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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이끄는 힘, 입체적 인물

MBC 사극 ‘이산’에서 위기에 빠진 이산(이서진)에게 홍국영(한상진)이 절실한 것처럼, 요즘 드라마들은 홍국영 같은 입체적 인물을 필요로 한다.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극적 상황 속에서 흔히 빠지기 쉬운 선악대결구도는 요즘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지 못한다. 현실이 더 이상 권선징악으로 설명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감 가는 캐릭터는 오히려 선과 악으로 단순히 나누어지는 전형적 인물이 아닌 양측을 포괄하거나 그 선을 왔다갔다하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인물이 되었다. 중요해진 것은 선악이 아니라 인물을 움직이는 욕망, 혹은 인물의 목표이다.

홍국영에 쏟아지는 관심, 왜?
그런 점에서 홍국영에 쏟아지는 공감은 당연하다. ‘이산’이란 드라마는 오히려 선악구도가 너무나 명확한 드라마다. 이산을 중심으로 한 성송연(한지민), 박대수(이종수), 남사초(맹상훈) 같은 인물군들은 모두 선이며, 이산의 반대편에 선 정순왕후(김여진), 화완옹주(성현아) 같은 인물군들은 악이다. 모두 선악이 분명한 인물들이다. 여기서 악은 강하고 선은 약하기에 드라마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단순구도로는 이병훈 PD 특유의 미션 해결 구조의 드라마가 쉬 지루해질 수 있다. 그것은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해지는 인물이 선악으로 구분되기 어려운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이산’의 초반부에 이런 역할을 해온 인물은 영조(이순재)다. 그는 이산의 할아버지면서도 이산의 강력한 시험으로 자리잡았고, 그 힘은 대결구도의 단순함을 무마해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영조가 이산의 손을 들어버렸고, 그의 시험이 좀더 강력한 군주의 탄생을 위한 조련과정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즈음에서 홍국영이란 인물의 등장은 적확하면서도 효과적인 장치라 할 수 있다.

홍국영은 캐릭터로 보면 이산의 착한 인물들(?)을 대신해 손에 피를 묻히는 인물이다. 그는 처음부터 대의만을 내세워 이산 밑으로 오지 않았다. 정후겸(조연우)과 이산의 양 갈래 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고민했던 인물이다. 그만큼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인 홍국영은 이산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도맡아 한다. 정치적인 대의를 중시하는 군주 이산의 현실적인 측면을 보강해준 것이다. 홍국영은 지금의 입장이 이산의 든든한 두뇌 역할이기 때문에 선의 한 측면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정후겸과 같은 부류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냉철하게 자신의 욕망을 추구해나가는 인물이지만 드라마는 단순히 홍국영을 야심가로서의 한 측면만을 조명하지 않는다. 때론 ‘꼴통’이니 ‘개소리’같은 리얼리티쇼를 방불케 하는 거친 현실감이 넘치는 대사들을 쏟아내면서 서민적이고 서글서글한 모습까지 갖게된다. 홍국영의 출연은 대의 중심의 단순한 대결구도를 벗어나, 욕망 중심의 대결구도를 새롭게 만들어낸다. 사실상 입장만 다를 뿐, 똑같이 욕망을 추구하는 홍국영과 정후겸의 두뇌게임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드라마는 입체적 인물의 힘으로 굴러간다
이러한 드라마 속 입체적 인물들의 역할은 단지 ‘이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왕과 나’의 조치겸(전광렬),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문소리)는 물론이고 현대극 속에서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박희순)까지 그 사례가 될 것이다. 먼저 ‘왕과 나’를 이끌어 가는 힘의 중심 축으로서 조치겸(전광렬)이 서 있는 이유는 그 복합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 때문이다. 조치겸은 ‘욕망 하는 내시’로서 희대의 역적처럼 보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군주와 백성 사이에 그 어떠한 사특한 무리들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대의를 가진 충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태왕사신기’의 서기하는 사랑하는 사람인 담덕(배용준)과 동생 수지니(이지아)와 맞서게되는 운명을 가진 복잡한 캐릭터다. 이 역시 담덕과 사신으로 대변되는 선과 연씨 집안으로 대변되는 악의 단순구도를 깨는데 일조한다. 시청자들은 서기하의 행동들을 이해하면서도 분노하게 되는 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한편 ‘얼렁뚱땅 흥신소’의 백민철은 조폭이면서도 순간 희경(예지원)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인물이다. ‘치매를 갖고 있는 어머니’ 같은 개인적인 사연이 많은 그는 흥신소의 인물들과 부딪치면서도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복합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드라마는 실로 주인공의 힘만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조역들이 있어 주연이 힘을 발하는 것이며, 그 조역들의 캐릭터가 입체적이고 복합적일 때 드라마는 더 깊은 재미를 주게 된다. 당연한 일이지만 이들 입체적 인물을 연기하게 되는 연기자들은 베테랑일 경우가 많다. 그만큼 연기하기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왕과 나’의 전광렬이 그렇고 서기하 역의 문소리가 그렇다. 문소리는 캐스팅 논란이 일었지만 사실상 이런 어려운 심리묘사를 할 수 있는 연기자로 그녀 만한 인물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최근 ‘세븐데이즈’로 영화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박희순은 바로 이러한 입체적인 캐릭터를 타고난 연기자로 보인다.

드라마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이제 한번 보면 그 행동을 다 짐작할 수 있는 단순하고 전형적인 인물이 드라마에 설 자리는 좁아졌다. 대신 능동적인 욕망이 꿈틀대면서 언제든 변화할 수 있는 입체적 인물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가고 있다. 요즘 드라마는 때론 아이 같은 천진함을 가졌지만, 때론 욕망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전략가의 모습을 보이는 홍국영처럼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을 원한다.

Posted by 더키앙

SBS 드라마, 예능, 뉴스의 문제점과 해법

SBS의 최근 시청률 성적표(11월5일-11일 AGB 닐슨 집계)를 보면 특이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전체 시청률 상위 20위권에 들어있는 SBS 프로그램은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18.7%)’가 11위에 랭크된 것을 빼고는 전부 드라마 일색이라는 점이다. ‘황금신부(23.5%, 5위)’, ‘왕과 나(20.2%, 8위)’, ‘조강지처클럽(14.1%, 14위)’, ‘아침연속극 미워도 좋아(13.6%, 18위)’가 그 드라마들이다. 물론 전체적으로 드라마가 대부분 상위 랭킹에 들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각 방송사별로 몇몇 예능프로그램이 자리하고 있는 점을 보면 이례적이라 할 수 있다.

MBC는 ‘무한도전(21.9%, 7위)’, ‘황금어장(15.3%, 12위)’의 예능과 ‘태왕사신기(29.5%, 3위)’, ‘이산(22.5%, 6위)’같은 드라마가 고루 포진해있고, KBS는 미니시리즈가 어렵다고는 하나 일일연속극의 절대 강자 ‘미우나 고우나(32.5%, 1위), 대하드라마 ‘대조영(32.2%, 2위), 그리고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26.9% 4위)’가 굳건하고, 전통적으로 강한 ‘KBS 9시 뉴스( 19.1% 10위)’가 있으며 여기에 다채로운 예능프로그램들(비타민, 해피투게더, 우리말 겨루기, 퀴즈대한민국, 개그콘서트)이 20위 권에 들어있다.

하지만 기대주였던 ‘로비스트’와 ‘왕과 나’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현재 드라마마저 하향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 SBS는 인정하기 어려운 뼈아픈 일이지만 총체적인 난국을 겪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개국부터 새로운 도전정신과 시도로 독특한 컨셉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SBS. 능력은 있으되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하는 SBS의 상황은 저 ‘왕과 나’의 김처선이 갖고 태어났다는 삼능삼무(三能三無)의 운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도대체 무엇이 SBS를 삼능삼무의 상황으로 몰고 왔을까.

일능일무(一能一無) - 기획은 창대하되 완성도가 떨어지는 드라마
SBS의 드라마 기획은 방송3사를 통틀어 가장 도전적이고 도발적이다. 그것은 현재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들의 면면을 보기만 해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라이따이한을 등장시켜 다문화 사회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한 ‘황금신부’, 왕조중심의 사극에서 탈피해 내시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는 취지의 ‘왕과 나’, 대작드라마로서 로비스트라는 독특한 직업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낸 ‘로비스트’ 등은 그 기획만 가지고 본다면 대단히 야심찬 시도라 할만하다.

