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관람가', 메이킹부터 영화, 평가까지 전부를 본다는 건만일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봉만대 감독이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를 봤다면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봉만대 감독하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19금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중풍을 겪는 아버지와 두 아들의 짠한 여행기를 담은 이 영화가 주는 감흥을 100% 느끼긴 어려웠을 가능성이 높다. 볕이 드는 곳을 의미하는 <양양>이라는 제목에서조차 ‘김양’을 먼저 떠올리는 게 봉만대 감독이라는 이름이 만들어내는 선입견일 수 있으니.

'전체관람가(사진출처:JTBC)'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JTBC <전체관람가>는 그저 영화만 달랑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물론이고, 영화 상영 후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나누는 자리까지 말 그대로 영화의 ‘전체’를 관람하는 시간이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체관람가>라는 제목은 누구나 다 관람할 수 있는 등급의 영화라는 뜻은 물론이고,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 그러하듯 감독들 모두가 모여 함께 관람한다는 뜻과 어쩌면 메이킹부터 평가까지 영화 전체를 모두 관람한다는 의미도 들어있다고 여겨진다.

그 과정을 보니 봉만대 감독이라는 인물이 다시 보이고, 그가 만든 <양양>이라는 영화가 주는 감흥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19금 은퇴했다”고 강조하는 봉만대 감독이 이 영화는 ‘휴머니즘’이라고 말할 때 많은 이들이 웃음을 지었던 건 그게 과연 진짜일까 하는 생각들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자 봉만대 감독은 그 제작과정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사람 냄새’를 풍겼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던 촬영이 바닷가 장면에서 갑자기 몰아닥친 비바람으로 난항을 겪기 시작하자 봉만대 감독의 진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촬영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강한 비바람 속에서도 지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스텝과 연기자들 하나하나를 챙기는 모습은 이 감독이 가진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그런 봉만대 감독과 스텝, 연기자들의 마음이 통했던지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그치고 햇볕이 나오자 오히려 촬영 현장은 활기를 띠었다. 그것은 마치 이 영화의 제목이 그렇고 그 감성이 그러하듯이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그 순간을 기적처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봉만대 감독의 두 아들이 참여한 마지막 환상 신에서 이 영화의 가장 찡한 명장면이 탄생했다. 아버지 역할을 하는 임하룡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아들들에게 그의 품에 안기라는 지시를 내렸던 것. 갑작스레 자신의 품안으로 뛰어드는 두 아이들을 안으며 아마도 임하룡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뭉클함에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렸고, 그걸 보는 감독도 눈물을 흘렸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장면을 시사하던 감독도 배우도 눈물을 흘렸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이어진 평가의 자리에서 감독들은 15분이라는 짧은 시간 때문에 편집된 장면들로 인해 영화의 몇몇 디테일한 면들이 부족했다는 걸 지적했지만, 그럼에도 그 영화가 준 감동과 그 영화 제작 과정에서 봉만대 감독이 보여준 훈훈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영화 전체의 제작과정과 상영을 더해 감상평까지를 담아내자 비로소 봉만대 감독의 면면들을 제대로 알 수 있었고, 그래서 그 영화가 주는 감흥도 더해질 수 있었다.

이건 아마도 <전체관람가>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일 게다. 사실 단편영화가 주는 감흥은 그 짧은 시간으로 인해 슥슥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장편영화가 한편의 소설 같다면 단편은 시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은 짧아도 그걸 곱씹어보는 과정이 없으면 너무 밋밋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것도 봉만대 감독 같은 이름만으로도 그 영화의 분위기가 어떨 것인가를 선입견으로 갖게 되는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전체관람가>는 그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그 앞과 뒤를 모두 보여줌으로써 그 영화 속 장면들을 곱씹게 해준다. 영화 진짜 전체는 바로 이런 모든 과정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봉만대 감독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또 그가 지금까지 찍어왔던 영화들 속에 우리가 19금이라는 딱지 때문에 사실은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 감성들을 이 프로그램은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병원선' 윤선주 작가라면 의사들 멜로로 풀진 않을 거다 

MBC 새 수목드라마 <병원선>은 그 소재가 독특하다. 이 드라마가 소개되기 전까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며 의료상황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 섬을 중심을 의료 활동을 벌이는 이 병원선은 그래서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 배가 있고 그 배를 타고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의료행위를 하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지해주고 싶은 소재니까. 

