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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고통스런 현실 우릴 살게 하는 초콜릿 하나

 

고통 속에서 우리를 살게 해주는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에 등장하는 문차영(하지원)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사치벽이 있던 엄마는 동생 태현(민진웅)만 데리고 야반도주해버렸다. 만나기로 했던 백화점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갑자기 무너져 내린 건물에 갇혀 죽을 위기에 처했는데 그 때 그 건물더미 속에서 한 아줌마를 만났다. 그 아줌마가 아들을 위해 샀다는 초콜릿 하나가 문차영을 살렸다. 그 고통을 버티게 해준 달콤한 초콜릿 하나.

 

그 건물더미에서 죽은 아줌마가 바로 이강(윤계상)의 엄마다. 거성재단의 둘째 아들과 사랑에 빠져 이강을 낳았지만 헤어져 시골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살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사망하자 거성재단 이사장 한용설(강부자)은 손자인 이강과 그 엄마를 데려간다. 엄마가 백화점 붕괴로 사망한 후 이강은 거성재단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리사의 꿈을 접고 의사가 된다. 그렇게 실력 있는 뇌신경외과의사가 되지만 이준(장승조)을 거성재단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부모들은 이강을 사지로 내몬다.

 

하지만 폭탄이 터지는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하고, 위험한 수술을 떠맡기도 하며 힘겹게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이강에게도 초콜릿 한 조각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의 절친인 권민성(유태오) 변호사다. 이강은 문차영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 채 그와 연인이 된 권민성의 행복을 기원했다. 그런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친구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어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가게 됐다는 것. 이강은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문차영이 끓여주는 만두전골을 먹고 싶다는 말 때문에 그리스로 떠난 문차영을 찾아 나선다.

 

그 만두전골 한 그릇이 권민성의 마지막 남은 삶을 붙들어주었던 것일까. 소식을 듣고 그 먼 길을 찾아와 권민성을 위해 만들어준 만두전골 한 그릇을 마지막으로 먹고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자신을 버티게 해줬던 힘겨운 삶의 한 조각 초콜릿 같던 친구를 잃어버린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다. 그건 트라우마 속에서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문차영에게 단 한 조각남은 초콜릿이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일이었다.

 

<초콜릿>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힘겹고 고통스런 현실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 원인은 사적인 것이면서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나 거성재단의 승계를 두고 벌어지는 아귀다툼처럼 사회적인 것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문차영이나 이강이 원하는 건 엄청난 욕망이나 성공 욕구 같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고통을 잠시 잊고 버텨내게 해줄 수 있는 어떤 작은 위로 혹은 위안일 뿐이다.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어린 문차영은 이강의 엄마가 건네 준 초콜릿 하나를 아껴 먹고 버틴 끝에 끝내 살아남는다. 초콜릿 하나는 아주 작은 것처럼 보이지만 때론 그 선의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려낸다. 바로 이 초콜릿 하나가 가진 기적 같은 힘이 바로 <초콜릿>이 차려놓은 음식들을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다. 세상은 무너져 내렸고 그 누구 하나 쉬운 삶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를 살아가게 해주는 힘. 그건 바로 작은 초콜릿 하나 같은 누군가의 마음 한 자락이라는 걸 이 드라마는 그리려 하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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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2’ 질깃질깃한 김갑수의 아킬레스건은 따로 있다

 

“저 놈 참 질긴 놈이네. 밀어버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에서 성영기 회장(고인범)은 자신이 사주한 괴한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고 칼에 찔려 둔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지만 다시 기어올라온 장태준(이정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차가 장태준을 향해 돌진해오는 순간 드라마는 다음 회를 예고했다.

 

“참 질긴 놈”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게 <보좌관2>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법무부장관으로 앉아 있지만 그 권력을 이용해 비자금을 끌어 모으고, 자신의 허물을 덮기 위해 검찰을 이용하는 송희섭(김갑수)이 딱 그렇다. 장태준이 송희섭의 오랜 보좌관인 오원식(정웅인)의 계좌를 추적해 송희섭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냈고, 오원식을 압박해 성영기 회장에게 송희섭이 자신을 제거하려 한다는 걸 알리기까지 했지만 송희섭은 질기게 살아남는다.

 

애초 차명계좌를 발견했을 때도 송희섭은 그것이 강선영(신민아) 의원의 부친과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리며 더 조사하면 강선영이 다칠 수 있다고 오히려 장태준을 협박했다. 어떤 공격이 들어와도 이를 받아내고 오히려 역공을 펼치는 송희섭의 만만찮은 노련함은 결코 이 인물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걸 예감하게 만든다.