이러한 독특한 기획의 성공은 사실상 SBS 드라마들의 최대 장점이다. 전문직 장르 드라마와 우리네 멜로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봉합시킨 ‘외과의사 봉달희’는 물론이고, 대부업(쩐의 전쟁)이나 교육문제(강남엄마 따라잡기) 같은 주로 사회적인 문제나 이슈들을 소재로 끌어들이면서 사회적 관심까지 유도하려 했던 사회극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기획의 장점은 실제 기획대로 드라마가 구현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단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왕과 나’가 가진 기획 포인트인 내시의 시각은 사극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로비스트’는 과도한 볼거리에 스토리가 매몰 당한 형국이 됐다. 그나마 ‘황금신부’가 선전하고 있지만 이것은 애초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전통적인 드라마들의 코드들(출생의 비밀 같은)을 잘 엮어낸 결과이다. 역대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연애시대’가 SBS의 드라마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SBS 드라마는 최근의 시청률 하락을 통해 이제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기획의 창대함보다는 내실 있는 완성도라는 걸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능이무(二能二無) - 시작은 했으나 조기에 문닫는 예능 프로그램
한 때 SBS는 예능 프로그램의 강자로 군림했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들이 ‘야심만만’, ‘진실게임’, ‘X맨’등이다. 하지만 현재를 보면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최강자로 군림했던 ‘X맨’이 종영하고 나서 그 멤버들은 타 방송사의 프로그램 속으로 편입되었다. 현재 예능프로그램의 최강자로 자리잡은 MBC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무릎팍도사’와 KBS‘1박2일’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호동은 모두 ‘X맨’이 배출한 스타들이었다. 리얼리티쇼가 대세가 되고 있는 현재의 예능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 캐릭터의 형성에 ‘X맨’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현재의 SBS 예능프로그램의 난항은 그 후속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한 자책의 결과라는 걸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 자책감의 결과일까. 최근 SBS의 예능 프로그램들은 두 방향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증’이다. 최근 들어 ‘SBS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파일럿’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로 프로그램들이 몇 달(심지어는 몇 회)을 넘기지 못하고 폐지되고 있다. ‘X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간힘은 저 ‘슈퍼바이킹’ 같은 컨셉트 부재의 프로그램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최근 ‘하자고’, ‘작렬 정신통일’, ‘옛날 TV’, ‘대결 8대1’, ‘스타킹’등등의 예능 프로그램의 조기종영(?)은 이 조급증이 극에 달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또 하나의 압박은 ‘야심만만’, ‘진실게임’같은 장기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이 좀체 현재에 맞는 옷을 입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매여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들의 홍보 프로그램논란이 나왔을 때부터 ‘야심만만’의 문제는 지적되었다 보아야 한다. 하지만 ‘야심만만’은 과거나 지금이나 연예인들이 등장해 신변잡기를 논하고, 홍보의 장으로서 활용되고 있다. ‘진실게임’의 경우는 그 구태의연한 포맷에 더해서 심각한 소재부족의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같은 제목이라도 계속해서 발빠르게 새로운 포맷을 시도하는 타 방송사(‘지피지기’같은)와는 너무 다른 행보라 할 수 있다.

SBS의 예능프로그램들은 지금 예능의 지존이 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무한도전’은 초반 시청률 4%에서 시작해 현재 25%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자리잡기까지 꽤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결과가 ‘무한도전’이라는 점이다. 또한 중요한 건 그 시간 내내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무한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 같은 다양한 포맷실험을 통해 현재 위치에 서게 되었다. 쏟아져 나오는 예능프로그램 속에서 필수적인 건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지만, 또한 그것이 정착될 때까지 기다려주고 변화가 필요할 때 변화를 만들어주는 끝없는 노력이 없는 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공은 점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삼능삼무(三能三無) - 도전적 뉴스 시간대, 참신함이 없는 뉴스
200여명에서 많게는 300명에 이르는 보도국이 만들어내는 뉴스의 시청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은 지금 방송사들의 최대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뉴스를 이대로 존속시켜야 하는가 하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뉴스는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자체적으로 소화하느냐 아니면 외주로 만드느냐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운 방송사는 KBS 뿐이다. 공영방송이라는 이미지 탓이기도 하지만 그 시간대에 뉴스를 관성적으로 틀어놓는 시청자들의 패턴 속에서 KBS는 확실히 타 방송의 뉴스보다 우위를 갖는 장점이 있다.

뉴스의 존폐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 생각되지만, 관심을 끌지 못하는 뉴스가 더 이상 뉴스의 기능을 하고 있는가 하는 고민은 해야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녁 8시라는 도전적인 뉴스 시간대로 시작한 SBS가 왜 현재는 최하위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여러모로 9시라는 뉴스 시간대보다 1시간 빠르다는 점은 엄청난 이점을 갖는다. 선 보도라는 장점 이외에도 8시라는 다른 시간대는 뉴스의 좀더 자유로운 포맷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8시 뉴스는 기존 9시 뉴스의 틀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다. 오히려 ‘MBC뉴스데스크’는, 좀더 시각적인 뉴스 포맷이나 주말 뉴스판의 여성 앵커 기용 등의 도전을 하고 있는 형국. 현재 고작 20여명이 만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SBS 8시 뉴스’ 시청률이 7, 8%에 머물고 있는 점을 잘 새겨볼 필요가 있다. SBS에 의해 초기 도전적으로 시도되었던 VJ(비디오 저널리스트)시스템은 ‘순간포착’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뉴스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8시 뉴스는 그 시간대가 말해주는 초심으로 돌아가 거기에 맞는 도전적인 참신함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가장 늦게 공중파에 합류한 SBS는 도전적인 자세로 가장 안정적인 삼각경쟁구도를 만들어낸 방송사다. 따라서 충분히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저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능력이 있어도 제대로 쓰여지지 않으면 자칫 삼능삼무의 무위에 그칠 수도 있다. 위기는 기회라는 점에서 지금의 위기를 제대로 직시하는 것은 문제 해결의 발판이 될 것이다. 부디 삼능삼무(三能三無)가 삼능삼능(三能三能)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더키앙

방송위의 중간광고 범위 확대 결정,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방송위원회는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의 중간광고 범위를 확대키로 결정했다. 이게 시행되면 이제 드라마를 보다가 중간에 갑자기 툭 끊기고는 흘러나오는 광고를 참고 봐야 된다. 방송위가 이를 결정한 명분은 이렇다. ‘다매체시대 신규매체 성장으로 인한 방송환경의 변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전환 및 공적 서비스 구현을 위한 안정적 재원 확보, 방송시장 개방에 따른 방송산업 경쟁력 강화’가 그것이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이 결정은 그저 돈을 더 벌겠다는 뜻이 아니고 다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방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란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걸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그런데 이 중간광고 범위 확대가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보면 방송위의 결정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 간다. 광고 송출의 방식은 고스란히 컨텐츠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시청률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미드(미국드라마)의 경우, 중간광고가 가져온 파장은 컨텐츠에도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중간 중간 끊기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더 속도감 있는 진행을 가능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컨텐츠의 경쟁력을 높였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광고에 대한 컨텐츠의 종속이 강화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TV 프로그램의 실체라고 얘기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프로그램들 사이에 끼워진 광고를 보고 있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부정적인 시각이지만 상업적으로 치닫고 있는 프로그램들의 실체는 분명 이 광고에 의한(겉으로는 시청률로 말해지는) 영향력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방송위가 필요한 것이다. 즉 방송위의 존재이유는 바로 이렇게 상업화되어 가는 방송에 공익적인 방향성을 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방송위가 존재하는 것은 TV를 공공재로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방송위의 이 결정은 과연 그런 인식 기반 위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결정은 방송위 자체의 존재이유 기반을 흔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광고도 하나의 컨텐츠라고 하지만 더 많은 광고를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은 없다. 그것도 프로그램 중간에 끼어 드는 광고는 그 새로운 형태로 인해 프로그램 자체의 상업적인 입지만 더 공고히 해줄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외주제작이 일반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시청률 경쟁의 불꽃은 고스란히 바깥으로도 튈 것이 분명하다. 광고수주를 결정짓는 시청률에 의한 과당경쟁은 컨텐츠의 질을 높여주기는커녕 폐해만을 만들  뿐이다.

