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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바보상자에서 또 하나의 가족이 되기까지
    옛글들/생활의 단상 2009. 4. 16.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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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똑똑한 TV의 시대, 새로운 가족의 풍경

    자물쇠를 찬 바보상자, 옛날TV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TV에 대한 첫 기억으로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자물쇠’라고 말할 것이다. 큰 맘 먹고 아버님이 모셔온(?) TV는 방 한 가운데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접근 불가능의 물건이었다. 가구와 일체형으로 되어 있던 그 녀석은 커다란 자물쇠를 풀고, 문을 양옆으로 연 후에야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열이 유난히도 뜨거웠던 그 시기, 이른바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에 아이들의 눈을 가리고 저희들끼리만 보려고 누군가 고안했던 고약한 아이디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가린다고 안볼 우리들이었을까. 저녁 시간마다 TV를 볼 수 있는 친구 집으로 달려가는 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결국 서랍장에 모셔둔 TV 때문에 밖을 전전하는 아이들에게 백기를 든 아버님은 저녁 공부 몇 시간을 조건으로 자물쇠를 풀어내며 감금된 TV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순간,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저 바깥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가던 우리들의 눈도 해방되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바보상자이기는커녕 온갖 진기한 세상의 일들을 바로 눈앞으로 가져다 주는 놀라운 알라딘의 마술램프가 아니었나 싶다.

    TV는 늘 집안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고, 가족들은 TV를 중심으로 저녁을 보내기 시작했다. TV가 점점 많이 보급될수록 동네의 유대감도 TV로 매개되는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프로레슬러 김 일 선수가 일본 선수에게 연실 박치기를 해댈 때마다 온 마을은 들썩거렸고, ‘짜자자잔짜잔 -’하는 특유의 시그널송이 울리면 당연히 그 앞에 앉아 봐야만 했던 ‘수사반장’에 대한 국민적인 열광은 묘한 집단적인 도취감마저 느끼게 했다. 바보상자로 서랍장 속에 가둬져 있던 TV는 어느새 가족의 중심에 서 있었다.

    영상시대, 여가로 자리한 TV, 가족을 대리해주다
    80년대 컬러TV시대가 열리자 바뀌어진 총천연색 화면은 그 때까지 무채색으로만 존재하던 세상에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신기하기만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명암 속에서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흑백TV가 가진 그 아우라를 깨버린 것은 바로 그 컬러영상이 아니었나 싶다. 컬러시대와 함께 현란해진 광고들은 눈을 피곤하게 만들었으며 영상은 점점 대중화되었다. 이른바 영상시대에 우리는 들어와 있었다.

    때마침 등장한 리모컨은 홍수처럼 쏟아져 나와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광고들로부터의 탈출을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 전에 방영되던 수십 개에 달하는 광고를 피하기 위해 더 이상 TV 앞으로 가서 드륵 드륵 채널을 돌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채널을 바꿔주는 리모컨은 멀찌감치 놓여진 소파와 한 세트를 이루면서, TV 시청을 새로운 여가문화의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육백만 불의 사나이’나 ‘소머즈’에서부터 ‘게리슨 유격대’, ‘맥가이버’에 이르는 미국드라마 시리즈를 보는 것은 지금의 미드 열풍처럼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고, 영화는 꼭 영화관에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야 볼 수 있었던 당대에 ‘주말의 명화’는 안방극장이란 말을 탄생케 했다.

    가족들은 이제 집에서의 대부분의 여가생활을 TV를 통해서 하기 시작했다. 리모콘을 누가 쥐는가는 그 가족의 헤게모니를 누가 잡고 있느냐를 대변했고, 그것에 따라 가족들은 멜로 드라마를 보며 울거나,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거나, 오락프로그램을 보며 웃곤 했다. 오랜 시간 가족의 중심에 서있던 TV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이 아니었고, 심지어 핵가족화되고 개인화된 공간으로 사라진 가족을 대리해주는 존재가 되었다.

    똑똑한 TV 시대, 시공을 넘어 개개인의 삶 속으로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컴퓨터는 점점 TV를 향해 진화했고 결국 이 두 지점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IPTV가 등장했다. TV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 즉 송출하는 영상을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입장은 수정되어야 했다. 이제 자신이 보고싶은 영상을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사람들은 TV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뉴스를 확인할 수 있고, 보다가 무언가 해야할 다른 일이 생기면 화면을 멈춰놓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나간 장면을 되돌려보면서 좀더 분석적으로 TV를 바라볼 수도 있다. 분석적인 시선들은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나누어지고 그 힘이 모아져 TV가 독주하는 것을 견제한다. IPTV 시대의 TV란 이제 늘 대상으로서 시청자를 세워놓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시청자의 참여를 통해 집중되는 존재로 변모했다. 이른바 똑똑한 TV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동네에 한 대 있는 TV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그 어린 시절과, 또 TV 한 대를 놓고 서로 가족들이 리모콘 쟁탈전을 벌이던 시대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실로 수없이 많은 TV들에 둘러싸여 가족의 풍경이 달라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거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벽걸이 TV와 버리기에는 아까워 안방 한 구석에 놓아둔 옛날 TV는 물론이고, 버튼 하나로 유선TV로 변신하는(?) 모니터, 자동차에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네비게이션 속으로 들어온 DMB,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언제든 꺼내 TV를 볼 수 있는 휴대폰까지. 가족들은 저마다의 시공간 속에서 TV(이제는 그저 영상이라 불리는)와 생활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본방을 사수하고 있을 때, 자녀들은 DMB나 모니터를 이용해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보고, 못 본 프로그램들은 IPTV를 통해 언제든 내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운로드를 통한 시청은 몰아보기 같은 새로운 시청 패턴을 만들어 이제 주말 가족의 여가풍경을 바꾸기도 했다. TV를 중심으로 채널권으로 대변되는 가족 간의 관계는 이제 가족 구성원의 다양한 매체 선택 가능성(시공간을 넘어서는)으로 인해 좀더 수평적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에 의한 강권이 아닌, 저마다의 기호에 따른 선택이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이 똑똑한 TV의 시대에 이제 바보상자는 자물쇠가 채워진 저 과거의 서랍 속에 넣어진 옛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 우리 가족 구성원의 풍경을 바꿔나가고 있다. 하지만 TV가 똑똑해지거나 아니면 바보로 있거나 하는 것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이제 당신의 집안에 자리한 또 하나의 가족을 돌아 보라. 그 가족은 충분히 똑똑한가, 아니면 여전히 바보인가.(이 글은 IPTV가이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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