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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생활의 단상

야구장생각

D.H.Jung 2005. 9. 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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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장에 가본 지 정말 오래됐다.
아니 경기장이란 데를 가본 게 오래된 거 같다.
TV 속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버린 거 아닐까.

그러다 지난 한국시리즈 야구 티켓이 생겨서 딸내미랑 와이프 데리고
오랜만에 야구장에 갔었다.
야구는 재미없었다.
그런데 야구장은 참 재미있었다.
거기 있는 사람들, 공 하나에 환호하고 야유하고...
아마도 책상머리에서 골치깨나 썩였을 양복쟁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커다란 비닐봉지에 구멍을 뚫어 입고서 춤을 췄었다.
딸이 그걸 보고 이해할 수 없어하던 표정이 기억난다.

"아빠 저 사람 왜 저래?"
"좋아서 그러지..."

차마 그 양복쟁이의 춤 속에 숨어있을 삶의 무게감 같은 걸 얘기할 수는 없었다.

공은 때리면 날아가고 바닥에 닿으면 튀어 오른다.
던지는 방향으로 곧바로 흔들림도 없이 날아간다.
방해물이 생기면 그 부딪친만큼의 힘으로 되튀어나간다.

아마도 그 양복쟁이는 그 공의 가벼움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 공을 바라보며
이제는 상사의 어떤 지청구에도 물먹은 솜처럼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자신의 몸 속에서도
그런 가벼움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을 거다.

다른 스포츠도 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야구는 더 그렇다.
그래서 가끔 공터에서 나이든 아저씨가 글러브를 끼고 공을 던지고 받는 걸 보면
그 아저씨들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나도 옛날에는 내 손보다 몇 배는 큰 글러브 끼고 공 던지고 받곤 했었는데..
그 땐 참 다른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공만 쳐다봐도 재미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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