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와’, 프랑스편 약해도 이런 호불호가 진짜

MBC 에브리원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랑스편은 시청률이 전편이 핀란드편보다 평균적으로 낮다. 핀란드편이 평균 4%대에서 최고 시청률 4.8%(닐슨 코리아)를 찍었던 반면, 프랑스편은 평균 3%대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이 수치도 그리 낮은 것은 아니지만 한참 상승세를 타던 것과 비교해보면 조금 주춤하는 느낌을 주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된 건 기존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프랑스편이 보여주고 있어서다. 가장 화제가 되었던 독일편이나 최고 시청률을 찍은 핀란드편이 그랬듯, 이 프로그램이 힘을 발휘하는 건 아무래도 한국문화를 경험하면서 느끼는 호감이나 이해 같은 걸 드러냈을 때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왔지만 그러한 공감대 속에서 소통하는 즐거움이 이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재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편은 인천공항에 도착해 보낸 첫 날부터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장면들을 보여줬다. 이를 테면 하필이면 처음으로 접하는 음식점에서 매운 걸 잘 못 먹는 그들이 떡볶이를 시키고 그걸 먹으며 너무나 괴로워하는 장면 같은 것이다. 또 프랑스 거리라고 알려진 서래마을에 갔지만 실상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빵집을 찾아 허기를 달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이튿날도 이들의 여행이 우리 문화와의 어떤 공감이나 소통을 드러내는 부분은 조금 약하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빵집에 가서 빵을 먹고 미술관에 가서 우리네 현대미술을 관람하고는 포털업체를 방문하고 놀이공원에 가는 그 과정들이 우리만의 문화체험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렇게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거나 개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여행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한국에 왔다고 무조건 우리 문화를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 경험에서 항상 좋은 반응만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시도는 해보지만 자신의 취향이 아니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고, 때로는 힘들기만 한 상황이 나오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셋째 날 이들을 초대한 로빈이 강화도로 가서 전등사 발우공양을 체험하게 하고, 외규장각을 찾아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우리네 문화재 이야기를 꺼내 놓거나, 또 식사를 하러 간 게요리 전문점에서 간장게장을 도저히 먹지 못해 포기하는 마르빈의 모습도 그래서 다른 외국친구들의 여행기에서는 보지 못한 새로움이 있었다. 

발우공양 때 단무지로 그릇을 닦아 그 물을 마시는 것에 어딘지 어려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그랬고, 외규장각에서 자신의 나라가 과거 제국주의 시절 벌였던 일들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조금은 불편함을 드러내는 장면도 그랬으며, 뭐든 주기만 하면 모두 엄지를 척 올리던 모습과는 달리 아무리 시도해도 도저히 못 먹겠다며 맨밥만 뜨는 모습도 그랬다.

물론 이들은 숙소로 돌아와 배달음식으로 파티(?)를 벌이며 한국의 배달문화에 놀라고, 그 음식들을 맛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 그들의 취향에 맞았다고 할 수는 없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이들이 우리의 문화를 마치 우리처럼 즐겨주고 공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그들과 우리는 다르고,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걸 확인하고 인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문화 체험을 소재로 삼는 프로그램이 가져야할 덕목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프랑스편이 조금 약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해도 그저 일방적인 호감만이 아닌 이러한 호불호야말로 진짜라는 걸 이 편이 보여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떻게 다 좋을 수가 있을까. 싫은 것도 있고 불편한 것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겪을 때 우리도 똑같이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니 어찌 보면 이번 프랑스편은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가 그저 달달한 공감과 소통의 사탕만을 주던 것에서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보여줌으로서 어떤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균형감각은 이 프로그램이 자기만족적인 도취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소중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사진:MBC에브리원)

<안투라지>,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tvN <안투라지>가 드디어 첫 회를 방영했다. 사실 방영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즉 미드 원작인 <안투라지>의 리메이크가 그 원작이 가진 높은 수위를 어떻게 우리 정서에 맞출 것인가 하는 점이 우려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은 시선을 잡아끌 기대요소로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첫 회는 어땠을까. 호불호가 갈리던 지점에서 보다는 불호가 더 많다.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됐을까.

 

'안투라지(사진출처:tvN)'

원작보다 자극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극적이다. 스타인 차영빈(서강준)을 중심으로 그의 사촌형인 차준(이광수)과 친구면서 매니저인 이호진(박정민) 그리고 거의 백수에 가깝게 영빈과 함께 다니며 노는 데만 혈안인 거북(이동휘)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이는 해프닝들 속에는 목욕탕 알몸 노출은 기본이고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여배우와 차안에서 벌이는 애정행각, 그리고 어딘지 은밀해 보이는 연예계 스타들의 관계들이 가감 없이 보여졌다.

