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중심으로유턴 '사임당', 제작진의 안간힘 통할까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이하 사임당)>는 그 시작이 뒤틀어졌다. 그건 이미 중국과의 동시방영을 목표로 해서 일찌감치 만들어졌지만 제 시기에 방영되지 못한 것이 그 첫 번째다. 이러는 사이 사극과 현대극을 오가는 설정은 식상한 것이 되어버렸고, 신인 배우 박혜수는 <사임당>을 찍을 당시만 해도 참신한 신인이었지만, <내성적인 보스> 등에 먼저 출연하면서(그것도 주연급으로) 왜 역량과 달리 여기저기서 등장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만들었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게다가 <사임당>은 제작발표회에서 크나 큰 실수를 저질렀다. 그것은 박은령 작가의 발언에서 비롯됐다. ‘블랙리스트’에 오를 이야기라는 발언과 ‘타임리프’에 대한 발언이 그것이다. 블랙리스트 발언은 <사임당>이 갖고 있는 편견, 즉 ‘현모양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생각에 대해 그게 아니고 보다 도발적인 행보를 보일 ‘워킹맘’이라는 걸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러나 이렇게 작가가 나서서 작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습은 결코 좋게 비춰질 수가 없었다. 

또한 ‘타임리프’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한 것도 문제로 지목되었다. 그것은 <사임당>이 타임리프 드라마라는 시각을 덧씌웠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임당>은 타임리프 드라마가 아니다. 타임리프라면 과거에서 미래로 혹은 미래에서 과거로 시간을 뛰어넘어 인물이 활약하는 이야기여야 한다. 하지만 <사임당>은 현재의 서지윤(이영애)이라는 인물이 사임당의 일기를 발견해 읽어나가는 ‘액자구조’에 더 가깝다. 

물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는 평행우주 설정이 들어가지만 그건 아주 일부분이라 거의 무시하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다. 하지만 제작발표회에서 굳이 타임리프가 거론된 데다 첫 회부터 현대극으로 상당 부분을 할애하면서 <사임당>은 사극이 아닌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타임리프 장르처럼 인식되었다. 이 부분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사실 조금 연령대가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사임당이라는 소재가 친숙한 나이든 시청자들은 사극을 기대했다가 현대극이 나오는 걸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을 게다. 

제작사 측은 부랴부랴 100% 완성된 드라마지만 편집을 통해 이처럼 뒤틀어진 부분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현대극의 서지윤의 이야기가 간간히 등장하긴 하지만 본래 하려고 했던 사극을 중심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극에서는 사임당의 어린 시절 이겸(양세종)과의 만남과 쓰라린 이별이 그려졌고, 이겸을 위해서 또 집안을 위해서 원치 않는 혼사를 치르는 사임당의 이야기가 보여졌다. 그리고 곧바로 아이 셋을 둔 사임당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강릉 오죽헌에서 한양으로 거처를 옮긴 사임당은 무능한 남편 때문에 허름한 집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아이들을 챙기게 되었고 그 와중에 다시 성장한 이겸(송승헌)을 만나 그림으로 마음을 교류하는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사실 최근의 드라마들의 전개 속도나 이야기가 가진 극적 상황들과 비교해보면 <사임당>의 이야기는 굉장히 차분한 편이다. 예를 들어 현모양처는 아니고 워킹맘이라고 하더라도 사임당이 키워낸 율곡 이이에 대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가는 양상을 보면 너무 느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임당이 키우는 율곡과 대결구도를 이룰 휘음당 최씨(오윤아)가 자식을 키우는 교육방식은 지금 봐도 흥미로울 수 있는 대목이다. 중부학당이라는 기득권들의 교육은 마치 지금의 강남 8학군의 치맛바람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또한 사임당과의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그 아픔에 세월을 낭비해온 이겸이 그녀의 일갈에 그 사랑의 아픔을 그림이라는 예술로 승화해가는 과정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과거 첫사랑의 증표처럼 되었던 비익조(눈과 날개가 하나뿐이라 암수가 만나야 날 수 있다는 전설의 새) 인장이 비익당이라는 예술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귀천 없이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 승화되는 설정이 그렇다. 

사임당이라는 인물은 박정희 시절 산업일꾼으로서 남성들이 개발에 뛰어들 수 있게 하기 위해 여성들을 ‘현모양처’라는 틀 안에 가둬두려는 의도로 상당부분 왜곡되어진 인물이다. 당시 고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를 사임당과 동일시하려는 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현재의 여성들에게 ‘사임당’은 문제적 인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를 그저 그 ‘현모양처’라는 과거 가부장적 사회를 정당화하던 왜곡된 이미지로 가둬둘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에 다시금 본 모습이었던 여권을 당당히 드러내던 인물로 재해석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결국 <사임당>이라는 드라마는 그 이미지에 있어서도 상당부분 뒤틀어진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임당을 고 육영수 여사에 이어 현 박근혜 정부를 호도하기 위해 드라마로 소환해왔다는 시각이 만들어지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사임당>은 그 정반대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박정희 시절부터 현재까지 호도되어온 그 이미지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것. 

