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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드러머 걸',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허문 박찬욱의 걸작

 

이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애매모호해졌다. 넷플릭스나 왓차플레이 같은 OTT(Over The Top)는 이런 경계를 정서적으로 먼저 허물어버린다. 같은 화면에 영화와 드라마가 나란히 소개되고 드라마라도 전편을 몰아서 보는 경험은 영화 관람이 갖는 ‘완결성’을 드라마도 똑같이 느끼게 해준다. 이제 영화도 세 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어지고 있고, 어떤 영화는 몇 편에 걸쳐 나뉘어 방영되기도 한다. 영화는 드라마처럼 서사가 길어지고, 드라마는 영화처럼 완결성을 가지려 한다. 물론 드라마라고 해서 서사가 느슨하거나 영상연출이 허술하던 시대 역시 지났다. 이러니 그 경계 구분은 이제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은 이러한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지만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은 왓차플레이에 이미 전편이 올라와 있다. 몰아보기를 원하는 시청자라면 언제든 가입 후 한 번에 이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는 건,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화적인 밀도와 미장센을 갖고 있고, 이야기도 일관된 흐름 안에서 마지막까지 완결되게 흘러가고 있어 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리틀 드러머 걸>이 흥미로운 건 스파이 장르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 연출과 연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는데다, 나아가 그것이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네 삶에 대한 질문이 담겨져 있어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저 스파이 장르를 즐기며 봐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한 번 더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들을 들여다보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지던 1979년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 모사드 고위요원인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투입된다. 그런데 이 마틴은 이것이 전면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좀 더 ‘예술적인’ 섬세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테러조직 깊숙이 스파이를 투입시켜 그 핵심 조직원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애인을 가장한 스파이를 조직에 들어가게 하는 것.

 

흥미로운 건 이렇게 투입될 스파이가 진짜 요원이 아니라 무명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작품의 연기 오디션을 본 줄 알았지만, 차츰 그것이 이 작전의 캐스팅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갈등하지만 차츰 배우로서의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찰리가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예 요원인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테러리스트의 대역을 해주면서 찰리와 가디의 사이는 애매해진다. 스파이 역할을 해내기 위한 연기지만, 그 연기에 몰입할수록 찰리의 마음은 진짜로 가디를 향하게 된다.

 

즉 스파이 활동을 위해 하는 연기가 실제와 마찰음을 빚어내며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심리변화는 이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그것은 마치 작품 속에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연기는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어느 순간 찰리는 위기의 순간에 테러리스트의 애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끄집어낸다. 가디에게 마음이 끌리는 현실의 사랑과 연기 속에서 테러리스트의 애인으로서 경험하는 일들은 그래서 부딪침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작전을 설계한 마틴이 마치 영화감독처럼 행동하는 순간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역시 작전 속에서 영화감독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장면들은, 연기의 가상과 실제 현실을 왔다갔다하는 찰리와, 임무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 차츰 진짜로 찰리를 사랑하게 되는 가디와 중첩되면서 과연 연기란 무엇이고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새로운 연기와 몰입의 연속일 수 있다는 것.

 

사실 <리틀 드러머 걸>은 기존 국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반칙’ 같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잘 짜인 스토리에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 메시지와 생각거리까지 채워 넣은 드라마라니. 보고 나면 여타의 다른 드라마들이 너무 시시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다니.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해묵은 경계가 조만간 해체될 거라는 징후를 이 반칙 같은 드라마는 예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사진:채널A)

Posted by 더키앙

'자백', 잠시도 한눈팔 수 없는 압도적 몰입감의 실체

 

창현동 살인사건과 양애란 살인사건 그리고 김선희 살인사건. 게다가 최도현(이준호)의 아버지 최필수(최광일)가 살인범으로 사형수가 된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물론이고, 기자였던 하유리(신현빈)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부패방지처 검사였던 진여사(남기애)의 아들 노선후의 의문의 교통사고까지...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니 화장실조차 제대로 다녀오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보게 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훅 지나가버릴 것 같은 그런 몰입감. 하지만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보통 형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의 경우, 사건들은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전개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사건이 등장하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자백>은 이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음모(혹은 비리)로 묶여져 있다. 마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단 하나의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검찰 내의 비리들이 다양한 에피소드로 그려졌듯이, <자백>도 16부작이고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하나의 ‘몸통’ 사건의 가지들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로 정리하고 유추해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기탁(윤경호)은 최도현의 아버지 최필수가 기무사에서 근무할 때 근무했던 인물로 당시 운전병이었던 한종구(류경수)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려 죽였던 잔혹한 인물. 양애란 살인사건을 저지른 한종구는 그 조기탁을 흉내냈고, 그래서 조기탁은 김선희 살인사건을 저지르면서 한종구를 용의자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드러나 세 개의 살인사건의 진실들이다.

