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드풀>, 기존 슈퍼히어로 밟고 올라선 슈퍼히어로

 

만일 어른들을 위한 슈퍼히어로를 만든다면? 누구나 한번쯤 상상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만든다면 어떨까? 손발이 오글거리지 않을까. ‘지구를 구한다같은 대명제가 그렇고, ‘정의가 어떻고 자유가 어떻고 하는 거창한 주장이 그렇다. 무엇보다 타이즈 위에 팬티를 입는 그 복장이 대략난감이다.

 


사진출처:영화<데드풀>

<데드풀>은 그래서 어른들을 위한 슈퍼히어로를 등장시키면서 그 오글거리는 기존의 슈퍼히어로물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잘근잘근 씹어댄다. <X>의 자비에는 대머리 아저씨가 되고 데드풀을 연기한 레이놀즈가 주연을 맡았던 DC코믹스의 <그린 랜턴>은 초록색 슈트의 흑역사가 되어버린다.

 

심지어 <데드풀>은 이런 슈퍼히어로물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 제작하는 제작자들에게조차 시작부터 비아냥을 쏘아댄다. 오프닝 크레딧에 이 영화를 일부 얼간이들을 위한 영화(Some Douchebag’s Film)‘라고 명명하고 팀 밀러 감독 자신을 돈을 다소 과하게 받은 얼간이 연출가(Directed by Some Overpaid Tool‘라고 자처한다.

 

이렇게 스스로를 포함하는 슈퍼히어로를 비아냥대는 슈퍼히어로물이라는 기막힌 설정은 <데드풀>이 꽤 단순하고도 전형적인 슈퍼히어로 장르를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워지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슈퍼히어로물을 볼 때 느끼는 이중적인 감정, 세상에 저런 게 어딨어?’하고 유치한 시선을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꽤 쿨 하다고 느끼는 그 감정을 이 영화는 아예 드러내놓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때론 지나치게 폭력적일 정도로 섬뜩한 장면에서조차 유머를 만들어내고, 선정적인 장면에서도 비실비실 피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이 이상한 슈퍼히어로의 목적은 오로지 자신을 그렇게 슈퍼히어로(혹은 슈퍼노예?)로 만든 악당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뿐이다. 지구를 지킨다거나 정의 같은 거창함도 없다. 그저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앞에 흉측한 몰골로 나타날 수 없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찌질하게까지 보이는 한 남자가 거기 있을 뿐이다.

 

슈퍼히어로들의 특징인 죽지 않는다는 명제도 <데드풀>에서는 냉소적으로 다뤄진다. 즉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인물로 그려지는 것. 이것 역시 슈퍼히어로들에 대한 거꾸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영생하는 신적인 존재는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죽고 싶을 정도로 망가진 흉측한 몰골로 영생한다는 건 천형이 아닐까.

 

당연히 이 <데드풀>의 세계는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자신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고통을 몇 배로 되갚아주는 것뿐이다. 이 아무 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세계와, 어찌 보면 정해져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 특유의 입담으로 잘근잘근 씹어버리는 통쾌함. 이것이 <데드풀>을 보며 느껴지는 해방감이 아닐까. 아이의 손을 잡고 슈퍼 히어로물을 보러 가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생각하면 놀라운 김종국과 예능의 인연

 

이 정도면 연기를 해도 괜찮을 듯싶다. KBS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김홍순 PD로 출연하고 있는 김종국 얘기다. 사실 그간 예능에서 활약해온 그지만 연기 도전은 거의 없었다. 권칠인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디오>에 까메오로 출연했던 것이 유일한 연기 도전이라면 도전이었으니 말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그랬던 그가 <프로듀사>에서는 의외의 괜찮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김홍순 PD는 프로그램 보다는 윗사람 눈치 보기와 의전으로 승부를 보려는 PD. 운동회 축구대회에서 국장이 몰고 가는 길을 터주기 위해 상대편이면서도 자기편 사람들을 밀어내는 적극성(?)을 보이는 인물. 그 큰 덩치와 걸맞지 않게 소심한 모습은 이 캐릭터가 가진 웃음 포인트다.

 

연기력이라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전혀 이 김홍순 역할에서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김종국이 꽤 괜찮은 몰입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물론 이것은 김종국에게 딱 맞춤으로 캐릭터를 만들어낸 박지은 작가의 마법이기도 하다. 김종국 하면 떠오르는 게 덩치지만 그의 창법은 전혀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김홍순이란 캐릭터의 대부분은 김종국이 주는 느낌과 이미지에서 상당부분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종국은 김태호 PD를 연기하는 박혁권과 짝을 이뤄 <프로듀사>만이 보여줄 수 있는 방송국 서열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웃음을 주는 것은 어딘지 프로듀서라고 하면 다른 직업과는 다를 것이라 여기지만 이들이 하는 행동은 여느 직장인들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력보다는 인간관계에 치중하고, 도전하기보다는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모습.

