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굉장한 액션도 없는데 뭐 이리 쫄깃하지

이렇게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주인공이 있을까.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그 감정의 깊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는 인물이다. 그렇게 된 건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게 되면서 갖게 된 후유증 때문이다. 완전히 무감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만큼 감정을 깊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래서 이 인물은 그와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들과 마치 감정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에서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그 험난한 길 위에서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인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때때로 호감을 드러내도 그는 무감한 얼굴이다. 그의 후배 검사로 들어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은수(신혜선)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제가 걱정되셨어요?”라고 물어도 이 철벽남은 그만 가라는 말만 남긴다. 

형사물이라고 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 생겨나는 멜로적 감성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드라마라는 세계는 우리네 삶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 남녀가 등장하면서 사랑이 빠진다는 건 전혀 리얼하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아예 설정부터 황시목을 무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세움으로써 멜로에 대해 철벽을 쳐 놓는다. 

<비밀의 숲>이 이렇게 무감한 검사를 세워놓은 뜻은 따로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비리와 비밀로 얼룩진 검찰 조직의 ‘사적 감정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그 비리들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함이다. ‘시목’이라는 이름이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첫 번째 나무’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무감한 검사는 검찰 조직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이자 진단 시약으로서 축조된 캐릭터다. 

유재명 검사장에게 스폰서가 연결해준 여자 가영(박유나)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서동재(이준혁) 검사를 끝까지 추적해 그 증거물을 숨기려는 현장을 덮치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토끼몰이’가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감한 얼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은 주변인물들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까지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그의 행동의 이유가 밝혀진다. 

이를 테면 영은수가 서동재의 방에 들어갔다 나와 들키고 추궁 당할 때 굳이 황시목이 나섰던 건 알고 보면 그녀에게 어떤 사적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서동재가 황시목 역시 그 휴대폰을 찾고 있다는 걸 알려줘,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증거물을 유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결국 황시목의 계산대로 서동재는 ‘토끼 몰이’를 당하고 결정적인 순간 현장에서 체포된다. 

<비밀의 숲>은 사실 드러난 장면들만 꺼내놓고 보면 그다지 대단한 액션 신이나 하다못해 도심 추격전 같은 것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스릴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쫄깃함이 느껴지는 건 비밀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감의 요인으로서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한다. 검찰 조직이라는 비밀의 숲에 대한 호기심만큼, 이를 파헤쳐나가는 황시목이라는 비밀스런 인물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감한 캐릭터로 세워놓고 멜로에 철벽을 쳐 놓자 거꾸로 이 인물과 관계를 맺는 한여진 같은 인물과의 감정 교류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의외로 설렘을 준다는 사실이다. 황시목이 순간 화를 내는 모습을 한여진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 주머니에 넣어주며 “화를 냈다”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그 그림을 집에서 펴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 같은 것에서는 그 철벽 사이에 조금씩 어떤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라는 무정한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색깔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비리로 얼룩진 검찰이라는 숲을 수사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생겨나는 멜로적 감정에도 효과적이다. 이토록 무정한 캐릭터의 남자주인공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서 더더욱 빠져드는 인물이 바로 황시목이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을 덧붙인 까닭

 

즉석사진도 경찰과 응급환자들을 위한 비상출동 시간도 세계 어느 곳이든 3분이다. 왜냐하면 3분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기적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3분력>의 저자인 타카이 노부오의 문구는 왜 OCN <보이스>에 들어가게 된 걸까. 마치 tvN <시그널>을 연상시키는 형사물의 색채를 깔고 들어온 <보이스>는 거기에 골든타임이라는 콘셉트를 장착했다.