'병원선(사진출처:MBC)'

게다가 병원선이라는 존재가 상정하는 건 의학드라마라는 우리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극적 상황들이 가능한 장르물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배로서의 병원선이 있기 때문에 바다가 주는 그 풍광이나 때 아닌 자연재해 같은 또 다른 극적 상황이 가능해진다. 물론 섬사람들과 병원선 사람들이 갖게 되는 끈끈한 인간애나 휴머니즘은 당연해지는 기대요소다. 

또한 여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매력과 성장과정 역시 기대요소 중 하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외과의 송은재(하지원)가 병원선으로 오기까지 보여준 면면들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손을 벌벌 떠는 신참 앞에서 수술 도중 그런 손이 환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갈 수 있다고 호통치며 척척 수술을 해내는 장면만으로도 이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충분히 빠질 수 있었던 것. 

최연소 과장이 되고픈 욕망을 가진 인물이지만 섬마을에 사는 엄마가 수술이 필요해 보내는 마을 사람들을 외면하지 못하는 그녀는 결국 엄마의 죽음 앞에서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린다. 그녀가 병원선으로 자청하여 오게 되는 그 과정은 그래서 성공에 대한 욕망을 좇는 현대인들에게는 어떤 공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런 치열한 삶이 행복을 찾아주지는 않는다는 것. 그래서 병원선으로 와 섬사람들을 위한 의사로서 살아가는 일은 챙기지 못한 엄마에 대한 부채감으로 시작된 일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첫 회만으로도 독특한 의학드라마로서 기대감이 넘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남는 불안요소들도 적지 않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멜로가 그것이다. 연애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지내온 송은재라는 캐릭터가 병원선에서 만나게 되는 곽현(강민혁)과 결국 멜로관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지점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갖게 만든다. 

물론 멜로를 원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지만, 최근 들어 본격 장르드라마에 대한 요구 또한 적지 않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아버지의 아들로서 곽현은 실력과 외모 평판까지 사실상 모든 걸 다 가진 인물이다. 그런 그와 송은재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커질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멜로의 등장이 이야기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던 드라마들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적어도 <병원선>에서의 이야기만큼은 적절한 선이 유지됨으로써 본래 하려고 했던 휴머니즘과 성장드라마에 초점이 맞춰지기를 기대하는 면이 있다. 만일 이 부분의 균형이 깨진다면 이 좋은 소재의 드라마가 평이한 멜로로 흘러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는 힘은 <병원선>의 작가가 우리에게는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대왕 세종>, <비밀의 문> 같은 주제의식이 유독 강한 작품들을 내놓은 윤선주 작가라는 점이다. 병원선이라는 특별한 공간 위에서 청년의사들이 보여주는 생명에 대한 예의나 그를 통한 성장기는 그래서 <병원선>에 대한 가장 큰 관전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터널’이 연쇄살인범 잡기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

“범인 잡았으니까 이제 다 끝났네요.” “아직 안 끝났다. 우리가 범인을 왜 잡았는데. 우리가 결국 사람은 못 구했지만 이미 죽은 사람 살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얘기는 해줘야지. 범인 잡았다고. 우리가 안 잊고 있었다고 말해줘야지.”

'터널(사진출처:OCN)'

OCN <터널>의 마지막 회에서 범인 목진우(김민상)가 검거되고 범행 사실을 자백했지만 박광호(최진혁)는 아직 자신들이 할 일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것은 피해자들의 가족을 찾아 범인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었다. 

일일이 형사들이 찾아가 그 소식을 전해주자 피해자 가족들은 저마다 무너져 내렸다. 거기에는 아픔과 회한이 뒤섞여진 감정 같은 것들이 엿보였다. 형사는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범인을 잡았다는 것에 죄송하다고 말했고, 피해자 가족들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는 고마움 또한 담겨져 있었다. 그것은 잊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잊지 않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마도 <터널>이 여타의 범죄 스릴러 장르물과 확연히 달랐던 지점이 바로 이런 부분일 것이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물들이라면 잔인한 연쇄살인범의 살해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포획하고 그 범인을 잡으려는 형사들의 추격전이 이어지다 결국 범인을 잡는 그 장면에서 이야기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터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진짜 목적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것. 그렇게 30년의 세월 동안 범인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쓸 정도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지게 됐던 분들을 잊지 않고 노력해왔다는 그것이었다. 

스릴러 장르의 명가라고 불리는 OCN이 <터널>을 통해 그 정점을 찍었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다. <터널>은 스릴러가 그저 단순히 범인 잡는 형사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인간’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자극이 아니라 휴머니즘을 담을 수 있는 스릴러 장르라니 놀라운 일이 아닌가. 

