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승리커플 위대한 사랑, 처음엔 눈 의심했다

눈을 의심했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가 없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박항승씨가 수영을 하는 모습은. 4살 때 8톤 트럭에 치여 오른팔 오른 다리를 잃은 그였지만 그 얼굴에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활짝 웃고 있었고, 자신의 장애를 스스럼없이 얘기하며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역시 늘 웃으며 그를 바라봐주고 지지해주는 권주리씨가 있었다.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승리 커플’로 불리는 이 부부는 정말 이름처럼 사는 것 같았다. 항상 승리하려 하는 항승씨와, 그에게 주고 또 주는 주리씨.

MBC <휴먼다큐 사랑>에서 우리가 더 많이 본 건 ‘눈물 가득한 사연들’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나의 금메달!’편은 눈물보다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물론 그들의 웃음 뒤에는 남다른 아픔과 상처가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뛰어넘어 웃게 하고, 그 웃음을 통해 도저히 시도조차 할 수 없던 기적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건 바로 ‘사랑’이었다.

첫 만남부터 30분이나 지각한 주제에 애프터 신청도 하지 않고 가버린 항승씨. 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나갔던 주리씨는 장애사실보다 연락처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고 했다. 그래서 주선자에게 항의를 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친구로 지내다 연인이 되었다. 연애도 결혼도 모두 주리씨가 먼저 하자고 했다.

장애 사실 때문에 결혼 반대가 있었을 성 싶지만, 주리씨의 아버지는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것”이라며 그의 선택을 믿어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장애를 갖고 있는 주리씨 동생을 통해 이 가족은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놓여진 현실의 벽을 일찌감치 느끼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승부욕이 강해 못하는 운동이 없다고 했지만 항승씨가 물이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못했던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건 주리씨 때문이었다. 팔, 다리 없이도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걸 확신한 주리씨는 수영장에서 함께 데이트를 하며 항승씨에게 수영을 가르쳤다. 또 겨울이면 스노보드를 타야 한다는 주리씨의 말에 항승씨는 절단된 다리로 스노보드 타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스키장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항승씨는 스노보드 선수로 국가대표가 되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배우자가 하고픈 것을 함께 하려 노력했던 것이 그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나아가 기적 같은 일까지 만들었던 것. 이 이야기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것이었다. 사랑을 통해 얼마나 우리가 서로를 북돋워줄 수 있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보여준 것이니 말이다. 어찌 보면 스스로 한계를 긋고 넘어서려 하지 않는 마음이 진짜 장애가 아닐까 싶었다.

항승씨와 주리씨가 함께 서로를 내조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보통의 부부 사이에도 존재할 수 있는 마음의 장애가 이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한 손으로 야채들을 잘라 아내를 위한 요리를 하는 항승씨나, 3년 간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며 항승씨에게 도전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하고 그 후에는 90년 간 자신의 노예로 살라며 유쾌하게 웃는 주리씨에게서 부부 간의 흔한 역할 구분에 얽매인 마음의 장애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박항승씨와 권주리씨 부부의 이야기는 눈물보다는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그 결코 쉽지만은 않은 삶의 편린들이 경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 말하는 항승씨의 모습에서 묻어났지만, 그래도 더 이들을 가득 채워주는 건 행복 가득한 웃음이었다.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당신은 나에게 금메달이라며 자신이 만든 종이 메달을 항승씨의 목에 걸어주며 환하게 웃는 주리씨의 모습에서 어떤 금메달로도 바꿀 수 없는 ‘위대한 사랑’이 느껴졌다.(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꽃보다 예쁜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딸

“어머니 꽃 같으세요. 꽃 같아요.” 시어머니 김말선씨의 105세 생신날, 며느리 박영혜(68)씨는 활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곱게 단장하신 시어머니에게서는 젊어서 특히 단정했을 그 모습이 그려진다. 그 생신을 축하하듯 영혜씨의 친정엄마 홍정임씨가 구성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청춘을 돌려다오-” 이제 웃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나이지만, 시어머니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다시 돌아온 MBC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이 예쁘게도 담아낸 사랑과 사람의 풍경이다. 