 

'보이스(사진출처:OCN)'

<시그널>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라는 판타지를 활용해서까지 미제사건을 해결하려는 그 간절함을 형사물에 담아냈다면, <보이스>는 누군가에게는 생과 사를 오가는 몇 분이 될 수 있는 사건 후 몇 분 간의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을 형사물에 녹여낸다. 그 시간은 단지 몇 분에서 몇 십 분에 불과할 수 있지만 그 시간에 대한 몰입이 그 어떤 작품들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건 골든타임이라는 장치를 달았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112 콜센터에 피해자의 전화가 울린다. 그 전화 저편에서는 살려주세요라는 피해자의 간절한 목소리가 울려 펴지고 강권주(이하나) 센터장은 피해자와 지속적으로 통화하며 그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불의의 사고로 눈을 다친 후 남다른 청각을 소유하게 된 그녀는 작은 소리까지도 듣고는 피해자의 상황들을 추리해낸다. 그리고 그녀의 지시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무진혁(장혁)은 온 몸으로 부딪쳐 골든타임에 몰려 있는 피해자를 가해자들로부터 구해낸다.

 

물론 우리가 흔히 많이 봐왔던 연쇄살인범들이 등장하는 스릴러물의 장면들처럼 보이지만 <보이스>는 여기에 현실적 공감대들을 더 얹어 놓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적인 트라우마가 되어 있는 골든타임에 대한 절박함이 그것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살려주세요라는 말은 그래서 더 절절하게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몰입시킨다. 어떻게든 그 절박한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고 그들을 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얹어지면서 <보이스>는 흔한 스릴러물 이상의 미친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이 일련의 골든타임을 요구하는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강권주와 무진혁이 모두 과거의 트라우마로 엮여 있는 이야기 구조는 현실에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시청자들을 심적 공감대로 연결시켜 놓았다. 3년 전 무진혁의 아내가 무참하게 살해당했고 마침 당시 콜센터에서 일하던 강권주는 검찰 측이 내놓은 범인이 목소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진범이 아니라는 증언을 내놨다. 결국 당시의 진범은 따로 있을 것이지만 이 사건으로 무진혁은 강권주를 오해하게 된다.

 

결국 이 오해가 서서히 깨지고 강권주의 진심을 알게 되는 건 이들이 함께 골든타임을 요하는 많은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형사물이 갖고 있는 편편이 끊어질 수밖에 없는 여러 사건들의 이야기를 또 통합적으로 이어가는 힘이 된다. 매회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걸 해결해가는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등장하지만, 그건 결국 강권주와 무진혁이 연관된 사건을 해결하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큰 이야기 틀 속에 담기게 된다.

 

형사물이 골든타임 설정을 만나면서 한 시간을 훌쩍 넘기는 이야기는 실로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그것이 마치 진짜 골든타임(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리는)처럼 다가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물론 <보이스>는 거의 공포물에 가깝게 극악무도한 범인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아이가 칼에 찔려 범인으로부터 도망치려 안간힘을 쓰는 자극적인 장면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골든타임에 대한 공감대는 이런 과한 자극들을 자극으로만 그치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된다.

 

무엇보다 침착하고 냉철하게 소리들을 분석해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강권주 역할을 연기하는 이하나의 연기변신이 흥미롭다. 지금껏 조금은 풀어지거나 가벼운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그녀는 이번 역할에서는 훨씬 무게감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추론해가는 그 내면의 목소리들이 사건과 중첩되며 만들어내는 긴박감은 <보이스>라는 형사물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준다.

 

<보이스>가 형사물에 골든타임이라는 설정을 덧붙인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골든타임에 목말라 하는가를 이 드라마는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살려달라는 목소리에 콘트롤타워는 얼마나 빨리 침착하게 대응했던가. 콘트롤타워 부재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래서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결핍을 채워줄 판타지에 대한 욕망. <보이스>는 이 정서들을 건드림으로써 우리의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형사물에는 PPL이 어려워? <미세스캅2>의 묘수

 

못해요. 아니 안 해요. 내가 옷을 훔쳐 입었어? 아님 화장하고 나와서 술이라도 팔았대? 구두소리 듣기 싫으면 카펫이라도 깔면 될 거 아냐. 아니 내가 내 돈 주고 산 걸 왜 못 신어야 되는데요? 그리고 범인 잡았으니까 약속하신대로 나한테 사과하시고 비싼 백이나 사줘요.”

 


'미세스캅2(사진출처:SBS)'

SBS 주말드라마 <미세스캅2>에서 강력1팀 팀장인 고윤정(김성령)은 박종호 과장(김민종)이 그녀에게 진한 향수에 과한 화장 그리고 하이힐을 신고 다니지 말라고 하자 이렇게 쏘아댄다. 사실 형사물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그런 캐릭터는 아니다. 화장이야 그렇다 치고 용의자를 추격하기도 해야 하는 형사에게 하이힐이라니.