타임슬립이라는 장치가 여타의 드라마들과 달리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타임슬립이란 메시지를 담기 위한 도구일 뿐, 재미만을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걸 <터널>은 보여줬다. 어째서 터널을 통해 3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것이 판타지를 통해서라도 시도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감정적, 정서적 개연성을 이 드라마는 충분히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놀라움이 아니라, 그 정도로 간절한 마음을 담는 상징이다. 피해자 가족이라면 30년 세월 또한 어제 일처럼 잊을 수 없는 짧은 시간일 수 있으니.

또한 <터널>이 높은 완성도에 대중적인 열광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가 건드리는 우리네 대중들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갖가지 사건사고들을 통해 무수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여전히 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가해자를 잡거나 그들이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우리는 별로 본 적이 없고 심지어 그 기억조차 흐릿해져가는 현실 속에서 <터널>은 우리 안의 그 기억들을 되새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을 잊지 않고 있다고 이 드라마는 말해주었다.

‘맨투맨’의 브로맨스, 멜로와는 다른 휴머니즘이 보인다

다크데스 여운광(박성웅)과 김가드 김설우(박해진). 닉네임만으로 보면 이 조합은 B급 슈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처럼 보인다. 배우로서 영화 속에서는 ‘나쁜 놈’으로 불리는 다크데스지만 실제로는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와 헤어진 연인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아파하는 평범한 남자 여운광. 그리고 그의 보디가드처럼 다가왔지만 사실은 특명을 받고 접근한 코드명 K 국정원 고스트 요원 김설우. JTBC 금토드라마 <맨투맨>의 조합은 보이는 것과 실제가 다른 두 남자들을 중심에 세우고 있다. 

'맨투맨(사진출처:JTBC)'

대놓고 브로맨스를 그려보겠다는 건 <맨투맨>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감지할 수 있는 일. <맨투맨>은 보디가드와 배우라는 직업적 관계로 만난(실제로는 다른 목적으로 만난 것이지만) 두 사람이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그 직업적 관계를 넘어선 인간적인 관계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오로지 여운광이 방문하기로 한 러시아의 빅토르 저택에서 목각상을 빼오는 것이 김설우의 임무지만, 그는 죽을 위기에 처한 그를 구해주며 조금씩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여운광이 연기 연습을 하겠다며 김설우에게 여자 역할을 시키는 장면은 그래서 코믹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달라져 있다는 걸 슬쩍 드러낸다. 의외로 여자 역할을 잘 연기해내는 김설우는 연기 연습이 끝난 후에도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과도하게 몰입하며 눈물까지 흘린다. 물론 이건 웃음을 위한 코미디 설정이다. 하지만 그 장면은 또한 연기로 시작한 김설우의 접근이 어느 순간부터 과도하게 몰입되어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에서 멜로 관계는 생각만큼 잘 보이지 않는다. 여운광의 1호팬이며 그의 매니저인 차도하 실장(김민정)은 물론 그에 대한 무한 애정을 보이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관계라기보다는 오누이 관계처럼 보인다. 여운광이 살뜰하게 차도하를 챙기지만 거기에 사랑의 감정은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여운광은 한 때 그가 사랑했지만 사고를 당한 후 이별통보도 없이 모승재(연정훈)와 결혼을 해버린 송미은(채정안)에 대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애증을 드러내지만 아직도 그 이별의 아픔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광과 이미 결혼한 송미은 사이에 멜로 관계가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맨투맨>에서 집중되는 건 멜로가 아니다. 대신 여운광과 김설우의 관계가 갈수록 더 깊어지고, 김설우를 처음부터 스토커로 오인했던 차도하가 여운광을 목숨을 걸고 구해낸 그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에 더 집중된다. 또 여운광과 차도하 사이에 흐르는 오누이 관계 같은 훈훈함이나, 김설우와 그의 국정원 담당관인 이동현(정만식) 사이의 형제 같은 모습도 보는 이들을 따뜻하게 만든다. 하다못해 이 드라마는 이동현과 목각상 프로젝트의 국정원 팀장인 장팀장(장현성)의 관계도 사무적 관계로 그리지 않는다. 이 국정원 요원들이 막걸리를 마시거나 국밥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마치 오래된 친구같다.