 

그런데 이 조기탁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을 저지른 일종의 검은 세력들(비선실세)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차세대 헬기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방비리와 연관되어 있다. 알고 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고은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국방비리 관련 사항이나 혹은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 돈을 요구하다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로 보면 비선실세들의 거대한 국방 비리가 있고 그 비리를 파헤치던 기자, 검사와 기무사 내부의 인물들이 살해되거나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들은 국방 비리라는 몸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치 연쇄살인처럼 위장되었다. 조기탁은 실제로도 잔혹한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이런 비선실세들과 연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한 신분세탁을 해 교도관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고 드러나는 진실의 윤곽들은 몰입해서 본 시청자들을 짜릿하게 만든다. 그만큼 깊은 몰입이 필요한 드라마지만, 의외로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겪었던 사건들이 드라마에 중첩되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리 사건이 그렇고, 비선실세라는 말만 들어도 금세 떠오르는 일련의 정황들이 그렇다. 또 진실을 밝히려던 기자나 검사의 죽음이 사고로 결론 처리되어버렸지만 의구심을 남긴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우리가 뉴스를 통해 목도했던 현실의 사건들을 <자백>은 그래서 하나하나 끌어다가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그건 복잡해도 우리가 이 드라마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이 드라마의 진짜 메시지였을, 그간 의혹을 남긴 사건들을 다시금 환기시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와이키키2' 애써 울지 않고 버티는 청춘들, 짠하기 그지없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2>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다. 여지없이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남는 청춘들의 쓸쓸함 같은 게 거기에선 느껴진다.

 

톱배우를 꿈꾸지만 현실은 만년 엑스트라인 이준기(이이경), 가수를 꿈꾸지만 행사 가수로 살아가는 차우식(김선호)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로 2군으로 밀려났다 어깨를 다치고는 결국 방출된 국기봉(신현수)이 그렇고, 결혼식날 아버지의 부도로 파경을 맞은 한수연(문가영)이나 준기와 연극영화과 동기로 배우를 꿈꿨지만 알바를 전전하며 게스트하우스에 얹혀사는 김정은(안소희) 그리고 요리사가 꿈이지만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치이고 밀려난 차우식의 누나 차유리(김예원)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꿈이 있고, 또 꿈을 향해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는다.

 

<으라차차 와이키키2>의 웃음 포인트는 이들의 이 비극을 희극으로 뒤집는데서 나온다. 엑스트라로 거지 연기를 하기 위해 진짜 거지를 찾아가 그 생활을 경험하고 노하우(?)를 배우는 이준기의 이야기는 단적인 사례다. “정말 거지같다”는 이야기가 칭찬이 되는 이준기의 상황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 밟아놓은 빵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어버린다.

 

거지가 되기 위해 마치 무협영화의 고수를 찾아가 비급을 전수받는 수제자처럼 진짜 거지의 거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장면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작은 단역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온 몸을 던져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낸다. 심지어 그런 노력을 들여 찍힌 장면도 감독의 “편집하라”는 말 한 마디로 지워버려지지만.

 

한수연을 친구 카페에 아르바이트로 소개시켜준 차우식은 친구가 번번이 실수만 저지르는 한수연을 자르지 않는 조건으로 그 대신 임대료를 동결시키려는 시위에 나간다. 그저 잠깐 나가서 구호만 외치다 오면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차우식은 3보1배, 혈서, 단식도 모자라 삭발까지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결국 그렇게 뜻이 관철되어 임대료는 동결되지만 차우식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좋아하는 한수연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제 몸을 그렇게 혹사하는 일 정도다.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감독 테스트를 받기 위해 노력해온 국기봉은 선배 병철(심형탁)에게 포크볼을 배워 익히게 됐고, 차유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병철이 어딘지 이상하지만 기봉을 위해 계속 만나주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받기 전 날 소매치기 때문에 어깨를 다친 국기봉은 결국 팀에서 방출통보를 받게 되고, 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오히려 험담까지 늘어놓는 병철에게 차유리는 식당 셰프를 하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뛰쳐나온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하지만 울고 싶은 마음을 숨기는 국기봉을 위해 차유리가 눈을 찌르는 장면은 <으라차차 와이키키2>가 가진 희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애써 울지 않고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짠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들은 애써 웃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유쾌한 척 버텨낸다. 폭소 뒤에 남는 쓸쓸함의 정체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열혈사제’, 위풍당당행진곡 ‘킹스맨’ 패러디를 이렇게 쓸 줄이야

