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사장 해임, MBC 정상화에 남은 숙제들

결국 김장겸 MBC 사장 해임안이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지난 9월부터 70일 넘게 이어져온 노조의 파업은 이제 정리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이번 해임안을 통해 겨우 MBC 정상화의 실마리가 보이게 됐지만, 이건 지난 70일 간의 파업만을 통해 얻은 성과는 아니다. MBC는 김재철 전 사장 이후부터 지금껏 너무 오래도록 시청자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만큼 이를 되돌리는데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장이 해임됐다고 해도 그와 수족처럼 함께 해온 MBC의 경영진들이 그 자리를 그대로 버티고 있는 이상 MBC의 정상화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방송 장악을 시도했거나 이에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처리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엇나갔던 그 길을 되돌리는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MBC가 예전의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뉴스, 시사, 교양 부문을 자율성을 다시금 확보해야 한다. 알다시피 시청자들은 과거 <피디수첩>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 같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프로그램이 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한때 국민의 귀와 입이었던 프로그램이 정치적인 힘에 의해 핍박받으며 결국 시청자들이 외면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MBC의 대표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인 <피디수첩>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뉴스데스크> 역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인력 구성에 있어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그 자리를 지키려 애썼던 이들이 모두 방출되어 있는 현재, 남은 이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뉴스 보도 프로그램의 핵심적인 힘이 바로 이 신뢰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부분에 대한 개혁 없이는 <뉴스데스크>의 복원은 불가능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MBC는 과거 ‘MBC스페셜’이나 ‘눈물 시리즈 다큐’처럼 교양 부문에 있어서도 시청자들의 호응이 컸던 방송사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이후에 아예 교양국 자체가 와해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런 과거의 MBC 교양이 갖던 존재감은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 때 좋은 프로그램들을 만들던 이들은 한직으로 물러나거나 결국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좋은 프로그램이 좋은 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라진 교양국을 어떻게 다시 부활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그래서 MBC가 가진 또 하나의 숙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는 MBC 드라마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외주 중심으로 흘러가는 현 드라마 제작 현실에서 외주제작사들마저 외면하는 방송사가 되어버린 건 이 역시 파행적인 간섭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결국 막장드라마화한 주말드라마만이 겨우 남게 된 MBC 드라마가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은 이런 권위적인 구조를 깨는 일이 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예능은 <무한도전>이 상징적으로나마 MBC를 지켜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예능 분야에도 지난 10년 간 꽤 많은 인재들이 방송사를 견디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늘 참신하고 새로웠던 MBC 예능 특유의 도전적인 분위기가 다시금 생겨나기 위해서는 그간 위축된 제작진들의 사기를 다시금 진작시킬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장겸 사장의 해임으로 이제 겨우 MBC는 정상화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됐다. 무려 10년 간의 엇나감이다. 그걸 되돌리는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변화를 보여준다면 의외로 빨리 시청자들의 발길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향후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사진:MBC)

‘아르곤’ 천우희가 그려내는 시용기자라는 시대의 그림자

“너 파업 때 여기 왜 지원했어?” tvN 월화드라마 <아르곤>에서 앵커인 김백진(김주혁)은 시용기자로 들어온 이연화(천우희)에게 그렇게 묻는다. 애초부터 시용기자인 그녀를 용병기자라 부르며 기자로서 인정하지 않던 그다. 15명이 파업으로 해고됐는데 그 자리에 그녀가 시용기자로 뽑혀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러니 김백진 입장에서는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 게 당연하고 기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아르곤(사진출처:MBC)'

김백진의 질문에 이연화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되고 싶어서요. 기사를 쓰고 싶어서요.” 그것은 그녀의 진심일 것이다. 그 진심을 뒷받침하는 건 그녀가 이 아르곤 팀에 와서 했던 일련의 절실한 취재들이다. 모두가 그냥 지나쳤던 진실들을 그녀는 끝까지 추적해 증거들을 찾아내곤 했다. 물론 이건 <아르곤>이라는 드라마가 상상력을 더해 그려낸 것일 뿐, 모든 실제 시용기자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실 시용기자라는 낯선 지칭은 최근 몇 년 간 갑자기 생겨났다. MBC, YTN 등에서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경영진의 압박에 대해 총파업으로 맞섰던 기자들이 대거 해직되면서, 경영진은 시용기자라는 꼼수 채용을 결행했다. 1년 간 계약기자로 일하고 잘 하면 1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는 방식이었다. 

