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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예의 중심에 서다

실로 ‘골드 러쉬’에 비견해 ‘드라마 러쉬’라 할만하다. 5분 짜리 뮤직비디오면 충분했을 내용을 가지고 굳이 두 시간 짜리 뮤직드라마를 만든 이효리부터,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어느 쪽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 비, 정지훈, 게다가 최근 연기자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만들어버린 윤계상까지 가수들의 드라마 러쉬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여기에 최근 들어 본격화된 영화배우들의 드라마 U턴이 본격화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드라마에 거는 우리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드라마 앞에 줄서게 했을까.

드라마 앞에 줄서는 가수들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명랑소녀성공기’로 스타덤에 올라 중국에서 한류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장나라, ‘어느 멋진 날’, ‘눈의 여왕’에 출연한 성유리, 드라마 ‘궁’으로 화제를 만든 ‘윤은혜’, ‘풀하우스’로 드라마에서부터 최근에는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연기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비, 때론 터프하게 때론 코믹하게 연기변신을 보여주는 에릭,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목받기 시작해,‘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에서 확실한 연기를 보여준 정려원, ‘사랑에 미치다’로 가수 연기자들의 문제가 되곤 하던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고 있는 윤계상 등등.

이들의 드라마 진출은 음반 시장의 위축과 함께 예고되었던 일이다. 드라마가 가수들에게 매력적인 요인은 고정적인 TV 노출을 통해 자연스러운 홍보 효과와 이미지 제고를 할 수 있는 데다, 드라마 자체의 성공을 통한 수익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수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게 되는 드라마 PD들의 상황도 한 몫을 차지한다. 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영화판으로 넘어가 돌아오지 않는 연기자들이 많아지자 마땅한 탤런트를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 또한 참신한 인물을 쓰는데 있어서도 이미 고정 팬을 확보하고 있는 가수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이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복병으로 자리하는 것이 연기력 논란. 일단 이 논란에 휘말리게 되면 자칫 그 가수 연기자 한 명 때문에 작품 전체가 매도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그 가수 연기자의 성공적 데뷔는 드라마 성공에도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 가수들의 성공한 드라마를 분석해보면 정극보다는 가벼운 로맨틱 코메디류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것은 만화 같은 과장된 캐릭터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연기력에 대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소위 리얼한 연기보다는 캐릭터가 재미있기 때문에 드라마는 성공하고 가수는 안전하게 드라마라는 새로운 처녀지에 발을 디딜 수 있게 된다.

영화판에서 드라마로 U턴하는 영화배우들
하지만 앞으로 연기자 기근 같은 드라마 PD들의 고민은 상당수 줄어들 전망이다. 최근 충무로의 불황이 도래하면서 잇따라 영화판을 고집하던 연기자들이 속속 드라마로 귀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KBS 2TV 월화드라마 ‘꽃 찾으러 왔단다’로 9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오는 강혜정은 ‘올드보이’, ‘웰컴 투 동막골’ 등으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넓혀왔으나, 최근 ‘도마뱀’, ‘허브’ 등의 잇따른 부진으로 드라마 복귀가 예상되었던 연기자이다.

이런 상황은 SBS 드라마 ‘푸른 물고기’로 역시 9년 만에 복귀 예정인 고소영도 마찬가지. 최근 개봉했던 ‘아파트’, ‘언니가 간다’가 흥행 참패를 하면서 고배를 마셨다. 또한 이정재가 MBC 특별기획 드라마 ‘에어시티’로 9년 만에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고, ‘그 해 여름’으로 확실한 연기자로서의 이미지를 만든 수애 역시 2년 만에 ‘9회말 2아웃’을 통해 TV로 돌아올 예정이다. ‘청연’으로 역시 아픈 부진의 기억을 갖고 있는 장진영 역시 블록버스터 드라마 ‘엔젤’로 6년만의 드라마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론 충무로의 불황이 가져온 여파가 크다. 투자 분위기가 위축되면서 제작편수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어 출연할 작품 찾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무엇보다 영화배우들에게 더 어려운 상황은, 작년 굵직한 연기자들을 내세워 쉽게 투자 받아 방만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의 잇따른 흥행실패이다. 그것은 실패를 맛본 영화배우 당사자에게도 치명타가 되지만 영화계 전체의 영화배우를 보는 시각을 돌려놓았을 거라는 예측이다.

드라마, 침체된 문화 살릴까
이처럼 가수와 영화배우들이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는 것은 자체적인 불황을 넘어서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더 궁금한 것이 있다. 도대체 드라마라는 장르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모든 불황의 돌파구로서 자리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에는 드라마 자체의 특성이 갖는 경쟁력과, 최근 드라마가 겪고 있는 변화의 조짐, 두 측면이 있을 것이다.

드라마는 우리 대중문화에 있어 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해왔다. 그것은 TV가 영화와 달리 돈을 내지 않고 누구나 손쉽게 틀어 볼 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이 넓고 가능성을 찾기도 쉬운 매체인 TV에서 그 꽃은 단연 드라마이다. 두 시간 남짓하고 끝나는 영화와 달리, 작게는 서너 달에서부터 길게는 1년에 걸쳐 연속적으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중독성에서 영화를 압도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환경과 만나면서 이 중독성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그 중독성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주인공 캐릭터. 장기간에 걸쳐 노출된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는 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영화나 음반보다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된다.

이러한 드라마 자체가 갖고 있는 매력과 함께 최근 변화되는 우리네 드라마의 양상도 연예인들의 드라마 러쉬를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 해외의 드라마들과 비교되면서 좀더 높은 완성도와 스케일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 우리는 거의 영화와 같은 수준의 드라마를 꿈꾸는 단계에 와 있다. 전문직 드라마들과 블록버스터 드라마들이 기획되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영화적인 노하우를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써먹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는 걸 말해준다.

드라마 한 편에는 실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문화적 자산들이 들어있다. 거기에는 영상이 있고 스토리가 있으며 연기자들이 있고 노래가 있다. 괜찮은 드라마 한 편의 성공이 갖는 의미는 이제 드라마에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문화계 전반의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연예의 중심에 선 드라마. 모두 드라마 앞으로 정렬하기 시작한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건 이 풍부한 자원들을 제대로 활용해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Posted by 더키앙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MBC의 새 월화 드라마, ‘히트’에 대한 호평과 혹평이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다. 한편은 ‘기대이상’이라 하고 한편은 ‘수준이하’라고 한다. 시청자게시판을 보면 회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고 캐릭터들도 공감이 간다는 의견과 함께, 이제는 더 이상 보기 싫고 심지어는 종영했으면 한다는 극단적인 의견까지 올라온다. 또한 주인공인 차수경 역을 맡은 고현정씨의 연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선 털털한 연기 변신이 참신하다고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실제 경찰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다는 의견도 보인다.

물론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얘기겠지만 똑같은 드라마를 가지고 이렇게 극명하게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큰 요인은 ‘히트’가 갖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성들 때문일 것이다. 올 들어 우리 드라마에서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가 실험되고 있는 중이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를 통해 선보인 전문직 드라마는 새로운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드라마들도 처음에 반드시 넘어서야 했던 산이 있었다. 그것은 전문직 드라마의 수요가 탄생한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와의 한판 대결이었다.

미드 vs 우리 식의 범죄수사물
‘하얀거탑’이 처음 맞닥뜨린 상대는 저 거탑처럼 높아 보였다. 이미 일본에서만도 여러 번 리메이크 될 정도로 검증된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이미 일드로 보았던 시청자들은 원작과 리메이크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김명민이라는 명배우가 있어 양쪽으로 갈린 시선을 우리의 ‘하얀거탑’으로 집중시키게 했던 점이다.

반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더 거센 상대를 만난다. 그것은 처음 ‘멜로가 섞인 전문직 드라마’라는 점에서부터 불거졌다. 으레 이 드라마도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가 아닐거냐는 추측들이 난무했던 것이다. 그 산을 넘어서자 이제 그 적이 분명하게 눈에 나타난다. 바로 ‘그레이 아나토미’다. 그리고 지금 그 바톤을 이어받은 ‘히트’가 맞닥뜨린 적은 ‘CSI’나 ‘24’같은 미드의 범죄수사물이다.