며느리이자 딸 영혜씨도 이제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그러니 그 나이에 엄마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운신도 혼자 하지 못하시고 밥숟가락도 혼자 들기 버거워 하시는 시어머니는 그 깔끔한 성격 때문에 기저귀에 대변을 보고 자꾸만 손으로 파고 뭉개놓는다. 그런 삶을 벌써 10여 년째 살아내고 있는 며느리지만, 속상한 마음이 자꾸 시어머니의 속을 긁는 소리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 

105세의 연세라도 속상한 건 마찬가지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또 며느리가 고생하는 걸 안타까워하는 시어머니는 밥을 더 이상 안 먹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그래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테니. 결국 시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와중에 항상 뒷전이 되어버리는 친정엄마가 나선다. 친정엄마는 당신도 허리가 안 좋으시지만 시어머니의 입에 연신 숟가락을 넣어주고, 기분 좋아지라고 노래도 불러준다. 

물론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의 사이가 늘 좋은 건 아니다. 친정엄마의 사소한 말 몇 마디에 시어머니는 아이처럼 토라져 대꾸 한 마디 않고 돌아눕는다. 하지만 그럴 때 마음을 풀어주는 건 흥 많고 쌓아두지 않는 성격인 친정엄마다. 친정엄마는 들꽃 몇 개를 꺾어 병에 꽂아 가져와서는 “할머니꽃은 어떤 거야?”하고 묻는다. 그 화해를 신청하는 마음이 꽃보다 아름답다. 

<휴먼다큐 사랑> ‘엄마와 어머니’편에서 특히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건, 이 세 사람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다. 영혜씨는 한 때 몸이 아파 요양원에 시어머니를 맡긴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 결국 시어머니를 집으로 모셨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 시어머니를 보살피며 살아가는 영혜씨에게서는 인간으로서의 어떤 숭고함 같은 것마저 느껴졌다. 

그런 딸을 보는 친정엄마의 마음은 또 어땠을까. 안쓰러운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친정엄마는 가타부타 그런 표현을 하지 않는다. 대신 딸의 부담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까 생각하고, 시어머니와 말동무도 되어주고 딸처럼 챙겨주기도 하면서 마음을 쓴다. 그런 친정엄마를 시어머니는 그 누구보다 의지하고 있었다. 

며느리와 사돈이 자신 때문에 고생한다는 걸 알고 있는 시어머니는 자꾸만 ‘죽음’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사라져야 저 두 사람이 그래도 편안하게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 있는 게 일상인데다, 표정조차 별로 드러내지 않는 시어머니지만 그래서인지 며느리와 사돈에게 종종 높임말이 흘러나온다. 그 마음이 또한 먹먹하게 다가온다.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 이렇게 세 사람은 모두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지만, 자신보다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더 느껴진다. 그들은 젊어서 어쩌면 친정엄마, 시어머니, 딸, 며느리 같은 호칭으로서 살았을 게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런 호칭이 중요하지 않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서 있다. 

세 사람이 함께 걸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마치 우리네 삶을 축약해 보여주는 것만 같다. 운신이 불편하신 시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친정엄마가 뒤에서 밀어주지만, 어찌 보면 허리가 좋지 않은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의 휠체어에 의지해 함께 걷는 것처럼 보인다. 그 옆에서 딸이자 며느리인 영혜씨가 지팡이를 집고 함께 걸어간다. 그 장면은 마치 함께 지지하며 걸어가는 동행이야말로 우리네 삶을 그 무엇보다 예쁘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만 같다.(사진:MBC)

‘휴먼다큐 사랑’, 그 아픈 사랑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여러 권에 이르는 엄마의 노트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노트 안에는 성준이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담겼다. 의사 선생님은 그 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준이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 엄마는 그 성준이를 끼고 살았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성준이의 상태를 살피고, 성준이와 놀고, 학교를 가서도 교실 문 밖에서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 들여다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MBC <휴먼다큐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와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 그 엄마가 보여주는 성준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그것이 왜 기적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연습을 통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날 촛불도 끄지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삶 따위는 모두 지워버린 채 온전히 성준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엄마. 그 빼곡한 노트에 채워진 글씨들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안전하다는 문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가습기 살균제. 그래서 믿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 줄이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다민이 아빠는 “이건 부모가 자식을 서서히 죽인 것”이라고 그 비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들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는 부모 같아야할 나라가 자식 같은 국민을 내버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겼다. 