이처럼 <사임당>은 쉽지 않은 길을 걷는 드라마이면서(어쩌면 그래서 오히려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르지만) 초반에 문제를 더 뒤틀어지게 만드는 잘못된 선택들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사임당>의 이야기가 굳이 현대와 과거를 뒤섞지 않고 그저 사극으로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뒤늦게라도 제 길을 찾아가려 노력하고는 있지만 한번 엇나간 길을 되돌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타임리프 판타지가 오히려 현실을 더 껴안아야 하는 까닭

이제 타임리프가 없으면 어딘지 심심하다? 아니 너무 타임리프가 많이 등장해 식상할 지경이다. 드라마를 보는 취향에 따라 최근 쏟아져 나오는 타임리프 설정에 대한 호불호는 나눠질 것이다. 종영한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조선시대에서 이어진 인연이 현재로까지 이어졌고,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고려시대의 무장 김신(공유)이 도깨비로 부활해 무려 7백여 년을 산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조선시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또 이러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들은 올해도 계속 나올 전망이다. 3일 첫 방송되는 <내일 그대와>는 지하철을 매개로 하는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이 되어 있다. 오는 3월 방송 예정인 <터널>은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에서 현재로 온 아재 형사의 新문물 표류 수사기’를 다룰 것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이미 훨씬 이전부터 타임리프라는 판타지는 <나인 : 아홉 번의 시간여행>에서 다뤄진 바 있고, <시그널> 같은 작품에서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무전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별에서 온 그대> 같은 경우에는 죽지 않는 외계인이라는 설정으로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가 가능해졌다. 타임리프,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래된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폭넓은 시간대를 다루는 설정으로 인해 사극과 현대극은 이제 완전히 구별되는 장르가 아닌 게 되었다. 

이러한 타임리프 설정의 드라마가 많아지는 것은 시간의 혼재가 주는 흥미로움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이 설정이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신의> 같은 고려시대의 최영 장군이 현재를 넘나들며 여의사와 시공을 초월한 사랑을 하는 드라마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또 조선시대와 현재의 전생과 이생을 뛰어넘는 <푸른 바다의 전설> 역시 스토리적으로 성공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이른바 순환우주의 세계관을 끌어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사임당> 역시 아직까지 그 성공을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시그널>이나 고려시대의 전생과 현재의 이생을 도깨비와 도깨비신부, 저승사자의 이야기로 풀어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는 대중적인 성공은 물론이고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똑같은 타임리프라고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이런 성패를 가르게 된 것일까. 

흔히들 타임리프라는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설정은 그 자체의 흥미로움에 시청자들이 빠져들 것이라고 착각하곤 한다. 하지만 타임리프라는 판타지 설정은 그 허구를 이어주는 강력한 현실적인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저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전락할 위험을 지닌다. 현재에서 갑자기 과거로 소환됐다면 그런 판타지가 왜 필요한가를 그 작품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시그널>의 판타지가 성공했던 건 무전기 설정 그 자체 때문이 아니고 그런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과거로 돌아가 미제사건을 해결하고픈 강렬한 현실적 열망이 그 동인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그널>의 김원석 감독은 무전기라는 판타지 설정에 대한 현실적 근거를 자세히 넣으려고 굳이 애쓰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요한 건 판타지 설정 자체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가 하려는 현실적인 정서나 갈망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라는 것. 

<도깨비>가 성공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심지어 도깨비나 저승사자 같은 초월적 존재를 등장시키고 있지만 이들을 통해 실제 하려는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 것이었다. 사랑과 기억이 있다면 죽음은 그저 불행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 마찬가지로 영생한다는 것이 행복을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 드라마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이야기해줬다. 물론 이 이야기는 지금의 힘겨운 현실상황에 처한 대중들에게 위로를 주기에 충분했다. 

타임리프라는 설정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설정이 건드리는 현실적인 정서가 더 중요하다. 타임리프는 그저 그림을 멋지게 만들기 위함이거나 과거와 현재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자유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그것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면 그 드라마의 타임리프가 성공적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다.

박보검, 사극도 현대극도 심각함도 코믹도 멜로도 되네

 

확실히 박보검은 준비된 연기자다. 이것은 이미 tvN <응답하라1988>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가 연기했던 최택이라는 천재기사의 캐릭터는 청춘 특유의 밝음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또한 아버지와 둘이 살아가며 바둑이라는 승부의 세계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인물의 날카로움과 어두움도 갖고 있었다. 어눌한 듯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지만 어떤 순간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의 면면까지. 한 캐릭터에서 이렇게 다채롭고 복합적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사진출처:KBS)'

그의 새로운 작품, KBS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도 박보검의 연기는 확실히 출중하다. 물론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한 사극이지만, 사극 어투는 연기자들도 어색하게 느끼는 부분이다. 하지만 박보검이 연기한 왕세자 이영이라는 인물은 첫 등장부터 사극이 갖는 특유의 어투들을 잘 소화해냈고, 그러면서도 그걸 살짝 무너뜨림으로써 캐릭터의 코믹함과 긍정적인 성격을 동시에 보여줬다. 주상이 시찰하러 오자 술술 고전들을 외워보였지만 바람이 미리 적어둔 답변들을 날려버림으로써 그 진지한 척 했던 인물의 허당스러움이 드러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보여줬던 것.

 

물론 이영의 이런 허당기는 그 진짜 속내를 숨기기 위한 의도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정의 실세로서 권력을 틀어 쥔 영의정 김헌(천호진)은 향후 이영과 대결구도를 이룰 인물이다. 학문을 게을리 하며 어딘지 왕권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이영이 사실은 허허실실하고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점은 <응답하라1988>에서의 최택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최택이 진지하고 신경질적인 얼굴로 뒤에 덕선(혜리)에 대한 사랑을 숨기고 있었다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이영은 허허실실 유쾌하고 웃는 얼굴 뒤에 조정을 걱정하는 진지함이 숨겨져 있다는 것.

 

하지만 역시 박보검의 연기가 빛나는 건 뭇 여성들을 심쿵하게 만드는 멜로 연기다. 이미 첫 회부터 남자여자로 등장한 홍라온(김유정)과 인연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이영은 이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인 사극의 주요 색채를 멜로로 만들어내고 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궁에까지 들어온 홍라온은 향후 이영과 다시 만나 조정을 농단하는 자들과 대립하며 사랑을 이어가게 되지 않을까. 자칭 연애 상담사인 홍라온이 정작 자신이 이영에게 빠져드는 상황은 어떻게 받아들일까가 벌써부터 기대되는 대목이다.