<맨투맨>은 그래서 멜로 관계를 살짝 빠져 나오면서 보이는 인간적인 관계들이 느껴지게 하는 그 훈훈함이 드라마의 중요한 정서로 깔려 있다. 멜로를 넘어선 휴머니즘의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맨투맨’의 의미는 단지 여운광과 김설우라는 ‘남자 대 남자’의 의미에만 머무는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혹 형식적 관계를 벗어버린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닥터스>, 다채로워진 박신혜 자연스러워진 김래원

 

섬세하고 따뜻했던 드라마 덕분인가. SBS <닥터스> 종영에 즈음해 되새겨보면 박신혜와 김래원에게 이 작품은 한 뼘 더 성장하게 해준 고마움으로 기억될 것 같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에 머물지 않았고, 멜로드라마지만 사적인 사랑을 넘어 휴머니즘까지를 담아낸 <닥터스>. 자칫 그 섬세함이 드러나지 않으면 밋밋해질 수 있는 관계와 구도들을 생생하게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의 공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박신혜가 연기한 유혜정은 결국 복수의 감정을 사랑으로 이겨낸 인물이다. 그러니 이 내적 갈등을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키는 건 이 연기가 가진 중요한 지점이다. 그녀는 과거 할머니의 죽음 때문에 진명훈 원장(엄효섭)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있지만 의사라는 직업으로서 그를 살려내는 길을 택한다. 그녀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홍지홍(김래원)과 함께 수술실에 들어가 진명훈 원장의 위험천만한 종양수술을 성공시키는 장면은 이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만일 홍지홍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명훈 원장의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은 그녀 안에 자리한 과거의 부채감과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 장면은 그래서 <닥터스>가 가진 멜로구도와 복수극 그리고 의학드라마라는 다채로운 장르적 이야기들이 하나로 묶여지고 또한 풀어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의사로서의 프로페셔널한 냉철한 모습과 할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고 분노하는 한 서민의 모습 그리고 홍지홍 앞에서는 사랑스런 여자로 변모해가는 그 모습들이 박신혜라는 연기자를 통해 다채로운 결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것은 확실히 지금껏 그녀가 해온 캐릭터들에서 진일보한 면모다. 어딘지 여전히 소녀 같고 교복을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미지지만 이제 그녀는 그 위에 프로페셔널한 전문직 여성의 카리스마와 사랑에 빠진 여성의 달콤함을 얹었다. <닥터스>는 그녀의 이런 연기자로서의 성취가 아니었다면 결코 잔잔하지만 묵직하며 따뜻한 그 감동을 전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이 작품을 통해 박신혜라는 연기자가 다채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김래원은 훨씬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중들 앞에 서게 됐다. 본래 <넌 어느 별에서 왔니><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같은 풋풋한 청춘 멜로가 잘 어울리던 연기자였지만 언젠가부터 김래원은 하는 역할들이 너무 무거웠던 게 사실이다. <천일의 약속>의 지형이나 <펀치>의 박정환은 그래서 그에게는 너무 힘이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닥터스>의 홍지홍은 마치 그간의 무거움을 털어내기라도 하겠다는 듯 훨씬 편안해지고 자연스러워진 김래원의 면면들을 제대로 끄집어내줬다. 어찌 보면 선생과 제자의 결코 나이차가 적지 않은 설정의 사랑이지만 김래원 특유의 풋풋함과 능글맞음이 적절히 조화된 모습은 그 어색함마저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좋은 작품은 연기자들 또한 성장시킨다. <닥터스>는 그래서 연기자로서의 박신혜와 김래원의 성장점이 될 만한 작품이다. <닥터스>가 보여줬던 그 따뜻함과 유쾌함과 진지함이 모두 연기자들이 잘 소화해낸 캐릭터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 그걸 증명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좋은 작품이었고 좋은 캐릭터였으며 좋은 연기자들이었다

<닥터스>, 박신혜와 이성경의 변화가 의미하는 것

 

이제 SBS 월화드라마 <닥터스>는 종영을 앞두고 있다. 20%를 넘긴 최고시청률. 최근 지상파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그 능선을 <닥터스>는 어떻게 넘었던 걸까. 흔한 의학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또 달달한 멜로드라마처럼 보였지만 <닥터스>는 여타의 의학드라마와도 또 멜로드라마와도 다른 결을 보여줬다. 그건 관계를 통한 인물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닥터스(사진출처:SBS)'

