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에게 죽어라? 배우가 어떻게

 

영화 <해무>의 보이콧 논란으로까지 번진 막말 댓글 논란은 당사자인 배우 정대용의 30년 배우 인생 포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정대용은 사과문에서 아파하시고 힘들어하시는 세월호 유가족분들과 생사를 오가며 힘겹게 단식을 이어가시는 김영오님께 무릎 꿇어 사죄를 드립니다라고 밝히며, “저의 30여년 무명배우이지만 너무나 사랑했었던 배우라는 직업을 내려놓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라고 배우 포기선언을 했다.

 

'사진출처: 영화 <해무>'

사과문에 거듭해서 <해무>가 피해를 보고 있는 것에 대한 언급한 걸로 봐서 자신의 부절절한 댓글로 영화의 보이콧 논란이 생긴 것에 대한 상당한 심적 부담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실로 정대용씨의 한 줄 댓글은 <해무>라는 영화에 직격탄을 날릴 만큼 중대한 과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 자체가 생존경쟁이라는 극한 풍랑 앞에 놓인 전진호 선원들의 비인간화를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다 위에서 침몰하는 배라는 영화의 상징은 고스란히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 와중에 세월호 유족들에게 심지어 죽어라라고 말한 뮤지컬 배우 이산의 글에 황제단식운운하며 댓글을 단 건 말 그대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제작자인 봉준호 감독과 출연 배우인 문성근이 단식에 참여했던 것과는 정반대다.

 

이처럼 최근 들어 영화는 영화 외적인 사안들과 그 어느 때보다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배우가 꼭두각시처럼 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하는 존재고 행동하는 존재라는 걸 대중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와 생각은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정대용이 30년 배우 인생을 끝내겠다고까지 사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정작 이 문제의 글을 올린(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이산(본명 이용근)은 아무런 행보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 의문스럽다. 정대용이 남긴 댓글보다 그 댓글이 달린 이산의 글은 제 아무리 정치적 입장이 다르다고 해도 인간으로서는 함부로 입에 달 수 없는 말들이다. ‘유민이 아빠라는 자야, 그냥 단식하다 죽어라. 그게 딸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고, 전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유일한 길이다. 죽어라.’ 이게 상식이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가.

 

이산은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햄릿>, <문제적 인간 연산>에 출연한 배우다. 배우라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자질이 타자에 대한 공감 능력이다. 그것이 없다면 어찌 타인의 삶을 연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산이 남긴 일련의 글들을 보면 이념과 생각의 차이를 넘어 타자를 전혀 고려치 않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항간에는 무명배우들이 자신을 알리기 위한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런 식의 타자를 고려치 않는 성향을 드러내는 노이즈 마케팅은 결국 배우로서의 포기선언과도 다르지 않다. 이름만 대중들에게 알려지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배우로서의 자질이 바닥인 것을 이미 드러낸 마당에. 뒤늦게나마 정대용이 내놓은 사과와 배우 포기선언은 그나마 남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겠다는 제스처로 보인다. 그렇다면 정작 이산은 왜 묵묵부답일까.

 

이산의 비상식적인 글과 거기에 단 정대용의 댓글이 만들어낸 논란은 마치 지금 현재 세월호 참사 정국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만 같다. 댓글을 단 정대용은 배우 포기선언까지 하며 사과를 하고 나섰지만 정작 이산은 여기에 대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는 저 바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를 둘러싼 소통 없는 현실은 끊임없이 침몰한 세월호를 우리 주변에서 발견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 정신적으로 침몰하는 중이다.

 

(뮤지컬 배우 이산이 입장을 밝혔네요. 유민아빠가 대통령께 먼저 사과하면 자신도 사과하겠다는 내용인데... 여전히 상식적이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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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무>, 부족한 스토리도 채워 넣는 미친 연기들

 

우린 이제 한 배를 탄 거여.” 영화 <해무>에서 전진호의 갑판장 호영(김상호)은 동요하는 선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대사는 이 영화의 상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 배를 탄 사람들이라는 상징을 <해무>는 영화적 상황을 통해 재연해낸다.

 

'사진출처: 영화 <해무>'

IMF라는 시대적 설정과 전진호는 그래서 당대의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그려진다. 감척사업 대상이 되어 배를 잃게 될 선장과 선원들. 그래서 고기로 채워져야 할 배가 조선족 밀항자들로 채워지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영화의 시작부분은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을 그대로 이어받은 듯한 심성보 감독의 세세하고도 다이내믹한 연출이 돋보인다. 전진호 선장과 선원들의 노동과 일상을 카메라는 거칠고 녹이 슬어버린 갑판의 풍경과 그것을 그대로 닮아버린 인물들을 훑어나가며 효과적으로 그려낸다. 힘겨워도 훈훈한 그 정경 속에는 바다를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밀항자들을 태우기 위해 바다로 나가는 배에서 이 인물들은 저마다의 욕망 하나씩을 끄집어낸다. 선장인 철주(김윤석)는 배에 집착하고, 늘 선장을 따르던 갑판장 호영은 철주의 명령에 집착하며, 쫓기는 신세로 전진호에 숨어 지내는 기관장 완호(문성근)는 사람의 목숨에, 롤러수인 경구(유승목)는 돈에, 그리고 선원 창욱(이희준)은 여자에 집착한다. 그리고 막내 선원인 동식(박유천) 역시 사랑에 집착한다.

 

이 집착적인 욕망은 그러나 전진호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사건들로 인해 하나씩 파국을 맞게 된다. 극한의 상황에 몰린 그들에게 엄습해오는 해무(바다안개)처럼 그 가려진 시야 속에서 숨겨져 있던 끔찍한 욕망의 흔적들이 스멀스멀 갑판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그 욕망은 그들 스스로를 잡아먹는 괴물로 돌변한다.

 

극단 연우무대의 연극 원작을 바탕으로 해서 그런지 영화는 바다를 향해 나가면서도 전진호라는 폐쇄적 공간을 좀체 벗어나지 않는다. 그 위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의 이야기는 그래서 마치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연극적인 요소들은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갑자기 서서히 고조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갑자기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듯한 급작스러움은 그래서 이 영화의 흠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시종일관 긴장되게 바라보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전진호 위에서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연기를 선보인 연기자들이다. 김윤석은 그 묵직한 존재감으로 전진호의 중심을 끝까지 잡아가고, 김상호, 이희준, 문성근, 유승목은 진짜 선원들이라 여겨질 정도로 영화의 미친 몰입을 보여준다.

 

특히 이 영화에서 주목되는 건 박유천과 한예리의 결코 약하지 않은 연기의 존재감이다. 박유천은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온전히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연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될 것 같다. 또한 조선족 처녀 역할을 놀랍도록 연기해낸 한예리 역시 이 베테랑들의 호연 속에서도 결코 퇴색함이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2001년에 있었던 제7태창호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원작이지만 세월호 참사를 겪어서인지 <해무>는 훨씬 더 불편한 느낌을 선사한다. 선원들을 극한으로 내모는 현실은 다름 아닌 돈이다. 그 돈 몇 푼을 위해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바다 한 가운데 던져버리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그래서 <해무>라는 제목처럼 안개에 가려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과 그 속에서 자행되는 폭력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해무>는 지나친 상징과 의미화에 집착함으로써 조금은 허무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에서 보여지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조금은 무게감을 갖는 영화로 현실을 반추해보고 싶은 관객이라면 나름대로의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 특히 연기자들의 미친 연기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요소다. 박유천의 연기를 재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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