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 제작의 시대, 좋은 인력들이 참여를 원해야

 

MBC드라마가 위기라는 건 여러 지표들이 이미 예견한 바 있다. 작년 <MBC 연기대상>을 통해서 확연히 알 수 있는 것처럼 <W> 한 편을 빼놓고 나면 MBC드라마에서 이렇다 할 큰 성과를 찾기는 쉽지 않다. <쇼핑왕 루이><역도요정 김복주> 같은 작은 성취들이 있었지만 이 역시 모두 만족할만한 성과라 말하긴 어렵다.

 

'불야성(사진출처:MBC)'

이런 흐름은 올해도 여전하다. 최근 월화에 방영되고 있는 <불야성>은 심지어 시청률이 3%대까지도 떨어졌고 화제성도 그다지 없다. 최근 종영한 <역도요정 김복주>는 작품은 호평을 받았지만 시청률은 5%대를 전전했다. 그나마 MBC가 성과라고 내세우는 건 주말드라마다. <불어라 미풍아><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각각 19%, 14%대의 최고 시청률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주말드라마가 작품성보다는 관성적인 고정 시청층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두고 볼 때 주중드라마의 부진은 MBC드라마가 왜 위기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가를 말해준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MBC드라마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월화에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이 오는 30일 새롭게 포진되고, 이번 주부터는 수목에 <미씽나인>이 편성되었다. <역적>MBC가 그래도 월화 시간대에 힘을 발휘해왔던 사극이라는 점에서, 또 홍길동의 생애를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기대감을 만들고 있다. 또한 <미씽나인> 역시 지금까지 드라마에서 많이 시도되지 않았던 서바이벌류의 장르물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감이 그만한 결과로 돌아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무래도 드라마에 초반 힘을 실어주는 건 작가다. 이른바 스타 작가가 쓴 작품은 첫 회부터 압도적인 관심과 시청률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MBC드라마에서 스타 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건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작년 <W>가 그나마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건 다름 아닌 송재정이라는 스타 작가가 작업을 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송재정 작가를 빼놓고 보면 최근 MBC드라마들은 이렇다 할 스타 작가의 작품을 편성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실 최근 들어 tvN이나 SBS가 드라마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하게 된 건 사실상 스타 작가의 파워가 이들 방송사쪽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최근 tvN이 했던 작품들을 보면 김은숙 작가의 <도깨비>는 물론이고 김은희 작가의 <시그널>, 노희경 작가의 <디어 마이 프렌즈>, 김지우 작가의 <기억> 등등 스타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진되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SBS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강은경 작가의 <낭만닥터 김사부>와 박지은 작가의 <푸른바다의 전설>이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과거의 MBC드라마들이 승승장구 했던 건 그만큼 좋은 작가들이 많이 MBC와 작업을 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MBC와 작업했던 좋은 작가들은 타 방송사들과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MBC에서 사극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꽤 오래도록 SBS<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의 작품을 해왔고, <해를 품은 달><킬미 힐미>로 확고한 팬덤을 가진 진수완 작가는 올해 tvN<시카고 타자기>로 컴백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들만 두고 볼 때 MBC드라마에는 이른바 스타작가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게 눈에 띄는 점들이다. 드라마 외주제작의 시대에 사실상 스타작가들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느냐는 그 방송사의 드라마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지표가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MBC드라마의 최근 몇 년 간의 위기는 바로 이 점 스타작가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건 과연 우연의 일일까. 많은 작가들이 대놓고 이야기하진 않아도 최근 MBC드라마국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표현하지 않는다는 건 이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새로운 실험을 과감하게 시도하던 MBC드라마의 과거 전통이 어느 순간 수익률만을 바라보는 장편드라마 편성으로 바뀌게 된 점이나, 최근 논란이 됐던 정윤회씨 아들 정우식씨의 특혜 의혹 같은 불편한 지점들, 무엇보다 기자들이 토로하듯 최근 몇 년간 MBC드라마국이 거의 언론과 불통의 관계를 가져왔다는 이야기들은 왜 작가들이 발길을 돌렸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MBC드라마는 9부작 드라마인 <세가지색 판타지> 같은 세 명의 젊은 연출자들의 실험을 담은 작품을 오는 26일 밤 11시부터 편성해 방영한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MBC드라마가 어떤 변화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이기를 바라게 되는 대목이다. 결국 좋은 드라마는 좋은 제작인력들이 모여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력에 대한 투자(여기에는 다양한 작품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방송사의 분위기까지 포함된다)만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MBC연기대상>, 이종석 대상 당연히 받을 만 했지만

 