 

게다가 범인을 잡았다고 이 여형사는 과장에게 포상으로 백을 요구한다. 그만큼 허물없는 사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 역시 현실적인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고윤정이라는 가상의 캐릭터가 던지는 이 당당한(?) 요구는 의외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것이 비현실적인 건 사실이지만 형사라고 해서 남성성을 강요하는 듯한 그 현실에 당당히 맞서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 역시 늘 하이힐을 신고 다니지는 않는다. 범인을 추적해야할 상황이 되면 그녀는 자신의 책상 뒤편에 놓여진 서랍에서 운동화를 꺼내 갈아 신는다. 그러니 그 때 그 때 따라 맞는 신발을 신는 셈이고 그래서 형사라고 반드시 하이힐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형사는 포상으로 늘 돈을 받아 회식을 하란 법은 어디에 있나. 고윤정이라는 여형사 캐릭터는 기존의 상식이라고 알려져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대놓고 부정하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돈 많고 잘생긴 남자 좋아하구요. 예쁘고 맛있는 거 좋아하구요. 비싸고 폼 나는 거 좋아합니다.”라고 주장하는 그녀는 여형사라도 다른 여성들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이 모습은 <미세스캅> 1탄에서 김희애가 했던 최영진이라는 여형사와는 사뭇 다르다. 어찌 보면 최영진은 미세스캅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성보다는 남성들의 모습을 흉내 내는 듯한 인물이었다. 고윤정이라는 캐릭터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그 여성성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고윤정이라는 캐릭터의 당당함에서 느껴지는 또 다른 면은 지상파의 고심이다. <시그널> 같은 장르물을 하고 싶지만 알다시피 형사물은 PPL이 어렵다는 현실이 놓여있다. 그래서 제작하기가 쉽지 않은 것. 하지만 <미세스캅>은 어째서 시즌2까지 만들어진 걸까. 고윤정이라는 캐릭터는 흥미롭게도 여형사이면서도 PPL이 가능한 캐릭터다. 남다른 패션을 추구하고 어떨 때는 푼수기가 넘치는 일상의 아줌마 캐릭터를 갖고 있어 시즌1의 최영진 같은 본격 형사물의 캐릭터와 달리 PPL의 노출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박종호 과장은 어쩔 수 없이 고윤정 팀장의 요구대로 백을 사러 백화점에 오고 그 김에 신발을 사주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가 건네주는 백과 신발을 받는 고윤정 팀장의 은근 행복한 표정이 담겨진다. 실로 기가 막힌 캐릭터가 아닌가. 사실 영 어울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런 장면들이 가능해진 건 푼수 아줌마 여형사라는 고윤정 캐릭터가 있어서다. 형사물이면서도 현실적인 PPL을 담을 수 있는 캐릭터. 지상파의 고심이 탄생시킨 묘수가 아닐 수 없다

<시그널>은 왜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을까

 

갑자기 지지직대며 울려대는 무전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무전기 소리에 이제 박해영(이제훈)도 이재한(조진웅)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민감해져 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는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 넘나들며 잊혀졌던 과거의 사건을 들춰내거나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예고한다. tvN 금토드라마 <시그널>은 그렇게 무전기라는 판타지 장치를 이용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 붙였다.

 


'시그널(사진출처:tvN)'

아무 생각 없이 그 무전기로 경기남부연쇄살인사건의 현풍역 기찻길에서 벌어질 살인을 예고하게 된 박해영 경위는 그 얘기를 듣고 현장에 간 이재한 순경의 개입에 의해 일어날 살인이 미수로 바뀌게 되는 걸 목도한다. 과거를 바꾸자 현재의 기록들이 모두 바뀌는 걸 확인하게 된 것. 박해영은 이 놀라운 변화를 보고는 1989년에 살아가고 있는 이재한에게 보내는 무전을 통해 그 끔찍했던 연쇄살인사건을 막아보려 한다.