 

영화 <킹스맨>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세상을 망하게 만들고 자신들만 살아남겠다고 모인 이들의 머리가 차례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잔인한 장면일 수 있지만 영화는 이것을 음악에 맞춰 마치 꽃 봉우리가 터지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해냄으로써 19금 섞인 코믹한 스파이액션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 장면이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고스란히 패러디된다. <킹스맨>에 비하면 어딘지 B급처럼 보이는 이 패러디에서 장룡(음문석)과 그 패거리들은 김해일(김남길)이 중국으로 구해온 ‘설사초’를 넣은 도시락을 먹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명씩 넘어지며 설사를 터트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킹스맨>을 본 분들이라면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꽃봉우리 CG가 곁들여진 그 장면을 보며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열혈사제>는 이제 본격적인 패러디 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날 방송된 내용 중에는 ‘나쁜 놈, 얍삽한 놈, 엊그제 뉘우친 女ㄴ, 멋지지만 화가 많은 놈’ 같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패러디한 장면에 맞춰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고, 장룡과 패거리들이 함께 걸어오는 장면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한 장면이 그대로 패러디되었다.

 

<열혈사제>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쏭삭(안창환)과 김인경 수녀(백지원)도 결국은 패러디의 공을 톡톡히 봤다. 외국인 노동자로 핍박받던 쏭삭이 갑자기 과거 태국의 왕실경호원이었고 무에타이 고수를 등장하는 장면은 <옹박>을 패러디한 것이었고, 평택에서 십미호로 이름 날린 타짜였다는 게 밝혀지며 맹활약하는 김인경 수녀의 반전도 영화 <타짜>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수녀님이 던지는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같은 대사가 빵빵 터졌던 이유다.

 

이밖에도 패러디는 넘쳐난다. 김남길과 이하늬가 서로의 입을 가린 채 얼굴을 쳐다보는 <미스터 션샤인> 패러디도 있고, 위기에 처한 서승아 형사(금새록)를 박경선(이하늬) 검사가 갑자기 엑스칼리버 같은 검을 들고 나타나 도와주면서 “미션 클리어”라 외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패러디도 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김해일 신부라는 캐릭터 자체도 영화 <검은 사제들>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열혈사제>가 이처럼 다양한 패러디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된 건 그 기조를 풍자 코미디로 명쾌하게 세워 놨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지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쁜 짓 하는 권력자들을 혼내겠다는 그 단순명쾌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패러디 전시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 웃음을 주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준다.

 

<열혈사제>가 금토 시간대에 새롭게 들어와 무려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면서, 화제성도 좋고 또 평가도 좋은 이유는 그 작정하고 웃기겠다는 패러디들을 통해 보이는 명쾌하면서도 확고해 보이는 작품의 진정성이 느껴져서다. 어차피 답답한 현실, 한번 시원하게라도 웃어보자는 그 명확한 목표를 향해 <열혈사제>의 다양한 패러디 웃음폭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성덕의 세계, 그 기대와 우려 사이

 

tvN 수목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는 이른바 ‘덕후’라 불리는 이들이 쓰는 그들만의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첫 회의 부제로 붙은 ‘덕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이나 2회의 부제인 ‘미안하다 일코한다’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오타쿠’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덕후라는 우리식의 단어가 또 줄어서 ‘덕’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일코’ 같은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이 더해진다. 아는 이들이야 이런 용어 자체가 익숙하고 나아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를 잘 모른다면 이런 용어들이 어떤 장벽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녀의 사생활>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그 ‘덕질’을 소재로 가져왔다. 주인공의 이름이 일단 ‘성덕미(박민영)’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것은 ‘성공한 덕후’를 뜻하는 ‘성덕’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덕미는 채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숨겨진 ‘사생활’이 있다.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차시안을 최애하는 덕후라는 것. 아이돌을 싫어하는 엄소혜 채움미술관 전 관장 때문에 성덕미는 이른바 ‘일코’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카메라로 중무장하고 얼굴을 가린 채 시안을 덕질하는 비밀스런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가 새로 관장으로 오게 된 라이언 골드(김재욱)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과 사랑의 이야기가 <그녀의 사생활>이다. 만나는 순간부터 악연으로 엮이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보여준다. 독한 말만 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라이언 골드가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인물이라는 게, 그가 카페인 알레르기인 줄 모르고 장난으로 음료에 커피를 넣었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진다. 성덕미가 미안한 마음에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주려 할 때 그 손을 꼭 잡는 라이언 골드는 어린 시절 자신의 손을 놓던 누군가(아마도 부모인)를 떠올린다.

