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숲’, 굉장한 액션도 없는데 뭐 이리 쫄깃하지

이렇게 무심하고 무정한 남자주인공이 있을까.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황시목(조승우)은 그 감정의 깊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는 인물이다. 그렇게 된 건 어린 시절 뇌수술을 받게 되면서 갖게 된 후유증 때문이다. 완전히 무감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만큼 감정을 깊이 느끼지 못하는 상태.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그래서 이 인물은 그와 관계를 맺게 되는 여성들과 마치 감정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 같은 거리감을 준다. 검찰이라는 거대한 ‘비밀의 숲’에서 비리를 파헤쳐나가는 그 험난한 길 위에서 그가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인물인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때때로 호감을 드러내도 그는 무감한 얼굴이다. 그의 후배 검사로 들어와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영은수(신혜선)가 그의 집까지 찾아와 자신을 도와준 것에 대해 “제가 걱정되셨어요?”라고 물어도 이 철벽남은 그만 가라는 말만 남긴다. 

형사물이라고 해도 남녀 사이의 관계에 있어 생겨나는 멜로적 감성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드라마라는 세계는 우리네 삶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 남녀가 등장하면서 사랑이 빠진다는 건 전혀 리얼하지 않은 것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아예 설정부터 황시목을 무감할 수밖에 없는 인물로 세움으로써 멜로에 대해 철벽을 쳐 놓는다. 

<비밀의 숲>이 이렇게 무감한 검사를 세워놓은 뜻은 따로 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황시목이라는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비리와 비밀로 얼룩진 검찰 조직의 ‘사적 감정과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그 비리들을 제대로 파헤치기 위함이다. ‘시목’이라는 이름이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첫 번째 나무’를 의미하는 것처럼, 이 무감한 검사는 검찰 조직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이자 진단 시약으로서 축조된 캐릭터다. 

유재명 검사장에게 스폰서가 연결해준 여자 가영(박유나)의 휴대폰을 갖고 있는 서동재(이준혁) 검사를 끝까지 추적해 그 증거물을 숨기려는 현장을 덮치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토끼몰이’가 그토록 흥미진진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이 황시목이라는 인물이 가진 무감한 얼굴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은 주변인물들은 물론이고 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까지도 그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그 결과가 나온 후에야 비로소 그의 행동의 이유가 밝혀진다. 

이를 테면 영은수가 서동재의 방에 들어갔다 나와 들키고 추궁 당할 때 굳이 황시목이 나섰던 건 알고 보면 그녀에게 어떤 사적 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건 서동재가 황시목 역시 그 휴대폰을 찾고 있다는 걸 알려줘, 그로 하여금 스스로 그 증거물을 유기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결국 황시목의 계산대로 서동재는 ‘토끼 몰이’를 당하고 결정적인 순간 현장에서 체포된다. 

<비밀의 숲>은 사실 드러난 장면들만 꺼내놓고 보면 그다지 대단한 액션 신이나 하다못해 도심 추격전 같은 것도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스릴러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쫄깃함이 느껴지는 건 비밀에 접근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몰입감의 요인으로서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가 한 몫을 차지한다. 검찰 조직이라는 비밀의 숲에 대한 호기심만큼, 이를 파헤쳐나가는 황시목이라는 비밀스런 인물에 대한 호기심도 크다는 것.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렇게 무감한 캐릭터로 세워놓고 멜로에 철벽을 쳐 놓자 거꾸로 이 인물과 관계를 맺는 한여진 같은 인물과의 감정 교류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의외로 설렘을 준다는 사실이다. 황시목이 순간 화를 내는 모습을 한여진 종이에 그림으로 그려 주머니에 넣어주며 “화를 냈다”고 좋아하는 장면이나, 그 그림을 집에서 펴보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이런 저런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 같은 것에서는 그 철벽 사이에 조금씩 어떤 균열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결과적으로 보면 <비밀의 숲>에서 황시목이라는 무정한 캐릭터는 작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색깔이기도 하다. 또 그것은 비리로 얼룩진 검찰이라는 숲을 수사해내기 위해서 필요한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생겨나는 멜로적 감정에도 효과적이다. 이토록 무정한 캐릭터의 남자주인공이 있었을까 싶지만, 그래서 더더욱 빠져드는 인물이 바로 황시목이다.