미드의 시시각각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설정들과 실제 현장을 방불케 하는 리얼리티에 익숙한 시청자들이라면 ‘히트’가 보여주는 스토리가 어딘지 약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미드에 익숙하지 않은 시청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히트’는 지금까지 보여줬던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전혀 다른 참신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호평과 혹평이 나뉘는 갈림길이 다. 이것은 지금 ‘히트’가 처한 상황이며, 동시에 우리나라 전문직 드라마가 처한 상황이기도 하다.

감성적 드라마 vs 아드레날린 드라마
우리네 드라마가 지금껏 만들어왔던 것들은 대부분이 멜로드라마로 대변되는 감성적인 드라마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감성적인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류 바람이 거세지면서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과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고개를 든 것이 일드였다. 일드는 똑같은 감성을 다루고 있었지만 그 표현은 달랐다. 눈물을 터뜨리는 우리네 정서와 달리, 일드에는 감추고 침묵하는 일본적 감수성이 있었다. 그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드라마들이 너무 자주 울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드는 세련되게 보였다.

우는 드라마들(멜로드라마)이 퇴진하면서 TV에 겨우 남게된 드라마는 논란만 잔뜩 있는 가족드라마(‘하늘이시여’나 ‘소문난 칠공주’ 같은)와 울지 않는 로맨틱 코미디(‘발칙한 여자들’이나 ‘환상의 커플’같은) 그리고 사극이었다. 그 어느 것도 눈물과는 그다지 거리가 멀었다(물론 억지로 짜낸 가족드라마의 가짜 눈물은 있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될 것은 사극의 성장을 통해 예견된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가능성이다. 사극은 기본적으로 감성적인 드라마라기보다는 머리를 뜨겁게 만드는 ‘아드레날린 드라마’에 가깝다. 주인공의 성장이나 미션의 완수, 복잡한 문제의 해결 등이 보는 이들을 흥분시키는 드라마다.

여기에 전문직 드라마로서의 ‘하얀거탑’은 본격 ‘아드레날린 드라마’의 새장을 열었다. ‘히트’는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뭔가 다른 것이 끼여든다. 우리만의 독특한 정서 때문인지, 지금까지 해오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 건지, 혹은 전문직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에 맞는 작가군이 없어서 그런 건지, 멜로 같은 감성적 코드들이 뒤섞이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아직까지는 보편화되지 않은 장르의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너무 전문적으로 가다보면 매니아들에게는 엄청난 호평을 받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피곤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학수사 vs 탐문수사
호평과 혹평 사이에는 비교가 있다.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와 미드를 비교하면 당연히 답은 나온다. 볼 것도 없이 미드의 승리다. 그것은 이미 미드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시즌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제작에 있어서 노하우가 산적한 상태이며, 투자규모에 있어서도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의 전문직 드라마가 월등히 떨어진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제 첫걸음을 떼고 있으며 그 첫걸음이 있어 더 나은 드라마들이 나올 수도 있다는 걸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히트’를 ‘하얀거탑’과 같은 이미 종영한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하는 것 또한 그다지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이 드라마들은 둘다 전문직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전문분야’가 다르다. ‘히트’가 좀더 어려운 것은 ‘의학’이라는 전문분야보다 스케일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더 많은 투자가 소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미 영화 등을 통해 헐리우드 액션에 더 익숙한 우리들에게 상대적으로 ‘히트’가 불리하다는 점도 포함된다.

또 한가지 드는 의문은 우리네 전문직 드라마를 만드는데 있어서 꼭 미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한류로 그 재주를 인정받은 멜로의 기법들을 제대로만 접목시킨다면 그것은 오히려 경쟁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히트’는 미드보다는 일본의 ‘춤추는 대수사선’을 더 따라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이 일부 어설픈 장면들과 매끄럽지 못한 이야기 전개가 거슬리면서도, 미드에서 보았던 과학수사와 함께, 우리 식의 탐문수사가 공존하는 ‘히트’에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유사가족, 팀(team)이 보여주는 ‘히트’

“대외홍보용인가요?” 히트(H.I.T. : 강력특별수사팀)의 팀장이 된 차수경 경위(고현정)의 질문에 경찰청장(조경환)의 답변은 정치적이다. “자네가 성과를 낸다면 그건 우리 경찰의 승리고 자네가 실패를 한다면 그건 여성의 실패가 될 테지.” 그리고 이어지는 차경위의 요청. “팀원들 바꿔주세요.” 하지만 완고한 경찰청장의 발언.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 이 짤막한 대사들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의 전조들이 모두 숨겨져 있다.

그것은 경찰사회라는 완고한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그것도 마이너리티로 치부되는 인물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여성 강력반 팀장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퍼즐 같은 재미를 줄 것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바로 캐릭터다. 마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진한 사연 한 가지씩 가졌을만한 인물들. 그래서 경찰 외부에 따로 지어진 히트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이 특권이라기보다는 소외로 느껴지는 인물들. 게다가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심지어는 유사가족의 형태를 띄게 될 팀의 캐릭터들이니 기대감이 커질 밖에.

차수경, 그녀 속에 남자 있다
무엇이 가녀린 그녀를 연쇄살인범에 집착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상민(정호빈)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죽은 한상민은 한 여자이기만 했던 차수경 속으로 들어와 자리한다. 한상민과 접신한 그녀는 그래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한상민과 차수경이 만나는 지점, 즉 오로지 연쇄살인범을 쫓는 상황에서야 이 분열된 자아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여성으로서의 형사는 이 드라마에서처럼 ‘대외홍보용’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남성을 내세운 여타의 형사물들과 차별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현장에서 강인하고 털털해 보이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에서야 제대로 차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의 차수경이 보이는 것. 그러나 그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픈 기억뿐이다.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부서진 기억.

김재윤, 그녀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 김재윤(하정우)이다. 우연히 가게된 그녀의 집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곰 인형과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녀의 본모습(여성성)이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고 복잡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김재윤에게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은 호기심 이상의 그 무엇으로 다가간다. 안전한 삶을 희구하던 김재윤에게 부서질 것 같은 차수경의 모습은 자꾸만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 밖의 남자였던 김재윤은 차수경 속에 있는 남자(한상민)를 밀어내고픈 욕구를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남 일 상관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김재윤이 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그가 그럭저럭 버티다 나중에는 편안하게 변호사나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에서 김재윤과 차수경의 갈등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예감하게 한다. 차츰 차수경의 안간힘에 눈이 밟히는 김재윤은 지금까지 ‘남 일’이었던 사건들이 차츰 ‘내 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용하-김일주, 전형적 형사물의 구도
형사물을 보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형사. 베테랑에 경험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폐인에 가까운 형사가 장용하(최일화)다. 승진보다는 범인 잡는 데 삶을 바친 이 같은 전형적 형사 캐릭터의 존재이유는 형사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잠복수사같은 현장중심의 수사방식에서 과학수사로 넘어오면서 차츰 공룡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디 수사가 과학만으로 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전 경험이다.

그런 그에게 도전하는 인물.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원칙주의자 김일주(정동진)다. 장용하가 임의동행을 하려는 것을 피의자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막는 김일주는 과거식의 수사방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표격인 장용하와 부딪칠 수밖에. 실력으로만 인정받고픈 그에게 무능함의 대명사로 보이는 장용하는 그가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점은 역시 경험과 열정. 그러니 이 둘의 만남은 묘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부족한 장용하와 경험이 부족한 김일주가 파트너가 된 이유다.

남성식-심종금, 투캅스의 부활
영화 ‘투캅스’의 재미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부조화에 있다. 닳고닳은 타락한 고참형사와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만 부르짖는 신참형사의 만남. 그러나 차츰 닮아가고 나중에는 심지어 청출어람(?)을 보이는 신참의 모습에 오히려 고참이 훈계(?)하는 형국으로의 전환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히트’의 남성식(마동석)과 심종금(김정태)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생각은 좀 모자란 듯 하지만 완력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남성식은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여성 강력팀장인 차수경의 빈 구석을 꽉 채워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완벽한 수족이 될 그는 그러나 여성적인 내면(?)까지도 갖추고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콤플렉스와 외모가 조폭인 그의 섬세한 면모들은 한편으로 그럴듯한 외모에 머리만 굴리며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는 묘미가 있다. 그와의 대척점에서 심종금의 면모가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타락한 형사가 된 것은 사실 사회의 부조리함을 뒤집어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심종금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밝혀질 즈음, 보여질 그의 진면목에서 우리는 동정심과 애정을 예감하게 된다.

