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 본문

옛글들/생활의 단상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

D.H.Jung 2009. 10. 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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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떠올리는 별자리 이야기

당신이 가끔 고개를 쳐들고 별을 보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가.
지금도 저기 당신의 별은 빛나고 있건만,
당신은 지금 왜 고개를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 별을 보던 사람들이 있어 우리는 꿈꿀 수 있었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을.

어린 시절, 바라보았던 그 별
매포 외할머니댁을 찾아가는 길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버스가 당도하는 시각은 늘 어둠이 내린 한밤중이었고, 외할머니댁으로 가는 나룻배를 타려면 빛 한 자락 찾기 힘든 캄캄한 길을 걸어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어머니는 어떻게 걸었던 것일까. 어린 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면서도 그게 궁금했다. 배 건너 와요- 어둠만큼 깊은 정적 속에 어머니가 소리를 치면 한참 후에 저편에서 삐걱삐걱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도 모를 어둠 속에서 어디론가 흘러가는 나룻배의 움직임을 강물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겨우 알게 될 즈음, 문득 쳐다본 하늘 위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빛 한 자락 없는 두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반짝반짝 빛나며 무언가 이야기를 건네던 그 별들은 지금도 저 하늘에서 빛나고 있을까.

물론 그 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지만, 이제 도시의 빛에 멀어버린 눈은 그 별을 바라보지 못한다. 별들은 분명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고, 지금도 건네고 있지만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어머니가 조곤조곤 들려주시던 하늘의 별자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어둠 속에 갇혀 두려워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꿈으로 채워주곤 했다. 그 때 알았다. 이야기는 바로 꿈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선덕여왕'의 별자리가 상기시킨 것
'선덕여왕'이라는 사극이 끊임없이 그 때의 그 별자리를 상기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덕만(이요원)이 태어날 때 화두처럼 던져진 "북두칠성의 개양성이 둘로 갈라져 여덟이 되는 날, 미실을 대적할 자가 오리라"는 예언은 바로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미실(고현정)과 덕만이 천문을 사이에 두고 권력의 대결구도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이 별자리의 이야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고 있었다. 드라마가 끝날 때, 인물의 정지된 화면 위로 반짝반짝 빛나며 별자리들이 드리워지는 엔딩장면은 오래도록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별자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별자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셨던 것처럼 이야기일 뿐이다. 하늘의 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별들은 그저 그렇게 흩어져 있는 것일 뿐,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않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머니처럼 그 별을 보고 이야기를 생각하는 사람뿐이다. 아무 의미 없는 것들에 의미를 부여해 어떤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다. 아주 오래 전, 하늘의 별빛조차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 두려움의 하늘을 아름다운 이야기가 흐르는 하늘로 변모시킨 이야기꾼은 사실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 이야기는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리고 사라져버리는 덧없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꾸었을 테니까. 그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꿈이라는 것을 꿀 수 있었을 테니까. 이야기는 실로 꿈의 다른 말이다.

'선덕여왕'은 그 별자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환상을 내세웠다면, 덕만은 희망을 내세웠다. 환상은 실체를 모르면서 이야기를 믿는 것이라면, 희망은 실체를 알면서도 이야기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의 별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 별자리 이야기들을 통해 어떤 삶의 계획들, 덕목들, 꿈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야기는 사람을 꿈꾸게 하고 그 꿈을 실체로 만들어주는 힘을 갖고 있다.

당신의 별자리,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별자리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들이야말로 저 하늘의 별처럼 그저 흩어져 무엇이 될 지도 모르고 숨 쉬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 존재들이 어떻게 삶의 목표를 만들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어린 시절 우리는 인생이라는 커다란 빈 도화지를 하나씩 받았고, 그 위에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이야기들을 써나갔던 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의 별자리 이야기다. 당신 스스로 꿈꾸었던 인생이 이야기처럼 그 속에는 들어 있었고, 그 이야기가 일러주는 대로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빛 한 줄기 없어 어디가 앞인지 어디가 뒤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 암흑의 길 위를 한 발작씩 걸어왔다. 두려움조차 없이. 어떻게? 이야기가 당신의 손을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힘겨워질 때, 고개 숙인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일이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그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도시의 불빛에 멀어버린 눈을, 도시의 소음에 먹어버린 귀를 찾기 위해 한참을 달려 인적 드문 어딘가로 떠나도 좋을 것이다. 그 곳에 서서 어린 시절부터 늘 거기서 이야기의 빛을 쏟아내던 그 별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 그 상상의 힘을 복원하는 것. 당신이 힘겨운 것은 현실이 주는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어느새 상상하기를 멈춰버린 당신 자신 때문이 아닐까. 그러니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별을 보자. 적어도 하늘에 붙어 있는 별은 숙여진 당신의 고개를 꼿꼿이 쳐들게 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