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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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점수는요... 합격! 두근두근 쿵쿵!

D.H.Jung 2011. 3. 2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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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되셨습니다." 이처럼 가슴을 쿵 치는 말이 있을까.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은 뒤로 한 채 소설을 쓰고 있을 때, 주변 성화에 못 이겨 카피라이터에 응모한 적이 있다. 1명 뽑는데 무려 5백여 명이 지원을 했던 터라, 과연 될까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서류심사와 1차 시험을 통과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실 카피라이터에 대해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애초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지만, 그 놈의 '합격 통보'를 받으니 마음이 달라졌다. 이거 한 번 해봐? 그런데 2차로 면접을 보러갈 때 마음은 또 달랐다. 차라리 떨어지고 말걸, 왜 1차는 통과해서 이 고생인가 했다. 시험 통과한 게 후회될 정도로 나는 떨렸다. 한 사람을 앉혀놓고 열 명 정도 되는 임원이 스무 개의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가운데 아마도 회장인 듯한 사람이 내게 물었다. "자네는 왜 카피라이터가 되려 하나?" 머리가 하얘졌다. 이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정신없이 이런 저런 궁색한 답변을 이어가다가 그 지옥 같은 면접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기대감을 갖고 발표일에 전화를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불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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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슈퍼스타K2'나 '위대한 탄생'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나는 그 때 전화기 저편에서 무감정한 목소리로 들려왔던 "불합격되셨습니다"의 환청이 들린다. 물론 이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영국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나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끌어온 것이지만, 오히려 이 원조를 능가하는 우리만의 정서가 그 속에는 들어있다.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장사진을 이룬 참가자들의 행렬은 대학입시나 취업전선을 그대로 재연하고, 이승철이 "제 점수는요"하고 말할 때마다 입시교육 속에서 매달 받게 되던 그 점수를 떠올리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일 게다. 우리처럼 경쟁적인 사회에서 성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게 마련인 그 경험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속에는 녹아들어 있다. 여기에 애초부터 뽑힐 인간들은 정해져 있다는 식의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허탈감이 섞이니, 프로그램은 폭발력을 얻는다. 허각처럼 학벌 없고 오로지 노래를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했어도 '슈퍼스타K'가 되지 않는가. 불공정한 현실과 공정한 오디션의 절묘한 판타지!

하지만 이건 말 그대로 판타지다. 그들은 그 경쟁을 뚫고 올라와 결국 기획사와 계약을 한다. 다시 연습하고 살인적인 스케줄을 뛰어다니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입에 허탈감을 느낄 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판타지처럼 제공되는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쉽지 않은 일이다.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면접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들이 일방적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들을 판단해야 되는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잘못 계약하면 시간만 날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합격!'은 쌍방이 내리는 것이다. 물론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기 어렵지만, 그래도 마음만큼은 이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그래서 면접을 보러가는 마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진정한 설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근두근 쿵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