2016<MBC연기대상>의 대상은 이종석에게 돌아갔다. 누구나 공감하는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상 올해 MBC드라마에서 <W>만큼 독보적인 성과를 드러낸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웹툰과 현실을 뛰어넘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화제가 끊이지 않았던 데다, 성공적인 시청률까지 거뒀다는 점이 그렇다. 혹자는 <W>가 올해 그나마 MBC드라마의 유일한 명맥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MBC연기대상(사진출처:MBC)'

그래서인지 실제 <MBC연기대상> 전반에 있어서도 <W>의 존재감은 두드러졌다. 올해의 작가상으로 송재정 작가가 받았고, 베스트커플상으로 한효주, 이종석이, 황금연기상 미니시리즈 남자 부문에 김의성이, 최우수 남녀 연기상에 나란히 한효주, 이종석이 받았다. 게다가 올해의 드라마로 <W>가 선정됐고 대상까지 이종석이 받았으니.

 

그나마 자존심을 지킨 건 <쇼핑왕 루이>로 우수연기상을 받은 서인국과 <역도요정 김복주>로 역시 우수연기상을 받은 이성경, <가화만사성>으로 나란히 연속극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이상우, 김소연 그리고 <결혼계약>으로 특별기획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유이 정도다. <몬스터><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전체 시상에서 제외되었다. 전반적으로 <W>로 시작해서 <W>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결과였던 것.

 

물론 이런 시상은 맥락 있는결과였다고 보인다. 전반적으로 장편 드라마들을 많이 포진시켰던 MBC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작품성과 완성도에 집중하고 또 실험을 하는 작품들이 적었다. 시청률은 나왔을지 몰라도 시청자들의 화제성이 그리 높지 않았고 또 MBC드라마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던 건 그래서다. <W>에 이토록 이번 연기대상이 집중된 건 어쩌면 MBC드라마가 내부적으로도 어떤 변화를 생각하고 있는 반증이 아닐는지.

 

하지만 시상 방식에 있어서 이번 <MBC연기대상>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한 미진함을 남겼다. 대상을 수상한 이종석이 무대에 올라 한 수상 소감이 어째 대상 수상소감 같은 느낌으로 남지 않았다. 그는 내가 남들처럼 멋들어진 소감을 잘 못한다. 감사드린다.”며 간략하게 수상소감을 끝내려 했고, 그러자 분위기가 이상하게 끝나는 걸 알아챈 MC 김국진이 더 할 말이 있지 않냐고 계속 말을 이어가려 했다. 이종석의 수상소감에 대해 성의가 없었다는 시청자들의 말들이 쏟아졌다. 물론 그것이 그의 성격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어쨌든 대상 수상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해버려 마치 인기상같은 느낌을 준 건 사실이다.

 

최우수연기상으로 이미 상을 받은 이종석이 다시 대상으로 상을 받는 그 과정이 조금 맥이 빠지는 느낌을 주기도 했고, 대상을 온전히 네티즌 투표로 뽑은 것도 이 상을 인기상처럼 느끼게 만든 이유가 됐다. 물론 이렇게 네티즌 투표를 내세운 이유는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항상 대상 수상에 대한 많은 구설수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아예 나오지 않게 직접 투표 방식을 썼던 것.

 

누구나 다 대상 감으로 지목했던 이종석이 상을 받은 것이지만 그 시상 방식이나 수상 소감 같은 그 시상의 과정들은 오점을 남겼다. 이종석이 대상을 탄 건 맥락 있는 일이었지만, 그 시상 과정은 시청자들을 맥 빠지게 했다

드라마가 펼치는 상상의 나래, 어디까지 갈까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초현실적인 판타지는 어떻게 현실을 반영할까.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올 한 해 드라마의 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가 초현실적인 판타지를 만난 멜로다. tvN <또 오해영>이 사랑하는 여자의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남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고, MBC <W>는 웹툰 속 주인공을 사랑한 여자주인공의 멜로를 그렸으며, JTBC <마녀보감>이나 tvN <싸우자 귀신아>는 마녀, 귀신과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고 보면 올해의 대미를 인어가 등장하는 SBS <푸른바다의 전설>과 도깨비가 등장하는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가 장식하고 있다는 건 꽤나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멜로드라마가 초현실적인 존재들을 등장시켜 그들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하게된 건 우선 드라마의 이야기성이 점점 더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웹툰 같은 현재 드라마의 원천적 소스가 되고 있는 장르는 드라마가 이러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성을 극대화하게 된 기폭제가 되고 있고, 여기에 훨씬 좋아진 CG 기술은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를 허용한 건 시청자들이다. 이미 드라마 경험이 풍부해진 우리네 시청자들은 이런 판타지를 용인하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결국 판타지라는 걸 공감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러한 판타지가 허용되기 위해서는 그저 비현실적인 허황된 이야기로만 남아서는 곤란하다. <W> 같은 가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이야기를 시청자들이 수용한 건 그 이야기가 마치 우화적인 느낌으로 에둘러 현실을 이야기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현실을 갖고 현실을 얘기하는 방식. 초현실적 판타지가 들어가는 드라마에서는 바로 이 우화적 기능이 그래서 중요해졌다. <W>가 제시한 작가와 작품 속 캐릭터의 문제는 신과 인간의 철학적인 질문은 물론이고, 독자의 개입으로 작가 개념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현재의 변화까지를 생각하게 한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 인어 이야기를 현대로까지 끌어오게 된 건 인어라는 백지 상태의 리트머스지를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보기 위함이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인어가 우리 사회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 것. <도깨비>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영겁을 살아가는 존재는 과연 행복할까. 죽음은 과연 불행일까.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은 사랑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결국 이런 초현실적 판타지에 빠져든다는 건 드라마를 통해 현실을 잠시 잊고픈 욕망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것들을 드라마를 통해 채워보려는 안간힘. 그런 관점에서 보면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나 <도깨비>의 도깨비가 우리의 어떤 갈증들을 채워주는가가 드러난다. 인어가 순수한 사랑같은 조금은 추상적인 갈증을 추구한다면, 도깨비는 우리네 설화에서 종종 등장했던 욕망들, 이를테면 부에 대한 욕망이나 영생에 대한 욕망 혹은 초능력에 대한 욕망들을 건드린다.

