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를 보면 문화 트렌드가 읽힌다

 

tvN <혼술남녀>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이 1인가구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생겨나고 있는 새로운 나홀로족들의 문화를 소재로 삼았다. 혼자 마시는 술, 혼술은 과거 가족중심의 사회에서 이제는 나홀로족들에 의해 개인주의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는 그 문화의 변화를 상징한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이 드라마에서 노량진 학원가의 스타 강사인 진정석(하석진)은 그 혼술을 즐기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캐릭터다. 입만 열면 퀄리티를 수식어처럼 남발하는 이 캐릭터는 양적으로 부어라 마셔라 했던 과거 가족주의시대의 술 문화에서 이제는 질적으로 마시는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술 문화를 캐릭터로 보여주고 있다.

 

<혼술남녀>라는 제목에 혼술과 함께 남녀를 붙인 뜻은 이 드라마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드러낸다. 혼술이라는 트렌디한 소재를 가져왔지만 남녀라는 보편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접목했다는 의미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혼술 문화로 대변되는 트렌드를 얘기하면서 그 안에 혼술이 가진 새로운 즐거움과 그로 인해 느껴지는 현대인의 쓸쓸함 같은 것을 멜로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이런 트렌디한 소재와 보편성의 결합은 최근 방영되고 있는 tvN 드라마의 드라마 방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tvN이 한편에서는 메시지가 묵직한 진중한 드라마들을 채워 넣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트렌디한 로맨틱 코미디를 배치하는 건 전략적이다. 전자가 tvN표 드라마에 그 진중함으로 어떤 신뢰감을 형성한다면, 후자는 재미요소로 그 신뢰를 이어간다. 그런데 이렇게 전략적으로 두 종류의 드라마가 서로 다른 결로 배치되게 된 건 tvN이 그간 추구해왔던 드라마의 두 경향이 만들어낸 열매라고 볼 수 있다.

 

<미생>에서부터 <시그널>로까지 이어지는 거의 영화에 가까운 드라마들이 tvN 드라마의 한 축을 만들어냈다면, <응답하라> 시리즈 이후 공격적으로 개척된 일련의 로맨틱 코미디물들, 이를 테면 <식샤를 합시다><응급남녀> 같은 드라마들이 또 한 축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물론 그 중간 지대에 들어가 있는 <또 오해영>이나 <오 나의 귀신님> 같은 드라마들도 있지만.

 

<혼술남녀>의 후속으로 들어올 <막돼먹은 영애씨>는 무려 시즌15에 이르는 장수 드라마tvN의 이런 트렌디한 시도를 마치 표상하는 듯한 위상을 갖고 있다. 초창기 다큐드라마라고 실험적인 타이틀을 내세운 뜻은 실상은 적은 예산 때문에 생각해낸 발상의 전환이었다. 하지만 그 적은 예산과 그래서 다큐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이 독특한 드라마는 그것만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김현숙이 연기하는 노처녀 이영애는 처음에는 웃음으로 다가왔다가 차츰 공감대를 넓히는 저력을 보여줬다. 어찌 보면 달라지고 있는 연애 풍속도와 당당한 영애씨라는 캐릭터가 잘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달라지고 있는 문화 코드를 잘 녹여낸 드라마는 굉장한 메시지나 놀라운 스토리 전개 같은 것과는 다른 지향점으로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변화된 트렌드에 대한 공감대. 그리고 이것은 한편으로는 트렌드 자체를 확장시키고 주도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사실 혼술문화가 생기고는 있다고 해도 이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까지 그런 문화의 저변을 실감한 시청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수 있다.