 

게다가 연예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짜 연예인들의 화려한 카메오가 줄을 이었다. 하정우는 물론이고 박찬욱 감독과 배우 김태리, 마마무, 아이오아이 등등이 카메오 출연해 드라마를 빛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정작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고, 왜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설득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물론 첫 회에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영빈을 키워낸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김은갑(조진웅)과 친구인 영빈 사이에 끼어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린 호진의 상황이 그 첫 회의 이야기다. 결국 호진은 영빈에게 정식 계약을 요구했지만 영빈은 친구관계가 더 좋다며 거절했고, 결국 호진은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다시 영빈이 호진에게 와 정식계약을 맺자는 이야기를 건네며 변함없는 우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이들 4인방의 우정이 향후 어떤 힘을 발휘하며 그들 개개인을 성장시킬까 하는 기대감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연예계의 떡밥들, 이를테면 외부에서 보는 화려함 못지않게 어딘지 찌질하게도 보이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스타들을 폭로해내는(?) 장면들이 전면에 깔리게 되면서 이런 <안투라지>가 앞으로 해나갈 진짜 이야기들의 기대감은 상당 부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첫 회가 주는 느낌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왜 봐야겠는지는 모르겠는’, 그런 정도에 머물렀다.

 

연예계 이면의 이야기는 물론 대중들의 흥밋거리다. 그래서 그 많은 가십성 이야기들이 연예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걸 드라마로 본다는 건 다른 의미다. 연예계 이야기가 제 아무리 자극적이라고 해도, 드라마는 결국 그 드라마만의 본연의 스토리나 메시지가 담기지 않으면 굳이 채널을 고정시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현실의 이야기들이 더 드라마 같아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예계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뉴스를 통해 터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그걸 밀착해서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가상의 스토리일 수밖에 없는 그 특성 속에서 현실만큼 자극적일 수는 없다. 마침 터져버린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안들은 그 엄청난 일들이 문화계까지 뻗쳐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현실에 연예계의 가십성 이슈가 주목받기는 어렵다.

 

<안투라지>는 그 화려한 겉면을 떼어내고 네 사람의 우정이 만들어내는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를 빨리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물론 첫 회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갖가지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슈들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 초반 관심과 기대감을 확실히 심지 못한다는 건 그대로 묻혀버릴 위험을 예고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래서 왜 지금 시청자들이 그걸 봐야하는지를 설득해내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아수라>의 호와 불호를 나눈 것들

 

영화 <아수라>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안남시의 집들을 부감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 집들에는 안남시장 박성배(황정민)는 물러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카메라는 곧바로 이 안남시장 박성배의 가 되어 일하고 있는 형사 도경(정우성)으로 옮겨간다. 재개발, 시장, 비리형사, 조폭. 시작 부분의 몇 장면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어떤 것이 될 것이라는 걸 대부분 이야기해준다. 재개발을 하기 위해 조폭들과 비리형사들까지 싸그리 제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는 절대 악 박성배의 갖가지 비리들을 덥기 위해 도경은 손에 피를 묻힌다.

 

사진출처:영화<아수라>

그런데 그의 앞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박성배를 끌어내리려는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나타나면서 그는 박성배와 김차인 양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린다. 도경은 회복되기 어려운 병으로 병원생활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아내를 위해 박성배의 손을 잡고 있지만, 그의 비리를 꿰고 점점 압박해 들어오는 김차인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그가 시키는 일들을 한다. 결국 중간에 끼어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도경의 얼굴은 갈수록 망가져간다.

 

<아수라>가 보여주려는 건 그래서 명확하다. 시장도 깡패도 검사도 형사조차도 믿을 수 없는 아수라판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정치와 손을 대고 있는 시장과 검사의 권력 다툼 사이에 끼어 새우등이 터지는 도경의 현실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의 극화된 상징을 보여주는 것일 게다. 흔히들 말하는 하라는 민생은 안하고 쌈질들이나 하고 서민들만 죽어나가...”는 현실.