결국 이건 경력기자들을 뽑으면서 파업 참여 같은 노조활동을 원천적으로 막으려는 시도였다. 물론 이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는 있겠지만 1년 후 재계약을 해야 하는 처지에 사측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노조는커녕 사측이 요구하는 것들에 이리저리 휘둘릴 수밖에 없는 이들을 MBC 기자들은 사측에 복종하는 “영혼 없는 로봇기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2012년 MBC 기자들이 시용기자 선발에 관해 내놓은 공식 발표 자료를 보면 “시용은 수습보다도 불안정한 고용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 일정기간이 끝날 동안 사측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하고,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사측의 필요에 의해 가차 없이 잘려나가는 게 그들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MBC 기자들은 그래서 이 시용기자들 역시 “나름의 사정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동료들의 등에 칼을 꽂고 사측의 꼭두각시 역할을 자처하는 대체인력”이라는 점에서 “언론인으로서 동료애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걸 명확히 했다. 그만큼 이들의 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역할이 가진 잘못됨을 용인할 수 없다는 것.

MBC 공채 출신의 <아르곤>의 이윤정 PD는 제작발표회에서 이 드라마가 다루는 ‘시용기자’가 특정 방송사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 배려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시용기자들이 가진 고민과 갈등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르곤> 역시 주인공을 시용기자로 세운다는 것이 부담이 있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곤>이 시용기자를 굳이 주인공으로 세운 까닭은 그것 역시 우리 시대의 아픈 방송 언론의 자화상의 한 자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이 땅의 모든 채용을 앞두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인턴들의 모습 또한 거기서는 느껴진다. 기자가 되고 싶은 똑같은 열망을 품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측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우리 시대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을 제 맘대로 움직이기 위해 그들끼리의 싸움을 경쟁 속으로 밀어 넣는 시대의 치졸함. 결국 그 비뚤어진 시스템을 굴리는 이들이 모든 문제의 원천이 아닌가.

결방으로 드러난 '무도'의 존재감

빈자리가 너무나 역력하다. 총파업으로 예능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스페셜 방송’으로 대치된 MBC의 주말 풍경에서 유독 <무한도전>의 빈자리는 커 보인다. 그것은 단지 <무한도전>이 그 시간대의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MBC 전체에서 상징하는 비중이 상당하기 때문일 게다. 일부 팬들 중에는 <무한도전>을 빼고는 MBC에서 볼 게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정도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MBC가 지난 10년 간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나마 대중들의 발길을 붙잡아 두고 있었던 프로그램이 다름 아닌 <무한도전>이었다. 어찌 보면 그간 침묵하던 MBC 시사나 뉴스 프로그램보다 <무한도전> 하나가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총파업 참여로 <무한도전>의 빈자리를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단적인 지표는 시청률표다. 지난 9일 AGB닐슨의 일간 시청률 순위를 들여다보면 총 20위까지 MBC는 단 두 개의 프로그램만 이름을 올렸다. 그것은 8% 시청률로 10위에 랭크된 <도둑놈 도둑님>과 5.9%로 18위에 들어간 <밥상 차리는 남자>가 그 프로그램들이다. 

예능이나 뉴스 시사 프로그램은 전무하고 주말드라마 두 편만 간신히 들어와 있는 것. 사실 MBC의 이런 사정은 총파업의 여파가 아직까지 시작되지 않았던 지난주도 그리 다르지는 않다. 지난 2일 시청률표를 보면 거기에도 MBC 프로그램으로 들어간 건 <도둑놈 도둑님(8%)>과 <밥상 차리는 남자(8.6%)> 그리고 <무한도전(9.2%)>가 유일했다. 그래도 그 때는 이런 텅 빈 느낌은 덜했다. 그나마 <무한도전>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똑같이 총파업에 들어갔지만 KBS는 그래도 MBC만큼의 빈자리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은 공영방송으로서 고정적인 시청층이 있는데다, 프로그램들도 대체인력으로 어느 정도 채워지고 있어서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건 MBC 경영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감이 KBS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이다. 한때 진정한 의미로서 ‘만나면 좋은 친구’ 역할을 해왔던 MBC가 지난 10년 간 정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더 큰 반감을 만들어낸 게 사실이다. 