전문직, 멜로,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다
이 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전직형사이자 선술집 주인인 김영두(김정민), 수사본부의 부지휘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그 넉넉한 허리가 되어주는 조규원(손현주), 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줄 정인희(윤지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꿈틀거린다. 이들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외인부대처럼 버려지거나 외면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보여주려는 것은 그들이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며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여러모로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케 하는 전문직 드라마지만 ‘히트’의 전개양상은 이러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저네들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스타일은 따왔으되 하려는 이야기는 저네들의 쿨한 관계보다는 좀더 끈끈한 팀 간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두홍이라는 걸출한 무술감독으로 인해 깨지고 부서지는 우리 식의 액션이 선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히트’가 서는 지점은 형사물로 대변되는 전문직드라마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팀으로 대변되는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게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 드라마의 성패는 바로 그 적절한 배합과 균형에 있을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의 성공적 봉합, ‘외과의사 봉달희’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의 가능성을 보여준 ‘외과의사 봉달희’. 시작부터 예고된 것이었지만 봉달희(이요원)는 그토록 꿈꾸던 의사가 됐다. 그런데 그 의사가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려운 여정이었다. 처음 그녀의 앞길을 막은 것은 선천성 심장병으로 조금만 무리하면 재차 감염될 수 있는 병. 게다가 병원이란 환경은 늘 감염의 위험을 갖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병원으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병 때문이었다. 이로서 그녀는 환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에서부터 의사로의 길은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뜻은 좋았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 선다는 것은 때론 의사에게는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된다.

심근경색 환자를 소화제 처방해 결국 사망하게 하고 식도가 약해진 환자 동건에게 딱딱한 고구마를 먹게 해 중태에 빠뜨린 그녀는 환자들의 생과 사가 자신의 순간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는 중대한 사실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이 그녀가 의사가 되기 위해 처음 넘어야할 아픔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판단으로 괴사성 근막염으로 사망할 위기에 처한 환자를 살려냈을 때 슬픔과 함께 기쁨도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의사로서의 기쁨과 슬픔을 알게 될 즈음, 그녀는 또 한번 중대한 시험에 빠진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희망이다. 환자를 살리고 싶은 욕구로 인해 그녀는 동건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무리한 선택(항암제 투여)을 하게 한다. 결국 동건이 사망하자 그녀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에 사로잡힌다. 그녀의 욕구가 동건의 생명을 오히려 단축시키고 말았던 것. 자포자기에 빠져있을 때 그녀에게 다가오는 인물, 바로 안중근(이범수)이다.

안중근은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철저히 마음의 문을 닫고 의사로서의 삶만을 살아왔다. 천재의사라는 소리를 듣지만 버럭 소리지를 줄만 알았지 연애에는 젬병이다. 그렇게 굳게 닫힌 그의 마음에 봉달희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갖고 있던 동병상련의 아픔 때문이다. 입양됐다 파양되는 상처를 입은 안중근은, 선천성 심장병을 갖고 살아온 봉달희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은 상처를 넘어서고자 의사가 되려는 안간힘이다.

냉정한 안중근의 마음 속에 봉달희가 자리할 즈음, 병원에서 살인용의자가 봉달희를 칼로 찌르고 도망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런데 그 살인용의자는 안중근이 한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살려놓은 인물. “생명에 우선순위는 없다”며 의사로서의 판단만을 말하던 안중근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의사로서의 안중근은 차츰 남자로 깨어나기 시작한다. 순간적으로 ‘버럭 고백’을 해버리고 내친 김에 ‘버럭 데이트 신청’도 해버린다.

이 즈음 의사가 되기 위해 매일을 환자와 씨름하던 봉달희는 최대의 고비를 맞게된다. 그것은 예고된 대로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 싸움에 안중근도 참요하게 된다.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는 기계판막을 이식하지 말아달라고 하나, 안중근은 의사 안중근이 아닌 남자 안중근으로서 판단해 기계판막을 이식한다. 환자에서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를 의사에서 남자가 된 안중근이 막아서게 된 것. 하지만 결론은 의사가 된 봉달희가 남자가 된 안중근과 엮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결과를 보면 조금은 도식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그것은 앞서도 말했듯이 멜로와 전문직 드라마를 잘 봉합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거기에는 봉달희와 안중근이라는 두 캐릭터의 만남이 주효했다. 의사가 되려는 봉달희에게서 생명을 다루는 의사라는 전문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천재지만 사랑에 익숙지 못한 안중근을 통해 한 의사이자 인간으로서의 사랑방식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두 캐릭터만으로도 이 드라마는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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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과 봉달희가 원하는 사회

병원드라마를 가지고 이것이 진짜 병원의 실상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병원의 실상을 보고 싶다면 ‘닥터스’나 병원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면 된다. 물론 병원드라마는 그 소재에 걸맞게 이야기도 병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으로 갖춰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현실적인 결론에만 집착한다면 드라마가 가진 극적 장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수 있다. 드라마는 때론 실상은 아니지만 실상이었으면 하는 환타지를 다루며, 그 환타지와 현실의 차이를 통해 더 강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최근 병원드라마들이 갖춘 요건들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이미 종영한 ‘하얀거탑’이나 앞으로 종영될 ‘외과의사 봉달희’는 드라마로 구성된 병원이야기일 뿐, 실제 병원의 이야기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얀거탑’의 외과과장 장준혁(김명민)은 우리나라 외과의를 리얼하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거탑의 꼭대기에 군림하며 외제자동차를 몰고 다니고 일식집을 들락거리는 외과의사는 실제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외과의사 봉달희’ 역시 마찬가지. 물론 병원에서 벌어질 수 있는 환자들과 의사들의 생과 사를 두고 싸우는 모습은 리얼하지만 1년 차 레지던트가 교수들과 벌이는 연애는 실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맞다. 이건 드라마다. 현실이 아니다. 이들 병원드라마는 허구다. 장준혁과 봉달희(이요원)는 허구로 만들어진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이 인물들은 매력적이다. 이 캐릭터들 속에는 외과의사 아니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욕망과 욕구가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욕망과 욕구는 일반 시청자들이 투사해도 될 만큼 보편적인 것들이다. 상승욕구 혹은 성장욕구. 장준혁의 거탑을 향한 상승욕구는 일반 샐러리맨들의 욕구와 맞닿아 있으며, 봉달희의 연애를 포함한 성장욕구는 우리 일상인들의 보편적인 욕구이다. 두 병원드라마가 하는 이야기는 결국 의사의 이야기를 빌어서 하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같은 병원 소재를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스타일을 고수하는 이 두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같은 설정을 가진 부분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의 역할 바꾸기’이다. 장준혁이 결국 담관암에 걸려 자신이 종횡무진 활약했던 수술대에 오르는 것은 의사 이야기에서 환자 이야기로 연결되면서 ‘의사→환자→인간’의 구도로 회귀하기 위함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일찌감치 이 역할 바꾸기에 몰두해왔다. 봉달희의 캐릭터 설정 자체가 선천성 심장병 환자이며, 이건욱(김민준)은 폐암수술을 받고, 조문경(오윤아)은 아들이 급성확장성심근증으로 수술을 받는다. 모두 역할 바꾸기의 사례들이다.

이러한 역할 바꾸기의 목적은 그것이 극적인 연출에 효과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라는 자칫 차갑기만 하게 느껴지는 기계적인 직업인을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환원하기 위함이다. 의사가 환자가 되고, 의사가 의사를 수술하며(더욱이 평사시에는 경쟁자로 있던 의사가), 수술을 받아야할 병을 가진 의사가 기다리는 환자를 먼저 수술하는 이 장면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죽어 가는 환자를 보면서 적어도 살아있는 자신에 ‘부끄러운 안도’를 갖는 봉달희는 그래서 의사이지만 한 인간이기도 하다.

