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바꾸는 일상, <알쓸신잡2>가 보여준 인문학의 쓸모인문학이 이토록 즐겁고 흥미진진한 것이라는 걸 이만큼 극적으로 보여준 프로그램이 있었을까. 물론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강연 형식의 프로그램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런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주로 강단 위에 세웠던 것과는 달리 tvN <알쓸신잡>은 우리의 일상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여행지를 정하고 그 곳을 여행하며 느낀 소회들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끄집어내는 그 과정은 우리에게 인문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이 있었는가를 보여줬다.

총정리편으로 미방송분을 편집해 마련한 <알쓸신잡2>의 마지막회는 그간 이 프로그램이 다녔던 곳과 그 곳에서 나눈 지식수다들을 전체적으로 관망하게 해주었다. 그 세세한 내용들이 갖고 있는 지식의 즐거움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을 푹 빠지게 했었고, 그래서 그 시간이 언제 이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는가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몰입했다. 가을에 시작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어느새 도달해 돌아보니 새삼 이번 편에서 우리가 주목했던 것들이 어떤 것이었는가가 새삼스럽게 보인다.

아마도 이번 시즌2에서 가장 다른 색깔을 가져온 인물은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아닐까 싶다. 그는 여행을 하거나 우리가 일상을 겪으며 그냥 지나치곤 했던 건축물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가 자주 쓰던 ‘시퀀스’라는 말은 이제 일반 시청자들도 ‘공간과 건축물을 경험’하면서 염두에 두게 된 단어가 되었다. 일종의 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는 공간 하나하나를 겪는 그 과정들은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라 어떤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것. 그걸 들여다보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 일상 속 건축물들을 다른 시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뇌 과학자인 장동선 박사가 조곤조곤 들려주던 뇌 과학에 대한 지식들도 빼놓을 수 없다. 유현준 교수가 건축물이라는 외부 공간을 새롭게 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했다면, 장동선 박사는 인간이 하는 어떤 행동들이 갖는 의미들을 새삼 생각해보게 만드는 시각을 제시해줬다. 하지만 장동선 박사가 이번 시즌2에 부여한 건 그러한 지식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많은 지식들이 주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결국 “살면서 어떤 게 가장 중요한가”를 묻는 것이 인문학이고 그것을 몸소 실천해온 인물로서 그가 주는 온기는 지식의 궁극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함께 한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특유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에 갈수록 능숙해지는 방송의 묘를 더해 <알쓸신잡2>가 균형 잡힌 프로그램이 되게 해주는데 일조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이 모든 걸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을 더 많이 보였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역시 음식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나 역사 관련 이야기들을 보태 프로그램을 더 풍부하게 해주었다. 사실상 두 사람의 배려와 주고받음이 있어 새롭게 들어온 출연자들과의 조화로운 수다(?)가 가능할 수 있었다.

시즌1도 그렇지만 시즌2도 역시 누가 그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새로운 시각이 하나씩 열린다는 걸 <알쓸신잡2>는 보여줬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에 즈음해 돌아본 시즌2를 통해 시청자들은 벌써부터 시즌3를 기대하게 되고 거기에는 또 어떤 다른 인물이 들어와 우리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줄 것인가를 기대하게 된다. 새해에 새로운 얼굴들을 <알쓸신잡3>로 만날 수 있기를.(사진:tvN)


종묘보다 넘치는 사직, '알쓸신잡2' 서울에 채워야할 것들


tvN <알쓸신잡2>가 본 서울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야기는 조선에 한양을 수도로 세운 정도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다. 북방 외세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천혜의 요새(?) 같은 한양에 수도를 세운 정도전. 당시만 해도 텅 비어있던 한양은 이제 몇 백년 만에 인구 천 만이 모여 사는 곳이 되었다. 유시민 작가는 숙정문과 남산에 올라 아마도 당시 정도전이 내려 봤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만일 이 달라진 모습을 정도전이 봤다면 “인생 최대의 희열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인구 천 만이 모여 살게 된 그 변화된 서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건 뿌듯함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컸다. 황교익이 지적한 대로 서울은 과거 정도전이 꿈꿨던 모습과는 달리 ‘이주민의 도시’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외지인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 되었고, 그렇게 인구가 집중되면서 효율은 떨어지는 도시가 되었다. 유현준 교수는 이런 근대화를 가능하게 한 건 ‘보일러’였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말했다. 과거 온돌 생활에서는 2층 이상의 집이 불가능했는데 보일러가 들어와 고층 아파트가 가능해졌다는 것.