 

그건 장태준과 강선영이 모두 심각한 상처를 입고 의원직을 유지하는 것조차 힘겨울 수 있는 위기에 내몰리게 된 이유다. 하지만 장태준 역시 거기서 멈춘다면 그건 송희섭이 원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순간 자신이 버텨내던 많은 것들이 희생될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물러설 수가 없다. 심지어 피투성이가 되어 땅바닥에 내쳐졌어도.

 

<보좌관2>가 가진 힘은 이 질기고 팽팽한 대결구도에서 만들어진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송희섭이라는 캐릭터는 그래서 이 드라마의 기둥이나 마찬가지다. 엄청난 위기에 몰렸다가도 금세 풀어나 역공을 펼치는 이 캐릭터가 가능한 건 다름 아닌 ‘법무부장관’이라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어서다. 법을 수호해야 하는 위치지만, 그는 법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한 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이들이 부패하면 어떤 농단이 벌어지는가를 이 드라마는 아프게도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무소불위에 질깃질깃한 송희섭 장관의 아킬레스건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든다. 그건 항상 송희섭을 보좌하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봐온 운전기사 이귀동(전진기)이라는 인물이 심상찮기 때문이다. 그는 차 안에서도 또 차 밖에서도 송희섭 장관이 누군가와 만나 밀담을 나누거나 전화 통화를 하는 걸 빠짐없이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당장 생계가 어려워진 이귀동을 그러나 송희섭 장관은 별로 챙겨주지 않는다. 늘 구박하고 다른 곳에서 갖게 된 분노를 대신 터트리는 샌드백처럼 이귀동을 취급한다. 이 정도면 이 인물이 자꾸만 송희섭 장관의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는 모습이 남다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는 과연 이 질깃질깃한 송희섭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팽팽한 대결구도를 기울게 만들 것인가.

 

만일 이런 일이 실제로 드라마에서 벌어진다면 그건 내부고발이 갖는 의외의 힘을 말해주는 대목일 수 있다. 물론 내부고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권력의 외피를 가진 이들에게 약점이란 어쩌면 일상화된 갑질 속에 힘겨워하다 결국 결심하게 되는 내부의 고발일 수 있으니. 송희섭만큼 점점 그 운전기사인 이귀동이 주목되는 이유다.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니 말이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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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죽을 듯한 삶에도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밥 더 줄까? 밥 갖고 온다. 점심때도 밥 먹으러와 점심 때 오면 나가 초코 샤샤 만들어 줄테니께. 나도 요리사여. 배고프면 아무 때나 와. 돈 없어도 되니께. 아무 걱정 말고.” 배고픈 소녀에게 상다리 부러지게 밥 한 상 차려 준 소년은 그렇게 말했다. 오디션을 봐야 한다며 밥을 제대로 못먹게 한 엄마 때문에 배가 고팠던 소녀는 그 음식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JTBC 새 금토드라마 <초콜릿>은 바로 그 소녀가 먹었고 소년이 챙겨줬던 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한 끼가 줬던 행복감을 잊지 못하던 소녀는 삼풍백화점 붕괴로 엄마를 잃고 자신 또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지만 요리사가 됐다. 요리사가 된 문차영(하지원)은 그래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다. 자신이 그 밥 한 끼를 통해 가졌던 큰 위로와 행복감을 그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함이다.

 

소녀를 위해 팔을 데여가면서까지 초코 샤샤를 만들어 놓고 기다리던 소년은 갑자기 나타난 거성재단 한용설(강부자) 이사장의 손자가 되어 그 곳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성병원 뇌 신경외과 의사가 되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치른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거성재단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그를 내치려는 이준(장승조)의 부모들 때문에 심지어 전쟁터로 내몰리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살아가던 이강(윤계상)은 그 전쟁터에서 한 아이가 폭탄이 터져 죽는 걸 목격하게 된다.

 

문차영은 요리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이강은 거성재단 이사장의 손자로 거성병원의 의사가 됐지만 그건 자신이 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 만들어 사람들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꿈”이었지만 아들을 위해 거성가로 들어온 뒤 삼풍백화점 붕괴로 허망하게 사망했다. 이강 역시 엄마와 꿈이 같았었지만 이제 거성가에 살아남기 위해 의사가 되어 매일 매일을 전쟁처럼 살아간다.

 

<초콜릿>이 하려는 이야기는 단순 명쾌하다. 그리고 어찌 보면 향후 일어날 이야기들도 어느 정도는 예상가능한 것들이다. 이강은 문차영을 다시 만날 것이고,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이 문차영이 밥 한 끼로 위로 받았듯이 이제는 그가 차려주는 한 끼로 치열하게 살아오며 상처 가득한 자신의 삶을 위로 받을 수도 있을 게다. 또 어쩌면 상처 가득한 이강은 같은 상처를 입고 있는 문차영을 삶의 의사로서 치료해줄 수도 있을 게다.