병원드라마는 의사들을 빌어 사람들의 환타지를 다루었다. 거기서 의사들은 의사이면서도 한 명의 인간들이었다. 그들은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결국 죽음 앞에 경건해지는 인간(장준혁)이며, 자기도 아프고 두렵고 연애하고 싶은 한 인간(봉달희)이다. 그것이 진짜 의사의 이야기가 아닌 허구라고 해도 그 허구는 보편적인 진실을 향해 간다는 점에서 더 리얼하다. 웃음, 눈물, 증오, 사랑, 절망, 희망, 질투, 고뇌... 병원드라마를 통해 본 의사들의 인간적인 감정들을 보면서 우리는 새삼 따뜻한 병원을 느낀다. 그것 역시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병원의 모습이란 건 분명하다. 병원드라마에서 발견한 인간은 거꾸로 실제 병원에서 찾기 힘든 인간적인 의사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병원드라마를 너머 인간드라마로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닌 인간 냄새나는 사회에 대한 희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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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거탑’이어 ‘마왕’ 주제가 부르는 바비 킴

고현정이 드라마로 복귀해 화제가 되었던 ‘여우야 뭐하니’에서 천정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나오는 노래, ‘고래의 꿈’. ‘하얀거탑’에서 장준혁의 고뇌 어린 얼굴에 흐르던 노래, ‘소나무’. 모두 ‘힙합대부’에서 ‘소울의 제왕’으로 돌아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바비 킴(본명 김도균)의 곡이다.

드라마에서 그의 목소리를 찾는 이유는 바비 킴 특유의 음악적인 맛 때문이다. 그 맛은 마치 레스토랑에서 먹는 시큼털털한 김치 같다. 힙합이라는 서구적 음악형식에 있어 극도로 세련되어 있고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 식으로 흔히 말하는 ‘뽕끼’가 가득한 음악을 내놓으니 말이다. 즉 매력적이고 세련된 멜로디에 자신만의 아이덴티티가 묻어나는 음색과 개성이 드라마 같은 극적인 장르에 잘 녹아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바비 킴으로서의 개성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가 비로소 자신만의 개성을 발하며 주목을 받게된 2집 앨범 ‘Beats Within My Soul’에 오기까지 그는 무려 10여 년의 세월을 돌아왔다. 1994년 레게 힙합을 선보인 닥터레게 싱글의 성공으로 장밋빛 미래가 보였던 것도 잠시, 앨범 출시 2주만에 그룹이 해체되는 비운을 겪은 그는 줄곧 실패를 거듭해왔다. 그에게 힙합대부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윤미래, 리쌍, 다이내믹 듀오, 버블 시스터즈, 드렁큰 타이거 등의 가수들과 작업해온 결과. 정작 본인은 늦깎이 힙합 가수로서 ‘랩 할아버지’란 별명이 더 어울린다고 한다.

98년 솔로로 낸 1집 앨범 ‘Holy Bumz Presents’에서 그 변화의 조짐을 보여준 바비 킴은 2집에 와서는 완전한 자기 스타일의 소울을 선보인다. 흑인음악을 그저 흉내내는 것이 아닌 온전히 우리 것으로 소화하는 작업을 보여준 것. ‘고래의 꿈’으로 대표되는 그 곡들은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단순한 리듬에 바비 킴만이 소화할 수 있는 나른한 음색이 만나 절묘한 음악적 세계를 구축해놓는다. 1집에서처럼 그의 목소리는 굳이 격하지도 않고 메시지는 강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넋두리처럼 쏟아내는 그 가사들은 오히려 더 강하게 청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어깨의 힘을 빼자, 호소력은 더 짙어진다.

최근에 낸 3집 앨범, ‘Follow your soul’은 앨범명에서 드러나듯 좀더 소울이 깊어진 느낌이다. 2집의 실험적인 스타일에서 좀더 안착한 느낌이랄까. ‘파랑새’라는 곡은 여러모로 전작 ‘고래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고래의 꿈’이 바다를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그려냈다면, ‘파랑새’는 그 향수의 대상을 하늘에서 찾아낸다. ‘고래의 꿈’의 분위기를 그의 아버지인 김영근씨의 트럼펫이 만들었다면 이번 ‘파랑새’는 전제덕의 하모니카가 합세한다. 랩보다는 힙합 베이스에 멜로디 중심의 소울을 구사하는 바비 킴의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곡이다.

바비 킴은 오는 3월21일 새롭게 시작하는 엄태웅, 주지훈 주연의 KBS 드라마 ‘마왕’에서도 주제가를 부를 예정이다. ‘하얀거탑’의 ‘소나무’에 이어 이번엔 어떤 음악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자못 궁금하다. 드라마를 통해 새삼 바비 킴의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최근 OST 시장이 새로운 가요계의 탈출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된 가수가 아닌 진정으로 노래하는 음유시인, 바비 킴의 드라마 나들이가 여타의 실력 있는 가수들의 전범이 되기를 바라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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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혁을 위한 변명

‘하얀거탑’은 결국 환타지보다 현실을 선택했다. 장준혁(김명민)에 대해 쏟아지는 애정의 근원은 바로 그가 우리네 3,40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담고 있기 때문. 성공을 위해 밤낮 없이 달리던 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픽 쓰러지는 장면들은 이제 낯선 장면이 아니다. “장준혁을 살려내라”는 거센 요구는 바로 그런 현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그렇다면 장준혁이 달려온 길은 이 시대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어떻게 대변했을까.

장준혁도 이주완(이정길) 과장이 딴 맘을 먹기 전까지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개원의도 아니고 종합병원에서 그것도 모두가 기피하는 외과에서 10여 년을 숨죽여가며 주는 봉급 받아가며 살아온 샐러리맨. 실력은 최고지만 조직의 생리가 어디 실력만으로 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바로 조직이 거탑의 모양새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위로 갈수록 숫자는 줄어드는 그 구조는 밑에서 올라가기는 힘들어도 위에서 올라오지 못하게 막기는 쉽다. 그러니 아직 현역인 이주완 과장의 눈밖에 난 장준혁의 선택은 생존을 위해 당연한 것이다.

거탑의 구조가 갖는 생리는 오르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것. 가만히 있는다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다. 인사철에 누락된 자신을 현상유지로 받아들이는 샐러리맨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을 향한 질주는 사실 생존을 위한 강한 몸부림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어떤 면으로 보면 장준혁은 그래도 운 좋은 인물이다. 적어도 그런 상황에 접했을 때, 현실에서라면 그저 고개 숙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에게는 뒤를 밀어주는 든든한 백(장인이나 아내 같은)이 존재했다.

그렇게 해서 오른 거탑의 꼭대기에 서면 더 많은 잔인한 결정들에 직면해야 하는 것이 현실. 그의 위치는 윤리적 결정보다는 실리적 결정을 해야한다. 장준혁은 조직이 요구하는 대로 거침없이 질주하기 시작한다. 꼭지점에 존재하는 자는 앞만 보고 달려야지, 옆도 쳐다보고 또 뒤도 돌아보고 하면 조직 전체가 둔화된다. 문제는 어느 순간 과도한 욕망에 사로잡혀 본분을 잊는 순간에 발생한다. 여기에 물론 극화되어 과장된 캐릭터지만 늘 조직이라면 존재할만한 염동일(기태영) 같은 인물이 엮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이미 벌어진 사건은 조직의 차원에서는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것은 조직의 차원이 들어감으로써 인간적인 판단은 결여된다. 윤리적으로도 법적으로도 패한 장준혁이 가졌을 상실감의 깊은 근원 속에는, 단지 패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조직이란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윤리적인 선택마저 해야만 하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과장된 해석일 수 있지만 그가 가진 암은 그런 심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몸의 반응처럼 읽힌다. 성공의 뒤안길에 나타나는 죽음의 그림자. 그것은 저 ‘성공시대’라는 영화에서 안성기가 그랬던 것처럼 욕망의 끝으로 나타나는 징후이다.