 

<별에서 온 그대>가 촉발시킨 이질적 존재와의 로맨스는 그래서 이들 작품들로 이어지며 다양한 욕망들을 수용하는 중이다. 답답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을 초현실적인 능력으로 바꿔주는 존재에 대한 희구. 그건 어쩌면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초현실적인 판타지가 유독 올해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 그저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우리가 현재 처한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다는 반증은 아닐는지. 그 답답한 현실은 그래서 인어에 도깨비까지를 현재로 소환하는 중이다

빈틈 많아도, 상상력을 끝까지, <W>의 가치

 

우리에게도 이런 드라마가 가능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종영한 MBC <W>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좀체 보기 힘든 시도를 보여줬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뒤엉켜버리는 어찌 보면 빈틈도 많고 복잡한 이야기는 어떻게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걸까.

 

'W(사진출처:MBC)'

<W>의 가장 가치는 결국 상상력이다. 만일 우리가 웹툰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시작은 거기서 부터였을 것이다. 웹툰의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사랑에 빠지게 되고, 허구의 캐릭터가 각성하는 걸 자신을 삼켜버릴 괴물로 인식한 작가 오성무(김의성)가 맥락 없이 그를 죽이려 하고, 오로지 강철에게 강력한 동인을 심어주기 위해 그의 일가족을 몰살시킨 얼굴 없는 진범역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각성하게 되면서 <W>라는 웹툰의 세계는 상상력이 폭주하는 세계가 되었다.

 

죽었던 인물을 꿈으로 설정해 되살리고, 진범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오히려 작가를 꼭두각시로 만들어버리며, 총에 맞아 죽어가는 실제 인물 오연주(한효주)를 웹툰의 세계로 옮겨 다시 살려내는 등, <W>는 기존의 드라마 문법을 상상력으로 뛰어넘겠다는 듯 반전스토리로 이어갔다. 그것이 가능하게 된 건 웹툰의 세계라는 허구의 공간이 실재하고 그 안의 인물들도 저 마다의 법칙에 의해 스스로 움직인다는 이 드라마의 가정 덕분이다.

 

결국 결론은 오성무라는 작가의 희생으로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는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런 끝은 사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건 아니다. 또한 굉장히 복잡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화무쌍한 이야기 전개들 하나하나를 그것이 왜 벌어졌는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따져보는 일도 사실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더 중요한 건 그래서 <W>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 했는가 하는 점일 게다.

 

웹툰의 인물을 마치 현실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빠져드는 세태. <W>는 그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저 황당하게만 읽히는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세계가 더 이상 그저 가짜로만 치부되지 않고 마치 진짜처럼 여겨지고, 심지어 그 가상의 인물들과 사랑에 빠지는 <W>의 이야기는 그래서 콘텐츠의 시대가 보여줄 미래의 세계를 슬쩍 보여주는 면이 있다.

 

이미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같은 기술들이 가상을 통해 현실을 바꿔가고 있는 것처럼 <W>의 세계는 그저 한 편의 드라마라고만 말할 수 없는 우리의 가상이 갖는 무게감을 잘 드러냈다고 보인다. 가상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W>의 세계였다. 가상의 인물들은 창조되고 설정된 이후에는 그 고유의 힘에 의해 끝까지 움직이기 마련이다. 작가의 개입은 오히려 세계를 망치고 자신을 망치는 길이 되기도 한다. <W>의 반전에 반전을 이어가는 이야기는 결국 이 캐릭터들과 작가의 싸움에서 비롯됐던 일들이다. 허구라고 해도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계. 우리는 이미 그 세계 속으로 들어와 있다.