제 아무리 파업을 하고 있다고 해도 하다못해 뉴스 하나 시청자들이 들여다보고 있지 않다는 건 MBC의 참담한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드라마야 사실상 외주가 아닌가. 그러니 MBC가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만드는 프로그램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외면이 어느 정도인가를 이번 총파업의 빈자리들이 확인시켜준다. 

그 중에서도 <무한도전>의 빈자리는 그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무한 도전해왔던 과거의 MBC가 언젠가부터 도전에 역행하는 행보를 해왔고, 결국 <무한도전>조차 멈춰 서게 됐다는 것. 아마도 <무한도전> 없는 주말을 경험한 시청자들은 그 상징적 의미를 실감하게 됐을 것이다. 적어도 이제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방송사가 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김태호 PD 파업 참여에 결방쯤은 괜찮다는 ‘무도’팬들

“웃기기 힘들다. 사람들 웃기는 방송 만들려고 예능PD가 되었는데 그거 만들라고 뽑아놓은 회사가 정작 웃기는 짓은 다 한다.” 총파업을 앞두고 있는 MBC 예능PD들이 내놓은 파업 성명서에는 MBC에서 예능PD로 산다는 것의 고충들이 절절히 담겨져 있다. 그 고충들의 세세한 내용들은 이런 것들이다. 

'김태호PD(사진출처:MBC)'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못 쓴다.”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까지 간섭한다.”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아무리 시청률을 잘 뽑아도 멀쩡히 하던 프로그램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알아서 검열하고, PD가 아니라 노예가 되라 한다.” 한마디로 시시콜콜하게 검열하고 사장 입맛에 맞지 않으면 프로그램을 없애버리기도 한다는 것. 

게다가 출연료 얘기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제작비를 깎으면서, 사장님 귀빈 모시는 행사에는 몇 억씩 쏟아 부으며, 신입 공채는 막고 경력 공채는 기습적으로 하며 경력 PD들은 노조 가입도 못하게 방해한다. 시사교양국을 없애고 기자, 아나운서를 내쫓는다....

사실 이 정도의 일들이 줄줄이 벌어졌다는 건 정상적인 방송사라고 보기 힘들다. 그간 많은 이들이 한직으로 물러났고 버티다 퇴직했으며 어떻게 남아있는 이들은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더 이상은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의지가 MBC 예능PD들이 내놓은 파업 성명서에는 고스란히 느껴졌다. 

MBC 예능을 대표하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사실 대중들 사이에서는 그나마 MBC에 남은 애정이라고는 <무한도전> 하나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프로그램의 수장인 김태호 PD가 총파업에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나서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선택은 당연히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영향을 미친다. 당장 다음 주부터는 촬영 계획이 없다고 한다. 이대로 파업에 돌입하면 지난 MBC 총파업 때처럼 결방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매주 챙겨보는 팬들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을 게다. 

하지만 지난 총파업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팬들은 김태호 PD의 용기 있는 선택에 지지와 응원의 뜻을 전하고 있다. 결방쯤은 괜찮다며 기꺼이 기다리겠다고 한다. 나아가 이런 힘 있는 방송이 파업에 동참해야 효과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무한도전>이 다시 시작하는 날까지 잠시 MBC 채널을 지우겠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MBC 정상화를 위해서는 <무한도전> 결방도 환영한다는 것.