그러므로 장준혁의 죽음으로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정의는 이긴다’같은 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왜 그가 죽어야 했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왜 그토록 성공에 목말라 했나 하는 질문으로, 또 어째서 그런 비윤리적인 일까지 서슴지 않게 되었는가 하는 좀더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환원된다. 그것은 거탑의 구조 속으로 뛰어들어가야만 하는 사회, 그 거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별의 별 짓을 다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그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라곤 갑작스런 사망선고 같은 허망함뿐인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것이 할 짓 못할 짓 다 해가며 거침없이 거탑을 향해 질주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장준혁에게 숙연해지는 이유다. 고인에게 명복을. 이 땅에 그처럼 살아가다 끝을 보아버린 모든 샐러리맨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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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드라마의 이유 있는 선전

값비싼 스포츠카에서 내려 조금은 풀어진 듯한 모습으로 건물로 들어서는 남자. 그를 전날 길거리에 우연히 만났던 말단 여직원(하지만 늘 굳건하고 씩씩한 우리의 여주인공!)이 막 회사로 들어서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말을 건다. 옆에서 수행하던 비서들이 제지하면서 여자는 그가 이 회사 총수의 아들이라는 걸 알게된다….

식상한 트렌디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 한 때는 한류의 한 공식처럼 통용되던 이 구조는 작년 한 해 시청자들에게 철저히 냉대를 받았다. 이로서 제작자들은 알게 되었다. 적당한 삼각 사각구도의 멜로 라인과 몇몇 스타들을 캐스팅하면 무조건 된다는 안이한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올해 들어 새롭게 선보인 것이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외과의사 봉달희’, ‘하얀거탑’ 같은 병원드라마가 그것이다.

트렌디는 가고 전문직이 뜬 이유
이제 통상적이고 구태의연한 구조의 드라마에 왠지 눈이 가지 않게 된 것은 달라진 매체 환경의 영향이 크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의 힘이다. 인터넷이란 매체는 무엇이든 그 속에 담겨질 때 매니아화되는 경향이 있다. 초창기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를 접해본 몇몇 매니아들이 그 저변을 꾸준히 인터넷을 통해 퍼뜨리자 그 영향은 네티즌들 전체로 파급되었다. 방송과 인터넷이 공존하는 시대에 이런 영향은 곧바로 드라마 소비자들의 입맛을 바꾸어버렸다. 몇몇 식상한 국내 드라마에 대한 비판과 외면은 거세졌고 그러자 방송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전문직 드라마(진정한 의미의)가 등장했고 그 첫 번째 타석에 선 것이 병원드라마이며, 이것은 이어서 형사드라마 같은 분야로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반응은 예상대로 뜨겁다. 미드와 일드를 보며 우리에게도 저런 드라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이 ‘우리나라’라는 딱지가 붙은 전문직 드라마에 어찌 애정이 없을 수 있을까. ‘하얀거탑’ 같은 경우 실제 시청률은 15∼20% 사이에 머물고 있지만 인터넷을 통한 파괴력은 50%를 넘기고 종영했던 ‘주몽’에 못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외적인 조건만큼 중요한 요인들이 있다.

‘하얀거탑’, 전문직 드라마로 조직을 말하다
장준혁(김명민)이란 천재 외과의사의 성공을 향한 무한질주를 담은 ‘하얀거탑’. 병원드라마의 뚜껑을 열어보니 거기엔 정치가 있었다. 병원 내에서 외과과장을 두고 벌어지는 권력다툼이 그것이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는 놈이 강한’ 그 세계는 선도 악도 없는 곳. 바로 우리들이 사회에서 몸담고 매일 살아남기 위해 싸워나가야 하는 ‘조직’이라 불리는 곳이다. 병원이란 공간이 우리들이 경험하는 조직이란 공간으로 환치되자 거기 서 있는 장준혁은 모든 샐러리맨들의 욕망을 부여받은 캐릭터가 된다. 때론 비열하고 비정한 그의 무한질주는 그래서 용납된다. 스포츠카와 성공, 돈, 권력 같은 것을 추구하는 장준혁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조직에 몸담은 이들의 로망이 된 것이다.

이 드라마가 리얼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병원사회를 리얼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하얀거탑’에서 그려지는 병원 사회의 모습은 오히려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단 한 사람 꼭지점에 있는 외과과장이 전체 병원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우리네 병원의 모습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리얼함이란 바로 조직의 리얼함을 말하는 것. 바로 이 부분이 전문직 드라마로서 ‘하얀거탑’을 성공작으로 만든 주요인이다.

‘∼봉달희’, 전문직 드라마로 인간을 말하다
한 템포 늦게 시작한 ‘외과의사 봉달희’에 대한 초기 반응은 혹독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비판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는 이 드라마가 ‘하얀거탑과는 달리’ 멜로가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를 표절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비판은 ‘하얀거탑’의 영향으로 ‘멜로가 있는 전문직 드라마’라는 것이 과거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데서 발생했을 뿐 근거는 희박한 것이었다.

두 번째 비판은 아무래도 원작 없는 ‘토속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의심한데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만큼 일드, 미드에 익숙한 매니아들은 우리가 그런 드라마를 순전 우리 원작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데 의구심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이 드라마는 우리 식의 멜로적 상황에, 의사라는 특정 직업이 갖는 고민, 여기에 보편적인 생명에 대한 질문들이 겹쳐지면서 어떤 면으로는 우리 식의 전문직 드라마를 보여주는데 성공했다고 생각된다.

이 드라마는 우리가 병원에서 통상적으로 보던 의사의 모습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의사의 모습을 조명한다. 그러자 환자의 생과 사를 다루는 인간이자 의사란 양면성이 부딪치면서 존재론적인 질문들이 던져진다. ‘살릴 것인가 죽일 것인가’, ‘의사인가 인간인가’, ‘의사로서의 선택인가 인간으로서의 선택인가’, ‘생명에 우선순위가 있나’ 등등 그 질문은 사뭇 진지하다. 그러나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드라마의 분위기는 정감 가는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에피소드로 인해 경쾌해진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전문직 드라마가 결국엔 가야할 인간에 대한 이야기, 즉 본질에 접근하는 ‘본격 전문직 드라마’라 할만하다.

디테일을 통해 하는 현실이야기
이들 전문직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섬세해진 디테일이다. 이것은 과거 의사가운 입은 사람들의 멜로드라마였던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와 비교해서 말하는 그런 정도의 디테일이 아니다. 아예 알아먹기 힘들 정도의 전문용어들이 대사로 쏟아져 나오고 수술장면에 있어서는 실제 의사들이 참여해 리얼리티를 만들어낸다. 무엇보다도 그 에피소드에 있어서 병원이나 의사 같은 특정 상황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디테일들이 풍부하다. 이것은 새로운 전문분야의 재발견에 가까운 것이다.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의사라는 성역의 이면을 훔쳐보는 것에 어찌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놀라운 디테일이 말하려는 것은 그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바로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는 것. 결국 전문직 드라마는 그 복잡하고 다양한 디테일을 파고들지만, 그것을 통해 결국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하얀거탑’은 조직생활을 하는 모든 이들의 로망을 다루고 있고, ‘외과의사 봉달희’는 인간으로서 선택 앞에 고민에 빠진 의사를 다룬다. 그러니 전문직 드라마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저네들의 세상’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디테일을 통해 보여주는 현실이야기. 이것이 전문직 드라마가 각광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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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공화국, ‘거침없이 하이킥’

왠만해선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보다가도 거침없이 날아오는 웃음킥에 실실 웃다보면, 어느새 이 유쾌한 하이킥에 중독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중독의 실체는? 바로 캐릭터공화국이라 할 만큼 다채로운 웃음의 개성을 지닌 폭소유발자들. 따로따로 떼어놓고 봐도 영 웃기는 캐릭터인데,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는 이야기에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거침없이 하이킥’, 그 속의 캐릭터에는 도대체 어떤 마력이 숨어 있는 걸까.

