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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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대중문화,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D.H.Jung 2014. 1. 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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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들 하십니까. 2013년의 끝자락에 터져 나온 이 한 마디는 평범한 인사말을 사회적 화두로 만들었다. 이 질문에 대해 누군가는 자신만 안녕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었고, 누군가는 안녕하다 살아온 삶이 사실은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누군가는 안녕하지만 누군가는 결코 안녕하지 못한 삶이 왜 벌어지고 있는가에 대한 간단하고도 명료한 질문.

 

하지만 이 질문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미 2013년 대중들이 저네들의 목소리를 문화에 담아 이야기했을 때부터 변화의 징후는 포착되었다. 올해 초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이른바 갑을정서는 대중문화 곳곳에서 콘텐츠로 피어났다. 갑을정서는 드라마 <직장의 신>의 미스 김이라는 캐릭터에 열광하게 만들었고, <무한도전> 무한상사편에서 결국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정대리(정준하)의 눈물어린 <레미제라블> 패러디로 가슴 먹먹하게 했으며, <개그콘서트> ‘갑을컴퍼니의 술 취한 사장과 상무의 말 한 마디에 어찌할 줄 모르는 샐러리맨의 비애를 풍자하게 했다.

대중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도한 사모님의 수상한 외출에 분노했고, <현장21>이 끄집어낸 연예병사의 근무 태만에 격렬히 항의했다. 가진 자들이 잘못을 저지르고도 안녕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대중들은 결코 안녕하지 못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과거라면 각각의 의견으로 흩어져버려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대중들이 SNS 같은 네트워크로 뭉쳐지면서 생겨난 변화다. ‘안녕들 하십니까대자보는 이 SNS 네트워크 성격과 아날로그 대자보가 합쳐진 형태가 아닌가. 댓글 형태로 연결된 대자보는 실명과 손 글씨가 가진 진정성이 덧붙여지면서 대중들을 더욱 결집시켰다.

 

대중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도대체 안녕하지 못한 현실이 무엇 때문에 벌어지는가 하는 점들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이것을 꼬리 칸과 머리 칸으로 칸칸이 나뉘어진 계급 시스템이 자기반성 없이 무한궤도를 질주하기만 하는 그 부조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더 테러 라이브>는 정치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상대적 불평등에 눈감고 있는 것을 테러라는 일종의 상황극을 통해 보여주었다. 최근 개봉한 두 영화, <집으로 가는 길><변호인>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국민들이 안녕하지 못할 때, 과연 국가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대중문화는 대중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대중들이 겪는 현실이 그 안에 녹아 있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 점에서 올 한 해 대중문화가 일관되게 보았던 현실이 있다. 그것은 안녕하지 못한 삶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고, 국가가 보듬고 사회가 토닥여야 할 그 삶들이 몇 프로도 되지 않는 안녕한 삶들에 의해 배제되고 소모되고 있다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아니고 소수를 위해 다수의 희생을 담보하는 사회라면 그 미래에 희망을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작금의 대중문화가 그 다수의 희생하는 대중들의 정서를 연료로 활활 타오르는 건 안타까운 현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현실을 모두 보여준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 단순한 질문은 대중문화가 늘 대중들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2013년 대중문화가 보여준 안녕하지 못한현실. 그렇다면 2014년은 어떨까. 우리는 과연 모두가 안녕한 현실을 마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