 

이제 종영을 앞둔 <혼술남녀>는 그런 점에서 보면 문화 코드를 잘 녹여낸 tvN 드라마의 저력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평가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야기로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안에 문화 코드가 녹여져 있어 이야기는 그만큼 참신해질 수 있었다. 이제 첫 방을 앞두고 있는 <막돼먹은 영애씨>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것도 이번엔 또 어떤 문화 코드가 우리를 공감시킬까 하는 바로 그 지점 때문이다

<혼술남녀>가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방식

 

짠한데 웃기다? 아마도 최근의 트렌드는 바로 이런 희비극이 아닐까. SBS <질투의 화신>의 이화신(조정석)이 그 대표적인 희비극의 주인공이다. 그가 처한 상황은 실로 짠하다. 그런데 그렇게 짠한 상황에서 그가 하는 지질한 행동들을 보면 웃음이 터진다. tvN <혼술남녀>의 황진이(황우슬혜)라는 인물이 그렇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그녀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강사로 일하는 것에 그다지 큰 꿈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신 괜찮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 그녀의 꿈이지만, 그 남자가 자기 마음 같지가 않다. 덜컥 임신 먼저 하고 결혼하는 것까지 꿈꾸는 그녀지만 번번이 그녀의 꿈은 좌절된다. 그것은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 학원에 박하나(박하선)을 소개한 건 그녀지만, 그녀는 박하나에게 끌리는 진정석(하석진) 때문에 어쩌다 뒷전으로 물러나게 된 인물이 됐다.

 

하도 남자친구에게서 연락이 없길래 메시지로 홧김에 헤어지자고 했더니 덜컥 날아온 것이 동그라미 두 개란다. 결국 이별통보를 받은 그녀는 학원장인 김원해가 무슨 이야기만 하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차였나보라며 눈물을 흘린다. 학원생들의 평가서에서 김원해가 발음이 열라 구리다라는 의견을 읽어주자 발음이 구려서’ “남친 한테 까였나 봐요라며 울고, 새로 산 신발에 아껴쓰라며 왜 그리 돈을 펑펑 쓰냐고 김원해가 말하자 돈을 펑펑 써서 까였나 봐요라며 울음을 터트린다.

 

그녀는 이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클럽에 놀러가고 거기서 그날 밤 남자친구를 사귀겠다고 나서지만 역시 굴욕을 당한다. 예전 학원 수강생들이 알아보자 조신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박하나가 걱정돼 나타난 진정석을 유혹해보려 하지만 정신 나갔냐는 대꾸를 듣고는 창피해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간다. 짠한 상황이지만 한 발 물러나 이걸 바라보는 시청자들에게는 웃음이 빵빵 터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연예인 성대모사를 하는 학원강사인 민진웅은 이번엔 얼굴에 스타킹을 쓰고 드라마 <W>에서 얼굴을 빼앗겨버린 오성무(김의성)를 흉내낸다. 학원장 김원해는 어머니 상 당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냐고 지청구를 날리지만 민진웅을 이렇게 해서라도 빨리 벗어나려 한다는 뜻을 밝힌다.

 

그저 웃기는 캐릭터로만 보였던 민진웅이 실제로는 아내와 이혼하고 치매를 앓는 어머니의 병수발을 하루도 빼지 않고 해왔던 사실은 시청자들을 짠하게 만들었다. 또한 어딘지 코믹한 캐릭터로만 보였던 학원장 김원해가 민진웅 어머니의 상가에서 하룻밤을 함께 지새는 대목은 의외의 담담한 감동을 선사했다.

 

짠한 캐릭터로 웃음을 주고, 웃기는 캐릭터가 짠해지는 이 방식은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가 희비극을 운용하는 방식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누구 하나 짠하지 않은 인물이 없다. 그것은 모든 걸 다 갖춘 듯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혼술하는 것이 즐겁다고 계속 주장하는 진정석도 마찬가지다. 어찌 혼술이 늘 즐겁기만 하겠는가. 그건 어쩌면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가를 보여주는 <혼술남녀>만의 희비극을 통한 메시지가 아닐까.

 

사는 게 너무나 힘들다 보니 그 비극을 공감대로 끌어와 심지어 웃음으로 만들어내는 방식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매료시키고 있다. 웃고 싶으나 현실을 웃을 수 없고, 그렇다고 현실의 고통을 느끼며 눈물 흘리기는 싫은 그 감정이 이 <혼술남녀>라는 희비극에는 녹아들어 있다. 비극의 공감도 웃음으로 털어내고픈.

