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 썩어빠진 교육 그 때나 지금이나

“사부학당 학동들 새벽부터 밤까지 사서삼경만 주구장창 외워댄다. 여기 아이들 모두 난다긴다하는 명문가 자손들이야. 바깥물정 백성들 고초 따윈 본 적도 관심도 없는 녀석들이야. 이 아이들이 그대로 지들 아버지 자리 물려받아서 또 관원이 되고 그 자식들이 또 관원이 되고 이래 갖고 나라꼴이 어찌 되겠느냐?”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중부학당 교수 백인관이 의성군(송승헌)에게 던지는 이 대사는 <사임당>이 건드리고 있는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이 묻어난다. 중부학당에 들어가는 것으로 다음은 성균관, 그 다음은 출사의 길이 보장되는 명문가 자손들. 그리고 학당의 교수들을 쥐고 흔드는 자모회. 물론 이런 설정들은 <사임당>이라는 드라마가 현재적 관점에서 교육의 문제를 사극에 빗대 의도적으로 꺼내놓은 것일 게다. 

공부 깨나 한다고 아무나 들일 수 없는 교육기관의 이야기는 거꾸로 이야기하면 능력은 못 미쳐도 집안이 좋거나 부자이거나 하면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도 들린다. 그래서 <사임당>이 꺼낸 전라도 부잣집 아들 대룡과 사임당(이영애)의 아들이자 훗날 율곡 이이가 되는 현룡(정준원)이 중부학당에 들어가기 위해 벌이는 경연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룡을 중부학당에 집어넣기 위해 자모회의 수장인 휘음당(오윤아)이 독선생(지금의 가정교사)까지 붙이고 출제문제를 사전에 유출해 달달 외우게 만드는 대목은 지금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은 부정입학 비리까지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대룡은 공부에 아무런 뜻이 없다. 어찌 보면 오히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조예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런 대룡의 의향 따위는 그 어머니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출사하기 위해 정해진 길을 걷게 하려는 것일 뿐.

중부학당에 들어가면 자신은 죽을 지도 모른다며 어머니가 밥도 간식도 안 주겠다 하셨다고 말하는 대룡에게 현룡은 정반대 입장인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한다. “우리 어머닌 조르고 졸라도 안 된다고 하셨어. 밥 안 먹어도 좋으니 제발 중부학당만 보내달라고 했는데도.” 현룡은 책을 읽는 것이 좋아 밥 먹는 것도 깜박 잊는다고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성향과 꿈이 다르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고 문제가 사전 유출된 걸 알게 된 의성군은 그래서 두 아이를 위한 새로운 경연 문제를 내놓는다. 그것은 일종의 ‘솔로몬의 선택’을 재해석한 문제다. 상자 하나를 놓고 향이 다 탈 때까지 서랍을 먼저 잡아 여는 이가 입학을 하게 될 거라는 문제. 그러나 어찌 보면 쉬워 보이는 이 문제 앞에서 아이들은 둘 다 눈물을 흘리며 서랍을 열지 못한다. 상대방의 입장을 너무나 잘 이해하기 때문이다. 현룡은 대룡이 밥도 못 먹게 될 거라는 말 때문에, 대룡은 현룡이 밥 먹는 것도 잊을 정도로 공부가 좋다는 말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배려한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으랴. 결국 의성군은 두 아이들을 모두 중부학당에 입학시키기로 결정한다. 그가 입학의 조건으로 본 것은 아이들의 능력이 아니라 인성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 그것이 없다면 배움은 오히려 백성들을 속이고 핍박하는데 사용될 흉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중부학당 교수 백인관이 한탄하는 것처럼 어쩌면 이 모든 작금의 어려워진 현실들은 그 시원이 깨나 오래됐는지도 모른다. “바깥물정 백성들 고초 따윈 본 적도 관심도 없는” 이들이 사서삼경을 달달 외우거나 돈을 써서 관원이 되고 또 그 자식들이 관원이 되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굳어져 버린 오랜 적폐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교육에서부터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타인에 대한 배려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누군가가 높은 자리에서 정의를 농단해온 현실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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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녀들을 희생하게 만들었나