공중파 방송의 상황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그 원인이 단순히 재원부족에서 비롯되었다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방만한 경영에 더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KBS의 시청료 인상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시각과도 일치할 것이다. 도대체 시청자들을 위해 더 많은 광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늘 어려운 시기마다 시청자들에게 손을 벌리는(사실상 손을 벌리기보다는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는 표현이 맞다) 이런 결정은 TV가 공공재라는 이제 겨우 남은 작은 옷마저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방송사들의 인식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Posted by 더키앙

소녀그룹, 아역스타의 인기, 그 이면

상큼하고 깜찍한 어린 소녀들이 언발란스하게 디스코 춤을 추면서 “텔 미~”를 연발한다. 이름하여 원더걸스. 누가 봐도 영락없는 아이들(idol)스타들이지만 좋아하는 팬층은 10대에 머물지 않는다. 20대 젊은이들부터 40대 아저씨들까지 다양하다는데 한 편에서는 이런 어른들의 소녀 취향(?)을 가지고 ‘로리타 콤플렉스’까지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특별한(?) 성적 취향을 가진 소수라면 모를까, 다수의 아저씨들이 원더걸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로리타 콤플렉스로 설명하려 드는 건 과장된 해석이라 생각된다.

헬로 키티와 원더걸스는 닮았다
이 소녀그룹에 대한 아저씨들의 열광은 오히려 캐릭터 비즈니스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연예 엔터테인먼트를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할 때, 연예인들은 하나의 캐릭터 비즈니스의 일환으로서 소비된다. 드라마가 됐건, 영화가 됐건 컨텐츠에 등장하는 스타들은 배역에 맞는 이미지를 새롭게 갈아입고 대중들에게 제시된다. 기존에 대중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로 각인된 스타는 새로운 컨텐츠에 대한 시장진입 리스크를 줄여준다. 대중문화 속 아이들(Idol)이란 마치 팬시한 상품을 대중들이 좋아하듯이 그 자체가 캐릭터 상품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

최근의 소녀그룹은 하나의 새로운 캐릭터 트렌드라고 볼 수 있다. 그 캐릭터는 ‘청순→발랄→섹시→도전’을 거쳐 이제 ‘상큼 발랄’의 이미지로 변모했다. 소녀그룹의 연령대가 20대에서 10대로 내려온 것은 소비되는 이미지의 이런 변화로 설명된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 어린 아이돌스타라는 컨셉트의 상품이미지에서 언뜻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키덜트(kidadult, kid와 adult의 합성어로 20, 30대이지만 여전히 어린 감성을 가진 어른) 문화상품의 이미지다. 어른들에게도 여전히 소비되는 미키 마우스나 헬로 키티 같은 문화상품.

이렇게 캐릭터 지향적인 소비가 반대로 보여주는 것은 음반시장의 퇴행이다. 과거의 가수라 함은 노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는데 이제는 가수가 하나의 캐릭터 이미지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원더걸스의 ‘텔 미’는 특별한 가사의 내용이 없다. 그저 “네가 날 사랑할 줄은 몰랐다. 그게 너무 좋다. 그러니 자꾸만 말해 달라.” 그런 내용의 반복이다. 가사에 걸맞게 음률도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이것은 디스코 같은 복고를 지향한 뮤비 컨셉트와 캐릭터 컨셉과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다분히 기획된 것이다. 구닥다리의 느낌에 쉽고 친숙한 노래는 오히려 캐릭터 컨셉트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준다.

솔직한 미숙함이 가진 리얼리티라는 파괴력
캐릭터 컨셉트를 키덜트 문화상품으로 포장한 것은 ‘원더걸스’라는 이름과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조금은 어색한) 원더우먼 캐릭터에서도 드러난다. 복고적이며 다분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캐릭터 이미지를 차용하자 원더걸스는 이제 단순히 10대 아이들 스타가 아니라 30, 40대에게도 소비될 수 있는 캐릭터가 된다. 이처럼 젊은 연령대와 나이든 연령대의 양자를 소비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은 키덜트 문화상품 마케팅의 장점이다. 이것은 여러 세대가 동시에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어떤 소통의 창구로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에서는 지나친 상품화의 결과로 보기도 한다.

이밖에도 원더걸스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컨셉트는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솔직한 리얼리티’라는 점이다. 음반기획사에서 ‘만들어진’ 아이들 스타들의 문제는 리얼리티가 떨어진다는 데 있다. 이 말은 너무 상품화된 캐릭터로 보여지기 때문에 구매에 있어서 때론 거부감이 느껴진다는 말이다. 하지만 원더걸스는 좀더 날것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솔직함으로 제시되고, 현재의 모든 대중문화상품의 기본 컨셉트가 되는 리얼리티를 담보한다. 이렇게 되면 캐릭터에 대한 매력이 있는 한, 노래가 어설프든, 춤이 어설프든 그것은 또 다른 매력으로 전환된다. 호감가는 솔직한 미숙함은 때론 앞으로의 성장가능성까지 기대하게 만든다.

키덜트 문화가 양산하는 어덜키드
키덜트 문화가 장난감이나 완구시장 같은 전통적인 캐릭터 시장에서 이제는 대중문화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어덜키드(애 어른)의 양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대중문화 속의 캐릭터는 바로 사람이기 때문에 키덜트 문화가 요구하는 것은 어린 나이의 소녀나 소년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 사극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아역스타들을 보면 어덜키드 문화의 탄생을 예감케 된다.

어린 제왕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유승호, 비련의 여주인공 윤소화를 연기한 박보영, 성인 못잖은 멜로 연기를 펼친 어린 김처선 역의 주민수, 여기에 성인 악역 못잖은 섬뜩함을 연기한 어린 정한수 역의 백승도, 놀라운 감정연기를 보여준 이산 역의 박지빈 등등의 아역스타들에게 대중들이 놀라는 것은 그 ‘성인 못잖은’ 연기력이다. 이 사극들의 어린 연기자들만 모아놓고 보면 성인 사극의 아이 버전을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키덜트 문화의 대중문화 침투는 이제 소년, 소녀들이 문화상품의 첨병으로 소비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국민여동생이란 미명 하에 어린 캐릭터 이미지로 소비되었던 문근영이 ‘댄서의 순정’이라는 복고적인 느낌의 영화 속에 등장했을 때 이미 예기되었던 것들이다. 문화상품이란 유행을 타는 것이기에 그걸 가지고 뭐라 하긴 그렇지만, 우려되는 것은 자칫 키덜트 문화가 가져올 수많은 어덜키드가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하나의 바람직한 전범으로 제시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아이는 그래도 아이다워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리얼리티의 늪에 빠진 TV

늦은 시각까지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사무실. 한 워킹맘이 아픈 아이의 화상전화를 받는다. 아이는 물수건을 이마에 대고 누운 채, “엄마 언제 와”하고 애처롭게 묻는다. 아이의 모습에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가 “금방 갈 게”하고 말한다. 제 일처럼 걱정해주는 동료들에게 “많이 아픈가봐요”하며 회의실을 나선 워킹맘. 갑자기 표정이 180도 달라진다. 아이가 영상통화를 통해 말한다. “엄마 나 잘했지?” 아이와 엄마가 만세를 부르고 이어 “쇼를 하면 엄마의 퇴근이 빨라진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다.

최근 새로운 영상시대를 예고하는 듯한 이 캠페인성 광고는 현재의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주창하기 시작한 ‘리얼리티’의 실상을 보여준다. 화상전화처럼 영상이 생활이 된 세상에서 살게되면서, TV는 아이의 실제 같은 연기처럼 리얼리티를 주장해야 먹히게 됐다. 하지만 그 리얼한 화면으로 목적을 달성한 연후에 남는 개운치 않은 기분은 왜일까. 그것은 이 광고가 스스로 주장하듯, ‘쇼’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진짜가 아닌 쇼였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쇼를 하라!”고 권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 리얼리티도 허용되는 세상에 살게 된 것일까.

