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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세상’, 어른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망치고 있나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의 제목은 역설적이다. 그 어디에서도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서다. 학교 옥상에서 추락해 의식불명이 된 선호(남다름). 학교는 서둘러 자살시도라 단정 짓고 사안을 덮으려 한다. 심지어 선호가 친구들에게 이른바 ‘어벤져스 게임’이라며 집단 구타를 당하는 영상이 발견되지만 가해학생들은 ‘장난’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결코 장난 수준이 아니다. 거기에는 항상 교실에서는 착한 우등생의 얼굴을 하고 있는 학교 재단 이사장 아들 오준석(서동현)의 보이지 않는 ‘조종’이 존재한다.

 

준석은 이 드라마에서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오가는 형상으로 묘사된다. 공부도 잘하고 집도 부자인데다 권력까지 갖고 있는 이사장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가 아이들을 지능적으로 조종하고 괴롭히며 군림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는 겉으론 친절한 척, 착한 척 하지만 한동희(이재인)처럼 이미 왕따 경험을 하고 전학 온 약한 아이를 또 다시 왕따시키고, 친한 친구로 지냈던 선호가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며 그에게 반기를 들자 그조차 집단 괴롭힘을 조장한다.

 

심지어 자신이 뒤에서 어벤져스 게임의 배역을 정해주고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이 학폭위에 의해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조영철(금준현)에게 선물을 주며 자기 편으로 만들고 진실을 말한 이기찬(양한열)을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운다. 아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가장된 눈물 그리고 뒤돌아서 보이는 미소는 시청자들을 끔찍하게 만든다.

 

그런데 <아름다운 세상>이 하려는 이야기는 학교 폭력을 저지른 아이의 잘못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 아이가 어떻게 해서 이런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준석은 어쩌다 친구까지도 왕따시키고 집단 폭력을 당하게 만드는 그런 인물이 되었을까. 그것은 그의 아버지인 세아교육재단 이사장 오진표(오만석)의 엇나간 자식 교육에서부터 비롯된다.

 

오진표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단 몇 프로의 상위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준석이 100년이 넘은 세아교육재단을 이어받을 후계자로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준석은 이러한 ‘위계’가 심지어 친구 사이에도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에게 반기를 든 선호를 집단 린치하게 만들고는 친구 사이에도 서열이 있다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결국 그래서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 옥상에서 준석은 선호와 다퉜고, 그 와중에 선호는 추락했다. 그건 사고일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 사고가 ‘사건’이 되게 만든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다. 그 날 옥상에서 준석을 발견한 서은주는 선호의 추락을 자살기도로 위장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한다. 훗날 준석은 엄마에게 말한다. 그 날 자신이 모든 걸 다 봤다고. 일을 이렇게 만든 건 그래서 엄마 때문이라고.

 

<아름다운 세상>이 날카롭게 들이대고 있는 시선은 바로 이 지점이다.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어른들은 서둘러 진실을 덮으려 하거나 조작하려 하고 심지어 피해자를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주는 인물로 몰아세운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지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명목은 모든 걸 정당화하고 스스로를 합리화시킨다.

 

그런데 결과는 어떨까. 그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다는 그 일련의 행동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망가뜨린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보며 그것이 세상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잘못을 저질러도 힘이 있으면 벌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죄에 가담했어도 무조건 우기면 죄가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힘 있는 사람에게 붙어야 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거짓도 불사하며 친구도 버려야 한다는 걸 배운다.

 

반면 아이가 옥상에서 추락하는 그 사건을 통해 그 부모는 자신들이 얼마나 어른으로서 잘못해왔는가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선호의 아버지 박무진(박희순)은 학교선생님으로서 입바른 소리를 해왔지만 실제로 한 발 더 나아가 아이들의 사정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자신을 ‘후진 어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이나 후회, 자책감을 보이는 인물조차 없는 이 비정한 세상에서 그는 결코 ‘후진 어른’이 아니다. 그야말로 이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를 알게 된 진정한 어른이다.

 

동생 동희가 왕따를 당해왔고 심지어 너무 괴로워 죽을 생각까지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동수는 동생을 괴롭힌 아이들을 죽도록 때려주겠다며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박무진은 그것이 아무 것도 해결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동수가 그러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외치자 박무진이 말한다. “들어줄 수 있잖아. 동희 이야기 들어줄 수 있잖아. 난 우리 아들 이야기 듣고 싶은데 들어줄 수가 없어. 들어줄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어. 그게 얼마나 후회되고 괴로운 줄 알아?”