 

저 편에 거성재단 같은 거대한 성공의 신기루가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강과 문차영이 선택하는 건 그런 거대한 성공이 아니다. 그 거창함이 동반하는 아픔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상처 입은 존재들은 그래서 이를 벗어나 치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치유의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저 자신을 위한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기고 또 누군가와 그걸 나누는 것이다. 전쟁 같은 하루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초콜릿 한 조각을 먹으며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고 읊조리는 문차영처럼.

 

<초콜릿>은 색다른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너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익숙함에도 충분히 훈훈함과 포만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다. 물론 때론 강렬한 맛의 반찬들이 놓이기도 하겠지만 그 모든 걸 따뜻한 밥 한 그릇의 위안이 든든히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드는 드라마.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잠시 기댈 수 있는 그런 드라마가 되길 기대한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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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패다’ 윤시윤, 싸이코패스 정도 돼야 버티는 현실이라니

 

코미디지만 이 코미디 어쩐지 슬프다. tvN 수목드라마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어쩌다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의 살인 기록이 담긴 다이어리를 가진 채 사고로 기억을 잃은 한 증권사 사원이 자신이 싸이코패스라 착각해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고 있다. 이 상황이 코미디가 되는 건 본래 모습은 소심하기 그지없던 인물이 자신이 싸이코패스라고 착각하게 되면서 보이는 일종의 허세와, 의외로 그 허세가 통하기도 하는 상황이 주는 웃음이다. 그런데 이 허세의 주인공 육동식(윤시윤)이 처한 현실을 보다보면 어딘지 슬퍼진다.

 

대한증권에서 알아주는 호구인 육동식은 팀장 공찬석(최대철)이 잘못된 투자로 입은 큰 손실의 책임을 홀로 떠맡게 된 채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공찬석은 갑질하는 인물로 팀원들을 사사건건 괴롭히고, 핍박을 받던 육동식이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물론 그 순간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가 노숙자를 살해하려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거기서 그의 다이어리를 얻은 채 기억 상실이 되어버리지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실제로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스릴러 장르를 더했고 또 그를 추적하는 심보경(정인선) 경장의 추리와 탐문이 이어지지만, 그렇다고 스릴러의 구도만을 따라가지는 않는다. 실제 싸이코패스가 육동식이 다니는 회사의 서인우(박성훈) 이사라는 걸 일찌감치 밝히고 있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누가 범인인가를 두고 만들어지는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이 드라마는 애초에 추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회사, 그것도 증권사라는 구체적인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에 ‘싸이코패스’라는 설정까지 집어넣은 걸까. 그건 우리네 현실을 하나의 블랙코미디처럼 뒤집어보려는 설정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더해진다. 하나는 도대체 누가 진짜 싸이코패스인가 하는 점이다. 누가 봐도 번듯한 회사의 이사로 앉아있는 서인우가 그럴 듯해 보여도 사실은 잔인한 싸이코패스라는 설정은 그래서 회사 맨 꼭대기에 앉아 직원의 목을 사인 하나로 날려버리는 직장 상사를 떠올리게 하는 은유처럼 보인다.

 

육동식을 사사건건 무시하고 괴롭히고 심지어 자신의 과오를 덮어씌워 내보내려 하는 공찬석 같은 팀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심지어 직원 오미주(이민지)까지 시켜 그 뒷모습을 육동식 카메라로 찍어 그에게 성추행 누명을 씌우려 하는 인간이다. 그러니 여기서 기막힌 블랙코미디가 만들어진다. 기억을 잃고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를 주운 육동식은 자신을 스스로 연쇄살인마라 여기지만 알고 보면 회사에서 늘 당하는 을이고, 실상 그런 을 위에 군림하는 이들이 진짜 싸이코패스이거나 싸이코패스 같은 인물들이니 말이다.

 

또 하나의 싸이코패스 설정이 말해주는 건, 이 살벌한 현실 속에서 평범한 을들이 버텨내기 위해서는 스스로 싸이코패스라 여기는 정도의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육동식은 자신이 싸이코패스일 거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회사가 그에게 가하는 핍박을 웃으며 넘겨버린다. 대신 그는 어떻게 그 상사들을 살해할 것인가를 계획하며 즐거워한다.