 

이처럼 <아수라>가 하려는 이야기는 분명하지만 영화는 스토리적인 개연성에 있어서는 많은 허점을 보인다. 즉 액션이 보여주는 막연한 현실 환기는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나 근거 같은 것들이 별로 제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성배는 왜 재개발을 하기 위해 그토록 극악한 짓을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고, 이는 또한 김차인이 그토록 박성배를 잡으려고 하는 이유 또한 구체적이지 않다. 그나마 구체성을 띤 인물은 도경이다.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아내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절실해진 캐릭터다.

 

이렇게 좀 더 확실하고 구체적인 개연성들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을 이 영화는 이러한 누아르가 가진 클리셰로 넘어가고 있다. 첫 장면에 등장한 재개발, 시장, 조폭, 형사 같은 누아르물이 으레 우리에게 전하는 클리셰들. 대신 영화는 그 클리셰들을 김성수 감독 특유의 피가 철철 흐르는 잔혹함과 동시에 미학적으로 느낄 수 있는 영상 연출을 통해 넘어서려 한다.

 

실제로 이번 <아수라>에서 김성수 감독이 보여준 액션 연출은 독보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추격신에서 카메라가 차에서 차로 넘나드는 장면은 지금껏 우리네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액션 연출이었다. 하지만 개연성이 잘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 겹쳐지는 과할 정도로 피가 튀는 살벌한 장면들은 영화에 빠져들게 하기 보다는 어떤 불편함을 만들어낸다.

 

그나마 이러한 빈약한 개연성을 온전히 채워주는 건 연기자들의 명연기다. 황정민, 정우성,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김원해... 한 명만 데리고도 티켓파워가 어마어마할 그들은 <아수라>에서 한 마디로 명불허전의 연기를 보여줬다. 보는 이들을 치가 떨리게 만드는 악역을 완성한 황정민, 어설픈 형사에서 점점 조폭의 잔인함에 물들어가는 과정을 제대로 연기한 주지훈, 황정민과 대응해 전혀 밀리지 않고 압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 곽도원이나 마치 마동석 같은 단단한 액션을 보여준 정만식, 그리고 이 영화의 작대기라는 캐릭터로 초반 강렬한 인상을 남긴 김원해가 그렇다. 물론 주인공인 정우성의 미친 듯한 신들린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즉 영화는 호불호의 요소들이 분명하다. 김성수 감독 특유의 누아르 연출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 끝점을 경험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피가 철철 흐르는 영화가 제 취향이 아닌 분들이라면 그 액션들이 너무 과하다 여겨질 수 있다. 영화가 말하려는 서민들만 등터지는현실 이야기에 대한 공감이 있고 무엇보다 명배우들의 명연기는 보는 이들을 소름 돋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남는 구체성이 결여된 개연성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남는 작품이다. <아수라>는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역시 이순신!”또 이순신?” 사이

 

임진왜란과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KBS 사극의 단골소재다. 그 유명한 <불멸의 이순신>은 김명민이라는 명배우에 의해 인간적이고 고뇌하는 이순신의 면면까지를 보여줌으로서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한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류성룡의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을 소재로 한 <징비록>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새로 방영되고 있는 <임진왜란1592>는 좀 더 전투 장면의 디테일들을 담아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임진왜란1592(사진출처:KBS)'

사실 이순신 장군을 소재로 한 사극들 중 가장 극적이고 화제가 됐던 건 역시 일련의 해전 장면들이다. <불멸의 이순신>이 방영될 때는 마치 한일전이라도 하듯이 이번 주에는 사천에서 다음 주에는 명량에서 라는 식으로 예고가 되었고 그 해전을 마치 스포츠 중계 보듯 모여들어 시청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징비록>피눈물로 쓴 전란사라는 시각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쾌한 이순신 장군의 해전 이야기보다는 도주하는 선조 이야기 같은 속 뒤집어지는 무능한 조정의 이야기들이 더 많이 들어갔다. 그것이 이런 과거를 기록함으로써 후대에 경계의 본을 세우려 했던 류성룡이 남긴 징비록의 진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답답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때문인지, 시청자들은 오히려 이순신 장군이 잠깐 등장해 승전보를 알리는 해전에 더 집중했다.