 

김종국이 <프로듀사>에 출연한 것은 기획적으로 보면 중국을 염두에 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중국에서 반응이 열광적인 건 이 드라마에 중국 한류스타 서열 1,2위가 모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1위가 김수현이고 2위가 김종국이다. <런닝맨> 중국판이 만들어지면서 초반에 거기에서 함께 뛰었던 김종국에 중국 팬들은 열광했다고 한다. 그의 든든한 능력자 이미지는 그가 유재석보다 중국에서 더 어필되는 이유다.

 

하지만 <프로듀사>의 김종국은 단지 기획적으로 들어가 있는 구색이 아니다. 그는 이 드라마의 한 부분을 분명히 잘 소화해내고 있고, 그것은 어찌 보면 이 드라마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왜 프로듀서가 아니라 프로듀사인가. 박사, 의사 같은 권력적인 직업처럼 여겨지지만 그 프로듀서들은 사실 신입부터 관리자들까지 보통의 샐러리맨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 직업에 대한 강박과 편견을 깨는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래서 김홍순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김종국은 예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인기가수로서 맹활약했지만 그 후로 김종국은 줄곧 예능에서 그 근육을 키워왔다. <X> 시절 윤은혜와의 미묘한 캐릭터 관계로 주목받더니 <패밀리가 떴다>에서 확고한 자기 캐릭터를 세웠고 이어 <런닝맨> 능력자로 중국 한류스타로까지 등극했다. <프로듀사> 역시 예능국 PD 이야기를 다루는 예능 드라마를 기치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놀라운 김종국과 예능의 인연이 아닐 수 없다. 과연 김종국은 이번에도 <프로듀사>를 통해서도 확실한 자기 영역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성과를 내고 있다고 여겨진다. 웬만한 연기자들만큼 충분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중국판 <런닝맨>의 승승장구와 유재석의 아우라

 

최근 만난 중국 관련 방송 콘텐츠 사업을 하는 한 예능작가는 중국 내 <런닝맨>의 승승장구를 얘기하면서 유재석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에 불고 있는 예능 한류 속에 유재석의 존재감이 상당하다는 것이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을 수위에 올려놓고, 중국판 <런닝맨>에도 직접 참여한 조효진 PD는 애초에 <런닝맨>의 리메이크 제안이 중국쪽에서 한참 들어올 때 난색을 표했던 가장 큰 이유로 중국에는 유재석이 없다는 점을 들었던 적이 있다. 그만큼 유재석이라는 인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걸 조효진 PD는 실감하고 있었다.

 

이것은 중국 내에서 <런닝맨>의 리메이크를 두고 반대했던 중국인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제 아무리 비슷하게 판을 짜고 <런닝맨>을 중국판으로 만든다고 해도 원작이 가진 재미를 따라오기 힘들 거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런닝맨>이 실상은 캐릭터 게임에 가깝고 따라서 그 캐릭터들을 대체할만한 중국측 인물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유재석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본인도 그 안에서 뛰면서 프로그램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내고 때로는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잡아주기도 하는 그런 역할을 과연 중국판 <런닝맨>에서는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역할을 맡은 인물이 중국판 <런닝맨>의 리더인 덩차오다. 덩차오는 중국 내에서 톱클래스 배우이자 영화감독. 잘 생긴 외모와 달리 평상시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여줘 친근함을 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효진 PD에 의하면 덩차오는 유재석에 대한 존경심을 자주 드러냈고 또 이런 상황이면 유재석은 어떻게 행동했을까하고 수시로 묻기도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유재석에 대한 인기는 <X> 시절부터 알려져 <무한도전>, <패밀리가 떴다>를 거쳐 <런닝맨>으로 정점을 찍고 있다고 한다. 최근 중국판 <런닝맨>에 유재석이 참여하면서 그 관심도가 급상승한 것은 그에 대한 중국 내 인기를 잘 보여준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왜 유재석에 이런 호감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국내에서 유재석이 인기 있는 이유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가 가진 재치나 입담, 몸을 아끼지 않는 노력 같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것은 카메라 안과 밖이 똑같은 그 성실하고 반듯한 인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무한도전>이 캐릭터와 실제 출연자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인성조차 프로그램의 재미로 이끌어낸 이후로,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의 진짜 모습에 주목해왔다. 가식이 아닌 진심이 드러나는 이른바 진정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 최근 관찰 카메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런 진정성의 요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리얼 예능의 특징 때문에 예능 한류는 재능보다는 출연자의 인성에 더 주목하는 면이 생겨났다. 중국내 유재석의 인기는 바로 이런 진짜 모습을 담아내려는 우리네 예능 트렌드와 유재석이라는 성실의 아이콘이 만나 생겨난 일이다. 그런 면으로 보면 유재석은 인성까지도 한류로 만든 인물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과 똑같은 아이들 예능 전쟁