유시민 작가 역시 서울이 ‘화석에너지와 대량생산시스템’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걸 지적했다. 고층 아파트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인구를 수용하고, 그들이 모두 같은 패턴으로 일하고 쉬고 움직이기 위한 교통시설이 만들어진 것이 모두 화석에너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고, 그 시스템은 대량생산을 지향했다는 것. 이 이야기는 유현준 교수가 지적하는 서울의 도시계획 실패 이야기와 맞닿는 것이었다. 이렇게 주거와 일터를 나누고 일제히 동시에 같은 시간에 일하고 같은 시간에 쉬는 시스템 속에서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서울의 시스템 속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이었다. 피맛골을 예로 들어 사라져가는 골목길들은 그저 길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 공간이 갖던 많은 추억들이나 인간의 흔적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미국의 경우 건물은 고치거나 바꿀 수 있어도 도로는 함부로 바꿀 수 없게 되어 있다는 유현준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그저 자본화되어가고 있는 서울이 보존해야할 것들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했다.

장동선 박사가 다녀온 세운상가의 재탄생은 이런 과거와 현재의 공존 그리고 지향할 미래를 모두 품어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변화의 한 예처럼 보였다. 한때는 부의 상징이었던 곳이었으나 강남이 개발되고 용산전자상가가 생기며 점점 낙후되어가던 그 곳이 지금은 ‘청년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과거의 장인들과 현재의 청년들이 콜라보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변화란 단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관점에서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변용할 건 변용해야 한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줬다.

유시민 작가는 이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가치’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냈다. 정도전이 처음 한양을 수도로 세웠을 때 만들었던 종묘와 사직이 각각 당대의 ‘도덕적 가치’와 ‘세속적 욕망’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걸 먼저 지적한 유시민 작가는 그렇다면 21세기의 우리에게 종묘와 사직은 무엇인가 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유시민 작가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21세기의 종묘일 것이라며 민주화를 상징하는 한국기독교회관, 명동성당 등을 언급했다. 그리고 황교익은 광화문 광장이 그런 가치를 하나로 모으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편 21세기 사직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마천루’라고 말했고, 유현준 교수는 ‘아파트’라고 했으며 황교익은 식당이라고 해서 저마다 현재적 욕망을 상징하는 것들을 각각의 입장에서 거론했다. 유시민 작가는 우리가 저마다의 사직단을 품고 살아가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돈’이라는 걸 짚어냈다.

<알쓸신잡2>가 들여다 본 서울은 21세기 종묘와 사직단으로 표징되듯, 민주화의 흔적들이 중요한 가치로 남은 공간이면서 동시에 돈과 물질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곳이었다. 아쉬운 건 21세기 종묘의 가치들을 압도하는 사직단들에 의해 사라져가는 것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직단들이 과거를 밀어내고 전면에 포진하면서 이제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좁은 골목길로 자그마한 온기를 찾아 모여드는 도시인들의 모습이 못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물론 그 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는 또 다른 모습의 사직단이 되어가고 있지만.(사진:tvN)

‘알쓸신잡2’, 잡학이어서 가능한 지식의 융복합

제주도 2편으로 방영된 tvN <알쓸신잡2>에서 정방폭포를 갔다 온 장동선 박사는 그 곳의 지명이 왜 ‘서귀포’라 명명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저 ‘진시황의 불로초 원정대’를 이끌고 온 서복이 이 곳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서귀포’라 불렸다는 설. 그런데 이야기는 불로초가 상기시키는 ‘영생’에 대한 문제로 옮겨간다. 황교익과 유시민이 유한한 삶이야말로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영생’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 말한 반면, 장동선 박사와 유현준 교수는 그러한 욕망이 우리를 진보하게 만들어 준다는 다른 의견을 낸다. 

결국은 사멸해가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가진 한계와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장동선 박사는 정방폭포의 그 추락과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 이야기를 덧붙인다. 우리의 몸이든 자연이든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그 변화를 보이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 그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다. 결국 영생은 ‘제한과 선택이 없는 삶’으로서 ‘인간적’이지 않고 또 “지루해서 자살자가 많아질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왔다. 유현준 교수는 인간이 영생의 욕망을 꿈꾸기 때문에 집을 지고 건축물을 남기려 한다고 말했고, 장동선 박사는 ‘제한과 선택이 없는 삶’이 주는 지루함을 뇌 과학의 입장에서 도파민의 생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풀어냈다. 