 

다시 수사를 하면서 박해영은 연쇄살인사건이 한 버스노선을 따라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낸다. 그리고 그 날 현풍역 기찻길에서 도주한 범인인 이전 범행과는 달리 주거지 근처에서 살인을 벌이는 등 폭주하고 있는 걸 확인한다. 범인의 목격자인 버스에 탔던 승객들을 하나하나 죽이고 있었던 것. 하지만 당시의 목격자를 추적하다가 박해영은 당시 연쇄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피해자를 발견하고 자책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판타지를 담고 있지만 <시그널>의 이야기가 전하는 현실적인 함의는 놀랍다. 즉 살인사건을 막아내자 살인이 미수로 바뀌는 장면이 고스란히 전하는, ‘과거가 변하면 현재도 변한다는 명제가 그렇고, 26년 만에 다시 나타난 동일 수법의 살인이 전하는 기억에 사라졌어도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경고가 그렇다. 무전기의 지직 대는 소리가 그저 귓가에 울리는 소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망각의 저편으로 던져놓았던 것들을 긁어서 다시 깨워내는 소리로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시그널>의 이야기는 그래서 그저 판타지가 섞여있는 형사물 정도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가 되고 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물론이고,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가까이는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까지 무수한 사건 사고들로 점철되어 있는 게 우리 사회의 맨얼굴이다. 당시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목 놓아 외치며 한 목소리를 내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누구도 관심을 보내지 않고 결국은 기억에서 조금씩 사라져간다. 제대로 된 해결도 없고 사후대책도 나오지 않았지만 망각은 그것을 애초에 없던 일처럼 만들어버린다.

 

<시그널>의 무전은 그 망각을 파고들어오는 휘발된 과거의 경고가 아닐 수 없다. 그 사건은 기억 속에서 묻혀 졌을 뿐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소름끼치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전하고 있고, 과거의 벌어진 사건들이 결국은 현재를 만든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고 있던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평범한 판타지 형사물로 보기에는 그 깊은 함의와 신랄함이 묻어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시그널>이 던지는 무전은 그래서 저들 드라마 속 형사들만이 아니라 과거를 기억 속에서 휘발시켜온 우리들에게도 날아오고 있다

<냄새를 보는 소녀>가 남궁민을 활용하는 방식

 

압도적인 존재감이다.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쇄살인마 권재희(남궁민)라는 캐릭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 드라마는 지리멸렬해졌을 지도 모른다. 멜로와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와 형사물이 공존하는 이 드라마는 그 긴장과 이완이 적절하게 균형을 맞출 때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냄새를 보는 능력을 가진 소녀 오초림(신세경)과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 최무각(박유천)의 알콩달콩한 멜로에 자칫 긴장감은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일찌감치 권재희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밝혀놓은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의 주도면밀함을 알리바이를 꾸미는 과정을 세세히 보여줌으로써 그의 존재감을 세웠다. 철두철미하고 사소한 것까지 놓치지 않으며 대단히 영리한 두뇌를 가진 연쇄살인마.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것을 드러내자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의 위협을 받는 오초림이나 최무각 또는 오초림의 아버지인 오재표(정인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됐다.

 

최근 몇 회 동안 드라마의 엔딩에 권재희를 세워놓은 건 그런 점에서 확실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가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채고 마치 어떻게 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엔딩 크레딧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음 회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기 때문이다.

 