 

우리는 과연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매일 같이 치열하게 뛰어다니고 누군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삶은 과연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는 전작이었던 <기억>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들의 근원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마도 세월호 참사가 가져온 충격이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기억>이 기억을 지워내려는 시스템 속에서 결코 지워내선 안 되는 기억의 문제가 있다는 걸 드러냈던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어떤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해내는 일과, 그런 정의가 존재한다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이 진정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있다.(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녹두꽃' 윤시윤이 든 성냥, 그리고 조정석이 들 횃불

 

시작부터 뜨겁다.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첫 회부터 활활 타올랐다. 탐관오리들에 의해 착취당하고 굶주리며 길바닥에 나뒹굴던 민초들은 그 손에 농기구 대신 횃불과 죽창을 들었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이끄는 민초들은 조선의 봉건적 틀을 벗어나 ‘사람이 곧 하늘(인내천)’인 후천개벽의 세상의 기치 아래 모여들었다. <녹두꽃>에는 근대가 열리는 그 시점의 뜨거움이 시작부터 전개되었다.

 

사실 사극에서 혁명 같은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기까지는 꽤 많은 전조를 깔기 마련이다. 굶주리고 피폐한 민초들의 삶이 조명되고 그와 반대로 호의호식에 주연을 일삼는 탐관오리 조병갑(장광) 같은 인물과, 그 권력에 덧대 백성을 수탈하는데 앞장서며 자신의 치부만을 위해 살아가는 백가(박혁권) 같은 아전의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녹두꽃>은 이런 이야기의 서두를 길게 잡지 않았다. 첫 등장에 말을 타고 유학에서 돌아오는 백이현(윤시윤)이 길바닥에 주저앉아 굶어 죽어가는 민초에게 밥 한 덩이를 던져주는 장면만으로 그 많은 이야기들은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누군가에게는 극락”이라는 전봉준의 말 한 마디와 더불어, 저잣거리의 피폐된 민초들의 모습과 관아에서 주연에 빠져있는 조병갑과 호의호식하는 백가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줬다.

 

이 양극단의 풍경은 탐관오리의 수탈이 민초들의 피폐한 삶의 원인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고, 전봉준이 횃불을 들고 봉기하게 되는 이유를 그대로 설명해준다. 물 흐르듯 빠른 전개로 이어진 드라마는 그 안에 백이강(조정석)과 백이현이라는 배다른 형제의 상반된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한 아버지인 백가로부터 나온 두 인물이지만 백이강은 노비의 소생으로서 백가를 대신해 갖은 악행을 저질러온 인물이다. 반면 백이현은 정실의 아들로 일본에 건너가 신문물을 배우고 돌아온 인물로 자신의 형인 백이강이 그런 삶을 살아온 것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는 인물.

 

백가라는 도저히 상종하기 어려운 아버지를 두고 있는 형제로서 둘 다 그 삶에 분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백이강이 어머니를 위해 그저 자신을 학대하듯 민초들을 괴롭히며 백가의 앞잡이로 살아가는 반면, 백이현은 백가 앞에서는 웃지만 사실은 어떻게든 그로부터 벗어나 조선을 ‘개화된 세상’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결국 백이강 역시 그런 삶에서 벗어나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될 거라는 점은 이 형제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버지에 항거하는 삶을 선택한다는 걸 말해준다.

 

<녹두꽃>은 이처럼 백가라는 아버지 밑에서 이를 깨치고 나오려는 백이강과 백이현의 이야기로 당대 조선의 상황을 그대로 담아낸다. 왕을 어버이라 여기던 봉건사회. 그래서 그 어버이가 잘못된 길을 가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그 사회로부터 벗어나, 잘못된 걸 바꾸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근대를 열어가려던 동학혁명의 그 과정이 이 집안의 이야기로 그려져 있다.

 

흥미로운 건 백이현이 유학에서 가져온 성냥과 백이강이 눈앞에서 목도했고 앞으로 자신도 들게 될 그 횃불이 가진 상징성이다. 백이현은 불씨 하나를 꺼뜨려도 소박을 맞는 조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성냥 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개화’를 꿈꾼다. 반면 백이강과 동학농민들은 수탈에 당하고만 살아왔던 민초들이 이제 그 잘못된 세상을 뒤집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혁명’을 꿈꾼다.

 

지금껏 사극들이 무수히 많은 조선시대의 역사들을 가져왔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가져오지 못했던 건 왜였을까. 그것은 사극이 과거의 역사를 그저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요구에 의해 재현되는 장르라는 걸 말해준다. 무수한 촛불을 경험하고, 그 힘들이 모여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현재가 동학농민혁명을 다시금 소환해 그 의미를 되묻고 있다는 것. 촛불 이전에 횃불이 있었다는 걸 <녹두꽃>은 성냥을 가져온 백이현과 횃불을 들게 되는 백이강을 통해 그려내려 하고 있다. 그 면면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해치’가 다루는 환란·변란, 어째 옛 이야기 같지 않은 이유

 

