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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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좋아해’, 7080을 추억하다

D.H.Jung 2008. 8. 28.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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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진짜 좋아해’, 두시간 반짜리 추억여행

불이 꺼지고 부분 조명이 떨어지는 곳에 한 연사가 등장하더니 7,80년대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고서는 난데없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작한다. 모두 기립! 하는 그 소리에 관객들은 저마다 킥킥대며 일어나 태극기를 바라본다. 그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젊은 관객들은 이 진풍경이 신기하기만 한 모양. 앉은 채 이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집단적인 동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의 시작은 이처럼 보다 적극적인 관객들의 동의를 요구한다. 저녁 6시가 되면 애국가가 흘러나오며 모든 국민이 멈춰 서야만 하고, 극장에 가서도 영화를 보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 애국가에 대한 예의를 표해야하던 그 옛날의 국민의례란 지금 이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웃음이 터질 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일 것이다. 그것은 70년대 개발독재를 살아왔던 중장년층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중장년들을 위한 헌사
하지만 이미 그 어두운 시대의 터널을 지나온 자들의 여유랄까. ‘진짜 진짜 좋아해’의 도입부분을 차지하는 국민의례조차 이제는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어버렸다. 억압의 기억조차 이러할진대 그 억압 속에서 숨통을 틔게 해주었던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들이 오죽할까. 새마을운동이다, 수출목표 달성이다 하며 쉴 새 없이 살아가던 당대의 일꾼들, 지금의 중장년층들에게 당시 뮤지컬이란 호사 중에 호사였을 터. 그네들이 향유했던 문화의 기억은 오히려 저자거리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유행가나, 심각하지 않고 편안하게 볼 수 있던 청춘영화 한 편이 더 가까울 것이다.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가 77년 제작된 동명의 영화와 같은 해 발표된 혜은이의 노래를 뮤지컬 속으로 가져온 것은 바로 그 중장년들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가가 사치였던 그들에게 바치는 두 시간 반 짜리 추억여행. 스토리 위에 음악을 만들어내는 뮤지컬과 달리, 노래를 중심에 세우고 부수적으로 스토리를 끼워 넣는 대부분의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받는 ‘손 안대고 코 풀었다’는 비판은 이 뮤지컬에서도 그 혐의를 벗기가 어렵지만, 굳이 그렇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그저 흘러나오는 당대의 음악 속에 또 그 조금은 구닥다리의 이야기(이것은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그렇다)를 보면서 너무 바빠 잊고 살아왔던 과거의 추억과 조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닐까.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시대적 코드들과 유행가
고고음악이 흘러나오는 롤러스케이트장,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빵집, 정동의 마이하우스, 백마역의 화사랑, 통행금지, 양평 보트장, 조다쉬 청바지와 케리부룩 숙녀화, 교복, 장발단속, 통기타, 버스 안내양, 흥얼대던 맛동산 노래, 봉황기 고교야구대회, 교회와 그 종탑 등등. 추억을 끄집어내는 시대적 코드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잊었던 청춘의 기억들은 새삼스러워진다. 여기에 스토리와 묘하게 연결되면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즉각적인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해준다.

벗님들의 ‘당신만이’는 인물들 간의 사랑의 감정이 피어날 때 흘러나오며 그 아릿한 감성을 전해주고,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는 통행금지와 맞물리면서 당대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풀어낸다. 윤시내의 ‘열애’는 그 진지한 분위기가 사랑의 열병에 달뜬 인물과 만나면서 폭소를 자아내게 만들고, 혜은이의 ‘진짜 진짜 좋아해’는 프로포즈 장면과 딱 들어맞는다. 물 흐르듯이 스토리 전개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듣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관객 속에 있던 그 무언가를 꺼내주는 뮤지컬
그리고 그 노래를 흥얼거리는 그 순간이 바로 이 뮤지컬이 도달하려는 지점이다. 이 뮤지컬은 7,80년대의 상황을 보여주기보다는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들의 마음 한 구석에 뽀얀 먼지를 쓰고 있던 당대의 앨범을 스스로 열게 만든다. 늘 일에 지쳐 무엇에 쫓기듯이 살아오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쓰는 데는 인색했던 그네들에게 뮤지컬은 더 신나게 자신의 인생을 즐기라고 등을 떠민다. 그 때의 무채색 노동의 기억들 속에서 순간 순간 빛나던 총천연색의 향수 어린 추억들을 끄집어 내놓고는 그것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시간임을 증명해 보여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춘의 기억이다. 강압적으로 머리가 깎이고 모두 똑같은 교복을 입어야 하고, 치마 길이가 짧으면 단속에 걸리던 시절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만큼 아름다웠던 청춘. 누구에게나 한번쯤 열병처럼 다가왔던 첫 사랑의 기억. 지금은 주름진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때는 장난기 많고 반항적이던 친구들과의 추억. 처음 국민의례에서 쭈삣대던 당신이 어느새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벌떡 일어나 함께 합창을 하게되는 건 가진 건 없어도 그것 하나면 충분했던 당신의 청춘을 그 지점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 감상 포인트
- ‘거침없이 하이킥’의 OK해미, 박해미와 연기는 물론 예능프로그램에도 나와 웃음을 주는 박상면, 그리고 허리케인 블루의 김진수, ‘며느리 전성시대’의 이필모 같은 쟁쟁한 배우와 개그맨이 춤추고 노래하며 애드립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 송골매의 메인보컬이었던 구창모가 음악감독을 맡아 수십 곡에 달하는 7080 유행가들을 선별했다. 트로트에서부터 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 가만히 앉아 감상만 하는 뮤지컬은 No! 익숙하고 흥겨운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로 박자를 맞추는 등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뮤지컬이다.
(사진 : (주)트라이프로(www.tripro.co.kr/jinja)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