사실 수다라는 것이 본래 그러하듯이 이야기는 본래 시작했던 곳에서 계속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 그래서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알쓸신잡>의 이런 수다가 그리 큰 이물감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이런 중구난방의 잡학처럼 흘러가는 이야기를 한 사람의 강연에서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어쩌면 하나의 체계가 없다는 식으로 질타를 받거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알 수 없어 지루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쓸신잡>은 다르다. 아예 대놓고 예능의 틀을 가져왔고,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수다로서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마구 풀어놓는 걸 방법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그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가 오히려 재밌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가 제주도에 가서 보곤 했던 정방폭포의 이야기가 서복 원정대와 진시황, 불로초, 영생, 엔트로피 이야기를 거쳐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는 그 과정들이 흥미진진해진다. 앞과 뒤를 이어보면 정방폭포 이야기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 이야기까지 풀어낸 것이니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것.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알쓸신잡>은 애초에 ‘잡학’이라고 프로그램의 성격을 규정한 바 있다. 잡학은 이런 저런 학문 분야들을 한데 쏟아놓는다는 의미일 게다. 그런데 바로 이런 규정 덕분에 <알쓸신잡>은 알게 모르게 지식의 ‘융복합’과 ‘퓨전’이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내는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게 되었다.

이런 일은 여기 출연하는 출연자들의 변화를 통해서도 읽힌다. 유시민 작가는 본래 텍스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여행지에서 항상 글을 챙겨 읽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추사관을 다녀와 그 건물이 그 유명한 세한도의 풍경을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새삼 건물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건축을 말하는 유현준 교수의 영향일 게다. 반면 유현준 교수 역시 다빈치 박물관에 가서는 건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곳을 설명하는 글들을 읽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것 역시 유시민이 말하는 텍스트의 중요함을 그도 알게 됐기 때문일 게다. 

해부학자이자 과학자, 예술가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역시 금석학의 대가인 과학자이자 문인이고 예술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여러 분야를 종횡무진했던 융복합의 대가들이었다. 그 때는 몇몇 천재들이 홀로 그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겠지만, 지금은 보통의 범인들도 저마다의 분야를 가져와 대화를 통해 그 융복합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알쓸신잡>은 그 예능이 가진 열린 틀거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융복합이 얼마나 놀라운 지식의 확장을 가져오는가를 보여주고 있다.(사진출처:tvN)

‘알쓸신잡2’, 우리가 봐온 제주와 다른 슬픈 제주의 역사

최근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여행을 소재로 잡으면서 가는 곳이 제주다. JTBC <효리네 민박>은 대표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제주도의 숨겨진 비경들과 다양한 즐길거리, 먹을거리들까지 보여준 바 있다. 그래서 제주도 하면 우리가 먼저 떠올리는 건 ‘힐링’이다. 그렇게 잠시 동안이라도 훌쩍 도시를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눈에 담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tvN <알쓸신잡2>가 간 제주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유현준 교수가 돌하루방을 보러 박물관에 갔다가 문득 떠올린 모아이 석상 이야기에서 엉뚱한 곳에 욕망을 집중하다 결국 섬 전체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사연을 떠올리고, 돌아 나오다 우연히 루시드 폴의 공연을 감상한다. 유현준 교수는 루시드 폴의 노래를 들으며 하루의 피로가 녹아 없어지는 느낌을 받았다는 감상을 전했다. 

그렇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수다가 시작된 저녁, 루시드 폴이 손님으로 찾아왔고 이야기는 제주의 비극적인 사건이었던 4.3 사건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리고 루시드 폴이 감귤농사를 시작하러 제주에 내려와 살면서 접한 4.3사건의 소회를 담은 ‘4월의 춤’에 담긴 가사를 전해준다.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누군가의 꽃이었을 테니...’라는 가사가 가슴에 콕 박힌다. 

당시 30만 인구였던 제주도에서 무려 3만 명이 죽음을 맞이했던 비극적인 사건. 외부세력에 의한 죽음도 있었지만 바로 같은 동네에서 아는 사람에 의해 죽음을 맞은 비극도 겹쳐져 있어 도무지 그 감정적 고리들을 풀 수 없었던 사건. 4.3 위령성지를 다녀온 황교익은 그 곳에 세워진 위령비에 적혀진 명단을 보며 무려 2살배기 아기도 있었다는 가슴 아픈 사연을 전했다.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던 남로당 조직의 무장공격과 이를 진압하려는 진압군 사이에서 무고한 죽음을 맞이했던 제주도민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6.25로 이어져 이 땅 곳곳에 4.3사건을 재현시키게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힐링이나 관광지로 떠오른 제주지만, 3,40년 전만 해도 제주는 수탈과 고난의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는 걸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은 확인시켜줬다. 거상 김만덕의 위대한 기부 이야기 속에는 태풍과 기근과 가뭄으로 척박한 삶을 살아내야 했던 제주도민들의 아픔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유시민은 조선시대에 제주도에서 “귤은 재앙덩어리”였다고 했다. 귤이니 말총 같은 진상품을 수탈해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귤나무 하나하나가 관리대상이었고 만일 귤 하나라도 사라지면 물어내거나 경을 치르는 일이 일상이었다는 것. 결국 살기 어려워진 도민들이 육지로 떠나기 시작하자 이주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그들을 고립시키기도 했다. 유시민은 제주도를 “유배, 소외, 차단, 억압, 고립”의 지역이었다고 정리했다.