<닥터스>의 여자주인공인 유혜정(박신혜)과 그녀와 대립적 위치에 서 있던 진서우(이성경)의 변화와 성장은 이 드라마의 색다른 주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는 상처 때문에 불량하게 살아가던 유혜정은 할머니인 강말순(김영애)과 선생님 홍지홍(김래원)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좋은 영향에는 친구였던 진서우 또한 일조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던 선생님 홍지홍과 유혜정이 가까워진 것을 본 진서우는 그 질시가 그녀를 엇나가게 만든다.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유혜정의 비극(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홀로 현실과 마주하게 된)은 그녀가 의사가 되게 한 원동력이 된다. 드라마는 좋은 영향뿐만 아니라 나쁜 영향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에게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게 의사가 된 유혜정은 진서우의 아버지인 진명훈(엄효섭)에 대한 복수를 꿈꾸게 되면서 본인도 고통스러워진다. 그런 그녀를 다시 되돌리는 건 다름 아닌 홍지홍의 사랑이다. 홍지홍은 복수가 그녀 자신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끝내는 건 진서우의 변화다. 늘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친구로서의 관계 또한 유지해온 진서우는 유혜정을 통해 아버지의 잘못을 알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사죄한다. 진서우라는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유혜정 역시 변화하고 성장하게 됐다는 것.

 

사실 이런 화해적인 결말이 조금은 미진함을 남길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봐왔던 많은 드라마들 속에서 악역의 최후나 몰락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닥터스>가 본래 드라마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복수극이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영향을 받고 때로는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걸 뉘우치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극적 갈등이 드라마의 관건이라고 얘기되는 현실에서 이 같은 화해적인 선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닥터스>는 극으로 치닫는 이야기보다는 그래도 희망적인 화해를 담는 이야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닥터스>가 얻어낸 것은 특유의 따뜻함이다. 아마도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던 건 바로 그 위로와 위안의 느낌이 충분했던 따뜻함이 아닐까.

 

무엇보다 연기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 박신혜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훨씬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김래원의 공이 크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 윤균상과 이성경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의학드라마지만 의술 그 자체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들어지는 관계의 치유를 보여주었고, 멜로드라마지만 남녀 간의 사랑만큼 인간과 인간의 휴머니즘을 보여준 하명희 작가의 따뜻한 대본의 힘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한 서민들에게 충분한 위로가 되어주었다

<태양의 후예>,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로 펄펄

 

의사면 남친 없겠네요. 바빠서.” “군인이면 여친 없겠네요. 빡세서.” KBS 새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 첫 방송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거침이 없었다. 첫 회에 유시진(송중기)과 강모연(송혜교)이 만나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물 흐르듯 빠르게 전개되었고 또한 서대영(진구)과 윤명주(김지원)의 계급이 다른 군인들 간의 관계는 향후 전개될 두 사람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에 충분했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바쁜 의사와 빡센 군인의 로맨스. 사실 멜로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으로 지목됐던 것이 극성이 약하다는 점이라면 왜 <태양의 후예>가 이 같은 의사와 군인의 로맨스를 다뤘는가가 이해될 법도 한 부분이다. 사극을 빼놓고 보면 현대극에서 가장 극성이 강한 장르가 의학드라마와 전쟁드라마가 아닌가. 물론 최근에는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가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멜로드라마가 스릴러를 덧붙이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관계와 갈등이 상처를 넘어서 죽고 사는 문제와 연결되는 직업군으로 의사와 군인만큼 센 극성을 만드는 인물군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첫 회가 충분히 입증한대로 총알이 날아다니고 칼부림이 다반사인 전쟁터가 일터가 된 유시진과 역시 생사가 오가는 응급실이 일터인 강모연의 만남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그저 평범하게 만나서 감정을 나누는 식의 일상적인 멜로드라마가 아니라 전쟁터를 오가는 이들의 멜로드라마다. 갑작스런 긴급 상황에 데이트 약속을 미루고 떠나는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병원 건물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기 전 다음 데이트 약속을 하는 장면은 이 멜로드라마가 가진 특별한 스케일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치 슈퍼히어로물에서 지구를 구하러 떠나는 듯한 남자 주인공과 그를 보내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향후 이 드라마는 우르크라는 총알이 날아다니는 가상의 낯선 땅에서 벌어지는 군인과 의사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을 것이라고 한다.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분쟁지구로 날아가는 비행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이 드라마는 그 성격상 스펙터클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많은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스펙터클에 치중하다 엄청난 투자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던 그 전철을 적어도 이 드라마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전쟁과 사랑이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스펙터클 속에서도 김은숙 작가의 확고한 지향점은 결국 사랑과 휴머니즘 같은 사람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블록버스터란 볼거리가 아니라 그 인물과 스토리의 촘촘함에서 나오는 것이란 걸 이 멜로의 대가는 잘 알고 있다. 군인이라는 여성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남성적인 등장인물을 세우면서도 첫 회부터 달달한 로맨스의 설렘을 만들어내는 건 이 작가가 가진 공력을 실감하게 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송중기, 송혜교, 진구, 김지원의 대본을 맛깔스럽게 살려내는 연기다. 군 제대 후 더 남성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송중기와 귀여우면서도 당찬 매력의 송혜교, 그리고 진지한 남성의 향기가 느껴지는 진구와 톡톡 쏘는 차가움과 뜨거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듯한 김지원의 괜찮은 조합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케이블 드라마의 성장으로 최근 지상파 드라마들은 그 위기의식이 확실히 높아졌다. 하지만 적어도 <태양의 후예>만큼은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을 제대로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 커진 스케일과 멜로와 액션이 넘나드는 스토리. 그리고 지상파 드라마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져오되 그것을 세련되게 구사하는 대본. 어쩌면 이 드라마는 위기에 빠진 지상파 드라마의 대안을 보여줄 지도 모르겠다.