피도 눈물도 없이 사람 하나는 장난처럼 죽일 수 있는 연쇄살인마이면서도 권재희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갖고 있다는 설정은 흥미롭다. 그런 단점을 부여함으로서 극에 긴장감을 더욱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인식장애 때문에 오초림의 존재를 알아보기 위해 그녀의 사진을 훔쳐 뒷조사를 하려는 권재희와, 그 사진을 바꿔 그가 영원히 오초림을 알아볼 수 없게 하려는 최무각과 형사들의 두뇌싸움은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권재희라는 극악의 캐릭터를 제대로 세워놓음으로써 드라마가 아주 작은 단서나 물건 하나로도 쉽게 극적 긴장감이 가능하게 한다는 건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이다. 이제는 그가 누군가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짓기만 해도 섬뜩한 느낌을 주고, 보호해주고픈 오초림 같은 주인공 옆에 서기만 해도 끔찍해진다. 그는 특별히 끔찍한 행위를 드러내 보인 적이 별로 없다. 생각해보라. 권재희가 실제로 누군가를 죽이는 유혈이 낭자했던 장면이 있었던가를. 그런 구체적인 폭력의 장면 없이도 이런 효과를 낸다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거기에는 남궁민이라는 연기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친절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다가왔던 그는 어느 순간 연쇄살인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그 웃음을 섬뜩한 살기로 바꿔놓았다. 어딘지 무심한 듯한 두 눈이 무언가를 멍하게 응시할 때 시청자들은 이 인물이 어딘가 보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박유천과 신세경이 보여주는 스릴러와 멜로를 넘나드는 연기 역시 괄목할만한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남궁민이라는 존재감이 없었다면 이 연기들 역시 밋밋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궁민이라는 연기자 하나가 드라마에 만들어내는 힘은 그래서 절대적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를 계속 해서 궁금하게 하고 보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에게서 나온다.

 

모든 것들의 자연스러운 혼재, <냄새를>의 세계

 

달콤함과 살벌함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적어도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있어서만큼은 이 경계가 무너진다. 장르적 재미에 엄격하거나 그 틀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런 공감각적인 형사물에 적이 놀랐을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이토록 철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전 범죄를 실행해 옮기는 권재희(남궁민)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드라마는 일찍부터 그의 정체를 드러내놓고 그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은폐하는가를 자세히 보여준다.

 

'냄새를 보는 소녀(사진출처:SBS)'

권재희가 의사 천백경(송종호)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유기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다. 그는 부주방장과 비밀 레시피를 만드는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이용한다. 미리 레스토랑에 도착해 요리를 준비해 오븐에 넣고, 타이머를 이용해 자동으로 시간에 맞춰 켜지게 만들어놓은 후 그는 트레일러에 천백경의 차를 실어 낯선 곳에 버리고 온다. 예약된 음식이 조리되는 그 시간을 자신의 알리바이로 만든 것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은 세밀하게 시간별로 보여준다. 알리바이를 더 그럴 듯하게 하기 위해 대리기사를 이용해 레스토랑에 두고 간 차를 국도휴게소로 가져오게는 하는 시퀀스는 그래서 기막힌 알리바이의 장치가 된다. 그 차가 나가는 걸 본 부주방장에게 권재희는 전화로 집에 향신료를 가지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대리기사가 국도휴게소로 가져온 차를 타고 레스토랑으로 돌아온다. 굳이 천백경의 차를 옮기는데 트레일러를 이용하는 점이나, 트레일러의 번호판을 바꾸고, 대리기사에게 대포폰을 쓰는 등의 디테일들은 심지어 이 권재희의 치밀한 범죄행각을 흥미롭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런 살벌함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그 권재희에 의해 동생을 잃은 뒤 감각을 잃어버린 최무각(박유천)과 역시 그에게 부모를 잃은 뒤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갖게 된 오초림(신세경)의 달콤한 멜로가 또 한 축이기 때문이다. 순경이지만 동생의 복수를 위해 강력계의 일원으로 수사에 뛰어든 최무각을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돕는다. 그것은 냄새를 보는 초감각을 이용한 특별한 수사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과정이다.

 

오초림이 개구리 극단에서 개그맨을 꿈꾸는 소녀라는 점은 이 달콤 살벌한 수사멜로물(?)에 코믹한 설정까지 덧붙여 놓는다. 무뚝뚝한 최무각이 오초림과 콤비가 되어 개그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장르적인 틀로만 바라보면 낯설다. 심각한 살인사건의 수사를 하는 주인공이 갑자기 극단에서 개그 코너를 선보인다는 건 만일 그리스 시대 극작가들이 봤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을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장르는 혼재되고 왜 캐릭터는 장르 안에서 비현실적으로 일관성만을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시대다. 개구리 극단 대표 왕자방(정찬우)이 최무각에게 집 날려 먹을 때도 머리에 꽃 달고 개그했어... 개그맨은 그런 거야.”라고 얘기한 게 바로 진짜 현실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들으며 애도하면서도 개그를 보며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는 그런 존재들이 아닌가.