<알쓸신잡2>가 들려준 제주도의 역사는 우리가 주마간산식으로 봐왔던 제주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알쓸신잡2>는 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말미에 루시드 폴의 ‘4월의 춤’을 배경음악으로 깔아주며 출연자들이 그 날 지나왔던 제주 곳곳의 풍광들을 담담히 영상으로 편집해 보여줬다. 만일 이런 아픈 역사의 이야기를 모르고 봤다면 그저 예쁘게만 보였을 그 풍광들이 새로운 느낌으로 전해졌다. 슬픔과 아픔이 더해져 더 아름다운 그런 느낌. 루시드 폴의 ‘4월의 춤’의 첫 구절이 새삼 달리 들린다. ‘바다는 아무 말 없이 섬의 눈물을 모아 바위에 기대 몸을 흔들며 파도로 흐느낀다지.’(사진:tvN)

‘알쓸신잡2’, 슬픈 역사는 어떻게 기억되는가

tvN <알쓸신잡2>에서 목포에 간 유시민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찾았던 장동선 박사가 그의 특별했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유시민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4번의 대선 도전에 담겼던 결코 쉽지 않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이상적인 지향을 가지되 현실적인 실천을 하려 했던 그에게 팬과 안티가 공존했던 그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다. 유시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너무 빨리 온 분”이라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목포만 오면 슬프고” 또 “정서적으로 흔들린다”고 말한 이유였다.

목포 구시가지를 찾았던 유희열과 유현준 교수는 거기 지금도 존재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건물 등에 남겨진 아픈 역사를 이야기했다. 노약자나 임산부는 관람 자체를 조심하라는 문구까지 적혀 있는 당시 참혹했던 역사를 기록한 사진을 둘러보며 유희열은 탄식을 터트렸다. 유시민은 “역사라는 건 다분히 내가 산 공동체가 걸어왔던 흔적에 대해서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와 관계가 되어 있다”며 “그래서 되도록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역사를 정리하고 시대 구분을 하는 경향들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 수탈을 민영화한 동양척식주식회사 같은 건물을 볼 때 우리는 “양가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즉 그것을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과 그걸 보존해야 한다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 여기에 대해 유현준 교수는 그 건물이 무엇이든 “인간이 만들어낸 흔적이고 결과물이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든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유희열은 그 날 그 곳을 찾았던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건물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는데 거기서 아버지가 소녀상 옆에 아이를 앉혀놓고 사진을 찍고 있더라는 것. 지금의 부자와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그 뒤편에 있는 구 영사관 자리가 한 장면에 들어 있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 이상했다고 했고 유시민은 “그게 역사”라고 했다.

이 날의 이야기는 특히 아픈 역사가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되며 그것이 또 훗날 어떤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가에 대한 것처럼 느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그 힘겨운 삶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좀 더 민주화된 우리 사회가 가능했을 것이고, 동양척식회사가 보여주듯 그 아픈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평화에 대한 의미를 찾아내고 있을 것이었다. 

황교익이 박물관에서 접한 ‘밥그릇’에 대해 이야기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밥 그릇 크기를 제한했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는 것도 거기 남아있는 역사로서의 밥그릇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장동선 박사가 말한 갑각류의 성장 이야기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 것도 이 날의 아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와 맥을 같이 했다. 갑각류는 겉이 딱딱하기 때문에 허물을 벗으며 성장하는데 그 때가 가장 약해져 있을 때라는 이야기. 즉 누군가 “성장하는 때는 오직 가장 약해져 있는 바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아픈 역사는 그렇게 성장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

이 날 진도까지 갔던 유시민은 그 곳에서의 즐거운 한 때를 보여줬다. 진돗개 공연장을 찾아 경주부터 댄스까지 진귀한 볼거리를 만끽했던 그 경험을 털어놨고 소치 허련 선생이 그림을 그렸다는 운림산방의 멋진 풍광을 설명했고 울돌목에 여전히 울려 퍼지는 소용돌이 소리에서 열 세척의 배로 적선 삼백 척을 상대했던 명량해전을 떠올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유시민이 진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팽목항에 여전히 남아있는 세월호의 아픔 때문에 사람들이 진도대교를 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진도사람들은 “더 아픈 사람들이 있음을 알기에 (자신들의 어려움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 유시민은 “진도는 정말 좋은 곳”이며 “진도대교와 팽목항의 아픔으로만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슬프고 아픈 역사는 그렇게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겨질 것이지만, 또한 우리는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 유시민이 목포에서 굳이 진도까지 간 그 행보에는 그런 뜻이 담겨있었다.