우리에게 재난은 이제 무수한 콘텐츠들의 단골소재가 됐다. 이를테면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강에 출몰한 괴생명체의 습격을 다루는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런 기조는 <감기>나 <연가시> 같은 작품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부산행>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같은 좀비 장르에서조차 우리는 ‘재난’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전국적인 재난이 벌어지고, 국민 혹은 백성들은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이를 대처하는 국가의 무능력은 보는 이들을 뒷목 잡게 만들곤 한다. 그리고 그 재난에 실제로 대처하는 이들은 무고한 국민 혹은 백성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SBS 월화드라마 <해치>는 조선시대 영조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극이지만, 역시 우리네 콘텐츠의 단골소재가 된 재난의 코드를 그대로 가져온다. 역사 속 실존인물인 이인좌의 난을 다루면서 그것을 ‘환란’과 ‘변란’으로 담아낸 부분이 그렇다. ‘환란’은 이인좌가 지방과 도성 곳곳의 우물에 독을 타 마치 역병이 번지고 있는 듯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도처에 이 모든 책임이 ‘자격 없는 왕’ 때문이라는 괘서를 뿌려 민심을 흔드는 이야기로 다뤄지고, 변란은 이인좌가 결국 청주성을 함락시키고 도성을 향해 진격하는 그 과정을 통해 다뤄진다.

 

여기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이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왕과 신하의 자세다. 영조(정일우)는 역병이 번지는 듯 보여 흔들리는 민심을 잡기 위해 스스로 도성 밖으로 나가 민심을 다독인다. 신하들조차 다가가길 꺼려하는 괴질 환자들을 직접 찾아와 위로하면서 반드시 이 역병을 다스릴 거라는 믿음을 갖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이 역병이 아니라 누군가 탄 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우물을 폐쇄하고 처방을 내려 결국 환란을 잡는다.

 

이인좌가 결국 밀풍군(정문성)을 앞세워 군사를 일으키는 변란에 대해서 영조는 노론의 수장인 민진헌(이경영)과 소론의 수장인 조태구(손병호)와 함께 당략을 뛰어넘는 대처를 시도한다. 전장에 나가는 백성들 앞에 민진헌 또한 참담함을 느끼는 상황, 영조는 이런 지속된 피의 정치와 변란의 근본적인 문제가 당파에 있다는 걸 절감한다. 그리고 변란의 중요한 원인이 된 소외된 남인들을 되돌리기 위해 ‘탕평책’을 제안한다. 물론 민진헌은 권력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이에 극렬히 반대하지만 그 역시 희망조차 없는 민초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탕평책은 이인좌의 근거가 되는 남인들을 붕괴시킬 수 있는 묘안이면서 동시에 오랜 파당정치에 종지부를 찍을 기회이기도 했던 것.

 

<해치>는 어째서 이인좌의 난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가져와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왕과 신하의 모습으로 그려내려 했을까. 그것은 여러모로 최근 우리네 국정과 정치의 현실을 그 사극의 틀로서 담아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대통령은 과연 무엇을 했던가. 그 참사가 벌어진 후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심지어 지금까지도 입에 담기조차 힘든 발언을 하며 이를 정치적으로만 활용하려는 정치인들조차 있지 않았던가. <해치>가 영조와 신하들을 통해 다루는 환란과 변란에 대처하는 모습들은 그래서 지금의 우리네 정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결국 이들 왕이나 신하들은 막상 변란이 터져도 전쟁에 나가지는 않는다. 그 전쟁에 나가 무고한 죽음을 맞는 이들은 결국 백성이다. 국정과 정치가 권력을 두고 싸우고 있을 때, 심지어 그 싸움이 변란으로까지 번져갈 때, 그로 인해 죽어나가는 건 민초들이다. 과연 <해치>의 이 이야기가 그저 옛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그토록 많은 재난 콘텐츠가 비슷한 코드들로 등장하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힘겨워도 마주해야할 진실, 그것이 ‘자백’의 메시지

 

도대체 최도현(이준호) 변호사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감당해야하는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tvN 토일드라마 <자백>에서 최도현은 이제 자신에게 심장을 준 노선후 검사의 살인자로 추정되는 조기탁(윤경호)을 변호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거대한 국방비리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정보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최도현은 그 정보를 받는 조건으로 조기탁의 변호를 수락하게 된다.

 

하지만 최도현은 심장을 기부한 이가 바로 노선후 검사이고 그 모친이 바로 진여사(남기애)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진여사가 최도현의 사무실에 보조를 자청해 온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당시 심장외과 전문의였던 진여사가 뇌사상태에 빠진 아들의 심장을 최도현에게 이식수술 해줬고 오래도록 아들의 죽음 때문에 힘겨워 했었다는 사실은 진여사가 최도현을 찾아온 이유가 될 것이었다. 그는 마치 아들처럼 최도현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이 사실은 최도현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꿈을 계속 꾸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 역시 노선후의 심장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혹한 운명은 최도현이 그 심장의 주인을 살해한 조기탁을 변호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조건으로 조기탁으로부터 받은 노선후의 사진기 메모리칩에는 이 국방비리 사건에 연루된 이들이 들어 있었다. 그 사진을 기춘호(유재명) 형사에게 보여주며 조기탁으로부터 받았다고 하자 그는 단박에 이 상황을 알아차린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지만 그건 진여사에게 못할 짓이라는 것.