성준이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어른거리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의 이야기에 담겨진 특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파양에 학대 그리고 추방까지 당한 신성혁의 사연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며 3년 간 딸들이 유해로나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해온 다윤, 은화 엄마들의 사연이 그랬다. 

그들은 마치 그 가슴 아픈 일들이 자신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무거운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 잘 살라고 입양시켰지만 결과적으론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신성혁의 부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다윤, 은화 엄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성준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지만 그 가슴 절절한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줘야 할 국가의 부재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부모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그 부채감을 부모가 온전히 떠안고 알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질문들까지 담아내는 기존과는 다른 면들이 주목되었다. 

사랑은 그래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었고,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정의를 묻는 그 질문들이 그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만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상식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안에서 눈물 속에 그 희생어린 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 우리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보며 느낀 먹먹함과 아픔과 함께 그 안에 어른거리던 분노의 실체가 아닐까.

파양·학대·추방...‘휴먼다큐 사랑’이 신성혁 통해 전하려한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저는 언제나 엄마의 아들이에요.”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번의 입양과 파양 그리고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는 끔찍한 학대,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노숙자들이 있는 거리에 버려진 유일한 동양인.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은 치즈버거가 따뜻했었다고 말하는 아담 크랩서(우리 이름으로 신성혁)는 벌써 42세다. 하지만 그 성장한 아담에게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저 아이의 그것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첫 번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담과 그의 엄마였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아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고.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미국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아들과 화상통화로 첫 대면을 하는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무나 가난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다리가 불편해 운신도 자유롭지 않은 그녀는 결코 고생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입양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엄마와 아들. 하지만 그 긴 세월의 간극은 그들 사이에는 없어 보였다.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곤궁했던 삶에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었지만, 엄마와 아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여전히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이역만리에 떨어져 화상으로 만나는 얼굴이지만 그 얼굴에 새겨진 삶의 힘겨움을 읽어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헤어져 잘 살기를 바랐지만 차라리 같이 살며 고생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후회. 그들의 얼굴에는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입양 간 아담에게 미국은 이름그대로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첫 입양됐던 양부모의 집에서는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체벌을 당하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으면 같이 입양왔던 누나가 슬쩍 문을 열어놓고 가곤 했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 동생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 누나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결국 파양되면서 아담은 누나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입양된 집은 더 심각했다. 12명의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성적학대와 폭력은 일상이었고 노예처럼 자신들을 부렸다고 했다. 

양부모는 아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양부모는 결국 발각되어 감옥에 갔지만 금세 풀려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 집에서 살던 아이 중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재판 때 아담은 양부모의 편을 들어주었다. 유일한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자 그들은 아담을 길거리에 버리고 가버렸다. 16살에 아담은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인 노숙자가 되었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서 아담은 시민권조차 없었다. 식당, 건축일, 조경, 자동차 수리, 뭐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그는 꽤 일을 잘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왔던 물건을 찾기 위해 입양됐던 집을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무단침입죄로 감옥 생활을 했고,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된 아담은 점점 피폐되어갔다. 

결국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엄마는 아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했다. “미국에 계신 대통령님.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미국에 계신 시민 여러분. 우리 아담 크랩서 좀 도와주세요.” 서툰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통해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여전히 가난하고 몸도 성치 않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운 엄마. 그렇게라도 엄마는 어떻게든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구치소에서 피폐해져가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그 몸을 이끌고 기다시피 부석사 계단을 올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결국 열린 추방재판. 결과는 추방 결정이었다. 많은 증거들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울었다. “우리 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마흔이 넘어 아들이 쫓겨온다는 소식. 그 결정을 들은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다. “돈 많은 사람처럼 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100% 너를 사랑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처음 화상통화를 통해 했던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안아줄게.”