 

악연을 갖게 된 남녀가 관장과 큐레이터라는 직장 내 상하관계로 엮이며 벌어지는 로맨스의 이야기는 사실 좀 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색다른 지점으로 삼고 있는 건 바로 성덕미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그 ‘성덕’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뭐가 아름다울까 싶지만 사실 ‘덕질’에 내포된 열정은 일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발현되기도 한다. 성덕미가 채움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건 어쩌면 그 덕질을 하며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애정이 열정이 되던 그 경험들 때문일 수 있어서다.

 

지금은 이른바 ‘덕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저마다의 취향이 그 삶을 규정하는 시대다. 한 때는 ‘마니아’라 불리며 조금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던 덕후들이 실제로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벌어진다. 그것은 어떤 취향에 대한 애정이 그를 실제로 전문가 수준으로 만들어내고, 또 그런 정도의 열정이어야 그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공한 덕후라는 ‘성덕’은 그래서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남는 문제는 <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이러한 덕질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드라마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점이다. 물론 웹툰이라면야 덕질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드라마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장르다. 특히 <그녀의 사생활>의 로맨스는 보편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익숙해 식상할 정도로 틀에 박힌 면이 있어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을 만들지는 못한다.

 

덕질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그것을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물론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통해 확고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는 박민영이나 등장 자체가 덕질을 하게 만드는 김재욱의 연기는 더할 나위없다. 하지만 결국 이 드라마의 관건은 덕질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까지 그 세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고 보인다. 과연 이들의 덕질 로맨스는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더 뱅커’, 은행은 늘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MBC 수목드라마 <더 뱅커>에서 노대호 역할을 연기하는 김상중은 특유의 목소리 톤을 드라마 안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김상중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그런데 말입니다”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자신이 캐릭터화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특유의 목소리 톤에서 나온다. 이 톤으로 그는 여러 차례 광고를 찍었고, 그 중에는 새마을금고 같은 은행도 있다. 물론 그 톤이 주는 이미지는 ‘신뢰감’ 같은 것이다.

 

아마도 <더 뱅커>가 김상중을 캐스팅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 이미지와 새마을금고 광고가 주는 이미지(실제로 이 드라마는 새마을금고의 광고가 붙어 있다)의 결합이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예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초반에는 그 특유의 톤이 어딘가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차츰 지속되면서 그 캐릭터의 겹침이 오히려 드라마에도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김상중의 이미지와 <더 뱅커>의 노대호 캐릭터가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건,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더 뱅커>에서 노대호라는 인물은 은행의 경영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은행의 고객 중에서도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고의 부도를 여러 차례 냄으로써 그 회사에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그런 이들을 VIP로 관리하는 행태는, 은행이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잘 보여준다. 노대호는 이런 은행의 부실대출 같은 문제들을 감사라는 직함을 통해 조사하고 해결해나간다.

 

채용비리 문제를 다룬 9,10회 분은 이런 노대호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노대호의 운전기사인 박광수(김규철)의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 대한은행 공채에서 시험을 잘 봤지만, 인사의 전권을 쥐게 된 도정자 전무(서이숙)가 의도적으로 청탁받은 한 지원자를 밀어줌으로써 떨어지게 된 에피소드가 그렇다.

 

겉으로 보면 도정자 전무가 개인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강상도 은행장(유동근)이 그 윗선이라는 걸 은연 중에 드라마는 드러낸다. 즉 강상도 은행장은 국회의원 막내딸의 취업청탁이 들어오고 금용감독원장까지 압박을 해오자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본래는 없었던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하게 한다. 그리고 인사총괄 자리에 도정자 전무를 앉힌 것.

 

가진 것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채용비리가 얼마나 한 가족의 삶 자체를 뒤 흔드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노대호 같은 감사가 나서고, 채용비리를 전면적으로 파헤친다. 실제 현실에서 가능할까 싶은 이야기이고, 사실상 노대호 같은 전권을 쥔 감사 같은 인물이 비현실적이지만, 드라마는 그래서 이 부분을 판타지로 그려낸다. 물론 그의 감사는 도정자 전무에게 그 칼끝을 향할 것이고,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은행장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지만.

 

<더 뱅커>가 그리고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은행장이나 노대호 같은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움직이는 감사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판타지적 인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은 건, 실제로 은행을 비롯한 기업들의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저지르는 비리가 적지 않은 현실 때문일 게다.