요즘 TV의 화두는 ‘리얼리티’다. UCC처럼 대중화된 영상시대 속에서 연출된 화면에 대한 식상함과 TV보다 더 리얼한 사건사고들이 가득한 사회가 요구한 결과다. 그것은 쇼 프로그램에서부터, 개그 프로그램, 예능 프로그램, 심지어는 광고에까지 광범위하게 침투해있다. 리얼리티쇼의 전조를 보였던 ‘몰래카메라’는 늘 터져 나오는 진실공방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표방하고 나선 ‘무한도전’의 성공으로 TV 쇼 프로그램들은 저마다 리얼리티를 외치고 있다. 현장의 리얼리티를 강조하며 등장한 무대개그프로그램들은 이제 정해진 대본조차 최소화시키며 애드립을 강조한 실시간 개그(애드리브라더스 같은)를 선보이고 있다. 케이블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가짜로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가짜 다큐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이 주장하는 리얼리티는 진실일까. ‘무한도전’이 얘기하는 리얼리티는 거기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실제 맨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미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속에서 캐릭터화된 개그맨들이 그 설정 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애드립을 구사하는 것일 뿐이다. 애드립을 강조한 ‘애드리브라더스’ 역시 완전한 실시간 개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어느 정도의 포맷 안에서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케이블의 가짜 다큐들은 다큐가 가진 리얼리티의 현장성을 자극적인 장면들을 끌어내기 위한 연출의 방식으로 쓴다는 점에서 위험수위에 도달해있다.

TV 프로그램들이 일제히 리얼리티를 표방한 쇼를 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실제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나 뉴스보도는 외면 받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것은 현장의 이야기가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UCC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인터넷뉴스의 영향이 크지만, 또한 리얼리티를 쇼의 차원으로 끌어들이면서 TV 스스로 신뢰성을 훼손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짜 리얼한 영상들이 매일같이 튀어나오는 인터넷(최근에는 여기에도 거짓영상들이 나오고 있지만)과 경쟁하면서 TV가 리얼리티쇼(진짜 리얼리티가 아닌)는 재미는 가져왔지만 방송 최대의 무기일 수 있는 신뢰성을 떨어뜨렸다.

리얼리티의 늪에 빠진 TV, 쇼하는 TV에서 이제 불거져 나오는 것은 진위 공방이다. 과거라면 그저 지나쳤을 연예인의 재미를 위한 거짓말 한 마디는 진실의 도마 위에 오르고 논란을 일으킨다. 이미 포맷이 다 드러난 ‘몰래카메라’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은 실제로 속은 것인지 아니면 속은 척 한 것인지에 대한 공방이 이어진다.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벌어진 무인도 설정은 그것이 진짜 무인도였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다. 가짜 다큐 속 성 추행범의 가짜 검거 사실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는다.

쇼하는 TV가 조심해야 할 것은 저 케이티에프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의 장면이 워킹맘의 상황을 희화화하고 왜곡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것처럼 자칫 거짓말 조장하는 TV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TV를 켜면서 시청자들은 그 영상이 갑자기 잠을 자다 벌떡 일어나 휴대폰에 입김을 불어넣어 뽀샤처리(포토삽 효과 처리)를 하고 최대한 얼굴을 멀리 둔 채 전화를 받는 에스케이텔레콤의 ‘영상통화 완전정복 - 화면조정 편’처럼 조작된 것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금도 계속 울려 퍼지는 “쇼를 하라!”라는 명령어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을 하라!”는 얘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진자료 : KTF Show ‘대한민국 보고서 - 육아문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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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사회극, 사극 속에서 계속되는 멜로의 실험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대변되는 외국드라마 전성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드라마의 문법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제작비에 완벽한 사전제작으로 꽉 짜여진 완성도 높은 외국드라마들을 보다가 무언가 어수룩한 우리 드라마를 보면 단박에 그 열등감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쌓아온 공력은 적지 않다. 그것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미드, 일드는 정답이고 우리 드라마는 오답이라는 편견은 어딘지 부적절해 보인다.

모든 멜로가 죄인은 아니다
특히 멜로에 강점을 가진 우리 드라마들이 어느 순간부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은 미드, 일드가 준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쿨해 보이는 그네들의 드라마를 보면서 왜 우리는 매번 똑같은 삼각 사각 구도에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눈물이나 짜는 그런 드라마밖에 없는가 하는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우리의 멜로드라마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 ‘멜로드라마 = 식상한 것’이라는 등식으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들 역시 시청률의 무덤에 던져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90일 사랑할 시간’같은 실험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청률 실패이다. 소재만으로 보면 불륜에 불치 코드가 뒤섞여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직조해냈다. 하지만 당시 멜로드라마라고 표방하기만 하면 하나같이 철퇴를 맞는 분위기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역시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멜로라는 말은 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대로 드라마들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았을 뿐, 멜로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으로 식상한 틀을 벗어버린 멜로는 다양한 외투를 입고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장르 속으로 들어온 멜로
미드, 일드의 영향으로 등장한 우리네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히트’는 범인을 좇는 이야기만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것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의 닭살 멜로였다. 차수경에게 ‘바보팅이’라고 말하는 김재윤의 모습에서 저 미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나, 일드의 쿨한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식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한 귀여운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 그 중심에 봉달희(이요원)와 버럭범수 안중근(이범수)의 멜로드라마를 접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네들의 톡톡 튀는 사랑법이 병원이란 공간에서 인간으로서의 의사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편 ‘에어시티’의 실패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르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데서도 패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르드라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정쩡하게 구사한 한도경(최지우)과 김지성(이정재)의 멜로라인은 드라마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종영한 본격 느와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멜로를 상당부분 뺐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섞여 있다. 이 느와르만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 그리고 서지우(남상미)의 삼각구도는 심리적으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그 양상이 사랑타령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총을 든 느와르의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회극을 표방한 멜로
한편 SBS가 계속해서 사회극을 표방한 드라마를 내놓는데는 역시 이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사회극 속에는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존재한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 기본적으로 금나라(박신양) - 서주희(박진희)의 멜로드라마를 엮었고, 여기에 공식적으로 이차연(김정화)이란 인물을 끼워 넣어 삼각라인을 만들었다. 드라마는 한창 사회적인 이슈들을 잡아나가다가 마지막회에 이르러 주인공들의 결혼식으로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양상을 보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전형적인 틀을 가진 식상한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부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마치 탐구라도 하듯이 현미경을 들고 조명해나간다. 식상한 멜로드라마들이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중심에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사랑과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것들이 환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기에 ‘내 남자의 여자’는 사회극과 멜로드라마가 그 정점에서 만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멜로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다음, 그 화학반응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웃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당신이 아는 그 한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기본 틀은 정윤희(배두나)를 사이에 둔 백수찬(김승우)과 유준석(박시후), 그리고 유준석을 따라다니는 고혜미(민지혜)가 이루는 사각관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사각관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닌, 그 틀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이웃들(조연들)의 화학관계를 통해 그 멜로를 이어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멜로는 나타난 현상이지 목적은 인간관계 자체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식의 멜로드라마, 외면 말아야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실험과 진화는 최근 불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극의 메인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과 나’는 내시인 나, 김처선(오만석)이 왕(고주원)이 사모해온 여인 윤소화(구혜선)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새롭게 시작한 ‘이산’에서도 정조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그려진다. 현대물에서는 외면한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사극이라는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늘 식상하다는 편견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다만 새로운 외투를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그렇게 비하되거나 구닥다리로 손가락질 받을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짜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멜로드라마를 외국 드라마와 단순히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멜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틀 속에서 실험을 해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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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크 다큐와 다큐 드라마, 같은 듯 다른 길

올 초 느닷없는 성추행 동영상에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동영상이 유포되면서 언론들이 일제히 이를 보도했고, 경찰들은 ‘성추행범 검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 후, 이 퍼포먼스(?)는 고교생들의 자작극임이 밝혀졌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발칙한 고교생들이 덧붙인 말이다. “우리의 동영상을 검증이나 여과 없이 방영한 방송 등 미디어의 행태 등에 비춰 UCC 동영상의 정치·상업적 악용 가능성에 주목해달라”고 했던 것. 물론 동영상이 극장이나 TV에 어떤 영화나 드라마 같은 틀로서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현실을 오도하는 부적절함을 남긴 것이 분명하지만, 그 목적으로만 보면 진정한 ‘페이크 다큐’의 한 면모를 보인 것은 틀림없다.

