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이 멜로를 만나면 ‘버럭’하는 스승이 등장한다

거침없이 면전에 대고 “똥덩어리”라고 얘기하는 사람, 그래도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향에서 자른 게 못내 서운해 찾아온 단원들에게 “거지근성”이라고 말하는 사람. 하지만 그래도 언뜻 비치는 정감 어린 모습에 미워할 수 없는 강마에(김명민). 이런 사람이 사랑을 하면 어떻게 할까. 도무지 ‘사랑’같은 단어하고는 담을 쌓을 것만 같은 캐릭터는 거꾸로 사랑타령이 주조를 이루는 우리네 드라마에서는 독특하고 참신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 캐릭터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일까. 그들의 멜로를 다시 기대하게 되는 것은.

그들은 모두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
전문직과 멜로의 접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그 전범을 만든 전문직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희’다.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에 카메라를 들이댄 이 드라마에는 봉달희의 스승에서 연인이 되는 안중근(이범수)이 등장한다. 봉달희를 조련하는 인물로 안중근은 차츰 그녀에게 빠져들고, 도무지 사랑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인물은 자신만의 특유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괜스레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이 캐릭터로 이범수는 ‘버럭범수’라 불리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기자의 세계를 소재로 했던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이렇게 ‘소리지르며 사랑을 표현’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팀의 캡인 오태석(지진희)은 서우진(손예진)을 가르치는 사수로 등장해 사사건건 그녀를 몰아세운다. 하지만 조금씩 오태석은 서우진과 가까워지고 그 애틋해진 마음을 버럭 대는 것으로 표현한다. 이것은 지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두루미의 스승이면서 입만 열면 “귀머거리”라며 버럭 대지만 그것 역시 애정의 표현으로 변해간다.

한편 사극이지만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하는 ‘바람의 화원’에서도 이것은 동일하게 나타난다. 김홍도(박신양)는 신윤복(문근영)과 사제지간으로 만나지만 남장여자인 그녀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을 느끼게 된다. 그는 늘 신윤복을 위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늘 앞에서는 콩알이라고 놀리고 때로는 소리를 지른다. 전문직 드라마 속에 왜 사랑은 모두 사제 지간에 나타나며, 또 그 스승은 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를까.

전문직의 완성도와 멜로의 대중성을 엮기 위해
참신한 캐릭터와 스토리에 대한 욕구는 좀더 직업적인 디테일을 요구하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그런 요구와 함께 여전히 남아있는 멜로에 대한 욕구 때문일까. 전문직 드라마는 언제부턴가 다시 멜로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 ‘사랑’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매력적이고 신선한 캐릭터의 사랑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부한 멜로를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지워버린 캐릭터를 다시 멜로의 틀로 끌어들이길 원하는 시청자의 양가적인 욕구 속에서 우리네 특유의 ‘버럭 대며 사랑하는’ 캐릭터들이 탄생한다.

그들이 사제지간(이것은 최근 직업적으로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이기도 하다)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전문직이 갖는 직업적 완성도(디테일)와 멜로가 갖는 대중성을 한데 엮어두기 위함이다. ‘하얀거탑’이 그 참신한 캐릭터와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20% 남짓의 시청률에 머문 것은 이른바 멜로 같은 여성 시청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장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고현정과 하정우가 등장하고 형사드라마라는 기대감을 갖고 출발했던 ‘히트’가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멜로는 충만했지만, 디테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사랑타령이 되어버리는 멜로와 완성도 높은 전문직을 봉합하면서 여성 캐릭터는 전문직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애정표현을 끄집어 보여주지만, 남성 캐릭터는 전문직을 고수하면서(즉 스승의 입장에 서서) 그 애정표현을 하게 된다. 즉 버럭 대는 캐릭터는 전문직과 멜로 사이에 선 인물이다. 깊게 직업에 빠져있어 “사랑 따윈 필요 없어!”하고 외치지만 갑자기 다가온 사랑에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은 마치 “멜로 따윈 필요 없어!”하면서도 멜로를 요구하는 대중의 욕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2007년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방송사별 특색

2007년 한 해의 드라마를 특징짓는 한 현상은 시청률은 낮은데 호평 받았던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일 것이다. ‘마왕’, ‘경성스캔들’, ‘한성별곡’, ‘얼렁뚱땅 흥신소’까지 가장 많은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곳은 KBS. 여기에 MBC의 ‘메리대구 공방전’ 정도가 그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다. 희한한 일이지만 SBS는 단 한 편도 마니아 드라마라 꼽을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마니아 드라마를 등장하게 했고, 그 양태가 방송사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 같은 드라마에 웃고 울고
마니아 드라마의 한 특징은 그것이 만화를 닮았다는 점이다. 만일 만화로 친다면 ‘마왕’은 사이코 메트리가 등장하는 본격 스릴러가 될 것이며, ‘경성스캔들’은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한성별곡’이 정조시대를 다룬 본격 역사만화가 된다면, ‘얼렁뚱땅 흥신소’는 도심 속의 보물찾기라는 코믹 모험 만화가 될 것이며, ‘메리대구 공방전’은 코믹한 청춘 멜로를 그린 순정만화가 될 것이다.

이 드라마들의 만화 같은 특징이 만화의 세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보통은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으리라는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경성스캔들’, ‘얼렁뚱땅 흥신소’, ‘메리대구 공방전’같은 드라마는 아예 영상 구성 자체를 만화적인 컷으로 하는 실험성까지 보였다. 톡톡 튀는 재미와 심각한 주제마저도 가볍게 끌어가는 연출은 이들 마니아 드라마가 호평을 이끌어낸 원천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은 기존 드라마 시청층(30대 후반부터 60대까지)으로부터 외면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보통의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층은 일단 만화적인 상상력이 엉뚱하다는 것 이상으로는 이해될 수 없었고, 스토리텔링의 촘촘함이 무기인 이들 작품들은 한 회 정도 걸렀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찾아보는데 익숙하지 않은 이 시청층은 늘 봐야 이해할 수 있는 낮선 드라마보다는 아무 때고 봐도 이해될 수 있는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한 드라마를 찾았다. 그러니 이들 드라마들의 본방 시청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니아 드라마가 될 뻔했던 드라마들
하지만 만화적인 상상력을 동원했다 해서 모두가 마니아 드라마가 됐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들이 ‘쩐의 전쟁’이나 ‘개와 늑대의 시간’, ‘히트’, ‘커피프린스 1호점’같은 드라마들이다. ‘쩐의 전쟁’은 아예 원작이 만화였으며, ‘개와 늑대의 시간’은 국내 드라마로서는 처음으로 느와르의 세계를 만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히트’ 역시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을 좇는 형사물로 인기를 끌었고, ‘커피프린스 1호점’은 순정만화 톤의 드라마연출로 각광을 받았다.