 

그래서 저 <그것이 알고 싶다>의 톤을 그대로 가져온 김상중의 연기와 노대호라는 캐릭터가 의외로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서민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해왔던 어떤 것들을 이 인물이 파헤쳐 그 진실을 드러내주고 있어서다. 몹시도 그것이 알고 싶었던 대중들에게는 그 실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되니 말이다.(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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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프리즈너’, 어느새 우린 장르의 맛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 나가는 장르물들은 퓨전을 거듭 시도해왔다. 의학드라마 같은 경우는 특히 그렇다. <허준>이나 <대장금>은 이미 고전이 된 의학 사극이지만, 그 후에도 사극과 퓨전된 <제중원>이나 <마의> 같은 드라마가 있었고 타임리프가 더해진 <닥터진>이나 <명불허전> 같은 드라마도 있었다. 또 <카인과 아벨> 같은 드라마는 응급의학을 소재로 야전에서 수술을 시전하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고, <골든타임>이나 <낭만닥터 김사부> 역시 응급의학과의 전쟁 같은 상황을 소재로 다뤘다. 도서 지방 같은 의료 소외지대를 다룬 <병원선>이나 생명을 다루는 곳이자 사업체로서의 병원이라는 공간을 두고 벌어지는 대립을 다룬 <라이프>도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네 의학드라마는 일정한 계보와 장르적 틀마저 갖추고 있다고 봐도 될 만하다. 그 계보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라는 소재는 시대와 공간과 각 과가 갖는 특징들을 변주하고 퓨전하며 진화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닥터 프리즈너>는 여기에 감옥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우리가 미드 등을 통해 익숙히 알고 있는 감옥 장르물들의 특성과 의학이 만나는 지점이 특이하다. 교도소 재소자들 중 이른바 VIP들을 담당하며 그들에게 갖가지 질병 진단을 덧붙여 ‘형 집행 정지’를 내리는 비리 의사들이 바로 그 접점이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은 재소자들을 치료하는 모습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재소자들을 병들게 만든다. 시작과 함께 나이제(남궁민)가 여대생 살인교사 혐의로 수감된 재벌사모님 오정희(김정난)를 ‘형 집행 정지’로 만들기 위해 몸을 망가뜨리는 장면은 이 독특한 의학드라마의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 흔히 의학드라마에서 의사의 칼은 ‘살인검(殺人劍)’이 될 수도 있고 ‘활인검(活人劍)’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가 들고 있는 칼은 활인검이라기보다는 살인검에 가깝다.

 

그것은 태강병원에서 잘 나가던 응급의학센터 에이스 나이제가 하루아침에 그 병원의 주인인 태강그룹 회장의 망나니 아들 이재환(박은석)에 의해 추락하게 되면서 생겨난 반전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장애인 부부가 이재환 때문에 사망하게 됐지만 오히려 그 의료사고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된 나이제는 자신의 엄마 또한 수술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면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그것은 사적 복수지만 또한 가진 자들이 누군가를 살해해 검거돼도 버젓이 형 집행 정지로 교도소를 빠져나가는 그 공적인 현실에 대한 대중들의 공분을 담아낸다.

 

<닥터 프리즈너>는 그래서 가진 자들이 그 돈의 힘으로 주무르는 병원과 감옥 두 공간에서 이 카르텔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나이제의 안간힘을 다루고 있다. 여러모로 그 거대한 카르텔 앞에서 그는 여전히 미약한 존재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인물이 남다르게 느껴지는 건 순진하게 선을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이고, 거악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손에도 피를 묻혀야 한다는 걸 알고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복수과정은 그래서 흥미로워진다. 선민식(김병철)이라는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과 각을 세우며 그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자신의 비리를 정의식 검사(장현성)가 추적하는 것조차 이용하려 한다. 마치 이 거악을 줄줄이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 또한 그 악의 한 줄기가 되어 그들과 함께 기꺼이 무너지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의학드라마는 그래서 감옥을 소재로 덧붙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사회극적인 면모를 갖게 된다.

 

이제 장르물에 멜로나 가족드라마적 요소를 끼워 넣지 않으면 어딘지 성공하기 어렵다는 드라마업계의 편견을 사라진 듯하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 중 주목받고 있는 <닥터 프리즈너>나 <열혈사제> 그리고 <자백> 같은 일련의 장르물들에서는 이런 요소들 없이도 시청자들이 충분히 몰입한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멜로의 틈입 같은 것이 이제는 장르물에 있어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 등을 통해 미드를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현실 속에서 이제 우리네 장르물들도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 지금껏 오랫동안 만들어져 왔던 의학드라마의 진화과정을 보면 지금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제 장르 자체가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여러 장르들이 퓨전되는 걸 오히려 즐기고, 그 장르적 문법들이 새롭게 해석될 때 더 열광한다.