페이크 다큐, 사기와 작품 사이
최근 케이블 TV를 통해 하나의 장르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위 페이크 다큐는 고교생들이 만든 동영상처럼 ‘장르 패러디’의 성격을 갖고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의 진실성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그 장면 속에 잡히는 진실처럼 보이는 사회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것이다. 고교생들이 만든 동영상은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 미디어들의 선정성을 끄집어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동영상이 어떠한 허구적 장치를 담보할 수 있는 틀이 없었다는 데서, 작품이 아닌 사기가 되었던 것이다. 1999년 인터넷을 발칵 뒤집히게 한 ‘블레이 위치’나 2006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상을 받은 페이크 다큐, ‘대통령의 죽음’은 영화라는 틀로 소비될 수 있었기에 사기가 아닌 작품이 되었다.

즉 페이크 다큐가 가진 전략적 의미는 다큐보다는 그 다큐를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영화라는 허구에 더 방점이 찍힌다. 이들 영화의 틀을 가진 페이크 다큐가 보여주는 영화적인 의미는 허구를 현실처럼 믿는 대중들에게 그것은 본래 허구였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는 데 있다. 즉 허구를 깨기 위해 다큐라는 무기를 쓰는 것이다.

환타지를 제공하는 가짜들
그렇다면 최근 케이블 TV에서 들고 나온 프로그램들을 ‘페이크 다큐’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가짜 다큐를 보여주는 것은 맞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그 그릇으로 영화 같은 허구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취하고 있다. 즉 이들 프로그램들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허구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현실이다. 이것은 마치 뉴스 프로그램 속에 선정적인 거짓장면을 넣은 후에(이것은 고교생들의 성추행 동영상을 통해 실제로 벌어졌다) 사실은 페이크 다큐였다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본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갖는 신뢰성을 무너뜨려 가면서 이들 프로그램이 얻어내려는 목적은 다른 데 있다. 현실에서라면 보기가 쉽지 않은 자극적인 장면들을 현실인 것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즉 이것은 페이크 다큐가 가진 환타지 파괴가 아니라 정반대의 방향, 즉 환타지 제공의 목적을 갖고 있다.

시청자들은 이들 프로그램 속에 ‘실제 소재를 바탕으로 제작진이 재구성한 페이크 다큐멘터리입니다’라는 자막 고지가 나온다고 해서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는 자극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실성에 있는 게 아니고 환타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람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포지셔닝 이론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드라마의 환타지를 깨는 다큐 드라마
즉 페이크 다큐는 허구라는 그릇 속에 들어가야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것이 아닌 페이크 다큐(?)는 TV가 가진 신뢰성을 저 기반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제살 파먹기와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이런 상황에 주목을 끄는 것이 ‘다큐 드라마’라는 형식을 표방하면서 만들어진 ‘막돼먹은 영애씨’다. ‘다큐’라는 진실성을 담보하는 단어에 ‘페이크’라는 정반대의 의미를 붙여 ‘페이크 다큐’가 탄생했듯이, ‘다큐 드라마’는 ‘다큐’라는 현실성에 정반대축에 있는 ‘드라마’라는 환타지가 붙어 탄생했다. 목적은 페이크 다큐와 같다. 드라마가 가진 환타지를 다큐라는 형식을 통해 깨겠다는 의도다.

‘막돼먹은 영애씨’라는 제목 역시 다큐 드라마처럼 상반된 두 의미를 갖고 있다. ‘막돼먹은’이란 단어에 연기자 이영애가 붙은 것이다. 드라마는 영애씨(김현숙)의 음성변조와 모자이크 처리된 얼굴을 보여주며 다큐의 한 틀로 시작하지만 곧 드라마 형식으로 전환된다. 즉 ‘막돼먹은 영애씨’는 다큐가 아닌 드라마라는 걸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다큐적인 속성들을 활용해 트렌디한 드라마들의 환타지를 깬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사랑은 저 트렌디 드라마의 해피엔딩과는 상반되게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다큐를 활용해 드라마의 허구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막돼먹은 영애씨’는 그 목적에 있어서 진짜 페이크 다큐의 장르적 미학을 제대로 따르고 있다 말할 수 있다.

케이블 TV들이 ‘페이크 다큐’라 부르는 프로그램들은 다큐멘터리를 표방하지만 거짓이고, ‘막돼먹은 영애씨’ 같은 다큐 드라마는 드라마라는 허구를 표방하지만 진실에 가깝다. 전자는 환타지를 더 적극적으로 끄집어내고 후자는 환타지를 부순다. 똑같이 다큐를 표방하고 있어도 양자가 그 길이 서로 다른 것은 이처럼 목적이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케이블 TV의 ‘페이크 다큐’라 불리는 프로그램들에 어느 정도의 안전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그 목적이 자극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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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개그맨의 자질, 순발력, 개인기, 연기력

모든 것은 무대개그의 시작을 알린 ‘개그콘서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그간 개그의 양대산맥으로 내려오던 ‘유머일번지’류의 콩트 개그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류의 토크쇼가 갖는 ‘안전함’의 틀을 깼다. 그 ‘안전함’이란 두 가지 측면을 말한다. 경쟁이 없다는 것과 일방향성 개그라는 것.

무대개그는 개그맨들의 무한경쟁을 알리는 신호탄인 동시에, 관객과 개그맨이 호흡하는 개그의 쌍방향 시대를 예고했다. 개그는 더 이상 스튜디오에서 안전하게 짜진 형태로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연달아 ‘웃찾사’, ‘개그야’가 같은 형식으로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른바 개그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무대개그 역시 한계의 징후들을 보이고 있다.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양한 개그를 쏟아져 나오게 했던 바로 그 무한경쟁에서 비롯된다. 경쟁하는 개그가 가져오는 개그 컨셉의 단명으로 인해 웃음은 있어도 웃기는 자는 부각되지 않는 상황을 맞게 된 것.

과도한 경쟁 속에서 참신하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이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너무 빠르게 소비되는 현상을 불러온 것이다. 지금 무대개그 프로그램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들은 계속 쳐다보고 있지 않으면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진화 자체는 발전적인 것이지만, 너무 빠른 진화는 단명을 낳는다.

무대개그의 가장 큰 영향, 리얼리티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무대개그들이 현재의 개그 프로그램들에 준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무대개그가 갖는 현장성, 대전성격, 몸 개그 같은 요소들은 ‘무한도전’이나 ‘타짱’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 직ㆍ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그 중 무대개그가 개그 프로그램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리얼리티’다.

만일 지금의 무대개그 이후, 포스트 개그 프로그램을 예측하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할 요건을 말하라면 바로 ‘리얼리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개그 프로그램만의 문제는 아닐 정도로 TV 전체 프로그램의 기본 요건이 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빼앗기는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리얼리티’에 의해 부각되는 것은 즉흥성(애드리브)이다. 짜진 틀 밖의 어떤 즉흥적인 대사가 순간적인 리얼함을 확보하면 웃음이 유발되는 것. 최근 개그 콘서트에 신설되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애드리브라더스’는 그 대표적인 형식이 될 것이다.

리얼리티와 연관되어 더 확장되어질 것으로 보이는 것은 ‘현장성’이다. 관객의 반응을 좀더 포착해내기 위해 좀더 관객 속으로 개그가 이동한다는 말이다. 무대개그 속에서 카메라가 공개홀을 벗어날 수 없다면, 그 공감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무대를 벗어나 현장 속에 뛰어드는 저 ‘막무가내 중창단’류의 현장개그가 가진 현장성이 중요해진다.

또한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개그의 인해전술(한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들의 숫자는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했다)로 이것은 개그맨들의 희소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양적으로 팽창된 개그맨들은 또한 그 속에서 살아남은 몇몇 개그맨들의 개인 브랜드화를 부추긴다. 이렇게 스타가 되어 브랜드화된 개그맨은 저 ‘무한도전’의 경우처럼 리얼리티에 흠집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실제상황인지 아니면 브랜드화된 개그맨의 연기인지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개그맨들은 참신하지만 다수 속에 익명으로 존재하거나, 유명해졌지만 브랜드화되어 식상해지는 양쪽의 압박을 받게 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개그 하는 층의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개그맨 자체가 브랜드화 되자 그 사라져 가는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일반인들(여기는 개그맨이 아닌 타 분야의 탤런트도 포함된다)의 개그 진출이 활발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이미 UCC를 활용하는 쇼 프로그램(예를 들면 스타킹 같은)을 통해 전조를 보이고 있다.

