의 신분을 되찾는 이야기가 바로 <군주>다. 그런데 그 모든 이선의 이야기의 근거가 바로 편수회의 대목 때문에 비롯된 것들이다. 

허준호의 이런 존재감을 우리는 과거 사극 <주몽>에서 일찍이 발견한 바 있다. 주몽의 탄생 이전에 그의 길고 긴 모험담의 전사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허준호가 연기한 해모수였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같은 형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해모수의 존재감은 그래서 <주몽>이라는 사극의 초반 동력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사극뿐만이 아니다. 최근 개봉된 영화 <불한당>에서 허준호는 정통파 주먹의 보스 역할로 등장해 처연함마저 느끼게 하는 최후를 보여준 바 있다. 결국 그 장면을 통해 주인공들의 브로맨스가 시작된다는 점을 두고 보면 역시 허준호는 출연하는 작품마다 뒤편에 서서 실제 작품의 동력을 만드는 연기자라는 걸 확인하게 된다. 

옆에 서거나 아니면 반대편에 서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것보다 중심에 서서 빛나는 건 어쩌면 더 쉬운 일인지도 모른다. 빛을 받는 주인공이 더 빛나는 순간은 그 반대편에 서 있는 그림자가 더 깊어질 때다. 허준호라는 연기자는 바로 그 깊어진 그림자다. 그것이 작품 전체에 드리워져 있어 힘을 만든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이라 해도 무방할.

<뷰티풀 마인드>, 시청률로 결코 폄하될 수 없는 수작

 

도대체 진정한 의사란 어떤 존재를 말하는 걸까.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의 질문은 진지하고 통렬하다. 이영오(장혁)라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 부르는 장애를 가진 인물. 이 드라마가 이런 문제적 인간을 병원의 의사로 세운 까닭은 분명하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이건명(허준호) 현성병원 센터장까지 괴물이라 부르는 그지만, 과연 진짜 괴물은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뷰티풀 마인드(사진출처:KBS)'

의사라는 직업은 이중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살려야 하는 직업이기에 환자의 고통을 공감해야 하지만, 동시에 수술대 앞에서는 한없이 냉정해져야 한다. 수술대 앞에서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는 이영오가 다른 의사들보다 출중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수술 중 환자의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수술이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는 이영오의 모습은 그 인간적인 감정이 결여된 의사의 위험성을 드러낸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타인의 고통 앞에 연민과 동정 그리고 나아가 공감을 느끼는 게 상식적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병원이라는 시스템은 저 사이코패스처럼 무감정하게 돌아가기도 한다. 신약 개발이 환자를 살리기 위함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함으로 변질될 때, 그 곳은 병원이 아니라 사업체가 되고, 환자는 생명이 아니라 매출액으로 표시되는 수치가 된다. 병원이 시스템으로만 기능할 때 그건 사이코패스와 다름없는 무감정한 괴물이 된다.

 

물론 의사들은 사람이다. 그래서 환자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들의 고통을 공감하고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레지던트 3년차 양성은(동하)은 이식할 심장을 제 때 가져가기 위해 병원까지 꽉 막힌 도로를 뛰어가고, 이시현(이시원)은 심장 이식을 앞둔 환자에게 튼튼한 심장을 주겠다며 희망을 품지만, 수술 중 이식할 심장에 감염이 있다는 걸 알고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절망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장에서 뜨거운 심장을 갖고 일하는 의사들과 달리, 저 꼭대기에 있는 현성병원의 수뇌부들은 환자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현성병원 이사장 강현준(오정세)에게 중요한 건 돈 벌이뿐이고, 그를 동조하는 기조실장 채순호(이재룡)는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환자가 죽어나가도 그다지 감정이 없다. 오로지 권력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게 밝혀지고 결국 현성병원에서 내쫓긴 이영오는 다르다. 그는 사이코패스지만 어떻게든 인간적인 감정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바디 시그널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보통 의사들처럼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한다. 이영오가 사이코패스지만 오히려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건 그래서다.

 

그는 계진성(박소담)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그렇게 가게 된 어촌마을에서 이웃에 사는 고부를 통해 병변이 아닌 환자를 봐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바디 시그널만이 아니라 그 환자의 생명 자체를 염두에 둬야 비로소 진정한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그는 자신이 누구냐는 질문에 의사 이영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된다.