 

최도현이 진여사에게 이 사실을 밝히며 조기탁 변호를 허락해달라고 묻는 자리에서 진여사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최도현의 진심을 이해한다. 이 사건의 진실과 많은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려 한다는 것을.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돼도 가슴으로 그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을 게다. 그는 최도현에게 의사가 살인범이라고 해도 치료를 해야 하는 것처럼 변호사도 변호사로서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노선후의 엄마로서 가슴 아픈 자신의 상황을 담은 질문을 던진다. “변호사님의 심장은 뭐라 하던가요?... 그 심장은 자신을 죽인 사람을 변호할 수 있다 하던가요?”

 

<자백>이 담고 있는 진실에 대한 갈증은 이처럼 급이 다르다. 그 진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져야 할 무게가 너무나 무겁다. 진실을 위해 심장을 준 자의 살인범을 변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진실이 덮여지면서 희생당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국방비리와 연루되어 죽음을 맞은 차승후 중령, 그 진실이 덮여지면서 사형수가 된 최도현의 아버지, 그 비리를 캐다 죽음을 맞이한 하유리(신현빈)의 아버지와 진여사의 아들. 아마도 사건 현장의 무언가를 알고 있어 길거리에서 살해당한 여성들까지... 진실을 마주했던 이들은 모두 처참한 결과를 맞이했다.

 

<자백>은 복잡하게 얽힌 사건들 속에서 좀체 쉽게 그 사건의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다. 미치도록 궁금해 하는 최도현과 기춘호 그리고 하유리와 진여사의 진실에 대한 갈증은 그래서 갈수록 커져간다.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 역시 이들과 점점 똑같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진실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이 드라마가 가진 동력이지만, 어쩌면 바로 이 진실을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한가를 절감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이 드라마가 말하려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차라리 포기하고픈 그 진상 규명이 어떻게 해야 비로소 밝혀지고, 또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를 이 드라마는 보여주고 있으니.(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리틀 드러머 걸',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허문 박찬욱의 걸작

 

이제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는 애매모호해졌다. 넷플릭스나 왓차플레이 같은 OTT(Over The Top)는 이런 경계를 정서적으로 먼저 허물어버린다. 같은 화면에 영화와 드라마가 나란히 소개되고 드라마라도 전편을 몰아서 보는 경험은 영화 관람이 갖는 ‘완결성’을 드라마도 똑같이 느끼게 해준다. 이제 영화도 세 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어지고 있고, 어떤 영화는 몇 편에 걸쳐 나뉘어 방영되기도 한다. 영화는 드라마처럼 서사가 길어지고, 드라마는 영화처럼 완결성을 가지려 한다. 물론 드라마라고 해서 서사가 느슨하거나 영상연출이 허술하던 시대 역시 지났다. 이러니 그 경계 구분은 이제 점점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박찬욱 감독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은 이러한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채널A에서 방영되고 있지만 6부작 <리틀 드러머 걸>은 왓차플레이에 이미 전편이 올라와 있다. 몰아보기를 원하는 시청자라면 언제든 가입 후 한 번에 이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는 건,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한 편 한 편이 박찬욱 감독 특유의 영화적인 밀도와 미장센을 갖고 있고, 이야기도 일관된 흐름 안에서 마지막까지 완결되게 흘러가고 있어 긴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히 <리틀 드러머 걸>이 흥미로운 건 스파이 장르면서도,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작품 연출과 연기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담겨 있는데다, 나아가 그것이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우리네 삶에 대한 질문이 담겨져 있어서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저 스파이 장르를 즐기며 봐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한 번 더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심리들을 들여다보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드라마화한 이 작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으로 세계 곳곳에서 테러가 벌어지던 1979년 유럽을 배경으로 한다. 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 모사드 고위요원인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가 투입된다. 그런데 이 마틴은 이것이 전면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며, 좀 더 ‘예술적인’ 섬세한 작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테러조직 깊숙이 스파이를 투입시켜 그 핵심 조직원들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애인을 가장한 스파이를 조직에 들어가게 하는 것.

 

흥미로운 건 이렇게 투입될 스파이가 진짜 요원이 아니라 무명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작품의 연기 오디션을 본 줄 알았지만, 차츰 그것이 이 작전의 캐스팅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갈등하지만 차츰 배우로서의 본능이 발동하기 시작한다. 찰리가 역할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예 요원인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테러리스트의 대역을 해주면서 찰리와 가디의 사이는 애매해진다. 스파이 역할을 해내기 위한 연기지만, 그 연기에 몰입할수록 찰리의 마음은 진짜로 가디를 향하게 된다.

