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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정덕현
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 “그러다가 이 사람에 의해 무고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이오. 그 억울한 죽음을 진의원이 책임질 수 있소?” 성난 민중들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은 진주의 탐관오리 현감을 살리려는 진혁(송승헌)에게 영래(박민영)는 이렇게 묻는다. 하지만 “의원은 본디 사람을 가려가며 살리지 않는다”며 진혁은 진주 현감을 살려내고, 영래 역시 그를 도와준다. 하지만 바로 진혁이 살린 진주 현감이 영래의 오빠인 영휘(진이한)를 죽게 만든다. 그저 작은 시퀀스에 불과한 이야기 같지만 이 속에는 이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담겨져 있다. 의사라면 마땅히 환자가 누구라도 일단 하나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 본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 환자가 히틀러라면? 그래서 죽을 인물이 살아나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게 만..
, 특별한 퓨전극의 탄생 갑자기 조선시대로 떨어진 최고의 신경외과 전문의 진혁(송승헌)의 눈앞에는 끊임없이 긴급한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는 떡을 먹다 갑자기 목에 걸려 숨을 쉬지 못하는 저잣거리 왈자패 두목 주팔이(김원종)의 목에 구멍을 내서 살려내고, 칼에 머리를 맞아 내상을 입은 홍영휘(진이한)와 뇌에 생긴 혈종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은 최고 실세 좌의정 김병희(김응수)를 뇌수술로 살려낸다. 또 물에 빠져 의식을 잃은 춘홍(이소연)을 인공호흡으로 숨 쉬게 하고, 말에 머리를 다치는 사고로 죽어가는 여인을 구한다. 아마도 이라는 이 특별한 드라마를 상징하는 장면은 조선시대로 간 진혁이 환자의 뇌수술을 하기 위해, 끌과 정 같은 살벌한 도구로 머리에 구멍을 내는 장면일 것이다. 그에게는 조선시대로 떨어질 ..
'브레인', 심지어 컬트적인 문제작 "이건 우리의 마음이거든요. 사람이 마음을 만질 수 있다는 게, 신경외과 의사가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이토록 경이로운 뇌를 만져온 인생을 바친 저는 여한이 없습니다. 뇌를 통해서 사람을 이해했고 연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레인'의 뇌의학자 김상철(정진영) 교수의 이 진술은 마치 작가의 진술처럼 들린다. '브레인'의 작가는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뇌를 들여다보고 만짐으로써 그들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지금까지 어떤 드라마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 드라마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브레인'은 확실히 지금까지의 어떤 드라마와도 다르고, 특히 그 어떤 의학드라마와도 차별화되어 있다. 환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사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의사를..
의사가 환자라니... '브레인'의 기막힌 설정 초기 의학드라마에서 의사들의 이야기는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전문적인 소양 없이 주로 멜로가 중심이 되다보니 '가운입고 연애하는' 무늬만 의학드라마들이 양산되었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이 호평 받은 것은 좀 더 디테일한 병원의 이야기들이 전문적인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멜로는 여기서도 빠질 수 없었지만, 그래도 다양한 병과 그 병을 앓고 치유하고 이겨내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풍부했기 때문에 '무늬만 의학드라마'와는 확실한 차별화를 이루었다. 하지만 환자들의 이야기를 미니시리즈로 다루는 것에는 한 가지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결국 에피소드별로 이야기가 뚝뚝 끊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것은 드라마가 어떤 흐름을 타야 시청자들의 이목을 지속적으로 잡아..
병으로 점철된 저주받은 여성수난사, '천만번 사랑해' '천만번 사랑해'가 의학드라마였나? 각종 병들에 고통 받는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천만번 사랑해'를 보다보면 문득 이런 착각에 빠진다. 이 드라마가 처음 끌어온 병은 불임이었다. 손향숙(이휘향)의 큰며느리인 이선영(고은미)은 산부인과에서 여러 차례 불임 시술을 받지만 결국 실패한다. 그러자 아이를 얻기 위해 대리모라는 결정을 내리고, 마침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장차 둘째 며느리가 될) 고은님(이수경)은 그 대리모로 나선다. 이 현실적으로는 거의 가능성이 없는 관계 설정은 끊임없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독하게 만들거나 비극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만든다. 여성이 여성을 핍박하고, 핍박당한 여성은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이 드라마의 ..
'제중원'이라는 시공간은 기막힌 구석이 있다. 먼저 시간적으로는 근대의 시작을 알리는 구한말이다. 이것은 장르적으로는 사극의 시간이다. 여기에 '제중원'은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이라는 공간을 세웠다. 장르적으로는 의학드라마의 공간이다. 즉 '제중원'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간을 제중원이라는 근대문명이 들어오는 공간 속으로 포획함으로써, 장르적으로는 사극과 의학드라마의 하이브리드를 가능하게 만들어낸다. 이것은 두 차원의 볼거리를 하나로 결합해낸다. 조선이라는 시기에 처음으로 우뚝 세워지는 근대적인 병원공간인 제중원은 그 자체로 신기한 볼거리이면서, 동시에 사극이라는 장르적 공간 속으로 현대적인 의미의 의학이 침투해 들어가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 안에는 갓 쓰고 가마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는 조선의 ..
'제중원'은 어떻게 백정-중인-사대부를 엮었나 "살을 째고 꿰매고 하는 일이 우리 하는 일하고 도찐 개찐이지." SBS 월화드라마 '제중원'에서 백정인 황정(박용우)의 동료는 양의의 시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지나가듯 던져지는 대사지만 이 대사는 이 드라마의 절묘한 봉합술을 잘 드러내준다. 백정이 하는 일이나 의원이 하는 일이나 비슷하다는 것. 물론 그것이 어떻게 비슷할 수 있을까마는, 어쨌든 칼질에도 능하고, 바느질에도 능한 황정은 의원으로서의 자질(?)을 어느 정도 갖춘 셈이다. 여기에 칼질을 하는 대상에 대한 긍휼한 마음까지 갖추었으니, 소를 대하는 마음이 그럴 진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후에 의원으로 성장할 황정이 백정이었다는 설정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기묘한 조화를 이룬다...
'제중원', 사극과 의학드라마 그 흥미로운 봉합 ‘제중원’은 사극의 확장일까, 의학드라마의 진화일까. 시간의 축으로 잘라 보면 ‘제중원’은 사극이 아직까지는 밟지 않은 미지의 시간, 구한말을 다루고 있고, 공간의 축으로 잘라 내면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제중원을 담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사극이면서 공간적으로는 의학드라마의 연장인 셈이다. 시간의 축이 주는 사극이라는 장르는 현대극이 할 수 없는 극적 구성을 가능하게 한다. 구한말이라는 시간은 신분제가 무너지고 서구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기. 그 시간 위에 신분의 틀에서 이제 벗어나 마주보기 시작한 두 인물, 즉 황정(박용우)과 도양(연정훈)이 서양의학이라는 새로운 서구문명을 축으로 대결선상에 서게 된다. 황정이 백정의 아들이라는 점은 소 잡던 손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