 

<임진왜란1592>는 바로 그 해전을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중국과 합작해서 만들어낸 5부작으로 이른바 팩추얼드라마(팩트+버추얼)’를 지향했다. 이전 임진왜란 소재의 사극과 달리 사료를 통한 역사적 사실에 더 접근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첫 회에서 보여준 역사적 사실은 고작 26척의 배로 일본의 대군을 어떻게 물리쳤는가 하는 것에 대한 고증을 통한 접근이다. <임진왜란1592>는 이것을 수조규식이란 지침서를 통해 원거리 곡사포가 아닌 근거리 직사포를 사용했다는 추정으로 풀어냈다. 극중 이순신 장군이 눈으로 직접 보고 타격하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하지만 늘 만들어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인데다, 정치적 이야기들보다는 해전의 스펙터클을 강조한 <임진왜란1592>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며 그 스펙터클을 상찬하는 목소리가 있는 반면, 또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냐는 식상함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우리네 대중들에게는 늘 가슴을 울리지만, 그것을 마치 전가의 보도나 되는 양 너무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KBS 사극에 대한 불편함이 있고, 하필 지금 같은 시기에 애국에 대한 이야기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 역시 불편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작게는 이런 불편함이 이순신 장군 역을 맡은 최수종의 연기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전이되는 모양새다.

 

<임진왜란1592>의 첫 방에 나타나는 이런 호불호는 이 작품이 가진 강점과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역시 이순신 장군의 해전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를 움직이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그것의 반복은 너무 속보이는 안이한 시도처럼 보인다는 한계가 있다는 것. <임진왜란1592>역시 이순신!”또 이순신?”으로 갈리는 그 사이에 놓여 있다

관객에게 빙의체험을 하게 하는 <곡성>

 

나홍진 감독의 <곡성>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는 영화다. 어떤 이들은 이 영화의 엄청난 에너지에 놀라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뒤집어놓은 도발적인 구상에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영화가 일종의 미끼를 던져놓고 관객을 끝까지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며 불편해 한다.

 

사진출처:영화<곡성>

영화 평론가나 기자 같은 전문가들은 <곡성>에 대해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것은 해외에서 특히 더 두드러진다. 칸 영화제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전 세계 언론과 평단은 <곡성>에 대한 찬사를 서둘러 쏟아냈다. ‘올해의 영화’, ‘칸 영화제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걸작’, ‘왜 경쟁부문에 안 올라왔는지 모르겠다’, ‘악마에 홀린 듯 대단한 걸작’, ‘넋이 나갈 만큼 좋다’, ‘최근 한국영화 중 최고등등 찬사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해외의 반응이 이처럼 뜨거운 건 이 영화가 지금껏 해왔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작은 마을에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과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스릴러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무당과 귀신이 등장하는 오컬트적 요소, 나아가 악마와 좀비까지 등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아우르고 있다.

 

<곡성>의 독특한 점은 어떤 명쾌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로 <곡성>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다. 낚시라는 상징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물고기는 자신이 왜 미끼에 걸려 이리저리 휘둘리다 비극적인 끝을 맞이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의심을 하고 추정을 하고 믿어보기도 하지만 또 불신하며 배신한다. <곡성>의 종구(곽도원)은 그 과정을 몸으로 겪는 인물이다.

 

그리고 관객이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그 불가해한 일들을 겪어내며 풀어보려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서 그는 또한 관객의 매체가 되는 셈이다. 마치 무당이 귀신을 불러내어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걸 이해해보려 하는 것처럼 종구는 관객에게는 <곡성>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무당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어떤 상정된 메시지를 향해 당연히 달려가는 일반적인 영화를 보던 관점으로 <곡성>을 들여다보면 불편하기 이를 데가 없다. 종구라는 인물 속에 빙의되지만 그 인물이 보고 판단하는 것들이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구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마을에 벌어지는가를 궁구하며 그 깊숙이 파고 들어가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미궁에 빠져 허우적댄다.

 

영화 후반부에 일광(황정민)이라는 무당이 등장해 한판 살풀이굿을 하는 장면은 그래서 관객에게는 굉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이 조금은 허술해 보이는 종구라는 인물을 통해 코미디처럼 실실 웃으며 <곡성>의 영화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 관객들은 그가 처한 막막함과 절망감에 숨이 턱턱 막힌다. 마치 귀신들린 사람 같은 느낌을 관객 역시 똑같이 느끼게 된다. 그러니 일광의 살풀이는 마치 그걸 풀어줄 것 같은 강력한 에너지로 다가온다. 물론 풀어지기는커녕 더 복잡한 미궁으로 종구는 빠져버리지만.