 

달콤함과 살벌함의 혼재. 범죄물과 멜로 게다가 코미디까지 뒤섞이는 장르의 경계 해체.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어우러지는 건 마치 무감각 소년이 초감각 소녀와 만나는 그 설정처럼 자연스럽다. 이것은 초감각 소녀 오초림이 바라보는 냄새의 세계와 같다. 거기에는 일관된 냄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취와 향기가 뒤섞여 있다. 그것을 볼 줄 아는 오초림의 시선은 그래서 이 수상한 드라마가 가진 장르 같은 경계를 바라보는 시선 그대로다.

 

그래서 이 <냄새를 보는 소녀>의 세계 안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섞여있는 현실의 실체들이 보여진다. 강력계 형사가 되고픈 순경, 개그우먼이 되고픈 초감각 소녀, 연쇄살인범 셰프.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왔던 직업군들의 일관성이 이들에게는 없다. 형사물과 범죄물이 갖고 있는 그 살벌함이 로맨틱 코미디의 달달함과 잘 어우러지는 세계. 너무 진지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가벼울 이유도 없는 그런 세계.

 

무각은 극단에서 보조스텝으로 전락해 상심하는 오초림에게 불족발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매운 불족발에 슬픔을 숨겨 오초림은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음식점을 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눈물 콧물 다 뺐더니 아주 시원하네.” 이것은 쿨 하고픈 현 세대들의 표현방식일 것이다. 그 시원함이 무엇 때문이든 그게 뭐가 중요하랴. <냄새를 보는 소녀>의 기묘한 재미가 달콤함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살벌함에서 기인한 것인지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인의뢰>, 범죄물에 담긴 사형제에 대한 질문

 

어느 날 갑자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마에 의해 희생되고 그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된다면 그 무너지는 억장과 고통을 과연 시간이 치유해줄 수 있을까. 심지어 그 살인마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세상을 비웃으며 버젓이 교도소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면? 아마도 당사자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을 것이지만,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살인의뢰>는 이 고통스러운 피해자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담은 영화다.

 

사진출처: 영화 <살인의뢰>

여기 출연한 김상경은 과거 <살인의 추억>의 그 형사를 떠올리게 하는 어딘지 탱자 탱자 형사 일을 하는 인물처럼 등장한다. 연쇄살인이 벌어지고 있지만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다만 살인범의 단서가 아니면 살인범 비슷하게 생긴 놈이라도 잡아오라고 쪼아대는 반장 때문에 등 떠밀려 현장을 하릴없이 도는 그런 인사다. 그런데 이런 한가로움은 순식간에 깨져버린다. 남 일이 내 일이 되는 순간이 그의 안온한 삶은 송두리째 깨져버린다.

 

살인을 즐기는 초유의 연쇄살인마의 잔인함과 그를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는 <살인의뢰>가 전형적인 범죄물이라는 걸 말해준다. 실제로 영화는 그 범죄물의 전개양상인 격투와 추격 같은 액션들이 전체 내용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살벌할 수밖에 없는 범죄물이 사형제에 대한 담론을 담아내고, 그간 상대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강도 높게 다루면서 이야기의 정서는 조금씩 변해간다.

 

처음에는 피와 살이 튀는 잔인한 살육과 보복의 이야기처럼 다가오지만 차츰 그 연쇄살인마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의 간절한 심정에 동조하게 되면서 영화는 먹먹하게 보는 이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그러면서 그 먹먹함은 자연스럽게 현재 우리네 사형제가 갖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 때문에 살인마들은 저렇게 보호받으며 살아가고 있는데(그것도 아주 잘) 피해자들은 이토록 깊은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피폐해져야만 하는 걸까.

