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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개된 여행, 휘발되는 여행지
    옛글들/생활의 단상 2009. 3. 1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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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스페셜’ 곰배령 사람들 편에서는 강원도 오지 중의 오지인 곰배령으로 들어가는 취재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길에 바퀴가 빠져버리자 취재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나와 뒤에서 차를 민다. 그것은 만일 현지에 살아가는 생활인들이라면 몹시 곤란하고 귀찮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기 위해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는 그 사건(?)조차 일상의 파격이 주는 어떤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결국 차가 오를 수 없는 길에서부터 카메라와 장비를 메고 한 시간이 넘게 산을 올라가야 했다.

    현장에서조차 현지인들과 방문인들의 느낌이 이다지도 다른데, 오지에서의 삶에 대한 현지인들의 느낌과 그걸 편안하게 집안에서 리모콘을 만지작거리며 보는 우리의 느낌은 얼마나 먼 거리에 있을까. 아름다운 곰배령의 눈과 자연 풍광이 담겨진 영상 속에서 현지인들이 겪는 실제 삶의 아우라는 이미 여러 차례 벗겨져 있다. 시청하는 입장에서 그 곰배령의 이야기는 말 그대로 노스탤지어의 영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는 이미 카메라와 TV의 인공적인 작업들에 매개된(그래서 익숙한) 산골이 있을 뿐, 실제 혹한의 날씨나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밤의 포근한 어둠이 자연의 일부로서 사람을 감싸안는 그 느낌, 산골 생활에 귀할 수밖에 없는 생선 요리가 주는 미감, 인공이 삭제된 공간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나 있는 야생화들, 그 야생화에서 벌들이 모아놓은 벌꿀을 손으로 직접 뜯어먹는 그 느낌 같은 것들은 체험될 수 없다. TV 속의 곰배령은 따라서 엄밀히 말해 진짜 곰배령이 아니다.

    ‘곰배령 사람들’같은 다큐멘터리는 그래도 촘촘한 취재를 통해 현실에 가까운 곰배령을 재현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여행 관련 프로그램들은 어떨까. 이른바 여행 버라이어티쇼가 주말이면 몇 명의 캐릭터들을 내세워 여행을 대리하고 있고, 아침방송과 저녁방송에서는 매일 여행지로 달려간 리포터들이 현지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시청자들 앞에 날라다주고 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의 향수를 채워주기 위해 매개된 영상이 여행을 대리해주는 것을 그다지 나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매개된 영상이 바꿔놓는 진짜 여행지의 모습이다.

    진짜 시골은 ‘패밀리가 떴다’가 보여주는 것처럼 노동이 삭제된 공간이 아니며, ‘1박2일’이 보여주는 것처럼 먹거리를 놓고 복불복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매개된 삶이 더 리얼하게 되어버린 작금의 상황에서 이 진짜가 아닌 여행지의 영상들은 진짜 여행지를 바꿔버린다. 종종 촬영에 따른 현지인들의 불만이 논란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워낭소리’같은 다큐멘터리 영화가 성공하자 경상북도가 이 촬영지를 관광상품화하겠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매개된 영상이 삶의 공간마저 여행지로 바꾸는 이 현상은, 이제 노동실종의 시대에 시골이라는 공간이 노동과 삶의 공간이 아닌 전시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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