 

즉 스파이 활동을 위해 하는 연기가 실제와 마찰음을 빚어내며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심리변화는 이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그것은 마치 작품 속에서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연기는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되는 것이고, 어느 순간 찰리는 위기의 순간에 테러리스트의 애인이 되어있는 자신을 끄집어낸다. 가디에게 마음이 끌리는 현실의 사랑과 연기 속에서 테러리스트의 애인으로서 경험하는 일들은 그래서 부딪침을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모든 작전을 설계한 마틴이 마치 영화감독처럼 행동하는 순간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 역시 작전 속에서 영화감독을 연기하고 있는 듯한 장면들은, 연기의 가상과 실제 현실을 왔다갔다하는 찰리와, 임무로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그러면서 차츰 진짜로 찰리를 사랑하게 되는 가디와 중첩되면서 과연 연기란 무엇이고 진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 자체가 끊임없는 새로운 연기와 몰입의 연속일 수 있다는 것.

 

사실 <리틀 드러머 걸>은 기존 국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반칙’ 같은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잘 짜인 스토리에 매력적인 캐릭터 그리고 긴 여운이 남는 메시지와 생각거리까지 채워 넣은 드라마라니. 보고 나면 여타의 다른 드라마들이 너무 시시하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다니. 영화와 드라마 사이의 해묵은 경계가 조만간 해체될 거라는 징후를 이 반칙 같은 드라마는 예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사진:채널A)

Posted by 더키앙

'자백', 잠시도 한눈팔 수 없는 압도적 몰입감의 실체

 

창현동 살인사건과 양애란 살인사건 그리고 김선희 살인사건. 게다가 최도현(이준호)의 아버지 최필수(최광일)가 살인범으로 사형수가 된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물론이고, 기자였던 하유리(신현빈)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과 부패방지처 검사였던 진여사(남기애)의 아들 노선후의 의문의 교통사고까지... tvN 토일드라마 <자백>은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니 화장실조차 제대로 다녀오기 힘들 정도로 몰입해서 보게 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무언가 중요한 단서가 훅 지나가버릴 것 같은 그런 몰입감. 하지만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보통 형사나 검사 혹은 변호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의 경우, 사건들은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전개되기 마련이다. 하나의 사건이 등장하고 그걸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등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자백>은 이 사건들이 하나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음모(혹은 비리)로 묶여져 있다. 마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 단 하나의 살인사건이 등장하지만 그로 인해 드러나는 검찰 내의 비리들이 다양한 에피소드로 그려졌듯이, <자백>도 16부작이고 여러 사건들이 등장하지만 그건 하나의 ‘몸통’ 사건의 가지들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들로 정리하고 유추해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을 저지른 조기탁(윤경호)은 최도현의 아버지 최필수가 기무사에서 근무할 때 근무했던 인물로 당시 운전병이었던 한종구(류경수)가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려 죽였던 잔혹한 인물. 양애란 살인사건을 저지른 한종구는 그 조기탁을 흉내냈고, 그래서 조기탁은 김선희 살인사건을 저지르면서 한종구를 용의자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이 드러나 세 개의 살인사건의 진실들이다.

 

그런데 이 조기탁이라는 인물은 아마도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을 저지른 일종의 검은 세력들(비선실세)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은 차세대 헬기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국방비리와 연관되어 있다. 알고 보면 창현동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고은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국방비리 관련 사항이나 혹은 차승후 중령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고 돈을 요구하다 살해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구도로 보면 비선실세들의 거대한 국방 비리가 있고 그 비리를 파헤치던 기자, 검사와 기무사 내부의 인물들이 살해되거나 희생당했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들은 국방 비리라는 몸통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마치 연쇄살인처럼 위장되었다. 조기탁은 실제로도 잔혹한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이런 비선실세들과 연루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살인을 저지르고도 완전한 신분세탁을 해 교도관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씩 퍼즐이 맞춰지고 드러나는 진실의 윤곽들은 몰입해서 본 시청자들을 짜릿하게 만든다. 그만큼 깊은 몰입이 필요한 드라마지만, 의외로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렵게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것은 신기하게도 우리가 실제로 현실에서 겪었던 사건들이 드라마에 중첩되면서 이해를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리 사건이 그렇고, 비선실세라는 말만 들어도 금세 떠오르는 일련의 정황들이 그렇다. 또 진실을 밝히려던 기자나 검사의 죽음이 사고로 결론 처리되어버렸지만 의구심을 남긴 사건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우리가 뉴스를 통해 목도했던 현실의 사건들을 <자백>은 그래서 하나하나 끌어다가 거대한 그림을 만들어낸 듯한 느낌을 준다. 그건 복잡해도 우리가 이 드라마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이유이면서, 동시에 어쩌면 이 드라마의 진짜 메시지였을, 그간 의혹을 남긴 사건들을 다시금 환기시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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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키키2' 애써 울지 않고 버티는 청춘들, 짠하기 그지없다

 

희극과 비극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JTBC 월화드라마 <으라차차 와이키키2>는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다. 여지없이 빵빵 터지는 웃음 뒤에 남는 청춘들의 쓸쓸함 같은 게 거기에선 느껴진다.