 

우리네 영화판에서 살인마가 등장하는 범죄물들은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와 식상해진 게 사실이다. <살인의 추억>이 어떤 깊이 있는 울림을 가진 범죄물의 시작을 보여줬고 <추격자>가 장르적으로 성공한 이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싸이코패스들이 등장하는 범죄물들을 접했다. 그 범죄물들은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기도 했던 흉흉한 연쇄살인사건과 맞물려 대중들에게는 부채감과 분노를 풀어내는 일종의 대체물처럼 흥행을 가능하게 했다. <아저씨> 같은 영화는 범죄물에 이제 판타지적 요소를 덧붙여 현실에 부재한 정의를 대리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니 이렇게 많이 쏟아진 범죄물들의 리스트에 <살인의뢰>가 올라간다는 건 결코 좋은 시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의뢰>는 기존의 범죄물이 주는 분노와 카타르시스적인 효과 이상의 새로운 정서를 제공해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피가 튀는 끔찍한 범죄물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아려지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살인의뢰>는 범죄물 그 이상의 진지한 질문을 담아낸다. 사형제 폐지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인권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이야기는 사실 이 영화를 통해 들여다보면 전혀 피해자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해준다. 이런 문제제기를 어떤 주의 주장이 아니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정서적인 틀로 전해주고 있다는 것. 게다가 범죄물이 가진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는 건 이 영화가 가진 중요한 성취로 여겨진다.

 

<보고싶다>의 박유천, 갈수록 물건이 되어간다

 

이건 아역이 아니야. 여진구가 드라마에 나올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다. <해를 품은 달>에서 그가 사라진 연우를 향해 오열할 때 그 감정의 질감은 시청자들의 마음에도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보고싶다>의 한정우로 돌아온 여진구. 그 연기는 더 깊었다. 살인자의 딸이라는 주홍글씨로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가는 수연에게 “살인자 딸 이수연. 나랑 친구하자.”고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아마도 시청자들은 그 미소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또 다시는 그녀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납치범들에게 겁에 질려 그녀를 혼자 놔두고 도망쳤을 때, 그리고 그렇게 그녀가 영영 사라져 버렸을 때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보며 눈물을 훔치는 한정우(여진구)의 모습을 보며 똑같이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보고싶다’라고 담벼락에 쓰고는 사라져버린 수연을 가슴에서 지워버리지 못하는 한정우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가진 아픔과 그리움의 정조를 깔아주었다. 그 한정우를 연기해낸 여진구는 그런 존재감을 남겼다.

 

그러니 그 역할을 이어받는 박유천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아역의 지나친 존재감은 성인역으로의 변신에 때로는 장애물이 되기도 하니까. 게다가 <보고싶다>는 어린 한정우가 가진 그 그리움과 순수에게 기인하는 아픔이 궁극적인 주제가 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순수한 아이들의 세계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어른들의 세계의 대결을 그린다. 김성호(전광렬)가 정우에게 자신의 꿈이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한정우의 시간은 14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진구의 아우라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유천으로 넘어오는 그 과정이 특별한 이물감을 느끼게 하지 않는 건 놀라운 일이다. 박유천은 이제 형사라는 어른의 겉옷을 입은 채 여전히 여진구가 보여줬던 그 어린 한정우의 순수한 아이 같은 그리움과 슬픔을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장르적으로는 형사물이 갖기 마련인 추적과 잠적의 이야기와, 숨겨져 있던 과거 사건의 실체를 풀어내는 추리와 스릴러의 이야기가 겹쳐져 있지만, 그 위에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은 한정우와 이수연의 세월을 뛰어넘는 가슴 절절한 멜로다. 따라서 한정우의 끈질긴 수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와 겹쳐진다. 따라서 이것은 순수를 잃어버린 세상(사건으로 점철된)을 향한 한 형사의 대결이면서 사랑이 된다.

 

<보고싶다>가 점점 더 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이 두 지점이 절묘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한정우의 사랑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거기서 아마도 멜로의 차원을 뛰어넘는, 차디찬 세상에 대한 대결의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옛 사랑이면서 어린 순수이면서 따뜻한 정이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 세상을 꿈꾸고 그것을 방해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부딪치며 달려 나가는 인물 한정우. 어린 시절의 강력한 트라우마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의 세계를 다시 복원해내는 그 역할을 박유천은 특유의 몰입으로 잘 소화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여진구가 만들어낸 그 강력한 아우라 속에서도 그 바톤을 이어받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은 박유천이라는 배우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점이다. 박유천, 이 친구 갈수록 물건이 되어간다.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강력반', 무슨 이유 있나

'강력반'(사진출처:KBS)

'싸인'의 성공에 이어 '강력반'이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것은 마치 형사물의 귀환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여겨졌다. 그만큼 멜로도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던 '싸인'의 성공이 가져온 형사물의 후광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는 딴판으로 '강력반'은 아무런 존재감 없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왔을까.