 

<싸이코패스 다이어리>가 보여주는 건 그래서 싸이코패스 정도는 되어야 버텨낼 수 있는 현실이다. 실제 피가 튀고 누군가 살해당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 현실에서 누가 누구의 목을 자르고 누군가를 모함해 내치려하는 그런 일들은 사회적 삶의 살해와 뭐가 다를까. 핍박해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으며 버텨내는 을들은 차라리 감정 없는 싸이코패스의 상황이 더 낫다고 여겨질 정도다. 웃음 가득한 코미디지만 <싸이코패스 다이어리>는 그 이면에 이처럼 살풍경한 현실의 비애를 담고 있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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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이상윤의 구토에 담긴 의미는 뭘까

 

박성준(이상윤)이 누군가에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나러 간다. 어느 카페 박성준이 어떤 여자와 마주하고 있는 그 상황은 SBS 월화드라마 <VIP>가 지금껏 궁금하게 만들었던 불륜녀의 정체를 드러낼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그 낯선 여자에게 박성준은 봉투를 꺼내 내민다. “부사장님이 관계를 끝내고 싶어 하십니다.” 그 말은 박성준이 부사장의 내연녀들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여자가 생긴 게 아니냐며 자신은 헤어질 수 없다는 내연녀에게 박성준은 “부모님은 모르시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은근히 협박하고, 결국 내연녀는 비밀유지서약서에 사인한다. 카페 밖에서 내연녀를 보내고, 박성준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참지 못한다. 골목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해댄다.

 

그의 구토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것일까. 아니 그는 왜 구역질을 느낀 걸까. 그건 자신이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환멸과 자괴감, 분노 같은 것들이 뒤섞여 생겨난 구토일 게다. 회사 일이 아니라 회사 상사의 더러운 뒤까지 닦아주며 살아내야 하는 자신이 못내 참기 힘들었을 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VIP>가 지금껏 그려온 이야기가 박성준 자신의 불륜 사실과 그와 관계한 불륜녀가 누구인가에 대한 것들이다. 타인의 불륜을 처리해주며 구토감을 느낄 정도의 인물이 누군가와 불륜을 저질렀다는 게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의심하게 된다. 박성준은 과연 불륜을 저질렀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의 불륜을 관리해주다 앙심을 품은 이에 의해 그런 문자까지 아내가 받게 만든 것일까.

 

비밀유지서약서가 버젓이 등장한다는 건, 이 VIP와 그를 보좌하는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어떤 일들에도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제조건이 있다는 걸 암시한다. 과연 박성준은 자신의 불륜이 아니면서도 VIP와의 관계 때문에 아내에게조차 그 사실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걸까. 아내 나정선(장나라)에게 ‘당신 팀에 당신 남편 여자가 있어요’라는 문자가 왔고, 그것이 바로 나정선의 자리에서 보내졌다는 걸 알고는 박성준이 그 날의 CCTV 자료를 빼간 것도 너무 깔끔한 일처리가 오히려 눈에 띈다. 그것 역시 VIP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조처가 아니었나 의심될 정도로.

 

물론 이건 추정일 뿐이다. 하지만 드라마의 전개 흐름 상 박성준이 불륜남이 아닐 거라는 심증이 자꾸만 생겨난다. VIP 전담팀을 굳이 드라마의 배경으로 삼고 같은 사무실에 남편 박성준과 아내 나정선을 나란히 세워놓은 건 그들이 하는 일(VIP를 관리해주는 일)과 그들의 사적인 삶이 겹쳐졌을 때 어떤 파장을 만들어내는가를 보기 위해서다. VIP이기 때문에 불륜이 용인되고, 심지어 그걸 관리해주는 박성준은 그런 일이 실상 VIP 전담팀이라는 그럴 듯한 부서가 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

 

심지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정선과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낸다. 나정선 또한 그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문자 하나가 만들어낸 작은 균열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함께 그 일을 하는 동료들을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다. 만일 박성준이 불륜이 아니었고 그것이 VIP를 관리하는 일의 하나였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정선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결국 핵심은 무엇이 VIP라는 존재들에 이토록 윤리와 도덕 바깥으로 나가도 관리될 수 있는 힘을 부여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그건 결국 VIP들을 위해 발급된다는 카드에 붙어 있는 번호표가 그들의 서열이 되는 것처럼, 돈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자본주의 세상 깊숙이 들어와 살다보니 돈에 의해 서열이 나뉘고 심지어 비윤리적인 것까지 관리되고 용인되는 VIP의 세계를 우리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세계가 참으로 기이하고 부조리하다는 걸 ‘불륜’이라는 코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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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2’, 대중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주진화학 사건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현재를 보전해 미래세대에게 넘겨줄 수 있도록 법과 제도도 정비해 나가겠습니다. 국민여러분의 힘이 필요합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들이 생기지 않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저희를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JTBC 월화드라마 <보좌관2>에서 강선영 의원(신민아)은 TV 뉴스 인터뷰에 나와 이렇게 호소한다. 주진화학 사건은 그 화학물질로 인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고통 받았지만 덮여지고 가려졌던 사건이다. 거기에는 법무부장관이 된 송희섭(김갑수)과 주진화학 이창진 대표(유성주)의 결탁이 숨겨져 있다. 강선영 의원은 이 문제를 국정조사위에 상정해 국회가 나서 진상규명을 하려 한다. 코너에 몰린 이창진과 송희섭은 이를 막기 위해 강선영 의원의 보좌관 이지은(박효주)을 테러하고, 국정조사위 자체를 무산시키기 위해 협박과 회유를 일삼는다.