어째서 이들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외면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이들 드라마들이 완전히 낯선 만화적 세계를 그렸다기보다는 어느 정도의 현실성이나 익숙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라는 낯선 세계를 소재로 삼았지만, 그 사채라는 소재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가 그만큼 높았으며, ‘히트’와 ‘개와 늑대의 시간’은 장르의 익숙함과 멜로적인 인간관계의 구성으로 그 벽을 넘어섰다. ‘커피프린스 1호점’은 꼼꼼한 연출력과 캐릭터의 힘, 게다가 트렌디에 바탕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스토리 전개로 호평과 시청률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즉 2007년도를 특징짓는 이른바 마니아 드라마들의 탄생은 바로 그 낯선 세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만화적인 낯설음이기도 하고 젊은 세대의 감성에 대한 낯설음이기도 하다. 젊은 것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허용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 젊은 세대가 앞으로 미래의 시청자가 된다는 점에서 이들 마니아 드라마들은 과거의 답습보다는 미래의 드라마에 도전한 드라마로 볼 수 있다.

마니아 드라마가 말해주는 2007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
마니아 드라마가 생기는 이유로서, TV 본방 시청보다 인터넷이나 IPTV 등의 다운로드형 시청 패턴이 젊은 층을 통해 늘고 있다는 것은 또한 현재의 시청률 집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방송사의 고민은 현재의 시청률 집계 속에서 시청률을 잡기 위해 나이든 시청층에 맞는 익숙한 드라마를 내보내야할 것이지만, 또한 달라지고 있는 미래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도외시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이러한 고민이 깃든 방송사들에서 저마다 마니아 드라마의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올 한 해 방송사별 드라마의 특색을 가장 잘 말해주기도 한다.

가장 많이 마니아 드라마를 양산한 KBS는 완성도만을 고려한 정통적인 드라마 기획을 한 점은 높이 살만하나, 결과적으로 현실적인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 한 개의 마니아 드라마도 양산하지 않은 SBS의 경우는 그만큼 올 한 해의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들은 실제로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MBC는 어찌 보면 이를 가장 잘 조화시킨 경우가 될 것이다. 도전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완전히 낯선 세계가 아닌 익숙한 세계를 끼워넣는 노력을 보였다.

그 성과가 어떻든 방송사들의 마니아 드라마 양산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 받을 만한 것이다. 문제는 지나친 마니아 드라마만의 양산은 자칫 방송사의 방만함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반면 마니아 드라마가 한편도 없다는 것은 방송사 자체의 도전이 없었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던 마니아 드라마들은 따라서 올 한 해의 방송사별 드라마 특색을 말해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2007년 한 해, 마니아 드라마가 있어서 우리는 행복했다.

장르, 사회극, 사극 속에서 계속되는 멜로의 실험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대변되는 외국드라마 전성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드라마의 문법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제작비에 완벽한 사전제작으로 꽉 짜여진 완성도 높은 외국드라마들을 보다가 무언가 어수룩한 우리 드라마를 보면 단박에 그 열등감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쌓아온 공력은 적지 않다. 그것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미드, 일드는 정답이고 우리 드라마는 오답이라는 편견은 어딘지 부적절해 보인다.

모든 멜로가 죄인은 아니다
특히 멜로에 강점을 가진 우리 드라마들이 어느 순간부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은 미드, 일드가 준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쿨해 보이는 그네들의 드라마를 보면서 왜 우리는 매번 똑같은 삼각 사각 구도에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눈물이나 짜는 그런 드라마밖에 없는가 하는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우리의 멜로드라마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 ‘멜로드라마 = 식상한 것’이라는 등식으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들 역시 시청률의 무덤에 던져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90일 사랑할 시간’같은 실험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청률 실패이다. 소재만으로 보면 불륜에 불치 코드가 뒤섞여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직조해냈다. 하지만 당시 멜로드라마라고 표방하기만 하면 하나같이 철퇴를 맞는 분위기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역시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멜로라는 말은 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대로 드라마들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았을 뿐, 멜로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으로 식상한 틀을 벗어버린 멜로는 다양한 외투를 입고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장르 속으로 들어온 멜로
미드, 일드의 영향으로 등장한 우리네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히트’는 범인을 좇는 이야기만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것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의 닭살 멜로였다. 차수경에게 ‘바보팅이’라고 말하는 김재윤의 모습에서 저 미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나, 일드의 쿨한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식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한 귀여운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 그 중심에 봉달희(이요원)와 버럭범수 안중근(이범수)의 멜로드라마를 접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네들의 톡톡 튀는 사랑법이 병원이란 공간에서 인간으로서의 의사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편 ‘에어시티’의 실패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르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데서도 패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르드라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정쩡하게 구사한 한도경(최지우)과 김지성(이정재)의 멜로라인은 드라마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종영한 본격 느와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멜로를 상당부분 뺐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섞여 있다. 이 느와르만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 그리고 서지우(남상미)의 삼각구도는 심리적으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그 양상이 사랑타령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총을 든 느와르의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회극을 표방한 멜로
한편 SBS가 계속해서 사회극을 표방한 드라마를 내놓는데는 역시 이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사회극 속에는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존재한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 기본적으로 금나라(박신양) - 서주희(박진희)의 멜로드라마를 엮었고, 여기에 공식적으로 이차연(김정화)이란 인물을 끼워 넣어 삼각라인을 만들었다. 드라마는 한창 사회적인 이슈들을 잡아나가다가 마지막회에 이르러 주인공들의 결혼식으로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양상을 보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전형적인 틀을 가진 식상한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부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마치 탐구라도 하듯이 현미경을 들고 조명해나간다. 식상한 멜로드라마들이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중심에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사랑과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것들이 환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기에 ‘내 남자의 여자’는 사회극과 멜로드라마가 그 정점에서 만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멜로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다음, 그 화학반응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웃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당신이 아는 그 한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기본 틀은 정윤희(배두나)를 사이에 둔 백수찬(김승우)과 유준석(박시후), 그리고 유준석을 따라다니는 고혜미(민지혜)가 이루는 사각관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사각관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닌, 그 틀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이웃들(조연들)의 화학관계를 통해 그 멜로를 이어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멜로는 나타난 현상이지 목적은 인간관계 자체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식의 멜로드라마, 외면 말아야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실험과 진화는 최근 불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극의 메인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과 나’는 내시인 나, 김처선(오만석)이 왕(고주원)이 사모해온 여인 윤소화(구혜선)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새롭게 시작한 ‘이산’에서도 정조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그려진다. 현대물에서는 외면한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사극이라는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늘 식상하다는 편견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다만 새로운 외투를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그렇게 비하되거나 구닥다리로 손가락질 받을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짜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멜로드라마를 외국 드라마와 단순히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멜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틀 속에서 실험을 해왔을 뿐이다.