2016년 11월17일 아담은 그 37년 간의 타국 생활을 끝내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게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긴 세월, 그가 걸어왔던 건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고국도 낯선 땅이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은 37년 전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그가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은 어째서 이처럼 기구한 삶을 산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기에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힘겨워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가난함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37년 후 여전히 가난한 그들은 그래도 함께 하려 하고 있다. 적어도 서로의 힘겨움을 넉넉히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장범준, '벚꽃 좀비' 현상은 우연도 기적도 아니었다

“이 영화는 좀비물입니다.” 장범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다시, 벚꽃>의 유해진 감독이 던진 농담에 시사회장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이른바 ‘벚꽃 좀비’라고도 불리는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유해진 감독은 TV다큐멘터리가 일회적인 속성을 갖고 있어 그 아쉬움 때문에 영화에 도전하게 됐다며 <다시, 벚꽃>이 쉽게 지지 않고 계속 피어나는 그런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 농담에 섞었다. 

사진출처:영화<다시, 벚꽃>

우리에게는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시즌송, ‘벚꽃 엔딩’의 주인공 장범준. <다시, 벚꽃>은 버스커버스커로 데뷔했던 장범준이 솔로로 1집을 낸 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나서 2집을 통해 다시금 우뚝 서는 그 과정을 담았다. <휴먼다큐 사랑>에서 유해진 감독이 보여줬던 인물에 대한 충실함은 고스란히 이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유해진 감독은 장범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그가 어떻게 음악들을 만들었고,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채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으며, 그러면서도 타인들과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해왔는가를 담담히 영상에 담아넣었다. 

장범준에게 음악이란 일상 그 자체였다. 그가 ‘벚꽃 엔딩’이나 ‘골목길 어귀에서’ 같은 곡들을 만든 건 애초부터 앨범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일상의 기록으로서 마치 일기를 쓰듯이 그 때 그 때 느꼈던 감성들을 노래로 적어뒀을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 장범준이 자신이 예전에 자취했던 학교 근처를 둘러보며 노래의 배경이 됐던 장소를 이야기하는 대목은 그에게 음악이 얼마나 삶 그 자체인가를 잘 보여줬다. 

떠오르는 음률을 입으로 읊조리고 그것을 즉석에서 기타로 치면서 노래를 만들어왔던 그가 보여준 음악은 ‘음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작곡자들이 그 틀에 얽매이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장범준은 그 틀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자신만의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하지만 그렇게 ‘벚꽃 엔딩’이나 ‘여수 밤바다’ 같은 명곡을 만든 그는 이제 음계를 공부하고 더 정교한 연주를 위해 기타를 연습한다. 이전에는 다른 이들의 연주에 자신이 노래를 했지만, 2집 앨범을 준비하는 그는 스스로 기타를 치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른다. 함께 2집 앨범을 작업한 프로페셔널 세션들은 그의 기타 실력이 굉장히 늘었다며 이제 그 누가 대신 그 기타를 연주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다. 그만이 자신의 곡에 대한 느낌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음악을 다시금 공부하게 된 까닭은 그러나 틀에 갇히기 위함이 아니다. 좀 더 정성을 들인 노래를 선보이기 위해 다른 음악인들과 더 잘 소통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뿐이다. <다시, 벚꽃>이 보여주는 건 그래서 우리가 흔히 쉽게 젊은 날의 행운처럼 장범준의 ‘벚꽃 엔딩’을 ‘벚꽃 좀비’나 ‘벚꽃 연금’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질문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런 표현에 장범준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어 그 기분 좋음을 보여주지만, 이 다큐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남다른 노력은 이런 그의 성취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준다. 

영화는 그의 일상과 음악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의 기분 좋은 이야기들을 그저 담담히 담아낸다. 하지만 영화 곳곳에 흐르는 그의 음악들은 이 담담한 이야기들과 어우러져 때론 웃음을 주고 때론 먹먹한 감동을 전한다. 무엇보다 음악이 어떻게 탄생하고 완성되어가며 그것이 타인들과 어떻게 소통되는가를 느끼며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거기 장범준이라는 아티스트가 어떻게 탄생했고 성장하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영화가 담고 있는 2집 앨범을 자신의 20대 마지막을 담는 노래라고 말했다. 하지만 30대에도 또 40대에도 그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할 것이라는 걸 분명히 했다. 일상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며 그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그것이 장범준의 벚꽃이 지지 않는 이유가 아닐까. 