 

인간적인 감정 역시 이중적이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만드는 욕망이기도 하다. 마취과 의사 김윤경(심이영)은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는다. 인간적 감정이 고통의 공감을 넘어 파국적인 욕망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무런 감정 자체가 없는 이영오는 그래서 이 의사와 병원이라는 이중적인 세계의 리트머스지 같은 존재로 서 있다. 그의 감정 없는 모습이 사이코패스라며 그를 병원 밖으로 몰아내지만, 정작 병원 시스템은 더더욱 사이코패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의사들은 심지어 아버지까지 그의 이런 장애를 괴물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때론 그보다 더 괴물 같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뷰티풀 마인드>3.5%(닐슨 코리아)라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결코 평가 절하될 수 없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의학드라마로서 이처럼 통렬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이처럼 따뜻한 사이코패스의 성장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 있었던가

<뷰티풀 마인드> 장혁, 싸이코 패스 같은 현실을 닮은 까닭

 

KBS 월화드라마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 이영오(장혁)는 현성병원에 부임한 천재적인 신경외과의사다. 하지만 그는 또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이다. 감정 중추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타인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한 마디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의사.

 

'뷰티풀 마인드(사진출처:KBS)'

공감 능력이 부재한 의사라는 사실은 섬뜩한 느낌을 준다. 이런 의사가 메스를 들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 칼끝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그것은 수술이라기보다는 마치 사이코 패스가 칼을 들고 인간의 몸을 해부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영오는 아버지이자 의사인 현성병원 센터장 이건명(허준호)으로부터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넘기 위한 교육을 받는다. 즉 타인의 감정을 얼굴 표정이나 제스처 등을 통해 읽어내는 이른바 감정 훈련을 받은 것. 그래서 이영오는 상대방의 표정을 보며 그가 어떤 마음 상태인가를 읽어낼 수 있게 된다. 감정은 못 느끼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 것.

 

공감 능력의 부재는 최근 우리네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강력범죄들 속에서 발견될 정도로 심각한 정신질환이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의 이영오는 어째서 이런 위험천만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을까. 그것은 이 의학드라마가 던지고 있는 중대한 메시지를 이 캐릭터가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감 능력이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면서 동시에 점점 공감이 아닌 성공이나 실적에 더 치열해진 사이코 패스 같은 사회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영오는 공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위험천만한 수술을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겪지 않고 성공시킨다. 아버지 이건명조차 손을 부들부들 떨며 긴장했던 수술. 정치인의 공개수술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병원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그 수술에서 이영오는 무심한 마음으로 마치 기계처럼 정확하게 수술을 해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수술을 성공시킨 이영오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이미 알아버렸어요. 내 의사로서의 재능은 텅 비어 있는 마음이라는 거.” 흔들리지 않고 두려움 없이 하는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가 성공할 수 있었다는 건, 공감 능력이 없는 것이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기능적으로는 더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이 이야기는 이건명의 아들에 대한 노력이 흔들리기 시작한다는 걸 말해준다. 그 위험천만한 텅 빈 마음은 때론 의외로 냉철한 수술을 통해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생명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인지하지 않고 하는 수술만큼 위험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는 이영오라는 인물이 가진 이 양면성을 통해 현재 우리네 사회를 해부한다. 실로 돈이 있다면 사람의 목숨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게도 여기지 않는 사이코 패스 같은 세상은 겉으로 보기에 부유해보일지 몰라도 그 안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이영오는 그 공감 능력 없는 수술로 성공할지 몰라도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는 생명에 대한 간과가 아닐 수 없다.

 

결국 <뷰티풀 마인드>가 추구하고 있는 건 이 이영오라는 인물에게 꼭 필요한 아름다운 마음을 어떻게 부여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하게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과현 이영오는 장애를 극복하고 진정한 마음으로 생명을 살려내는 의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저 병원에 이익을 가져다 줄 성공과 실적만을 추구하는 무심한 의사가 될 것인가. 이 질문이 현실에 던지는 울림이 큰 것은 우리 사회가 저 공감 능력이 부재한 이영오라는 인물을 빼닮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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