‘비밀의 숲’은 비밀의 늪, 한번 빠지면 나올 수 없네

끝없이 궁금하고 의심하게 하라. 아마도 tvN 주말드라마 <비밀의 숲>의 동력은 여기서 나오는 게 아닐까. <비밀의 숲>은 제목이 가진 뉘앙스처럼 끝없이 비밀로 가득한 숲을 헤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헤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 오랜만에 자발적으로 빠지고픈 그런 몰입의 느낌. <비밀의 숲>은 그래서 마치 ‘비밀의 늪’ 같다. 한 번도 안본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한 번 보고 계속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비밀의 숲(사진출처:tvN)'

스폰서의 죽음.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일 케이블 수리기사. 하지만 자신이 그 집에 갔을 때는 이미 그 스폰서가 죽어있었다고 항변하는 수리기사는, 집 앞에 세워져 있던 차의 블랙박스에 찍혀진 영상에 의해 그 증언이 거짓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 영상 속에는 수리기사가 마침 그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창가에 한 사내의 모습이 찍혀 있었던 것. 그래서 수리기사는 살인자로 감옥에 가게 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자신은 무죄이며 억울하다는 글을 남김으로써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여론이 생겨난다.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경찰 한여진(배두나)과 이 사건을 수사하다 그것이 검찰의 스폰서 비리와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차츰 그 ‘비밀의 숲’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것들이 의심스러워진다. 그 배후에는 서부지검 차장검사 이창준(유재명)과 그의 오른팔인 서동재(이준혁)가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만, 또한 신출내기 검사로만 알았던 영은수(신혜선)의 아버지가 전직 법무부장관이었다 비리 누명을 쓰고 물러난 영일재(이호재) 법무부 장관이었고 이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황시목은 이 모든 것이 영일재가 만든 완벽히 짜여진 시나리오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이창준 역시 이 사건의 배후에 그가 있다고 의심한다. 한편 이창준의 오른팔이었던 서동재는 자신이 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창준의 성 접대를 했던 업소 여인을 찾으려 하고, 황시목 역시 그녀를 쫓지만 결국 그녀는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비밀의 숲>은 그래서 결국 진실을 향해 다가가는 황시목과 한여진의 수사 과정이 이어지지만, 거기에 대해 어떤 실마리나 단서들을 속 시원해 내놓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진실과 연루된 인물들이 오히려 죽어나간다. 게다가 진실을 좇는 황시목은 과거 폭력행위가 드러나기도 하고 또 용의자 누명을 쓰기도 한다. 

그래서 이 <비밀의 숲>은 마치 미로 같다. 부감으로 내려다보면 그 숲이 지목하는 방향이나 그림을 볼 수 있지만, 그 안에 들어서면 나무들만 빽빽이 채워져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그 복잡한 수수께끼를 숲 바깥이 아니라 그 숲 안에서 풀어내는 일. 그것이 황시목이 걷는 그 길 하나하나에 시청자들이 집중하는 이유다. 

보통 이런 정도의 복잡함을 가진 수사물이 좋은 시청률을 가져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비밀의 숲>은 4% 대의 괜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시청자들이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만드는 독특한 상황전개와 그것에 몰입하게 만드는 각별한 연출력 덕분이다.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들조차 <비밀의 숲>은 집중하게 만드는 연출을 보여준다. 

그 연출은 시청자들 앞에 상황을 끝없이 던져 반전의 반전을 이어가며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상황들에도 카메라를 비춰 어떤 의구심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더 큰 몰입감을 주는 건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그 추리 과정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 냉철한 이성으로 똘똘 뭉쳐 있는 황시목의 시선으로 이 숲을 헤매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황시목이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을 갖고 태어나 뇌 절제 수술을 받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게 된 부분은 두 가지 차원에서 드라마에 잘 녹아든다. 그 하나는 검찰 내부에서 내부자로서 수사하는 인물로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수사를 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냉철함을 갖춰야한다는 개연성과 공감대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수사과정에서 이를 방해하기 위해 들어오는 갖가지 모략들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감정 자체에 둔감한 캐릭터가 필요했다는 점이다.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는 그래서 거기에 몰입하는 시청자들이 수사 과정에서 느껴질 힘겨움을 상쇄시켜주는 역할도 해준다. 

이처럼 냉정하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몰입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보통 “낚인다”고 하면 불쾌한 감정이 들어있기 마련이지만 <비밀의 숲>은 황시목이라는 무감한 캐릭터에 의해 약간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그 불쾌함을 상쇄시키고 대신 복잡한 퍼즐을 푸는 재미를 만들어낸다. 풀릴 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나가는 재미가 주는 일종의 ‘낚이는 즐거움’이라니.