벚꽃은 그저 때 되면 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매순간 피어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았기에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결과일 뿐이다. 아직 피어나진 않았지만 언젠가 피어날 수도 있는, 모두에게 존재하는 저마다의 벚꽃을 위한 헌사. 그것이 <다시, 벚꽃>이 장범준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가 청춘은 물론이고 모든 마음의 청춘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노력하는 이들에게 ‘좀비물’이 되기를 기원한다.

<휴먼다큐 사랑>, 코피노 민재가 보여준 사랑의 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아이는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문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문짝에 귀를 대고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나 들어보려 하기도 했다. 소리 내어 아빠라고 부르면 문 저편에서 아빠가 나타날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발길을 돌릴 수 있겠는가.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빠를 찾아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그 먼 길 끝에 아이가 맞닥뜨린 게 굳게 닫힌 문이라니.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민재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아빠를 만나면 건네주려 썼던 편지를 꺼내 그 닫힌 문틈 사이로 끼워 넣었다. 그렇게라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온 이야기는 아빠가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산다고 했다. 아이는 억지로 끼워 넣은 편지를 다시 애써 끄집어냈다. 그 편지만은 아빠에게 전해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은 필리핀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코피노 민재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제 아홉 살. 세부의 빈민촌에서 살아가는 민재는 단 한 번도 아빠를 보지 못했다. 그가 태어나기 전 아빠는 한국으로 떠난 뒤 연락이 끊겼다. 아빠 몫의 사랑까지 채워주는 엄마 크리스틴이 있었지만 그녀마저 2년 전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민재의 곁을 떠났다.

 

민재 부모의 빈자리를 채워준 건 이모와 이모부. 가난하게 사는 형편이지만 이모는 민재를 살뜰히도 챙겨주었다. 하지만 민재에게 아빠의 빈자리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떠나버린 아빠에게 뭐라고 할 때마다 민재는 아빠 편이었다. 민재가 영어와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오로지 아빠를 만나 이야기를 건네고픈 마음에서였다.

 

떠난 아빠가 민재에게 해준 건 이름을 지어준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재의 아빠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 가난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 민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빠에 대한 사랑 때문인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랑이 아니었다면 민재는 아무런 희망도 꿈도 가질 수 없었을 테니까.

 

9년의 세월을 그렇게 그리워하다 찾은 아빠의 집. 민재를 맞아준 건 그러나 아빠가 아니라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필리핀에서 보내줬던 민재의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잘 자라준 민재를 보며 고마움을 표했고 민재에게 아빠의 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민재는 결국 아빠를 만나지는 못했다. 대신 할아버지에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아빠 사랑해요라는 말을 대신 전해주면서도 아이는 기쁜 얼굴이었다.

 

<휴먼다큐 사랑>이 코피노 민재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먼 길을 돌아온 민재가 아빠를 만나는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었다. 하지만 아빠를 못 만났다고 해도 민재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사랑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휴먼다큐 사랑>이 민재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을까.

 

나한테 뭘 원하니?” 아빠를 만나는 연습을 하는 민재에게 그를 키워주고 있는 이모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민재는 서슴없이 말했다. “사랑.” 아빠를 찾아 그 먼 길을 온 민재가 원한 건 그것뿐이었다.

 

<사랑>, 위대한 안현수, 그 뒤엔 위대한 사랑이

 

도대체 얼마나 절박했으면 안현수 선수는 고장 난 몸을 그토록 혹독하게 몰아세웠을까. 그가 무릎 부상으로 여러 차례 수술한 몸을 이끌고 러시아 귀화까지 결심하게 된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다시는 스케이트를 탈 수 없을 거라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한참 기량이 떨어지는 러시아 선수들과의 대회에서도 입상조차 하지 못한 그는 이렇게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랬던 그가 다시 몸을 회복하고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 러시아의 영웅이 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네 언론에서도 안현수는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성적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던 그가 아닌가. 하지만 안현수에게는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빛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를 비로소 완벽하게 해준우나리의 사랑이었다. 러시아로 와달라는 안현수의 부름을 받고 찾아간 우나리는 그를 보고 그저 안아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몸도 마음도 상처를 입은 채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안현수 선수를 위해 우나리가 보여준 사랑은 마치 어머니의 그것처럼 헌신적인 것이었다. 처음에는 함께 지내지 못해 선수촌까지 무려 4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우나리는 오갔다고 한다. 오로지 안현수 선수가 그녀를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 먼 길을 매일 오가며 그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일이었다.