사실 <무한도전>이 이런 절대적인 팬덤의 지지를 받게 된 건 프로그램만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나은 사회에 대한 참여 같은 프로그램 외적인 행동들 역시 팬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총파업 참여에 대한 지지가 나오는 것은 MBC의 현 상황이 얼마나 처참하게 비뚤어져 있는가를 대중들 또한 공감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제발 이번 기회를 통해 예능PD들이 마음껏 웃길 수 있는 그런 방송국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

SBS 장르물, KBS 보편성, tvN 트렌디...방송사별 드라마 적합도

만일 <귓속말>이나 <피고인> 같은 드라마를 KBS에서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거꾸로 <김과장>이나 <추리의 여왕> 같은 드라마를 SBS에서 했다면? 나아가 <보이스>나 <터널> 같은 드라마를 KBS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김과장(사진출처:KBS)'

이런 추론이 가능한 건 각 방송사마다 저마다의 성향을 가진 시청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SBS의 경우 장르물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감은 여타의 지상파 방송사들보다 훨씬 높다. 이렇게 된 건 지금껏 SBS가 복합 장르물부터 본격 장르물까지 오래도록 투자를 해옴으로써 장르물에 대한 신뢰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종영한 <피고인>이나 최근 방영되고 있는 <귓속말>의 경우, 특별히 멜로나 가족드라마적 요소들이 많이 강조되지 않는 본격 장르물에 가깝다. 물론 그렇다고 멜로와 가족드라마적 요소가 배제된 건 아니지만 드라마가 힘을 받는 그 지점은 치고받는 반전에 반전의 묘미를 주는 장르물의 속성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장르물의 속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KBS에서 방영된 <김과장>이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추리의 여왕>은 그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김과장>은 그 이야기 구조로 보면 기업 극화에 가깝지만 그 접근방식은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는 코미디였다. 물론 파업의 이야기나 권력과 연계된 기업의 비리 같은 소재들이 있었지만 SBS 장르물들이 보여주곤 하던 반전 스릴러 같은 접근방식은 보여주지 않았다. 이야기의 복잡성보다는 캐릭터를 강화하고 문제의식을 가볍게 풍자적으로 건드리는 정도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러한 보편적 시청층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은 <추리의 여왕>도 마찬가지다. 이 추리물은 물론 잔인한 살인범을 잡아내는 이야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그 시작점은 설옥(최강희)이라는 아줌마 캐릭터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추리 능력으로 마트에서 계란 세일을 하는 장소를 추정해가는 이야기가 먼저 그려지는 건 그래서다. 이렇게 설옥이란 캐릭터에 누구나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후, 드라마는 좀더 살벌한 범죄의 세계로 이동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tvN의 경우, 지금껏 방영된 드라마들의 특성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그 어떤 방송사보다 ‘트렌디’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화적인 연출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겨난 이른바 ‘톤 앤 매너’의 색깔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시카고 타자기> 같은 드라마는 시공을 뛰어넘는 판타지에 멜로, 코미디 등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을 특유의 독특한 연출 안에 녹여내고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같은 대작이 가진 트렌디함은 물론이고, <혼술남녀> 같은 시대적 트렌드를 포착하는 기획들 역시 tvN 드라마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 

OCN은 최근 <보이스>부터 <터널>로 이어지는 일련의 드라마가 성공하면서 그간 지속적으로 시도해온 스릴러 장르물에 대한 특화된 색깔을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다른 장르는 몰라도 스릴러 장르물에 대한 기대감이 OCN 드라마에 확고하게 입혀진 건 그래서다. 

JTBC는 <밀회>나 <청춘시대>로 대변되는 완성도 높은 드라마의 브랜드 이미지에 최근 <힘쎈여자 도봉순>의 성공으로 대중적인 지지까지 확보해내고 있다. 여타의 종편들과 달리 지속적인 드라마 투자가 만들어낸 브랜드가 아닐 수 없다. 

MBC는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 간 그간 쌓아왔던 드라마 공화국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잃어버렸다. 주말 시간대에 막장드라마를 지속적으로 편성했고, 주중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는 드라마가 몇 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MBC 특유의 도전적인 색깔을 많이 잃었지만 최근 들어서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변화하려는 모습을 조금은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적> 같은 새로운 장르물 형태의 사극이 시도되고 있고, <자체발광 오피스> 역시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SBS는 일일드라마 폐지를 결정했다. 그것은 물론 드라마 투자에 누적된 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긴축재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SBS가 갖고 있는 드라마 브랜드와 일일드라마가 잘 맞지 않는 점도 일조하고 있다고 보인다. 드라마만 좋다고 모두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지나가고 있다. 콘텐츠들은 쏟아져 나오지만 그 콘텐츠가 성공할 수 있으려면 거기에 딱 맞는 플랫폼과의 궁합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만일 <뉴스룸><그알>마저 없었다면...