(사진출처: tvN)

나 PD님, 이 박사님들 그대로 '알쓸신잡2' 가능한 거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한 사람의 감성, 기운 같은 것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거든요. 한 사람의 뇌라는 것이 나의 뇌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관계로 뇌가 형성되는 거잖아요. 가장 기뻤던 게 김영하의 뇌가 나의 뇌로 들어온 것이에요.”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 시즌을 마감하며 나눈 마지막 이야기에서 황교익은 이 프로그램을 하며 느낀 소감을 그렇게 전했다. 그러고 보면 <알쓸신잡>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큰 어떤 것을 준 프로그램으로 남는 건 바로 이 황교익이 말하는 그들의 뇌와 했던 ‘교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곤 했던 것들을 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부지불식간에 그 감성과 기운 속으로 우리도 슥 들어갔던 그 기적 같은 경험의 순간들. 

그러니 “행복한 가족”의 느낌을 공유하게 된 건 이 지식수다 여행의 소감으로 그 느낌을 전한 정재승 박사만이 아니었다.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들도 그들과 함께 뇌를 나눈(?) 가족 같은 친근함과 즐거움, 놀라움과 경외감 같은 걸 똑같이 느꼈으니까.

유시민 작가는 그 마지막 소감으로 ‘소중히 여기며 사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뭔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참 중요한 거구나. 여기 참가한 분들이 각자 보니까 뭘 되게 소중히 여기는 게 있더라구요.” 

과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며 박물관을 소중하게 들여다봤던 정재승 박사,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했던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언어 수집가’로서 세상의 모든 것들의 언어를 담아내려 했던 김영하 소설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삶의 정체에 대해 무수히 고민하고 올바른 삶과 행복한 삶에 대해 늘 호기심을 갖던 유시민 작가. 또 음악을 사랑하고 그 음악이 주는 행복감처럼 함께 하는 이들을 배려했던 빼놓을 수 없는 유희열까지. 저마다 소중한 것들이 있고 그래서 그 소중한 것들을 궁구하며 그것을 대화를 통해 공유하려는 모습이 어쩌면 <알쓸신잡>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김영하 소설가는 역시 소설가다운 통찰력으로 <알쓸신잡>이 가진 핵심적인 가치와 그 기적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말 빛나는 것들은 대화를 통해서 나오거든요. 각자 생각들을 많이 하시죠. 그런데 대화를 통해서 얘기하는 도중에 더 빛나는 것들이 많이 나왔거든요.” 결국은 지식수다에서 우리는 ‘지식’에 방점이 찍힌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수다’라는 장치가 더 중요했을 수 있다는 걸 김영하 소설가는 콕 집어냈다.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가 좀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알쓸신잡>만 같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알쓸신잡>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의 축소판이고 우리네 인간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여정을 담았다. 낯선 이들이 서로 만나 낯선 곳을 일정 시간 여행하며 그 안에서 각자 소중하게 느꼈던 경험들을 함께 모여 나누고 공유하면서 ‘더 빛나는 것들’을 끄집어내는 과정.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게 해주지 않을까. 정말 시즌 하나로 끝내기엔 아쉬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나영석 PD가 다시 한 번 놀라운 마법을 발휘해 이 박사님들 그대로 새 시즌으로 돌아오기를.