OST,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 이미 끝난 지 꽤 된 드라마인데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드라마에 푹 빠졌던 추억이 떠오른다. 노래로 기억된 영상들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온다. 손예진이 감우성과 함께 도넛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던 장면도 떠오르고, 이하나와 공형진, 이 엉뚱한 커플의 로맨스도 슬쩍슬쩍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드라마와 음악의 완벽한 시너지, OST
OST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감정이 시청자에게 전달되게 해주는데 이만큼 효과적인 장치도 없다. 인상적인 드라마를 보고 나면 기억을 자극하는 영상과 그 속에서 울고 웃는 캐릭터들 그리고 그 영상을 영원히 감금해놓고 언제든 우리네 감성 속에서 폭발할 준비를 하고 있는 OST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어렵다는 음반시장에 있어서는 훌륭한 기회로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요즘처럼 가수들이 방송에서 노래할 공간이 좁아지는 상황에 매회 적어도 1,2회씩 반복되어 흘러나오는 매체(?)의 제공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 같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OST는 드라마와 음악이 확실한 시너지를 이루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시너지는 다름 아닌 문화 소비자들의 머리와 가슴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감성에 목마른 현대인에게도 단비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 곡을 들으면 주인공이 떠오른다
▶ ‘연애시대’와 스윗소로우가 만난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국내 명풍드라마의 탄생을 알린 ‘연애시대’. 멜로를 다루었으되 질척거리지 않고, 코믹한 터치로 드라마를 만들었으되 가볍지 않은 ‘연애시대’는 그 분위기에 딱 맞게 스윗소로우라는 뽀송뽀송한 목소리의 소유자들의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을 선보였다. 같은 소절이 계속 반복되는 이 곡은 드라마 속에서 계속 갈등하는 은호(손예진)와 동진(감우성)의 감성을 잘 잡아내고 있다. 진호가 부른 ‘만약에 우리’ 역시 헤어진 후 더 절실해지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했다.

▶ ‘봄의 왈츠’와 러브홀릭이 만난 ‘One love’
윤석호 PD의 사계 시리즈 마지막편인 ‘봄의 왈츠’는 마치 드라마 같은 가사와 멜로디를 줄곧 선보여온 러브홀릭을 만나 ‘One love’란 감미로운 곡을 만들어낸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에서 마치 꽃이 확 피어나는 듯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는 러브홀릭의 보컬 지선의 몽환적인 목소리와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윤석호 PD는 드라마에 한국적 풍경과 함께 음악을 적절히 잘 배합하는 능력이 탁월한 연출자이다. 윤석호 PD의 작품치고 드라마는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에 걸맞게 OST는 명반으로 남았다.

▶‘하얀거탑’과 바비킴이 만난 ‘소나무’
국내 전문직 드라마의 새 장을 연 ‘하얀거탑’. 김명민이란 배우의 카리스마가 돋보인 이 드라마에 삽입된 ‘소나무’는 바비킴의 읊조리는 듯한 음색이 차츰 절정을 향하며 호소력 짙게 감성을 흔드는 곡이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란 가사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욕망과 그 좌절을 그린 드라마 내용과 잘 어우러진다. 마치 뽕짝처럼 우리네 정서를 깊은 뿌리서부터 느끼게 하는 바비킴의 창법은 세련되면서도 토착적인 음색을 ‘소나무’에 심어놓았다.

▶ ‘마왕’과 박학기가 만난 ‘빛의 향기’
‘향기로운 추억’으로 발라드라는 장르에 그만의 굵직한 획을 그었던 박학기는 ‘마왕’이란 드라마를 만나면서 부활하는 듯 하다. ‘마왕’의 OST는 바비킴의 ‘뒷걸음’이나 JK김동욱과 드라마 주인공인 엄태웅이 직접 부르기도 한 ‘사랑하지 말아줘’, 그리고 박학기가 부르는 ‘빛의 향기’, ‘널 사랑하나봐’ 모두 드라마의 내용과 분위기에 잘 맞는 곡들이다. 특히 ‘빛의 향기’는 드라마 속 이승하(주지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았고, ‘사랑하지 말아줘’는 강오수(엄태웅)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 ‘히트’와 거미가 만난 ‘통증’
‘히트’의 장르가 수사물이란 점은 그 OST의 색깔 역시 스릴러와 액션에 가깝다는 걸 짐작케 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의 OST는 긴장감을 높여주는 효과적 배경음악으로 가득하다. 물론 중간 중간 삽입되어 있는 테마곡들은 청자의 귀를 사로잡기에 부족함이 없다. 거미가 부른 ‘통증’은 드라마 상의 차수경(고현정)이 가진 내적 상처를 잘 표현한 곡이다. 이밖에도 JM이 부른 ‘그 사람’은 극중 캐릭터들의 멜로 라인이 애절하게 느껴지는 곡이며, 메인테마곡인 슈퍼주니어의 ‘히트’도 경쾌하게 전체 드라마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 ‘내 남자의 여자’의 상처를 담은 더 원의 ‘사랑아’
불륜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점점 여성심리극으로 가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남편과 친구를 동시에 잃고 그 상처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는 지수(배종옥)의 심경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더 원의 ‘사랑아’도 화제가 되고 있는 곡이다. 절규하는 듯, 울먹이는 듯한 더 원의 음색이 듣는 이의 폐부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만든다.

▶ 고마운 드라마, ‘고맙습니다’가 만든 김태훈의 ‘고맙습니다’
훈훈한 감동으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고맙습니다’는 김태훈이 부른 동명의 곡이 잔잔한 톤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아마도 드라마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 이 곡은 그러나 드라마와 만나자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다. ‘당신은 바보네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내용은 고스란히 드라마 ‘고맙습니다’의 주인공 영신(공효진)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드라마와 만나 명곡이 된 노래들은 부지기수.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내세우는 메인 테마는 어김없이 명곡이 되기 일쑤다. 특히 극중 캐릭터가 메인 테마와 만났을 때, 그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곡을 들으며 단지 멜로디와 가사만을 듣는다는 것 그 이상이 되게 만드는 영상과의 만남, 이것이 OST를 특별하게 하는 요소다. 이것은 또한 뮤직비디오가 점점 길어지고 스토리를 담으며, 캐릭터를 창출하고, 심지어 뮤직드라마로 진화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형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MBC 드라마 ‘히트’는 ‘수사반장’이후 보기 힘들었던 형사를 안방극장으로 다시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게다가 여성 강력반 반장이라는 설정, 유사가족 형태로 묶여진 팀이 엮어 가는 수사물이란 점, 게다가 우리 식의 수사물(주로 영화 속에서)의 맨발로 뛰어다니는 모습이 일상화된 형사의 캐릭터에 동시에 과학수사의 이미지를 덧붙인 점 등등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드라마다.

