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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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생활의 단상

주부들의 살림, 태안을 살림

D.H.Jung 2008. 1. 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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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TV를 보다 문득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목도하고는 기분이 영 안 좋았다. 화면을 가득 메운 기름유출사고로 태안에 밀어닥친 절망감은 괜한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왜 분노하게 된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것은 마치 신성한 몸을 더럽힌 파렴치범들의 행위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어머니 같은 바다는 문명이라는 손에 잔인하게 유린되었다. 한동안 생명을 잉태할 수 없을 만큼.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연일 대선정국에 대한 방송만이 전파를 탔다. 누가 몇 프로 차이로 앞서고 있다는 둥, 누가 무슨 발표를 했다는 둥, 누가 또 거짓말을 했다는 둥, 그렇고 그런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쳐다보면서, 도대체 왜 이 심각한 사항에 대해서는 이리도 인색한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군가는 이런 얘기도 했다. 한 삼 일만 치우면 깨끗해진다고. 삼 일? 삼 년이 지나도 복구가 될까 말까한 일이다.

그러던 중, TV에서 태안의 상황을 그래도 정확하게 짚어준 것은 (놀랍게도) 뉴스가 아니라 ‘라인업’이라는 버라이어티쇼 프로그램이었다. 개그맨들이 등장해 한참 사람들을 웃겨야할 상황에 ‘라인업’은 한 시간 동안 침통한 얼굴의 개그맨들을 보여주었다. 태안의 상황에 넋을 잃은 것은 개그맨들뿐만이 아니었다. 그 프로그램을 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후 ‘추적60분’에서 이 상황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는데 카메라맨들을 향해서 주민들은 고함을 쳤다. “우리 이젠 다 죽게 생겼는데 도대체 정치인들은 뭐하는 거냐구!” 그 말에 가슴이 찡했다.

그 즈음 신문에 감동적인 기사 하나가 눈에 띄었다. 태안으로 달려간 아줌마들이 아줌마 파워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표현대로 쓰자면 이렇다. ‘헌 옷가지로 바위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는 모습이 마치 방을 닦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자갈에 묻은 기름을 닦을 때도 설거지하는 것처럼 손놀림이 빨랐다.’ 놀라운 표현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살림하는 자들의 힘이 아닌가.

전국 각지의 새마을 부녀회원 1000여 명은 이곳에 모여 10여 곳에 배치됐고, 아줌마들은 기름닦기를 시작하면서 집에서 살림을 한 경험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냈다고 한다. ‘경기도 양평에서 온 신한이(55)씨는 “TV로 보니 천이나 흡착포로 바위 틈새에 낀 기름띠를 닦아내던데 이런 방법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면서 “다음에 올 때는 부침개를 뒤집는 뒤집개 같은 것을 가져오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주부의 파워는 여기서만 머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저마다 태안의 주민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면서 이들을 돕기 위해 피해를 보지 않은 지역에서 나온 수산물 사주기 운동까지 펼칠 계획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살림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한다. 마치 사회적으로 특별한 직업이 없어 가정에 눌러 앉게된 자들이 하는 그런 허드렛일로 치부한다. 살림하는 주부들을 보는 시선 또한 그렇다. 쓸데없이 집에서만 생활하는 자로 취급하거나, 괜히 모여 수다만 떨면서 뭘 살까 고민이나 하는 소비꾼들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살림이란 말 그래도 ‘살린다’는 뜻이다. 무엇을? 가만 놔두면 죽게되는 것들을.

그러니 살리는 사람인 주부는 창조적인 직업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집이란 하루만 가만 놔두어도 죽은 사람의 공간으로 변모하는 것이 다반사다. 사람이란 소비하는 동물이고 그것을 모두 집이 받아내는 상황에서 온전할 수 있는 게 어디 있을까. 살림하는 자들은 바로 이 죽어 가는 것들을 살리는 창조자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들의 정신 속에 살림의 정신이 고스란히 박혀 있다는 점이다.

주부들의 살림이 태안을 살리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네들의 생명력이 죽어가는 바다를 살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꼭 그것이 주부가 아니더라도 태안에서 살림을 행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주부가 가진 살림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이제는 우습게 보지 말지어다. 주부들의 살림, 그 숭고한 정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