‘알쓸신잡’, 유시민이 분노한 시대착오적 낙화암 소개 

“지금 여러분이 이용하고 있는 이 강은 백마강으로 낙화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의자왕 20년에 백제가 당나라로 하여금 멸망할 때 적군의 노리개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여 이렇게 낙화암에서 삼천궁녀가 치마폭에 얼굴을 감싸고 백마강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는 이야기처럼 우리 민족사의 여인들은 백의민족이며 정절을 중요시하는 순박한 여인들로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tvN <알쓸신잡>이 떠난 여행에서 낙화암을 둘러보는 유람선에 흘러나오는 안내방송의 내용에 유시민은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의자왕과 삼천궁녀의 이야기 자체가 무려 1500년 간이나 ‘가짜 뉴스’로 내려오며 진짜 역사적 사실인 양 굳어져 가고 있던 사안이 아닌가. 역사란 팩트 그 자체가 아니라 승자의 기록일 뿐이라는 건 이제 누구나 다 인정하는 일이다. 이렇게 달라진 역사관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낙화암을 둘러싼 의자왕의 이야기가 여전히 승자들의 윤색에 의해 지금까지도 그대로 믿어지고 있다는 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시민은 사실 ‘백마강’이라는 이름 자체도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며 ‘조룡대’ 이야기를 꺼냈다. 용을 낚았다는 뜻을 가진 조룡대 이야기는 사실상 당시 당나라 장수였던 소정방의 관점으로 기술된 신격화된 무용담으로 지금껏 내려오고 있다는 것. 무왕이 용이 되어 지킨다는 그 강에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해서 그 용을 낚았다 해서 조룡대란다. 그래서 그 강의 이름도 백마강이라는 것. 어떻게 이런 식의 신격화된 해석들이 지금까지도 안내판에 버젓이 담겨 그 곳을 찾는 이들이 읽게 내버려두고 있게 된 것일까. 

소설가 김영하는 기분 나쁜 일이지만 점령군 장군에 대한 숭배는 늘 있어왔던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을 신으로 숭배하는 일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 정재승은 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로 농담을 섞어 아픈 현실을 꼬집었다. 과거에 역사로 기술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그것이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고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덧붙였다. 

그런데 저 낙화암에 대한 유람선에서의 안내방송에 담긴 건 단지 역사적 사실의 왜곡 문제만이 아니었다. 갑자기 등장하는 ‘정절’ 이야기와 ‘백의민족’ 게다가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러한 여인을 아내로 맞은 우리 남자들은 퍽이나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소개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여성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에나 먹힐 이야기가 지금도 버젓이 안내방송에 나오고 있다니...

사실 이런 일들은 우리네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 조금만 생각하면 거기 담긴 심각한 문제들이 드러나지만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문제조차 되지 않고 지나치는 것. 이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도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두니까 있는 대로 그냥 흘러가는 거야. 누가 문제제기를 해야 바뀌어지지.”

<알쓸신잡>은 이런 사안들을 이미 저 강릉의 오죽헌에서도 발견한 바 있다. 신사임당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율곡의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진 안내판. 조금 있는 신사임당 이야기도 그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기록된 글들. 세상은 이미 바뀌었는데 그 세상 안에 들어차 있는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은 여전하다. 그 일상에 가득한 문제들을 계속 끄집어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일은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나가야 할 중차대한 일들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인문학을 그저 고전을 읽고 이해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인문학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그 고전들이 현재에 어떻게 적용되고, 그래서 현재의 문제들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에까지 적용될 때 비로소 그 인문학은 효용성을 갖는 것이 아닐까. <알쓸신잡>이 그 많은 인문학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의 문제들을 직접 발로 경험하며 끄집어내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 그래야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

‘알쓸신잡’, 삼겹살 하나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아마도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얘기해주지 않았다면 무심코 집어먹고 있는 삼겹살에도 이런 씁쓸한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걸 우리는 잘 몰랐을 지도 모른다. 경주로 간 tvN <알쓸신잡>. 아침에 일어나 베이컨을 굽고 모카커피를 내리면서부터 나온 수다에서 황교익은 베이컨이 우리나라에서 특히 비싼 건 삼겹살이 비싸서라고 밝혔고, 그 이야기는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대량 양돈사업을 했던 시절의 불행한 역사 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의 양돈사업이 일본 수출을 위해 만들어지면서 돼지의 안심, 등심이 수출되고 나면 남은 부위들을 우리가 소비하면서 삼겹살, 족발, 머릿고기, 내장, 껍데기 같은 것들을 먹게 됐다는 것.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김영하는 모카커피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함께 나눠 마시며 얼마 전 봤다는 영화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다. 마피아 같은 흉악범들이 교도소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보스가 독방에 들어가는데 아무 것도 없는 그 곳에 유일하게 있는 것이 바로 모카 포트라는 것. 그래도 커피 한 잔을 마시게 해주는 것. 그것이 이탈리안인들이 생각하는 인권의 최전선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만큼 그들이 커피를 사랑한다는 것. 