하지만 종영에 즈음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이제 이야기를 좀 해볼만한 상황에 끝나버린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히트’는 초ㆍ중반부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것이 사실이다. 미드(미국드라마) 식의 전문성을 가진 드라마가 이제 막 태동하는 시기인데다, 그것이 우리 식으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니, ‘히트’는 그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 되었다. 드라마는 스토리 전개보다 캐릭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캐릭터는 완전 소중, 스토리는 지지부진
작가들은 “사건 자체보다는 인간관계에 중점을 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히트’가 수사물이라는 장르의 틀을 빌어 왔다는 점에서 상충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장르에 대한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되는데 사건은 지지부진하면서 캐릭터에 집중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인간관계에 더 초점을 맞췄다면 장르를 배반할만한 특별한 대체물이 있었어야 했다. 그래서 캐릭터 설명에 할애된 ‘히트’의 초반부 스토리는 사족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팀원들 한 명씩 캐릭터를 설명하면서 이야기 전개를 하기에 20부작은 너무 짧다. 그들의 캐릭터가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그것은 후반부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처럼 차수경과 연쇄살인범의 대립구도 안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났어야 했다. 하나씩 설명하는 스토리들이 초반에서부터 중반까지 이어지자 기현상이 벌어졌다. 캐릭터는 완전 소중해졌는데 스토리는 지지부진해진 것이다.

16부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이다
‘히트’의 진짜 얘기는 연쇄살인범의 얼굴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 20부작 짜리 드라마는 후반부 16부에 와서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즈음에는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수사물이 갖는 미스테리의 요소를 일찌감치 지워버린다.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고 쫓고 쫓기는 이야기 속으로 바로 뛰어들었다. 그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드라마의 긴장감이 생기면서 중심 이야기 부재로 지리멸렬해진 ‘히트’가 가야할 강력한 목표가 생겨버린 것. 드라마는 그제야 살아나기 시작한다.

연쇄살인범과 차수경의 본격적인 심리전은 ‘히트’가 처음부터 했어야 했던 요소다. 14년 동안 감옥에서 정신병원에서 차수경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준비했던 범인 캐릭터라면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예 히트 팀원 들 전체를 이 범인이 벌이는 사건과 연관시켰다면 시간도 벌면서 이야기는 더 일관성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좀더 진화된 ‘히트’를 기대하는 이유
드라마가 끝난 마당에 이런 아쉬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 아쉬움은 ‘히트’가 일정부분 성과를 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늘 어렵기 마련이고 그 첫 시행착오를 거쳐 해결의 실마리를 막 잡았다는 점에서 ‘히트’는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전문성 있는 드라마들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 놓았다는 의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히트’의 시즌2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것일까. ‘히트’가 구축해놓은 캐릭터가 너무 아쉽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막 본격적으로 감을 잡은 ‘히트’가 이렇게 단발성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쉽기 때문이다.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조직된 ‘히트’는 이제 겨우 사건 하나를 해결한 셈이다. 그걸로 이렇게 끝내기가 못내 아쉽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는 없을까. 종반부에 보여줬던 긴장감을 초반부터 유지해간다면 이처럼 잘 구축된 캐릭터에 좀더 진화된 ‘히트’가 나오지 않을까. 실망과 함께 말미에서 보인 가능성이 너무 아쉬워하는 말이다.

너무 잘 짜여진 ‘마왕’ vs. 너무 흐트러진 ‘히트’

‘하얀거탑’을 통해 미드와 같은 완성도 높은 드라마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한 시청자들이 그 연장선 상에서 기대했던 드라마는 ‘마왕’과 ‘히트’였다. 하지만 이 두 유망주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마왕’은 그 뛰어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연일 최저시청률을 경신하고 있고, ‘히트’는 수사물로서의 맥을 잡지 못하면서 시청률 추락을 맞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잘 짜여진 드라마, ‘마왕’
‘마왕’을 보고 있으면 이 드라마가 김지우라는 작가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구성력에 있어서 이 정도면 거의 퍼즐 맞추기에 가까운데, 그 속에 인물들을 살려놓고 양파 껍질 벗기듯 조금씩 속살을 감질나게 보여주는 전개방식은 이것이 과연 드라마에서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만든다. 물론 미드를 한 편이라도 본 경험이 있다면 ‘마왕’의 전개방식이 그다지 낯설다고만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작품에 수십 명의 작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내는 미드와 ‘마왕’은 그 대본의 제작환경이 백 프로 다르다.

미드의 경우, 에피소드 하나를 만드는 데 투여되는 인원은 최소 10명에서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메인 작가는 한 명이지만 공동 집필을 하는 경우 공동작가(co-writer)가 있고, 여기에 그들을 돕는 여러 보조작가(staff writer)들이 붙는다. 작가들의 분야도 각자 달라서 아이디어만을 내는 작가(creator)가 있고 스토리를 구성하는 스토리 구성작가(story editor)들, 그리고 대본만을 집필하는 작가(teleplay)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 정도 작가군이 투입되는 드라마가 치밀한 완성도로 미드 폐인들의 혼을 쏙 빼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왕’의 작가는 김지우 혼자다. 그는 12년 전의 한 사건(혹은 사고)에서부터 비롯된 처절한 복수극을 혼자 생각해냈고, 수많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캐릭터들이 가진 스토리를 혼자 만들어냈으며, 미로처럼 얽히고 설킨 사건들에 혼자 질서를 부여했고, 그 복수극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하는 주제의식도 스스로 세웠다. 실로 놀랍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이 역량을 통해 김지우 작가는 초라한 우리네 드라마 작가 시스템에 저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은 ‘마왕’을 좀더 많은 대중들이 즐기기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마왕’의 도전의식은 가치 있고 이 변화의 기로에 선 우리 드라마에서 반드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사명이지만, ‘마왕’은 그 지점을 넘어서 너무 멀리 앞서가고 있다. ‘마왕’은 지금 미드에서도 좀체 시도하지 않는 20부 연작 추리극을 시도하고 있다. 미드가 그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도 맥을 놓치지 않는 것은 그 한 회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는 에피소드 형식을 안전망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왕’ 역시 그 형식을 취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마왕’의 이야기는 어느 한 편, 아니 어느 한 신, 심지어는 그저 휙 지나가 버린 소품 하나까지 기억해두지 않으면 이야기 전체의 흐름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짜여져’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매니아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지만 중간에서라도 보고 싶은 시청자는 처음부터 챙겨보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진입장벽이 너무 높은 것이다. ‘마왕’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잘 짜여져 있어’ 시청자들을 허락하지 않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흐트러져 있는 드라마, ‘히트’
반면 ‘히트’는 너무 허술한 구성과 스토리로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배반한 드라마가 되었다. ‘히트’의 문제는 그것이 ‘멜로가 있어서’ 라든가, ‘리얼하지 않은 연기’라는 식의 단선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구성과 스토리, 캐릭터 등이 맞물려 생긴 총체적인 문제이다. ‘마왕’이 너무 에피소드별로 드라마를 자르지 않아 시청자들의 진입장벽을 높였던 것에 반해, ‘히트’는 너무 에피소드별로 잘라내면서 맨숭맨숭한 드라마가 되어 버렸다. 미드가 가진 에피소드들이 시즌 드라마로서 힘을 받는 이유는 그 잘려진 에피소드들이 다음 에피소드와 맞물려 차츰 드라마의 긴장도를 높여간다는데 있다. 그러나 ‘히트’의 에피소드들 간에는 차츰 발전되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그 접착력조차 약하게 느껴진다.

