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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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도 유기농(?) 시대

D.H.Jung 2008. 9. 1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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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 ‘총각네 야채가게’

이젠 뮤지컬도 유기농(?) 시대인가. 세계 최초 유기농 뮤지컬을 주창한 ‘총각네 야채가게’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 뮤지컬은 현실에 치이면서도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들에게 전하겠다는 꿈으로 야채가게를 낸 다섯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왜 처녀도 아저씨도 아줌마도 아닌 굳이 ‘총각네’ 야채가게였을까. 그것은 ‘총각’이라는 이미지가 갖는 독특한 성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언가 열정에 가득 차 있고, 꿈 하나만으로도 하루가 배고프지 않은 그 젊음. 하지만 늘 어깨를 짓누르는 현실을 또한 온몸으로 느끼며 때론 좌절하고, 때론 엇나가는 그 젊음의 굴곡. 그래도 순수함을 잊지 않고 초심을 지키려는 젊음의 건강함 같은 것들이 그 단어 하나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야채가게가 갖는 두 가지 의미, 즉 건강과 상품이라는 두 가치는 총각들이 갖게 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즉 좀더 값싸게 좋은 야채와 과일을 소비자에게 제공하겠다는 건강한 마음은 이 젊음들에게는 이상이지만, “그래도 장산데...”하는 마음에서 남는 상품을 팔고자하는 욕망은 현실이다. 그러니 ‘총각’과 ‘야채가게’는 그렇게 잘 맞는 궁합을 갖고 있다.

그런데 ‘유기농 뮤지컬’이라는 말은 단지 이 뮤지컬의 내용이 좋은 야채와 과일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뮤지컬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들, 예를 들면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와, 그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트들, 그리고 그 위를 가득 메우는 대규모 인원들의 군무 같은 것들과는 이 뮤지컬이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화려한 무대의 장면들에 넋을 잃고 보다가 극장 문을 나설 때 무언가 허전함이 남았던 기억. 그 허전함의 실체는 어쩌면 뮤지컬의 본 맛(그 뮤지컬만의 내용이나 형식)보다 조미료 맛(뮤지컬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코드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실제로 새로움은 별로 없고 그다지 메시지도 없는 뮤지컬이 화려함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명품 뮤지컬로 둔갑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총각네 야채가게’가 유기농인 점은 바로 그런 포장을 걷어냈다는 점에서일 것이다. 소박한 야채가게로 시선을 낮추자, 뮤지컬은 볼거리를 넘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뮤지컬은 젊은이들의 꿈과 현실, 세상에 대한 지켜야할 것과 지켜지지 않는 현실, 상품논리와 대결을 벌이는 먹거리의 문제 같은 많은 이야기들을 그 총각들을 통해 보여준다.

볼거리와 화려함보다는 많은 생각과 이야기를 하게 만드는 뮤지컬이 ‘총각네 야채가게’다. 이 뮤지컬은 또한 극작가이자 방송작가, 그리고 연극배우인 이재국 작가가 만든 청춘스토리의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풋풋함이 살아있는 ‘총각(?) 뮤지컬’이지만, 한편으로 기존 뮤지컬에 익숙했던 분들에게는 밋밋한 맛을 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나치게 설명적인 부분들이 어떤 지점에서는 의미과잉으로 보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이 뮤지컬의 어떤 제스처로 읽혀질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무래도 유기농이라는 말 때문일 것이다. 맛보다는 의미를 찾게 되는 그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