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패밀리가 떴다 (51)
주간 정덕현
그 때 우리는 동해안의 어느 바닷가에 있었다. 도시의 폭염을 피해, 도시의 돈 냄새를 피해, 달아난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잔뜩 찡그린 채 빗줄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텅 빈 백사장 위에 설치된 천막 옆에서 우리는 비에 젖은 생쥐마냥 떨면서 빗물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셨다. 집으로부터 3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외딴 곳에 잘 곳도 없는 우리들에게, 주머니에 마지막으로 남겨진 돈을 톡톡 털어서 마시는 소주 맛이란, 막막함과 설렘이 뒤섞인 기막힌 맛이었다. 그 대책 없는 상황은 오히려 즐거움이었다. 천막 안에서 흘러나오는 쿵쿵 대는 음악에 맞춰 우리는 천막 바깥에서 춤을 추었다. 소주에 취해 빗물과 바닷물에 취해. 자연 속에 적당히 자신을 방치해버린 듯한 그 기분. 그것은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눈을 깜박..
'무한도전'의 기억력 퀴즈, '남자의 자격'의 눈물 버라이어티쇼의 리얼리티에 대한 추구는 어디까지일까.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을 연출해내기 위한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실험은 땀과 눈물에 이어 심지어 기억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남자와 눈물'이라는 미션으로 진행된 '남자의 자격'은 웃음을 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이색적으로 남자들이 눈물을 흘리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남자가 눈물을 흘린다'는 이 기막힌 설정은 그러나 '울고 있어도 웃음이 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무한도전 - 궁밀리어네어'편은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패러디해 퀴즈쇼를 표방했지만 그 핵심은 '인간의 기억력'이란 새로운 영역을 리얼 버라이..
언제부턴가 버라이어티라는 단어 앞에는 '리얼'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에서 표방한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용어는 마치 하나의 장르가 된 것처럼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용어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버라이어티가 아니라 '리얼'이다. 따라서 이 '리얼'이란 수식어는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의 강박으로 자리했다. 토크쇼 앞에도 '리얼'이 붙었고, 하다못해 인터뷰 하나를 하더라도 강박적으로 우리는 '리얼'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된 것은 그간 해왔던 쇼(이 쇼에는 뉴스마저도 포함된다)의 인위적인 부분들에 대한 대중들의 외면 때문이다. 그 인위적인 부분에 출연자들의 홍보성 논란이 덧붙여지면 대중들은 심지어 불쾌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저네들의 홍보를 봐야만 하는 상황은, '..
새로운 아이템보다는 캐릭터의 호감도가 더 큰 문제 지금 '일밤'이 처한 위기 상황은 한때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처했던 그것과 유사하다. '새로운 코너를 계속해서 시도해보고, 형식을 바꿔보기도 하지만 상황은 좀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백약이 무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장수 버라이어티쇼가 왜 갑자기 이런 문제에 봉착한 걸까. 우선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일밤'을 대표할만한 MC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 '일밤'에는 신동엽, 김용만, 탁재훈, 김구라, 신정환, 이혁재가 '퀴즈 프린스'에 투입되었고, 소녀시대의 '공포영화제작소'에는 소녀시대, 유세윤, 조혜련, 김신영이, 또 '우리 결혼했어요'에는 황정음과 김용준 커플을 중심으로 신영일, 오영실, 김..
'1박2일'과 '패떴'은 모두 여행을 컨셉트로 삼고 있기 때문에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접촉에 대한 이 두 프로그램의 방향은 사뭇 다르죠. '1박2일'은 '집으로'편에서 볼 수 있었듯, 현지인들과의 보다 긴밀한 관계를 지향합니다. 반면 '패떴'은 정반대입니다. 도착하는 순간, 그 집 주인분들을 여행보내드리고, 하루를 온전히 자신들만의 세상에서 즐깁니다. 집 주인조차 도착했을 때와 떠날 때 잠깐 만날 지경이니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패떴'이 지금껏 단 한번도 현지인들과 만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음식을 만들어 주민들과 나눈 적도 있고, 지역주민들을 모셔놓고 미니 공연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는 어딘지 인위적인 느낌이 강..
아마추어리즘이 예능의 새 트렌드가 된 사연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이 유행어만큼 작금의 예능 트렌드를 보여주는 게 있을까. ‘개그콘서트’의 종료된 코너 ‘많이 컸네 황회장’에서 황현희가 히트시켰던 이 유행어에는 “알 거 다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러냐”는 핀잔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말이 웃음을 주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실상은 아마추어 같은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현희는 조직의 회장이지만 체신머리 없이 일개 실장과 사소한 말싸움을 하면서 이 말을 내뱉는다. 프로라면 보여주지 않을 속내가 살짝 드러났을 때 터져 나오는 웃음. 아마추어리즘은 이렇게 리얼리티 시대에 예능의 새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너는 내 운명’에서 발연기 논란을 빚었던 박재정이 ‘상상플러스’의 MC로 자리한 사연..
'1박2일', '패떴', '남자의 자격', 그 삼색여행의 묘미 여행은 되는 아이템이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여행이 갖는 메리트는 분명하다. 여행에는 현실에서 탈출한다는 판타지가 있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의외의 사건이 주는 리얼리티가 있으며 때론 현재의 나를 바꿔보기 위한 도전이 있다. 이 판타지와 리얼리티 그리고 도전의 요소는 그대로 작금의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무한도전'의 한 부분에서 파생되어 나온 '1박2일'의 성공은 '패밀리가 떴다', '남자의 자격'으로 그 여행 버라이어티의 범주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1박2일'은 스스로 야생버라이어티를 주창하고 나선 것처럼 '고생하는 여행'을 특징으로 한다. 까나리 액젓과 야외취침을 두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이 이 버라이..
TV 속 남자들의 안간힘, 현실? 판타지! ‘카인과 아벨’에는 대사 한 마디 없이(물론 가끔 회상 신으로 나오긴 하지만), 움직임도 거의 없이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선우(신현준)의 아버지, 이종민 역할을 하고 있는 장용이죠. 연거푸 KBS일일극에 아버지역으로 캐스팅됐을 정도로 그는 우리네 드라마의 아버지상을 대변해온 중견 연기자입니다. 그 드라마 속 아버지(그래서 우리네 마음 속에 아버지로 자리한)가 의식은 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침상에 누워, 아내와 아들의 가시 돋친 저주를 들으면서도 한 마디 항변조차 못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네 TV 속 남자들의 안간힘이 겹치는 건 왜일까요. 지금 TV는 온통 여성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것이 시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