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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땅의 2등들에게 보내는 박수
    옛글들/생활의 단상 2008. 8. 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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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전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공연. 인순이가 무대 위에 올랐을 때, 이미 객석의 선수들의 눈은 젖어있었다. 이제 인순이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그녀의 노래, ‘거위의 꿈’은 온 선수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메달을 따고 못따고가 뭐가 중요할까. 그 순간 선수들의 가슴 속에는 똑같은 공감의 울림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끝없이 날갯짓을 해온 자신에 대해 스스로가 쳐주는 아낌없는 박수였다.

    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단연 금메달. 하지만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해서 그들의 선전이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상 올림픽이라는 국가적인 이벤트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를 잃게 되는 격이다. 올림픽의 금메달보다 값진 것들은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이며, 그림자에서 빛을 향해 걸어나왔다는 그 자체이자, 그 과정에서 보여준 자신의 한계와의 싸움에서의 승리이다. 올림픽의 진짜 메시지는 승리하기 위해 치르는 전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 모두 같은 한계와 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피어나는 평화다.

    성공보다 아름다운 실패, 이배영의 역도
    경기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중국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이 출전했을 때는 환호를 질렀지만 다른 나라 선수들이 출전하면 침묵으로 일관했다. 162센티미터의 작은 키에 몸무게 72킬로그램의 적은 체구의 우리나라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작은 몸 앞에는 자기 몸무게의 두 배가 훨씬 넘는 184킬로그램의 역기가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첫 번째 시도에서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을 겪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2차 시도에서 186킬로그램을 신청했지만 역시 실패. 3차 시기 역시 실패할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경기장에 올라 환한 미소까지 지어 보인 그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결국 앞으로 넘어져버렸다. 하지만 끝내 역기를 놓지는 않았다. 그 순간, 경기장 분위기는 돌변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중국 관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배영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의 또 다른 영웅으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림자에서 빛으로 나온 왕기춘
    늘 1인자의 빛에 가려 그림자로 지내온 유도선수가 있다. 남자 유도에 있어서 그랜드슬럼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의 훈련파트너였던 왕기춘이 그 주인공이다. 2006년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왕기춘은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 이원희의 훈련파트너로 뽑혀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이원희가 왕기춘을 상대로 메치기를 연습하면서 세계 무대를 휩쓸 때, 왕기춘은 이원희의 메치기를 고스란히 받으며 하나하나 기술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이원희를 누르고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한판승의 사나이’를 이긴 실력이니 그 기대가 오죽했을까. 하지만 왕기춘은 경기 도중 늑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는 다친 몸을 이끌고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까지 올랐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결국 은메달에 그친 그는 눈물을 흘렸다. 누구보다 미안한 건 이원희 선수였을 것이다.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 부담감을 안고 그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거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현희
    4년에 거의 한 번 정도 보는 경기들이 있다. 올림픽이나 되어야 보게 되는 경기들. 그 중에 아마도 펜싱은 그 4년에 4년을 더해서 겨우 보게된 종목이 아니었나싶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김영호 선수가 금메달을 딴 이후 우리는 8년 간 이 종목에 무관심했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녀 검객, 남현희를 통해 펜싱의 매력을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154센티미터의 키에 45킬로그램의 작은 체구로 키 크고 팔이 긴 서양선수들과 싸우는 모습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경기를 연상케 했다. 체구의 불리함을 그녀는 빠른 발놀림으로 극복하면서 한 박자 빠른 공격과 스피드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녀는 아깝게 결승에서 5-6으로 졌지만 세계랭킹 1위인 이탈리아의 베찰리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접전을 벌였다. 서양인들로만 가득했던 시상식대에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가 서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올림픽의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어찌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보다 값진 것이 이들의 이야기뿐일까.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로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따고 200미터에 출전해 자신의 우상인 마이클 펠프스와 대결을 벌여 은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 여성으로서 몇 번씩이나 포기하고 싶었던 마음을 다잡고 세계 그 누구와의 대결이 아닌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역도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장미란 선수, 중국이라는 불리한 조건과 비가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아 넣은 우리네 양궁 삼총사들... 아마도 올림픽에 출전한 거의 모든 선수들이 하나씩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은 세상을 고스란히 반영하듯 지나친 경쟁으로만 달려가는 듯 하다. 중국의 과도한 승부집착은 많은 경기에서의 판정의혹을 불러일으켜 심지어 레슬링 경기에서는 메달을 반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지나친 애국심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잘못된 응원전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우리네 TV들도 금메달에 집착한 나머지 은메달에 그친 선수들에게 무심한 방영을 했고, 몇몇 네티즌들은 그 선수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욕설에 가까운 글들로 공격했다. 뒤늦게 자성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만 이러한 양상들은 다분히 작금의 경쟁사회를 보는 것 같은 씁쓸함을 전해준다.

    역도의 이배영 선수는 ‘단박인터뷰’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이잖아요. 금메달 전쟁. 하지만 그건 올림픽 정신이 아니에요. 올림픽은 평화거든요.”
    그렇다. 올림픽이 전하는 메시지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진 상대선수를 격려해주는 모습, 자신의 한계를 이겨내려는 모습. 이런 것들이 추구하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겨내려는 몸부림이다. 올림픽이든 아니면 사회에서든 최선을 다한 모든 이 땅의 2등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쳐줘야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이 글은 한국원자력연구원 (http://www.kaeri.re.kr/) 사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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