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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드라마라는 뿌리 중의 뿌리는 역시 스토리다 1시간이 너무 짧다. '뿌리 깊은 나무' 3회는 그 속도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쏟아지는 화살비 속으로 걸어 들어간 세종(송중기)의 마지막 장면의 긴박감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끊임없이 사건을 일으키며 흘러가고 어느새 마지막 장면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토록 빠른 속도감을 주는 드라마가 있었던가. '뿌리 깊은 나무'의 이 미친 속도감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제 고작 4회가 진행됐지만 이 사극은 엄청나게 많은 연기자들이 투입되었다. 세종만 해도 어린 이도(강산), 젊은 이도(송중기)를 거쳐 이제 나이든 세종(한석규)까지 무려 세 명이다. 세종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채윤 역시 어린 채윤(채상우), 소년 채윤(여진구), 그리고 성장한 채윤(장혁)까지 세 ..
랜드마크에서 하던 '런닝맨', 랜드마크를 만들다 '런닝맨'의 초기 버전은 랜드마크가 중심이었다. 대형쇼핑몰, 월드컵경기장, 과학관, 세종문화회관, 서울타워... '런닝맨'은 게임버라이어티답게 이 랜드마크 속으로 들어가 그 공간에 어울릴만한 게임들을 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물론 흥미로웠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어딘지 다람쥐 챗바퀴 돌듯 이야기가 반복되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그것도 그 공간과 어울리는 게임을 억지 춘향식으로 맞추다 보니 '틀에 박혀' 버린 것이다. 그래서 '런닝맨'은 이 틀을 과감하게 버렸다. 즉 랜드마크에 집착하지 않고 좀 더 게임에 집중했던 것. 이렇게 되자 게임은 좀 더 흥미진진해졌다. 런닝맨들은 이제 그 날의 목적지가 어딘지도 또 거기서 어떤 미션으로 게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이런 노래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주인공들은 TV 속에 있었다. 그들은 우리와는 확실히 다른 종족이었고 주인공으로 살아갈 운명을 부여받은 인물들이었다. TV 바깥에서 그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는 그 주인공들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추종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틱한 세계는 바로 거기 있었지만 그 세계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의 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 시대는 많이도 바뀌었다. 어제까지 나와 그다지 다른 생활을 했을 것처럼 보이지 않던 사람이 이제는 스타가 되는 시대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은 이제 TV 저편과 이편 사이에 그다지 큰 이물감이 없어진 작금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 곳은 연예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한국전 당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군중들이 불렀던 노래 '지펜투텐탁(훗날 '집행유애'라는 곡으로 불린)'을 부른 장본인, 또 1985년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마이클 잭슨을 위시한 50명의 가수들이 'We are the world'를 부를 때 코러스를 했던 인물, 또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파이널을 장식했던 세계 모든 가수들의 우상이자 엘비스 프레슬리와 합동공연을 했던 신화적인 존재. 바로 UV라는 인물에 붙는 스토리들이다. 이 스토리를 천연덕스럽게 보여주는 'UV 신드롬 비긴즈'는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위에 나열된 모든 사건들의 연대가 UV라는 두 인물에 의해 행해졌을 가능성은 없다. 즉 이 다큐는 페이크다. 그래..
가수들의 예능출연을 바라보는 두 시선 우리 시대, 가수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가수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은 해묵은 것처럼 보인다. 즉 90년대 비주얼을 내세운 기획형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했을 때도 이 질문은 등장했었다. 하지만 그 때로부터 또 많은 것들이 변했다. 디지털 환경을 맞아 음반시대가 저물고 음원시대가 열렸다. 가수들은 더 이상 노래만 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고 재빨리 대형기획사들은 방송사에 드라마에서부터 예능까지 아이돌들을 포진시켰다. TV 어디를 틀어도 아이돌을 발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어갈수록 '노래만 하는 가수들'이 설 무대는 점점 사라졌다. 가수들의 '예능-드라마 러쉬'가 이어졌다. 예능과 드라마를 모두 석권하고(?)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을 이룬 이승기의 등장은 모두들 그..
예능은 이제 더이상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지칭을 쓰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웃음을 주는 것이 예능이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눈물을 주는 것도, 감동을 주는 것도, 때로는 어떤 짜릿한 스릴과 미스테리한 재미를 주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의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은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서로 다른 삶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의사로 분한 박명수와 투병하는 환우 아이 사이에 훈훈한 정을 그려냈고, '1박2일'은 외국인근로자 친구들이 가족들과 상봉하는 장면을 통해 그 무엇보다 우리네 가슴을 울리는 끈끈한 가족애를 그려냈습니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이 액션 장르의 서스펜스와 멜로를 예능으로 끌어들이고,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뜨거운 형제들'이 역할..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괴물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당장이라도 나를 삼킬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올려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어머니는 거기 떠 있는 별들을 손으로 가리켜 이리 잇고 저리 이으면서 별자리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지금도 이야기를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도망자', 초반 부진을 털어낼 것인가 '도망자'는 실험작인가, 실패작인가. 그 어떤 것이라고 해도 '도망자'로서는 예상 밖일 것이다. 엄청난 제작비를 투여한 작품이 실험작이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또한 실패작이어서는 더더욱 안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어설픈 실험작이자 또 하나의 블록버스터 실패작이 되어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르렀을까. 제일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속도다. 이 드라마는 속도 조절에서 실패했다. 빠른 속도감은 최근 드라마들의 한 경향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빨리 달려 나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 '도망자' 같은 액션 스릴러라면 더더욱 그렇다. 액션은 흔히 보여지는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읽혀지는 것이다. 즉 액션을 할 때 왜 저들이 저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