<용팔이>의 갑질 폭로 그 어떤 것보다 센 까닭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 병원이라고 다를까. <용팔이>의 김태현(주원)이 돈만 주면 어디든 달려가는 속물의사가 된 건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휴머니즘? 사람을 살리는 건 의사의 의지이지 돈이 아니다? 그런 선배의사의 말이 그저 순진한 이야기일 뿐이라는 걸 <용팔이>는 보여준다.

 


'용팔이(사진출처:SBS)'

김태현이 일하게 된 한신병원 12층은 이런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이 한신그룹의 회장 아내인 이채영(채정안)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아무 데나 차를 세워두자 그러면 안 된다고 하는 주차요원을 발로 차고, 곧바로 12VIP 병동으로 와서는 자신의 전용 방에 다른 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버럭 화를 낸다. 백화점에서 벌어지곤 하는 VIP의 갑질 논란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지 않은가.

 

그 곳의 코디네이터 신씨아(스테파니 리)VIP병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CS(customer satisfaction) 즉 고객만족이라고 한다. 그들은 병원 가면 진료를 받기 위해 줄을 서야 하는 환자가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 고객님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고치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는 건 당연하지만 그것이 이 세계에서는 돈으로 좌우된다는 것이 차이다. 고객님들이 부르는 곳으로 왕진을 간 김태현이 재벌가 자제가 휘두른 깨진 병에 찔려 쓰러진 연예인을 고쳐주는 일은 의료행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범죄 사실을 덮는 또 다른 범죄행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재벌가 자제의 폭력을 덮어주고 돌아온 김태현에게 병원장은 또 다른 의료상품이 생겼다며 칭찬해준다.

 

영화 <베테랑>이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재벌 3세의 갑질 폭력을 폭로함으로써 폭발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다면, <용팔이>의 갑질 폭로 역시 결코 약하지 않다. <베테랑>이 그리는 건 조폭과 그리 다르지 않는 재벌가의 갑질이지만, <용팔이>는 그것조차 돈만 주면 다 덮어주기도 하는 VIP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갑질 세계의 또 다른 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곳은 병원이 아닌가.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 의료행위조차 돈에 의해 좌우되는 거래행위로 구현되는 현실을 바라본다는 건 실로 씁쓸한 일이다.

 

<용팔이>의 김태현은 서민의 눈으로 그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 곳은 멋진 옷에 잘 빠진 자동차, 게다가 야외 경관이 뛰어난 창을 가진 개인 진료실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돈에 의해 덮여진 포장지일 뿐이다. 그 포장지를 떼어내면 추악한 욕망들이 꿈틀댄다. 무려 3년이 넘게 그 12VIP 층의 제한구역에 누워 있는 한여진(김태희)이 그 욕망의 실체다.