먹방 범람 시대 <조용한 식사>가 주는 힐링이란

 

방송사고인 줄 알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음식이 차려진 식탁을 앞에 놓고 배우, 가수 같은 연예인들이 앉아 있는데 도대체 말이 없다. 일반적인 방송에서는 몇 초 이상 침묵이 흐르면 방송사고가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방송이 있다. 바로 올리브TV<조용한 식사>.

 

'조용한 식사(사진출처:올리브TV)'

<조용한 식사>는 그 외형적인 틀만 보면 요즘 트렌드가 된 먹방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먹방이 가진 틀에서 많은 것들을 뒤집어 놓았다는 점에서 특이한 먹방이다. 혼자 나와 음식을 먹는다는 점은 먹방과 같지만, 이들이 음식의 맛을 호들갑스럽게 설명하고 소개하는 장면 따위는 전혀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존 먹방들과는 다르다.

 

<조용한 식사>는 제목처럼 그저 출연자가 조용히 음식을 먹는 것으로 오롯이 프로그램을 채운다. 한 사람 당 10분 남짓의 방송 분량에서는 그래서 이들이 얘기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전어를 앞에 두고 앉은 김뢰하는 잘 손질된 전어를 한쪽에서 구워 손으로 뜯어먹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그 먹는 장면과 소리들이 집중된다.

 

전어가 구워지는 소리나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그 자체로 침샘을 자극한다. 옆에 놓여진 막걸리를 따서 잔에 따르는 소리 역시 먹는 장면 그 자체보다도 더 감각적이다. 그래서 먹방이 갖춰야 하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상황들은 모든 걸 단순화시켜버림으로써 오히려 강화된다. 말이 없고 특별한 상황도 없이 그저 먹는 것 하나에 시각과 청각을 집중시키는 것만으로.

 

물론 이들은 한 마디 하지 않아도 그 먹는 장면을 통해 그들의 성격이나 취향을 드러낸다. 김뢰하가 어딘지 거침없는 상남자의 성격을 손으로 전어를 뜯어먹는 모습으로 보여준다면, 강화도의 한 야외 포차처럼 보이는 곳에 앉아 갓 잡은 대하구이를 먹는 장기용은 신세대답게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방송이야기를 하면서 새우를 먹는다. 초지진항에 앉아 활어회를 먹는 황석정은 회만큼 고추나 소주를 곁들이는 모습이 더 어울리는 털털한 캐릭터다.

 

<조용한 식사>에는 좌측 상단에 세 개의 단순한 태그가 자막으로 적혀 있다. 예를 들어 ‘#초지진항#활어회#황석정이나, ‘#홍대#수제버거#김기방식의 자막이다. 너무 단순한 포맷이기 때문에 이 세 개의 태그만으로도 그것이 어떤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지가 모두 설명된다. 거기에는 누가 출연하고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먹는가라는 이 프로그램의 모든 정보가 망라된다.

 

배경화면이나 소음 그리고 거기에 가끔 얹어지는 음악은 <조용한 식사>의 훌륭한 미장센 효과를 준다. 김뢰하가 전어를 먹을 때 뒤편으로 펼쳐지는 파란 바다나, 김기방이 수제버거를 먹을 때 뒤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즐기는 홍대의 한 식당 같은 배경은 그들이 앉은 공간의 현실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흥미로운 건 맛나게 음식을 먹고 있지만 식욕보다 더 채워지는 것이 그 시간이 주는 힐링의 느낌이다. 최근 들어 싱글족들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혼밥’ ‘혼술문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의 문화가 쓸쓸함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힐링타임이라는 걸 이 프로그램은 짧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먹방이 범람하는 시대지만, 참신한 역발상으로 입의 감각이 아닌 공간과 시간이 주는 느낌을 전하는 프로그램라니. 그 미니멀한 선택들이 의외의 재미를 선사하는 프로그램이 아닐 수 없다

<혼술남녀>, 혼술 즐기는 그들의 속사정

 

나는 혼술이 좋다로 시작하는 <혼술남녀>. 하지만 이 내레이션을 하는 진정석(하석진)은 진정 혼술이 좋은 것일까.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클래식을 들으며 퀄리티 있는 안주에 혼술을 한다. 그 모습은 그가 말하듯 오롯이 나만을 위한 힐링타임처럼 보인다. 그래서 옆 자리에서 술을 마시며 애정행각을 벌이는 남녀를 보고는 술 맛 떨어진다며 투덜댄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그런데 이 진정석이라는 캐릭터가 반복해서 나는 혼술이 좋다고 얘기할수록 점점 기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그건 마치 혼자 마시는 술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려 애쓰는 모습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진짜로 혼자 술 마시는 걸 즐기고 있는 것일까.