흥행돌풍 ‘겟아웃’, 무엇이 국내 관객들의 발길을 이끌었나

사실 영화 <겟아웃>이 우리네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런 영화가 있다더라는 정도였지만 이렇다 할 홍보가 진행된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약 50억 정도가 들어간 해외영화이니 화려한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보면 저예산이라고 볼 수 있고, 그것도 공포 스릴러를 장르적 특징으로 갖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국내 흥행에는 이점이 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사진출처:영화 <겟 아웃>

하지만 막상 영화가 국내에 개봉하자 <겟아웃>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개봉 이틀만에 <불한당>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놀랍다”, “소름끼친다”는 반응들이 이어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여기에 이미 북미 지역에서 놀라운 반응을 얻고 있다는 소식과 비평 포털사이트인 로튼토마토 평점이 무려 99%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이 입소문에 기름을 끼얹었다. 무언가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충격적인 전개의 영화라는 것이 국내 관객들이 <겟아웃>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다. 

게다가 ‘미국판 <곡성>’이라는 표현은 국내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언가 끔찍한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럼에도 눈을 돌릴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낸 <곡성>과 비교되면서, <겟아웃>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졌다. <곡성>이 일종의 호기심과 궁금증이라는 미끼를 던져 관객들을 확 끌어당긴 것처럼 <겟아웃> 역시 막연히 그런 놀라움과 충격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감이 생긴 것. 

그렇다면 실제 <겟아웃>은 어떨까. <곡성>과 비교될만한 에너지를 가진 영화일까. 물론 <겟아웃>이 다루는 이야기의 공포는 미국의 인종차별주의를 연원으로 하고 있어 <곡성>이 갖고 있는 무속신앙적인 세계의 공포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외지인에 대해 느끼는 공포감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은 <곡성>과 <겟아웃>이 충분히 비교될만한 지점이다. 

워낙 충격적인 후반부의 전개는 사실상 스포일러가 영화 자체를 망가뜨릴 수 있어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겟아웃>의 이야기 전개 속에 등장하는 시각이 주는 공포감이나 그를 통해 미국 사회에 여전히 깔려 있는 인종차별적 시선들이 그 충격적인 후반부의 장면들 속에 하나하나 녹여져 있다는 사실은 이 영화가 얼마나 촘촘하고 치밀하게 이야기와 영상을 구성해냈는가를 잘 보여준다. 

사실 공포 스릴러의 하나로 봐도 충분히 전율이 느껴질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공포 속에 <겟아웃>은 겉으로는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괴물처럼 그 기저를 어슬렁거리는 타자에 대한 공격성이나 지배욕 같은 걸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흑인으로서 살아오며 제 의지로 움직일 수 없고 다만 그 끔찍한 일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그들이 그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릴러를 충분히 즐기고 나면 그 남는 메시지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아마도 인종차별이라는 소재는 국내 관객들에게 미국인들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면 우리들 역시 쉽게 영화 속 이야기에 몰입될 수 있다. <곡성>처럼 미끼를 던지는 영화지만, 역시 <곡성>처럼 기꺼이 그 미끼를 물고 싶은 영화, 바로 <겟아웃>이다.

‘사십춘기’, 배우로 볼 땐 잘 몰랐던 인간 권상우의 진면목

“그런데 이런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어?” 어디다 누구와 이야기해야할지 몰라 하던 권상우가 급기야 방법을 찾았다는 듯 촬영하는 VJ에게 대놓고 그렇게 묻는다. 그런 질문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게스트라고 떡 하니 섭외해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와 놓고는 막상 자신을 섭외한 정준하는 MBC <무한도전>을 찍으러 새벽 댓바람부터 서울행 비행기를 타고 떠나버렸다. 덩그라니 혼자 남아 있는 권상우는 졸지에 게스트에서 프로그램의 호스트가 된 상황이다. 아무런 계획도 정해진 게 없이. 

'사십춘기(사진출처:MBC)'

MBC <사십춘기>는 7주간의 정상화 기간에 들어간 <무한도전>의 빈자리로 들어왔지만 그렇게 일시적으로 때우고 사라지기에는 아까운 독특한 면이 있다. 무계획이야 <무한도전>도 자주 해왔던 일들이지만 <사십춘기>는 거기에 여행(그것도 미지의 여행)과 함께 가는 이들의 끈끈한 관계를 채워 넣었다. 물론 제목처럼 40대 중년이라는 연령대가 주는 연륜과 동시에 여전히 청춘이고픈 욕망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경계가 주는 묘미까지. 