 

자그마한 선수촌내의 숙소 맨 바닥에서 갖가지 요리를 해 안현수 선수에게 차려주는 우나라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녀는 운동선수는 잘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우리네 어머니들의 마음 그대로일 것이다. 5분이면 뚝딱 해치우는 그 한 끼 밥을 위해 2시간을 준비하고 개수대도 없는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는 우나리의 얼굴에서는 그러나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진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잘 먹는 자식을 보며 흐뭇해하는 어머니들의 마음 같은.

 

그토록 오래 준비해왔던 올림픽에 러시아 대표로 첫 경기를 가지게 됐을 때 우나리가 안현수 선수에게 한 말은 메달을 따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오로지 그가 다치지 않을까를 걱정했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했다는 그녀의 사랑에서는 연인 그 이상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그러니 첫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그를 보며 그토록 행복해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헌신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의 기적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스케이트 선수로서는 환갑에 해당하는 나이에 다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싹쓸이한다는 것은 전문가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드는 일이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그라도, 또 누구보다 성실하게 연습을 해온 그라도, 그의 몸과 마음을 살뜰히 챙겨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휴먼다큐 사랑>이 안현수와 우나리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자 한 것은 그들의 성공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절망의 끝에까지 갔다가 다시 기적의 주인공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사랑의 힘이었다. 안현수 선수의 이야기는 보통의 서민들에게도 어떤 희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적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랑한다면 그들처럼.

 

부조리에 무너진 안현수, 사랑이 다시 일으켰다

 

그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졌을까. 또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연인의 마음은. MBC <휴먼다큐 사랑>은 전 세계가 인정한 쇼트트랙 황제 안현수가 우리의 이름이 아닌 빅토르 안으로 다시 세계 정상에 설 수밖에 없었던 위대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줬다. 그것은 안현수 개인에게는 거대한 사랑의 이야기였지만, 우리나라의 스포츠 현실에서는 커다란 비극이었다. 나라가 버린 안현수를 사랑이 다시 일으켜 세웠으니 말이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처음 안현수가 평생의 연인이 된 아내 우나리를 만났을 때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최고의 선수였지만 부상과 빙상계 파벌 싸움으로 인해 변변한 팀에 들어가지도 못한 이른바 백수였기 때문이다. 안현수는 자신의 그 상황을 솔직하게 우나리에게 얘기했고, 그녀는 그 얘기를 들으며 가슴이 찢어졌다고 한다. 최고의 선수가 그토록 의기소침하게 된 현실 때문이었다.

 

우리 빙상 대표팀이 세계 대회를 독식하게 되면서 팀 내의 서열문제와 대표팀의 파벌싸움은 더 심각해졌다. 심지어 선배를 위해 1등을 양보하라는 제안까지 받았고 그걸 거부하자 구타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 국민들에게 안현수라는 빙상 영웅의 이름을 또렷하게 각인시켰던 2006년 토리노 올림픽 3관왕은, 그러나 그가 파벌싸움으로 남자 팀에서 떨어져 나와 여자 팀과 연습을 하며 거둔 성과였다. 심지어 왕따설까지 불거졌던 그 상황 속에서 안현수 선수는 얼마나 속이 문드러졌을 것인가.

 

그는 러시아로 귀화를 결심하기 직전까지도 안갈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 하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혔었다고 한다. 하지만 빙상연맹은 그런 힘든 결정을 하게 된 안현수 선수를 다독이기는커녕 러시아에 그를 문제 있는 선수니 받지 말라는 방해까지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장에서 심지어 우리 대표팀끼리 파벌을 나눠 싸우는 모습에 해외 선수들이 오히려 위로를 해줬다는 이야기는 실로 씁쓸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비록 귀화했지만 안현수 선수를 여전히 응원하게 되는 건 이런 썩을 대로 썩어버린 우리네 현실 속에서 그가 겪었을 고통을 공감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이야기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어울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르뽀 프로그램이 아닌 <휴먼다큐 사랑>에 출연하게 된 건 그의 부활에 우나리라는 항상 뒤에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는 헌신적인 아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상처받아 의기소침해진 안현수에게 힘을 주는 존재였다. 그들이 좋아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톰 크루즈가 했던 말, “You Complete Me 당신은 나를 완벽하게 만들어요는 바로 그녀를 지칭하는 말 그대로였다.

