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연애시대> 균형 잡힌 와인처럼 맛있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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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균형 잡힌 와인처럼 맛있다

D.H.Jung 2006. 4. 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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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대> 그 균형잡힌 맛

와인은 신맛, 단맛, 쓴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맛있다고 한다. 드라마를 이 맛의 삼각형에 비유하자면, 눈물이 핑 도는 신맛과 웃음이 절로 나는 단맛 그리고 씁쓸하지만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게되는 쓴맛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어느 한쪽의 맛에 치우친 와인이 좋지 않은 것처럼, 신맛이 강한 드라마는 신파가 될 가능성이 놓고, 단맛만 강한 드라마는 코미디가 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쓴맛만 강하다면 차라리 교양프로그램을 보는 편이 낫다. 하지만 이 삼박자를 잘 갖춘 맛을 지닌 드라마는 시청자를 웃기면서 울리고, 울리면서 웃기며, 그 속에서 어떤 삶의 의미를 찾게 해준다. 그런 의미에서 4월3일 첫선을 보인 <연애시대>는 그 자체로 균형 잡힌 와인 같은 드라마이면서, 월화 드라마 삼각 구도라는 더 큰 와인의 균형된 맛을 만들어준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첫 맛은 달콤하다
<연애시대>는 ‘이혼 후에 시작된 연애’라는 조금은 거창한 주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전혀 무게를 잡지 않는다. 호텔에서 결혼기념일이면 보내주는 할인권 때문에 이혼했지만 그 스테이크 맛을 잊지 못해 매년 만나는 감우성과 손예진. “결혼기념일마다 만나는 게 이상하면 이혼기념일에 만나는 건 어떠냐”는 식의 이혼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대사들이 오고간다. 이렇게 되자 이혼이라는 무거운 상황은 이제 재미있는 상황으로 변모된다. 시청자들은 이혼한 후에도 저렇게 만나 툭탁대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면서 어떤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 기대는 손예진이 아무래도 감정이 남았다면서 다시 만나자고 얘기하려던 순간까지 이어진다. 킹카로 변신한 이진욱(극중 현중 역)이 나타나면서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신맛은 상황과 연기 속에 녹아있다
이 달콤한 맛은 그러나 그 속에 신맛을 담고 있다. 아무리 이혼이라는 상황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도 상황은 이혼인 것이다. 그 상황은 시청자들의 마음 속에 벌써부터 신맛을 깔아놓는다. 여기에 가세하는 것이 능구렁이 같은 북마스터 역을 진짜처럼 실감나게 연기하는 감우성과 풋풋하면서도 괄괄한 손예진의 연기이다. 소위 ‘물이 올랐다’는 표현을 들을 만한 연기를 보여주는 이들의 성격은 겉으로 드러난 달콤함 속에 아픔을 숨기고 있다. 갖은 세파를 다 겪은 듯한 능구렁이와 괄괄함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상처와 그 상처로 인한 마모를 겪어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자기 보호본능이다. 드라마의 어느 순간에 가서 그들은 이 능구렁이와 괄괄함으로 감춰졌던 연애시절의 모습을 보여줄 지도 모른다. 이 드라마는 ‘이혼시대’가 아닌 ‘연애시대’인 것이다.

쓴맛은 시간의 흐름을 잡아내는 연출에 있다
한지승 감독은 역시나 영상을 다루는데 능통하다. 한 편의 영상은 고스란히 시간의 흐름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속에는 영화적인 관습이 존재하는데, 한 감독은 그 관습을 적절히 잘 이용하고 있다. 드라마의 흐름 중간중간 등장인물의 상상이 영상으로 잠깐 보여지다 현재로 돌아가곤 하는 관습은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감우성은 늘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손예진이 세워놓은 자전거를 본다. 그들이 가는 단골카페는 그들의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고, 보여질 때마다 시간의 중첩이 일어나면서 추억의 공간이 된다. 감우성과 손예진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 만난다. 물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황은 계속 변한다. 따라서 그 시간의 흐름 역시 그들 사이의 수많은 감정들을 쌓아놓게 된다.
이것은 마치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나 연애를 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처음 아무런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던 두 사람은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열고 연애감정을 갖게 되고 설레면서 어떨 때는 아픔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함께 하면서 연애는 하나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된다. <연애시대>가 보여주는 삶의 쓴맛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매몰되던 부부가 이혼 후에야 비로소 연애감정을 찾는다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 변화의 아이러니 속에 녹아있다.

드라마 경쟁의 삼각형
<연애시대>가 시작되면서 본격적인 드라마 삼국지가 펼쳐진다는 제목의 기사들이 인터넷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러면서 시청률이라는 잣대로 어느 드라마는 이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어느 드라마는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식의 전과를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하나의 월화 드라마라는 와인으로 볼 수는 없는 걸까? 요즘 드라마들은 확실히 질적인 성장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달라졌다. 과거 같은 관습적인 드라마보다는 좀더 실험적인 시도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용광로가 바로 월화 드라마인 것 같다.
이들 각각의 웰 메이드 드라마들은 물론 단맛과 신맛, 쓴맛이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분명한 하나씩의 맛을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의 단맛과 <봄의 왈츠>의 신맛, 여기에 <연애시대>의 쓴맛이 곁들여지면서 요즘 월화드라마라는 와인은 비로소 제 맛을 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