 

물론 진정석의 이 나만을 위한 힐링타임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부어라 마셔라에 폭탄주를 돌리는 우리네 폭력적인 회식문화, 술 문화를 경험한 분들이라면 진정석의 혼술은 그 자체가 하나의 로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업무상 마셔야 하는 회식 같은 술자리인 경우의 이야기다. 사적으로 친구나 동료 그리고 애인과 한 잔 마시는 술이 어찌 퀄리티 떨어지는술 자리가 될까.

 

그래서 진정석의 혼술은 조금은 쓸쓸한 느낌을 준다. 오죽 사는 게 복잡하고 관계의 피곤을 느끼면 혼술을 즐길까 싶고, 그러다 보니 진짜 좋아하는 사람과도 함께 술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이 됐나 싶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네 사회생활의 현실을 술에 빗대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즉 사회의 관계라는 것이 너무 피곤해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을 원하게 된 현대인들의 이야기. 그래서 그 관계가 복잡해지는 걸 피하기 위해 업무로서만 선을 그어 놓고 대하는 사람들. 진정석이 박하나(박하선)를 이것저것 챙겨주면서도 종합반 관리 차원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 단지 퉁명스럽게 대하면서도 마음을 쓰는 이른바 츤데레로만 보이진 않는다. 거기에는 어쩌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속내를 표현하지 못하고 사무적으로 대하게 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이 어른거린다.

 

혼술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관계에서 엇나가 있는가는 이 드라마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취준생들의 이야기 속에도 투영되어 있다. 어떻게든 시험에 붙어 이 학원가를 빨리 뜨고 싶어 하는 정채연은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을 매몰차게 떨쳐낸다. 그래서 상심한 한 남자가 그녀의 몰카를 찍어 고동넷에 올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정채연은 그 몰카범이 예전에 자신이 밀어냈던 기범이라고 오해한다. 결국 진범이 잡히지만 정채연은 그간 숨기고 있었던 두려움의 긴장감이 풀어지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그들의 오해는 끝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각자의 방에 들어가 혼술을 한다. 참으로 쓸쓸한 풍경이 아닌가.

 

<혼술남녀>는 매회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한 인물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혼술을 하는 장면을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혼술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 담겨진 우리가 사는 현실의 쓸쓸함 같은 것이 거기에는 묻어나 있다. 학원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번 성대모사를 준비해오며 웃음을 주는 민진웅 같은 인물은 밤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치매에 걸린 엄마를 문병 가는 사실을 그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술 한 잔을 마시며 그 마음을 달랠 뿐이다.

 

진정석이 이끄는 종합반이라는 틀은 그래서 흥미롭다. 혼술을 마시며 혼자 사는 삶을 지향하던 그가 종합반이라는 함께 팀을 이뤄야하는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종합반에 자신이 가능성이 있다며 넣어준 박하나는 어쩌면 혼술을 해왔던 그가 함께 마실 수 있는 대상으로의 가능성을 봤을 지도 모를 일이다. “종합반 관리가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 관리 아닌가요?”라는 박하나의 말에 그토록 화들짝 놀라는 모습에서는 그래서 마치 진심을 들킨 자의 과한 반응이 읽혀진다.

 

혼술? 물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혼술남녀>가 보여주듯이 그들만의 속사정들도 들어가 있다.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쓸쓸함을 혼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혼술남녀>는 그래서 웃기지만 짠하다. 진정석이 박하나의 저돌적인 순수함에 마음이 열리는 순간을 기대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기획 포인트 많은 <혼술남녀>, 그래서 메시지는?