‘히트’가 이렇게 된 데는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캐릭터에 너무 천착한 결과이다. ‘히트’는 스토리와 구성 등에 많은 허점을 드러내지만 보기 드문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갖고 있는 ‘이상한’ 드라마이다. 보통의 경우 스토리란 캐릭터(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그것이 차츰 미궁에 빠지기도 하고 해결을 향해 나가기도 하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마련인데, ‘히트’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일으킬만한 스토리가 부족하다.

강력 사건의 발생이 히트 팀 캐릭터들과 함께 벌어진다(장형사와 홍콩마약밀매 사건, 조과장과 최반장이 얽힌 증거물 도난 사건 등등)는 구조 역시 별로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사건에 캐릭터들을 포진시켜 좀더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했던 시도는 캐릭터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했을 지는 몰라도, 시청자들이 요구하는 좀더 디테일한 사건 전개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홍콩 사건을 예로 들면, 어느 순간 사건은 사라지고 장형사(최일화)와 그 딸의 애틋한 정으로 흘러가면서 급작스럽게 맥이 풀려버리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이것은 형사물로서 사건이 우선이 되고 그 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이 부각되어야 하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은 탓이다. 좀더 치밀한 스토리와 에피소드 간의 강력한 접착력 그리고 그것이 중첩되면서 좀더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면 ‘히트’가 가진 캐릭터들은 좀더 사건 속에서 부각되었을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현재 드라마의 에피소드로 진행되고 있는 14년 전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르게 치밀한 면모가 있다. 초반에 있었던 사족 같은 에피소드들 대신 바로 이 메인 에피소드에 천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마왕’은 너무 잘 짜여져 있어서, ‘히트’는 너무 흐트러져 있어서 결과적으로 시청률의 추락을 만들었다. 하지만 과거의 드라마와 앞으로 변화될 미래의 드라마 사이, 과도기에 걸쳐 있는 이들 드라마들의 시도는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이든 의미가 있다. 시행착오들이 좀더 탄탄한 성공의 길을 알려준다는 면에서 어쩌면 그것은 성공보다 실패에서 더 큰 가치를 발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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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에 보이는 여성성 경향

MBC 드라마 ‘히트’가 그려내는 강력계의 풍경은 욕설이 난무하고 폭력이 행사되던 여타의 우리네 형사물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강력계 팀장이 차수경(고현정)이란 여성이란 점이 다르다. 김영현 작가가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히트 팀에 여성을 내세운 것은 이 드라마가 전작인 ‘대장금’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걸 말해준다.

김영현 작가는 여성들의 성장 드라마 혹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환타지를 제대로 포착해내는 작가이다. ‘대장금’의 장금이가 조선시대 수라간 이야기를 통해 현대적 여성상의 전형을 에둘러 보여주었듯이, ‘히트’의 차수경 역시 남성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강력계 이야기 속에 보란 듯이 팀장 자리를 꿰차고 앉는다.

강력계 팀장을 여성으로 세우는 순간부터, 이 드라마는 지금까지 형사물들이 다루었던 범죄와 수사라는 재미에, 직장(?)여성의 성공담 혹은 성장담이라는 새로운 재미가 덧붙여지게 된다. 그 두 재미 중 무게중심이 기우는 것은 당연히 후자이다. 이유는? 전자는 이미 다른 드라마, 영화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닳고닳은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즉 히트라는 지리멸렬해 보이는 팀을 이끄는 차수경이란 여성 리더십이 진짜 볼거리란 이야기다.

다른 형사물과 다른 차수경의 리더십
차수경의 리더십을 보면 확실히 다른 형사물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는 지시를 내릴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를 유지한다. 장형사(최일화)가 가출한 딸을 찾아 근무지를 이탈해 홍콩으로 갔을 때도 질책하기보다는 그를 도우려고 애쓴다. 물론 극화된 것이지만 그녀는 심지어 홍콩까지 그를 찾아간다. 심종금(김정태)이 비리를 저지르고 다녀도, 김일주(정동진)가 같은 팀원 뒤를 캐고 다녀도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푹 내쉴 뿐, 주먹질을 한다거나 욕을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대신 팀원들을 가족같이 끌어안는다. 그 모습은 마치 속을 지글지글 끓이면서도 챙길 건 다 챙겨주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닮았다. 모성으로 느껴지는 이 리더십을 보면서 팀원들은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명령이 아닌 대화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은 요즘 회사 내에서 불고 있는 ‘펀(fun) 경영’이나 ‘위미니지먼트(womanagement, 매니지먼트 개념에 우먼이 합쳐져 만들어진 신조어)’를 연상시킨다. ‘히트’팀의 다른 풍경은 상명하복, 위계질서 등 과거의 남성성으로 대변되던 기업문화가 지금 상호존중과 조화 등 여성성을 내포한 문화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현실을 포착해낸 결과로 보여진다.