 

이른바 <응팔>의 저주라고 불리는 건 이 드라마에서 배출된 연기자들이 다른 드라마에서는 어쩐지 힘을 발휘하지 못한데서 나온 이야기다. <딴따라>에 출연했던 혜리가 그렇고, <운빨로맨스>에 출연했던 류준열이 그랬다. 그 이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도 고아라, 손호준, 유연석이 모두 새로운 드라마에 투입되었지만 별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박보검만은 이 <응팔>의 저주에서 예외가 될 듯싶다. 그것은 박보검이 <응답하라> 시리즈에 의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라 온전히 준비된 연기자로서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갈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현대극은 물론이고 사극도 되고, 심각함과 코믹 나아가 멜로도 되는 연기의 면면을 박보검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몬스터> 시청률 급상승, 이기광이 만들어낸 기대감

 

MBC 월화드라마 <몬스터>에서 이기광은 단 2회만 출연했다. 그리고 그의 성인역할로서 강지환이 그 바톤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단 2회 출연이고 이미 성인 역할로 교체되었다고 해도 이기광이 이 드라마에 만들어낸 기대감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3회에 <몬스터>가 시청률 9.5%(닐슨 코리아)로 급상승하며 SBS <대박>(11.6%)KBS <동네변호사 조들호>(10.9%)를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던 건 이기광의 공이라고 말해도 괜찮을 듯싶다.

 


'몬스터(사진출처:MBC)'

장영철 작가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몬스터> 역시 사극 같은 스토리 구조들을 그 바탕으로 깔고 있다. 현대극이지만 어찌 보면 사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설정들이 눈에 띈다. 도도그룹이 일종의 궁궐이라면 그 총수인 도충(박영규)은 절대 권력을 가진 왕의 역할이고 그의 아들인 안하무인 도광우(진태현)와 첩실 소생인 도건우(박기웅)가 권력을 두고 대립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사극 속 궁중 권력투쟁의 구도다. 여기에 가신들로 들어가 있는 야심가 변일재(정보석)나 문태광(정웅인) 같은 인물들의 대결구도도 사극의 그것처럼 흥미롭다.

 

여기에 화평단이라는 비밀조직을 통해 무협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MK2 변종바이러스라는 요소는 무협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지만 그로 인해 힘을 얻게 되는 기보 같은 역할을 갖고 있다. 국철(이기광)이 변종바이러스의 유일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바닥에 떨어져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후에도 다시 부활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다. 화평단의 옥채령(이엘)이 그의 면역혈청을 사는 대가로 그를 부활시키는 것. 물론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청력이 좋아지는 이야기 역시 무협적인 요소다.

 

<몬스터>는 현대극이지만 조금은 황당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 요소들을 갖고 있다. 시력을 잃은 채 청력만으로 교도소에서 자신을 바닥으로 추락시킨 인물에게 복수하고 탈출하는 이야기나, 노숙자 생활을 전전하면서도 복수를 꿈꾸며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전형적인 무협지 이야기다. 3회에 강기탄(강지환)으로 이름을 바꿔 돌아온 국철이 도도그룹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연수를 받는 모습 또한 그렇다. 그것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비현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만화적으로까지 느껴지는 이야기인데다가 그 결말도 대체로 정해져 있는 뻔한 복수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한 몰입을 만들어낸 건 바로 이제 몇 차례 연기 도전을 하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이기광의 연기 몰입이 좋았기 때문이다. 번듯이 잘 살아가던 그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그 과정을 이기광은 절절하게 연기해냈다.

 

특히 결코 쉽지 않은 시력을 잃은 국철이라는 캐릭터를 이기광은 잘 소화해냈다. 시력을 잃고 절망하면서도 차정은(이열음)에게 살짝 마음을 여는 모습에서는 그 연기에 섬세함마저 느껴졌다. 이기광이 만들어낸 이런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강지환으로 그 힘이 이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 힘을 강지환이 얼마나 더 살려낼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분명한 건 이기광이 그 밑바탕이 되는 판만은 확실하게 깔아줬다는 점이다

눈 높아진 시청자들, 지상파 새로운 제작방식 고심해야

 

KBS <태양의 후예>가 시청률 30%를 넘어섰다. 언젠가부터 지상파 주중드라마에서 그것도 현대극으로 30% 시청률은 도달할 수 없는 한계로 지목되어 왔다. 그래서 이제는 10%만 넘겨도 괜찮은 성적이라 여겨졌고 20%를 넘기면 대박이라는 얘기가 보편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고정관념이 깨졌다. 지상파 주중드라마 현대극이라고 해도 잘 만들어낸다면 30% 시청률을 넘기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종영한 tvN <시그널>은 마지막회에 최고 시청률인 12.5%(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케이블에서 그것도 멜로 하나 없는 스릴러 장르물로 이런 시청률을 낸다는 것은 모두가 불가능이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렇게 잠시 눈을 떼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은 드라마로 이 정도의 성과를 냈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그널>은 케이블 드라마나 장르물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공이 말해주는 건 한 가지다. 세상에 깨지지 않는 고정관념이란 없다는 것. 잘 만든 드라마는 결국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껏 이 당연한 공식이 공식대로의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잘 만든 드라마보다 오히려 식상하기 이를 데 없는 익숙한 틀에 자극만 잔뜩 세운 막장드라마들이 30%대 시청률을 냈던 게 실제 현실이니 말이다.