 

<W>는 허구의 시대가 현실을 압도하고 바꿔나가는 우리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를 그려냈다. 결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어쨌든 끝까지 엔딩을 이뤄냈고 물론 허점도 많은 이야기지만 시청자들의 욕망을 추동시킴으로써 그 빈틈을 채워 넣는 기발함과 능숙함도 보여줬다. 결국 작품은 작가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그건 이제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의 자생력과 그걸 보는 독자와의 긴장감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것이 되었다. ‘잡아먹히느니 잡아 먹겠다는 경구는 지금의 작가들이 처한 딜레마를 드러내는 것일 뿐, 이제 작품은 온전히 작가의 것이 될 수 없는 시대다.

 

그저 잠깐 상상으로만 했을 수 있는 세계. 하지만 송재정 작가는 그것을 끝없이 발전시켜 상상력이 폭발하는 세계로 만들어냈다. <W>의 가치는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늘 드라마라고 하면 머릿속에 공식처럼 떠오르는 그런 세계가 아니라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 그걸 <W>는 우리 눈앞에서 펼쳐 보여줬다.

달라지고 있는 드라마 트렌드, 로맨틱하거나 발칙하거나

 

KBS <함부로 애틋하게>가 종영했다. 이 드라마는 100% 사전 제작에 김우빈, 수지 주연, 스타작가인 이경희 작가가 참여하는 것으로 KBS 측도 최고의 기대작이라는 말을 아끼지 않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100% 사전 제작은 오히려 작품을 중도에서라도 수정할 수 없는 한계로 드러났고, 김우빈과 수지라는 최고의 캐스팅은 그럼에도 안 좋은 결과라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너무 옛날 드라마 같은 설정들과 코드들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함부로 애틋하게(사진출처:KBS)'

물론 <함부로 애틋하게>가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주제의식이 약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젊은 청춘들의 한판 대결구도가 이경희 작가 특유의 절절한 멜로로 연결됐다는 건 작품의 완결성으로는 나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드들이나 정서와 이 드라마가 너무나 달랐다는 점이다. 성패는 결국 거기서 비롯됐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방영될 때 등장한 경쟁작들을 보면 이 사전제작 드라마가 지금의 대중정서에 어떤 한계를 갖고 있었는가가 명확히 드러난다. 먼저 <W>를 보라.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지상파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라마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화적이고 나아가 한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천외한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 시한부 설정만으로도 마지막 새드 엔딩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시도다.

 

<함부로 애틋하게>KBS라는 그래도 보수적 시청자들이 존재하는 채널에서 방영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호응이 없었다는 건 지금의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함부로 애틋하게><W>가 가진 그 발칙한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었다. 작품의 완성도야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의 결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지금의 시청자들이 열광할만한 도발적이고 발랄한 상상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뒤늦게 합류한 SBS <질투의 화신>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함부로 애틋하게>가 눈물 가득한 비극적 정조를 끊임없이 보여줬던 것과는 사뭇 다른 유쾌하고 웃음이 빵빵 터지는 전개를 보여준다. 가슴에 집착하는 여자 주인공과, 유방암에 걸린 남자 주인공, 그리고 그들이 한 병실에서 만들어가는 상황들은 웬만한 코미디보다 훨씬 더 우습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가볍기 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의 화신>은 지독한 현실을 담아내기도 하고, 또 가족의 해체와 한 가장의 죽음을 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비극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그 비극과 함께 존재하는 희극적인 면들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인물의 심정 속으로 들어가면 눈물 날 정도로 가슴이 아프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상황은 눈물 날 정도로 웃기는 희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함부로 애틋하게><질투의 화신>이 현실을 다루는 방식과 비교해보면 너무나 무겁고 어떤 면에서는 비장함까지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접근방식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그다지 호응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드라마 한 편조차 잠시 간의 휴식이나 위안으로 기능하길 바랄 정도로 지금의 시청자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든 현실을 힘들게 드라마 속에서조차 보는 건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 된다.

 

<함부로 애틋하게>라는 작품이 보여준 결과들은 지금의 시청자들이 적어도 두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발칙하거나 아니면 로맨틱하거나. 발칙한 상상력을 끝없이 질주해나간 <W>, 비극성조차 웃음의 코드로서 전하는 <질투의 화신>으로 변한 트렌드 속에서 <함부로 애틋하게>는 사전제작이라는 족쇄에 묶여 힘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W>의 엔딩, 그 어느 작품보다 궁금한 까닭

 

이건 마치 송재정 작가의 머릿속을 탐험하는 기분이다. 작가는 애초에 <W>의 해피엔딩에 대한 강력한 갈망을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의 입을 빌려 얘기한 바 있다. 이건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그러니 <W>라는 드라마는 송재정 작가가 만들어내는 갖가지 난관들과 적들의 공세 속에서 주인공인 강철과 오연주(한효주) 그리고 그들을 돕는 웹툰 작가 오성무(김의성)와 그 조수인 박수봉(이시언)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그려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W(사진출처:MBC)'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액자적 구성이다. 송재정 작가가 쓴 드라마 <W>는 그 안에 오성무라는 웹툰 작가가 있고 그가 ‘W’라는 웹툰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송재정 작가와 오성무라는 웹툰 작가는 같은 작가로서의 고민을 공유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처음 오성무는 자신이 만든 웹툰의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고 인물들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 각성하기 시작한 강철을 죽이려 했던 것.

