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스’, 보는 맛만큼 듣는 맛도 일품이다

“야 이 빵꾸똥꾸야!” 어찌 들으면 욕 같기도 한 이 말. 그런데 이상하게 진지희라는 아이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이 말에는 막힌 속을 확 풀어주는 어떤 힘이 있는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연실 ‘빵꾸똥꾸’란 말로 현대사회의 부조리한 부분들을 거침없이 하이킥 하던 진지희. 그녀가 이번에는 극장용 다큐멘터리 영화 ‘오션스’로 돌아왔다. 어딘지 어눌하면서도 정이 가는 극중 그녀의 아버지였던 정보석과 함께.

여름방학 시즌에 맞춰 쏟아져 나오는 대작 영화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션스’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개봉 4일만에 18만 관객을 돌파하는 꽤 괜찮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시선을 압도하는 바다 생물들의 경연장 같은 ‘오션스’의 세계가 대중들을 매료시키는 이유는 물론 그 스펙터클이 가진 힘 때문이다. 거대한 대왕고래의 위용에서부터 4억년 동안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게, 신기하게 생긴 담요문어는 물론이고, 전갱이떼의 군무나, 마치 그림 같은 해파리떼들, 시속 40킬로로 질주하는 돌고래와 수천 마리의 황다랑어떼 같은 장면들은 거대한 스크린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이미 ‘마이크로 코스모스’로 놀라운 곤충들의 세계를 조명했던 자크 페렝이 무려 7년 간 촬영한 끝에 잡아낸 ‘오션스’의 영상들은 저게 과연 우리 지구의 모습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 자크 페렝은 프랑스의 국민배우로 우리에게는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 살바토레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제 그는 생생히 살아 숨 쉬는 바다의 생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그 존재들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들인지를 말한다. 물론 이 가치 있는 존재들을 마구 파헤치고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가진 스펙터클의 힘은 그러나 아마도 진지희와 정보석의 톡톡 튀는 내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정보석의 어눌한 랩에 진지희의 다소 엉뚱한 멘트들은 이 다큐멘터리 영화에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아름다운 영상들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만들어진 이 부녀의 캐릭터와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다큐멘터리에 유머를 부여했다. 진지희의 아이의 시점에서 쏟아내는 톡톡 튀는 멘트들에 어린 관객들이 빵 터지는 것은 그 시점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 친숙함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감어린 아빠의 목소리로 딸에게 차근차근 바다생물들을 설명해주는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자칫 가르치려는 고정된 다큐멘터리의 목소리가 가진 무게감을 덜어냄으로써 편안해졌다. 정보석의 내레이션은 어른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이 바다 여행을 즐기는(어찌 보면 아이 만큼 들떠있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아빠의 목소리다.

흥미로운 것은 ‘빵꾸똥꾸’의 힘이 여기서도 여전히 발휘된다는 점이다. 후반부에 이르러 다소 잔인할 정도로 그려지는 인간들의 해양생물 도륙 장면들에 이르면 진지희가 감정을 실어 쏟아내는 “이 빵꾸똥꾸들아!”라는 말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해지는 아이의 외침이 ‘빵꾸똥꾸’라는 대사로 잘 표현된 셈이다. ‘오션스’의 흥행에는 분명 ‘빵꾸똥꾸’로 대변되는 톡톡 튀는 내레이션의 힘이 분명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오션스’는 그 장관을 보는 맛뿐만 아니라, 듣는 맛도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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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꾸똥꾸'에 깃든 사회, 그 의미

난데없는 '빵꾸똥꾸(?)'로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악동인 해리(진지희)가 입에 달고 다니는 이 '빵꾸똥꾸'는 올해의 유행어가 될 만큼 장안에 화제가 됐다. 그런데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이러한 용어가 폭력적이고, 필요이상 반복적으로 사용됐다며 해당 프로그램에 권고 조치를 했다. 도대체 왜 이 같은 용어에 대해 이처럼 상반된 반응이 나온 걸까.

먼저 사전에도 없는 '빵꾸똥꾸'가 무얼 의미하는 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것 같다. 시트콤의 내용에 따르면 그 유래는 해리가 어렸을 때 말을 좀 늦게 하게 됐는데, 할아버지인 이순재가 방귀를 뀌는 소리를 듣고는 첫 마디를 '빵꾸똥꾸'라고 말했다는 데서 비롯된 것. 그 후로 뭔가 심사가 뒤틀리는 것(행위나 사람 모두 통틀어)을 대하면 해리는 이 말이 습관적으로 터져 나온다. '빵꾸똥꾸'는 적어도 해리에게는 자신만이 가진 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빵꾸똥꾸'를 외치는 해리의 모습은 그래서 거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어쨌든 욕의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욕은 그 집에 새로 들어와 식모 생활을 어렵게 하며 살아가는 세경과 신애 자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빵꾸똥꾸'는 해리가 처음 신애의 뺨을 올려 부쳤을 때 느껴지던 그 충격처럼 다가왔던 게 사실이다. 어린 아이가 어쩌면 저렇게 독할 수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충격은 조만간 사라져갔다. 그리고 차츰 독하기만 한 아이라고 여겨졌던 해리는 역시 아이다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빵꾸똥꾸'를 외치면서도 하루만 신애가 보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고, 신애가 쓰는 동화를 읽기 위해 신애가 하는 일을 도와주며 빨리 쓰라고 욕을 해대는 해리는 영락없는 아이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 아이가 이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모습에서 이제는 불쌍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바로 이 지점부터 해리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뀌었다. 해리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에서 해리의 '빵꾸똥꾸'가 의미하는 것이 진짜 무엇인지도 드러났기 때문이다. 물론 어린 아이가 입에 담는 욕이 보기 좋을 수는 없다. 그런데 이 보기 좋지 않은 것, 그것은 사실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아이가 무슨 죄가 있을까. 아이마저 욕을 하게 만드는 환경이 문제가 아닐까.

아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빵꾸똥꾸'는 어쩌면 우리가 만들어놓은 사회의 비뚤어진 부분을 거울처럼 비춰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가 '빵꾸똥꾸'를 외칠 때마다 이제는 심지어 묘한 카타르시스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욕이 가진 언어적인 기능과 거의 궤를 같이 한다. 욕과 배설의 즐거움이 같다는 것은 어떤 억압을 대리해 풀어주는 그 기능적 유사함 때문이다.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을 때, 그것을 지적하는 촌철살인의 욕은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빵꾸똥꾸'가 문학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용어는 풍자를 웃음의 재료로 삼는 시트콤으로서는 꽤 우회적인 괜찮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빵꾸똥꾸'를 듣고 빵 터졌던 분들은 그 이유가 이 말이 가진 표피적인 의미 이상의 뉘앙스를 순간 느꼈고 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아이들이 무비판적으로 해리의 행동을 따라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아이들의 리얼한 모습이라는 것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정직하게 그런 변화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 혹은 아이들의 성장을 희망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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