세대를 잇는 이 시대의 아버지, 야동+순재
이전까지 젊은 세대들에게 그는 좀 재미있는 기성세대로서의 ‘대발이 아빠’ 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높은 영원한 스승으로서의 ‘유의태’였다. 그러나 그가 노트북 앞에서 “야동”이라 외쳤을 때, 젊은 세대들의 가슴속으로 그는 단박에 들어갔다. 다음날 인터넷에는 그의 이름과 ‘야동’이란 단어가 합쳐진 ‘야동순재’라는 검색어가 떴다. 그런데 ‘야동순재’는 전날 시트콤에 나온 에피소드를 줄여만든 단순한 단어의 결합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꺼이 젊은 세대의 마음 속으로 파고든 일흔이 넘은 어르신의 표상이 되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이후에도 그의 이름 앞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중 주목할만한 것은 ‘악플순재’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독수리타법으로 계속해서 악플을 올리는 모습에서 비롯된 호칭.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순재라는 이름 앞에 붙은 ‘야동’과 ‘악플’이란 단어다. 이 단어들은 모두 인터넷과 연관된 것으로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친숙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두 단어가 순재라는 이름 앞에 붙어버리자 이것은 순재와 네티즌 사이에 놓여진 길게는 오십 년, 작게는 사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버린다. 이 시대의 아버지의 초상, 이순재라는 놀라운 캐릭터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이후에도 이순재라는 캐릭터는 당당하고 거침없어 보이며 자애롭기까지 해 도무지 이빨이 들어가지 않을 기성세대의 모습을 겉으로 내세우면서도, 그걸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방송에 나가 땀을 뻘뻘 흘리며 굴욕을 당하는 순재, 나문희에게서 S라인을 느끼는 순재, 멋진 골을 넣고 골 세레모니를 통해 나문희에 대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순재의 모습은 우리가 아버지는 권위적일 거라는 피상적인 편견을 깨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렇게 어르신이 솔선수범해서 마음을 열어주자 그 속으로 들어온 다채로운 캐릭터들은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시집살이하는 시어머니 애교+문희
이 시대의 진정한 연기자 나문희. 다양한 스펙트럼의 어머니 연기로 정평이 난 그녀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와서는 ‘시집살이하는 시어머니’ 역할을 맡았다. 멋대가리 없는 남편과 제 주장만 펼치는 며느리 사이에서 제 영역이 불분명해진 요즘의 시어머니들을 대변한다.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하고 세상 놀랄 것 없는 나이의 그녀. 그러나 찬찬히 면면을 살펴보면 놀랍게도 수줍은 소녀 티가 묻어난다. 캐릭터 상 아들 준하와 함께 ‘괴력’과 ‘식탐’으로 한 세트를 이루는 그녀에게서 언뜻 보이는 이런 면모는 ‘애교문희’란 호칭을 얻은 에피소드에서 극대화된다.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줍기만 한 그녀가 자신의 나이 값을 하기 위해 취하는 의식적인 행동은 무뚝뚝함. 그런 그녀가 어느 순간 ‘애교’라는 닭살을 떨어보기로 한 것. 그것은 차마 보기 힘들 정도의 대변신이지만 한편으로는 앞치마에 휴대폰을 목에 건 채 늘 부엌떼기로 취급받는 자신에 대한 작은 반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그녀 역시 조그마한 일에서 기쁨을 찾아낸다. 자신을 왕 무시하는 며느리 앞에서 늘 입을 삐죽대다가도 며느리의 작은 실수에 쾌재를 부른다.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녀의 작은 기쁨에 동참한다.

그런데 그녀의 ‘작은 기쁨’에는 묘한 페이소스가 숨어있다. 유난히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는 자는 슬프다. 울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통닭 몇 마리에 환하게 웃는 얼굴에는 왠지 모를 가슴저림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그것은 그녀가 괴력의 소유자라는 것과 기묘하게 어울린다. 마치 엄청난 힘을 가진 거인이 그 힘을 모두 타인을 위해 쏟아 부은 후, 자신을 위해서는 작은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모습. 그것은 바로 생각하면 유쾌하게 웃다가도 뭉클해지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아귀가 되어버린 고개 숙인 가장, 식신+준하
그가 바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그건 그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니까. 그는 오히려 기꺼이 웃음 없는 사회에 웃음을 주기 위해 바보가 된 천재다. 바보가 주목을 받는 건 그만큼 사회가 각박하고 힘들다는 반증이다. 너도나도 잘난 사회에서 그가 늘 도맡는 역할은 어눌하고 바보 같은 캐릭터. 준하는 그 같은 캐릭터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때론 진한 공감을 때론 희망을 선사한다.

늘 손에 무언가 먹을 걸 들고 있는 그를 보며 순재는 “동물이냐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은 “왜 버젓한 가장이 빈둥빈둥 집에서 어슬렁거리면서 늘 먹을 것만 찾는 동물이 되었는가”하는 사회적인 맥락으로 읽힌다. 그는 마치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저 사회에 대해 반항하는 것 같다. 자신이 원한 것이 아닌데도 밥벌이를 못한다는 주변의 질책에 대해 오히려 먹을 것만 찾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의 식탐은 못 먹어 죽은 귀신이 아귀로 태어나는 것처럼 어쩌면 밥벌이에 대한 갈증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아귀가 되어버린 고개 숙인 가장의 가족을 향한 마음은 애틋하기만 하다. 아내인 해미와 벌이는 닭살 애정행각은 ‘아내 자랑은 팔불출’이란 맥락과도 맞닿아있지만 또 한편으론 부부사이에도 쿨하기만한 세태에 가슴 뭉클한 따뜻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늘 인상을 쓰고 앉아 무언가를 먹으며 투덜대고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괴력의 사나이. 그는 어머니인 나문희와 그대로 짝을 이룬다. 그래서 이 시트콤의 가장 억압받는 두 존재는 문희와 준하가 된다. 그래서일까. 그 둘이 함께 식탐에 빠지는 장면에서 늘 배꼽잡고 웃다가도 애잔한 감정이 남는 것은.

먼저 OK할 수 있는 그녀, OK+해미
‘하늘이시여’에서 자신의 딸에게조차 시어머니 역할을 했던 해미는 ‘거침없이 하이킥’에 와서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조차 시어머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다만 확연히 달라진 것은 ‘하늘이시여’의 방식이 부정(NO)의 방식이었다면, ‘거침없이 하이킥’의 방식은 긍정(OK)의 방식이라는 것. 당당한 이 시대의 며느리들이라면 해미의 OK 방식에 마음을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거침없는 OK가 매력적인 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워킹우먼이라면 선택의 기로에서 그녀처럼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는 자신이었으면 할 때가 얼마나 많을까. 해미 캐릭터의 핵심은 바로 ‘능력’이다. 그녀는 사회생활에서도 가정사에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여성의 표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이건 이상일 뿐 현실은 아닐 것. 그런 점에서 그녀는 이 시대의 여성상을 대변하는 동시에 여성들이 희구하는 하나의 환타지가 된다.

“남이 당신에게 OK라 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OK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그녀의 대사 속에는 누구에게 규정되기보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능동적인 여성상이 반영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적극적이고 심지어는 공격적으로 느껴져 사육해미가 되기도 하는 그녀의 캐릭터는 그녀 주변에 있는 소심한 캐릭터들(가장 중심에 있는 나문희와 준하 같은)과 명쾌한 대비를 이루며 웃음을 유발한다. 나문희와 준하 같은 소심한 우리네 소시민들에게 늘 시원시원한 해답을 내주는 그녀가 소중하게만 느껴지지 않을 까닭이 있을까.

이 시대가 요구하는 까칠남, 까칠+민용
요즘은 까칠한 남자가 뜬다는데, ‘거침없이 하이킥’에도 ‘까칠’하면 빠지지 않는 이민용이란 캐릭터가 있다. 까칠남이 이렇게 주목을 받는 이유는 과거의 이상적인 남성상으로서의 로맨티스트가 이제는 느끼남이 되어버렸기 때문. 즉 까칠한 건 참아도 느끼한 건 못 참는다. 물론 드라마 캐릭터로서(아마 실제는 다를 지도 모른다) 말이다. 까칠남의 매력은 늘 까칠하다가도 어느 순간 잠깐 보이는 부드러움에 있다. 본래는 부드러운 사람이지만 무언가 상처 같은 것이 그를 까칠하게 무장시킨 탓이다. 이민용은 이 복합적인 까칠남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까칠해진 이유? 그건 아마도 27살이란 젊은 나이에 이혼남에다 아이까지 갖고 있다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그 정도 되면 이제 현실의 각박함은 이미 벌써부터 겪어왔을 터이지만, 그럼에도 젊은 나이가 갖는 풋풋함 역시 갖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젊은 나이에 젊음을 누리지 못하게 된 상황을 자초한 그는 지금 자신을 벌주는 중이거나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잔뜩 웅크리는 중이다. 어찌 보면 배배 꼬여버린 성격의 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밖에 없다. 바로 꽈당민정이다.