 

차가운 러시아의 추위를 녹여버리는 안현수와 우나리의 사랑은 그래서 더 애틋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우리네 현실은 너무나 안타깝다. 세계적인 선수조차 파벌 같은 자기 밥그릇 싸움 속에서 백수를 만들어버리는 나라. 많은 대중들이 안현수의 귀화조차 박수를 쳐주는 데는 이 나라에 대한 답답한 심경이 들어있다.

 

이것은 아마도 안현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부조리한 현실 때문에 백수가 되는 그런 상황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문제가 국가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사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현실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위대한 사랑으로 힘겨운 현실을 이겨낸 안현수 선수가 한없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 이유다.

 

<휴먼다큐 사랑>, 고인이 된 그가 가족을 위로하는 법

 

마왕 신해철. 그는 떠났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갑작스레 떠난 신해철을 위해 마련된 콘서트에서 선후배들의 입을 통해 불려지는 노래 속에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는 후배의 목소리를 빌어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야?”하고 여전히 소리쳤고, 그의 아들 동원이는 화답하듯 난 아빠를 원해!”라고 외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그는 떠났지만 가족들의 곁에 그는 여전히 자그마한 밥 그릇 앞에 앉아 있었다. 또 집 한 구석에 놓여진 그의 사진 속에 있었다. 가족들은 밥을 먹을 때나 아니면 사진 앞을 지날 때나 그에게 말을 걸었다. 특별한 맛이라며 젤리를 아빠의 사진 앞에 놓고는 이제 마음껏 드시라는 딸 지우의 마음 속에, 또 그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따라 부르는 재즈카페슬픈 표정하지 말아요같은 노래 속에 살아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전히 가족을 향한 걱정이자 위로이자 격려였다. 가족에게 그 노래는 다정다감했던 아빠의 목소리이고 그가 여전히 전하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냄새로도 오래도록 느끼고 싶은 아내는 그의 베개 솜을 꺼내 아이들과 자신의 베개에 넣었다. 사라져가는 냄새를 통해서라도 그녀는 계속 그를 붙잡고 싶었다.

 

아내는 둘이 같이 웃었을 때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특별히 어딜 갔던 일도, 특별히 함께 무언가를 했던 일도 아닌 함께 웃었던 일’. 그래서 그녀는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 아내의 행복한 기억 속에서 신해철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9제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한다. 하지만 신해철의 그날 아내는 그가 좋아했던 문어와 갈비찜을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문어를 아이들이 챙기며 하나씩 빼먹는다. 그 문어의 추억 속에서, 그걸 먹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서 그는 여전히 밝게 웃고 있다. 마지막을 떠나보내며 팬들이 부르는 민물장어의 꿈속에서도.

 

그의 가장 좋은 옷을 챙겨 태우며 아내는 가족들 몰래 눈물을 삼킨다. 그녀는 그의 평안함을 기원하다가 아이들 잘 챙길께요라고 말한다. 그것은 아마도 떠나는 그에게 가장 위안이 되는 말이었을 것이다. 그가 떠나고 난 그 빈 자리가 얼마나 클 것이라는 것을 그 역시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의 빈 자리는 가족들이 하나씩 채워가고 있었다. 아내는 가장이 되어 더 일을 많이 하고 있었고, 아이들의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더 성장할 때까지 자신이 대신 버티겠다고 담배도 끊었다. 할아버지는 밤이면 그가 해왔던 문단속을 대신 한다. 그래도 동원이는 여전히 아이다. 누가가 잠시 자리를 비울라치면 견디지 못하는 그 아이를 이제 할머니가 맡는다. 그들은 서로가 조금씩 떠나간 그의 빈 자리를 채워간다. 위안 받을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렇게 서로 똘똘 뭉쳐있는 일 뿐이기 때문이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기록한 고 신해철의 다큐멘터리에 정작 신해철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예쁜 아내의 착한 마음 속에, 아빠를 진정으로 원하는 동원이의 마음 속에, 아빠가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한다는 지우의 마음 속에, 아프게 가슴에 묻어두고 그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는 부모님들의 마음 속에, 그리고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같은 시대를 살았던 우리들의 마음 속에. 앞으로도.