 

tvN <혼술남녀>의 박하나(박하선)노그래라 불린다. 노량진 학원가에 들어온 장그래라는 의미다. 그녀가 공무원 수험생들을 위한 이 학원가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저 <미생>의 장그래처럼 짠하다. 자신을 종합반에 넣어준 스타강사 진정석(하석진)가능성을 보고넣어줬다고 하자, 무얼 시킬 때마다 가능성 있는 제가라는 말을 수식어처럼 달고 말한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그녀를 노그래라는 캐릭터로 세운 건 다분히 의도적이다. <미생>이 그러했듯이 직업의 세계에서 힘겨운 현실을 살아내는 주인공을 내세우기 위함이다. 그래야 보통의 샐러리맨들의 공감대가 커질 테니까. 게다가 그를 이끌어주는 상대로 진정석이라는 돈 잘 벌고 스펙 좋고 잘 나가는 남자를 세워둔 것도 일에서는 물론이고 사랑에 있어서도 어떤 판타지를 제공하려는 포석이다.

 

하지만 <혼술남녀>에는 또 하나의 기획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혼술(혼자 마시는 술)’이라는 최근 나홀로족들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새로운 나홀로 문화가 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시작 부분에 항상 진정석이 혼술을 하며 왜 자신이 혼술을 하고 그게 왜 좋은지에 대한 내레이션이 들어간다.

 

또한 이 드라마에는 학원 강사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업의 세계만이 아니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의 공부만이 살길인 그 현실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학원 강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만 그것이 보여주는 공통의 주제의식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통일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혼술남녀>는 여러 가지 트렌디한 요소들을 한 드라마 곳곳에 세워두었다. 물론 드라마가 다양한 측면의 이야기들을 던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만큼 이야기가 풍부하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이 많은 이야기들이 하나로 엮어지지 않으면 너무 산만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다. <혼술남녀>는 그런 점에서 보면 샐러리맨의 힘겨운 현실을 넣고 있지만 그것이 <미생>만큼 강렬하게 다가오지는 않고, ‘혼술문화를 담고 있지만 그 나홀로 문화가 어떤 함의를 갖고 있는지가 드라마의 메시지로서 전면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취준생들의 이야기 역시 하나의 에피소드로 등장할 뿐, 전체 이야기의 맥락으로 묶어지지는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건 멜로뿐이다. 결국 박하나와 진정석이 일로 엮어지다가 사랑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것은 아마도 혼술하던 진정석이 박하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는 그런 그림으로 귀결되지 않을까. 그런데 이것은 애초에 혼술이라는 새로운 나홀로 문화를 제시할 때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그림은 아닐 것이다. 진정석이라는 혼술하는 캐릭터가 어딘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인 개인주의자로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것이 오히려 시청자들이 바라는 이야기다.

 

<혼술남녀>에서 학원강사 민진웅은 학생들을 위해 항상 새로운 패러디를 준비한다. <베테랑>의 유아인을 흉내 내기도 하고,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를 따라 하기도 하며 심지어 <곡성>의 황정민과 김환희를 패러디하기도 한다. 뜬금없이 등장해 패러디하는 모습은 우습다. 그런 깨알 웃음은 드라마에서도 중요하고 그래서 민진웅이라는 배우는 이 드라마의 미친 존재감으로 세워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하나하나의 재미들이 어떤 주제의식이나 맥락으로 엮어지지 않을 때 드라마의 힘은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혼술남녀>의 잔 펀치들은 굉장히 많다. 그래서 그 자잘한 이야기들이 주는 잔재미들 역시 많다. 하지만 지금 <혼술남녀>에 필요한 것은 그런 잔 펀치, 잔재미가 아니다. 그런 잔재미들을 깔아놓고 그저 멜로로 엮어 놓기에는 그 소재들이 가진 무게가 작지 않다. 샐러리맨들과 취준생의 현실이 그렇고 그들이 어쩌다 혼술을 하게 됐는가 하는 그 문화적인 이유들이 그렇다. <혼술남녀>에는 잔 펀치만큼 묵직한 한 방이 절실하다

<혼술남녀> 박하선못생김을 연기하려 작정했나

 

지금껏 박하선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아예 작정하고 망가지는 모습이다. tvN <혼술남녀>에서 박하선이 연기하는 박하나는 노그래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노량진 장그래의 준말. 노량진 학원가의 스타강사인 진정석(하석진)이 붙인 별명이다.

