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결합의 실험도 좋지만, 우리 정서는 어쩌나

 

KBS <블러드>에 이어 <오렌지 마말레이드> 그리고 이번에는 MBC <밤을 걷는 선비>. 흡혈귀, 즉 뱀파이어 소재의 드라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다. <블러드>4%(닐슨 코리아) 정도에 시청률에 머물렀고,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지금 현재 2% 대 시청률을 전전하고 있다. 소재의 특성상 시청률은 낮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과 화제도 그리 크지 않다.

 


'밤을 걷는 선비(사진출처:MBC)'

만듦새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가장 큰 건 소재의 낯설음이다. 물론 뱀파이어라는 소재가 대중들에게 낯선 건 아니다. 이미 미드를 통해서나 할리우드 영화를 통해서나 뱀파이어는 하나의 클리셰가 나올 수 있을 만큼 많이 소재로 다뤄졌다. 하지만 중요한 건 우리네 콘텐츠에서다. 우리에게 드라마나 영화에서 뱀파이어는 낯설다. 한때 뱀파이어 붐을 타고 우리나라에서도 <흡혈형사 나도열> 같은 우리 식의 뱀파이어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참패했다.

 

OCN에서 방영한 <뱀파이어 검사>는 비상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시청률도 최고 4%가 넘는 선전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케이블이 가진 특성과 어울리는 면이 있었고, 또한 뱀파이어라는 소재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통해 들여다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완성도 높은 영상과 어우러져 거둔 성과였다.

 

문제는 지상파들이 뱀파이어 소재를 그 플랫폼에 걸맞게 다루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오렌지 마말레이드>에도 살짝 등장했지만 <밤을 걷는 선비> 역시 사극 속의 뱀파이어를 다룬다. 사실 사극이라는 단어와 뱀파이어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밤을 걷는 선비>에서는 흡혈귀라고 소개하면서 그걸 서양에서는 뱀파이어라고 부른다는 지칭까지 굳이 대사에 집어넣는다.

 

이종결합의 실험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실험이 그저 이색적인 볼거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만한 근거가 스토리나 주제의식 속에 담겨져 있지 않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즉 조선시대라는 배경 속에서 뱀파이어가 활동한다는 그 스펙터클적인 요소에 집착한다면 시청자들의 눈길 한 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지속적인 정서적 공감을 가져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특히 사극은 최근 들어 판타지까지 장르적 변용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런 사극들이 성공한 예는 드물다. 사극은 상상력의 틈입이 이제 허용된 공간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상상력은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정서에 맞닿아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대장금>은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지만 그 이야기는 지금 현재의 여성으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일과 성장스토리에 닿아 있어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밤을 걷는 선비>가 다루고 있는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지금 현재의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첫 회를 통해 모든 걸 판단하긴 어렵지만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복수극과 멜로의 틀을 향해 가고 있다. 그 복수와 사랑은 왜 지금 뱀파이어라는 소재까지 사극에 들여서 대중들에게 보여져야 할 것인가. 왜 우리의 괴물들, 이를테면 구미호나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 아니고 뱀파이어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주지 못한다면 사극까지 들어온 뱀파이어 이야기는 단순한 이종결합의 스펙터클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728x90

무수한 경계 위에 선 영화, ‘박쥐’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밟고 있는 지점은 실로 애매모호하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엉뚱하게도 송강호의 성기노출이 논란이 되면서 영화는 마치 에로틱한 어떤 것으로 비춰졌다. 그것은 마치 이안 감독의 ‘색계’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거장이 만들었으니 작품성이 뛰어날 것이고, 그러면서도 무언가 파격적인 성 노출이 스펙타클로 보여지는 그런 영화. 이런 분위기는 실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적인 호기심과 함께 자극적인 호기심까지.

‘박쥐’는 물론 대단히 에로틱한 면모를 가지고 있으나 에로틱한 그 무엇으로만 정의되기는 어렵다. 뱀파이어물이 갖는 에로틱함과 공포스러움을 동시에 껴안고 있으니까. 살갗을 물어  뜯거나 칼날로 그어 피를 내는 장면은 하드고어를 연상시킬 정도로 끔찍하지만, 그 피나는 살을 쭉쭉 소리를 내며 빨아대는 장면은 그 어떤 정사장면 만큼이나 에로틱하다. 영화는 이 두 지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양극단을 공존시켜 나타나는 기묘한 느낌이 주는 쾌감을 선사한다.

‘박쥐’가 주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느낌의 공존은, 어쩌면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 비상하는 새와 어둠 속을 기어다는 쥐의 상반된 이미지를 한 몸에 가진 박쥐, 그 박쥐에서 뽑혀져 나온 인간과 괴물의 이미지를 한 몸에 가진 뱀파이어. 영화 속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이 중간지대에 선 인물이다. 그는 신부라는 인간적인 존재와 종교적인 존재 사이에 서 있는 인물이며, 누군가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신부이면서 동시에 파멸로 끌고 들어가는 흡혈귀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것은 상현이 그려내는 고뇌하는 흡혈귀라는 캐릭터다. 하드고어적인 잔혹함이 넘치면서도 순간 유머가 번뜩이는 것은 바로 이 상현의 인간적인 면모 덕분이다. 상현은 신부처럼 삶과 구원에 대해 고민하면서 동시에 인간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 뇌사상태에 빠진 자의 피를 마치 빨대로 뽑아내듯 빼먹으면서 사실 그 사람은 본래부터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눠주는 걸 즐거워했다고 변명을 해대고, 자살을 하려는 사람의 피를 빨아주면서(?) 그것이 그 사람을 편히 가게 해준다고 말하는 장면은 우습지만 인간의 실존을 담아낸다.

이 영화는 밤과 낮 사이에서, 그 타락과 구원 사이에서, 살육과 생존 사이에서, 물과 햇볕 사이에서, 육욕과 사랑 사이에서 그 수많은 경계의 지점에서 딜레마에 빠져버린 인물들을 그린다. 자살은 상현이 신부로서 말했던 것처럼 가장 극악한 죄이지만, 이 딜레마에 빠져버린 인물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단의 딜레마를 한 몸에 지니고 있는 건 단지 영화 속 흡혈귀의 실존만은 아닐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수많은 상반된 이미지를 한 프레임 안에 녹여내는 그 매력적인 연출은, 송강호, 김옥빈의 빛나는 연기로 형상화된다. 송강호는 가장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면서도 구원을 향한 진지한 몸부림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을 특유의 허무와 유머가 뒤섞인 얼굴로 연기해낸다. 상현이란 인물은 송강호를 만나 ‘넘버3’같은 비속함에서부터 ‘밀양’의 진중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엉뚱함을 모두 표현해낸다. 김옥빈은 에로틱함의 극단에서 섬뜩함을 뽑아내는 그녀 영화 인생 최고의 연기를 해낸다.

이 영화에 쏟아지는 양극단의 평가는 바로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어느 한 지점에 머물지 않고 끝없이 경계 위에 서려는 그 안간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에로틱한 그 무엇을 기대하고 간 관객이라면 그 하드고어적 영상이 충격적일 것이고, 뭔가 진지한 성찰을 꿈꾸고 간 관객이라면 순간순간 보여지는 위악적인 이미지들(성찰을 거부하는 듯한)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렇게 장르와 인물과 이미지를 내파시켜 하나로 혼융하는 면모에서 박찬욱만의 힘이 느껴진다. 그것은 기대의 배반이라기보다는 기대 그 이상의 것을 늘 보여주는 그런 힘이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