우리에게 음식은 그저 때마다 챙겨 먹는 어떤 것 정도로 인식되어 왔지만 사실 그 안에는 많은 문화적인 배경들이 숨겨져 있다는 걸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전날 밤 <삼국유사>의 설화와 전설 이야기를 하다, 문득 ‘단군신화’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나오게 된 쑥과 마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쑥과 마늘일 것이다라고 생각했지만 황교익은 그것이 마늘이 아니라 사실은 달래였을 거라고 추정했다. 그리고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어 먹을 게 그리 변변치 못했던 우리네 선조들에게 나물들 중 쑥과 달래를 먹은 이들이 생존한 그 이야기가 ‘단군신화’ 속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인문학 하면 굉장한 철학이나 두꺼운 책을 먼저 연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알쓸신잡>이 드러내고 있는 건 인문학적 지식이라는 것이 사실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이 프로그램이 인문학을 소재로 하면서도 여행이라는 틀을 가져온 것은 그래서 단지 그것이 나영석 PD의 단골소재이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이 점이 보여준다. 여행을 통해 우연히 겪게 되는 일들과 보게 되는 것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흥미로운 지식으로 바뀌어가는 그 신비함을 찾아보겠다는 것. 그것이 이 프로그램이 굳이 여행의 틀을 갖게 된 진짜 이유가 아니었을까. 

경주하면 모두 유적들과 능을 떠올리지만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며 엑스포와 놀이동산을 찾은 정재승은 그 엑스포라는 것이 세계의 과학사를 발전시킨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는 걸 이야기해준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이 산업적으로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뽐내기 위해 개최했다는 런던엑스포에서 수정궁이 지어져 유럽전역에 화제가 되고, 그 경쟁국들도 서로 기술을 뽐내기 위해 엑스포를 열게 되면서 과학이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곳에 가면 흔히 있는 핫도그와 콘 아이스크림 역시, 그 역사가 엑스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음식이 달리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작은 일상의 자잘한 경험들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사실 숨겨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걸 <알쓸신잡>은 굳이 드러낸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 가끔 보곤 하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지나치게 되는 사당이나 비각 같은 것들에도 굉장한 역사적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유시민이 찾은 최진립 장군의 비각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모두 의병으로 참전한 최진립 장군의 “이길 순 없어도 (나라를 위해) 죽을 순 있다”는 이야기나, 돌아가라는 걸 따르지 않고 그와 함께 끝을 같이한 노비 옥동과 기별을 위한 제사를 지금까지 그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그 안에 담겨있었다.

이처럼 우리가 <알쓸신잡>을 보며 어딘지 ‘신비하다’고 느끼게 되는 지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던 손과 발에 툭툭 채였던 많은 것들이 저마다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는 것. <알쓸신잡>의 숨은 가치와 재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알쓸신잡’, 무엇이 이렇게 신비한 느낌을 줄까

‘알아두면 쓸데없는’ 이야기 같다. 경주로 간 tvN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 거대한 능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릉원에서 화려한 금관을 보며 그 많은 금들이 어디서 왔을까를 상상하다, 당시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경주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역을 통해 들어온 금이라는 것. 그러더니 불쑥 박물관의 우물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다가 유물들 속에서 소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말의 흔적만 있더라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의 이야기가 나오고 박물관 유물들은 지배계급의 것밖에 없다는 이야기로 흐르더니 천마총의 천마장식은 지금으로 치면 페라리의 엠블렘 같은 것이 아니었겠냐는 의미심장한 농담이 덧붙여진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경주가 고향인 유시민은 예전에는 그 유적들에서 뛰어 놀았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제한된 수의 사람들을 감당할 수 있었던 유적들이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너무 많이 늘어난 ‘호모 사피엔스’의 문제로 귀결된다.

유적에서도 느껴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들의 격차나, 너무 인구가 늘면서 이제는 뛰어 놀 수 없고 멀리서 바라 봐야만 하는 유적들의 이야기는 묘한 쓸쓸함을 만들어낸다. 경주에도 새롭게 생겨 커져 가고 있는 황리단길에서 원주민들이 오히려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러니가 거론되고, 그걸 막으려는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아무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유시민의 말에, 그러나 그것이 슬럼화된 도시를 다시 깨어나게 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에서 단순하게 바라볼 문제가 아니라고 김영하가 덧붙인다. 

천년 전의 신라인들과 지금 우리들이 생물학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생각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는 걸 유시민이 지적하자 정재승은 그것이 뇌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말한다. 뇌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을 한다는 것. 그래서 만일 지금 신라인이 여기로 와서 우리와 이야기를 해도 금세 말이 통할 것이라고. 