 

<곡성>절대 현혹되지 마라라는 문구가 달려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영화다. 절대 현혹되지 않으려는 안간힘은 사실은 현혹되고 있는 자신을 반증할 뿐이다. 종구는 그 미끼를 물었고 관객은 종구에 빙의되어 역시 미끼를 물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명쾌하지 않은 영화의 결론은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그건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 감독은 의도한 바가 있겠지만 그 결론을 관객들의 몫이라고 남겼다. 이것도 어쩌면 미끼일 것이다. 사실 귀신과 영혼, 악마에 대해 현혹되는 이야기에 명쾌한 결론이 어디 있겠는가. 마치 명쾌한 결론이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을 영화는 역으로 공격한다.

 

<곡성>은 그래서 마치 빙의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바로 그 저항감 때문에 오히려 더 깊게 빠져들고 결국은 그 이면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 체험이 모든 이들에게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에 대해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아는 형님>, <마리와 나>, 강호동에게 보이는 변화

 

강호동이 출연하는 JTBC <아는 형님>의 시청률은 낮다. 벌써 7회가 방영됐지만 1%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였다면 벌써부터 말들이 많이 나왔을 터였다. 강호동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가진 부담감은 그만큼 컸다. 시청률이 안 나와도 강호동의 문제였고, 프로그램의 재미가 떨어져도 강호동 문제였다. 기다려주지도 않았다. 강호동이 나와서 이 정도 했는데도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건 프로그램에 일찍부터 망작의 주홍글씨를 새겨 넣었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하지만 <아는 형님>은 조금 반응이 다르다. 호불호는 분명 있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게 적어도 강호동 탓이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강호동 하면 떠오르는 시끄러운(?) 이미지는 분명 여전히 있지만 그 이미지는 이 프로그램 안에서도 옛날 개그맨으로 비하되고 비난받음으로써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는 코드로 활용된다. 그가 중심에 서서 뭔가 프로그램을 끌고 갈라치면 그를 잡는 인물이 나타난다. 민경훈은 그런 점에서 수확이다. 이수근이 강호동이 툭하면 주먹을 들려는(?) 모습에 움찔하는 자세로 늘 상황극을 만들어내려 한다면 민경훈은 대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강호동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김영철은 끊임없이 일관되게 강호동에게 깐족대고 서장훈은 그 거구의 몸으로 강호동과 맞선다. 김희철은 심지어 강호동이 숨기고픈 과거까지 마구 끄집어내 폭로하면서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황치열은 강호동이 하는 행동에 100% 리액션을 보여주는 측근(?)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강호동을 추켜세우는 인물은 아니다. 확실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어 오히려 강호동이 좋아하는 인물로 비춰진다. 김세황은 이 프로그램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것을 오히려 병풍캐릭터화 했다. 이런 판이라면 강호동은 한결 마음이 편할 것이다. 조금 옛 이미지가 비춰져도 그걸 물고 뜯는 동료들이 있어 오히려 괜찮아질 테니 말이다.

 

강호동이 JTBC에서 하고 있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 <마리와 나> 역시 시청률은 아직까지 낮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강호동에 대한 반응은 이전과는 다르다. <마리와 나>를 보다보면 강호동이 이렇게 조용한 인물이었나 싶은 느낌까지 갖게 된다. 물론 귀엽기 그지없는 작고 앙증맞은 강아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니 소리치고 할 필요가 전혀 없을 게다. 사실 혼잣말을 하는 것도 어색할 수 있다. 그래서 조금 쉬고 싶어 몸을 뉘일 때 마구 올라오는 강아지들이 강호동과 의외로 잘 어울린다. 마치 놀라기라도 할까봐 조용 조용 달래듯 강아지들과 교감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금껏 봐왔던 강호동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속에서 강호동이 예능의 포인트들을 놓치는 건 아니다. 만난 지 얼마 안되서 금방 친해진 강아지들이 강호동의 입에 뽀뽀를 해대자 아직까지는 안돼라고 말하는 장면이나, 서인국과 함께 고양이들을 돌보러 갔다가 고양이 세 마리에게 왕따를 당하는 그 기막힌 상황에 버럭 화를 내고 나오는 장면에서는 그의 공력이 느껴진다. 그는 어떤 포인트가 웃음을 만들어낼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강호동에게 웃음보다 더 중요한 건 정서적인 느낌이다. 물론 웃음을 많이 주는 것이 업이니 그 노력을 등한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웃음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어떤 느낌으로 주느냐가 지금의 강호동에게는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상파 바깥으로 나와 JTBC라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들어온 강호동의 선택은 옳았다고 보인다. 아직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고민이겠지만 적어도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강호동의 새로운 면들이 보이기 시작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내부자들>의 성취와 이병헌에 대한 호불호는 별개