 

지상파 시청률을 견인하는 고정 시청층은 그래서 마치 허수처럼 여겨졌다. 시청률이 완성도를 증명해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청층의 취향만을 반영하는 것처럼 지표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보통의 시청률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구매력을 가진 2039 세대의 시청률이고 화제성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막장드라마에 호응하는 시청세대가 힘을 발휘하고 있는 건 현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드러내준 것처럼 새롭고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적극적인 호응을 보여주는 시청층이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이 이렇게 고정관념을 깨버리며 놀라운 성과를 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 제작방식이 기존의 드라마 제작방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제작규모가 워낙 커서 영화제작사인 NEW가 합류했고 이를 통해 중국의 투자를 받아 사전 제작되었다. 물론 방영도 한국과 중국이 동시에 방영했다. 결과는 양국이 모두 큰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 시청률 30%를 넘긴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도 <별에서 온 그대>를 뛰어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시그널><미생>에서도 확실히 느껴진 것이지만 영화 제작인력의 투입이 드라마의 질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를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물론 오래 전부터 CJ가 해왔던 무비드라마는 그 원형에 해당할 수 있는 것이다. <시그널>은 영화적 연출과 완성도 높은 대본이 아예 시청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끝까지 밀어붙이는 저력을 통해 오히려 시청률까지 갖게 되었다.

 

<태양의 후예><시그널>의 성과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이 두 드라마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발견해냈고 그 성향이 새로움과 좀 더 높은 완성도를 열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완성도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고 또한 필요하다면 영화적인 제작방식을 통한 연출의 변화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어찌 보면 고정관념은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은데서 굳어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이 이제 향후의 드라마 판도를 가를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병훈 PD에 대한 오해와 진실

 

<마의>를 끝내면서 이병훈 PD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자기 복제에 빠졌다는 얘기부터 이제 은퇴한다는 소문까지. 또 너무 착한 캐릭터에 집중하는 선악구도가 명확해서 이야기가 단순하다는 비판에서부터 역사를 너무 벗어난 상황연출로 고증이 미흡한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여러 모로 <마의>는 이병훈 PD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는 작품이 될 듯하다. 그런데 이런 논란과 소문들은 과연 진실일까. 이병훈 PD를 만나 거두절미하고 그 궁금증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마의'(사진출처:MBC)

 

◊ 이병훈 PD, 은퇴한다?

이병훈 PD의 은퇴설은 이미 <동이>가 끝났을 때에도 흘러나왔었다. 하지만 <마의>가 끝날 즈음 또 터져 나온 은퇴설은 어딘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작품에 대한 한계를 지목했고 또 무엇보다 적지 않은 나이로 사극을 찍는 부담감을 얘기했다.

 

“체력적인 한계 때문에 더 이상 사극을 찍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사실 연출은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 더 큰 어려움은 대본 작업이다. 기본적으로 50부 정도의 분량을 다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작업에 들어가는데, 어떤 인물을 다룰 것인지 또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늘 고민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하는 정신적인 부담감이 체력적인 부담보다 훨씬 크다는 얘기다. 사실 앞으로 새 작품을 또 할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 혁신적으로 바꾸기 전에는. 역사 속의 인물을 찾아내고 거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작업으로는 또 비슷한 사극이 나왔다는 비판을 받을 것 같다. 다만 예전에 황석영 원작 <장길산>을 사극으로 작업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는데 그런 경우처럼 원작이 있는 작품을 사극화 하는 것은 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예전 방식의 반복은 하지 않으려 한다.”

 

◊ 이병훈 PD, 자기복제에 빠졌다?

이번에 가장 많이 나왔고 또 아픈 이야기가 이병훈 PD가 자기복제에 빠졌다는 것이다. RPG 게임식의 미션 구조와 성장스토리의 반복이라는 것. 실제로 <마의>에서는 백광현이라는 캐릭터의 고난 극복 성장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기도 했다.

 

“성장스토리를 담기 위해 MBC <성공시대>의 인물들을 분석하면서 성공의 과정에는 거의 비슷한 단계를 모두 거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힘겨운 환경과 과제가 있고 고난이 있으면 그 위기를 극복하며 또 조력자나 스승이 있다는 등의 대체적으로 8가지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사극에서 그 성공 스토리를 담다 보니 역시 과정이나 패턴이 비슷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마의>에서도 예상은 어느 정도 했지만 동물을 찍는다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말이 고개를 돌리는 장면 하나를 찍느라 3일이 걸린 적도 있다. 초반부에 말이 어린 백광현의 얼굴을 핥아주어 백광현이 살아나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이걸 찍느라 애를 많이 먹었다. 전문가들도 말이 사람의 얼굴을 핥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결국 얼굴에 설탕과 이것저것을 섞은 걸 발라 말을 유도해서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이 동물과 교감하는 장면이 나왔던 초반부는 확실히 차별성이 있었고 그래서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계속 이걸 찍어낼 수도 없었고 또 이야기 자체가 마의에서 시작해 인의가 되는 과정으로 가기 때문에 중반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허준>이나 <대장금>을 하면서 의원 에피소드를 안 한 것이 거의 없다. 새로운 걸 내놓는다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의>에서는 본래 백광현이란 캐릭터를 의술에는 뛰어나지만 여자를 밝히는 난봉꾼으로 만들려고 했었다.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백광현 주변에 여자들(강지녕, 숙휘공주, 서은서, 소가영)을 많이 포진시킨 이유다. 하지만 서은서라는 과부와의 로맨스를 다루는 지점에서 고민이 생겼다. 이미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는 백광현의 캐릭터가 생긴 연후에 윤리적인 허점을 만드는 것이 캐릭터를 손상시키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이 부분을 포기하면서 백광현의 캐릭터는 착한 캐릭터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 이병훈 PD, 너무 착하다?