이런 걷잡을 수 없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희열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그 사실에 “속상하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런 유희열에게 김영하는 한 가지 희망 섞인 이야기를 덧붙인다. 마침 녹화가 있던 날이 6월 10일. 6.10항쟁 30주년이라는 걸 상기시킨 후, 30년 전 이런 날이 올 거라고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짧은 30년 사이에 나아진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알쓸신잡>의 지식 수다가 ‘알아두면 쓸데없는’ 것처럼 마구 쏟아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신비한’ 느낌을 갖게 되는 건 이래서다. 그 많은 수다들이 그저 맥락 없이 마구 나온 것 같지만 많은 것들이 이어져 있고, 지금 그 작은 공간에서 몇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 속에는 지금도 흘러가는 수천 년 인류 역사의 흐름이 담겨져 있다. 

그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광경 자체가 신비롭게 다가온다는 것. 정재승 교수가 말했듯 어찌 보면 이 우주에서 먼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우리들이 그 우주를 이야기한다는 데서 오는 신비함이 그것일 게다. 유시민 작가는 농담을 더해 이를 ‘먼부심(먼지의 자부심)’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끼게 되는 알 수 없는 신비함은 바로 이 먼부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천년 전 달을 보며 살았을 신라인들의 삶과, 천년 후 같은 달을 보며 나누는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는 신비한 느낌.

‘알쓸신잡’ 황교익과 유시민이 오죽헌에서 격분한 까닭

“어 이것도 율곡이네?” tvN <알쓸신잡>이 떠난 강릉 여행에서 오죽헌을 찾은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는 다소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오죽헌을 소개하는 안내문부터 곳곳에 신사임당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고 온통 율곡 이이의 흔적들만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헌에서 신사임당은 ‘율곡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했다. 

'알쓸신잡(사진출처:tvN)'

‘현모양처’니 ‘우리나라 어머니의 사표’ 같은 안내문의 문구를 보며 황교익은 “이런 게 문제다. 여성상을 어머니로만 한정 시키는 거지.”라고 했고 유시민은 “훌륭한 정치인일 수도 있고 예술가일 수 있는데 하필이면 왜 어머니냐”고 안타까워했다. 또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고 있다’라는 문구나 ‘성품이 어질고 착하며 효성이 지극하고 지조가 높았다’ 같은 말들이 “다 봉건적”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은 이 안내문을 보면 “신사임당에 생애에 대해 제대로 알 수가 없다”며 “그 분의 생애를 짧은 글에 압축해야 하는데 율곡이 다”라고 꼬집었다.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 한 여성이 어떤 목표와 소망을 가지고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삶을 살았고 그 삶이 우리에게 지금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가”하는 내용이 안내문에 있어야 한다며 “고쳐주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그 날의 지식 수다를 털어놓는 자리에서도 유시민은 “신사임당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나고 자부심이 굉장히 강했고, 남편과의 관계를 보면 당시 축첩제도에도 무척 비판적이었고,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몹시 강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어머니였죠. 율곡의 어머니라는 건, 신사임당이라는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여러 면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누구의 어머니로, 그것도 어떤 성공한 남자의 어머니로 축소해서 온 국민에게 선보인다는 것이 상당히 그렇다”고 말했다. 

이것은 신사임당이 조선시대에서도 여성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그만큼 힘겨운 삶을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것이 지금까지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유시민과 황교익이 격분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여전히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로서 신사임당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부속적인 존재로 보는 시선이 이렇게 공공연하게 문화유적의 안내문에 담겨 있다는 것. 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노릇인가.

이 날 강릉에서 벌어진 지식 수다에서 유독 주목하게 된 건 뛰어난 학식과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묻혀 버리고 왜곡되었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신사임당과 더불어 강릉에서 화제에 오른 인물은 허난설헌이다. 허균과 허난설헌의 생가를 다녀온 그들은 조선시대의 천재시인이었던 허난설헌의 결코 쉽지 않았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쓸 정도로 누릴 것을 누리며 살았지만, 허난설헌은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문집 자체를 중국인이 먼저 묶을 정도로 여성이 차별받는 조선사회에서 숨막혀 했다. 유시민은 “허난설헌은 그 재능이 삶의 고통”이 됐다며 “그게 병이 되어” 27살의 나이에 일찍 돌아 가셨다고 했다. 김영하는 허난설헌이 나중에는 도교에 영향을 받아 “이 잘못된 세상에 잠시 다녀갑니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황교익은 이날 버스를 타고 강릉으로 가며 “역사를 보는 시각은 현시대의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물론 과거의 역사도 잘못된 부분이지만, 그런 잔재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안내문 문구 속에 담겨 부지불식간에 우리의 시각을 봉건적 틀에 묶어두고 있다는 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죽헌에서 유시민과 황교익이 보인 격분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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