 

사실 주진화학 사건 같은 소재는 드라마라고는 해도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의 백혈병 발병 사건이 그렇다.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들이지만 진상 규명이 되는 그 과정들은 꽤 오래 걸렸다. 이유는 그 사건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여러 정치적 외압들이 끼어들어서다. 심지어 관련 사안을 고발하는 영화까지 만들어지고 결국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국회 차원에서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삼성전자는 공식 사과와 보상에 대한 입장을 밝히게 됐다.

 

<보좌관2>를 보다 보면 우리가 언론을 통해 정치의 세계를 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역학구조로 정치 현실이 움직인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그래서 언론이 보여주는 정치만으로 그 이면에 놓인 진짜 현안들을 들여다보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주진화학 사건과 이를 야기시키고 무마시킨 이창진 대표와 그 위의 성영기 회장(고인범) 그리고 송희섭 법무부장관의 결탁이 이 정치 현안의 본질이지만, 코너에 몰린 이들은 이를 막기 위해 갖가지 방해공작을 일삼는다.

 

강선영 의원의 인터뷰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송희섭의 계략으로 조갑영 의원(김홍파)이 공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일이 언론에 등장하면, 정치인들은 못 믿을 존재라며 정치 자체에 대한 관심을 지워버린다. 송희섭이라는 비리의 거목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신도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는 장태준(이정재)은 언론에 드러난 것으로만 보면 비리정치인이 아닐 수 없다. 송희섭이 거짓으로 그렇게 꾸며냈기 때문이다.

 

강선영 의원실에서 일하는 한도경 비서(김동준)는 언제 잘려도 할 말 없는 별정직이지만 주진화학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윤혜원 보좌관(이엘리야)이 그런 한도경에게 직접 만난다는 게 힘들었을 거라 말하자, 한도경은 “저보다 이 분들이 더 힘드시잖아요”라고 답한다. 한도경은 이 복마전에 가까운 정치판에서 거의 유일하게 순수한 정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한도경 같은 인물이나 그 의지는 결코 보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한도경의 어머니도 그 정치 세계에 대한 막연한 편견과 선입견만을 드러낸다. “강선영이라고 그랬지? 뉴스 보니까 그 사람은 밑엣 사람들한테 갑질 하고 못살게 군다며? 얼마 전에는 그 보좌관이 자살까지 했다며?” 그러면서 당장 그 일을 때려 치라 말한다. 아들이 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어머니도 관심이 없다. 겉으로 드러난 것들만 보면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만 생겨난다.

 

그런 어머니에게 한도경은 차분하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한다. “못 그만둔다고. 나 지금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어 칭찬도 많이 받고 내가 지금 하는 일 엄마가 생각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일 아냐. 아버지 사고 났을 때 병원 찾아와서 우리 가족 도와주셨던 분 그 분도 보좌관님이셨어. 그 때 이후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한 거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보좌관2>가 보여주는 복마전에 가까운 정치 현실의 이전투구는 거꾸로 우리가 그저 흘러나오는 뉴스만이 아니라 좀 더 정치에 대한 깊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정치가 하는 일이 뭐냐?”는 게 어찌 보면 보통 사람들의 너무나 공감 가는 불만이지만, 그래서 외면하고 혐오만 한다면 결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보좌관2>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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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본드’, 시작이 엔딩이었다는 건 뭘 말해주나

 

재밌게 보던 시청자들도 뜨악했을 것 같다. SBS 금토드라마 <배가본드>가 종영했지만, 그게 끝이라는 게 사실 믿기지 않는다. 전체 16부작이지만 사실 15부까지만 해도 다이나믹 시스템의 에드워드 박(이경영)이 이 모든 걸 뒤에서 계획하고 움직였던 사마엘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알게 된 고해리(배수지)는 제시카 리(문정희)를 따라 로비스트가 되고, 창고 폭파로 사망한 줄 알았던 차달건(이승기)은 살아남아 탄핵을 당한 정국표(백윤식)에게 자금을 지원받아 릴리(박아인)를 고용하고 에드워드 박과 관련된 용병단체에 들어가 복수를 꿈꾼다.