권선징악과 선명한 선악구도. 그리고 항상 고난에 빠져도 선한 자가 승리하는 이야기. 나아가 선정적인 장면이나 폭력적인 장면이 거의 없는 이병훈표 사극을 우리는 ‘착한 사극’이라 부른다. 하지만 자극적인 드라마들이 판을 치고 있는 요즘 착하다는 가치는 많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극에서 어떤 인물을 다룰 것인가 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건 그 인물이 조명될 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별로 의미가 없는 인물을 50부작에 가깝게 조명할 필요가 있을까. 자칫 잘못하면 미화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되도록 귀감이 될 만한 인물, 그 중에서도 역사가 잘 알려주지 않은 인물을 다루려 한다. 이를테면 허준 같은 인물은 ‘동의보감’같은 명저를 남겼지만 역사에는 별로 남아있는 게 없다. 이런 인물을 조명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다 보니 착한 사극이라는 뜻하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점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던 건 아니었다. 연출자가 어떻게 시청률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겠나. <허준>을 찍을 때는 허준이 본래 주먹질하는 장면이 나오고 또 예진아씨의 노출도 준비시켰었다. 그래서 예고편으로 나간 것에는 예진아씨가 속옷 차림에 비를 맞으면서 무릎 꿇고 허준에게 비는 장면이 있었다. 10회 정도에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이 장면은 결국 방영을 포기했다. <허준>이 단 7회만에 자리를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니까 10회에서 자극적인 장면을 도저히 넣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건 <대장금>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이영애씨 목욕신이 예고까지 나갔었는데 결국 빠르게 자리를 잡으면서 본 방송에서는 포기하게 됐다. 이게 몇 번 반복되다 보니까 괜한 착한 이미지가 생겨서 아예 그런 장면들은 이제 못 넣게 되어버렸다. 착하다는 건 오해다. 다만 자극적인 것으로 당장의 시선을 끌려는 요즘 막장드라마들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 이병훈 PD, 자기 색깔만 고집한다?

이병훈표 사극에는 확실한 색깔이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대중들은 이병훈 PD가 자기 색깔을 고집한다고 여기는 면이 있다. 이것은 12년 간 무려 7개의 대하사극을 만들어오면서 작가가 세 명이나 바뀌었지만 그 색깔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그는 자기 색깔만을 고집할까.

 

“확실히 1999년 <허준>으로 다시 사극을 시작할 때 기존의 것과는 달리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사실이다. 예전 <조선왕조 오백년>을 할 때는 정통사극이라 역사적인 내용의 재현에 머물렀기 때문에 누가 하든 비슷한 연출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바꾼 것이 사극에 전혀 경험이 없는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준>의 최완규 작가,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 <이산>, <동의>, <마의>의 김이영 작가와 작업을 하게 됐다. 작가가 바뀌면서도 색깔이 비슷하게 나온 이유는 이들 작가들이 사극 경험이 없기 때문에 거의 전적으로 내게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아예 사극은 생각하지 말고 현대극처럼 이야기와 대사를 써오라고 한 적도 있다. 그걸 사극 톤으로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니까. 중요한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의 사극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극의 의상도 과거에는 거의 무채색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다양한 색상의 의상으로 바꾼 것이나 또 과거에는 국악과 클래식에 머물러 있던 OST에 뉴에이지를 쓴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새로운 색깔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고집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 이병훈 PD, 역사를 버렸다?

과거 <조선왕조 오백년> 같은 정통사극을 연출했던 이병훈 PD가 최근 들어서는 역사 고증에 무관심해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퓨전사극 속에서도 어떤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왜곡을 극구 피하려 노력해왔던 이병훈 PD가 달라졌다는 얘기. 과연 사실일까.

 

“사실 그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동이>를 할 때 그런 점 때문에 작가와 많이 부딪치기도 했다. 작가 입장에서는 극적인 장면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허구는 끼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는 그래도 역사와는 완전 다른 이야기기 때문에 빼야한다고 하고... 결국 내가 졌지만 그렇게 허구로 극화된 장면에서 최고 시청률이 나왔다. 사극은 이제 확실히 역사보다는 상상력쪽으로 많이 기울어졌다. 이 흐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부끄럽기도 하다. 어디 가서 이제 역사 고증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으니.

 

물론 이렇게 해서 이야기가 다채로워진 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본래 사극이 갖고 있던 독특한 색깔이 사라지는 건 안타깝다. 대사에 있어서도 고어체가 갖고 있는 문화적이고 문학적인 예법이 있다. 사극의 대사는 그 시대의 고유한 맛과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것을 마음대로 깨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 절충안으로 생각하는 것은 궁중 같은 곳에서는 고어체를 주로 사용하고 민초들이 사는 사가에서는 필요하다면 현대어를 쓰는 식이다. 역사를 벗어난 상상력을 대중들이 더 요구하는 면을 버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 자체에 대한 고민을 버린 것은 아니다.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 후기>

무려 12년 간 7개의 사극이다. 그것도 최소 50부작에서 길게는 77부작까지. 거의 숨 쉴 틈 없이 사극을 만들어온 이병훈 PD에 생기는 피로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네 사극의 한 분기점으로서 이병훈 PD가 확실한 획을 그어놓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사극이 어떠했을까를 떠올려보라. 아마도 여전히 역사의 틀에 붙박혀 무채색의 정통사극을 무한반복하고 있었을 지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너무 멀지 않은 미래에 이병훈 PD의 새로운 작품, 그가 말하는 ‘획기적인 작품’을 기대한다.