 

톱배우를 꿈꾸지만 현실은 만년 엑스트라인 이준기(이이경), 가수를 꿈꾸지만 행사 가수로 살아가는 차우식(김선호)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로 2군으로 밀려났다 어깨를 다치고는 결국 방출된 국기봉(신현수)이 그렇고, 결혼식날 아버지의 부도로 파경을 맞은 한수연(문가영)이나 준기와 연극영화과 동기로 배우를 꿈꿨지만 알바를 전전하며 게스트하우스에 얹혀사는 김정은(안소희) 그리고 요리사가 꿈이지만 스펙이 없다는 이유로 후배들에게 치이고 밀려난 차우식의 누나 차유리(김예원)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꿈이 있고, 또 꿈을 향해 그 누구보다 절실하게 노력하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는다.

 

<으라차차 와이키키2>의 웃음 포인트는 이들의 이 비극을 희극으로 뒤집는데서 나온다. 엑스트라로 거지 연기를 하기 위해 진짜 거지를 찾아가 그 생활을 경험하고 노하우(?)를 배우는 이준기의 이야기는 단적인 사례다. “정말 거지같다”는 이야기가 칭찬이 되는 이준기의 상황은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바닥에 떨어져 누군가 밟아놓은 빵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먹어버린다.

 

거지가 되기 위해 마치 무협영화의 고수를 찾아가 비급을 전수받는 수제자처럼 진짜 거지의 거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리는 장면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작은 단역 하나를 얻기 위해서도 온 몸을 던져야 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담아낸다. 심지어 그런 노력을 들여 찍힌 장면도 감독의 “편집하라”는 말 한 마디로 지워버려지지만.

 

한수연을 친구 카페에 아르바이트로 소개시켜준 차우식은 친구가 번번이 실수만 저지르는 한수연을 자르지 않는 조건으로 그 대신 임대료를 동결시키려는 시위에 나간다. 그저 잠깐 나가서 구호만 외치다 오면 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차우식은 3보1배, 혈서, 단식도 모자라 삭발까지 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결국 그렇게 뜻이 관철되어 임대료는 동결되지만 차우식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좋아하는 한수연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건 제 몸을 그렇게 혹사하는 일 정도다.

 

1군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감독 테스트를 받기 위해 노력해온 국기봉은 선배 병철(심형탁)에게 포크볼을 배워 익히게 됐고, 차유리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병철이 어딘지 이상하지만 기봉을 위해 계속 만나주었다. 하지만 테스트를 받기 전 날 소매치기 때문에 어깨를 다친 국기봉은 결국 팀에서 방출통보를 받게 되고, 그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오히려 험담까지 늘어놓는 병철에게 차유리는 식당 셰프를 하게 해주겠다는 제안도 거절하고 뛰쳐나온다.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체 하지만 울고 싶은 마음을 숨기는 국기봉을 위해 차유리가 눈을 찌르는 장면은 <으라차차 와이키키2>가 가진 희비극을 압축해 보여준다. 그건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애써 울지 않고 버텨내려는 청춘들의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이라 짠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들은 애써 웃으며 서로를 의지하고 유쾌한 척 버텨낸다. 폭소 뒤에 남는 쓸쓸함의 정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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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사제’, 위풍당당행진곡 ‘킹스맨’ 패러디를 이렇게 쓸 줄이야

 

영화 <킹스맨>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세상을 망하게 만들고 자신들만 살아남겠다고 모인 이들의 머리가 차례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잔인한 장면일 수 있지만 영화는 이것을 음악에 맞춰 마치 꽃 봉우리가 터지는 듯한 모습으로 연출해냄으로써 19금 섞인 코믹한 스파이액션으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 장면이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에서 고스란히 패러디된다. <킹스맨>에 비하면 어딘지 B급처럼 보이는 이 패러디에서 장룡(음문석)과 그 패거리들은 김해일(김남길)이 중국으로 구해온 ‘설사초’를 넣은 도시락을 먹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명씩 넘어지며 설사를 터트리는 장면을 연출한다. <킹스맨>을 본 분들이라면 위풍당당행진곡에 맞춰 꽃봉우리 CG가 곁들여진 그 장면을 보며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열혈사제>는 이제 본격적인 패러디 드라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 날 방송된 내용 중에는 ‘나쁜 놈, 얍삽한 놈, 엊그제 뉘우친 女ㄴ, 멋지지만 화가 많은 놈’ 같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패러디한 장면에 맞춰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고, 장룡과 패거리들이 함께 걸어오는 장면에서는 ‘풍문으로 들었소’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의 한 장면이 그대로 패러디되었다.