 

이 상황만 보면 지금껏 제시카 리, 민재식(정만식), 윤한기(김민종)에 정국표, 홍순조(문성근)로 이어져온 일련의 악당들은 저 뒤편으로 밀려나고 에드워드 박을 중심으로 이들 모두를 장악하고 있는 또 다른 조직이 전면에 나타난 것을 알 수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시즌2를 애초에 계획한 것이라면 시즌1의 이야기는 비행기 추락사건의 중요한 증인이자 범인인 김우기를 우여곡절 끝에 데려와 재판정에 세우게 된 12회에서 끝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사실상 그 후 보다 높은 곳까지 연루되어 있는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해져 있던 것인지 16부작으로 뚝 끊어져 종영해버린 <배가본드>는 그 마지막회를 보던 시청자들을 허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설마 저러다 끝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건, 드라마 첫 회에 봤던 차달건이 누군가를 저격하려 하고 총을 드리웠지만 거기 고해리가 나타나는 장면이 다시 등장하면서다. 그렇게 <배가본드>는 시작을 엔딩으로 세웠다.

 

그런데 이런 엔딩은 지금껏 달려온 16부작을 앞으로 이어질 본편(?)의 예고편처럼 만들어버린다. 무엇보다 새롭게 등장한 강력한 악당 에드워드 박은 버젓이 살아 홍순조를 대통령 만들고 국정을 농단하려 하고 있다. 용병단체에 들어가게 된 차달건은 과연 이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또 로비스트가 되어 나타난 고해리는 차달건과 어떤 콤비를 보여줄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시즌2가 확정된 게 아니라면 이런 엔딩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 된다. 이건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린 결말은 어쨌든 결말이 등장했고 그 결말에 대한 해석이나 판단이 열려있다는 뜻이지, 아예 결말 자체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껏 16부를 열심히 몰입해서 봤던 시청자들을 생각한다면 시즌2는 고려 중이 아니라 ‘확정’이어야 옳다.

 

하지만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제작사인 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의 입장은 이렇다. 애초 시즌2를 염두에 두고 작가도 연결되는 구도로 구상했지만 제작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 정도의 이야기로 마무리했으며, 이 후의 이야기는 시즌2에서 풀어야 하는데 시즌2는 시즌1 출연자들의 캐스팅 등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결국 시즌2는 결정된 게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결론내지 않고 끝내고 나서 그 뒷이야기가 계속 될지 아닐지 결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니. 이런 무책임한 이야기가 어디 있을까.

 

시즌제 드라마는 이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선 개념은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시즌제를 계획하고 만들어지는 드라마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시즌1에서 어떤 결말 없이 끝나는 것에 대해서도 이제 시청자들은 어느 정도 용인한다. 시즌2가 예고되어 있고 그걸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가본드>처럼 시즌2에 대한 확정을 하지 않은 채 뚝 끊어버리는 건 시청자들에게도 또 고생한 연기자들에게도 예의는 아닐 것이다. <배가본드>는 열린 결말이 아니다. 시즌2가 아니라면 용두사미라 불러도 할 말 없는 무책임한 결말일 뿐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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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라’, 이방원 이야기로 풀어낸 민초들의 역사

 

JTBC 금토드라마 <나의 나라>가 종영했다. 이방원(장혁)은 형제들이 흘리는 피로써 자신의 나라를 만들었고,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는 자신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으로써 자신의 나라를 지켰다. 서휘가 꿈꾸는 나라는 배곯지 않고 사는 나라일 뿐이었지만 이방원은 자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서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했지만, 그는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방원은 자신이 꿈꾸는 나라를 위해서는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 생각하는 인물이었다. 서휘의 아버지 서검(유오성)이 그의 무술 스승이었지만 그가 군량미를 착복했다는 누명을 씌워 죽게 만든 것도 그였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서검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방원은 자신이 만인지상에 서야 하기 때문에 자신보다 두려운 존재들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가장 정점에 설 수 있게 하는 권력. 그것이 이방원의 나라였다.

 

자신의 나라를,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든 희생시킬 수 있다 생각하는 건 이성계(김영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서검의 부하들을 자극해 이방원을 밀어내기 위한 이른바 ‘상왕의 난’을 계획했다. 서검의 부하들을 자극하기 위해 서휘가 이방원에 의해 죽은 것처럼 꾸미려 했다. 이방원도 이성계도 사람보다 권력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그들의 나라였다.

 

하지만 자신이 지켜야할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알고 있고, 또 자신이 죽지 않으면 저들마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서휘는 홀로 이방원을 찾아가려 했다. 그런 서휘와 함께 한 건 남선호였다. 남선호는 서얼 출신의 벽을 넘기 위해 심지어 친한 동무였던 서휘까지 배신했었던 인물이지만, 결국 알게 됐다. 자신이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의 나라가 바로 서휘 같은 동무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자신들을 막아서는 관군들을 뚫고 가까스로 이방원 앞에 서게 된 서휘는 자신의 사람들을 놓아달라고 했고, 이방원은 그 뜻을 들어주는 대신 서휘의 목숨을 요구했다. 기꺼이 죽겠다는 서휘의 말에 이방원은 “네가 모두를 살렸다”고 함으로써 이 치열한 싸움이 끝이 났다는 걸 알렸다. 서휘는 남선호의 곁으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했다.

