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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설공주를 사랑한...’, 이렇게 사랑스러운 난쟁이라니!
    옛글들/무대읽기 2008. 9. 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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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설공주 이야기,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예쁜 공주가 나와 자신을 구원해줄 왕자를 기다리는 이야기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백설공주 이야기는 이제 어린 아이들마저도 하품을 할 정도의 컨텐츠가 되었다. 지금은 못생겨도 당당하고 능력 있는 피오나 공주가 차라리 박수를 받는 시대. 능력 없이 오로지 예쁜 외모만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에서 백설공주는 시대착오적인 컨텐츠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이후 백사난. 본래 표준말은 난쟁이지만 작가가 난장이라 표현함)’는 어떤 식으로든 본래 동화의 재해석을 요구한다.

    가장 흔한 동화로 가장 특별한 사랑을 전하는 연극
    이 2001년부터 무려 8년 동안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백사난’이 원작 동화에서 선택한 것은 공주가 아니라 난쟁이다. 일곱 난쟁이 중에서도 가장 작은 막내이자 벙어리인 반달이를 그 중심에 세우자 이야기는 왕자 공주 같은 높으신 분들에서 아주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백사난’이 거기서 발견한 것은 왕자와 공주 같은 표피적인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좀더 깊고 보편적인 인간애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왕비의 음모로 난쟁이들이 사는 안개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는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왕비는 계속해서 백설공주를 죽이려 한다. 그 때마다 백설공주를 사랑하는 막내 반달이가 나서서 그녀를 구하는데 마지막 저주를 풀기 위해 데려온 왕자와 깨어난 공주가 결혼을 한다. 말을 하지 못하는 반달이는 끝내 자신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채 죽고, 안개꽃 속에 묻힌다는 이야기. 작고 말도 못하지만 가장 큰 사랑을 한 반달이의 이야기는 그다지 복잡하고 무언가 대단한 사랑이야기는 아니다. 이 연극이 어린이극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단순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웬 일일까. 이 어린이극에 차츰 어른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왠만한 복잡한 사연의 이야기에도 끄덕 없던 그들이 연극의 말미에 가서는 함께 간 아이의 손을 잡고 대책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된 것은.

    대사보다 강한 동작의 진정성, 몸으로 표현하다
    그 이유는 이 연극이 대사보다는 동작으로 마음을 표현하는데 있다. 말 못하는 반달이가 백설공주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추는 춤은 그 어떤 말보다도 강렬하게 진심을 전해준다. 따라서 이 연극의 진짜 힘은 백설공주 스토리의 재구성에 있다기보다는 연출의 힘에 있다. 액자식으로 구성된 형식 상 일곱 명의 등장인물들이 마치 그림동화책을 읽어주듯 마임과 춤과 노래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연극은 그 몸의 언어가 가진 진정성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해준다. 몸의 언어는 말의 내용이 담은 앙상함을 넘어서 그 행위 자체에 마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단순한 천 조각 몇 개로 바다에 빠진 백설공주를 구해내는 반달이를 표현하고, 등장인물들이 몸으로 만들어낸 계단과 바다를 지나 공주를 구할 수 있는 장미요정의 눈물을 찾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짧은 무용처럼 그려진다. 이러한 말보다는 동작으로 그려주는 연출은 그대로 글자보다는 그림으로 감동을 주는 그림동화책 같은 효과를 준다. 가장 인상깊고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 주는 감동은 마치 글자 가득한 페이지를 읽고서 넘긴 다음 페이지에서 보게된 양면 가득한 그림이 주는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킨 것은 바로 이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연출이 가진 단순함과 순수함이다.

    사회적 약자, 미(美) 그리고 자연
    게다가 이 연극은 시점을 공주에서 난쟁이로 낮춤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끌어낸다. 연극 속에서 인간들은 난쟁이를 못살게 굴었고 그래서 안개숲 속에 숨어살게 된 것. 하지만 그 숲에 들어온 백설공주를 두고 난쟁이들은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는다. 난쟁이들은 자신들의 집을 깨끗이 치워준 공주의 착한 마음씨를 보고 함께 살자고 한다. 이를 통해 외모(피부색이나 장애 같은)를 통한 편견을 가진 인간들과 마음을 쳐다보는 난쟁이들이 대비된다. 난쟁이들 중에서도 막내, 게다가 말조차 못하는 달님이가 주인공인 점은 이 연극의 낮은 곳에 대한 깊은 애착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이 연극은 미(美)를 지키려하는 예술에 대한 상징으로도 읽을 수 있다. 백설공주는 바로 미의 상징이며, 난쟁이가 ‘땅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황금을 찾아내 갈고 닦아 아름다운 보물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하는’ 일을 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인간의 추악함을 상징하는 왕비가 바로 그 미를 없애려하는 자이며, 난쟁이는 그 미를 구하려는 존재로서의 예술가로 그려진다. 결국엔 안개꽃밭이라는 자연의 일부로 돌아감으로써 이 예술가는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체로도 읽혀진다. 개인적인 욕망으로 채취하려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주는 자연.

    ‘백사난’의 이 다채로운 시선들은 보여지는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강변하기보다는 습자지에 빨려드는 물기처럼 보는 이의 온 몸으로 흡수된다. 연극의 끝자락에서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스며든 물기가 어느새 당신 가슴 가득 차 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동화의 힘이기도 하다. 그 순수한 동화의 세계 속에서 잊고 있었던 단순하지만 위대한 사랑을 발견하게 하는 연극, ‘백사난’을 보고 나오는 길, 어쩌면 당신의 마음 속에는 그토록 사랑스러운 난쟁이가 안개꽃 숲에서 춤을 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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