 

<열혈사제>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쏭삭(안창환)과 김인경 수녀(백지원)도 결국은 패러디의 공을 톡톡히 봤다. 외국인 노동자로 핍박받던 쏭삭이 갑자기 과거 태국의 왕실경호원이었고 무에타이 고수를 등장하는 장면은 <옹박>을 패러디한 것이었고, 평택에서 십미호로 이름 날린 타짜였다는 게 밝혀지며 맹활약하는 김인경 수녀의 반전도 영화 <타짜>를 패러디한 것이었다. 수녀님이 던지는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같은 대사가 빵빵 터졌던 이유다.

 

이밖에도 패러디는 넘쳐난다. 김남길과 이하늬가 서로의 입을 가린 채 얼굴을 쳐다보는 <미스터 션샤인> 패러디도 있고, 위기에 처한 서승아 형사(금새록)를 박경선(이하늬) 검사가 갑자기 엑스칼리버 같은 검을 들고 나타나 도와주면서 “미션 클리어”라 외치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패러디도 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김해일 신부라는 캐릭터 자체도 영화 <검은 사제들>의 패러디처럼 보인다.

 

<열혈사제>가 이처럼 다양한 패러디들을 쏟아낼 수 있게 된 건 그 기조를 풍자 코미디로 명쾌하게 세워 놨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그래서 진지해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 나쁜 짓 하는 권력자들을 혼내겠다는 그 단순명쾌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캐릭터들의 패러디 전시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 웃음을 주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보여준다.

 

<열혈사제>가 금토 시간대에 새롭게 들어와 무려 20%에 가까운 시청률을 내면서, 화제성도 좋고 또 평가도 좋은 이유는 그 작정하고 웃기겠다는 패러디들을 통해 보이는 명쾌하면서도 확고해 보이는 작품의 진정성이 느껴져서다. 어차피 답답한 현실, 한번 시원하게라도 웃어보자는 그 명확한 목표를 향해 <열혈사제>의 다양한 패러디 웃음폭탄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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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성덕의 세계, 그 기대와 우려 사이

 

tvN 수목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는 이른바 ‘덕후’라 불리는 이들이 쓰는 그들만의 용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첫 회의 부제로 붙은 ‘덕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이나 2회의 부제인 ‘미안하다 일코한다’라는 제목부터가 그렇다. ‘오타쿠’라는 용어에서 비롯된 덕후라는 우리식의 단어가 또 줄어서 ‘덕’이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일코’ 같은 ‘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이 더해진다. 아는 이들이야 이런 용어 자체가 익숙하고 나아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이를 잘 모른다면 이런 용어들이 어떤 장벽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그녀의 사생활>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그 ‘덕질’을 소재로 가져왔다. 주인공의 이름이 일단 ‘성덕미(박민영)’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그것은 ‘성공한 덕후’를 뜻하는 ‘성덕’에서 따온 이름이다. 성덕미는 채움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로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이지만, 숨겨진 ‘사생활’이 있다.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차시안을 최애하는 덕후라는 것. 아이돌을 싫어하는 엄소혜 채움미술관 전 관장 때문에 성덕미는 이른바 ‘일코’하며 지내왔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카메라로 중무장하고 얼굴을 가린 채 시안을 덕질하는 비밀스런 삶을 살아간다.

 

그런 그가 새로 관장으로 오게 된 라이언 골드(김재욱)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과 사랑의 이야기가 <그녀의 사생활>이다. 만나는 순간부터 악연으로 엮이는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을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그렇게 밀고 당기면서 순식간에 가까워지는 관계의 진전을 보여준다. 독한 말만 하고 차갑게만 보이던 라이언 골드가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진 인물이라는 게, 그가 카페인 알레르기인 줄 모르고 장난으로 음료에 커피를 넣었다가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진다. 성덕미가 미안한 마음에 손에 묻은 커피를 닦아주려 할 때 그 손을 꼭 잡는 라이언 골드는 어린 시절 자신의 손을 놓던 누군가(아마도 부모인)를 떠올린다.

 

악연을 갖게 된 남녀가 관장과 큐레이터라는 직장 내 상하관계로 엮이며 벌어지는 로맨스의 이야기는 사실 좀 뻔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색다른 지점으로 삼고 있는 건 바로 성덕미라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그 ‘성덕’의 아름다운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뭐가 아름다울까 싶지만 사실 ‘덕질’에 내포된 열정은 일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발현되기도 한다. 성덕미가 채움미술관에서 보여주는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건 어쩌면 그 덕질을 하며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애정이 열정이 되던 그 경험들 때문일 수 있어서다.

 

지금은 이른바 ‘덕후의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저마다의 취향이 그 삶을 규정하는 시대다. 한 때는 ‘마니아’라 불리며 조금은 이상한 사람 취급받던 덕후들이 실제로 ‘전문가’가 되어 그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일들이 이제는 익숙하게 벌어진다. 그것은 어떤 취향에 대한 애정이 그를 실제로 전문가 수준으로 만들어내고, 또 그런 정도의 열정이어야 그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공한 덕후라는 ‘성덕’은 그래서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이 만든 결과일 수 있다.