 

하지만 차츰 그 웹툰의 세계와 현실이 연결되고 웹툰 속 진범이 현실로 나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며 심지어 작가의 얼굴을 빼앗아 그를 아바타처럼 만들어버리자 상황은 역전된다. 아마도 이처럼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마음대로 상황을 좌지우지하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캐릭터에 의해 노예처럼 질질 끌려가는 상황은, 실제 드라마를 쓰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벌어질만한 일이다.

 

일단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상황이 주어지면 그 캐릭터는 작가가 원치 않아도 어떤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게 된다. 캐릭터가 너무 작가의 의지에 의해 자의적으로 움직이게 되면 작품은 망가지고 대중들은 공감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느 순간이 되면 작가의 의지와 상관없이 캐릭터는 그 내적 동인에 의해 움직이고 심지어 작가가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작가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주인공이나 다른 인물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국면전환을 해내는 것이다. <W>의 경우 폭주하는 진범에 의해 심지어 오연주까지 죽음을 맞게 되자 강철과 오성무 그리고 박수봉이 서로 힘을 합쳐 다시 오연주를 살려내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황당할 수 있는 설정이 가능한 건 <W>의 이야기 세계가 이미 현실과 웹툰 세계가 이어져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고, 그 매개인 태블릿 PC를 통한 시간의 되돌림이나 인물의 부활이 가능한 세계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W>의 마지막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작가의 의지는 물론 해피엔딩으로 기울어져 있다. 어떻게든 강철과 오연주가 살아남아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진범이 영원히 죽기를 바라며 또한 오성무와 박수봉이 그들 곁에 살아남기를 바란다. 하지만 작품의 내적 동인에 의해 만들어진 죽었다가도 다시 부활하는 캐릭터들의 문제는 엔딩 또한 편안하게 볼 수 없게 만든다. 강철과 오연주가 그랬던 것처럼 죽은 진범 역시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것이고 그 진범의 목적인 주인공들을 죽이고 자신이 그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드라마들이 엔딩에 도달해 그걸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어떤 경우에는 새드엔딩이 당연할 수 있지만 시청자들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져 엄청난 후폭풍에 휩싸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해피엔딩이든 새드엔딩이든 작품 내적인 개연성과 시청자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공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해피엔딩을 꿈꾼다. 과연 <W>는 어떤 방식으로 납득할만한 해피엔딩을 그려낼까. 송재정 작가의 머릿 속이 못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MBC 드라마, 어쩌다 장편의 늪에 빠졌을까

 

도대체 한때는 드라마공화국이라고까지 불리던 MBC드라마는 어째서 최근 들어 화제가 잘 되지 않는 걸까. 월화드라마로 자리한 <몬스터>는 총 50부작의 대작이지만 지금 시청률은 10% 정도에 머물고 있다. 화제성은 거의 제로나 마찬가지다. 이런 장편의 경우 40부가 넘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화제가 되기 마련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몬스터>는 지금 시청자들에게는 방영되고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한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W(사진출처:MBC)'