결과와 원인 모두 시청률이 말해주고 있다. '강력반'은 월화극 경쟁에서 늘 꼴찌였고 단 한 번도 두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타 경쟁작들 때문으로 보기도 어렵다. '짝패'는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15% 정도 시청률에 머물러 있고, '마이더스' 역시 최완규 작가에 김희애, 장혁 같은 호화 캐스팅에도 10% 초반을 유지하다가 최근 들어 겨우 15%에 근접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강력반'의 부진은 외적인 이유보다는 내적인 이유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다.

'강력반' 같은 형사물의 관건은 그 사건들이 얼마나 실감 있게 대중들에게 다가오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어떤 소재의 사건인가와 그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다. '강력반'은 과연 이 두 조건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을까. '강력반'은 형사물 드라마의 특징상 에피소드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소재를 보면 박세혁 형사의 개인사를 이용한 다이아몬드 절도사건, 프리마돈나 자리 때문에 벌어진 독극물 사건,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왕따와 연관된 살인사건, 조민주 기자의 아버지와 연관된 절도사건 등이다.

소재적으로만 봐도 그다지 주목을 끌만한 사건들이 아니다. 형사물의 장점은 그 무궁무진한 소재다. 세상에 사건은 넘쳐난다. 따라서 이들 사건의 소재들을 취사선별 하는 작업은 형사물의 성패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싸인'이 다뤘던 연예인 살인사건은 가수 고 김성재군의 의문사 사건을 떠올리게 했고, 자동차 연쇄살인사건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길거리에 벌어지는 묻지마 살인 사건은 잊을만하면 뉴스로 보도되곤 하는 묻지마 살인의 끔찍함을 연상케했고, 또 한 회사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은 이른바 매값 논란을 일으켰던 현실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강력반'이 다루는 사건들은 이러한 현실감보다는 어디선가 이미 콘텐츠를 통해 봤던 사건들이 대부분이다. 다이아몬드 절도 사건은 해외의 장르물에서 흔히 보던 것들이고, 발레 이야기나 고등학교 살인사건 이야기는 추리만화 등에서 봤음직한 내용들이다. 그만큼 참신성이 떨어지는 소재들인데다, 그 사건의 진행 역시 지나치게 상투적이다. 심지어 사건이 벌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충의 전말을 예측하게 되는 건, '강력반'이 가진 가장 큰 치명적인 약점이다. 예상 못하는 반전에 반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예측한 대로 굴러가는 추리물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사건의 흐름이 단순하다면 오히려 주인공 캐릭터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하지만 '강력반'은 캐릭터 역시 어떤 확실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하다. 박세혁은 사고로 아이를 잃었고 그것 때문에 형사가 됐다는 사전 캐릭터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거기서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머물러 있는 한계를 보인다. 조민주는 기자로서 형사와 함께 사건을 추적한다는 비현실성을 맹점으로 안고 있는데다가, 좀체 진지함을 잘 보이지 않아 자칫 가벼운 캐릭터로 오인될 가능성까지 갖고 있다. 물론 그녀가 아버지 때문에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것이 지금껏 구축된 그녀의 캐릭터를 바꿔주기에는 역부족이다. 즉 캐릭터는 일회적인 사건으로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반복과 일관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력반'이 '싸인'처럼 흥미진진해지지 못한 이유는 총체적이다. 스토리는 단조롭고, 캐릭터는 참신하지 못하며, 소재 역시 화제성이 떨어진다. '강력반' 같은 형사물들이 현실의 사건들을 드라마 소재로 삼을 때 현실은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왜 현실을 환기시키기보다는 장르의 틀에 박힌 이야기 속으로 '강력반'은 들어가게 된 걸까. 정말 제작진이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역량 부족이었던 걸까. 혹 그것도 아니라면 KBS라는 공영방송이 가진 어떤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딘지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느낌을 주는 '강력반'을 보며 느껴지는 의구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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