 

김성령, 유해진, 이승환의 삶 바꾼 <휴먼다큐 사랑>

 

이제 곧 5월이다. 가족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계절. MBC <휴먼다큐 사랑>이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벌써 10. 이 기적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10주년 특집으로 다음 달부터 방영되는 <휴먼다큐 사랑>은 지금까지 달려온 그 감동적인 10년의 세월을 한 편에 담아 미리 보여주었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2013년 방영됐던 해나의 기적에서 기도 없이 태어나 튜브 없이는 살아갈 수 없던 해나. 해나의 가족은 작년 캐나다로 이주했다. 인공기도 이식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해나는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하지만 그 한 줌의 재로 남은 해나는 여전히 가족의 품속에 남아있었다. 해나의 아버지는 고통스럽지만 행복하다고 했다. “늘 해나를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그 힘겨운 시간 속에서도 밝게 웃던 해나의 그 미소는 아마도 시청자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작년 방영됐던 꽃보다 듬직이의 임듬직은 미혼모 보호시설에서 태어난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 아무도 입양을 하지 않던 듬직이를 보듬어준 건 아동양육시설 삼혜원 202호 엄마들과 아이들이었다. 특히 당시 5살 예린이는 장애인 시설로 떠나던 듬직이를 보며 듬직이 가지마!”라고 계속 울먹였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듬직이는 결국 그렇게 다시 삼혜원으로 돌아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후 모든 게 달라졌다. 듬직이 바라기 모임이 생겨 틈틈이 듬직이를 챙겨주고 있는 것. 그 모임의 일원 중 한 사람은 듬직이를 보면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내 가슴 한 켠에도 따뜻한 마음이 있구나하고 느끼게 된다고. 잘 자라준 듬직이가 만들어낸 기적 같은 변화들이다.

 

기적은 이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연예인들에게도 일어났다. 작년 방영됐던 날아라 연지편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배우 김성령은 그게 계기가 되어 뇌종양을 앓던 연지와 연지네 엄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내가 연지를 위로해야 하는데 연지가 오히려 나를 위로한다는 내레이션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김성령에게 연지네 엄마는 아픔을 진심으로 공감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방송이 나가는 날 김성령이 입금해줬다는 5백만 원에 대해 그녀는 너무 큰 돈이었다고 했다. 수치로는 도저히 가치를 매길 수 없는.

 

2013년 방영된 붕어빵 가족의 내레이션을 맡았던 배우 유해진 역시 이 아홉을 입양한 놀라운 가족과의 인연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었다. 막내 행복이의 돌잔치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는 유해진은 불쑥 붕어빵 가족의 엄마 윤정희 누님을 찾아가 봉투를 내밀었다고 했다. 끝까지 자기 힘으로 키우겠다며 봉투를 다시 유해진의 손에 쥐어주자 그가 손을 꼭 쥐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2011년 방영됐던 엄마 미안편의 희귀병을 앓던 네 살 서연이는 벌써 8살이 되어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 중이었다. 무려 13번의 수술. 그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밝게 웃어 엄마를 울게 만들었던 네 살짜리 아이 서연이. 그녀는 아직 병원에 있었지만 훨씬 밝아진 얼굴로 살아가고 있었다. 목에 주사 맞는 게 싫다면서도 팔을 내밀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2006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던 창원씨는 영란씨를 먼저 보낸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너무 힘겨워 촬영하는 PD에게 안아줘요라고 말하던 창원씨의 모습은 지금도 뭉클하게 가슴에 남아있다. 이 다큐를 보고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곡을 만들었던 가수 이승환은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진실된 사랑과 가족애. 소소해보이지만 그래서 더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아낸 <휴먼다큐 사랑>은 그렇게 10년의 기적 같은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놀라운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5월에는 어떤 기적들이 우리들을 찾아올까. 실로 각박해진 삶이다.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메말라진 현실. 이 건조한 우리네 삶을 촉촉하게 적셔줄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가 이제 5월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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