 

그런 관점에서 <닥터 프리즈너>는 대표적인 사례다. 장르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시청자들은 다소 복잡하고 시시각각 상황이 반전하면서 감옥과 병원을 넘나들고 때로는 사회극의 면모를 드러내는 이 작품에 열광한다. 그래서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심지어 KBS 드라마에서 이런 본격 장르물을 넘어서는 퓨전 장르물의 묘미를 느낄 줄이야. 우리네 드라마에 장르물 트렌드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징후가 아닐 수 없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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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선실세까지, ‘자백’ 이준호의 진실 추적

 

뭐 이런 드라마가 다 있나.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보면 볼수록 거미줄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운 드라마다. 그저 각각 벌어진 사건처럼 여겨지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연결되고, 각각의 인물들 또한 조금씩 드러나는 사건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 드라마는 최도현(이준호)과 기춘호(유재명) 그리고 하유리(신현빈)라는 이 거미줄 위에 놓인 세 인물들이 저마다 이 거미줄 전체의 그림이 지목하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자백>은 그래서 시청자들을 그저 편안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른바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으로 사형수가 된 아버지에게 벌어진 일의 전모를 찾아내 누명을 벗게 하려는 최도현. 시청자들은 그가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 벽에 붙여 놓은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 관련자들의 복잡한 요약도를 들여다보며 느꼈을 진실에 대한 갈증을 고스란히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에서 최도현의 아버지를 현장에서 검거했지만 스스로 살인을 자백하고 검찰에 바로 이관됐던 당시 사건에 의문을 품던 기춘호 형사는 그 요약도를 보며 최도현과 똑같은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10년 전 있었던 ‘창현동 살인사건’과 5년 전 벌어진 ‘양애란 살인사건’ 그리고 현재 벌어진 ‘김선희 살인사건’이 어쩌면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과도 연계된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동일한 수법 때문에 단지 한 연쇄살인범의 범행이라 여겨졌지만, 김선희 살인사건 용의자로 붙잡힌 한종구(류경수)가 5년 전 ‘양애란 살인사건’은 자신이 ‘창현동 살인사건’을 모방해 저질렀지만 ‘김선희 살인사건’은 자신의 짓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왜 그가 그런 모방 살인을 했는가가 의문점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한종구가 과거 차승후 중령의 운전병이었다는 사실과, 최도현과 기춘호가 수사하며 알아낸 창현동 살인사건의 희생자 고은주를 죽인 범인이 당시 군대 영창에 수감 중이라는 알리바이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던 조기탁이라는 사실은 이들 일련의 살인사건들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암시한다. 결국 창현동 살인사건의 유력용의자로 조기탁이 떠올랐고, 그의 집을 찾아간 최도현과 기춘호는 그 곳에서 간호사 조경선(송유현) 명의의 고지서를 발견함으로써 이 두 사람 역시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한편 하유리는 기자였던 아버지의 유품을 확인하다 수첩에 적힌 ‘청와대를 움직이는 그들의 실체는?’이라는 글을 통해 아버지가 생전에 무언가 거대한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부친 사망 직전에 만났던 사람들을 추적하면서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가 있던 윤철민 경위는 자살로 부패방지처 검사 노선후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실을 알아낸 하유리는 노선후 유족의 집을 찾아갔다가 집 앞에서 진여사(남기애)를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최도현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와 사무보조일을 자청한 진여사의 행보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진여사 역시 어쩌면 이 거대한 사건의 피해자 유족일 수 있다는 것.

 