 

남는 문제는 <그녀의 사생활>이 그리는 이러한 덕질의 이야기가 얼마만큼 드라마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까 하는 점이다. 물론 웹툰이라면야 덕질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드라마는 그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공감대가 필요한 장르다. 특히 <그녀의 사생활>의 로맨스는 보편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너무 익숙해 식상할 정도로 틀에 박힌 면이 있어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을 만들지는 못한다.

 

덕질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그것을 시청자들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다. 물론 <김비서가 왜 그럴까>를 통해 확고한 자기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는 박민영이나 등장 자체가 덕질을 하게 만드는 김재욱의 연기는 더할 나위없다. 하지만 결국 이 드라마의 관건은 덕질의 세계를 잘 모르는 이들까지 그 세계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고 보인다. 과연 이들의 덕질 로맨스는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도 통할 수 있을까.(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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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뱅커’, 은행은 늘 고객을 최우선으로 한다 하지만

 

MBC 수목드라마 <더 뱅커>에서 노대호 역할을 연기하는 김상중은 특유의 목소리 톤을 드라마 안에서도 그대로 보여준다. 김상중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그런데 말입니다” 같은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자신이 캐릭터화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캐릭터는 특유의 목소리 톤에서 나온다. 이 톤으로 그는 여러 차례 광고를 찍었고, 그 중에는 새마을금고 같은 은행도 있다. 물론 그 톤이 주는 이미지는 ‘신뢰감’ 같은 것이다.

 

아마도 <더 뱅커>가 김상중을 캐스팅한 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 이미지와 새마을금고 광고가 주는 이미지(실제로 이 드라마는 새마을금고의 광고가 붙어 있다)의 결합이 좋은 시너지를 낼 거라는 예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초반에는 그 특유의 톤이 어딘가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 강했지만, 차츰 지속되면서 그 캐릭터의 겹침이 오히려 드라마에도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김상중의 이미지와 <더 뱅커>의 노대호 캐릭터가 시너지를 내기 시작한 건,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이 드라마의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더 뱅커>에서 노대호라는 인물은 은행의 경영자들의 입장이 아니라 은행의 고객 중에서도 서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고의 부도를 여러 차례 냄으로써 그 회사에 피해를 입는 서민들이 생김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그런 이들을 VIP로 관리하는 행태는, 은행이 그저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경영자들의 마인드를 잘 보여준다. 노대호는 이런 은행의 부실대출 같은 문제들을 감사라는 직함을 통해 조사하고 해결해나간다.

 

채용비리 문제를 다룬 9,10회 분은 이런 노대호 캐릭터에 대한 판타지가 제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노대호의 운전기사인 박광수(김규철)의 딸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해 대한은행 공채에서 시험을 잘 봤지만, 인사의 전권을 쥐게 된 도정자 전무(서이숙)가 의도적으로 청탁받은 한 지원자를 밀어줌으로써 떨어지게 된 에피소드가 그렇다.

 

겉으로 보면 도정자 전무가 개인적인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강상도 은행장(유동근)이 그 윗선이라는 걸 은연 중에 드라마는 드러낸다. 즉 강상도 은행장은 국회의원 막내딸의 취업청탁이 들어오고 금용감독원장까지 압박을 해오자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본래는 없었던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하게 한다. 그리고 인사총괄 자리에 도정자 전무를 앉힌 것.

 

가진 것 없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이런 채용비리가 얼마나 한 가족의 삶 자체를 뒤 흔드는가 하는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노대호 같은 감사가 나서고, 채용비리를 전면적으로 파헤친다. 실제 현실에서 가능할까 싶은 이야기이고, 사실상 노대호 같은 전권을 쥔 감사 같은 인물이 비현실적이지만, 드라마는 그래서 이 부분을 판타지로 그려낸다. 물론 그의 감사는 도정자 전무에게 그 칼끝을 향할 것이고, 그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은행장까지는 도달하지 못할 것이지만.

 

<더 뱅커>가 그리고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은행장이나 노대호 같은 그 어느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껏 움직이는 감사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판타지적 인물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적지 않은 건, 실제로 은행을 비롯한 기업들의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걸 갖기 위해 저지르는 비리가 적지 않은 현실 때문일 게다.

 

그래서 저 <그것이 알고 싶다>의 톤을 그대로 가져온 김상중의 연기와 노대호라는 캐릭터가 의외로 잘 어울리게 느껴진다. 서민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당해왔던 어떤 것들을 이 인물이 파헤쳐 그 진실을 드러내주고 있어서다. 몹시도 그것이 알고 싶었던 대중들에게는 그 실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되니 말이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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