 

<나의 나라>가 이성계와 이방원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이야기를 가져와 하려던 이야기는 뭘까. 그건 역사에 기록된 저들의 나라가 있었다면 역사에 기록되진 않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민초들도 저마다 지키려 했던 저마다의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건 다름 아닌 자신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큰 위험에 처하지 않고 배곯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나라. 민초들이 원하는 나라는 그것이었다.

 

이것은 어쩌면 현재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누가 대권을 잡고 어느 정당이 의석 수 과반을 차지하는가가 우리네 보통의 서민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다만 매일 같이 허리가 휘도록 일하면서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저들의 권력 다툼 속에서 희생되지 않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싸워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겐 저마다 지켜야 할 나라고 있다. 비록 깨지고 부서져도 각자의 나라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곧 삶이기에 그렇다.’ 희재(김설현)가 서휘를 그리워하며 생각한 것처럼, 우리에게 각자의 나라는 우리의 삶이고 생계이고 밥이다. 소중한 사람들의 그것을 지켜주기 위해 때로는 제 목숨을 기꺼이 내놓을 정도로 포기 못하는.(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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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

 

결국은 작품인가.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드라마의 규모는 성공과 직결되는 요소로 꼽히기 시작했다. 몇 백 억이 들어간 드라마들이 이제 우리에게도 익숙해지기 시작했던 것. 하지만 기적 같은 성공을 거둔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면 역시 작품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화려한 외형이나 규모가 아니라.

 

옹산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동백(공효진)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 <동백꽃 필 무렵>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로 경쾌하게 시작하지만, 까불이라는 희대의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면서 추리극과 스릴러 장르를 껴안았고 그를 잡기 위한 반전의 반전 스토리가 이어졌다. 여기에 어린 시절 동백을 버리고 떠났다 다시 찾아온 엄마 정숙(이정은)의 이야기는 가슴 먹먹한 가족드라마를 보여줬고, 동백과 그 엄마를 챙기고 지키려는 옹산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휴먼드라마의 면면을 더해줬다.

 

사실 장르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지만 이처럼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갖고 있다는 건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달달한 멜로와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소름끼치는 스릴러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추리가 적절히 섞였고,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결국 <동백꽃 필 무렵>이 한 이야기는 사회적 잣대에 의해 편견어린 시선 때문에 위축된 삶을 살아가는 그 어떤 존재들도 모두 저마다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왔고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동백과 그 엄마 정숙이 행복하게 다시 살 수 있기를 시청자들을 바랐고 옹산 사람들도 바랐다. 이 두 지점이 맞닿은 곳에서 이 드라마의 커다란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화려한 도시의 이야기도 아니고, 눈 돌아가게 모든 걸 갖춘 멋들어진 캐릭터들의 이야기도 아닌 시골 마을의 촌스러운 캐릭터와 그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이토록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말했듯이 그저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 그 기적은 잘 들여다보면 사람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겹쳐져 일어나는 결과일 뿐이다.

 

그 기적의 중심점에 있는 인물은 단연 이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다. 이미 <쌈, 마이웨이>에서부터 남다른 감수성으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이 작가는 <동백꽃 필 무렵>을 통해 확고한 자기 세계를 드러냈다. 소외되어 시선조차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어느 들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동백꽃을 피워내는 볕 같았다.

 

그렇게 볕을 받아 연기자들의 연기가 피어났다. 동백 역할로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은 공효진과 ‘촌므파탈’이란 신조어에 걸맞는 연기를 보여준 강하늘, 엄마 역할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던 이정은과 고두심, ‘옹벤져스’라 불린 옹산 아주머니 역할을 맛깔나게 연기해낸 김선영, 김미화, 이선희, 백현주, 찌질한 남편과 걸크러시 아내 케미로 사랑받은 오정세, 염혜란, 인생캐릭터 만난 손담비에 시골 파출소장으로 큰 웃음을 줬던 전배수, 미워할 수 없는 아빠 역할의 김지석과 관종 역할의 지이수 그리고 이 드라마의 빼놓을 수 없는 미친 존재감 필구 역할의 김강훈과 마지막 부분에 빛을 발했던 까불이 이규성과 그 아버지 신문성까지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줬다. 어디 하나 치우치지 않고 내려 쬐는 공평한 볕처럼 작가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많은 옹산 사람들의 마음들이 모여 까불이를 잡고 동백의 어머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듯이, 작가를 위시해 연출자, 연기자와 스텝들까지 그 마음이 하나가 되어 드라마를 살려내는 기적을 만들었다. 사실 KBS 드라마는 그간 너무 깊은 부진을 겪었고 그래서 좀 더 강한 대작들의 지지를 받아야 회생할 수 있을 것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동백을 지킨 건 동백 자신이었던 것처럼, KBS 드라마는 KBS적인(작가도 연출자도 또 스토리까지도) 힘으로 자신을 지켜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그 기적은 결국 화려한 외형이나 외부의 힘이나 규모가 아닌 사람이 만들어낸다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은 보여줬다.(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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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벌 같았지만... ‘동백꽃’ 이정은이 준 큰 위로

