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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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선택, 하지만 아이는...

D.H.Jung 2014. 3. 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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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경 드라마, 하지만 육아 예능 그 의미

 

적어도 우리네 드라마 상에서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것 같다. 흔하디흔한 가족드라마들이 파경을 다루고 있다. 김수현 작가의 <세 번 결혼하는 여자>는 이미 한 번 결혼에 실패해지만 재혼한 여자가 겪는 또 한 번의 파경에 이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풍겨나듯이 이 드라마에서 결혼한 이들은 하나 같이 불행하다. 재혼한 여자는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뻔뻔해질 수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재혼한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보듬어주기는커녕 아이를 심지어 질시하는 미성숙한 인물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결국 김수현 작가가 하려는 얘기는 타인과 함께 살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을 기만하고 결혼한 이들은 예정된 파행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즉 결혼은 반드시 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대단히 신중히 선택해야 할 것이라는 전언.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에 세 번 결혼할 여자의 언니는 아직까지 미혼인데 남자친구와 결혼하기보다는 동거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로 등장하는 싱글턴(혼자 사는 삶)을 표징하는 캐릭터처럼 보이는데 주목할 점은 그녀 역시 그다지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결혼해서 누군가와 같이 살거나, 아니면 미혼으로 혼자 살거나 그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행복과 불행을 가름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종영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는 드라마는 파경의 위기에 놓인 부부들의 이야기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었다. 이 부부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서로 주고받지만 흔히 드라마에서 당연한 선택지로 내세워지던 이혼이 실제로는 상당히 많은 변수들에 의해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아이의 문제가 그렇고, 양가 가족들의 문제가 그렇다. 때로는 그렇게 한 발 물러서고 나서 오히려 상대방이 이해되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한다. 이 드라마 역시 결혼이 남녀 간의 사랑을 묶어내는 틀로서 얼마나 불안한 제도인가를 잘 드러낸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제시되는 상황은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의 저자 에릭 크라이넨버그는 여성들의 지위가 향상되면서 점점 결혼의 틀로 들어가기 보다는 일하며 혼자 살아가는 삶이 늘고 있고, 통신혁명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커뮤니티를 통한 소속감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대도시의 형성은 전통적인 가족주의를 해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삶을 만들어내고 있고, 무엇보다 혁명적인 수명연장은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는 삶을 인생에서 누구나 겪게 만든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1인 가구 비율이 네 집 건너 한 집에 육박하고 있으니 싱글턴의 사회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식샤를 합시다> 같은 드라마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은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 방송 콘텐츠들이다. 이 라이프 스타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결혼은 사실상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결혼이 제 아무리 선택이 된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아이의 문제다. 남자든 여자든 그 혼자 사는 삶에 만족한다고 해도 본능적으로 인간은 아이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종족 보존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TV만 켜면 여기 저기 아이들이 나오는 육아 예능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점점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들어오고 있는 느낌. 그것이 왠지 결혼이 선택이 되고 싱글턴의 라이프 스타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와 무관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왜일까. 우리는 어쩌면 책임 없는 과실로서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그것이 가상의 행복이라고 할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