<장옥정>, <구가의 서>, 사극의 선을 넘다

 

‘이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으나 등장인물과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픽션화 된 부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런 문구와 함께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는 조선시대에는 있었을 법 하지 않은 공간에서 시작한다. 지금으로 치면 청담동 의상실 정도 될까. 나무를 깎아 만든 마네킹에 입혀진 색색의 한복과 장신구를 꼼꼼히 살피는 장옥정(김태희)은 누가 봐도 조선판 패션 디자이너다. 그 곳으로 훗날 장옥정과 라이벌이 될, 미래의 인현왕후 민씨(홍수현)와 최무수리(한승연)가 들어온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사진출처:SBS)

이 곳이 이 사극의 첫 번째 시퀀스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 공간을 빌어 장차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옷들이 너무 화려하다는 민씨의 말에 장옥정은 “나비를 부르는 꽃들의 유혹”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러자 민씨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지 어찌 꽃을 유혹”하냐고 되묻는다. 장옥정은 “그건 비유일 뿐이고 사내에게 사랑받는 옷을 만들고자 함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시퀀스는 훗날의 인현왕후와 장옥정의 성격을 설명하는 것이다.

 

민씨의 이어지는 이야기는 앞으로 전개될 사극의 성격까지 보여준다. “경박해. 난 그런 거 필요 없네. 내가 필요한 옷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양의 무취 같은 색감이야. 그래서 늘 한결같고 근엄해 보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그것이 왕후의 덕목이니까. 자네 옷은 아름답지만 내가 원하는 전통이 느껴지지 않아.” 민씨가 가진 고상한 취향을 말해주는 대사 같지만 여기에는 앞으로 장옥정을 따라갈 이 사극이 품위나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심지어 유혹적이고 경박해 보일 지라도 속내를 과감히 드러내는 그런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는 암시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극에 대한 도발이면서 역사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이미 수없이 역사에서 악녀로 다뤄졌던 장옥정을 거꾸로 뒤집는 이야기. 그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장옥정은 기생들을 모델로 세우고 마님들을 부용정에 초대해 조선시대판 패션쇼를 벌인다. 한복은 색색으로 반짝거리고 그 옷을 입은 기생들은 사뿐사뿐 런웨이를 걷는다. 뒤에서는 패션디자이너 선생이 된 장옥정이 모델들의 옷을 일일이 점검하고 감독한다. 사극으로서는 파격적인 연출이다. 화려하고 유혹적인 장면들이지만 역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이거 사극이 맞아 하고 물을 정도로 너무 과감한 건 아닌가 하는 아슬아슬함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의상실에 패션디자이너에 패션쇼까지. 현대를 사극으로 옮긴 듯한 장면들이다.

 

<장옥정>과 동시에 시작하는 MBC의 <구가의 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사실 <구가의 서>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사극이라는 범주에 넣는다는 것은 애매하다. 이것은 차라리 과거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라고 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역사적 배경 자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 드라마의 공간 또한 지극히 판타지적이다. ‘그곳은 기괴하고 감히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험한 산세. 태곳적 산을 지키는 영물들만이 때때로 출몰한다는 그 곳. 이름 하여 달빛 정원.’ 이 드라마는 지리산의 어딘가에 있다는 이 달빛 정원의 수호신인 구월령(최진혁)이 억울하게 역모로 폐가하고 관비로 내쳐진 윤서화(이연희)를 사모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역사적인 사건과 연루된 이야기라기보다는 구미호라는 전설에 기댄 사랑과 복수의 이야기가 <구가의 서>가 다루는 것이다. 물론 옛 말투를 흉내 내고는 있지만 사실상 현대어를 쓴다고 해도 그다지 이물감이 없을 법한 설정이다. 사극이 <조선왕조 오백년>같은 정사에서 <허준> 같은 퓨전사극으로 이어지는 한 줄기의 흐름과, <전설의 고향>류의 야사와 전설에서 <쾌도 홍길동>이나 <일지매>를 거쳐 <아랑사또전>에 이르는 일련의 옛이야기의 흐름으로 나눠져 왔다면 <구가의 서>는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다.

 

<장옥정>이 역사에 기록된 시각을 뒤틀어 장옥정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낸다면, <구가의 서>는 아예 역사 바깥으로 나가 마음껏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선다. 이것은 사극의 외연이 확장된 것일까 아니면 현대극이 사극을 침식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최근 사극들은 확실히 화려해졌고 더 풍부한 이야기들을 담게 되었다. 하지만 역사와는 점점 더 결별을 고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시점에서 역사왜곡이라는 말은 이제 구태의연한 낱말처럼 들린다. 이것은 최근 들어 왜곡의 문제가 아니라 사극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사극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를 투영하는 그릇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의 변형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일 수밖에 없을 게다. 이제 중요해진 것은 역사와 맞냐 맞지 않냐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나 연출이 얼마나 완성도가 있고 극적인 개연성이 있느냐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로 남는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과거에 사극이라고 하면 우리가 느끼던 그 독특한 분위기와 아우라를 이제는 점점 느끼기 어려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민씨가 말하듯 이제 “무양의 무취 같은” 그런 사극은 존립 자체가 어려워졌다. 그래도 “늘 한결같고 근엄해 보이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그런 사극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나쁜 남자'의 김남길, '동이'의 한효주

사극과 현대극의 연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극을 연기하던 배우가 사극 속으로 들어갔을 때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반대로 사극 속에서 강력한 캐릭터 이미지를 만들어낸 배우가 현대극으로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부담감이 무색할 정도로 자연스런 변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찬란한 유산'에서 사극 '동이'로 간 한효주와 '선덕여왕'에서 '나쁜 남자'로 온 김남길이 그렇다. 어떻게 그들은 현대극과 사극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일까.