김재윤은 왜 애교만점 캐릭터가 되었나
그런데 그것이 단지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계 팀장 때문 만일까. 이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은 그녀에서 머물지 않는다. 차수경과 멜로 라인을 만들어가는 김재윤(하정우)이란 캐릭터를 보면 그것은 단박에 드러난다. 그 역시 검사라는 설정이 있지만 과거의 명령체계와는 전혀 다른 리더십을 구사한다. 그의 리더십은 지켜봐 주고 도와주는 것이지 억지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멜로 라인에서 보여주는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김재윤은 고압적인 인물이 아니다. 스스로 무너져 애교를 부리면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캐릭터다. 그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것은 외모도 아니고 카리스마도 아니다. 그것은 배려하고 도와주는 그 캐릭터 속에 숨겨져 있는 여성성 때문이다. 그가 차수경에게 자꾸 잊고 있던 서랍장 속의 하이힐을 끄집어내 신겨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녀가 잃어가는 여성성을 되살려주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남성식은 어떻게 미키성식이 됐을까
이런 캐릭터의 여성성 경향은 다른 팀원들에게서도 드러난다. 가장 남성적으로 보이는 남성식(마동석, 이름조차 남성식이다)은 겉으로 보기엔 남성성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그 속내를 살펴보면 그렇게 여성적일 수가 없다. 무기 같은 근육질에 우락부락한 얼굴로 배신한 차수경에게 전화를 해 소리를 질러대지만 그 눈에 눈물이 흐르는 면모를 보여준다. 우람한 근육질의 사내가 수줍게 자그마한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듯한 분위기 탓일까. 유독 남성식은 미키성식이라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히트’는 팀원들 간의 관계 역시 명령과 복종이 아닌 대화하고 고민하는 어찌 보면 가족 같은 수평적 관계를 그려낸다. 장형사(최일화)는 직급은 가장 낮지만 팀내에서는 맞형으로 대우를 받는다. 반대로 김일주(정동진)는 팀내에서 직급이 가장 높지만 막내 취급을 받는다. ‘히트’팀의 이런 관계는 거의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받은 팀장이지만 팀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급 호칭을 파괴해버린 어느 회사를 연상케 한다.

‘히트’의 의미 있는, 위험한(?) 시도
‘히트’에서 드러나는 여성성 경향은 작금의 변화하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미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리처드 톰킨스는 “기업 경영자들이 마르스(화성)형에서 비너스(금성)형으로 바뀌고 있다”는 말로 변화되는 조직을 표현했는데, 여기서 마르스는 전생의 신인 반면, 비너스는 미의 여신이다. 즉 정보화, 감성 마케팅 같은 새로운 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여성성을 극대화한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남성들조차 남성성으로 요구되는 마초이즘의 피곤함을 느끼기 시작하는 시대. 그런데 이렇게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는 ‘히트’는 왜 히트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전술했듯이 이 드라마가 갖는 두 가지 재미, 즉 범죄와 수사라는 남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와 직장여성의 성공담이라는 여성성으로 대변되는 재미 사이에 균형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본격 수사물과 멜로 드라마, 아르레날린과 감성,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화시키려던 ‘히트’의 의도는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그만큼 위험성을 내포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성이 너무 강조되면 현실의 리얼함이 취약해지기 마련이고 남성성이 너무 강해지면 과거 여타의 형사물과의 차별점을 잃게 된다. 이것이 마초이즘을 버린 형사물, ‘히트’가 지금 처한 딜레마이다.

이번 주는 드라마들이 중반으로 치달으면서 호연을 펼치고 있는 연기자들이 유난히도 돋보인 한 주였습니다.

역시 배종옥, 변신 김정민
SBS의 월화드라마,‘내 남자의 여자’는 극의 흐름을 김희애의 독한 연기가 끌어왔는데 이번 주에는 반격에 나선 배종옥의 연기가 돋보였습니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겪는 상처와 분노, 하지만 “그래도 용서해주세요”하는 아이의 애원에 흔들리는 엄마라는 복합적인 내면연기를 ‘역시 배종옥!’이라는 말이 어울리게 소화해냈습니다. 배종옥은 과장되지 않고 또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지도 않는 역할에 딱 맞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MBC의 ‘히트’는 전문성에 대한 비판여론 탓인지 분위기를 멜로에서 전문직쪽으로 바꾸려는 시도로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새롭게 전면에 나선 김영두 역의 김정민이 가수답지 않은(?) 훌륭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거칠고 강한 인상을 주는 캐릭터는 멜로로 말랑말랑해진 ‘히트’에 조금은 강력계다운 강한 면모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성숙 공효진, 소름 주지훈
수목드라마에서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맙습니다’는 달라진 공효진, 장혁의 물오른 연기가 시청자들을 감동에 젖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전 드라마에서 조금은 되바라진 캐릭터를 보였던 공효진은 이 드라마에서 바보스러울 정도로 착한 모성애 강한 미혼모역을 실감나게 소화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한편 장혁의 깊어진 연기와 서신애의 아이답지 않은 연기력, 그리고 자타가 공인하는 신구, 강부자의 연기력들이 맞물려 따뜻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데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시청률은 낮아도 여전히 화제에 중심에 있는 ‘마왕’은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캐릭터에 찬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는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보이다가, 순간 순간 씩 웃을 때 입꼬리가 올라가며 보이는 악마적인 느낌은 시청자들을 전율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의 아픔을 떠올릴 때면 그 고통을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내면연기 역시 돋보이면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배우라고는 믿기기 어려운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캐릭터와 연기력이 드라마를 살린다
TV 프로그램의 성패가 된 리얼리티는 이제 드라마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리얼하냐는 것이 공감의 바로미터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캐릭터가 극의 중심으로 오면서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연기자가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과거 스토리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에서는 적당한(?) 연기력을 가진 외모출중한 배우들이 포진했던 반면, 최근에는 외모가 아닌 진정성이 느껴지는 연기를 하는 배우들이야말로 드라마를 살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착한 척하는 배우, 예쁜 척 하는 배우보다는 자신은 망가지더라도 극중 캐릭터를 100%로 살릴 수 있는 연기를 보이는 배우가 아름다운 시대입니다.
월화수목 드라마들이 중반을 치닫고 있는 지금이, 이제 제 궤도에 오른 연기자들의 명연기를 보는 맛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내 남자의 여자’, ‘고맙습니다’ 뒤에는 연기자들의 호연이 빛나기 마련! 그러나 시청률과 상관없이 취향에 따라 그 다양한 맛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요.