 

영화 <내부자들>에 대한 관객 반응은 뜨겁다. 개봉 첫 주에 160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청불 영화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고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지금이 영화 비수기로 불리는 시기라는 점이다. 이런 시점에 <내부자들>이 이런 결과를 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영화<내부자들>

<내부자들>은 확실히 이런 기록을 낼만한 영화적 성취를 갖고 있다. 그 첫 번째 힘은 윤태호 원작이 갖는 그 스토리에서 나온다. 이미 <베테랑>에서 우리가 확인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 현실 속에 상존하는 권력의 부조리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은 깊다. <내부자들>은 이 부조리의 심층부를 모두 도려내서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정계, 재계, 언론계, 법조계가 <내부자들>의 도마 위에 오른다. 그것만으로도 대중들은 반색할 만하다.

 

두 번째 힘은 이런 스토리를 실제처럼 만들어버리는 연기자들의 빈틈없는 연기다. 백윤식이나 이경영, 조승우, 이병헌까지 착한 역할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 욕망의 질주를 보여주는 연기들은 보는 이들을 공분하게도 하고 때로는 통쾌하게도 만든다. 이 정도면 악역 연기의 각축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흥미로운 건 <내부자들>의 이런 성공과 함께 솔솔 피어나고 있는 이병헌에 대한 언론의 반응이다. 마치 <내부자들> 하나로 그간 이병헌에게 쏟아졌던 비난들이 모두 잠재워지기나 한 것 같은 호들갑이다. 성급하게는 이제 모든 액땜을 한 이병헌이 <내부자들> 한 편으로 대중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영화는 영화고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야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영화에 대한 호평은 당연하다. 실로 잘 만들어진 영화니까. 또 연기에 대한 호평도 마찬가지다. 실로 이 영화 속에서 이병헌은 연기를 잘했다. 게다가 연기를 떠나서 그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악역은 지금 현재의 이병헌에게는 그토록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러니 연기는 잘 했다고 칭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이병헌에게 면죄부가 될 순 없다. 대중들은 여전히 지난 50억 협박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이병헌의 행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건 영화가 성공하든, 연기를 잘했든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마침 그에게 딱 맞는 캐릭터가 <내부자들>에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맞다. 만일 그가 지금 시점에 깡패 역할이 아닌 순애보의 남자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제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대중들이 몰입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의 성공 때문일까. 이병헌은 광고에 공공연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이제 논란이 만들어냈던 그 불편함을 스스로 털어 버린 듯한 모습이다. 여기에 공조해 언론들도 일제히 이병헌의 재기를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대해 대중들은 여전히 냉담하다.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병헌이 오롯이 연기자로 다시 서게 되는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러니 이제 작품 하나 잘 한 것으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연기자는 연기만 잘하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연기자의 어떤 일상적인 행동이나 태도는 고스란히 그의 연기를 바라보는 대중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연기는 어찌 보면 그저 만들어서 가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나 마찬가지다. 섣부른 샴페인 터트리기보다는 자신을 한껏 낮추고 지금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연기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그런 겸허함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송곳>에 대한 호불호가 나뉘는 지점, 그 경계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거요.” JTBC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안내상) 부진 노동상담소 소장은 불안해하는 이수인(지현우) 과장에게 그렇게 말한다. 황주임(예성)을 자르려는 허과장(조재룡)에 맞서 집단행동에 나섰지만 이수인은 이러다 모두가 징계를 먹고 황주임도 해고될까 걱정이다.

 


'송곳(사진출처:JTBC)'

그러자 구고신은 말한다. “어떤 놈은 한 대 치면 열대로 갚지만 어떤 놈은 놀라서 뒤로 빼. 찔러봐야 어떤 놈인지 알거 아뇨? 회사도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몰랐잖아. 내가 뭘 하면 쟤들이 쪼는지. 내가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싸우면서 확인하는 거요. 싸우지 않으면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그걸 넘을 수도 없어요.”