울면서 웃기는 그녀, 꽈당+민정
그녀는 왜 아무 이유 없이 ‘꽈당’ 넘어지는 걸까. 그 행위 자체는 바보스럽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미지가 민정과 연결되자 거기에는 순수함과 더불어 묘한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구석이 생긴다. 작고 약하기만 할 것 같은 그녀. 하지만 그녀의 솔직함은 그대로 까칠한 민용의 마음에 꽂혀버린다. 그녀는 늘 진지하다. 좋다면 “정말 좋아요”라고 거침없이 말하고, 아이들을 꽉 잡기 위해 단호한 목소리로 사랑의 매를 들고 호통을 친다. 하지만 진지한 그녀가 하는 행동은 늘 어색하다. 이 마음을 몸이 따라가지 않는 상황이 그녀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시킨다.

그렇지만 그 어색함은 기분 좋은 어색함이다. 마치 어린이가 어른 흉내를 내다 들킨 것 같은 유쾌함. 그래서 그녀가 웃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웃게 된다. 또 그녀가 진지해질 때도 우리는 웃게 된다. 심지어 때로는 그녀가 울 때조차 우리는 웃음을 짓게 되는데 그것 역시 그 울음 속에서 과장된 응석의 귀여움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사정없이 귀여운 그녀. 넘어질 때도, 화를 낼 때도, 심지어는 울 때조차도.

모성애로 돌아온 철없는 이혼녀, 신지
신지란 극중 캐릭터는 억울하다. 그것은 최초 설정에서 얄팍하고 깨지기 쉬운 가족의 모습을 구성하다 보니, 신지란 캐릭터가 ‘자신의 꿈을 찾아’ 철없이 이혼하고 러시아로 떠나는 설정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러시아에서 얻은 것은 결국 사기.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서 먼저 여타의 캐릭터와 달리 신지는 진지함이 사라졌다.

여기에 돌아온 이혼녀가 이제 막 러브라인을 만들어가는 민용과 민정 사이에 끼어 삼각관계를 이루자 캐릭터에 대한 호감마저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신지란 신인연기자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생겨난 문제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지는 러브라인에서 빠져나와 적극적으로 민용과 민정을 밀어주는 조력자가 되면서 캐릭터에 대한 존재감이 살아나고 있다. 또한 아무 대사는 없지만 늘 온 가족을 울리고 웃기는 아기, 준이의 도움을 톡톡히 받고 있다. 준이를 통해 신지는 철없는 이혼녀에서 모성애로 귀환하고 있다.

톰과 제리, 이윤호와 이민호
우리는 이윤호와 이민호, 이 두 캐릭터를 보면서 좀 헷갈리게 된다. 겉으로 볼 때 전교 꼴등에 오토바이를 몰지 않나, 툭하면 패싸움에 휘말리고, 툭하면 자습시간에 도망치는 윤호는 전형적인 꼴통이다. 반면 늘 일등에, 탁월한 언어능력과 논리력, 심지어는 여자친구까지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민호는 모범생으로 보인다. 그런데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아닌 속까지 이 두 캐릭터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본 시청자들이라면 이 전형적인 사고의 틀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모범생으로만 보이는 이민호는 사실 그 얄미울 정도의 똑똑함으로 철저히 이득만을 챙기는 인물이다. 청소년으로서의 풋풋함보다는 일찍 어른의 세계에 도달한 캐릭터. 그래서 그는 오히려 꼴통으로 보인다. 반면 완소윤호라는 호칭을 얻고 있는 윤호는 거칠고 때론 모자란 듯하지만 정이 가지 않을 수 없는 인물. 그런데 재미있는 건 힘으로는 형인 민호를 동생 윤호가 제압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전형적인 톰과 제리의 재미가 이어진다. 힘은 세지만 어리숙해 매일 당하면서 “억울해”를 연발하는 윤호는 톰의 역할을, 힘은 약해도 비상한 머리를 굴려 윤호를 골탕먹이는 민호는 제리의 역할이다.

하지만 때론 제리의 영리함이 바보스러움을 만들기도 한다. 설익은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일약 ‘카리스마민호’란 호칭을 얻는 민호를 윤호를 위시한 가족들은 보기 좋게 한방 먹인다. 그래서일까. 공부만 잘했지 다른 방면에는 영 무지한 민호의 모습을 보면서 대학입시 교육의 희생자로서 윤호뿐만 아니라 민호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은.

가족보다 가족다운 그, 김 범
가족 바깥에 존재하지만 더 가족 같은 인물이 있다. 그는 신비롭기까지 한 김 범이란 캐릭터. 민호와 단짝을 이뤄 거의 매일 이 가족들 주위를 배회한다. 식신준하보다 민호네 냉장고 사정에 더 정통하고, 애교문희보다 더 가족사에 민감하다. 그러니 하숙범이란 호칭으로 불릴만하다. 그가 하숙범이라 불릴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 김 범이란 캐릭터가 그저 자주 놀러오는 친구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캐릭터가 배신범으로 불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이 캐릭터에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만큼 가족의 결속이 약해져만 가는 시대에 가족들보다 더 가족 같은 김 범의 존재 때문이다. 민호의 가족들이 김 범을 배신범으로 놀리는 장면들에서 ‘이건 너무 한다’싶은 마음이 들다가 그가 눈물을 흘리며 “그래요 전 가족은 아니에요. 하지만 단 한번도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라고 하는 장면에서는 왠지 모를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하숙생’이란 음악이 흘러나오며 리어카에 민호네 집에서 나온 자신의 물건을 싣고 떠나가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터지면서도 동시에 각박해진 현실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진지한 캐릭터들, 그 조합이 유발하는 웃음
이상에서 본 것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의 캐릭터들은 그저 희화화된 캐릭터로만 보기 어렵다. 그들은 과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틀 안에서 진지하다. 그들은 억지로 웃기기 위해 과장된 몸짓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특정 성격으로 극대화된 캐릭터들이 서로 조합을 이루면서이다. 캐릭터들의 수로 미루어보면 그 조합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주어진 상황에서 웃음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시트콤의 성공이 결국 그만큼 생산된 캐릭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보기만 해도 공감이 가고 웃음이 터지는 캐릭터들은 중요한 성공의 기반이다. 이것은 캐릭터 조합의 수를 1:1, 1:2, 2:2, 2:3…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변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이 시트콤은 지금까지 그 재미의 반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울한 시대, 불륜 코드까지 시청률이란 명목으로 방영되는 저녁 시간대, 가족이 둘러앉아 유쾌한 웃음을 웃게 해준 ‘거침없이 하이킥’의 롱런을 기대하게 하는 요인이 아닐까.

☆ 캐릭터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웃음들
▶ 야동순재 + 윤호민호 : 노트북을 사기 위한 윤호민호의 거짓말에 속은 순재가 노트북 앞에서 ‘야동’을 외치는 이야기.
▶ 순재 + 애교문희 : 모임에서 자신과 달리 애교를 떠는 여자(김애경)를 본 문희가 순재 앞에서 애교를 떨기 시작하는 이야기.
▶ 식신준하 + 문희 : 문희의 먹는 양이 줄자 울면서 “왜 밥이 줄어!”하고 준하가 오열하는 이야기.
▶ 순재 + 식신준하 : 늘 식충이로 순재의 주식만 날리던 준하가 갑자기 몇 일동안 계속 상한가를 치다가 결국 작전주로 밝혀지는 이야기.
▶ OK해미 + 까칠민용 : 사사건건 간섭을 하는 해미를 호시탐탐 노리던 민용이 해미의 실수(변기물이 막힘)를 찍기 위해 달리는 이야기.
▶ 까칠민용 + 꽈당민정 : 학생들에게 매일 당하기만 하는 민정에게 민용이 학생들 다루는 법을 가르쳐주지만 영 안 되는 민정의 이야기.
▶ 순재가족 + 배신범 : 민호의 여자친구 유미를 꼬드겼다는 사실로 순재가족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범이가 민호네 집에서 이삿짐만큼의 자기 짐을 챙겨 떠나는 이야기.
▶ 순재 + 준하 + 민용 + 윤호 + 민호 + 범 : 순재에게 쫓겨 민용의 옥탑방으로 들어간 그들이 오히려 거기 갇히는 이야기
▶ 이외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들.