재미로 보는 기대감 수치
▶ ‘내 남자의 여자’(기대감 80%) : 새로운 남자, 이종원이 등장하면서 배종옥의 갈등상황이 연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배종옥과 김희애의 대결구도는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입니다.
▶ ‘고맙습니다’(기대감 80%) : 연기로 보자면 이 드라마 만큼 기대감을 높이는 드라마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연기자들이 연기 9단의 모습을 보이는 드라마입니다. 공효진과 그 가족을 사이에 둔 장 혁과 신성록 간의 대결구도도 관전포인트입니다.
▶ ‘히트’(기대감 50%) : 아직까지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긴박감이 살아나지 않는 반면, 김정민의 역할이 얼마나 그걸 해줄지 기대가 되는 드라마입니다.
▶ ‘마왕’(기대감 50%) : 주지훈의 야누스적인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의 강오수’와 ‘형사로서의 강오수’ 사이에서 갈등하는 엄태웅의 연기도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멜로도 전문성도 아닌 형사란 직업에 천착해야

‘히트’는 지금 고민중이다. 기획의도에서 밝혔듯이 직업인으로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남녀, 즉 검사인 김재윤(하정우)과 형사인 차수경(고현정)의 사랑이야기는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특히 김 검사의 귀여운 모습은 털털한 이미지의 차수경과 어우러지면서 마치 풋사랑을 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반면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남성들에게 이 낯간지러운 멜로는 극에 대한 긴장감을 풀어놓는 방해꾼이 된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멜로가 풀어놓은 극적 긴장감을 다시 묶어줄 만한 전문적인 에피소드가 보이지 않는다. 첫 회의 헬기 추격 신에서부터 나왔던 비판은 홍콩 에피소드에서 더 강해졌다.

치밀한 디테일이 보이지 않는 수사장면들이 반복된 데 이어 한가한 멜로 신이 덧붙여진 것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즉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에피소드가 약한 전문직 드라마에, 주인공 남녀의 강한 멜로 라인이 붙여지자 우리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되었다. 혹 이거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 아닌가 하는.

‘히트’는 멜로와 전문직 봉합 실패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에서 연일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를 놓고 설전이 벌어지는 것은 이 드라마가 이 둘을 동시에 껴안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멜로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멜로를 본격적으로 내세우고 만든 전문직 드라마이지만 어느 누구도 그 전문성을 갖고 비판하지는 않았다. 즉 이것은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가 어떻게 잘 엮어지느냐의 문제이지 멜로 자체의 문제는 아니다. 잘 하면 멜로도 살고 전문성도 사는 그래서 적절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거머쥐는 작품이 될 수도 있다.

‘히트’가 고민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을 것이다. 전문성으로만 가면 매니아 드라마가 될 가망이 높고, 따라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멜로를 가미해야 하는데 그걸 어떻게 잘 엮느냐는 문제. 작가가 ‘대장금’이란 역사 속의 전문직 드라마를 썼던 김영현인 만큼 멜로와 전문성 그 둘 다를 기대해볼 만한 문제였다. ‘대장금’도 수라간이라는 공간에서 임금님에게 음식을 만들어 올리는 한 여성의 전문성에, 민정호(지진희)와 장금(이영애)의 멜로 라인이 엮어지지 않았던가.

‘히트’는 대장금도 봉달희도 아니다
하지만 ‘히트’는 ‘대장금’도 아니고 ‘외과의사 봉달희’도 아니다. 전문분야는 형사나 의사나 요리사나 대동소이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문분야를 다루는 시각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대장금’은 요리사는 요리사지만 조선시대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것도 임금님의 요리사를 선택했다는 점이 차별적인 요소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를 다루되 병 고치는 의사로서의 의사만이 아닌 ‘똑같이 병을 앓는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라는 측면을 조명한 것이 차별화 되었다.

그러나 ‘히트’ 속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우리가 이미 많은 영화 속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모습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 쉽게 유추되고 추리될 수 있는 평이한 사건들이 반복되고 어느 정도 끌다가는 범인을 검거하는 식이다. 여기에 4부 정도의 분량으로 한 사건씩 마무리를 지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구조는 매회 압축되지 않은 스토리 전개로 인해 끝 부분에 와서 미완적으로 급하게 처리되는 느낌이 있다. 홍콩 에피소드에서도 좀더 장형사의 상황을 드라마적으로 눌러 주었다면 후반부의 해결에 있어서 더 진한 감동과 페이소스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조과장(손현주)과 최반장의 에피소드 역시 최반장의 숨겨진 이야기가 너무나 빨리 드러나면서 긴장감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히트’는 형사들이 맡게 되는 사건보다는 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건이 끝날 때쯤이면 그 에피소드가 사건이 아닌 인물들 간의 관계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알게된다. 홍콩 에피소드가 부녀간의 가족애였다면 조과장과 최반장 에피소드는 유사 부자(아버지 같은 분)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관계설정을 통해 드라마는 처음부터 형사라는 직업이 갖는 삶의 페이소스를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히트’의 경우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있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싱거워서인지 그 효과는 반감된다.

‘히트’, 멜로나 전문직 아닌 형사에 집중해야
이러한 비판들을 감지했기 때문일까. 그간 히트 팀의 빛나는 캐릭터들에 가려져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영두(김정민)가 사건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현재 진행되는 ‘히트’는 이전 에피소드와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영두란 캐릭터가 다른 점은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희화화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다. 차수경이란 여성 강력반 반장 캐릭터를 위시해 김재윤과 히트 팀원들은 모두 조금씩은 만화 같은 면면을 보여왔다. 그 아기자기한 맛이 ‘히트’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형사라는 직업상 총과 칼이 날아다니는 현장 속에서 그것은 또한 단점도 된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김영두는 다르다. 그는 진짜 형사 같다. 평상시엔 한 여성을 짝사랑해온 평범한 남성처럼 보이지만 급박한 상황에 들어가면 거칠고 과격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는 과거의 형사였지 지금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그가 살해당한 연쇄 성범죄자와 벌인 난투극은 과거엔 수사가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발목을 쥔다. 형사라는 직업이 가진 이중성, 즉 법을 지키기 위한 폭력과 범법 사이에서 김영두라는 캐릭터는 이 드라마 속에서 좀더 진전된 에피소드를 끄집어낼 가능성이 있다.