 

구고신의 이 대사는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특징을 압축한다. 노동쟁의라는 실제적 상황에 들어가면 그 행위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즉 그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 송곳같은 행위가 제대로 된 선택인지 아니면 모두가 잘못될 수 있는 선택인지 불안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구고신의 말처럼 일단 한 발을 나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이 부조리한 상황을 받아들이며 살 것인가 아니면 불안해도 한 발을 내디딤으로써 그 상황을 변화시켜보려 노력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송곳>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와도 그대로 연결되어 있다. <송곳>은 결코 저 <미생>처럼 사회 현실을 드러내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시스템을 뛰어넘기보다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모두가 해피한 드라마가 아니다. <미생>의 오과장(이성민)은 결국 회사를 나와 새로운 회사를 차리지만, <송곳>의 이수인은 회사가 날 밀어내려면 한번 해봐라하며 버티고 저항한다. <송곳>은 시스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시스템을 바꾸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지점에서는 <송곳>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호불호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즉 시스템 안에서 적응해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어딘지 <송곳>의 이수인이 하는 행동이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딱히 사측의 위치에 있는 시청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에서 방출되었거나 그 바깥에서 아예 진입조차 해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수인의 행동이 대단히 통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이 드라마가 얘기하는 조직에서의 송곳같은 존재를 우리가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기도 하다. 통상 군대에서 고문관이라고 치부되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 관점. 혹은 사회에서 왕따취급을 받는 이들을 바라보는 그 관점이다. 즉 그들은 어딘지 그 조직의 부조리함을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그 부당함을 드러내는 것에 통쾌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미 적응한 조직의 시스템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느끼게도 만든다.

 

걸림돌, 왕따, 꼰대 같은 단어들이 이 드라마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저 송곳이 주는 이중적인 감정과 무관하지 않다. 당신은 이들 단어들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그것이 불편한가 아니면 통쾌한가. 구고신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보는 이들에게 자신이 서 있는 경계를 확인시켜 준다. 그 경계를 명확히 알아야 그걸 넘을 수도 있으니



강용석과 장동민,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인가

 

과거 인터넷 방송에서 했던 부적절한 멘트 때문에 대중들의 질타를 받았던 장동민은 그 후 자숙의 기간을 갖지 않고 방송을 강행했다. 많은 논란 연예인들이 논란이 터지고 나서 그 진위와도 상관없이 자숙 기간을 가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여기에 대한 불편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동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자숙에 대한 남다른 생각을 털어놓았다.

 


사진출처:MBN

그는 자숙이라는 것은 방송을 쉬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오히려 그렇게 칩거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짐을 안고 계속해서 사죄를 하고 사과를 하면서 벌을 받는 것이다라고 했다. 집안의 가장이고 생업으로 방송을 하는그로서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의 대가로 방송을 쉬어라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잘못을 하거나 실수를 한 다른 연예인들이 방송을 그만두고 쉬는 것은 각자의 판단이며 그의 판단으로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잘못한 분들께 사과하고 웃음을 드리는 것이 사죄라고 얘기했다.

 

장동민의 이 이야기는 지금까지 대중들과 논란 연예인들 사이에 존재해오던 이른바 자숙의 문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보여준다. 방송을 그저 잠시 접는 것이 자숙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이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왜냐하면 자숙이라는 것도 또 그 자숙기간이라고 하는 것도 법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사안에 따라 또 각자 연예인들의 판단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동민은 일하면서 자숙하겠다는 자신만의 자숙방법을 얘기한 것이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것이 대중들에게는 달리 들릴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즉 결과적으로 보면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별다른 조치 없이 똑같이 일을 하며 생활한다는 것이 액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자숙으로 인한 징벌적 영향이 전혀 미치지 않는 자숙을 자숙으로 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진 대중들이라면 장동민의 말은 말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물론 이것도 법적인 사안이 아니다. 그저 호불호의 문제일 뿐이다. 장동민은 이렇게 일하면서 자숙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그것이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여 진심이 닿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로 역효과를 낼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점이다. 장동민의 선택이 있었고, 이제 남은 건 거기에 대한 대중들의 선택이 있을 뿐이다.

 

자숙이나 자숙기간에 대한 이런 새로운 생각은 최근 강용석이 했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 속에서도 들어가 있다. 그는 그 인터뷰에서 과거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 논란으로 “11개월을 그냥 놀았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조용히 지낼 필요가 있었나 싶다자숙 기간이 1개월이든 1년이든 10년이든 비난할 사람은 비난한다. 그래서 이번엔 바로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을 섣불리 들을 수 없는 게 강용석의 말이 그리 틀린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숙 기간을 갖고 어떤 인물은 몇 개월만에 쉽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어떤 인물은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자숙기간이 그만한 징벌적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전혀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러니 스스로 결정하는 자숙기간을 굳이 가질 필요가 있겠냐는 게 강용석이 얘기하는 요지다.