 

<아빠 어디가>가 뜨니 <붕어빵>이 정글로 간다? 이제는 아이들 예능 전쟁이다. 주말 예능을 잡아야 전체 예능의 기선을 잡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한 예능 프로그램이 부상하면 타 방송국에서 비슷한 형식을 차용하는 건 이제 보통의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상 <아빠 어디가>가 나왔을 때에도 많은 이들이 <붕어빵>과 <1박2일>을 퓨전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1박2일>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갔을 때, <무한도전>이 원조라는 얘기가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무한도전>이 이미 미션의 하나로서 했던 부분을 <1박2일>이 가져와 한 분야로 만들어낸 셈이다. 이것은 비판할 일이 아니다. 창조적 수용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1박2일>의 공적은 분명하다. 여행 버라이어티라는 분파를 확고히 만들어 <무한도전>과는 또 다른 영토를 넓혀놓은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박2일>이 주말 예능의 장기집권으로 들어가면서 SBS가 내놓았던 <패밀리가 떴다>는 초창기 <1박2일>과 비교되며 비판받기도 했다. 하지만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는 여행이라는 아이템만 같았지 방향성은 전혀 달랐다. 즉 <패밀리가 떴다>는 차라리 <X맨>의 시골 버전에 가까운 게임 버라이어티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대를 시골로만 바꾸고 게임을 반복하는 그 패턴에 빠지면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생겨난 <런닝맨>은 스튜디오에 있던 <X맨>이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 시골로 나온 후, 이제는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구사하는 게임 버라이어티로 진화한 경우다. 물론 그 바탕에는 <무한도전>의 추격전 미션 모티브가 깔려 있다. 하지만 <1박2일>이 그러했던 것처럼 <런닝맨> 역시 게임 버라이어티의 한 부분을 가져와 특화시키고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진화였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1박2일>이 <런닝맨>처럼 되어간다는 얘기는 이 진화의 방향이 한 방향으로만 나가지 않는다는 걸 잘 보여준다. <1박2일>에 많아진 게임 요소들은 본래 이 여행 버라이어티가 갖고 있던 여행에 대한 판타지를 상당 부분 희석시키면서 게임을 오히려 부각시켜 마치 <런닝맨>의 미션을 <1박2일> 멤버들이 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1박2일>은 진화의 극단에서 주춤하고 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1박2일>의 야생성을 한 방에 눌러 버린 것은 <정글의 법칙>이다. 혹독한 정글이라는 환경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시베리아에서 얼음 물을 맨몸으로 건너는 김병만을 보다 보면 <1박2일>이 한 겨울에 계곡물에 입수하는 장면이 너무 약하게 여겨진다. <1박2일>이 언젠가부터 야생을 강조하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정글의 법칙>의 영향 때문일 게다.

 

이런 주말 버라이어티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치열한 경쟁이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을 성장시켜왔는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번 아이들 예능 전쟁을 이 맥락에서 보면 <붕어빵>이 정글로 떠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정글의 법칙>이 <1박2일>을 약화(?)시킨 것처럼 <붕어빵>판 <정글의 법칙> 키즈편은 아이들의 <1박2일> 같은 <아빠 어디가>와 비교될 것이 뻔하다.

 

실로 원본 없는 복제의 세상이다. 이제 무엇이 원본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쩌면 바로 그 접합을 통해 진화해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치열한 경쟁으로 되는 아이템을 반복 복제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남는 것도 사실이다. 아빠와 함께 시골에 가서 하루를 지내고 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정글로 가서 며칠을 지내게 된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치열해진 예능 경쟁의 씁쓸함이 묻어난다.

김종국과 김종민, 그들의 공통고민은?