주말 드라마로 이병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옥중화>20%의 적지 않은 시청률을 내고 있지만 본래 이 시간대에 MBC 주말드라마가 심지어 막장 논란이 일어나곤 하는 자극적인 드라마들을 연달아 세우면서 늘 20% 이상의 시청률을 냈던 걸 염두에 두고 생각해보면 그리 높다고도 할 수 없는 시청률이다. 게다가 <옥중화>는 극성이 셀 수밖에 없는 사극이 아닌가. 문제는 이 드라마 역시 그리 화제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보는 이들은 있지만 그만큼 열성적인 반응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나마 MBC 드라마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건 수목드라마로 포진한 <W>. 이 드라마는 최근의 MBC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르게 도발적인 시도를 하고 있고 또한 그만한 성취를 거두고 있다. 심지어 지상파 드라마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그래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W>MBC만의 성과라기보다는 지상파 드라마 전체의 성과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하지만 <W>의 성취가 MBC 드라마가 현재 처한 위기를 모두 상쇄시켜주는 건 아니다. <W>를 제외하고 나면 장편으로 포진된 MBC드라마들의 침체가 눈에 띄게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벌어지게 된 것일까. 막장 논란이 벌어졌어도 한때 시청률과 화제성 만큼은 확실히 챙겨가곤 했던 MBC가 최근에는 시청률에 있어서도 또 화제성에 있어서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건 장편의 한계. 사실 MBC가 이렇게 장편을 월화에 또 주말에 배치하게 된 건 그것이 시청률을 가져가는데 있어 유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주몽> 시절을 떠올려보라. 거의 1년에 가깝게 MBC가 월화극의 지존으로 자리한 바 있고, 경쟁사들의 드라마들이 소리 소문 없이 묻히기 일쑤였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 <몬스터>를 보면 장편이 어떤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오히려 굉장히 버거운 덩치가 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 때 흥행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이병훈 감독의 사극 <옥중화> 역시 그다지 화제가 되지 않는 건 장편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고, 그래서 시청자들도 새로운 이야기로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연히 화제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만일 <옥중화>50부작이 아닌 16부작이나 20부작 정도로 압축했다고 생각해보라. 훨씬 더 속도감 있고 밀도 있는 이야기전개가 가능했지 않았을까.

 

MBC가 그간 주말에 세워 막장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시간대 헤게모니를 잡았던 주말드라마들 역시 장편의 늪에 빠져 있다. 새로움이 없고 늘 비슷한 코드들을 약간 다른 소재 속에서 반복하다 보니 찾아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화제성도 빠지게 되었다. 그게 그거 같은 드라마들로 시청자들에게 여겨지게 됐다는 것이다.

 

장편의 가장 큰 한계는 새로운 제작진이 투입될 수 있는 기회가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결국 드라마는 젊은 PD들의 참신한 시도들이 계속 실험될 수 있는 장 위에서 어떤 발전적인 양상을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장편이 이렇게 월화, 주말에 포진되고 나면 거의 반년 넘게 몇몇 제작진에게만 일이 몰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장편의 늪이 오래 지속되면 신진 PD들의 발굴은 점점 요원한 일이 되어버린다.

 

장편이 시청률에는 유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방송사의 드라마 전체에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잘 될 때는 좋을지 몰라도 잘 되지 않으면 그 덩치 때문에 폐해도 몇 배로 생겨난다. MBC드라마가 과거 같은 드라마 공화국이 되기를 원한다면 앞으로라도 장편보다는 미니시리즈를 통한 새로운 실험에 과감해져야 하지 않을까. <W>가 그나마 보여주고 있는 성과를 주목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W>의 너무 많은 설명들,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MBC 수목드라마 <W>는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서로 부딪치고 겹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껏 드라마에서 좀체 다루지 않았던 설정들이기 때문에 낯설지만 동시에 참신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웹툰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이 현실 속 인물인 오연주(한효주)와 사건으로 서로 엮어지며, 강철과 진범의 팽팽한 대결 구도 속에서 피어나는 현실과 가상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기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W(사진출처:MBC)'

<W>는 판타지 설정이기 때문에 그 안에 어떤 법칙 같은 것들이 세워졌다. 이를테면 웹툰 속에서 현실로 나가려면 어떤 충격적인 엔딩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오연주는 맥락 없이 강철의 뺨을 때리고 갑자기 키스를 하기도 한다. 웹툰의 세계와 현실 세계는 처음에는 웹툰을 그리는 모니터로 연결되어 있었지만 차츰 인물들이 각성하며 세계를 넘나드는 설정으로 바뀐다. 또한 웹툰의 인물들은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리면 조금씩 사라져간다.

 

이런 법칙들은 나름 이해가 가는 것들이다. 그건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웹툰 속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름의 개연성은 그래서 <W>라는 황당할 수 있는 판타지 설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들이다. 여기에 남녀 주인공의 멜로는 이 불가능한 상황을 이어주는 힘을 발휘한다. 두 사람이 이어지는 걸 보고픈 시청자들의 욕망은 심지어 개연성의 부족 또한 채워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선은 있다. 즉 새로운 설정들이 계속 해서 생겨나기 시작하면 제 아무리 판타지 설정이라고 해도 작품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갑자기 각성한 범인이 이 세계를 그린 작가인 오성무(김의성)의 얼굴을 빼앗아 방송국에서 총기난사사건을 벌이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어떤 면으로 보면 너무 개연성에 있어서 튀는 장면처럼 보인다. 오성무의 눈 코 입 없는 얼굴은 섬뜩하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점에서는 이야기가 너무 나간 듯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단 사건이 마구 터지고 그 후를 수습하고 나름의 개연성을 이어붙이는 건 그래서 강철의 몫이 되었다. 오연주와 이 모든 상황을 되돌리려 하는 그는 진범을 잡으려던 시도가 어긋나게 된 것에 대해 그녀에게 장황하게 설명한다. 사실 진범과 오성무가 과거 빌딩 옥상에서 마주하게 됐을 때 오성무가 살기 위해 진범에게 강철을 죽이면 주인공이 되게 해주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 그런데 이 사실을 강철은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강철은 또한 현실세계에서 웹툰 세계로 넘어가는 방법도 스스로 깨닫는다. 웹툰에서 각성해 현실로 넘어왔으니 그 반대도 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그는 이제 현실과 웹툰을 마음대로 오가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들은 끊임없이 강철의 입을 통해서 설명된다. 그는 오연주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그녀가 없을 때는 내레이션을 통해 상황을 설명한다.