 

'혼술남녀(사진출처:tvN)'

학원판으로 <미생>을 패러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혼술남녀>에서 박하나는 저 장그래가 그랬던 것처럼 치열한 학원가의 신출내기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원에서 알바를 하다 아예 강사로 주저앉았고 그 학원이 망하자 선배언니의 소개로 노량진에 입성했다. 어찌 보면 순수한 이 박하나에게 노량진이라는 세계는 단지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버텨내기 힘든 곳이다.

 

선배언니인 황진이(황우슬혜)는 강의보다 몸매를 더 드러내는 것으로 학생들의 시선을 잡아끌고, 민진웅은 <베테랑>의 유아인, <내부자들>의 이병헌을 흉내내가며 마치 개그 프로그램에나 어울릴 법한 강의로 학생들을 끌어 모은다.

 

입만 열면 고 퀄리티를 달고 사는 고쓰(고 퀄리티 쓰레기) 진정석은 스타강사답게 불필요한 것 다 필요 없고 100% 시험에 나올만한 것들만 가르쳐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을 줄 세운다. 노그래 박하나에게 진정석은 그래서 <미생>의 장그래를 챙겨줬던 오상식 과장 같은 존재다. 그래서 진정석이 박하나를 자신의 종합반에 넣어준 것이 어떤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그녀는 어떤 희망 같은 걸 가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학원가를 배경으로 한 <미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혼술즉 혼자 술을 마시는 새로운 세태를 포착해낸 드라마다. 즉 학원가에서의 <미생> 같은 치열함은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이라는 지점으로 귀결된다. 그 곳에서 진정석은 혼자 술을 마시고 박하나는 막내답게 회식에서 현란한 폭탄주 제조 실력을 선보이며 기꺼이 망가진다.

 

학원이라는 치열한 전쟁터에서 한 발 물러나 술에 취한 박하나는 혼자 술을 마시는 진정석의 영역을 술기운으로 침범한다. 그녀는 혼자 술 마시는 걸 청승맞다고 할 정도로 혼술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성격이 쓰레기라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혼자 마시는 술은 어찌 보면 그가 하루를 버텨내는 그만의 생존방식(자기힐링을 통한)으로도 보인다.

 

그 모든 것이 정돈된(그는 심지어 혈중 알코올 농도까지 체크하며 술을 마신다) 진정석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캐릭터인 박하나라는 존재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 술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남녀 관계와 직장 관계를 담아내는데 있어 중요한 관건이다. 박하나가 학원에서 민망할 정도로 박대당하고, 남녀 관계로서의 진정석 앞에서 한없이 오그라들면서도 술기운을 빌어 그의 완벽하게 정돈된 세계를 침범하는 건 그녀의 어리숙하고 자존감 바닥인 캐릭터 덕분이다.

 

박하선은 지금껏 다른 작품에서 보여 왔던 단아하고 단정한 모습을 아예 버리기로 작정한 듯 보인다. 박하나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되어 한껏 과장된 모습을 보여주고, 망가짐을 넘어서 못생김을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연기변신은 성공적이다. 그녀가 그간 갖고 있던 이미지를 확실히 무너뜨리고 있고, 그 과거의 이미지가 그녀의 발에 채우고 있던 족쇄를 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연기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분야가 코미디라고 했다. 그 이유는 코미디가 단지 웃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어떤 진정성 같은 걸 담고 있을 때 희비극의 쓸쓸함이나 슬픔 같은 것도 동시에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혼술남녀>는 적어도 박하선이라는 배우에게는 그래서 하나의 전기가 되어줄만한 작품이다. 망가지는 모습은 한없이 우습지만 그 이면에 남는 짠함은 그녀가 분명 진정한 코미디 연기의 세계로 들어왔다는 걸 보여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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