 

그녀는 그녀를 대신해 한신그룹 회장의 일을 하고 있는 배다른 오빠 한도준(조현재)에 의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한신그룹의 상속녀이지만 그녀를 병원에 묶어두고 대신 그룹을 장악하려는 한도준의 욕망이 만들어낸 범죄다. 그녀에게 병원은 생명이 아니라 감옥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계에서 용팔이(용한 돌팔이)로 불리는 김태현은 이들과는 다른 존재다. 그 역시 멋진 옷에 멋진 차 그리고 화려한 진료실을 포장지로 갖게 되고 무엇보다 돈이면 다 하는 속물 의사의 겉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포장지 이면에는 가난하든 부자든 모두 똑같은 생명이라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숨겨져 있다. 그래서 그가 이 VIP 층에 들어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워질 수밖에 없다. VIP 층은 용팔이가 대결하고 있는 돈으로 갑질 하는 세상의 축소판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은 한여진에게 왜 용팔이가 구원의 존재로 다가오는가를 설명해준다. 모든 것이 자본이라는 철창으로 둘러싸고 있는 한여진에게 그것을 거두고 살아있는 존재로 만들어줄 인물은 용팔이 같은 자본의 갑질을 극복하려는 인물 밖에 없기 때문이다.

 

VIP 병동에 들어간 서민 의사(겉으론 속물의사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라는 설정은 지금껏 우리가 의학드라마에서 좀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장면들을 가능하게 한다. 마치 폐쇄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병원과 병실 그리고 환자와 의사의 관계 속에서만 뱅뱅 돌던 의학드라마는 VIP 병동 의사라는 설정을 통해 병원 밖으로 나와 웬만한 범죄 영화를 연상시킬 정도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용팔이>가 괜찮다고 여겨지는 건 물론 극화된 면이 있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현재 병원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를 고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민영화가 본격화된다면 이 빈익빈 부익부는 가속되어 생명, 나아가 범죄까지 돈 앞에서 거래되는 현장을 당연하듯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용팔이>가 그려내고 있는 씁쓸한 세계처럼.



<국제시장><가족끼리 왜 이래>처럼 아버지를 다뤘어도

 

<국제시장>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한 개인으로서의 아버지가 살아낸 한 시대를 휴머니즘에 입각해 그려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산업화의 역군으로서의 아버지의 희생만 강조한 채 그 이면에 놓인 어두운 시대의 질곡들은 말끔히 세탁되어 있어 지나친 편향으로 보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진출처: 영화 <국제시장>과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감독은 현대사를 다루면서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선택과 집중에는 배제의 의미도 들어있다. 모든 것을 흑백논리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즉 백만을 선택해서 보여주면 흑이 배제된다. 감독은 지나친 이념화를 우려해 흑을 배제한 채 백만을 선택해 보여줬다고 말하는 셈인데, 이것 자체가 흑백 논리를 전제한 발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논란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어쨌든 이념적인 것을 뚝 떼놓고 바라보면 <국제시장>이 다루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우리네 아버지들이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희생하는 아버지. 그런데 덕수(황정민)라는 인물이 격동의 세월을 가장으로서 버텨낸 삶이 이해는 되지만 깊은 공감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아버지가 현재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과거에 머무르며 그 과거만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위해 모든 걸 희생했다고 하면서도 이 덕수라는 아버지는 자신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자식들의 삶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의 시계는 50년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와 동생을 잃었던 흥남부두에 멈춰 있다. 덕수라는 아버지의 입장에만 시선이 머물러 있기 때문에 가족들은 철없는 인물들정도로 피상적으로 그려진다. 그 중에는 아마도 4.195.16을 겪은 자식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80년대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은 이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90년대 IMF를 통해 깨져버린 개발시대의 환영이 경제적 양극화로 이어지는 걸 겪었을 수도...

 

그들은 일방적인 아버지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되어 있다. 좀 더 양쪽의 입장을 공평하게 그려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아버지의 입장만큼 자식들의 입장도 똑같이 그려냈다면 <국제시장>은 감독이 그토록 얘기하는 진정한 세대 간 소통의 물꼬가 됐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만을 열거한 후, ‘우리 덕에 잘 사는 줄 알라는 식의 이야기는 소통이라기보다는 지나치게 일방적인 느낌마저 준다.

 

물론 영화와 드라마는 장르적인 차이가 크지만 최근 무려 40% 시청률을 돌파하며 화제가 되고 있는 KBS 주말극 <가족끼리 왜 이래> 역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유사한 느낌을 준다. 아무래도 이렇게 아버지에 대한 재조명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 그만큼 우리네 현실 속에서 아버지들의 입지와 위치가 좁아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아버지를 다뤄도 <가족끼리 왜 이래>의 차순봉(유동근)은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한 평생 두부를 만들어 자식들을 키운 아버지 차순봉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고 자식들과 보내는 마지막 시간들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저 <국제시장>의 덕수가 보여주는 그런 일방통행식의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자식들에게 불효 소송을 하는 시퀀스가 있지만 거기에는 어디까지나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져 있다. 어딘지 가족에서 엇나가는 자식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제 자리를 잡기를 바라는 것.