개그맨의 자질, 순발력, 개인기, 연기력
이렇게 변화되는 상황 속에서 개그맨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자질은 뭐가 있을까. 그 첫 번째는 순발력이다. 순간적인 촌철살인의 말 몇 마디와 행동 한두 개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진다. 이 순발력과 함께 강조되는 것은 개인기다. 읽고 듣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더 민감해진 세대들에게 말 개그는 아무래도 몸 개그가 가진 파괴력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게다가 몸 개그는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점점 글로벌한 환경 속에서 개그를 해야 하는 개그맨들의 필수무기가 될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티 개그의 또 한 측면은 그 반작용으로서의 콩트 개그를 촉발시킬 가능성도 있다. 오히려 꽉 짜진 틀 속에서 ‘정극을 하는 개그맨들’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 이것은 전통적으로 ‘개그맨은 연기자’라는 등식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개그맨이 만약 순발력과 개인기로 주목을 받고 점점 성장해 자체 브랜드화 된다면 그 생명력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해지는 것은 이제 연기력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담 샌들러 같은 연기파 코미디언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개그 프로그램들은 진화의 진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그 진화 과정 속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것은 다양해진 개그 프로그램들이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지만 이러한 시도들이 결과적으로는 좀더 공감을 넓혀갈 수 있는 웃음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도 실패라는 낙인을 쉽게 찍을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의 개그 프로그램은 현재 승승장구하건, 혹은 주목받지 못하건 그 살을 깎는 노력들의 융복합으로서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은 바로 ‘리얼리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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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드라마 새 지평 연 ‘막돼먹은 영애씨’의 정환석 PD

‘막돼먹은 영애씨’는 겉보기엔 거친 화면을 가진 막돼먹은 드라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가 영애씨의 외모만을 보고 그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 드라마는 다큐 드라마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케이블에서 저예산으로 시도할 수 있는 모범답안이면서도, 그것을 통해 기존 관습에 머물러 있는 드라마들에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다.
국내에서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거의 첫 번째로 시즌2가 생기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다. 시즌2가 어려운 많은 이유들 역시 이 드라마는 손쉽게 넘어서고 있다. 저비용이고, 에피소드별로 끊어지면서 연결고리를 갖는 시즌 드라마 성격을 갖고 가기 때문이다. 이제 더 까칠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영애씨의 면면을 들어보기 위해 정환석 PD를 만났다.

초심으로 끝까지 갈 것이다
- 굳이 다큐 드라마라는 형식을 취한 이유는?
▲ 케이블에서 드라마를 한다는 것이 공중파와 같을 수 없다. 스타시스템을 가져올 수도 없는 문제고. 드라마를 어떻게 차별화 할 수 있겠느냐는 측면에서 형식적인 면을 고민했다. 여기에 다큐 드라마가 갖는 외형적인 포맷이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목적에 잘 맞아 떨어졌다. 리얼한 존재들의 숨기고 싶고 가리고 싶어하는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보고자 6mm라는 좀 다소 거칠지만 리얼함이 돋보이는 시각을 구사했다. 그러다 보니 다큐 드라마라는 게 나오게 되었다.

- 다큐 드라마라는 포맷이 참신하다. 다큐멘터리의 속성과 드라마의 속성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다큐는 굉장히 현실적인 걸 잡아내는 반면 드라마는 환타지를 갖고 가기 때문이다. 이것을 붙인 이유가 혹시 우리나라 드라마 속의 환타지를 만족시켜주는 멜로 같은 형식을 파괴해보자는 목적도 있지 않았나.
▲ 드라마적인 복선이나 환타지 같은 것이 배제되고 그걸 따라가지 않더라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다큐적인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면 어떨까. 드라마로는 완성도가 좀 떨어진다 해도 다큐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리얼함을 더 높게 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 시트콤 냄새가 많이 나는데 시트콤이 많이 하는 게 장르 파괴다. 예를 들면 익숙한 장면들에서 다음에는 이런 장면이 나올 것이다 하고 기대하는데 전혀 엉뚱한 것이 나올 때 웃음이 터진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다.
▲ 아무래도 시트콤을 계속 해오던 사람이라 시트콤적인 요소가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트콤하고 다른 방법이 뭘까를 작가팀하고 자주 얘기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어떤 소재가 나올 때도 시트콤이면 이렇게 풀 텐데 하면서,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하는 경우가 많다. 정반대의 발상으로 늘 생각을 하고 있다.

- 캐스팅이 굉장히 파격적이었는데.
▲ 처음 제의를 받았던 연기자분들은 다큐 드라마라는 것에 대해 재미있겠다고 생각을 해주었다. 면면을 보면 다 A급으로 빛을 발했던 분들은 아니지만 다 연기내공과 느낌이 있는 분들이라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해보지 않겠냐는 그런 제안에 굉장히 공감을 해주었다. 따라서 오히려 설득하기가 쉬웠다.

- 영애역의 김현숙씨나 영채역의 정다혜씨 둘 다 연기라기보다는 그냥 생활 느낌이 많이 든다. 이 드라마가 주는 캐릭터의 느낌이라는 게 환타지쪽은 전혀 아니고 리얼함이 주는 정감 같은 것이다. 캐릭터로만 봤을 때는 ‘어글리 베티’나 ‘김삼순’같은 캐릭터와 유사한데 그런 드라마들은 환타지로 갔다. ‘막돼먹은 영애씨’의 경우에도 환타지가 깨졌다곤 해도 어느 정도는 가미가 된 걸로 보이는데.
▲ 처음에 생각했던 ‘막돼먹은 영애씨’는 세상에 대해서 꼬인 게 많고 그런 것 때문에 울분이 많은 여자였다. 그런 부분을 여과 없이 보여주자는 게 의도였다. 한편으로 환타지 혹은 미화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시청자분들이 받아들여 주실까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리얼해서 좋다는 느낌, 환타지가 없어도 재미요소가 있구나 하는 공감을 해주셨다. 그래서 자신감을 많이 가졌는데 현실적으로 나이 서른의 솔로 여자가 직장생활 하면서 어떤 남자라도 관계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애씨가 연하남과 연애를 하게 됐다. 애초에는 되지 않는 사랑, 짝사랑의 개념이었는데 하다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여성들을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해서 살짝 로맨스가 들어갔다. 그런데 영애씨의 눈에 하트가 그려지다 보니까 까칠함이 없어지게 되고 보통 드라마류와 비슷하게 빠지게 되는 것 같았다. 외려 로맨스로 가면 대본 만들기가 쉬웠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생각에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으로 가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30대 노처녀를 넘어 폭넓게 사회문제를 다룰 것이다
- 시즌 2에서 시즌 1과 비교해 달라지는 것은?
▲ 환타지가 없어도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감을 더 얻었다. 오히려 더 리얼하게 나갈 것이다. 좀더 까칠해진 영애가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어차피 로맨스도 벗어나지 않았나. 이것이 달라지는 하나이다. 또 하나는 이게 어느 정도 반향이 되고 했으니 이제 변죽만 올리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폭넓게 얘기해보려고 한다. 30대 노처녀의 문제뿐만 아니라 이 드라마에는 시트콤이 가진 다양한 세대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사회적인 이야기를 같이 할 것이다.

- 이 드라마에는 여성들의 연대의식, 동지애 같은 게 있는데 심지어는 회사동료도 자매로 느껴진다. 물론 남자 시청자가 재밌게 보는 부분도 있는데 그것은 샐러리맨들로서의 동지의식, 애환 같은 것이다. 시즌 2에서는 그런 측면이 많이 나온다는 얘기인가.
▲ 새로운 인물도 보강됐고 직장이나 그런 데서 공감 갈 수 있는 얘기들을 더 많이 포진하려 한다. 사실 사회에서 막돼먹은 행동을 전혀 안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하고 착하다고 해도 사람은 이기적이기에 누구에겐가는 부지불식간에 막돼먹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행동 하나로 악인으로 규정될 수 없듯이 인간은 다면성을 갖고 있다. 마초적이고 권위적인 사장도 기러기 아빠라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자기 자식에 대한 정이 있다. 그런 양면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야기들 리얼하게, 정제되지 않은 알 것 그대로 보여줄 것이다.