 

<W>는 그래서 지금 강철의 설명으로 시작해 설명으로 끝나는 상황에 처해있다. 그리고 그 설명은 다름 아닌 작가의 설명이나 마찬가지다. <W>라는 세계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주인공인 강철이 그 상황들을 납득시키려 끊임없이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이러다 보니 <W>는 너무 자의적인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W>의 이런 맥락 없지만 흥미진진한 세계가 주는 감흥은 그 신선한 시도에 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너무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상황과 그걸 연실 설명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자칫 극적 긴장감을 흐트러뜨릴 수 있는 약점이 되고 있다

수목극, 여주인공 3인의 성패를 가른 건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았을까. 지상파3사의 수목극 대전의 중심에는 33색의 여주인공들이 있다. KBS <함부로 애틋하게>의 수지, MBC <W>의 한효주, SBS <질투의 화신>의 공효진이 그들이다. 같은 장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세 드라마가 모두 갖고 있는 멜로 속에서 이 세 명의 인물들은 너무나 다르다. 다른 만큼 반응도 제각각. 세 인물들은 어떤 매력과 한계를 갖고 있을까.

 

'W(사진출처:MBC)'

먼저 KBS <함부로 애틋하게>는 무거운 멜로와 복수극을 보여주고 있어 수지가 연기하는 노을이라는 캐릭터는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벌써 이름에서부터 드러나듯 세상의 을의 아픔과 고통을 거의 모두 껴안고 있는 듯한 캐릭터. 가난하고 부모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사채 빚에 쫓기며 사랑하는 남자 또한 불치병에 거려 이제 곧 그녀를 떠나게 된다.

 

노을이란 캐릭터가 이처럼 세상의 거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건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염치없는 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몰염치한 세상은 없는 이들을 더욱 힘겹게 만들어놓고 그들끼리만 잘 살아간다. 노을에 대한 연민과 그녀를 그렇게 만든 어른들에 대한 분노 그리고 그들이 꾸미는 그들만의 복수는 <함부로 애틋하게>가 그녀를 가장 밑바닥의 캐릭터로 만들어낸 이유.

 

하지만 너무 힘든 현실 때문인지 이 캐릭터는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무겁게 다가온다. 사이다 전개와 캐릭터를 요구할 정도로 답답한 현실이지만, 노을이란 캐릭터는 그 답답함에 고구마를 더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지의 연기는 괜찮은 편이지만, 수지가 가진 풋풋한 이미지를 이 드라마가 전혀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이건 이 캐릭터를 선택한 수지라는 배우에게도 그리 좋지 못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MBC <W>의 한효주가 연기하는 오연주라는 캐릭터는 수지와는 상반되게 엉뚱발랄하다. 이렇게 된 건 웹툰과 현실을 오가는 이 드라마의 독특한 설정 때문이다. 어찌 보면 너무 황당한 설정이기 때문에 주인공 캐릭터가 지나치게 진지해지면 자칫 우스워질 수 있다. 그러니 오연주라는 캐릭터는 조금은 과장된 모습으로 때로는 웃음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야 그 비현실적인 느낌이 코미디적 설정을 통해 조금은 상쇄되기 때문이다.

 

오연주의 엉뚱발랄함은 이미 <동이> 같은 사극에서 한효주가 보였던 연기 이미지지만 이번 <W>에서는 그보다 조금 더 강도가 높아졌다. 게다가 점점 웹툰 속 인물인 강철(이종석)에 몰입하고 그 세계에 빠져들면서 코믹 이미지는 진지해지는 면모를 띄게 된다. 한효주로서는 이러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연기하게 만드는 오연주라는 캐릭터가 꽤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엉뚱발랄한 캐릭터는 지금의 시청자들이 원하는 코믹함과 장르적 긴장감 게다가 멜로까지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면이 있다.

 

새로 시작해 수목드라마 대전에 뛰어든 SBS <질투의 화신>의 공효진이 연기하는 표나리라는 인물은 조금은 전형적인 느낌을 주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주인공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 이후, 일터에서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려는 여주인공에 대한 열광은 최근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 <질투의 화신>은 방송국 내에서 천대받고 세상에도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기상캐스터 표나리라는 여성의 성장을 다루고 있다.