 

이제 김종국 없는 <런닝맨>을 상상하긴 어려울 것이다. 제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톰이 있어야 하고, 뽀빠이가 힘을 쓰기 위해서는 브루터스가 있어야 하듯이 이광수나 지석진 같은 초식동물들이 있는 <런닝맨>이라는 정글에서는 김종국 같은 육식동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을 바탕으로 <X맨>에서 주목을 받은 그는 <패밀리가 떴다>를 거쳐 <런닝맨>에서는 확실한 예능의 ‘능력자’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출처: 원오원엔터테인먼트

<런닝맨> 같은 게임 예능에서 김종국 같은 능력자가 부여하는 긴장감은 필수적이다. 그가 얼마나 <런닝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가는 그가 없다고 상상해보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가 없었다면 배신의 아이콘 광수도 없었을 것이고, 서로 만나면 형 동생 하면서 때론 짓궂은 장난을 치는 하하도 없었을 거다. 심지어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유르스 윌리스 같은 캐릭터도 그렇게 멋있게 포장되기 어려웠을 게다.

 

최민수 같은 공포(?)의 캐릭터가 나왔을 때 그 공포감을 더 극대화시켜주는 역할도 역시 김종국의 몫이다. 능력자인 그가 꼬리를 내리거나 게임에서 지게 되면 그를 이긴 게스트는 더 강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입증되기도 하니까. 한편 반전을 통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추신수와 류현진이 나왔을 때 모두가 벌벌 떨던 추신수의 이름표를 떼어냄으로써 그에게 승부욕을 자극한 것도 김종국이고, 얘기하는 척 하다가 갑자기 이름표를 떼 내면서 류현진이 가진 의외의 귀여운 면모를 끄집어낸 것도 김종국이다.

 

<런닝맨>은 물론이고 예능에서 능력자로 자리매김한 그지만 바로 예능에서 너무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그에게 고충이 되기도 한다. 그가 예능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을수록 그의 본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가수라는 직업은 가려지기 마련이니까. 2010년 1월에 6집 ‘열한번째 이야기’를 발매하고 근 3년이 지난 올 10월 그는 7집을 발표했다.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예능 동료가 된 개리와 하하가 피처링한 ‘너에게 하고 싶은 말’과 마이티 마우스가 피처링한 ‘남자도 슬프다’에 이어 타이틀곡인 ‘남자가 다 그렇지 뭐’도 특유의 하이톤의 미성 보컬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예능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모두 김종국 같은 것은 아니다. <1박2일>의 김종민은 그룹 코요테에서 끊임없이 새 곡을 발표하고 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코요테에서 거의 신지가 노래하는 분량이 절대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워낙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가 강력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독 가수 출신 MC들이 많았던 <1박2일>은 가수들이 예능을 통해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MC몽과 이승기, 김C, 은지원은 <1박2일>을 통해 갖게 된 확고한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음악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오래 지속되자 이들에게도 같은 고충이 생겼던 게 사실이다. MC몽은 물의를 일으키면서 하차했지만, 스스로 하차한 김C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예능으로 소비되는 자신의 이미지가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승기는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만들었지만 역시 가수라는 본업에 아쉬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은지원도 <1박2일>을 하차하고 클로버를 결성해 좀 더 음악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길과 개리 그리고 하하 같은 예능인이 다된 가수들은 그 두 영역을 잘 넘나들며 균형을 맞추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슈퍼7>콘서트가 논란에 빠지자 길과 개리가 선뜻 하차를 표명하고 본업인 ‘좋은 음악’을 만들겠다고 한 것은 이들에게 음악이 얼마나 돌아가고픈 고향인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가수들에게 분명 예능은 하나의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가수 활동의 한 영역이 된 상황이다. 성시경이 성발라에서 성충이가 되는 과정은 어쩌면 이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연예환경 속에서 꼭 필요한 통과의례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도 성충이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져 성발라가 잊혀지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고민이 될 것이다. 중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어느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를 덮어버리지 않게 양쪽을 공존하게 하려면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노래 하나로 승부해도 충분하다면 최선이겠지만, 예능이 가수로서의 활동에 어떤 도움이 된다면 그만한 노력을 기울일만한 가치는 분명 있을 것이다.

무한복제시대, 쇼의 생존법

쇼는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그것을 진화라고 부를 수는 있는 것일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쇼라고 해도 하나하나 그것을 뜯어보면 끝없는 복제 끝에 만들어진 돌연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진화라고 한다면 쇼는 진화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좀 허무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을 복제하다 실패한 것이 ‘라인업’이고 돌연변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 ‘1박2일’이라면?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과 동시에 케이블TV의 동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복제하면서 나온 돌연변이가 ‘우리 결혼했어요’라면 비약일까?