느긋하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정준하와, 뭐든 “빨리 빨리”를 외치는 급한 성격의 권상우는 그 성격 그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일도 너무 다르다. 아침 일찍 일어난 권상우가 눈이 보고 싶다며 나가자고 보채는 와중에도 정준하는 침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억지로 억지로 정준하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눈밭에서 뛰어도 좋을 부츠를 사고 갖고 놀 눈썰매를 산 그들은 눈을 찾아 블라디보스토크 외곽으로 향하지만 막상 간 곳의 풍경은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거의 등산을 하다시피 올라가 겨우 찾아낸 곳에서 눈썰매를 타는 그들은 문득 깨닫는다. 거기가 러시아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동네 뒷산 같은 곳에 올라온 것 같은 느낌. 마치 영화 <천국보다 낯선>에서 주인공들이 그 먼 거리를 떠나와서는 별 다를 게 없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주는 느낌을 이들은 고스란히 전해준다. 어딘지 허탈하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눈썰매를 타는 중년들. 중년의 나이까지 왔지만 여전한 소년의 모습이 러시아까지 왔지만 동네 뒷산 같은 그 상황과 잘도 맞아 떨어진다. 

권상우는 이 프로그램으로 ‘미지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픈 욕망을 내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제주도까지 갔던 그들이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이국까지 결코 오지 않았을 게다. 그리고 칼바람이 부는 해안가에서 러시아 전통 사우나를 즐기며 눈밭에서 뒹굴지도 않았을 테고. 늘 성격이 맞지 않아 툭탁대는 그들이지만 막상 돌아올 시간이 되자 아쉬워하고, 그래서 정준하가 조심스럽게 자신이 서울에 갔다 올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에 퉁명스럽게 “올 때 팩 사와”라고 말해 이 여행이 계속되게 한 장본인도 권상우다. 

홀로 남겨진 권상우가 블라디보스토크 곳곳을 찾아다니며 인터넷 검색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에 실망하기도 하고, 의외로 길거리에 만난 러시아 사람들의 따뜻함에 기분 좋아하기도 하며, 풍광 좋은 곳에서 “준하는 돌아오는 거야”라며 드라마 속 대사를 외쳐보는 그런 장면들은 그렇게 많은 여행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았지만 그다지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이다. 혼자 여행을 하고, 시행착오로 이상한 숙소를 잡기도 하며 홀로 바비큐를 해먹는 쓸쓸함에 괜스레 찾아온 개에게 맛난 고기를 나눠주는 그런 장면들.

거기 묻어나는 쓸쓸함과 외로움과 더불어 여전히 소년처럼 미지의 것에 호기심을 보이는 권상우의 모습은 우리가 배우로서 작품을 통해 봐왔던 그에게서 좀체 발견하지 못했던 그의 진면목이다. 겉으론 퉁명스럽게 얘기해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 진심에는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푸근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대목에서는 더더욱. 

<사십춘기>는 목적 없이 떠나는 중년의 여행으로서 웬만한 틀어진 상황 속에서 당황하기보다는 능숙하게 대처하고, 때로는 그런 미지의 상황에 떨어진 걸 즐거워하고 신기해하는 중년이지만 청춘인 그들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권상우의 말대로 게스트라고 초대해놓고 버리고 가도 하루 정도의 고독과 자유 정도는 기꺼이 누리는 그 모습들은 여행 예능의 새로운 결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권상우의 몰랐던 매력이 이렇게 잘 드러난 프로그램이 있었던가.

<내부자들>, 더러워 보기 싫다면서도 기꺼이 보는 까닭

 

영화 <내부자들>6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로서 600만 관객 돌파란 기록은 놀라운 일이다. 이 흐름이라면 <아저씨(617)>, <킹스맨(612)>의 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사진출처: 영화 <내부자들>

<내부자들>이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가 된 것은 이 영화의 폭력성과 선정성이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그저 조폭들이 치고 박는 수준의 폭력성이 아니라 신체 일부를 절단하는 장면도 버젓이 나오고, 그저 베드신이 아니라 난잡하다 못해 더럽게까지 느껴지는 섹스 파티가 등장한다. 그러니 청소년 관람불가 딱지를 달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은 그래서 두 가지 반응을 보낸다. 너무 더러워 생각하기도 싫다는 반응이 그 첫 번째다. 폭력성이야 차치하고라도 나이 지긋한 재벌 총수와 언론인, 정치인, 법조인이 홀딱 벗고 나와 나체의 여성들의 시중을 받으며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정말 볼썽사납다. 성기로 맥주잔 위에 놓인 위스키 잔을 때려 폭탄주를 제조하는 장면은 여성 관객들이 본다면 대단한 혐오감을 줄만한 장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600만 관객을 돌파한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것은 이 영화의 두 번째 반응, 즉 폭로의 통쾌함에서 나온다. 이 영화는 거의 끝나기 직전까지도 너무도 단단해 결코 깨지지 않을 재계와 언론, 정계, 법조계의 카르텔을 보여준다. 그 카르텔은 물리적인 힘이면 힘, 정치력이면 정치력, 여론을 쥐고 흔드는 언론 권력, 그리고 불법조차 덮어버리는 사법의 부당한 권력까지 보는 이들이 절망적일 정도로 공고하다.