 

2016년이 저물어가는 이즈음 국민들의 소회는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르다. 마치 억눌렸던 무언가가 터져버린 느낌. 숨겨졌던 국정 농단의 실체들이 하나둘 드러날 때마다 느꼈던 그 허탈함과 참담함. 그래서 끝내 광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던 절실한 마음들이 새록새록 가슴에 피어난다. 다시금 되돌려 생각해보면 이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일들이 그저 묻혀버렸다면 그 끔찍함은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 농단 사태에 우리가 다시 들여다봐야 할 건 언론이다. 언론은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었을까.

 

'뉴스룸(사진출처:JTBC)'

MBCKBS의 기자들은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공영방송으로서 자신들이 나서 국민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줬어야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물론 이것이 일선 기자들 때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들 역시 목소리를 내려 했으나 윗선들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른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그 결과는 광장을 취재하는 것조차 국민들의 비아냥을 듣는 위치에 서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뉴스룸>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렇게 꽉 막혀버린 국민의 시야를 제대로 문제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열어준 고마운 프로그램들이다. 만일 이런 시국이 국민들 모르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 <뉴스룸>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국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이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에 의해 좌지우지됐고, 그것이 모두 그들의 사익을 위한 일들로 채워졌다는 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그걸 우리가 몰랐다면...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합리적 의심을 어떤 사안이든 관계없이 던지는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또 어땠을까.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것들이 의혹을 남기고 있는지 의식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상식적으로 판단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없었을 게다. 그런 생각을 해보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위한다는 식으로 앞에서는 얘기하면서 사실은 세월호 참사가 보여주듯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았던 그 일들이 묻혀졌다면...

 

<뉴스룸>은 올해의 마지막 앵커브리핑을 통해 머피의 법칙에 대해 이야기했다.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이 연거푸 벌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는 뜻이라는 것. 결국 국정농단이라는 엄청난 비리들은 결코 숨겨지지 못한 채 하나하나 실체를 드러나며 터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들은 감춰지려 해도 감춰질 수 없는 일들이었다. 결국 일어날 일들이 우리 앞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혹자들은 뉴스를 보는 것만도 분노를 참을 수 없고 심지어 너무나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난 14일 앵커브리핑에서 손석희가 소설가 박민규의 이야기를 빌어 말한 것처럼,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눈을 뜨지 않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방송의 가장 큰 역할이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그 눈을 뜨게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언론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방송에서 가장 중요했던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단연 <뉴스룸><그것이 알고 싶다>가 되지 않을까. 이 프로그램들 같은 국민의 진정한 눈이 되어줄 수 있는 언론이 내년에는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또한 공영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 있기를.

어쩌다 지상파 뉴스는 신뢰를 잃어버렸나

 

상공을 수놓은 오방색 풍선’, ‘요즘 뉴스 못 본 듯’,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 ‘순하고 실한 주인 놀리는 하바타’,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들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최순실 게이트를 겨냥한 자막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 때 이런 현실을 풍자하는 자막은 <무한도전>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었지만 이번 사태에 즈음해 여러 예능 프로그램들도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느낌이다.

 

'JTBC 뉴스룸(사진출처:JTBC)'

이런 흐름은 실로 이례적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적 분노감이 크다는 반증일 게다. ‘국정농단이라는 표현에 담겨져 있는 건 국민들이 저들에 의해 당했다는 허탈함이다. 심지어 뉴스를 보며 묻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창피하기 이를 데 없다는 부모들의 한숨 소리도 들려온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대하는 대중들은 그것이 나와 유리된 사안이 아니라 내 일상까지 파고든 사안으로 받아들이는 눈치다. 예능처럼 일상을 담아내는 프로그램이 저마다 자막을 통해 이 사안을 풍자하고 있는 데는 이런 분위기가 깔려 있다.