먼저 캐릭터를 들여다봐야 그 해답을 알 수 있다. '선덕여왕'의 비밀병기로 등장한 비담이란 캐릭터는 사극 속이지만 지극히 현대적인 캐릭터다. 그는 '선덕여왕' 속 캐릭터들이 하는 것처럼 옛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 캐릭터는 '선덕여왕'이라는 신라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툭 떨어진 현대인처럼 보인다. 이 지극히 현대적인 일상어투를 사용하는 비담은 심지어 공주(장차 여왕이 될) 앞에서도 반말을 한다.

그저 한없이 착하기보다는 욕망에 충실하며 때로는 지독히도 상대방을 아프게도 만드는 이 캐릭터가 갑자기 이 사극이라는 공간 속에 들어왔을 때 대중들이 열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극이라면 갖게 되는 그 형식적인 무게를 가볍게 깨버리는 그 파격, 그리고 그 파격 속에 자리한 현대적인 쿨한 감성이 버무려지는 순간, 그는 단번에 이 사극 속 모든 인물들과 대비되는 강력한 존재감의 캐릭터가 된다. '선덕여왕'의 후반부로 가면서 비담이라는 캐릭터가 조금씩 존재감을 상실한 것은 그가 악역으로 변신해서가 아니라, 차츰 사극 속의 인물로 변해가며 그 차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연기자 김남길은 비담이라는 캐릭터 그 자체의 아우라를 그대로 갖게 되었다. 그의 연기자로서의 이미지가 비담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은 그만큼 이 캐릭터가 그에게 부여한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한 '나쁜 남자'. 심건욱은 비담이란 캐릭터의 현대적인 버전처럼 보인다. 어찌 보면 '나쁜 남자'라는 드라마는 저 비담이란 캐릭터의 아우라를 이미지로 보유한 김남길을 위한 드라마처럼 보인다.

시니컬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속을 시원하게 하는 독한 어투나, 독해보이면서도 슬픈 눈은 이 드라마의 주제와도 그대로 닿아있을 정도다. '나쁜 남자'는 속물로 가득한 세상에 슬픈 눈으로 침을 뱉는 남자의 이야기다. 혹자들은 같은 캐릭터의 반복으로 김남길의 이미지 소비를 빠르게 하는 드라마라고 걱정을 했지만, 실제는 상황이 다르다. 김남길은 사극 밖으로 빠져나와, 현대극 속에서도 비담이 가졌던 그 아우라의 영역을 오히려 공고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술한 대로 비담이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드는 캐릭터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한편 '찬란한 유산'의 은성이란 캐릭터는 현대극이지만 지극히 고전적인 캐릭터다. 착하고 맑고 씩씩하며 때론 지독한 상황에 빠져도 좌절하지 않는 전형적인 캐릭터. '찬란한 유산'에서 그녀가 돋보인 것은 그녀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심지어 악마적으로 보이는 현대적 욕망의 화신들과 그녀가 비교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욕망의 시대에 살아남은 지극히 선한 천연기념물처럼 반짝인다.

그런 그녀가 사극 속의 주인공 동이로 분하는 것에서, 어떤 변신의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담이란 현대적인 이미지가 현대극으로 와서 심건욱이란 캐릭터로 자연스러운 것처럼, 은성이란 고전적인 이미지는 사극 속 동이라는 캐릭터로 와서도 자연스럽다. 그녀는 여전히 밝고 맑고 그러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선한 캐릭터다. 게다가 '동이'라는 사극은 그 인물들의 대사가 이중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고어가 사용되지만 일상적인 자리에서는 현대어가 나온다. 이것은 깨방정 숙종(지진희)만이 아니라 동이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사극에서 온 남자, 사극으로 간 여자. 둘 다 새로운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작이 가진 캐릭터를 보다 공고히 하고 확장하는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다. 보통 똑같은 캐릭터가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 때 흔히 그 어색함이 느껴지기 마련이지만, 이 두 사람의 경우 그 이질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은 물론 사극과 현대극의 경계가 그만큼 얇아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들 배우들이 갖는 아우라가(옴므파탈의 절정을 보여주는 김남길과 인상녀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밝은 한효주) 꽤 크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방자전', 김대우식 유쾌하고 음란한 도발

'방자전'의 상상력은 음란하다. 아니 어쩌면 이건 전작 '음란서생'에서 이미 싹을 보였던 김대우 감독의 상상력인지도 모른다. '춘향전'을 뒤집는 이 이야기에서 춘향이는 더 이상 정절을 지킨 열녀가 아니고, 이몽룡은 사랑의 맹세를 지킨 의리의 사나이가 아니다. 변학도는 탐관오리의 표상이 아닌 다만 성적 취향이 변태적인 인물일 뿐이며, 물론 방자도 그저 몽룡과 춘향이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던 그 방자가 아니다.

성욕이나 성공 같은 욕망에 솔직하고 그것을 서로 이해할 정도로 쿨한 그들은 더 이상 조선시대의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현대인에 더 가깝다. 우리가 '방자전'의 등장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사극이라는 과거의 지대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현대어법은 미풍양속이란 이름 위에 존속하는 권위의 엉덩이를 쿡쿡 찌른다. 그러니 어찌 보면 '방자전'의 음란함은 지배계층의 눈에는 꽤나 위협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아무리 고전 중의 고전이고, 몇 년 마다 계속 반복되어 리메이크되는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21세기에 같은 정절의 이야기로서 '춘향전'을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는 바뀌었고 시선은 사극이 역사를 버릴 정도로 낮아졌다. 게다가 '춘향전'은 역사도 아닌 그저 허구적인 작품일 뿐이다. 따라서 '춘향전'에 내포된 기존 체제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방자전'에서 기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일 것이다.