아직 모든 게 확연히 밝혀진 건 없지만, 어느 정도의 거대한 사건의 윤곽은 드러났다고 보인다. 무언가 ‘청와대 비선실세’들이 저지른 권력 비리(아마도 군수 산업과 관련된)가 존재하고 그 사실이 유출되거나 드러나자 관련자들이 모두 죽거나 희생되었다는 것. 최도현의 아버지가 사형수가 된 것도, 하유리의 아버지가 갑자기 의문의 죽음을 맞은 것도 모두 이 사건의 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미로 같은 거미줄 위에 놓인 듯한 느낌을 주지만, <자백>은 의외로 기꺼이 시청자들을 그 거미줄에 걸려들게 만든다. 그것은 무관해 보였던 사건과 인물들이 하나하나 맞춰지는 마치 퍼즐 맞추기의 쾌감 같은 걸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퍼즐이 맞춰져가면서 드러날 전모가, 나라 전체를 뒤흔들 거대한 사건이라는 점은 진실에 대한 갈증을 더욱 증폭시키는 대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비선실세의 존재가 드러났던 지난 정권이 준 충격은 <자백>이라는 드라마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그런 드라마 같은 사건이 실제로 벌어졌었다는 사실은 유사한 구조의 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자백>을 훨씬 개연성 있는 작품으로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시 매일 매일 뉴스를 들여다보며 느꼈던 진실에 대한 갈증과 분노 또 그 진실이 파헤쳐질 때 느꼈던 어떤 통쾌함 같은 경험들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오른다. <자백>이 복잡하게 쳐 놓은 거미줄에 기꺼이 걸려드는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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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이 절망을 통해 찾아내려는 희망은

 

과연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는 꿈꿀 수 있을까.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중학생 박선호(남다름)가 학교 옥상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살일지 혹은 타살일지 알 수 없는 한 아이의 추락. 카메라는 아주 천천히 이 아이가 떨어져 내리는 장면을 비춰주며 이 드라마가 앞으로 전개해나갈 파국을 예고한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는 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없었다면 친구들이나 아이 부모들 또 선생님과 아이들의 관계는 그럭저럭 원만했을 테고, 우리는 그 ‘원만함’이 ‘아름답다’ 착각하며 받아들였을 지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한 아이가 추락하는 사건은 이 원만하게 아름답다 치부되던 세상의 잔인한 실체를 끄집어낸다.

 

학교는 혹여나 이 사건이 학교의 이미지를 나쁘게 하지 않을까만을 걱정한다. 학교폭력 없는 학교라는 이미지에 누가 될까, 배상복 교감(정재성)은 선생님들에게 학생들이 엉뚱한 이야기를 하지 않게 단단히 일러두러 으름장을 놓는다. 선호의 담임인 이진우(윤나무)는 이런 학교의 행태에 불만을 갖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는다.

 

선호의 친구였던 준석(서동현)의 아버지이자 이 학교재단의 이사장인 오진표(오만석)는 일이 커지지 않게 하기 위해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강력팀 형사 박승만(조재룡)도 진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그다지 기울이지 않고 간단히 ‘자살 미수’로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 처리해야할 더 많은 강력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핑계로 자신이 종결처리하려는 이 사건에 토를 달고 나오는 선호의 부모의 요구들을 묵살한다.

 

선호와 친했던 친구들의 부모들은 이 일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 위해서 전전긍긍한다. 준석의 엄마인 서은주(조여정)도 선호 엄마 강인하(추자현)와 친하게 지냈었지만, 아들과 그 친구들이 선호를 집단 구타하는 장면의 동영상을 보고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서은주는 준석의 주머니에서 선호의 교복 단추를 발견하고는 이를 서둘러 버리려고 한다. 아들의 안위만을 먼저 걱정하는 부모들의 이기심이 이 사건을 통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선호의 동생 수호(김환희)가 선호의 자살이 아빠의 외도 때문이라고 아무렇게나 떠들어대는 친구와 싸움이 벌어지고 그래서 학교를 찾아간 강인하는 그 무례한 세상 앞에 분노한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는데,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외도 운운하며 떠들어댔고 그 이야기를 들은 아이가 그걸 소문내고 다니는 현실. 그리고는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싸운 일로 전후 사정은 상관하지 않고 수호에게 사과하라 요구하는 현실 앞에 강인하는 그 같은 어른들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알려준다.

 

“당신이 아무 생각 없이 떠들어댔던 그 악의적인 말들이 우리 애 마음을 할퀴고 짓밟고 찢어놨다고요. 정미 얼굴에 상처는 곧 아물겠지만 우리 수호의 마음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아요. 사람을 믿고 우정만큼 좋은 게 없다고 믿었었던, 그렇게 믿고 있던 우리 애한테 당신은 우정을 빼앗고 믿음을 빼앗은 겁니다. 학폭위에 회부하시겠다고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제목은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드라마는 결코 ‘아름다운 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한 아이의 사고 앞에서도 제 아이만을 걱정하고, 제 학교의 이미지만을 걱정하며 나아가 악의적인 소문까지 퍼뜨리면서 그런 일이 가까이서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를 ‘재수 없다’ 여긴다. 그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 아이의 부모만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후회하면서 절박하게 진실을 찾아 헤맬 뿐이다.