 

차순봉의 버킷리스트에는 빼곡하게 해야 할 일들이 적혀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자식들의 앞날을 위한 것들이다. 딸 차강심에게 좋은 짝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선을 보게 하거나, 형제 남매들이 좀 더 돈독하게 지낼 수 있게 가족 댄스파티를 하는 것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차순봉의 버킷리스트에는 자신이 아닌 자식의 그리고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가 담겨져 있다.

 

이 드라마가 다루는 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차순봉의 시한부 인생을 알게 된 차감심과 차강재는 비로소 그 죽음 앞에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해 새삼 눈물을 흘린다. 아버지를 위해 뭐든 하기 위해 자식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은 그래서 아마도 이 시대의 부모세대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처럼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판타지에도 저 <국제시장>이 그려내듯 일방적인 느낌은 전혀 없다. 아버지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자칫 단절될 수 있는 삶이 아버지의 죽음이라는(어쩌면 누구나 맞닥뜨릴) 절대적 사안 앞에서 극적인 소통을 이루는 장면들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물론 <가족끼리 왜 이래>가 대단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라고 말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족드라마가 가진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 간의 양 방향적 소통을 이뤄가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통을 얘기하면서 일방으로 던지는 방식을 보여주는 <국제시장>과는 사뭇 다른 느낌과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가족의 힘이란 앞으로 나가는데 있다. 물론 그 나가기 위해 이전의 삶들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조명하는 것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른다면 그 가족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체되거나 심지어 퇴행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과거와 현재의 세대가 함께 나가는 길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가족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이 아닐까.

 

EIDF의 현명한 선택, 희망과 공존 취지 살렸다

 

결국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는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이스라엘 특별전과 콘퍼런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또한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 역시 받지 않기로 했다. 이번 결정은 최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폭격과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와중에, 이스라엘 특별전을 한다는 것이 도의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맞지 않는다며 김조광수 감독, 박문칠 감독, 김일곤 감독 등 영화인 129명이 EIDF 보이콧을 선언한 것에 대한 EIDF 측의 화답이다.

 

'EIDF(사진출처:EBS)'

이스라엘 특별전은 이번 중동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부터 기획되어 왔던 것으로 갑자기 불거진 사안 때문에 EIDF측은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 대사관이 EIDF를 공식후원한다는 사실은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사실 이스라엘 특별전 행사는 이스라엘 대사관의 후원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왔던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스라엘은 콘텐츠 강국이다. 지난 4월에 열린 세계방송프로그램의 최대 시장인 MIPTV에서도 단연 주목받은 건 이스라엘의 콘텐츠들이었다. 다양한 콘텐츠가 제작되고 또 세계 시장에 팔려나가는 이스라엘의 콘텐츠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번 특별전 행사가 특별한 다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콘텐츠 자체가 이유가 됐다는 걸 말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콧 선언까지 나오고 또 EIDF가 특별전과 콘퍼런스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이러한 콘텐츠 강국으로서의 이스라엘이 부각되고 있는 한편으로 그들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저지르고 있는 또 다른 모습은 가려진다는 비판 때문이었다. 이번 특별전에 상영하기로 했던 <히틀러의 아이들> 같은 경우만 봐도 그렇다. 히틀러의 지휘 아래 악명 높은 범죄를 저질렀던 이들의 후손들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핍박받았던 이스라엘의 면모만을 보여줄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학살자로서의 이미지를 가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EIDF의 슬로건은 희망과 공존이다. 그래서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지구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존을 모색하는 다큐멘터리들이 다수 상영될 예정이다. 예고편 트레일러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다큐멘터리가 휴머니즘을 그 기조에 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좋은 취지의 좋은 영화제가 이스라엘 특별전 같은 시의적절치 못한 이벤트로 오점을 남긴다는 건 그간 EIDF라는 영화제가 쌓아온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EIDF는 영화인들과 끝없이 소통하면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특별전 취소 결정은 그 자체로도 EIDF가 어떤 영화제인가를 제대로 보여준 셈이 되었다. 벌써 11회를 맞고 있는 EIDF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계의 다양성과 인간의 발견을 꾸준히 모색해온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이어진 신뢰가 꾸준히 이어지기를. 이번 영화제는 오는 25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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