전문직 드라마와 멜로를 같이 끌고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히트’는 저 ‘외과의사 봉달희’의 길을 예고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까지 주목되어온 에피소드들은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스토리보다는 ‘형사들의 애환’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차수경이란 형사가 갖는 여성성의 억압, 장형사가 보여준 형사란 직업의 현실, 조과장과 최반장이 그려낸 형사와 범인간에 벌어지는 미묘한 관계 같은 것은 모두 형사란 직업이 부여한 어려움이다. 이것은 저 ‘외과의사 봉달희’가 의사들의 인간적인 고민을 다룬 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히트’의 멜로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형사들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안 되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그 대상이 검사라면 미묘한 직업적 관계 속에서 멜로와 전문직이 부딪치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히트’는 이제 더 이상 멜로니 전문직이니 하는 것에 대한 소모적인 비판을 끝내고 오로지 형사라는 직업에 더 충실해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것이 현재 ‘히트’가 처한 고민을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히트’의 멜로 vs ‘내 남자의 여자’의 불륜

월화 드라마 대전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 작가의 ‘내 남자의 여자’ 바람이 거세다. ‘주몽’의 후속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을 것으로만 생각됐던 ‘히트’가 계속 부진의 늪을 헤매고 있는 사이, 단 4회만에 ‘내 남자의 여자’가 파죽지세로 거의 ‘히트’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드라마는 단순한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다. 단지 월화에 방영된다는 점에서 그 시청률이 비교될 뿐이다. 그런데 이 ‘월화의 경쟁’은 지금 우리나라 드라마가 겪고 있는 성장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장 고전적인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은 여전히 되지만, 변화의 바람 속에서 시도되었으나 지나치게 ‘멜로’가 강조된 전문직 드라마, 범죄수사물의 경우는 특히 더 안 된다는 것이다.

히트의 디테일 부족, 미드 때문이 아니다
물론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로서 성공한 드라마지만 ‘히트’는 그것과는 양상이 다르다. 먼저 다른 것은 디테일이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설정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극적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그래도 그 병원 장면이나 스토리에 있어서는 리얼한 디테일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히트’의 경우는 스토리 자체가 그다지 전문적이지 않다.

관습적인 액션들이 몇 번 오갈 뿐, ‘전문직 드라마’라면 보여줘야 할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전문적인 디테일’이 부족하다. 처음 드라마가 시작했을 때는 이 디테일 부족이 단지 미국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이 가진 선입견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8회가 끝난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비교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 시퀀스에서 굳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을 크루즈에 태워 멜로 라인을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남는다. 그렇게 긴박한 상황에 멜로의 등장은 드라마 흐름의 맥을 끊어버리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기에는 홍콩해외로케로 올라간 시청자들의 기대심리가 멜로로 인해 급격한 실망감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한몫을 차지한다. ‘도대체 홍콩에 가서 뭘 했다는 말인가’하는 비판이 나오는 건 당연하다.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
크루즈에서 내려서 이어지는 사건의 해결(장형사를 구하는 것)에 있어서 너무나 손쉽게 처리한 점도 이 드라마가 과연 전문직 드라마를 표방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만드는 요인이다. 찰리박(김병세)을 납치해서 장형사(최일하)와 맞바꾸는 장면은 그간 계속 어렵게 진행되어온 상황의 긴박감을 김빠지게 만들었다. 그 맥 빠진 자리를 채우는 건 장형사와 그 딸의 눈물겨운 상봉이다. 그러니 ‘히트’에서 무언가 긴박하고, 호기심과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전문직 드라마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실망은 시청률 부진으로 이어진다.

‘히트’의 시청자게시판은 이 ‘멜로’에 대한 공방이 한창이다. ‘히트의 멜로’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애초부터 기획의도에 이 드라마는 ‘사랑이야기’라고 밝혀진 점을 들어 여타의 미국드라마와 비교하지 말자는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기획의도를 보면 또한 ‘이 드라마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문구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멜로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멜로만 있는 전문직 드라마’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김수현의 불륜, 다른 건 자극의 강도일 뿐
반면 이 시간대에 새롭게 등장한 김수현의 ‘내 남자의 여자’는 그 자극적인 설정과 장면 연출로 여전히 ‘불륜 코드’는 된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에 ‘김수현의 불륜드라마’는 무언가 다를 거라는 기대감이 작용했다. 그런데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김수현의 불륜드라마가 다르다면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말인가.

처음 김수현이라는 ‘언어의 마술사’가 하는 불륜드라마라고 해서 그것은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의 탐구’ 같은 깊이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현 4회까지를 보면 그런 것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깊이는 없고 겉도는 자극만 가득하다. 저 액션을 표방한 ‘히트’보다도 더 액션(?)같은 주먹다짐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김희애의 소름끼치는 연기가 없었다면 이 드라마는 ‘사랑과 전쟁’과 같은 불륜드라마와 그닥 다를 것이 없다.

김수현이라서 달랐던 것은 자극의 강도였지 깊이가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화영 역의 김희애는 처음부터 노출신이 과도하게 등장했고, 홍준표(김상중)와의 애정행각은 ‘이러다 베드신 나오겠다’는 기대반 우려반의 시청자들의 반응을 끌어냈다. 욕망은 육체적인 것과 함께 정신적인 것을 동시에 포함하는데, 홍준표와 화영의 불륜에서는 정신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은 욕망이 아니라 욕정이다.

욕망은 보이지 않고 욕정만 보인다
물론 적당한 선에서 화영과 홍준표의 불타는 욕정의 이유가 밝혀지면서 욕망으로의 전이를 꾀할 테지만 그것은 자극 끝에 달아놓는 변명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생활도 없고 삶도 없고 욕정만 가득한 이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의 애정행각’을 왜 시청자들이 봐야하는가 하는 데 있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자극적인 설정과 욕설과 주먹다짐이 난무하는, 액션보다 더 강력한 액션에 대한 호기심이다.

궁금한 것은 김수현이라는 부족할 것 없는 ‘언어의 마술사’가 왜 그 뛰어난 재능을 이렇게 쓰고 있느냐는 것이다. 불륜에도 격이 있다. 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불륜 속에는 육체적인 욕망을 뛰어넘는 그 무엇(셀레임 같은)이 있다. 불륜, 이룰 수 없는 욕망에 대한 자기성찰 없이 끝없는 파국을 통한 자극으로만 치닫는다면 이 드라마의 말미에서 ‘얻은 것은 시청률이요, 잃은 것은 작가다’라는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월화 드라마 경쟁에서 보여지는 ‘멜로는 안되도 불륜은 되는’ 상황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두 드라마의 완성도가 절반에만 미친다는 걸 말해준다. ‘히트’가 전문직 드라마를 성공시키지 못하고 멜로 드라마로 가고 있는 반면, ‘내 남자의 여자’는 불륜을 통한 인간욕망에 대한 탐구를 하지 못하고 그저 자극적인 불륜드라마로 가고 있다. 이 두 드라마가 이렇게 된 데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시청률 때문이다. 이것이 자칫 매니아 드라마가 우려되는 전문직 드라마에 적절한 멜로를 섞은 ‘히트’가 오히려 고전하는 이유이며, 불륜드라마로 시청률에 불을 붙인 ‘내 남자의 여자’가 자극적인 설정으로만 치닫는 이유이다. ‘멜로도 되고, 불륜도 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는 나오기 힘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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