- 새로운 캐릭터인 정대리(정지순)가 곰과 여우를 합쳐 놓았다던데 그 캐릭터가 갖는 의미는 뭔가.
▲ 대다수 남성들을 대변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출세 지향적이고 적당히 아부 떨 줄 알면서 자기 손해보는 일 하지 않는 그런 인물이다. 또 인물 설정 자체가 위에 윤과장 같은 선배도 있지만 무서운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자신이 헤게모니를 잡으려 한다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능력도 있고 노하우도 있고. 그런데 영애는 그걸 한눈에 알아보는 거다. 동류가 동류를 알아채듯. 막돼먹은 그림자를 보게 되는 거다. 둘이 티격태격하게 되는데 어떻게 보면 대놓고 성차별 하는 그런 사람보다 더 무서운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 더 까칠해진다는 말은 풍자와 직설에서 직설쪽으로 더 간다는 말인가
▲ 내 자체가 직설적으로 무언갈 잘 표현 못하는 사람이다. 직설적으로 까대는 건 쉬운 일이지만 풍자는 기술이 필요하다. 어렵지만 그걸 지향하고 있다.

- 노출 신이 많은 영채는 이 드라마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드라마는 직장내 성희롱도 많이 나오는데 그것조차 시청자들에게는 소비되는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 그걸 비판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따라서 드라마를 보며 자아비판을 하게 되는 상황을 맞게 되는데이를 테면 영채를 성적환상으로 보다가 영애가 그걸 사정없이 부서버리는 그런 거다. 자기반성을 많이 하게 된다.
▲ 내 딸아이가 프로그램 시즌 2 제작발표회 때 남성들은 반성해야한다는 기사를 보고 이런 문자를 보냈다. ‘아빠, 여자들은 정말 반성할 게 없나?’ 보는 남자들도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은 사실은 반성해라 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에 이 드라마의 목적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오히려 여자들도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제 딸이 얘기한 것처럼 여자들은 반성할 게 없나 하는 생각을 해봤으면 한다.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하고 싶다
- 드라마를 찍으며 제일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 저예산 드라마를 표방하기 때문에 제작에 있어서 굉장히 어렵다. 60분 짜리를 단 이틀만에 아침7시부터 새벽1시까지 강행군한다. 이틀 동안 40신 42신을 찍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건 어떻게 하면 좀더 우리가 하고 싶은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거부감 없이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런 걸 공감시키고 싶은데 그 공감시킬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걸까 하는 고민. 또 늘 똑같은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전개하는 게 아니고 어떤 소재라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이 뭘까하는 그런 게 늘 고민이다.

- 6mm를 쓰는데 그걸 들고 가면 확실히 연기자들의 거부감이 덜하고 솔직해진다는데.
▲ 그렇다. 거부감이 덜해 여러 면에서 자연스런 장면들이 나오는 것 같다. 일부러 풀 샷 카메라 같은 것도 가구 밑에다 숨겨서 놓는다. 어디서 나를 잡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는 거다. 카메라 한 대면 아 저기 카메라가 있구나 할텐데 그래서 난 어깨만 나오는 구나 이럴 수 있는데 카메라 세 대가 동시에 도니까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모든 테이크를 끊지 않고 한번에 가는 위주로 하니까 최선을 다하게 된다. 끊어서 가는 것 즉 한번 더 간다는 건 연기가 된다. 연기자들 중에는 이런 방식을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편안하게 가는 편이다.

-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는 그 기존 형식을 깬다는 자체가 포인트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형식을 고민할 때 고민 끝에 나오는 순수 창작인가 아니면 다른 것들을 참고하나.
▲ 캐릭터는 아무래도 여러 드라마나 영화에서 참고를 하게 된다. 이런 것들이 있어서 거기서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형식에 있어서 물론 ‘블레어 위치’ 같은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느낌의 형식이 어느 정도 영향을 안 줬다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거 비슷한 건 어디에도 없다. 그런 것들이 다 모여서 된 거다.

- 시즌 2 이후에도 형식 고민을 계속 할 것인지. 대부분 자기 형식을 고집하는 분들이 많은데 다큐드라마란 형식을 계속 가져갈 것인지.
▲ 다큐드라마란 장르는 독특한 스타일로 계속 갔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많이 듣는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분들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 이걸로 갈 거냐면 그건 아닌 거 같다. 늘 새로운 걸 고민하는 게 내 취향인 거 같다.

- 케이블에서 할 수 있는 모범답안 같은 드라마다.
▲ 환경이 그렇게 만든 거다. 제작비만 봐도 시즌 1은 회당 3500이다. 참고로 키드갱 같은 건 회당 2억이 들었다고 한다.

- 환경이 그러게 만든 건 사실인데 케이블에서 하는 이런 시도들이 공중파에서 하지 않는 시도를 해서 결국 드라마 전체 발전에 이바지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 늘 듣는 말이 자극 받게 만들어라. 뒤통수를 쳐라. 이런 말이다. 그게 존재가치가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이 드라마는 기존 딱딱하게 굳어있는 여타의 드라마들이 주는 답답함을 깨뜨리는 통쾌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만날 똑같이 흘러가는 드라마들의 공식들에서 벗어나 어떤 반향을 일으켰을 때 주는 통쾌함이다. 그것은 이 드라마 속의 영애씨가 순간순간 주는 통쾌함과 맞닿으면서 동시에 이 드라마의 존재이유가 되기도 하다. 매번 새로운 시도, 새로운 형식, 새로운 내러티브를 고민하는 PD가 있다는 건, 우리네 드라마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고군분투 자체를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만든다.

Posted by 더키앙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

금요일 저녁, 도무지 금요드라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있었다. 정지우 작가를 주목하게 된 작품, ‘내 사랑 못난이’다. 이 드라마는 성인극과 가족극을 오가던 금요드라마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승부해 놀랄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런 그녀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후 완벽한 이웃)’을 들고 우리 옆을 찾아왔다.

‘완벽한 이웃’은 여러모로 ‘내 사랑 못난이’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 멜로 라인이 강하게 어필하면서도 그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보석 같은 우정이나 정 같은 사람관계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 사랑 못난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을 통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웃 같은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씨를 만났다.

‘완벽한 이웃’은 멜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 지난 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부분이 의외였다는 반응에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드라마는 때론 의외의 방향으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 본래 동주(박상민)와 차연(김지영)의 멜로 라인은 의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태(김유석)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시청자 분들이 호감을 갖고 봐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동주와 차연 쪽에 더 무게중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결말부분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갖게 된 거 같다.

- 호태란 캐릭터는 어쩌면 정지우 작가가 갖는 독특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보통 멜로 드라마를 보면 남녀의 연애관계로 많이 흐르는데 호태라는 인물은 의리나 우정 측면이 강한 캐릭터로 차연과 관계를 갖는다. 이 부분이 시청자분들에게는 좀 낯설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과 연관지어 ‘완벽한 이웃’에서는 이웃을 들고 온 것이 특이하다. 멜로 드라마라면 역시 낯선 소재인데.
▲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지금 사람들은 혈육이 아니면 이웃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캐보자 하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부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 아니 사실 초반부에 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 사랑 못난이’에서 못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휴먼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차츰 멜로 라인이 생기면서 유준석(박시후)과 정윤희(배두나)가 엮어 가는 멜로드라마로 가고 있다. 초기 하고싶은 얘기가 이웃에 관한 것이었다면 사실 멜로 라인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았나.
▲ 유준석과 백수찬(김승우)이란 캐릭터를 부딪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유준석을 통해서는 지금까지 여타의 드라마에서 있었던 돈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멜로는 로망이고 동화다.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가미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세컨드 제안’이었다. 돈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쉽게 아무 것도 아닌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컨드 제안을 하는 재벌2세의 모습은 어떨까로 인물을 처음부터 잡았다. 그것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변명거리는 있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이나 빈부가 맞닿는 멜로 관계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신동주와 진차연, ‘완벽한 이웃’의 유준석과 정윤희 같은 관계가 더 각광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멜로 라인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는 백수찬은 괜찮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호태 비슷한 느낌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가 달라지면서 너무 멜로, 연애가 강조되면 트렌디 드라마다 하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은 어떤 균형감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 그런 점도 있다. 백수찬과 호태란 인물은 앞으로 쓸 다른 드라마에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이지만 그것이 사랑 관계에서는 더 소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느 땐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줄지 모른다는 짝사랑으로 늘 제시할 것이고, 또 유준석이나 신동주 같은 상처받은 있는 자들의 이야기도 늘 가져가게 될 것이다.