‘내조의 여왕’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퀸즈푸드라고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공간이다. 어디에서나 정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는 그 곳은 온전히 실력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며, 막후협상과 로비와 줄서기가 횡행하는 곳이다. 남편이 이사면 그 아내도 이사고, 남편이 부장이면 그 아내도 부장이며, 남편이 인턴사원이면 아내도 인턴사원인 곳이 그 곳이다. 부부는 하나의 짝패를 이루어 안팎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 ‘내조의 여왕’이 그려내는 내조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마련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내조’를 뛰어넘는다.

이제 막 이 세계에 들어간 온달수(오지호)의 아내 천지애(김남주)는 퀸즈푸드 사모님들(?)의 내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녀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오로지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한편 젊은 시절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던 양봉순(이혜영)은 일찌감치 이 진흙탕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것은 이미 천지애와 사귀던 한준혁(최철호)을 중간에서 가로채 남편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양봉순의 삶이 오로지 남편을 내조하는 삶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양봉순은 그런 남편이 여전히 잊지 못하는 천지애와 이 처절한 정치의 세계 속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조라고 보이지만, 천지애와 양봉순의 내조는 사뭇 다르다. 천지애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녀의 내조는 사랑이지만, 양봉순의 내조는 안간힘이다. 즉 천지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또 남편이 전폭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처절한 진흙탕 속에서 뒹굴지만, 양봉순은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 한준혁을 향한 사랑의 갈증이 거의 비서 같은 그녀의 삶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코미디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들은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이들의 내조는 비정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치맛바람’이라 부르는 바로 이 비정상적인 내조는 거꾸로 사회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풍자하기 위함이지만.

따라서 양봉순의 내조가 사실은 내조라기보다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천지애의 출연으로 알게된 것처럼, 천지애의 내조 역시 남편 온달수가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에게 흔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온달수의 흔들림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뒤로 접어두고 남편만을 내조하는 천지애의 삶이 가진 허망함을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던 것. 어찌 보면 천지애와 양봉순은 근본적으로 같은 위치에 처해있는 인물들로 볼 수 있다.

남편이 결국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심한 스트레스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양봉순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그녀의 남편을 불러 화해를 시켜주며 나오는 천지애의 눈에 미소와 눈물이 섞이는 것은 그녀가 양봉순과 이제는 어떤 공감의 틀을 갖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런 내조의 진면목을 깨닫는 존재로서 양봉순과 천지애는 겉으로 으르렁대면서도 경쟁자가 아닌 동지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들이 적으로 상정해야 할 인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런 상황 속에 빠뜨린 시스템을 쥐고 있는 인물, 즉 이사부인인 오영숙(나영희)이다.

천지애가 취업전선의 벼랑 끝에서 남편을 위한 내조를 위해 발 벗고 나섰듯이, 또 남편의 퇴출 위기 속에서 양봉순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편을 내조하려 했듯이, 진짜 내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만 등장하기 마련이다. 위기가 지나고 어떤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 내조는 얼굴을 바꿔 치맛바람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내조 또한 자신의 행복한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통해 가족과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기에 허망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따라서 ‘내조의 여왕’을 그리고 있지만 그 여왕의 진정한 행복이 스스로를 내조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지애와 허태준(윤상현), 그리고 온달수와 은소현의 관계가 여전히 아슬아슬한 불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구조가 가진 신데렐라(혹은 남데렐라) 설정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륜적인 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그 자신만의 삶을 표현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불륜이든 아니든 더 중요한 것은 이 코미디가 풍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내조라는 이름으로 줄서기와 로비에 우리네 주부들까지 뛰어들게 만드는 퀸즈푸드라는 이름의 뒤틀린 우리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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