 

이런 예능 프로그램들의 자막들을 보면서 나오는 이야기가 예능이 뉴스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요즘 지상파 뉴스들에 대한 엄중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 지상파 뉴스들이 과연 제대로 국민들의 눈과 입이 되어주고 있었는가에 대한 비판의식. ‘최순실 게이트를 증거를 통해 조목조목 분석하고 그 사안의 중대성을 전파한 JTBC <뉴스룸>은 거꾸로 지상파 뉴스들이 무엇을 했던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하면서 JTBC <뉴스룸>이 연일 경신하고 있는 높은 시청률은(8.7%까지 솟아올랐다) 그저 수치가 아니다. 거기에는 반대로 지상파 뉴스들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들까지 얹어져 있다. 이런 중대한 사안들을 보도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뉴스들로 그 시간을 채우고 있었던가. <뉴스룸>에 쏟아지는 찬사는 지상파 뉴스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오죽하면 지상파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나서서 자막을 통해서나마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나름의 목소리를 낼까.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하게 뉴스와 보도 기능이 약화된 MBC의 경우는 지상파 뉴스가 최근 어떤 길을 걷고 있었는가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때 <뉴스데스크><피디수첩>은 권력과도 맞서서 진실을 밝히려 애썼던 프로그램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때 날선 비판의식을 갖고 있던 제작진과 기자들은 대부분 밀려난 상태다. 진실을 밝히는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는다. 시청자들이 외면하게 된 당연한 이유다.

 

제 아무리 다채널화된 미디어 환경이고, 정보의 엔터테인먼트 경향이 하나의 시대적 흐름이라고 해도 여전히 방송사의 가장 큰 기능은 역시 뉴스와 보도 기능이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 속에서 오히려 어떤 것이 중요한 지를 취사선택해 보여주는 일은 이제 뉴스가 해야 할 가장 큰 역할이 되고 있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지상파 뉴스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예능이 뉴스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없어야 한다.

변함없이 <무한도전>11년 간 만든다는 건

 

어린이날도 어제가 된 이 시간.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불안하고.. 애써 해도 티도 안나고... 다들 누구가 알아서 해줬으면 좋겠다 싶겠지만 그 누구가 바로 인 것 잘 알고... 환하게 불켜진 예능본부 회의실, 편집실 안에 계신 피디분들. 작가님들 마음은 다 비슷할 듯...”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지난 6일 김태호 PD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짧은 글은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팬들에게는 꽤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왔을 법 하다. 지금껏 그 많은 힘든 상황들을 겪어냈지만 김태호 PD는 항상 의연한 자세를 보여 왔다. 그래서 그는 늘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사람으로 여겨져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느껴지는 건 힘겨움이다. 늘 해야 할 일들은 넘쳐나고 마음은 항상 무얼 해도 불안했을 게다. 왜 그렇지 않을까. 11년 동안 우리네 예능의 맨 앞에서 새로운 분야들을 선구적으로 열어온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관심과 기대가 높기 때문에 작은 구설도 용납이 안 되고, 죽어라 애써서 만들었는데도 오히려 비판을 받기도 한다.

 

늘 기대 이상을 해왔다는 사실은 그만큼의 부담과 불안감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애써 해도 티가 안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쉽게 <무한도전>에 대한 애정으로 어떤 걸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꺼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제작진들은 더 곤혹스러워진다. 팬덤이 커지고 기대치가 커질수록 그걸 맞추는 일은 요원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담감과 불안함을 온통 떠안아야 하는 김태호 PD이고 제작진이다. 어찌 힘겨움이 없겠는가. 많아도 너무 많았던 고충들이 늘 무표정하게 출연자들과 밀당을 벌이던 그 얼굴 속에 숨겨져 왔을 것이다.

