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무한도전'과 '1박2일' ㅣ 감동만큼 큰 재미는 없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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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과 '1박2일' ㅣ 감동만큼 큰 재미는 없다

D.H.Jung 2011. 1. 17.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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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은 이제 더이상 오락프로그램이라는 지칭을 쓰기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웃음을 주는 것이 예능이라는 생각에서 이제는 눈물을 주는 것도, 감동을 주는 것도, 때로는 어떤 짜릿한 스릴과 미스테리한 재미를 주는 것도 예능 프로그램의 몫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은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서로 다른 삶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의사로 분한 박명수와 투병하는 환우 아이 사이에 훈훈한 정을 그려냈고, '1박2일'은 외국인근로자 친구들이 가족들과 상봉하는 장면을 통해 그 무엇보다 우리네 가슴을 울리는 끈끈한 가족애를 그려냈습니다.

'런닝맨' 같은 프로그램이 액션 장르의 서스펜스와 멜로를 예능으로 끌어들이고, '남자의 자격'이 아저씨들의 훈훈한 이야기를 전해주며, '뜨거운 형제들'이 역할 도전이라는 새로운 스토리를 예능으로 풀어내면서 우리에게 전하는 것은 이제 그저 웃음만이 아닙니다. 그 실제 현장 속을 바라보다 보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그런 순간이 오기 마련이죠. 예능은 지금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서 현실의 이야기 속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나영석PD는 대중들이 이제는 스토리를 더 즐기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아주 정확하게 현 예능의 지점을 말해줍니다. 리얼리티 영상이 대세가 되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흩어진 리얼 영상들이 전하는 스토리가 무엇이냐는 것이기 때문이죠. 거기에는 멜로도 있고 가족드라마도 있고 액션도 있고 코미디도 있습니다. 코미디는 이제 한 부분일 뿐입니다.

특히 이들 스토리 중에서 감동만한 재미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은 감동이라는 스토리의 포인트를 오히려 반전으로 만듭니다. '1박2일'의 외국인노동자 특집에서 우리가 먼저 떠올린 것은 이전에 했던 글로벌 특집의 잔상이었을 것입니다. 그 유쾌한 만남이 주었던 훈훈한 이야기를 어찌 잊을까요.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라는 상황은 그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들과는 완전히 다르죠. 그러니 스토리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방가방가' 같은 영화를 통해 알고 있는 것처럼, 외국인노동자의 삶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죠. 심지어 우리는 이들이 받는 차별의 문제를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박2일'이 선택한 방식은 이런 차별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로 끌어안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가족의 눈물 앞에 감동받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자신과 다른 타인을 적대적으로 보는 이들은 그 타인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가족이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1박2일'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무한도전'의 박명수와 환우 여아와의 풋풋한 정은 그것이 박명수였기에 더욱 빛났다고 생각합니다. 버럭 캐릭터이면서 어딘지 고개숙인 아버지 캐릭터인 박명수는 이 두 상반된 성격이 합쳐져 환우와의 만남에서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흐르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었죠. 오히려 약간의 거리를 둠으로써 보는 이를 더 몰입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1박2일'이 보여준 강호동의 눈물은 말 그대로 메가 펀치였습니다.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시베리아 야생 수컷 호랑이의 눈물이라니.

'무한도전'과 '1박2일'이 보여준 것처럼 이제 예능은 스토리를 추구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예능의 재미는 감동만한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죠. 감동과 공감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전해지는 것이라는 걸. 두 프로그램이 준 감동은 거기 아름다운 환우 여아의 웃음과 외국인노동자 가족들의 진심어린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진정성있는 감동을 예능이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리얼 예능이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진정성있는 감동 스토리는 스토리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현실도 바꿔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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