그러니 '방자전'의 이야기는 철저히 현대적일 수밖에 없다. 몽룡이 춘향의 마음을 달뜨게 하기 위해 구사했다고 주장하는 '차게 굴기'는 '짐짓 일부러 쿨하게 구는' 현재의 연애법이고, 춘향이 몽룡의 마음을 동하게 하기 위해 보냈다는 '은꼴편(은근히 꼴리는 편지)'은 '은꼴사(은근히 꼴리는 사진)' 같은 현대적 은어의 패러디다. 등장인물들의 언어가 현대어법이어서인지 그 사고방식 또한 현대적이다. '방자전'에는 물론 몽룡과 방자 같은 계급이 존재하지만, 그 둘이 춘향을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는 시퀀스에서 볼 수 있듯이 그 계급이 주는 무게감은 미미하다. 어찌 보면 부모 잘 만난 몽룡과 그렇지 못한 방자를 보는 것만 같다.

'춘향전'이라는 미담의 탄생 뒤에 숨겨진 적나라한 현실을 고발하는 '방자전'은 방자의 시각을 집어넣어 '춘향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김대우식의 도발적인 텍스트를 만들어냈다. '춘향전'이라는 고전을 훼손했다는 우려 섞인 비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방자전'을 고전과 비견할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방자전'은 더 이상 옛이야기가 아니라 작금의 세태를 드러내는 현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성공을 위해 사랑마저도 미담으로 조작하는 현실, 신분상승을 위해 기꺼이 순정을 포기하는 현실, 그럼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순정. 그래서 차분히 바라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현대적인 미담으로 보여지는 시선. '방자전'의 음란함은 그 과감한 노출수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음란함 그 자체보다는 그 엄밀한 신분구조 속에서도 음란한 상상을 하는 그 도발이 음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음란함이 통쾌함을 주는 것은 속물근성 가득한 현대적 인물들이 고전을 빌어 뒤틀어지는 풍자가 현대인들의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주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소재 클래식, 우리 식으로 풀어내

현대극이 사극을 넘었다. ‘주몽’이후, 현대극과의 경쟁에서 연전연승하던 사극불패 신화가 깨졌다. 그것도 고구려 사극의 연장선상에 있는 대작 ‘바람의 나라’와 퓨전사극의 새로운 역사를 열 ‘바람의 화원’과 동시에 맞붙은 결과이다.

물론 ‘바람의 화원’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베토벤 바이러스’의 완승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본래 초반부터 강세를 보이기 마련인 사극의 시청률 경향을 봤을 때, 이제 11%대를 넘기고 있는 ‘바람의 화원’이 17%대를 향해 가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상승곡선을 꺾기는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청률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현대극의 부활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로서 ‘베토벤 바이러스’의 가치를 논하기 위해 시청률을 거론했을 뿐이다. 작품의 완성도만을 두고봐도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드라마는 그동안 침체를 겪었던 현대극의 부활을 예고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삼각관계나 신데렐라 이야기, 늘 있던 재벌가 스토리 같은 옛 드라마의 흔적을 ‘베토벤 바이러스’에서는 거의 발견하기가 힘들다. 소재 자체가 드라마로서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클래식을 다루고 있고, 스토리 또한 지금껏 봐왔던 여느 드라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사실 이 작품은 ‘노다메 칸타빌레’라는 일본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만일 그 정도에 머물렀다면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는 독특한 ‘베토벤 바이러스’만의 클래식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가 있다. 클래식이라 하면 떠오르는 어딘지 상류층의 문화 같은 이미지의 편견을 이 드라마는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것은 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음대를 졸업했지만 남편과 자식 뒷바라지로 “다음에, 다음에”하다가 어느덧 아줌마가 되어버린 정희연(송옥숙). 누군가 “아줌마!”하고 부를 때 그녀는 “제 이름은 정희연이에요.”하고 말한다. 익명의 아줌마보다는 정희연이라는 첼리스트로서의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 간의 공백을 안고 나간 자리에서 악명 높은 지휘자 강마에(김명민)는 그녀를 “똥 덩어리”라 부르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똥 덩어리는 자신의 한계를 넘고 정희연이라는 자기 이름에 책임을 지는 연주를 해낸다. 똥 덩어리로 살아왔던 그녀가 사실은 자신이 금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게되는 순간이다.

오케스트라가 하고 싶어 모인 인물들은 대개가 정희연 같은 보통 사람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공무원으로 살아가며 귀가 먹기 전에 오케스트라를 한 번 더 하고 싶은 두루미(이지아), 서울시향을 정년퇴직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김갑용(이순재), 밤무대 연주자 배용기(박철민), 재능은 있어도 돈이 없어 음악공부를 못하는 하이든(쥬니) 등등. 강마에 식으로 표현한다면 클래식이라는 고급스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렇게 보통 사람의 눈높이로 인물들을 배치하고, 그들 앞에 우리가 흔히 클래식이라면 느끼는 위압적인 선입견으로서의 강마에를 세워놓은 이 드라마는 결국 이들이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그 길을 향해 달려간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의 잊고 있던 꿈을 이들 보통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다시 발견하는 공감의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클래식이라는 음악 자체가 갖는 새로운 감동의 오브제가 그 경험을 증폭시키고, 기성배우보다는 신인들(혹은 드라마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이 대거 포진된 신선한 연기자들의 연기가 드라마라는 악기를 신명나게 연주해준다. 무엇보다 김명민이라는 연기자의 힘은 다른 연기자들의 연기를 빨아들일 만큼 강력한 블랙홀로서 드라마 전체를 이끌어간다.

사실상 사극의 성장은 퓨전사극이라는 새로운 틀의 등장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지만, 동시에 현대극, 그 중에서도 트렌디 드라마의 몰락과도 연관이 있다. 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는 현대극이 늘 받아왔던 이 선입견, 즉 트렌디의 그림자를 거의 벗겨내고 있다. 작년 현대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이어 ‘베토벤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현대극의 지평을 넓혀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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