 

그래서 관객은 그 카르텔이 무너지는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보게 마련이지만 사실 그 결과는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건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나기 힘든 그 판타지적 결말이 아니라 그들의 더러움 자체를 폭로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내부자들>인 것은 그 권력의 내부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도대체 그 안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신문지상이나 뉴스를 통해 나오는 재벌총수나 언론인, 정치인, 검사의 모습은 단정하기 이를 데 없다. 물론 그 모습이 진짜인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자들>은 비리에 연루된 그들의 진면목에 천착한다. 그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추악한가를 폭로한다.

 

그래서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권력자들은 마치 괴물처럼 그려진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행동들을 하고 심지어 누군가를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벌이는 파티는 마치 악마들의 파티처럼 보인다. 물론 그 내부는 단단히 봉인되어 있는 것이지만 <내부자들>은 영화의 권리로서 그 내부를 들여다본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그 봉인된 내부가 외부에 폭로되는 그 자체에 어떤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혹 청소년 관람불가가 아니었다면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과한 폭력과 선정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 의미 자체도 퇴색되는 영화다. 그 폭력과 선정성이 내부의 더러움으로 그려지고 그 더러움이 외부에 폭로되는 순간. 그 때가 <내부자들>이 폭발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장영실쇼>, 과학과 상상력을 연결한 흥미로운 과학토크쇼

 

이제 3회를 했을 뿐이지만 KBS <장영실쇼>가 보여준 비전은 우리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었다. 비록 몇 평 남짓 되는 스튜디오에서 찍혀지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이지만 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이야기와 상상력은 전 세계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것이었다. 장영실이라는 명명이 지칭하는 것처럼 이 프로그램은 과학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과학을 뛰어넘어 예술과 종교, 철학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학문의 폭을 보여주었다.

 

'장영실쇼(사진출처:KBS)'

사실 3D프린터 하면 또 다른 프린터의 하나 정도로 여기고, 드론이라고 하면 가끔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송카메라로 등장하던 그것을 떠올리고, 사물인터넷이라고 하면 광고에서 봤던 저 스스로 켜지는 가로등 정도를 떠올리는 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장영실쇼>는 이러한 발명 혹은 발견이 가져올 거대한 세상의 변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3D프린터는 우리가 프린터하면 무언가를 출력하는 정도의 프린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니터로 상상했던 이미지들을 물질의 차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세상을 뜻하는 것이고, 드론은 그저 하늘에 띄우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늘이라는 공간에 열려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뜻하는 것이다. 사물인터넷 역시 마찬가지다. 사물인터넷은 그저 하나의 편의성을 얘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물과 사물이 이어지는 초연결사회가 가져올 대변혁을 뜻하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하면서 그 미디어의 개념을 TV나 라디오 같은 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전신주나 도로, 자동차 같은 거의 모든 사물로 확장시켜 바라봤던 것처럼, <장영실쇼>가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하나의 단초로서 바라본다. 이것은 기존의 과학프로그램들이 과학의 발견 그 자체에 더 집중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접근방식이다. 과학에 상상력을 덧붙이고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일은 과학의 편의성의 차원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방송 프로그램이 점점 예능화 되어가는 요즘, 그럴 듯한 과학프로그램 하나를 찾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연예인들이 나와 저들끼리의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토크쇼들은 대중들에게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 와중에 우리의 재미란 표피적인 것으로만 길들여진다. 하지만 재미에 어찌 감각적인 재미만 있을까. 거기에는 지적인 재미도 있고 상상력이 주는 재미도 있기 마련이다.

 

<장영실쇼>는 그 지적 상상력의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다. 조금 어렵게 생각했던 과학 지식이나 너무 단순하게 바라봤던 과학적 발견들을 한번쯤 더 들여다봄으로써 그것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이것은 어쩌면 국가경제의 미래와도 밀접한 일이 될 것이다. 과학적, 지적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는 이들에게 어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어찌 보면 <장영실쇼> 같은 프로그램이야말로 KBS라는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모두가 당장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 달려가는 와중에 정작 필요한 정보를 주는 교양 프로그램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형국이다. 의미 없는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토크쇼를 하느니 진지하면서도 흥미로운 지적 토크쇼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337)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126)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020,112
  • 323453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