Posted by 더키앙

장준혁이란 환타지를 위해 버려진 캐릭터들

‘권력을 향한 이전투구 끝에 외과과장이 된 장준혁(김명민)의 무한질주를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처럼 느껴졌던 최도영(이선균). 그러나 최도영이란 캐릭터는 아직까지도 장준혁의 까칠한 눈빛 속에 가려져 잘 눈에 띄지 않는다. 소송을 포기하려는 고 권순일씨의 처를 막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로 달려갈 때만해도, 또 거기서 장준혁에게 “왜 내가 네 말을 따라야 하는데? 나도 내 소신대로 해.”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법정에 선 최도영의 모습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장준혁 vs 최도영이란 대결구도는 애초부터 없었다
그런데 최도영이란 캐릭터에서 느끼게 되는 ‘어떤 기대감 → 실망감’은 이번만이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 초기부터 내내 있어온 것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김명민의 카리스마 연기가 더 돋보여서가 아니다. 한 회 분량에서 거의 대부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김명민과 잠깐 잠깐씩 등장하는 이선균을 같은 선상에 놓고 연기력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이것은 캐릭터의 성격이라든지 그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연기자 같은 캐릭터 내적인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캐릭터의 비중을 설계할 때부터 의도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로 보면 최도영은 장준혁의 카운터 파트로 설정되지 않았다. ‘장준혁 vs 최도영’이라는 대결구도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말이다.

드라마가 캐릭터를 그려내는 과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드라마의 시작과 함께 모든 카메라의 시선은 장준혁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주인공이니까.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장준혁이 그냥 주인공이 아닌 ‘악역을 해야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대체로 이런 캐릭터의 경우, 그 주인공이 왜 그렇게 되었나가 드라마 전편에 깔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악마적인 캐릭터 중간에 간간이 인간적인 고뇌 같은 모습을 끼워 넣어 자신이 이런 이전투구를 하는 것이 ‘자신이 의도한 것이 아니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대부분 범법자가 주인공인 드라마, 영화에서 캐릭터를 세우는 방법 중 하나이다.

그러니 이주완(이정길) 과장과의 초기 대결구도는 장준혁의 이런 캐릭터를 형성시키는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설정이다. 장준혁은 여러 번 “내가 왜 이렇게 외과과장이 되려고 하는 지 아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드라마는 가끔 시골에 사는 어머니에게 전화하면서 보여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 속시원한 이유를 말해주진 않는다. 막연히 배경도 돈도 없는 집에서 어렵게 자라 성공을 위해 노력해왔다는 인상만을 줄뿐이다. 그러나 3대째 의사집안인 이주완이 장준혁의 앞길을 가로막는다는 설정이 엮이자 이 막연한 설정은 힘을 발휘한다. 시청자들은 기꺼이 장준혁의 성공을 위한 무한질주에 동참하게 된다.

최도영이란 캐릭터를 비호감으로 만드는 것들
그런데 반면 최도영은 어떻게 그려지고 있었을까. 장준혁이 수술대 앞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위험하고 공격적인 수술을 하고 있을 때, 최도영은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초반 드라마에서 최도영이 맡은 최대의 역할은 소아암 환자 ‘진주’를 돌보는 일이었다. ‘하얀거탑’에서 환자가 보이지 않은 것은 보다 많은 환자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던 최도영을 초반부에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지 진주에게만 집착하는 최도영이란 의사 캐릭터는 비현실적이고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그려졌다. 이런 캐릭터가 진지한 얼굴로 생명이니 뭐니 하는 ‘공자님 말씀’을 하는 모습은 장준혁의 카운터 파트로서 ‘선한 의사’의 캐릭터를 구축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잘난 척하는’ 비호감 캐릭터의 면면을 형성한다.

최도영이란 캐릭터를 불리하게 만든 건 환자뿐만이 아니다. 이윤진(송선미)이란 또 다른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엮이면서 그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진짜 운동가도 아니면서 운동하는 척 하는’ 이윤진은 직업도 없고 오지랖 넓은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그려졌다. 드라마의 한 편에서 벌어지는 숨가쁜 정치싸움이 시청자들의 두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별로 의식하지 못했지만 왜 이윤진이 진주라는 환자 때문에 병원에 나오고 그 옆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는 지는 드라마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왜 이윤진과 최도영의 멜로가 사라졌나
게다가 드라마는 이윤진과 최도영 사이에 묘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함께 술을 마시고 얘기를 나누는 장면들을 삽입하는데 이것 역시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환자 때문에’ 시간이 없어 며칠에 한 번 겨우 집에 돌아와 아내와 얘기할 시간도 없는 최도영이 전혀 상관도 없고 관심도 없는 이윤진과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 이것은 법정드라마로 변신한 지금에 와서도 계속 이어진다. 왜 이윤진이 갑자기 권순일 환자의 일에 뛰어들게 되었고 지금처럼 그를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전전하는 지는 여전히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이런 구도로 흘러갈 것이었다면 애초의 설정대로 이윤진과 최도영 사이에 멜로 라인을 끼워 넣었어야 옳다. 그렇다면 최도영을 쫒아다니는 이윤진이란 캐릭터에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윤진이란 캐릭터의 최초 설정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지만 인술을 펼치는 학구파 의사 최도영을 만나게 되면서 그를 사모하게 된다. 그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는 유부남. 이성적으론 그러면 안 된다 생각하지만, 그럴수록 최도영에 대한 사랑은 점점 깊어만 간다.” 우리는 이윤진의 최도영에 대한 깊어만 가는 사랑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혐의는 찾을 수 있다. ‘하얀거탑’이 처음 방영되었을 때 나온 폭발적인 반응, ‘멜로 없이도 된다’는 포지셔닝이 그 둘 간의 멜로를 막아버린 건 아니었을까.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자 이윤진이란 캐릭터도 버려지게 되었다.

대결구도보다는 환타지에 집중하는 ‘하얀거탑’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현재 법정드라마 속에서 장준혁에 맞서는 순일 처(김도연)라는 캐릭터이다. 그녀가 남편의 죽음이 의료사고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취하는 태도는 수동적이다. 그저 눈물로 호소하는 것. 하지만 이 드라마에 몰입되어 있는 시청자들에게 눈물은 그다지 호감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좀더 이성적인 대응이었다면 그녀의 캐릭터는 공감과 호감을 끌어냈을 것이다. 반면 그녀 앞에 ‘피도 눈물도 없이’ 선 장준혁이란 캐릭터는 점점 공고해지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런 싸움에서 누가 이긴들 그것이 드라마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된다. 만일 장준혁이 진다면 사필귀정의 의미보다는 그 캐릭터에 대한 동정심만 더 커질 것이다. 장준혁은 이겨도 이기고 져도 이긴다는 말이다.

‘하얀거탑’이 최도영이란 캐릭터에 비중을 주지 않은 이유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윤리적인 선택을 강요하기보다는, 장준혁이라는 환타지를 통한 카타르시스에 더 초점을 맞춘 결과이다. 집안도 배경도 없는 장준혁이 성공을 향해 무한질주 하는 모습. 거기서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한번 끝까지 가보는 것. 우리 같이 매달의 생활을 걱정하는 소시민들이 선이든 악이든 한번 미친 듯이 해보고 싶은 그 상승욕구를 드라마 속에서 풀어보는 것에 더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치열한 대결구도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장준혁의 독주를 그리고 있다. 그 과정에 나타나는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그들을 싸워 이기든지 혹은 끌어들이는 방법으로 장준혁은 계속 높은 거탑을 향해 올라간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최도영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걸면서 대결구도로 드라마를 읽어보게 되는 이유는 속에서 불끈불끈 끓어오르는 권력에 대한 욕망 속에서도 ‘정말 이래도 되나’하는 자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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