 

수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몰상식한 정미 엄마 앞에서 일단 “죄송하다”고 먼저 고개를 숙이는 아빠 박무진(박희순)에게 수호는 “왜 사과부터 하냐”고 화를 낸다. 수호의 그 말에 박무진은 선호와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퀵보드를 타고 가던 사람과 부딪쳤는데 그가 먼저 사과하자 선호 역시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아빠가 사과하냐”고 물었었다. 그 때 박무진은 “지는 게 이기는 거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과연 지는 게 이기는 걸까. 혹은 좋게 좋게 싸우지 않고 넘기는 것이 최선인 걸까.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지는 건 그냥 지는 것”이라는 수호의 말이 박무진의 귓가에 울림으로 남는다. 아들의 사고를 통해 자신은 이제 그저 좋게 좋게 넘겨오기만 했던 삶이 아닌 진실을 위해 싸워야 하는 삶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이 지독하게 비정한 이 세상의 절망을 그나마 아름다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희망으로 바꿔줄 것이므로.(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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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 왜 이렇게 유쾌하고 통쾌한가 봤더니

 

외국인 근로자로 구박받던 쏭삭(안창환)이 갑자기 태국 왕실 경호원 출신이었다며 마치 <옹박>을 보는 듯한 무에타이 실력을 선보이더니, 이제는 주임수녀 김인경(백지원)이 이른바 ‘평택 십미호’로 불리던 ‘타짜’라는 게 밝혀진다. 그는 이제 과거 동생의 죽음으로 악연을 맺게 된 타짜 오광두(유승목)와 클럽 라이징문의 비리가 담긴 회계장부를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일 참이다. 

 

이건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가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이다. 평범해 보였던 인물들이 숨겨진 능력을 보이거나 숨겨진 과거를 드러내는 방식. 그래서 이른바 ‘구담 어벤져스’는 김해일(김남길)이라는 신부로 시작해 점점 모양새를 갖춰간다. 그저 먹는 것 밝히는 인물처럼 보였던 알바생 요한(고규필)은 배가 부르면 소머즈처럼 놀라운 청력을 가진 존재로 변신해 중요한 정보를 캐내고, 평범한 신부로 알았던 한성규(전성우)는 아역배우 출신임이 밝혀지고 심지어 피도 눈물도 없는 조폭들을 눈물 흘리게 만드는 연기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고 보면 김해일이라는 인물 자체가 이런 반전 캐릭터의 시작점이었다. 우리가 흔히 보던 신부가 아니라 전직 국정원 요원으로서 불의를 참지 못하는 그런 인물. 결국 이 드라마는 이 인물을 중심으로 하나하나 구담시에 숨겨져 있던 능력자들이 모이고, 구담시를 장악해 갖가지 비리와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배트맨>의 고담시가 가진 세계관을 우리식으로 패러디한 그런 이야기.

 

흥미로운 건 구담시의 악당들이 정의를 지키고 민생을 돌봐야할 국회의원, 구청장, 부장검사, 경찰서장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황철범(고준) 같은 조폭을 부리며 ‘악의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러니 이들과 대적할 수 있는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도 검찰도 한 통속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들과 대적하는 구담 어벤져스가 탄생한다.

 

그런데 구담 어벤져스는 힘이 없어 보이던 서민들이거나 약자들이다. 구대영(김성균) 같은 인물은 형사지만 조폭들의 협박 앞에 굴복하며 살아왔고, 박경선(이하늬)도 검사지만 부패한 검찰조직 내에서 그저 제 살길만을 찾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들이 변화하는 건 김해일이라는 독특한 신부 때문이다. 최소한의 양심을 건드리는 이 신부를 통해 이들은 조금씩 제 자리와 본분을 찾아간다. 

 

김인경 수녀가 다시는 도박판에 서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어느 날 길에서 갑자기 비를 맞을 때 우산을 씌워진 인물을 통해 ‘비광’을 보고 ‘신의 섭리’라며 오광두와 한판을 벌이겠다 마음먹는 장면은 이 드라마가 가진 ‘한국형 판타지’의 독특한 색깔을 잘 보여준다. 구담 어벤져스가 탄생하는 그 과정은 온통 우연과 과장, 비현실이 존재하지만 바로 이 ‘신의 섭리’라는 판타지가 밑그림으로 제시됨으로써 나름의 개연성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신의 섭리’란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열심히 사는 서민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그래서 구담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조금은 황당하게 펼쳐지는 어벤져스 캐릭터들의 향연을 기꺼이 즐겁게 받아들인다. 그 판타지는 약하게 보이는 서민들의 힘이 실은 얼마나 큰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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