 

특히 MBC에서 <무한도전>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다. 많은 이들의 지금의 MBC의 어려워진 상황을 이야기하며 그나마 <무한도전>이 있어 MBC가 버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느덧 <무한도전>MBC에 남은 마지막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그토록 안팎에서 요구해온 시즌제 같은 출연자와 제작진 모두가 좀 더 롱런할 수 있는 방식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노동 강도로 생각해보면 주말도 없고 휴가조차 좀체 낼 수 없는 제작진들은 엄청난 노동을 해온 셈이다.

 

이건 출연자들도 마찬가지다. 유재석 같은 늘 변함없는 얼굴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해도 그 속내도 변함없다 얘기할 수 없는 이유다. 김태호 PD가 이 정도의 힘겨움을 토로하고 있다면 유재석 역시 드러내진 않아도 그 고충이 만만찮을 게다.

 

김태호 PD의 인스타그램이 올라온 후 팬들은 일제히 쉬엄 쉬엄 천천히 하라고 그의 어깨에 올려진 무거운 짐을 덜어주려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이 되지는 않는다. 결국 김태호 PD는 창작자다.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보람을 느낄 만큼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그저 지금 힘드니 쉬엄 쉬엄 한다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김태호 PD와 제작진, 그리고 출연자에게 절실한 건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것만이 그들을 다시 즐겁게 일에 복귀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들은 변함없이 그 초창기 모습 그대로 11년을 달려왔다. 앞으로 언제까지가 될 지도 모를 시간을 지금처럼 변함없이 달려가라는 건 무리다. 이제 좀 더 지속 가능한 <무한도전>을 고민해야 할 때다

PD들 떠나는 MBC, 시대 역행하는 조직문화

 

방송은 물론이고 모든 사업의 영역에서 유능한 인력의 유출은 두 배의 손실을 만들어낸다. 즉 그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으로 그 조직이 갖는 손실이 하나고, 그 인력이 경쟁사로 옮겨가 그 조직을 키워내면서 생기는 손실이 그 둘이다. 그러니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최근 몇 년 간 MBC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이 말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MBC 경영진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이 인력의 문제만을 놓고 봐도 MBC는 어마어마한 위기 앞에 놓여있다. 모든 것들을 사업과 연결하여 수익성만을 높이려는 경영적 마인드가 당장의 수치를 높여놓는 착시현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능한 인력들이 지속적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건 그 어떤 조직보다 창의적이어야 하는 방송사로서는 치명적인 일이다.

 

최근 <아빠 어디가>를 연출했던 김유곤 PD<우리 결혼했어요>, <세바퀴> 등을 연출했던 전성호 PD가 사표를 던졌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쌀집아저씨 김영희 PD를 위시해, <애니멀즈>를 연출했던 손창우 PD, <나 혼자 산다>, <진짜사나이>를 연출한 문경태 PD, <아빠 어디가> 시즌1을 연출한 강궁 PD가 모두 MBC를 떠났다.

 

사실 그나마 MBC의 인력들이 제 자리에 남아있던 분야가 예능이었다. 이미 알다시피 지난 김재철 사장 시절에 교양, 시사 PD들이 철퇴를 맞아 자리를 잃고 이상한 사업부로 밀려나거나 회사를 그만두는 일들이 벌어진 바 있다. 그 결과 지금 현재의 MBC 교양국은 아예 그 형체가 희미해져 버렸다. 교양국 PD들은 자부심을 잃은 지 오래다. 좋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리 만무다. 그런데 최근에는 예능국 PD들마저 대거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지상파의 약진이나 적극적인 러브콜, 그리고 중국시장 같은 외부적인 요인들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것은 MBC의 조직문화가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대기업에서도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갖가지 고민들을 하고 있는 마당에 MBC 조직은 더 수직적 조직문화를 공고히 하고 있는 느낌이다. PD들이 무언가를 도전하기보다는 경영진의 압력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 그러니 PD들의 이탈은 당연해진다.

 

하지만 MBC 경영진의 생각은 정반대인 듯하다.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 이 모든 것을 돈 문제로 치부하는 것. PD들의 이탈이 개인적인 포부나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라기보다는 이적료같은 돈 때문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돈 문제보다 더 심각한 건 능력이 있어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과 경직된 조직문화다.