 

평범해보여도 의뢰로 강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 설정이지만 표나리를 연기하는 공효진의 이미지는 어딘가 과거 드라마에서 봤던 듯한 느낌을 준다. 여전히 공블리라 불리는 그녀의 로맨틱 코미디 연기는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너무 비슷한 캐릭터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은 대중들로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그래도 공효진의 한 방이 기대되는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나온 수목극의 양상을 통해 보면 드라마의 인기와 배우들의 선택은 비례관계를 보이고 있다. 즉 괜찮은 연기변신을 보여준 한효주의 선택이 가장 탁월해 보이며, 전형적이지만 그래도 매력적인 공효진이 그 다음, 안타깝게도 지금의 트렌드와는 잘 어울리지 않고 또 본연의 풋풋한 매력도 드러내지 못한 수지의 선택이 그 마지막이다. 물론 드라마야 취향이니 보는 시청자들에 따라 그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아슬아슬한 <W>, 든든한 이종석-한효주 멜로

 

이건 마치 달리고 있는 자전거 같다. 멈추면 넘어진다. 그러니 쉬지 않고 패달을 밟아야 한다. MBC 수목드라마 <W>가 처한 입장이다. <W>는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정신없을 정도의 속도로 전개되는 그 힘에 의해 시청자들을 몰입시킨다. 개연성과 맥락을 지켜나가는 것이 드라마에 대한 작가와 시청자들 사이의 룰이지만, 이 작품은 웹툰이라는 설정으로 이 룰을 비켜나간다. 그래서 사실상 어떤 이야기든 그것이 뜬금없더라도 갑자기 집어넣을 수 있다.

 

'W(사진출처:MBC)'

웹툰을 그린 오성무 작가(김의성)가 만화 속 주인공인 강철(이종석)과 이 모든 걸 되돌리고 해피엔딩을 만들려하지만 갑자기 각성한 진범이 오성무의 얼굴을 빼앗고 그를 오히려 자신의 아바타이자 노예로 만들어버리는 설정은 일반적인 드라마에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가 된다. 또 그렇게 작가와 작중 악역인 진범이 역전되어 작품 속 악당이 작가를 움직여 웹툰의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그래서 뜬금없이 강철의 일가족 살해사건 현장에 마치 강철이 아버지와 다툼을 벌이다 모두를 죽이게 한 것처럼 대사를 끼워 넣어 그를 진범으로 몰아버리는 것도 이 세계에서는 가능하다. 그건 웹툰의 세계이고, 웹툰이란 외부에서 작가가 어떻게 그려 넣는가에 따라 달리지는 피조물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W>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이 낯선 드라마의 낯설고 맥락 없는 이야기 전개를 계속 바라보는 시청자는 어느 허구의 비등점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드라마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원하면 언제든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개연성과 맥락의 룰이 사라져버린 너무나 자의적인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성무가 자신의 얼굴을 진범에게 빼앗기는 장면은 충격적이지만 너무 인위적인 이야기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W>는 강했다. 그 자의적이고 맥락 없으며 인위적인 이야기임에도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힘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멜로다. <W>에서 벌어지는 총기난사사건이나 추격전, 진범과 강철이 벌이는 대결과 그 사이에서 오연주(한효주)가 강철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들 같은 황당한 사건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도 그 밑바닥에는 이 이야기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멜로 판타지가 있었다는 것.

 

진범이 강철을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그 웹툰의 세계를 지배하려는 이야기 속에서 시청자들이 빠져들게 되는 건 그 강철 옆을 마치 수호천사처럼 배회하는 오연주가 그와 함께 이 난관을 넘어서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 힘겨운 싸움 속에서 서로 가까워졌다 잊혀졌다 다시 나타나 사랑이 이어지는 그 멜로 판타지에 몰입되게 된다. 그것은 개연성의 법칙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게 되고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시청자들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지는 추동력이다.

 

시작부터 마구 패달을 밟아 어느 곳으로든 달려가기 시작한 <W>는 그래서 개연성 없이 달려가는 세계의 공허함을, 패달을 계속 밟았으면 하는(두 사람의 사랑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그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채워나간다. 시청자들은 조금 맥락이 없어도, 또 황당해 보여도 갑자기 오연주가 나타나서라도 강철을 구하고, 또 그들의 사랑이 이뤄지고 진범이 처단되어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란다. 그 오연주와 강철 사이에 만들어진 강력한 멜로 판타지는 그래서 어느 곳으로 튀든 이 <W>라는 자전거가 계속 패달을 밟아줬으면 하는 욕망을 만들어낸다. <W>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아슬아슬하지만 그 빈 부분을 오연주와 강철의 멜로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18)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07)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6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 13,051,782
  • 896414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