 

실제로 최근 들어 자숙기간은 그다지 큰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중들에게 자숙의 의미란 사실상 한 번 엇나가면 영영 보기 불편한 사람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이것은 자숙을 선택하는 연예인들 입장과는 사뭇 상반되는 일이 된다. 연예인들이 자숙을 선택하는 건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숙기간은 불필요한 일일까. 여기에 대한 열쇠도 결국은 이제 대중들이 쥐게 되었다. 자숙기간을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남다른 자숙의 의미를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무 뻔뻔한 태도가 아니냐는 식으로 또 다른 논란을 만들 수도 있다. 논란과 자숙. 연예계에 불변의 룰처럼 여겨져 왔던 그 공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이들에 의해 파기될 것인가.



<썰전>, 강용석 빈자리 채울 보수 왜 찾기가 어려울까

 

강용석 없는 <썰전>은 어떨까. 불륜스캔들로 인해 강용석이 <썰전>에서 하차하게 되면서 그 빈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강용석이지만 방송에 있어서 그만큼 잘 소화해내는 인물도 없다는 것이 방송가의 중론이다. 그랬기 때문에 늘 논란 속에서도 그가 여러 프로그램을 할 수 있었던 것.

 


'썰전(사진출처:JTBC)'

하지만 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대중들의 호감이다. 논란에 논란이 더해지고 불륜스캔들도 명쾌한 해명이 되지 않으면서 결국 강용석은 비호감의 그늘이 짙어졌고 그 영향은 방송 프로그램에도 그대로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썰전>은 사실상 강용석과 이철희라는 두 인물의 힘에 의해 세워진 프로그램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강용석의 하차는 <썰전>에는 큰 고민거리가 될밖에.

 

JTBC 관계자에 의하면 애초에 강용석이 불륜스캔들로 시끄러울 때부터 늘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떤 기사가 나오거나 사안이 터질 때마다 강용석에게 직접 전화해 확인해왔고, 강용석 하차 시 여러 복안들을 고민해왔다고 했다. 그 안에는 강용석과 이철희를 모두 교체시키는 방안, 강용석을 하차시키고 그 자리를 다른 보수 진영 인물로 채우는 방안이 모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이철희를 뺀다는 건 더 큰 모험일 수 있었다. 따라서 강용석만 교체하는 방안이 결정된 것.

 

그런데 생각보다 이 일이 쉽지 않다고 한다. 즉 보수진영에 강용석 만큼의 역할을 해줄 인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진보의 논리는 다소 거칠어도 쉽게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면이 있다. 하지만 보수는 그 수구적인 입장 때문에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게 쉽지는 않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면 방송을 통해 비호감의 이미지까지 가질 위험도 있다. 이는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즉 보수의 입장을 대변하면서도 호감 정도는 아니지만 괜찮은 이미지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을 찾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보수가 가진 이미지가 너무나 비호감으로 굳어 있다는 것이 그 근본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 실제로 보수가 그 진정한 가치나 철학을 보여주지 못하고, 가진 자들의 수구적인 입장만을 드러내는 모습을 우리네 서민들은 너무나 자주 목도해온 바 있다. 그러니 서민들의 입장에서 이런 보수의 모습이 호감으로 다가올 리가 만무다.

 

물론 그렇다고 강용석이 진정한 보수의 입장을 대변해왔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는 다만 정치를 가십처럼 씹어서 엔터테인먼트화하는 데 능숙했을 뿐이다. 그래서 강용석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다 그런 거 아니냐는 식의 현실론이 깔린 조소가 느껴질 때가 많다. 즉 그는 방송에 능통했을 지는 몰라도 정치적인 그의 식견으로 시선을 잡아끈 적은 별로 없다. 따라서 제작진의 고민은 그나마 그처럼 방송이라도 하는 인물을 보수쪽에서 찾으려 해도 찾기가 쉽지 않다는데 있다.

 

어쩌다 그렇게 된 것이지만 <썰전>에서의 강용석의 빈자리는 그래서 보수의 인물 찾기 같은 모양새를 갖게 되었다. <썰전> 측은 한동안 이철희와 대적할 보수측 인물을 여러 명 세워보면서 그 출연가능성을 타진해본다고 밝혔다. 일종의 오디션의 자리가 된 것. 첫 번째 그 자리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일일 패널로 참여했다. 과연 이 보수의 입을 대변할 <썰전> 오디션(?)의 최종 인물은 누가 될까. 강용석의 빈 자리로 생겨난 새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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