 

MBC는 최근 몇 년 간의 신자유주의적인 경영방식으로 인해 많은 걸 잃었다. 먼저 교양과 시사 나아가 뉴스 프로그램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고, 한 때는 드라마 왕국이라고까지 불렸던 그 명성이 어쩌다 막장드라마의 산실이라는 얘기까지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예능 PD들의 엑소더스가 시작되고 있다.

 

항간에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만일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없었다면 MBC 예능 역시 일찌감치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거라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무한도전>이라는 브랜드가 MBC의 소유이고 이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김태호 PDMBC를 나올 확률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런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는 건 MBC가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아닐까. 시대에 역행하는 조직문화로 좋은 인재들이 나가는 것을 막기는 어렵지 않을까

가벼운 시트콤 같은 <내 딸 금사월>? 차라리 시트콤이 낫다

 

“<내 딸, 금사월>이 여러가지로 논란이 되고 있지만 가족 스릴러 시트콤처럼 가볍게 시작한 오락 드라마다. 진지하게 평가해서 줘서 민망하다.” 지난 16일 열린 2016 MBC 드라마 라인업 기자간담회에서 박성수 MBC 드라마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여러모로 MBC 드라마 전체가 막장으로 치부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기자간담회였고, 새로 시작하는 네 편의 드라마에 대한 기대를 호소하는 자리였다.

 


'내 딸 금사월(사진출처:MBC)'

사실 MBC 드라마 전체를 막장이라고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박성수 국장이 말한 것처럼 실제로 지난해 <킬미힐미> 같은 작품이나 <그녀는 예뻤다> 같은 좋은 작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니까.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번 더 해피엔딩>은 재혼이라는 새로운 관점에 맞춰진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이고 주말에 방영되고 있는 <엄마> 같은 작품도 지금껏 MBC 주말드라마를 채웠던 자극적인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드라마다. 박성수 국장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MBC 드라마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중요한 건 MBC 내부의 주장이 아니라 대중들이 MBC 드라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다. 실제와 달리 MBC 드라마하면 대중들은 어째서 막장을 먼저 떠올리게 되었을까. 한때는 드라마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최고의 퀄리티와 완성도, 작품성을 가진 드라마들은 모두 MBC에 있다고 했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단 몇 년 만에 이런 오명은 왜 생겨난 것일까. 이 부분이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이렇게 된 건 그간 MBC 드라마가 해온 전철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건 일일드라마에 임성한 작가의 <오로라공주>, <압구정 백야> 막장드라마 두 편을 무려 150부작으로 방영한 일이다. 숱한 논란들이 쏟아져 나왔고 드라마 문법 자체를 파괴하는 파행을 겪었지만 그런 문제적 작가를 또 다시 일일드라마에 편성시켜 저녁 시간대에 방영했다는 건 어떤 얘기로도 변명이 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주말드라마에 역시 막장 작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김순옥 작가의 <왔다 장보리><내 딸 금사월>을 세워둔 것도 MBC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등을 돌리는 이유 중 하나다. 김순옥 작가의 이런 작품들에 대해서는 기성 드라마 작가들조차 한숨을 내쉬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막장이 저지르고 있는 드라마 문법의 파괴는 그 자극으로 인해 해당 드라마는 시청률을 가져갈지 모르지만 다른 작가들에게 고스란히 피해를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 딸 금사월>을 가벼운 스릴러 시트콤 정도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임성한 작가의 막장으로 채워졌던 일일드라마 시간에 차라리 김병욱 PD 같은 거장의 시트콤을 편성하는 일이다. 사실 시트콤 자체가 그렇게 가벼운 장르도 아니다. 시트콤이 갖고 있는 장점들이 분명하고 그것이 하나의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김병욱 PD는 일련의 <하이킥> 시리즈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나마 MBC가 이런 기자간담회까지 연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지금이라도 좋은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의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간담회나 몇 마디 말로서 시청자들에게 덧씌워진 MBC 드라마의 이미지가 바뀌는 건 아닐 것이다. 향후 진짜 좋은 드라마들이 MBC에서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최소한 드라마 문법을 파괴하는 막장은 보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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