거의 의미가 없어진 원본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원본이라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 역시 90년대의 ‘사랑의 스튜디오’같은 프로그램에서 피를 받았고, ‘무한도전’은 특이한 경우지만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해온 결과로서 만들어졌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제 해외의 쇼들을 둘러봐야 할 것이다. 늘 벌어져왔던 베끼기 논쟁의 끝이 바다 건너로까지 가는 건 쇼의 탄생도 또 형식 그 자체도 거기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제를 부정적으로 보면 마치 아무런 창조적 작업을 행하지 않은 도둑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창조의 의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있는 것들을 가지고 조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기술복제시대에 복제는 어쩌면 창조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쇼 프로그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선조로 두고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들이다. 그러니 가장 최근에 야심차게 만들어지고 기획된 쇼라면 어쩌면 이 많은 웃음의 유전자들을 하나에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무한복제시대, ‘패밀리가 떴다’의 생존법
SBS의 ‘패밀리가 떴다’를 보다보면 그 많은 쇼의 유전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1박2일’에서 보였던 여행의 형식이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가 여행코드를 활용하는 방식은 ‘1박2일’과는 다르다. ‘1박2일’의 여행이 야생의 체험이면서 여행지를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발견하는 여행’이라면,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은 여행지 체험이 아닌 패밀리를 다시 발견하는 단합대회에 가깝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이 두 여행에서 상반되게 보이는 여행지에 대한 무게감의 차이다. ‘1박2일’에서 여행지가 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것은 단지 장소제공을 해줄 뿐이다.

‘패밀리가 떴다’가 ‘X맨’의 야외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1박2일’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패밀리가 떴다’는 애초부터 게임을 그 중심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유재석이 틈만 나면 “게임 해야죠”하고 말하고, 쇼를 통해 만들어진 관계를 게임 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예를 들면 천데렐라 이천희와 계모 김수로의 대결구도 같은) 것이 그것이다. 게임을 통해 경쟁 관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사랑해 게임’같은 남녀 간의 게임을 통해 애정 관계를 끄집어내는 것은 ‘X맨’에서 이미 익숙했던 코드들이다. 즉 ‘패밀리가 떴다’는 ‘1박2일’의 여행코드와 ‘X맨’같은 남녀가 벌이는 알콩달콩한 게임 쇼가 합쳐진 형태다. 물론 ‘X맨’ 역시 80년대의 ‘명랑운동회’이후 끝없이 생산된 스튜디오형 게임 쇼와 각종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 형식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무늬만 다를 뿐, 토크쇼의 알맹이는 같다
이런 사정은 토크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소위 말해 집단 MC 체제의 토크쇼들은 대부분 2000년도에 거의 50%에 가까운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서세원쇼 토크박스’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등장해 한 사람씩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거나, 개인기를 보여주는 이 단순한 형식은 지금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야심만만’같은 프로그램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끌어내기 위한 형식들이다. ‘해피투게더 - 도전 암기송’에서 도전 암기송에 할애되는 시간이 점점 작아지고 대신 연예인들의 토크에 더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에둘러 말해준다.

‘야심만만’이 독특했던 것은 똑같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특유의 공감코드와 엮었다는 점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특정 상황 속에서의 대처방법 같은 순위의 차트가 있고, 그걸 맞추기 위해 자신의 경우를 말하는 ‘야심만만’은 가장 자연스럽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이 알고싶은 사생활’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알리고픈 홍보성 사생활’이 속보이게 드러나면서 프로그램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최근 다시 시작한 ‘야심만만-예능선수촌’은 오히려 그 포맷의 중심을 더 ‘서세원쇼 토크박스’로 두고 있다.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둘러앉아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인기를 보여주는 토크박스 형식에 ‘올킬’이라는 시스템으로 대결구도를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처럼 지금의 쇼 프로그램에서 어떤 그것만의 아우라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어떤 프로그램 속에서 ‘명랑운동회’나, ‘사랑의 스튜디오’,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서세원쇼 토크박스’ 같은 아련한 아우라가 파편적으로 조금씩 뒤섞여져 보일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그 원인이다. 게임쇼가 잘 되면 게임쇼로 몰리고, 짝짓기 프로그램이 잘 되면 모든 채널에 짝짓기 코드가 적용되어왔던 것은 지금 전 쇼의 리얼 버라이어티쇼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단지 시청률 경쟁 때문일까. 여기에는 원본의식이 희미해진 디지털 기술복제시대가 갖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작용한다. 누구나 다 비슷비슷한 아이디어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이미 원본이 없어진(중요하지 않게 된) 이러한 세상에서 자신이 원본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중요한 건 원본보다는 그 원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오히려 타 분야(심지어는 다른 쇼)와의 다양한 접목 같은 것이 되고 있다.

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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