 

“못해준 밥이나 실컷 해먹이면서 내가 너를 다독이려고 갔는데 니가 나를 품더라. 내가 네 옆에서 참 따뜻했다.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네가 다 하는 이유는 용서받자고가 아니라 알려주고 싶어서야. 동백아 너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어. 버림받은 일곱 살로 남아 있지 마.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 말고 훨훨 살어. 훨훨.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없이 사랑했어.”

 

KBS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정숙(이정은)이 딸 동백(공효진)에게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에는 그렇게 쓰여 있었다. 일곱 살 딸을 버리고 간 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졌을까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편지에 담긴 정숙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술 취하면 폭력적인 남편을 버티다 동백까지 다치게 되자 집을 나온 정숙은 갈 곳이 없었고, 룸살롱 쪽방에서 딸과 함께 지냈지만 그 곳은 어린 딸이 지낼 데가 아니었다. 그 어린 아이가 “오빠” 소리를 배우고 따라했으니.

 

술집 언니들 식모 노릇하며 살았는데 그 곳도 쉽지 않았다. 자꾸 뛰쳐나와 갈 곳도 없는 모녀는 은행을 전전했고 공짜로 주는 박카스를 지겹도록 마셨다. 끝없이 배 고프다는 아이 옆에서 엄마는 결국 절망했다. 자기가 아이를 데리고 있다가는 아이마저 죽일 것 같았던 것. 결국 엄마는 딸을 살리기 위해 버려야겠다 결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보육원으로 보낸 후에도 정숙은 계속 딸이 어떻게 지내는가를 살폈고 알고 보니 입양 후 파양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새 엄마가 아이의 그늘에서 술집에서 지냈던 걸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찾은 딸이 진짜 술집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마는 마음이 아팠지만, 동백이 밝게 웃고 있는 걸 보면서 엄마는 안심했다. 그렇게 긴 세월을 지나 정숙은 동백의 앞에 서게 됐던 거였다. 함께 지낸 세월이 고작 7년 3개월이라며 신장 이식을 받지 않겠다 버티는 정숙에게 ‘7년 3개월짜리 엄마’라고 부른 동백은 그 기간이 짧았어도 행복했다고 말했다. 동백은 아마도 그 나머지 엄마가 자신과 떨어져 지냈던 34년간이 못내 아프고 화가 났었을 게다.

 

하지만 엄마의 삶은 딸보다 더 아팠다. 그에게도 7년 3개월만이 유일한 삶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그 시간이 마치 “적금 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 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야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아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독살 맞은 세월도 다 퉁 되더라.” 세상에,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았다니.

 

엄마에게 버려져 고아에 미혼모로 살아오며 갖가지 편견 속에서 힘겨웠던 동백의 이야기는 이제 그 딸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지독한 가난과 그 후로 내내 불행한 삶을 살아왔던 엄마 정숙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백꽃 필 무렵>이 정숙의 이야기로 시청자들에게 하려는 메시지는 뭘까. 도대체 이 정숙의 가슴 아픈 사연의 무엇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이토록 후벼 파는 것일까.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흔히들 말하는 우리들은 때때로 나의 불운이 태생에서부터 결정됐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건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지만, 그런 문제가 야기하는 불행과 비극을 우리는 개인이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 현실이 너무 어려워 때론 삶을 비관한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위축되고 좀체 제대로 날개를 펴지도 못한다. 그래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심지어 사는 게 벌 받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동백꽃 필 무렵>의 정숙은 온 몸으로 보여준다. 누구나 저마다 사랑받지 않은 존재는 없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은 존재는 없다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건 엄마와 자식 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먼저 떠나버린 향미(손담비)도, 심지어 연쇄살인범조차도 그를 안타까워하고 걱정하는 누군가는 있을 테니 말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 주는 큰 위로는 바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존재의 꽃을 피워내는 빛이 늘 어딘가에서 비춰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있어서다.(사진:K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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