멜로에는 비관적, 우정에는 낙관적?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멜로에 있어서는 비관적인 시선, 우정에 있어서는 낙관적인 시선이 읽혀진다. 정윤희와 백수찬의 우정이 밝은 반면, 정윤희와 유준석의 애정은 어둡다. 이것은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진차연과 호태, 신동주의 관계와도 유사한데 이런 시선은 작가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것인가.
▲ 그렇다. 호태라는 인물은 모자라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다 던진다. 백수찬이란 인물은 조금 틀리다. 제비로 살다가 어느 순간 변해 가는 데 그것이 여자 캐릭터에 의해서다. 호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늘 따뜻함을 주는 캐릭터로 별거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그래서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누구와 결혼해도 평생 가슴에 기억을 묻고 다녀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함께 가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못난 이와 잘난 이의 대결구도가 많이 보이는데 애착을 양쪽에 모두 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 화학반응이 따뜻하다. 많은 걸 갖고 있지만 또한 부족한 면을 가진 인간이란 측면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준석 아버지나 ‘내 사랑 못난이’의 조옥자 여사가 가진 캐릭터, 그리고 꼭 등장하는 부성애 혹은 모성애. 이런 걸 보면 이건 멜로 드라마의 구조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멜로에 대한 요구가 큰 이유는 무얼까.
▲ 아무래도 갖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이번에도 유준석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물론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 이야기를 하려 의도했지만, 시청자분들이 그 멜로 부분에 많이 쏠린다는 건,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런 부분은 백수찬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좋은 길인데 뭐 어때’하는 욕망. 그 부분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 만약에 멜로가 아닌 사람다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아예 애초부터 멜로 라인을 빼고 가는 건 어땠을 것 같나.
▲ 기본적으로 멜로가 좋다. 본질적으로는 멜로가 하고 싶은데 거기에 인간적인 냄새가 들어있는 멜로를 하고 싶다.

- 이 드라마에는 멜로와 함께 미스테리도 섞여 있는데 거기서 얻어지는 드라마의 이득이 있나.
▲ 별로 없다. 다만 관계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랬다. 연수연이란 캐릭터가 살인사건과 연관지어 등장하는데, 이것은 부부 관계에서 삐걱거렸을 때 존중하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 위한 설정이었다. 엉성한 미스테리지만 포기가 안되더라.

- 엉성하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게 기능을 했다. 초반부에 흩어지는 캐릭터를 모아주는 역할도 하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소소한 얘기에서 극을 긴장하게 해주는 맛도 있었다.
▲ 그건 의도했지만 사실 의도대로 잘 먹히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 그 이유
- 완벽한 이웃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본인은 완벽한 이웃이 뭐라 생각하나
▲ 제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백수찬이 이런 얘길 한다. “전에 만난 여자는 지금 현재 여자 앞에서는 동네 수퍼 아줌마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것이 완벽한 이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백수찬을 비롯해 다른 가정들의 인물들도 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현재 맞대고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충실한 사람을 완벽한 이웃이라 생각한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는 사람냄새 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느낌이 그런 이야기를 나오게 하는 걸까.
▲ 모든 작가들의 작품은 사람냄새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에 작업에 뛰어든다. 나보다 앞서 많은 작가 분들이 그런 얘길 해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 같은 분들을 존경한다. 그런 얘기가 공감이 되고 용기가 있다 생각한다. 제 입장은 그런 연장선에 있지만 어떤 면을 확 부각시키는데 있어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용기가 더 있다면 백수찬이란 인물을 갖고 더 드라마를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소녀취향이다 보니까 유준석 캐릭터에 나도 매력을 더 느끼고, 멜로 대사에 있어 감성적인 부분들을 많이 만들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부분들이 얽혀서 사람냄새 난다는 얘길 하는 것이지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 영화로 치면 ‘스모크’ 같은 느낌을 가도 괜찮을 거 같다 생각한다. 멜로가 아니어도 정감을 주는 여러 관계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 간의 의리나, 부모 자식 같은 관계, 아니면 지나가는 어떤 인물에 대한 정 같은 걸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작품은 혹시 생각하고 있는 건 없는지.
▲ 그런 작품은 늘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는 백수찬이나 호태 같은 캐릭터가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더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돈 갖고 예술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을 써봤고 데뷔도 해봤는데, 소설은 써서 출판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쓰면서는 이건 남의 돈이고 자본이 돌아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내 얘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늘 강하다.

- 소설과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소설은 전적으로 작가의 작품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책스러울 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은데, 드라마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향을 일으키는 게 있고, 내가 쓴 느낌과 다르게 연기자가 해석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다.

백수찬의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고 싶다
- 게시판에 본인도 결말이 궁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난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사실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를 공처럼 갈 순 없는 게 아닐까. 요즘 사전 제작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최소한 사전 대본이라도.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장단점이 둘 다 있다. 사전 제작 좋다. 하지만 작가 역시도 그게 공동작업이다 보니 내 대본이 감독이나 연기자에게 어떻게 소화될지 모른다. 다 써놓고 한다는 것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역시 장점도 있지만 그런 단점도 있는 거 같다. 어떤 면에서 사전 제작은 스스로 미리 만들어놓은 대본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론 본 방송을 보면서 그런 감을 잡을 때가 많다. 이번 경우에는 한 3, 4회를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백수찬이란 인물이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를 보호할까, 또 백수찬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 듣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백수찬이 시선을 받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고민하다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정하게 됐다.

- 백수찬을 주목시키려면 강한 유준석 캐릭터를 좀 약화시킬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 나도 여자다 보니까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면서 쓰게 된다. 따라서 유준석이란 캐릭터는 백수찬과 비교해서 보다 남성적이고 매력 있다는 걸 인정한다. 굳이 유준석의 캐릭터를 약하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유준석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서 약간의 성장 드라마의 요소를 가져가자 생각했다. 즉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가 하는 걸 가족 속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윤희라는 가족 속에 들어왔을 때 갖는 어떤 편안함 같은 것을 통해서 유준석은 변화해나갈 것이다.

- 정미희와 양덕길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가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환타지의 요소가 있는데 캐릭터를 봤을 때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존재했으면 싶은 그런 사람들인 거 같다.
▲ 이 드라마에는 현실적인 인물이 거의 없다. 다 극대화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만 포장이 되어 있는 캐릭터들이다. 양덕길은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다. 아무리 농촌총각이라 해도 그토록 순박하고 헌신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미희도 마찬가지다. 세 번 이혼하고도 제비한테 목매는 이상한 캐릭터다. 그게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 앞으로 쓰고 싶은 드라마는?
▲ 나는 여러 장르, 사극 같은 것도 하고 싶고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특집극만을 전문으로 쓰는 그런 작가로 남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너무 많이 써봤다. 아직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실험적인 걸 하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아마도 제일 잘 만든 장르일 것이다. 특히 저녁시간대에 가족드라마 성격을 가진 일일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 보통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내 성격적으로 맞을 수는 있지만 빨리 눌러 앉고 싶진 않다.

- 작가로서 제일 어려운 점은.
▲ 조율이다. 특히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능력의 한계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그게 전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드라마에는 의처증, 애처가, 아내에 관심 없는 남자 같이 많은 남자들이 나오는데 한 신이라도 나올 때 그걸 다 얘기해야 한다. 멜로를 그리면서도 이들을 같이 가져가는 것에 항상 힘들고 한계를 느낀다.

- 시청자와의 조율은 어떤가.
▲ 시청자는 제일 무섭다. 조금 얘기했음에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드라마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지만 너무 여기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계속 가져갈 건지.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소아마비를 가진 약자이기에 그렇다.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참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래도 교육의 기회를 많이 받았고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가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차단되어있는 분들이 많다.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약자라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 당연히 시각이 가게 된다.

- 그런 부분이 분노보다는 사랑으로 많이 승화되어 나오는 거 같다.
▲ 분노한 시기도 있다. 어렸을 때는 좌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날 공정하게 대우해주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받아들여질 때 고맙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너무나 감사한 것이 사회적인 약자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황금시간대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로 터뜨리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정지우 작가는 본인이 써온 드라마들, 즉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고스란히 닮은 작가였다. 그렇게 세련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 질박함이 보면 볼수록 자꾸만 보고싶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처럼, 작가 역시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짙은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직 ‘완벽한 이웃’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적어도 우리는 그 끝에서 완벽한 이웃 같은 따뜻한 드라마 한 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는 한.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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